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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4장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믿는 자에게

LNCK 2025. 3. 25. 19:14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믿는 자에게" (사무엘상 14:1-15) - YouTube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믿는 자에게    삼상14:1-15       2025.03.23.    사무엘상22강

  
◑삼상14:1~3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2 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오늘 본문은 요나단을 통해서,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블레셋과의 전쟁의 
물꼬가 트이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지금 전장의 상황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어요.
본문은 14장인데, 13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블레셋의 노략군들이 세 부대로 나뉘어서, 북쪽과 동쪽과 서쪽으로 
이스라엘 영토를 침략해 들어왔고, 
또 블레셋의 본진은, 믹마스 남쪽 어귀에까지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본문 14:2~3절을 보면, 사울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기브아 북쪽 변두리의 주저앉아서, 그냥 적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사울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는가요? 
전투에 나가봤자 패전하고 죽는 것이고, 
그렇다고 왕의 체면상 항복을 할 수도 없고, 도망을 칠 수도 없잖아요. 

게다가 (자기가 집전해서) 제사는 지냈지만, 하나님이 임재하심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옆에 제사장이 에봇을 입고 서 있었지만, 그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왕도 영적으로 어두웠을뿐만 아니라, 엘리의 증손 제사장 아히야도 
자기가 제사장으로서 뭐를 해야 되는지, 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영적인 어둠 가운데 있었어요. 

그러니까 왕과 제사장과 백성들 모두가 목석처럼 굳어져서 
그들이 맞이하게 될 최후의 순간을 그냥 체념하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에 등장하는 사울의 모습처럼, 
체념에 빠져서 주저앉아 있는 분들이 있지 않은가요? 

내가 이 일에 나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절망의 늪에 빠져있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사울이 이처럼 말도 못하고, 행동도 못하고, 
생각도 멈춰버린 이유가 뭘까요? 

적군의 숫자와 무기가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아군이 너무 숫자가 적고, 무기도 열악하기 때문인가요? 

상황 논리로 보면 다 맞는 이야기죠. 그러나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가 하나님을 아직도 주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스라엘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요? 
여러분,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고대 사회 최강대국이었던 이집트를 물리치고 빠져나올 수 있었는가요? 
그리고 홍해는 어떻게 건널 수 있었는가요? 
그 수많은 가나안 족속들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가요?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가진 능력으로 이거를 해냈나요?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셨나요? 
네, 후자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오롯이 정말 당신의 능력 하나 때문이었는가요? 
아니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신 것인가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기적의 역사의 연속이었습니다. 
출애굽을 한 것도, 홍해를 건넌 것도, 
40년 광야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날마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는 것... 매일 기적을 체험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얼마나 얄팍한지... 
그렇게 매일 기적을 체험하고도, 오늘 또 결핍의 상황이 되면, 하나님을 의심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원망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영혼이 깨어 일어나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시편을 처음으로 집중적으로 읽다가 깨달은게 뭐냐면, 
자기 영혼을 흔들어 깨우더라고요. 
시편에는, 자기 영혼에게 명령하는 표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가 지금 혼절 상태면, 내가 내 영혼을 흔들어 깨워야 되는 거예요. 
내 영혼에게 명령을 하는 거예요. 

'왜 한 번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낙심하냐?' 
'지금까지 하나님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제까지 도우신 그 하나님이 오늘도 도우실 줄로 믿습니다. 
내일도 물론이고, 평생에 하나님 나를 도우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 사울은, 그 믿음이 없는 거예요.

◑14:4~5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들고 있는 소년에게 '우리가 건너편에 있는 블레셋 부대로 건너가자' 
게바를 탈환할 때는 사울왕이 뒤에서 명령을 한 것이기에 나아갔던 거죠. 
그런데 이번에는 요나단이 단독 행동을 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패를 맞이하게 될 이 상황을 
그저 눈 뜨고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양쪽 진영이 대치국면에 있는 그 사이의 협곡을 
지나서 블레셋 진영을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지리적인 것을 좀 이해시켜 드리기 위해서 
고대 상황과 똑같다고 볼 순 없겠지만, 그 추정하는 곳의 사진을 하나 보여 드릴게요. 


