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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장 찔림에서 시작되는 은총

LNCK 2025. 3. 2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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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3일 "찔림에서 시작되는 은총(눅2:25~35)"  - YouTube

찔림에서 시작되는 은총         눅2:25~35            2025.02.23. 

◑도입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에 들어가면 좌측에 케이블카가 있습니다. 
그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등산하기 어려우신 분도 권금성까지는 금방 올라가실 수가 있고,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한 5분쯤 가면, 앞이 탁트인 전망대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멀리 울산바위로부터 시작해서, 눈앞에 펼쳐진 설악산의 비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광대한 비경뿐만 아니라, 또 눈길을 끄는게 또 있는데, 
그것은 권금성(봉우리)의 우람한 바위 틈새에서, 
도대체 몇백년이나 거기 버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소나무들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견고한 바위를 자기가 뚫고 나왔는지, 아니면 바위가 틈을 벌려 주었는지 모르지만 
그 한겨울 삭풍을 견디면서 의연히 서 있는 소나무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이 있습니다. 
갈라 터진 틈새에서 자라나는 생명, 
이것은 그 바위틈에 자라는 나무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이 어머니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여러 자녀들을 홀로 키워야 되는 딱한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미 그 상황만으로 해도, 이 어머니의 가슴은 다 갈라 터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생계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이분은 새벽 3~4시면, 자갈치 시장에 나갔습니다. 

거기서 기다리면, 밤새 물고기를 잡은 배들이 싱싱한 생선을 싣고 항구로 들어옵니다. 
즉석에서 경매가 이루어지는데, 그 중에 일부를 경매 받아서, 
그리고는 좌판을 깔고 앉아 그 생선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팔곤 했습니다. 

다 팔고 나면 다시 정리해 가지고, 거기서 몇 정거장 안 되는 집으로 돌아와야 되는데, 
그게 참 곤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생선 비린내가 온 버스 안에 진동하기 때문에, 
기사님도, 승객들도 얼굴을 찌푸리면서 그분을 쳐다보았기 때문입니다. 

자갈치 시장에서 영도까지 몇 정거장 안 되지만, 죄지은 마음으로 
마치 버스가 1~2시간이나 가는 듯이, 그 굴욕을 견디면서 그렇게 오갔습니다. 

그분의 손은 얼마나 많이 생선 가시에 찔리고 찢겼는지 성한 곳이 없고, 
생선을 손질하다가 칼에 베이고 해서, 갈라 터진 정말 험한 손이었습니다. 
이미 마음은 다 찢겨진지가 오래고, 그 손 하나가 성한 곳이 없는 그런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그 어머니 마음에 찢겨진 틈새로, 
그리고 그 손등이 다 갈라 터진 그 상처 사이에서 흐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놀라운 어머니의 사랑이었고, 
그리고 그 틈새를 비집고, 그분의 자녀들이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자녀들은 마치 바윗틈에서 자라나온 권금성 소나무와 같은 것이고, 
또 그 어머니는 의연하게 소나무를 품고 있는 그곳에 바위와 같이.. 제게 여겨졌습니다. 

그 어머니는 저를 볼 때마다 '목사님, 우리 딸, 우리 아들들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저를 만나기만 하면, 그런 말씀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찌 그 어머니뿐이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여러 가지 역할들을 감당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배후에는 
그러한 아버지 그러한 어머니들이 다 계신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참 위대하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예배 드리시는 성도님들 뒤에도, 그런 사연들이 많이 있으실 것이고, 
잊을 수 없는, 갈라 터진 틈새로 사랑과 눈물을 흘려보내주신 
아버님 어머님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그 덕에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본문 해석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는, 자신의 갈라터진 틈을 통해서 생명을 낳은 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던 그때, 
마리아의 영혼은 이미 찢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순결한 처녀인 내가 어떻게 자녀를 낳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때 가브리엘 천사는 말하기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면서   1:37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또 한 가지 문제는, 처녀가 배가 불러서 아기를 낳게 되면 
정혼 상태에 있는 여인이 순결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되어서, 
끌려 나가 돌팔매질 당해 죽을 수도 있는 극히 위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는 어려운 일을 
천사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자신이 찢기고 상하여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순종하기로 다짐하고, 이런 고백과 함께 순종하죠.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1:38 

