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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장 우리를 끝까지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

LNCK 2025. 3. 2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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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9 주일예배 // 우리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 - YouTube

 

우리를 끝까지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      고전1:4~9       2025.03.09.   고린도전서2강

지난 주 고린도전서 1강은 '편지의 인사말'에 대해서 같이 나누었습니다.     
오늘부터 편지의 내용이 시작되는데, 강의안을 보시면,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1:4~7절 : 사도바울의 감사 
1:8~9절 : 감사의 놀라운 유익 

◑고전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4절에 바울 사도께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한다. 너희를 위하여' 

아마 성경에 이해가  있으신 분들은, 바울 서신을 쭉 살펴보면 
대부분 인사말 다음에  감사, 혹은 찬양이 대부분 이어집니다. 패턴이죠.

고린도 교회는 어떤 교회였나? 정말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제넘지만. 만약에 사도 바울이었다면 
저는 아마 책망부터 편지를 먼저 시작했을 것 같아요. 꾸중을 아마 먼저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면서, 무엇으로 시작하냐면, 감사를 드립니다. 

이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그들을 위해서 바울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메모를 하나 따로 해놨습니다. 
「책망보다 먼저 감사」 
이렇게 메모한 이유는, 제가 기도제목으로 삼고, 이렇게 살겠다고 기억하기 위해서죠.

우리 개인적인 삶을 돌아보면, 「염려와 걱정보다 먼저 감사」 
여러분도 메모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메모를 한 것은, 요즘 제 자신의 삶이 굉장히  분주합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지난 한 해 동안 대구노회 노회장으로 섬겼는데,
이제 한 달 정도 임기가 남았습니다. 이제 마무리하는 그런 때가 되었는데 
마무리할 때가 되니까, 정말 모임도 많고, 또 해야 될 일도  많이 있습니다.  

또 지금 제가 대구기독교 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맡고 있는데,  
한 해 동안 대표 회장을 섬기면, 가장 큰 행사가 뭔가 하면, 
올해는 4월 20일에 있는 '부활절 연합예배' 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한 3만명 정도 예상하며, 저희들이 준비하고 있는데, 
올해 2025 같은 경우는, 시작부터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들은 잘 못 느끼시겠지만, 
최근 5년 사이에 대구지역의 중대형 교회 담임목사님들이 대부분 다 바뀌셨습니다. 
그래서 대구 지역 특별히 목사님들 사회에서는 엄청난 변화들이 지금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대부분 젊은 목사님들이고, 또 교회에 담임목회를 시작하신 분이 
아직 몇 년째 되지 않는 분들이  중심이 되다 보니까  
연합 행사를 진행한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제 개인적으로는, 대구지역의 과거에 큰 교회, 훌륭하신 목사님들이 
맡으셨다가, 지금은  목사님들이 은퇴하시면서, 
그분들이 쓰셨던 감투의 대부분을 제가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가 요즘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또 우리 교회도 1년 동안 준비를 꼬박 해가지고 
오늘부터 우리가 '예친모임'을 시작합니다. 저한테는 엄청난 모험입니다. 
'우리가 과연 지역 중심의 교구를, 연령대 별로 재편하고, 
또 소그룹 예친 모임을 연령대에 중심으로 재편하는 작업들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제 개인적으로도 정말 부담이 많았고, 그런데  부목사님들과, 
또 순장님들과 성도님들이 정말 잘 협조를 해 주셔서  
오늘부터 예친모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요즘, 하루하루 일정표가 있는데, 
제 일정표를 보면, 어떤 날은 하루를 시작할 때는 가슴이 탁탁 막히기도 하고, 
또 '일주일 단위 일정표'를 보면, 
'야 이거 정말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있겠나?' 