믹마스(블레셋 측)와 게바(이스라엘 측)는, 떨어진 거리가 한 1.5KM 정도 됩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협곡을 사이에 두고, 양쪽이 벼랑인 거예요. 

근데 이 양쪽 벼랑(절벽)이 높이가 각각 250M예요. 꽤 높은 절벽이죠.
그러니 접근이 서로 굉장히 용이하지 않았어요. 

게바에는 세네라는 낭떠러지가 있었고,    *가시 라는 뜻
북쪽에 믹마스에는 보세스라는 절벽이 있었죠.   *미끄럽다는 뜻
세네 '가시'라는 이름은, 그 절벽의 돌들이 굉장히 날카롭게 솟아 있는 암벽이란 뜻이죠. 

그래서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을 치려면, 
먼저 그 날카로운(세네) 암벽을 내려가야 되고, 
두 절벽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가로질러서
다시 미끄러운(보세스) 절벽을 기어올라가야 ... 비로소 적진을 다가갈 수 있었죠.
(중동 아프리카에는 이런 지형이 종종 있습니다. U자형 지대인 거죠. 삼상23:26참조)

그러니까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려면, 250M의 암벽을 기어내려와서, 
협곡을 건너서 (여기는 평지)
다시 250M의 그 암벽을 기어 올라가야 돼요. 

그러니 군대가 일부러 그런 곳에 진을 친 곳입니다. 안전하잖아요.
도저히 적편이, 그 지형을 뚫고 공격해 오리라고는 상상을 못 하는 거죠.
그러다가 전쟁을 할 때는, 양쪽이 다 근처 평지로 나가서, 거기서 서로 싸우는 겁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자기 부관(병기 든 자)을 데리고, 
세네와 보세스 절벽을 지나서, 블레셋 진영을 치러 간 것이에요.
블레셋은 꿈에도 대비하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고 요나단에게 싸울 힘이 남아 있었을까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전술적으로 보면 상당히 불리한 접근법이죠. 

사실 이 접근법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요나단은 이 도전을 시행한 것인데, 사실은 적의 허를 찌른 것이었죠.
결과는 대 성공이었습니다.

제가 요나단의 캐릭터를 보면서, '이 사람은 선제공격을 할 줄 아는 인물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 중에 소설 <삼국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중국의 위, 촉, 오나라 삼국시대 역사에서 
우리는 보통 유비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거는 이제 소설 <삼국지> 에서 유비를 많이 띄웠기 때문인데, 
또 명나라가 유교 사상이 강했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조조의 리더십을 많이 재평가합니다. 
그의 조직력이라든지, 인재 중용 등...
 
조조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다 주저할 때, 선제공격을 하는 사람이었다 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조직 안에서 '뭐가 문제다. 뭐가 문제다...' 분석은 많이 해요. 
'이래서 어렵다, 저래서 힘들다. 불가능하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해요. 

그렇게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때, 목표를 정해 놓고, 
가장 정확하고 빠른 신속한 해결책을 만들어서, 그거를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일터에서도 보면,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게 뭐 절대적으로 옳다는 건 아닙니다. 

-이미 세팅되어 있는 조직을 유지 보수하는 관리자 유형의 사람들이 있고, 
-정반대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걸 좋아하는 기업가 정신, 내지는 개척자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서로가 보완될 필요가 있죠. 

그런데 역사를 보면,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게 되고 
영적으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는 
요나단같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꿈을 선포하고 도전하고 
모험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만 이것을 돌파해 나갈 수가 있는 거예요. 