이렇게 죽기를 각오한 마리아의 헌신은,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을 때만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라, 
그녀의 평생을 통해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본문 눅2장에는 마리아가 겪게 될 고통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 
난지 팔일 째 되는 날, 요셉과 마리아는, 율법을 따라서 정결 예식을 거행하기 위해서 
아기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경건하고 의로운 한 노인 시므온을 만나게 됩니다.

이 시므온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위로가 언제 나타날 것인가?' 기다리던 인물이고, 
늘 성령의 감동 안에 살던 경건한 어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성전에 올라오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아기 예수님을 딱 만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시므온이 예수님을 가슴에 안고 놀라운 말로 하나님을 찬송했는데 
그 찬송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리아와 요셉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 시몬의 찬송이 눅2:28~32절까지입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여러분, 이 말씀을 듣는 요셉과 마리아가 놀랍니다.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3 

시므온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경이로운 것이었고, 
'우리에게 맡겨진 이 아기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 하나님의 아기인가?' 
다시 한번 아기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깊어졌을 것입니다. 
자 그런데 문제는, 계속되는 시므온의 그 다음 이야기였습니다. 

◑시므온의 두려운 예언

눅2:34~35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이 말씀은 대단히 무겁게, 그리고 충격적으로 요셉과 마리아에게 다가왔을 게 틀림없습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4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을 해 보려고 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들의 <패하거나 흥함을 위해서 오셨다>고  :34
말씀한 대목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양날의 검'과 같으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이 땅에 등장하신 이후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고, 회복되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을 받은 사람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서 
더 죄가 깊어졌고, 오히려 멸망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 요3:3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께 걸려 넘어져서 멸망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줄로 믿습니다. 

2) 또 예수님은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34 
여러분 이 말씀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음이 틀림없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세상으로부터 비방받기를 원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이분은 하나님의 아드님 아닙니까? 
그러면 만인의 존경과 칭송을 받으셔야 되는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된다고 하니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 부모의 마음이 무척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3) 견디기 어려운 말씀이 계속 됐는데, 그 다음 말씀은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35

여러분 마리아가 처녀로서 아기를 낳는다는 그것만 해도, 
이미 그 인생이 찢겨지는 일이었는데, 
그러면서도 마리아는 한편으로 기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내가 낳는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로 인해서 내가 복 있는 여성이 된다니...' 하는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가 친족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석 딸을 머물렀는데,
엘리사벳은 '유대 한 동네'에 살고 있었죠. 1:39
학자들은 이곳을 예루살렘 근처로 봅니다.       주1)
그러니 마리아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예루살렘 근처 사흘 길을 걸어 찾아온 거죠. 

하나님 앞에 올린 찬송 중에 보면, 
자신을 '복 있는 여자'라고 표현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눅1:48절을 보면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의 나를 복이 있다 일컬어리로다' 이렇게 노래했었는데 

시므온이 마리아를 향해서 '네가 만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할 것이라'고... 극심한 고통이 다가올 것을 예언하니, 2:35
그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4) 마지막으로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는 부분이죠. 2:35b

여러분, 예수님께서 오시고 난 다음에, 
누가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고, 누가 가짜인지가 다 드러나게 됐습니다. 

겉으로 보면 다들 경건해 보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께서 만나고 나면,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다 드러난다는 겁니다.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준행하고 경건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예수님 앞에 서는 순간, 그들이 얼마나 형식주의자들이고, 
그 영혼이 화석같이 죽어 있는지가... 드러나게 되었죠. 바로 그런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죠. 