또 지난 주가 우리 교회에 아마 역대급으로 장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사실은  하루하루가  마음에  부담도 많이 됐고, 

또 모든 분들이 그렇겠지만, 우리 장성한 자녀들도 
앞으로 계획들이 있고, 변화가 있고, 준비해야 될 것들이 있고,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부담감으로 쉽지 않았던 시절을 요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연구하면서, 
'먼저는 성도들한테 제가 설교하기 전에, 
내 자신한테 한번 적용을 해 봐야 되겠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책망할 것이 많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 때 
'책망보다는 감사를 먼저 했구나, 감사를 먼저 선택했구나!'  1:4~7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면, 불평과 원망이 가득할 상황이지만, 정말 감사를 먼저 선택했구나' 

그래서 저도  감사를 한번 먼저 선택하기로, 제가 결심을 했고, 
또 그것을 한 번 행동으로 제가 옮겨 봤습니다. 

그래서 4~7절까지 내용은, 바울의 감사 내용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저절로 찾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노력을 해야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서, 책망은 10절부터 나오게 되고, 
먼저 감사하는데, 그 제목들은 이렇습니다. 

4절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5절을 한번 보시죠. 

◑1: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언변'이란, 말과 관련된 은사입니다.  in all speech
만약에 교회 같으면 설교, 가르침,   
나중에 후반부에 나오는 방언, 예언, 이런 것들은 다 말과 관련된 은사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말의 은사를, 하나님이 풍족하게 주셨다... 그래서 감사드렸고요. 
또 하나 감사를 더 이야기합니다. 

'모든 지식'  in all knowledge
지식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입니다. 
'너희에게 그 모든 지식을 하나님께서 풍족하게 하셨다' 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 다음에 6절과 7절은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와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두 가지 결과물입니다. 

◑1:6~7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증거'는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내용들이죠.

즉 예수님이 누구시고,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고, 이 예수님을 는 어떻게 모셔야 되고,  
그리고 그분을 따라 살기로 결심했으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 '그리스도의 증거'가 그들 가운데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자연스러운 결과죠. 왜냐면 바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해서' 
즉 설교와 관련된 많은 그런 풍성한 은사를 주셨으니까 
그들은 훌륭한 분들을 통해서 배우고, 

또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식의 은사를 주셨으니까, 
복음과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증거(복음)가 그들 중에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 '은사 gift'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구원(롬5:15), 
-일반적인 하나님의 선물(롬11:29), 
-성령의 특별한 능력(12:6)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죠. 

여기서는 전체 문맥을 볼 때 '그리스도의 증거가 고린도 교회에 좋게 받아 들여져서 
나타난 열매'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선물'이며, 특별히 '가르침, 복음, 지식'의 선물이죠.

나중에 9장 이후에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믿음, 지식과 같은 내적인 은사뿐 아니라 
이적 행함과 병고침, 방언과 예언같은 외적인 은사들이 풍성하였죠.
그때 '은사'는,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의미했습니다.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7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재림입니다. 
그들 고린도 교인들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상태로? 
'모든 은사(선물)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바울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사의 내용을 찾아봐야 됩니다. 
바울은 지금 감사의 내용을 찾아서, 이렇게 고린도 성도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근데 제가 이 본문 말씀을 묵상하다가, 제가 마음이 울컥했던 거는 뭔가 하면,  
지금 바울이 감사드리고 있는 '말의 은사, 언변의 은사, 지식의 은사'는 
밝은 부분만 있었던게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가 고린도 교회를 자세히 살피겠지만
이 말의 은사, 지식의 은사 때문에  
고린도 교회는 많은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밝은 부분만 있지 않고, 
이 은사들 때문에 고린도 교회는, 
정말 많은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마 제가 바울 사도였다면, '말의 은사, 지식의 은사... 이거는 문제가 너무 많아요. 
좋은 것 같기는 하지만, 이것 때문에 교회가 너무너무 시끄러워서져요.
이거는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바울은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감사를 드리고,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었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고대하는데 부족함이 없이 너희들은 살아가는구나...'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메모를 하나 더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 때문에, 설령 문제들이 생긴다 할지라도 
내가 그것을 감사해야 된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저는 청년들과 또 성도들을 섬기면서 
'말의 은사가 얼마나 위험한 은사가 될 수 있는지' 하는 것들도 제가 많이 목격했고,  