자 그래서 요나단의 그런 마음을 한번 볼 수 있는데, 6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4:6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여러분, 오늘 댁에 가셔서 6절과 7절을 다시 여러 차례 묵상해 보시면 좋겠어요. 
요나단은 왜 단독으로 블레셋 진영에 건너갔을까요? 세 가지로 보면, 

1) 첫 번째, 사울왕이 남은 군사가 600명 밖에 안 되는데 
'너마저 건너가면 어떡하냐?'하고 허락을 안 해줄 거 아니에요.

2) 두 번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3) 또 한 가지는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치겠다' 
이런 헌신의 마음이 있었죠. 

안정형의 사람들은 요나단의 결단과 행동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근데 저는 지난 28년 동안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해 하면서 
요나단의 행동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여요. 

왜냐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을 벌이면, 하나님도 덩달아 바빠지시더라고요. 
왜냐면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할 때, 하나님이 그것을 안 도와주실 수가 없는 거예요.

홀로 두실 수 없고, 안 도와주실 수 없어서, 
결국에는 하나님도 같이 대책을 세워 주시게 되더라고요. 

무슨 얘기냐면, 요나단의 대사를 열심히 묵상을 하면서 '와 놀랍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얘기를 했잖아요. '우리가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일하실까 하노라'


▲이 대사가 멋있지만, 두 가지가 이상합니다.

1) 첫 번째, 요나단이 하나님의 명령을 먼저 받았거나, 기도 응답을 받아서 이걸 실행했나요?
아니에요. 자기가 먼저 그냥 결정하고 움직였어요

2) 두 번째, 단독 공격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자기가 이 작전을 수행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까 하노라' 이렇게 표현했잖아요. :6
perhaps the LORD will work for us

 

그럼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를 주실 거라는 보장을 받고 했나요? 그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면 그가 믿음이 없었는가요? 

3) 세 번째, 뭐라고 얘기하냐면 '하나님의 승리는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6
그러니까 하나님이 승리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그는 믿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세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정말 요나단의 신앙이 훌륭하다는 점을 보게 됩니다. 
이것도 세 가지로 좀 정리를 해보면, 

1) 하나님 나라 승리를 위해서 자신은 헌신했어요. 

 

2) 그러나 두 번째가 중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내가 이렇게 헌신하니까, 꼭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셔야 돼요.' 
이거를 하나님 앞에 그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걸 하나님 앞에 강요하지 않는다고요.

왜냐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과 결정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기꺼이 헌신하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는 하나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굉장히 존중하고 경외한 것이죠. 

3) 세 번째, '제 공격이 만약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다면,
불가능을 가능케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 기도가 굉장히 성숙한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하나님은 반드시 저를 도와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무조건 '믿음대로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다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요나단은 자신의 헌신을 조건으로, 승리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니, 목숨까지 거는데, 승리를 보장해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불안해서 뭘 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하나님을 또 신뢰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놀랍도록 성숙한 믿음을 보였던 성경의 인물들이 많습니다. 
근데 제가 대표적으로 딱 한 사람을 들면, 
갈렙이 45년 전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하나님은 신뢰하지 않는 10명의 정탐꾼과 백성들 때문에, 가나안에 올라가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40년을 광야를 맴돌고, 정복 전쟁을 거쳐서 
비로소 그 바로 기럇아르바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가 유명한 대사를 하게 됩니다. 

수14:12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아멘!

여러분, 갈렙이 '모세가 약속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지 않으셨느냐? 
그러니 이 산지를 주십시오.' 

그런데 거인족들이 살고있는 기럇아르바(헤브론)는 가장 어려운 난공불락 중에 하나였어요.
그러니까 자기 목숨을 바치는 헌신을 했어요. 

그런 헌신을 하면서 '과연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도와주셔야 된다'고 얘기를 했느냐? No
갈렙은 이렇게 말했오요.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이렇게 조건절로 표현합니다. 
그건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이라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이 결정하시라는 거예요.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서,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신다면,
이 불가능한 일은 가능해질 줄로 믿습니다.' 