 

그러나 뜻밖에도,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천대 받던 세리와 죄인들 중에 
예수님 앞에 서니, 뜻밖에도 하나님을 진실되게 경외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들 속에 있다는 것이 나타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이 땅에 오셨고, 존재하게 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시므온이 예언으로 들려주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마리아에게 가장 힘든 듣기 말씀 중에 하나는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할 것이라'는 예언이었겠죠.  2:35
'내가 앞으로 받을 고통이 그렇게 큰 것인가?' 

여러분, 마리아는 어떤 고통을 받으며 살았을까요? 
예수님을 낳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고,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애굽이라는 낯선 나라에까지 피난을 해야만 했고, 

여러 해 동안 고생을 많이 해야만 했고, 
우여곡절 끝에 나사렛에 돌아와서 정착을 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 예수님은, 그저 목수로서
너무나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드님이라면, 십대 후반부터는 뭔가 대단한 모습을 보이고, 
세상 앞에 자신을 드러내야 되는데, 
나이 30이나 될 때까지 (성인 평균 사망 연령이 40대 중반이었던 당시로는 중년의 나이)

별로 하는 일도 없고, 그저 목수 일로 집안 생계나 도우며 살아갔던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이, 남의 집 보통 자녀들처럼, 평범해도 너무나 평범하지 않은가?' 
마리아는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아드님이 30살쯤 되던 어느 날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때가 왔다'고 하면서 
이제는 내가 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집을 떠나겠다고 하면서 훌쩍 떠나버린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얼마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마음이 불안했겠습니까? 

그 이후로 좋은 이야기가 들려온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와서, 듣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당신 아들이 유대 지도자들하고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대요. 
바리새인들과 변론을 벌인대요. 
그리고 아주 존경받는 이들과도 충돌한다고 그래요. 
당신 아들이 이러다가 큰일 치르겠어요...' 
마리아는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떤 사람들이 찾아와서 '당신 아들이 미쳤다고 소문이 났어요.' 
막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사람들로부터 '당신 아들이 미쳤어요'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장남 아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길을 나서야 되는 그런 처지가 되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요? 

이게 다 마리아를 '칼로 찌르는 듯한' 말들이었고,  2:35
마리아가 갈라 터지는... 그래서 눈물이 흐르고, 피가 흐르는 고통을 겪는 것이죠. 

▲근데 여러분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 다음에 다가오는 고통에 비하면, 그 이전의 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 다음에 마리아에게 찾아온게 뭡니까? 
그 아드님이 십자가 형의 언도를 받고,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서 
만신창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그 십자가에서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어야 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물론 성령님이 도와주셨겠지만요.
그래서 견디고 이기고 극복할 힘을 주셨겠지만요.
사람의 말로 그 고통을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갸냘픈 여인 마리아, 그 마리아의 영혼이 찢기고, 육신이 찢기고, 
삶이 다 만신창이가 되고, 그 고통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눈물이 쏟아졌을까요? 

근데 여러분 마치 바위틈에서 생명이 자라는 것처럼, 
어머니의 갈라 터진 손등의 그 눈물로부터 자녀가 자라는 것처럼, 

마리아의 그 극심한 고통의 틈새를 통해서, 흐르는게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우리에게 흘려보내 주시는 놀라운 구원의 은총이, 
그 틈을 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거기서 흐르고 있었던 것이죠. 

기독교 영성가인 정광일 목사님의 말씀 단상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땅 위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여인이었으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큰 상처를 지니고 살아야 했습니다. 

아기 예수라는 생명 때문에 찢어지는 아픔, 
무언가가 찢어지면서 나오는 것, 그것이 생명입니다. 흙이 갈라지고 새싹이 돋아납니다. 
나무껍질이 갈라지고 연한 가지가 나옵니다. (달력) 동지를 가르고 새날이 다가옵니다. 