'지식의 은사가 정말 귀하지만, 
지식의 은사가 어떻게 위험해질 수 있는가' 하는 것들도 제가  많이 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그런 은사들이 있죠. 
'방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까지도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저는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에 한 번씩
'야, 그런 은사들 다 필요 없어,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그냥 성경 읽고, 주님 사랑하면 되는 거지... 은사들은 다 필요 없는 거야!' 
제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근데 바울은 지금 뭐라고 이야기했죠? 
이 말의 은사, 지식의 은사 때문에 
교회 속에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는 이런 부작용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책망보다도 먼저 감사를 드렸고,  
염려와 불평 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그것 때문에 설령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그는 기꺼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본문 고전1:4~7절을 통해 결국 바울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은 무엇이냐? 
-먼저 감사해야 되고 
-또한 우리는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보셔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신이 없이  살아가다 보니까 
한번씩은 제 마음에 '내가 감사할 제목들이 과연 있나? 
그냥 내가 소모되면서 살아가는 거 아닌가?' 이런 식의 생각들을 제가 가끔씩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간에 본문 말씀 때문에 
제가 감사의 내용들을 한번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찬찬히 찾아봤을 때 저도 깜짝 놀랐어요. 
'아, 내 삶에도 감사의 제목들이  많이 있구나...' 

여러분이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노회장 될 때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저희 노회가 지난 5년 동안을 진짜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노회장이 되면서 '아, 내가 몸 성하게 마칠 수 있을까? 
노회가, 과연 나같이 이런 문외한인 사람이, 노회장 직을 평안 가운데서 잘 섬길 수 있을까?' 
이런 그 염려와 무거운 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니까, 지난 한 해 동안 제가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평안으로 노회를 지켜 주셔서 
그래서 가끔 몇 분을 만나면, 저보고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목사님, 역대급 평화입니다.' 한 번씩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셨구나!' 하고 감사를 드리게됩니다. 

또 대구 기독교 총연합회도, 사실 이번에 부활절 연합예배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장소도 막 뒤틀리기도 하고, 조직이 와해될 뻔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왜냐면 지금 교회들의 사정이 다 어렵고, 리더십이 교체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정말 거의 총연합회 조직이 와해될 뻔했던 위기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근데 또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피할 길을 주셔서, 이제까지 잘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대구에 새로운 목회자들이,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통해서 앞으로 대구지역 교회가 
어쩌면 새로운 한 번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요즘은 제가 그분들을 만나면, 감사하는 마음이 많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교회가 교구 개편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변화의 시기를 경험하고 있는데, 순장 모임도 새로 개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돌아보면, 순간순간마다. 길이 잘 보이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고, 
'과연 끝이 날 수 있을까?' 라고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정말 도와주셔서, 여러 일들을 지금 의욕있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거는 저한테는 정말 기적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정말 도와주셨구나..'  

그뿐만 아니라 또  가정이나 여러 문제를 대할 때도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주셨구나.. 하나님이 도와주셨구나..' 
이런 것들을 제 마음에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도님들께서도 오늘 '예친 모임' 하실 때 
한번 자신들의 삶 가운데, 최소한 한 주든 두 주든, 
정말 바쁘고 또 분주하고, 하루하루가 벅찬 삶일 수 있는데 
그렇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서, 
감사를 먼저 선택하고, 그 내용들을 한번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갖게 되면 가질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유익이 
1:8절과 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8절은, 이렇게 감사를 드린 다음에 생기는 확신입니다. 
이런 은혜와 은사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돌보고 계시는 주님께서 
'너희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조금도 고소나 고발이 될 것이 없는, 
조금의 흠도 없는 그런 사람으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여러분, 바울이 놀라운 확신을 지금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 많은 고린도교의 성도들을 향해서 
'주님이 너희를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거다'
정말 놀라운 선언이지 않습니까!

이 문제 많은 고린도교의 성도들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저는 신앙생활을 하고, 또 사역자의 길을 걸으면서 
항상 오랫동안 씨름했던 고민 중에 하나가 뭔가 하면 
저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내가 정말 끝이 좋을 수 있을까? 나의 끝이 과연 어떻게 될까? 
내 개인의 삶, 또 사역자로서 내 끝은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나보다 더 탁월하고 능력 있는 그런 분들도, 가끔 무너지고 깨어진 결과들이 있었는데, 
과연 나의 끝은 좋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끝은 과연 좋을 수 있을까?
예수님 믿고 정말 끝이 좋을 수 있을까?' 저는  오랫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근데 그 말씀에 대해서 답을 주었던 말씀이, 바로 8절이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여러분, 우리들의 끝이 좋은 것은, 우리들의 능력과 노력과 결심에 달려 있는게 아니라, 
바로 '주님께서' 주 예수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분이 우리를 견고하게 세우실 것이다...