갈렙이 딱 이 고백을 하는 순간,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잖아요.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을 안 받으실 수가 없는 거예요. 

이렇게 기도했던 사람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갈렙의 믿음, 요나단의 믿음을 갖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 그러면 요나단의 병기 든 자는 어떻게 반응을 했는가요? 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4:7 '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저는 요나단도 훌륭하지만, 이 소년도 너무나 훌륭하다고 봅니다. 
요나단이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가는데, 
이 소년은 그런 요나단을 보고, 또 요나단의 마음을 따라가는 거예요.

요나단과 같이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는 리더들이 있고, 
또 그 곁에서 그 리더들과 함께 마음을 같이 해서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이렇게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는 리더와 팔로우들이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만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그런 세대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사무엘상 강해>를 시작하면서부터, 이 본문 차례가 오기를 좀 기다렸어요.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삼상14장의 말씀은, 제가 체험한 간증이 있기 때문이에요. 

2003년도인데요. 2003년 1월 6일 아침에, 온누리교회 설립자이신 하용조 목사님이 
집무실에 저를 오라고 하셨어요. 제가 그때 30대를 갓 넘은 전임 전도사였는데, 
제게 '두란노 서원에 가서 큐티 사역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생명의 삶>부터 시작해서, 모든 QT 잡지들을 총괄하고, 
QT를 한국에 있는 성도들이 다 할 수 있도록 운동을 일으키는 
QT 운동 본부를 시작하라고 하셨어요. 

그 당시에 '100만 QT 운동본부'가 있었는데, 
100만을 떼고 1천만을 붙이라고 하셨어요.
'천만 명이 큐티를 하는 그날까지!' 

제가 너무 부담스러운 거예요. 그렇지만 어쨌든 '제가 하겠습니다. 
그런데 혼자 할 수 없으니까, 한 명의 동역자를 붙여 주십시오!' 

하목사님은 '그럼 누구를 원하느냐?' 

서빙고 온누리교회에 그때도 굉장히 많은 목사님들이 계셨는데 
'이분이랑 하면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하목사님께서 그 부서장 목사님을 불렀어요.

'그 부서에 있는 이 목사님을 QT 본부로 좀 보내주면 좋겠어요.' 

그러자 그 부서장은 '그 분은 저희 부서에서 너무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 요청이 당장은 거절을 당했어요. 
그래가지고 제가 한 달 동안 기획서 쓰고 혼자 기도하면서 
'야, 이거는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는데, 이 중차된 사명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근데 어느 날 하루는, 서빙고 온누리교회 교육자실이 선교관 2층에 있었어요. 
저는 이제 막 전임이 된 말단 전도사였기 때문에, 입구 쪽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그날 성경통독을 하다가, 바로 (오늘 설교본문인) 삼상 14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요나단의 병기 든 소년이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7
이 구절을 읽고 있는데, 성령님이 제 마음 가운데 
'오늘 내가 이런 사람을 너에게 보내주겠다'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주위를 둘러봤어요. 아무도 없었어요. 
'야 이거 진짜 하나님 음성이구나' 

그런데 그 순간에, 제 책상 위에 있는 인터폰이 울리는 거예요. 
당시에 책상 위에 인터폰이 있어도, 1년 가도 울릴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날 신기하게 인터폰이 울리는 거예요. 

수화기를 집어 들었더니, 어느 분이 
'제가 이상준 전도사님과 그 QT 사역을 같이 동역하고 싶습니다!' 

그분이 지금도 저희가 종종 초대해서 말씀을 듣는 금호중앙교회 안광국 목사님이세요. 
그래서 저희가 얼마나 서로 의지가 되고, 재밌게 힘있게 QT 사역을 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 비전의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평생의 동역자들을 허락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14:8~10절 '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9 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10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요나단이 말하는 '하나님의 표징'이라는 것은 
협곡을 건너가서 블레셋 군대에 자기를 나타내 보여주었는데, 
의도적으로 자신을 노출한 거죠. 