그렇게 살이 갈라지고 간난아기가 태어납니다. 
역사의 살이 찢어지고 갈라져,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합니다. 
칼의 흔적, 상처 자국은 곧 생명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찔리고, 찢기고, 갈라 터진 틈새로부터 
은총이 흐르고 사랑이 흐르는 것을 보여주는 원초적 모델은, 
다름 아닌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마리아도 마리아지만, 예수님이 원초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끝에 쇠조각이 붙어 있는 그 채찍으로 맞고 또 맞으셔서
살이 다 터지셨습니다. 이만한 큰 가시가 박혀있는 그걸로 얽어서 만든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눌러 씌웠기 때문에, 이마가 다 찢어져서 피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두 손과 두 발에 이만한 대 못이 박힘으로 인해서 
구멍이 뚫리고 거기서 피가 흘렀습니다. 옆구리는 큰 창에 찔려서 큰 구멍이 생겼습니다. 

그 상처 구멍으로부터, 찢긴 상처로부터, 피도 흐르고, 물도 흐르고... 
그게 예수님의 보혈이고, 그게 하나님의 눈물이고,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찢긴 곳의 상처로부터, 그 아픔으로부터, 하나님의 은총이 흘러나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에 관해서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적용

오늘날도 찔리는 사람들, 찢겨지는 사람들, 갈라 터지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우는 사람도 많고, 피를 흘리듯 절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들 하소연을 하지요. '못 살겠어요. 너무 힘이 들어요. 
남편 노릇이 이렇게 고단한지 몰랐어요. 아내 역할도 정말 힘들어요. 
부모 되는게 이렇게 고통인지 몰랐어요. 자식으로 사는 것도 너무 힘듭니다...' 

가정 안에서 찢기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떤 이들은 일터에 나가서, 적은 소득을 얻기 위해 자존심도 다 찢기고, 
삶이 만신창이가 되면서 버티면서 '이런 직장에 내가 계속 나가야 되나?'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동료 성도에게 찢기는 사람도 있어요. 

'내가 이런 오해를 받으면서 꼭 교회에 남아 있어야 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혼란스러운 대한민국이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는데, 
내가 여기서 이런 고통을 밤낮으로 겪으며 여기 있어야 되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기도 하지요. 

 

가정을 떠난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 부모의 자리, 자식의 자리를 버린 사람도 많고, 
직장도 다 버리고... 그리고 교회도 버리고 떠난 사람들도 많이 있고, 
대한민국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이 장고한 역사 속에서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흘려보내시는 그 방식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그 은총은 찔림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의 그 놀라운 사랑이 
갈라 터진 상처로부터 흘러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상처에 틈에서, 위대함이 자라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그 아픈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만약에 버리고 떠난다면,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겠는가? 생각을 해보면 
그 자리를 지키며, 눈물도 흘리고, 피도 흘리며, 
찔리더라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성도의 삶인가...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그 교회에서 제법 오래 목회 하셨는데, 
왠지 그 교회는 늘 시끄럽고, 분규가 있었고, 갈등했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성도들은 서로 다투고, 그게 목사님에게 상처가 되고, 
그게 뭐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적되면서, 주일에 치유를 받고 은혜를 받는게 아니라 
집에 들어오는 목사님은, 그냥 상처투성이 피투성이 그런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사모님은 사정을 다 알기 때문에, '다 잊어버리고 푹 주무세요. 
다 하나님께 맡기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세요' 

그런데도 그 목사님은, 책상 머리에 앉아서 늦은 밤까지 성경을 뒤적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 다음 주일에 성도들에게 전할 설교 뼈대를 만들기 전에는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한다는 소식이 동료 목회자들에게도 전해졌는데 
동료 목사님들이 '아, 주일 밤에는 다 잊고 푹 자라고... 그러다 쓰러지겠어! 
아니 주중에 설교를 준비해도 되는데, 왜 그렇게 주일 밤에 제일 힘든 시간에 
그렇게 설교를 준비하는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을 때, 목사님의 답이 이렇습니다. 