이 말씀을 제가 발견하고 나서, 
'야, 내 마지막에 대해서, 나의 미래에 대해서, 이제는 내가 희망을 가질 수 있구나' 

'바로 이 은혜와 은사를 주신 주님께서, 
내 삶을 끝까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이 세워 주시겠구나' 

그런데 확신의 근거를 9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바울이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 
9절 말씀에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지금은 '미쁘다'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데  
한글 뜻으로 '미쁘다'는 '믿을만 하다' 입니다. 
영어 번역으로는 'God is faithful.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믿을 만한 분이시기 때문에, 신실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신실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낙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이, 제 미래에 대해서 하나님이 주셨던 말씀이기도 하지만, 
저는 청년들을 오랫동안 섬겼습니다. 또 성도님들도 오랜 세월을 섬겨왔습니다. 

그러면서 가끔은 이런 질문이 생기죠. '하나님, 저 친구는 내가 도저히 감당 못하겠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신다 해도, 저 사람은 안 바뀔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졌던 순간들이 참 많이 있었어요. 

청년들 중에도, 성도들 중에도, 
어떻게 보면 도저히 저한테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 
'하나님, 저 사람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근데 한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제게 찾아오셔서 
'야, 내가 저 사람들, 저 청년들을 내가 귀중하게 만들 거야.. 
내가 저들을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내가 세울 거야..' 
이렇게 하나님이 저한테 강렬하게 도전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우리 청년들과 성도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이 말씀을 제가 받고 나서부터, 정말 제가 감당하기에 벅찼던 청년들, 그들을 만나면, 
제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보십시오. 쟤는 안 바뀝니다. 쟤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견고하게 세우시겠다'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볼 때는 안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 거는 두고 보는 겁니다. 
되나 안 되나 제가 두고 보겠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저를  실망을 끼칠 때가 참 많았거든요. 
그러면 제가 속으로 이빨을 깨물고 '하나님, 제가 두고 보겠습니다' 

또한 성도들을 대할 때도, 어떤 변화도 나타나지 않는 것 같을 때 
'하나님, 제가 두고 보겠습니다' 

저는 지금도 똑같습니다. 제 인생에 대해서도, 우리 성도들의 삶에 대해서도, 
'하나님, 제가 볼 때는 안 될 것 같은데... 주님은 말씀으로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두고 보겠습니다. 말씀대로 되나 안 되나... 하나님 제가 두고 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정말 우리들 같이 연약하고
이 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교회도 한계로 (문제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세워질 수 있겠습니까? 

9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의 신실함을 찬양할 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시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어떻게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다듬어 가시느냐? 그분의 방법은 무엇이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교제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교제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가십니다. 

근데  여기에 나오는 교제는 헬라어 '코이노니아' 입니다. 
이 단어의 두 가지 뜻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교제(코이노니아)'에 있어서 
-첫 번째는, <연합>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제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머리십니다.  
교회는 그분의 몸입니다. 

내가 바로 그 몸속에 들어오니까, 예수님과 나는 하나가 됩니다. 연합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연합을 통해서 맺어진 이 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냐? 
아무도 이 관계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맺어진 이 사랑의 교제, 
하나님이 부르셔서 예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맺어진 이 사랑의 교제는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이미 내가 들어갔기 때문에! 

예수님과 나 사이에 맺은 이 사랑의 교제, 이 연합의 사랑의 교제는 
누구도 끊을 수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이 교제(코이노니아) 속에는 연합과 함께 <소통>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피조물이 누리는 최고의 영광은 무엇이냐?  
주님은 인생의 구원자, 기적의 예수님이신데 
그분과 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소통'할 수가 있습니다. 
그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소통할 수가 있어요.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지금까지 제가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면서 
제 삶의 가장 혁명적인 변화는 무엇이냐?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가 깨닫고, 이것을 누리게 되었을 때,  
이것이 신앙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저의 삶도, 사역도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어요.