블레셋 군대가 '기다리라, 우리가 너희에게로 내려가리라' 그러면, 자기는 올라가지 않고,  
블레셋이 '네가 올라오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공격하는 길을 열어 주시는 싸인으로 
받아들이겠다... 이런 것이었어요.  (12절에, 블레셋이 '여기로 올라오라' 그럽니다)

제가 이 부분을 묵상을 하다가 깨달은 것은, 
여러분, 우리가 기도 응답이 구체적으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서 결단을 하고, 길을 가야 될 때가 있죠.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요?

▲아직 내가 명확하게 응답을 못 받았는데... 뭔가 일을 착수해야 될 때가 있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요나단이 이 작전을 수행한 것은, 기도 응답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선제적인 명령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일은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요나단은 하나님 응답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싸인을 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거예요. 이게 중요합니다. 

▲제가 28년동안 목회사역을 하면서, 저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교회에서 그 다음에 이듬해 보직을 결정하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교회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그 분들이 제게 '내년에는 청년사역을 하십시오. 내년에는 성인사역을 하십시오'
이렇게 말씀해 주기 전에, 하나님이 늘 제게 먼저 알려 주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꿈으로도 알려주시고, 기도 가운데 응답으로 알려 주시고... 알려주셨어요. 
'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이구나' 이걸 깨닫게 됐어요. 

그런데 그런 세월 28년 동안 목회하면서, 딱 한 번 응답을 못 받고 움직인 적이 있어요. 
그게 밴쿠버 입니다. 

그때는 오전 11시에 하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이상준 목사가 밴쿠버 가면 좋겠다. 오늘 안에 결정해라' 그러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급하게 저희 아내한테 연락을 해가지고, 
둘이 만나서 같이 기도했어요. '(하나님 음성을, 응답을) 들었어?' 
'당신은 들었어?' 
'아니, 아무것도 못 들었어!' 

그래서 우리 부부는 '우리 위에 세우신 리더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신뢰하고 가자' 
그렇게 신뢰하고 가기로 했지만, 제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너무 걱정이 되는 거예요. 
응답이나 싸인을 못 받고 움직인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제가 밴쿠버 가서 제발 사고 치지 않게 해 주세요!'
이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했나 몰라요. 

▲여러분, 몇 주 전에 제가 나눴던 메시지인데요. 
'하나님, 이 길이 맞습니까? 그 길에 형통함을 보장해 주십시오' 
'저 길이 맞습니까? 형통함을 보장해 주십시오!' 
인생의 모든 상황이, 그렇게만 갈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느 길을 가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 승리의 길이 될 줄 믿습니다!'
이 확신을 갖고 가셔야 돼요

그러나 그 길을 가는 동안,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싸인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거죠. 

◑14:11~15 '둘이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12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

13 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14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15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결국에 요나단과 소년이 250M 절벽을 기어 내려와서, (편평한) 협곡을 건너서, 
다시 250M 암벽을 손과 발로 기어 올라가서, 
마침내 블레셋 적진에 이르러, 적군을 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한 20여명이 쓰러지니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 본진도 공포에 떨게 되고, 노략군들도 떨게 되고, 땅도 떨렸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요? 

여러분, 전쟁은 심리전이 상당히 큰 역할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 입장에서는 '올라와 봐' 이렇게 얘기를 한 이유가 뭔가요? 

절벽 250M를 기어 올라오면, 지쳐가지고 주저앉을 줄 알았죠. 
그런데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힘을 주셨는지,
요나단과 부관이 올라오자마자, 블레셋 사람들을 번개 같이 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하나님의 반전의 승리가 임하니까, 
일순간에 전쟁터의 상황이 뒤집어지게 된 거예요. 할렐루야! 