'제가 가장 지쳐 있을 때, 제가 가장 마음이 상할 때, 
주님도 가장 제 가까이 계시고, 가장 깊은 은혜가 흐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그 주일 밤에, 
하루 동안에 있었던 많은 어려운 일로 인한 상처를 안고, 마음의 피를 흘리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러나 그 속에 눈물과 피만 흐르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흐른다는 걸 깨닫고, 
그 감동을 가지고, 그날 밤에 받은 말씀으로 설교를 준비해서, 
그 다음 주일 성도들에게 전하기 위한 그 노력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계속해 나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은총은 찔림에서 흘러 나온다는 걸, 우리 모두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갈라 터진 틈으로, 놀라운 것이 자라나온다는 것도 기억하길 원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삶이, 상처가 많고, 눈물 범벅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고통을 주실 때, 
이게 바로 '성도의 고통이 가지는 거룩한 의미'라는 것을, 우리 모두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우리 영락교회는 80주년이 되었습니다. 
80년이 되었으니, 더 좋은 시설을 가지고, 더 편안하게, 
더 안락한 신앙생활을 꿈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락하고 편안한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복음을 위해서,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서, 
힘든 한국 교회를 위해서, 여러 가지 분야를 위해서 
찔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피 흘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주님처럼 상처를 받아가면서, 눈물 쏟아 가면서, 
하나님 앞에 섬기는 교회가... 주님이 원하시는 좋은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영락교회가 앞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 찔리기도 하고, 
복음을 위해서 상처를 입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될 때까지 기도하신 
주님의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보시지 않은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하나님께서 우리 영락교회에 주신 저 남한산성에 있는 영락수련원을 
꼭 한번씩 가보시기 바랍니다. 영락수련원은 정말 축복된 거룩한 장소입니다. 

거기 예배실에 들어가면, 자그마한 십자가가 벽면에 하나 붙어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금 여러분들이 스크린으로 보고 계시는데, 크지 않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저 십자가 속에 등이 밝혀져 있고, 
스위치를 켜면 불빛이 바깥으로 은은하게 베어나옵니다. 

근데 저 십자가는, 작은 구멍들이 무수하게 뚫려 있어서, 
그 안에 있는 빛이 구멍을 통해서 밖으로 지금 배어나오는 겁니다. 

만약에 이 금속으로 만든 십자가에 구멍이 없다면, 
그 속에 전등불이 밝혀져 있어도, 바깥으로 베어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구멍이 있기 때문에, 상처가 있어서, 안에 있는 빛이 밖으로 스며나오는 그 모습은, 
예수님을 꼭 닮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혀 상처받지 않으셨다면, 
주님의 몸 안에 있는 보혈이 밖으로 흐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찔렸기 때문에, 찢겼기 때문에, 
상처가 나고, 못 자국이 창자국이 있기 때문에, 주님의 보혈이 밖으로 흐르는 것처럼... 
저 십자가가 바로 그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여기저기서 찔리실 때가 많을 것입니다. 
틈이 벌어질 때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 왜 힘들게 날 찌르시는 거예요?' 이렇게 하소연 하지 말고, 
'하나님 저의 이 상처 자국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상처를 통해, 내 자식들에게 은혜가 흐르고, 내 친구들에게도 은혜가 흐르고, 
우리 교회에도 은혜가 흐르고, 내가 아는 이들에게도 흐르고, 

그래서 그들도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나의 상처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나보다 먼저 그 삶을 살아가신 예수님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는 
우리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존귀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부귀영화를 누리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상처 받으시고 못 박히시고 창에 찔리셔서
그 쪼개지신 틈으로 흘리린 보혈이 우리를 용서하여 구원하니, 
찔림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습니다.

이 땅에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그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심으로써 오늘 우리가 있게 되었는데 

저희들도 삶의 과정에서 받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흐르기를 기도하며 
주님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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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세례 요한의 고향으로 전하는 곳이 예루살렘 서쪽 4㎞쯤 떨어진 곳
에 있는 '엔 케렘'(Ein Kerem)이다.

'포도원의 샘'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마을은 수목이 우거져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사이프러스 나무의 싱그러운 향기가 바람에 날려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정감이 우러나는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이다.

마을 중심부에는 그곳에서 제일 큰 건물인 '세례 요한 교회'가 우뚝 서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난 곳이라고 전해지는 장소 위에 세워진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