저는 모태 신앙으로 자랐고, 난생 처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구를 떠나 서울에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 집안 가운데서도
제가 처음으로 서울로 유학가서 공부하는 케이스 였기 때문에,
서울에 소위 연고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의 낯선 서울 생활을 가이드해 줄 만한 분들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저는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제가 매일매일 던졌던 질문이 이거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오늘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제가 오늘 이때 어떻게 해야 되죠? 하나님 이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매 순간 낯선 순간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리고 제 두 번째 질문은 뭐냐, 
'하나님, 이 선택을 잘못하면 내 인생은 망가질 것 같은데, 
하나님, 정말 이 선택에 대해서 제가 책임지기가 너무 무섭습니다...' 

그래서 제가 위 두 가지를 항상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제가 매 순간 선택하는게 너무 무섭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근데 그때 제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겨울 방학 때 즈음에요.
제가 예수님을 만나고 깨달은 것은 '예수님은 누구시냐?' 
제가 놀랐던 거는 
'하나님, 저는 내일 일도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영원한 과거부터 
영원한 미래를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몰라도 주님은 (제 미래를)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제 삶에, 어떤 선택의 순간이 있을 때마다
저는 누구한테 묻게 되었느냐? 

이제는 두려워하는 대신에, 무서워하는 대신에, 
'주님, 저는 어떻게 살면 됩니까? 주님, 이때 어떻게 하면 되죠?' 

'주님, 저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영원한 과거, 
영원한 미래까지 알고 계시는 주님! 
제가 선택해야 될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에게 주님의 뜻을 알려 주십시오!'

그때마다 주님께서 제게 찾아오셔서, 그분의 뜻을 '소통'해 주셨습니다. 
저같은 피조물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창조주 하나님과 기도로 소통하는 이 기쁨! 

그때부터 제 삶에 무엇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느냐?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아, 내 인생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과, 그리고 인생의 구원자 예수님과 살아가면, 
나는 이제는 객지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아!'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들의 삶을, 
우리는 약하고 이 세상은 악한데, 
어떻게 하나님의 우리들의 삶을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것은 예수님과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이 사랑의 교제,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생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그분의 뜻을 우리에게 소통해 주시고, 알려 주심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바꿔놓으시는 거죠. 

그분은 최고의 능력, 최고의 사랑, 최고의 지혜, 최고의 권세를 가지신 그분이 
그분의 생각과 뜻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심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새롭게 바꾸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편지를 시작할 때
이 시작에 그를 통해 우리에게 네 가지를 도전했습니다.  

1) 첫 번째, 우리들의 삶이 벅차기 때문에 
때로는 정말 우리가 책망하고 싶기도 하고, 원망하고 싶기도 하고, 불평하고 싶지만 
그러나 첫 번째 해야 될 일은 무엇이냐? 감사를 먼저 선택해야 됩니다.  <감사>

2) 두 번째, 감사를 선택했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감사의 제목들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언제까지? 
'하나님이 내 삶을 돌보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감사의 제목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3) 세 번째, 우리들의 삶을 돌보시고, 은혜와 은사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은 누구시냐? 
그분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즉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9
영어로는 God is faithful! 

내가 신실한게 아니라, 내 노력과 내 결단은 끊임없이 좌절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나의 삶을 어떻게 만드시느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바꿔 가십니다.  :8

이제 예친 소그룹 모임이 시작될 텐데, 모임을 하다보면, 힘드신 분들도 많으시겠죠.
그때 속으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두고 보겠습니다. 저 인간이 바뀌나/ 안 바뀌나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8절 약속을 두고 보겠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소망을 낳고, 소망이 무엇을 낳느냐? 사랑의 섬김을 낳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확실히 믿게 되시기 바랍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나의 미래를 반드시 책임지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은 무엇인가요? 
바로 예수님과 사랑의 교제, 아무도 끊을 수 없는 그 사랑의 교제를 통해 
내 인생의 구원자 예수님과 함께,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이 되셔서   

내 인생을, 내 생각, 내 지혜, 내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