여러분, 소수의 헌신자들이 영적인 대반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가 요나단과 같이, 하나님의 꿈을 꾸고,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일선 학교에서, 하나님의 꿈을 꾸는 자녀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가정과 일터와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꿈을 꾸고, 
요나단과 같이 그 승리를 체험하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하고 오늘 설교를 마치려고 하는데요. 
2년 3개월 전이죠. 제가 교회를 개척하려고 할 때, 
물론 충분히 기도하고 하나님 음성을 듣고 시작을 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부정적이었어요. 

'요즘은 개척교회가 안 된다... 개척하면 다 실패한다...' 
그래서 개척교회를 시작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제 마음 가운데에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면 될 줄로 믿습니다!' 

또 한 가지는, '아니 교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교회를 그렇게 많이 개척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지교회나 분립개척 
따라오려고 하던 교인도 다 도망간다...' 
그런 얘기들을 제게 하셨어요. 

그러나 저는 '아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사람들을 모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믿었어요. 

요즘 시대에 제일 많이 얘기하는 말은
'부흥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부흥을 꿈꾸는 것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니요. 하나님이 여기 우리 가운데 일하시면, 
부흥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1516 교회를 개척 시작하면서, 정말 목마른 예배자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셨고, 
저와 여러분은 요나단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반전의 승리'를 꿈꾸는 사람들이 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의 쇄빙선이 되기를 바랍니다.' 
최빙선이라는 게 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배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도저히 일반 선박으로서는 갈 수 없는 그 바다를,
쇄빙선이 먼저 가서 길을 열어 놓으면, 수많은 배들이 따라서 그 길을 갈 수 있는 거예요. 
본문의 요나단이, 쇄빙선 역할을 한 거죠.

누가 요나단이 될 것인가요? 누가 다윗이 될 것인가요? 
사람들은 영적인 교착상태에 빠져 있으면, 나서기를 주저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도미노 그림을 보여드리겠는데요.


안정형의 사람들, 관리형 유형의 사람들은, 승리가 보장이 돼야만 그것을 시도하려고 해요. 
도미노로 말하자면, 도미노 패의 전체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게 승리라고 생각해요. 

아니에요. 딱 첫 번째 패만 무너뜨리면, 승리는 거기서부터 오는 줄로 믿습니다. 
왜냐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기 때문이에요. 

요나단은 딱 그 첫 번째 패를 무너뜨린 거예요. 
아무도 나서지를 못하는데, 누가 그 자리에 나설 것인가? (첫 번째 패를 무너뜨리는 일)

이제 앞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잖아요. 
여러분 그때에도 지금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나서는 그 첫 번째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 사랑하는 주님, 우리가 압도적인 세상에 때로는 위축되고 
때로는 낙심하여서 도전조차 해보지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고 행동도 못하고 
생각마저 굳어져 버리고, 내 안에 있던 그 모든 창의성과 도전 정신도 다 사라져 버리고 
하나님, 현실에 무너지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깨어 일어날 지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내 영혼아 깨어 일어날지어다. 너는 너의 얼굴을 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지어다. 
하나님, 내 인생의 마지막까지 보장이 돼야만, 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를 신뢰하고 한 걸음을 내 디디면, 
그 다음을 하나님께서 열어가시는 것을 체험하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승리를 소망하는 분들은, 두 손을 들고, '주여' 외치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시대는 너무나 세속적인 시대가 되었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무신론적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그러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요나단과 같은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오 주님, 우리가 하나님의 승리를 신뢰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반전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주님 우리 가운데 일하여 주시고, 역사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앞서 가실 때, 우리는 뒤따라 갈 것입니다.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온전히 믿음으로 선포하면서 뒤따르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새 일을 행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지금 한국 사회가 너무나 어지럽고 힘든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무신론적 시대에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임하시고, 일하시고, 
역사하시면... 모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의 영혼아 현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지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꿈을 꾸며 다시 현실을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해법이 보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려움 가운데 패배의 순간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헌신하고 첫 번째 도미노 패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서 하나님 나라의 승기를 잡고, 놀라운 하나님의 승리를 
우리의 평생에 간증하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가운데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