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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5장 잃어버린 자를 찾아내시는 하나님

LNCK 2025. 4. 2.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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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주일예배 // 잃어버린 자를 찾아내시는 하나님 - YouTube

 

잃어버린 자를 찾아내시는 하나님            눅15:1~10           2024.03.03. 

오늘부터 저희들이 3주간동안 연속해서  눅15장 말씀을 저희들이 같이 나누게 됩니다.  
눅15장에는  예수님께서 "세 가지 비유"로 교훈하시는데, 
-잃어버린 양의 비유    15:1~7
-잃어버린 은전(드라크마)의 비유   15:8~10
-잃어버린 아들(탕자)의 비유입니다.   15:11~32

그런데이 세 가지 비유는, 똑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뭔가 하면 '잃어버린 자를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이것이 세 비유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입니다. 

근데 이 세 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데, 
오늘은 처음 두 가지 비유를 살피겠습니다. 

이 세 가지 비율을 왜 또 어떤 상황에서 예수님이 주셨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좀 이해를 하셔야만, 예수님의 비유를 조금 더 선명하게 아실 수가 있습니다. 

◑눅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1절을 보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나옵니다. 한 마리로 죄인들입니다. 
죄인들이란, 율법을 더럽힌 사람들,   
그 당시 사람들이 볼 때 '정말 저 사람은 율법을 더럽히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세리가 포함되고, 또  몸을 파는 사람들도 포함이 될 수 있고, 
또 때로는 유대교를 벗어나 이단에 빠진 사람들... 
이 '죄인'이란 표현이 이방인들에게도 적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율법과 상관없이, 또 율법을 더럽히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죄인'들인데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들이  세리들이죠.

이 사람들이 누구에게 가까이 나왔는가 하면, 예수님께 가까이 나왔습니다. 
목적은 뭔가 하면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1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왔습니다.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그런데 2절 말씀을 보면, 또 한 부류의 사람이 등장을 하는데 
1절과 대비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에는 신앙의 모범생들, 
가장 신앙이 좋다고 평가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평신도 지도자들인데,   *사두개인은 제사장급
삶의 모든 부분에서 율법에 근거해서 구별된 삶을 살겠다 라고 다.짐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필사했던 사람들인데 
영어 번역은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 '율법의 선생들'로 대부분 번역을 합니다. 

정말 삶의 모든 순간에서 삶을 구별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바리새인들,  
또 율법을 필사하면서 율법의 선생이 된 이 사람들이, 지금 수근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근거린다'는 표현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광야에서 가장 많이 했던 행동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놀라운 일을 하실 때마다, 
그들은 수군거리면서 원망을 하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수근거린다'는 말이 담고 있는 뜻은, 지금 부정적이죠. 
예수님이 하시는 행동들을 보면서, 지금 불평하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뭔가 하면, '이 사람이 (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이렇게 수근거리면서, 예수님을 향해 불평을 하고 비판을 했습니다. 

여기 사용된 '영접하고  같이 먹는다' 이 두 단어는, 친밀한 사귐을 나타내는 표현이죠.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이렇게 책망하고, 비난하시지 않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환영하고,  또 그들과 같이 친밀하게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근거리고 있죠. 

여러분, 앞에 눅5장과 7장에도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을 친밀하게 대하시고 
그런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들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현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눅15장에서 3가지 비유로 말씀하시게 된 배경이 됩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아주 불편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조금 변호를 하자면, 
여러분, 아마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 하신 분들이라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유지하려면, 하지 말아야 될 행동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대표적으로 율법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과 사귀지 않도록... 그렇게 우리는 많이 권면을 받았습니다. 

저는  청년들을 섬겼기 때문에, 청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가거나 
직장을 가면, 첫 번째 고민이 무엇이죠? 
아마 예외 없이 술이 등장하는, 소위 '동창회나 회식자리에 내가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술이 있고, 담배가 있고, 하나님의 율법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내가 교제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 문제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좋다는 사람들이, 예를 들면 술과 담배연기가 자욱한 그곳에서 
율법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친밀하게 식사하고 있다면, 
아마 신앙이 좋은 친구가 가다가 그 장면을 보면, 
뭔가 좀 불편하게 생각을 하겠죠. 그게 바로 이 장면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고,  
그것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불편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 가운데  예수님께서 3절을 보시면  비유로 말씀을 하시게 되는데, 
첫 번째 비유가 15:4~7절까지 기록된 "잃어버린 양을 찾는" 비유입니다. 

◑15: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99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한 사람에게 양이 100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세어보니,
그중에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여러분 99와 하나는 무엇을 나타내겠습니까? 

'99마리를 들에 두고'
이 말은, 지금 이 비유의 배경이 '들판, 광야'입니다.
그러니까 봄~가을 철에는, 들에서 양을 치는 거죠. 
들판에 돌을 쌓아서 양 우리를 만들고, 밤에는 거기서 양을 지키며 함께 자는 겁니다.

혹은 매일 양에게 풀을 먹이러 목초지를 찾아 출퇴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100마리 중의 한 마리 양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도대체 그 황량하고 위험한 유대 광야에서, 잃은 양을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대부분은 쉽게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좀 괘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 양 한 마리, 평소에 그렇게 속썩이더니만.. 이 참에 잘 됐다' 
뭐 이런 분들도 혹시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목자 한 사람이, 한 마리 잃어버렸을 때, 
99 마리를 바로 광야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99 마리를 그 위험한 광야에 두고, 그 잃은 것을 바로 찾아다니는데 
(대걔의 경우, 양을 2~3명의 목자가 함께 치기 때문에, 다른 목자가 99 마리를 돌보죠.)

언제까지 찾습니까? 
대부분 영어 번역을 보면 until he fines it 
바로 '그가 찾을 때까지' 끝까지 찾아 다니지 않겠느냐? :4

그런 다음 찾아내면, 주인이 너무너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15: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만약에 잃어버린 양을 찾으면, 여러분은 즐거워 하겠습니까? 
아니면 길을 잃은 양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면 저 같으면 작대기로 그 양의 등짝을 한 번 때릴 것 같아요. 
'이 자식아, 어디로 갔었느냐?' 

그런데 이 주인은 막 즐거워하면서 어깨에 멥니다. 
여러분, 기회가 되면 양을 한 번 품에 안아보거나, 팔로 들어올려 보십시오.
양은 굉장히 가볍습니다. 같은 크기의 개의 무게에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가볍습니다.
그래서 가뿐하게 어깨 위로 메어올릴 수 있습니다.

양을 그냥 데리고 오지, 왜 어깨에 메고 옵니까? 
아마 이 양이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을 하면서, 깊은 골짜기에 빠졌다든지 해서
좀 다친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발로 잘 걷지 못하는 상태이니까, 주인이 어깨에 메고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즐거워서, 잃은 양을 찾은 즐거움에서, 또 어깨에 메었을 거예요.

주인은 잃어버렸다가 찾은 양을 데리고, 지금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5
나머지 99마리의 양들은 들에 두고 말이죠. :4
나머지 99마리의 양들은, 같이 양을 치는 다른 목자들이 돌보고 있었을 거예요.

과거에 우리나라도 소 먹이러 나갈 때보면, 동네 아이들이 다 같이 집을 나섭니다.
그래서 각 집의 소들이 다 산으로 풀 먹으러 나가고, 이렇게 그룹으로 소를 키웠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죠. 다 함께 들로 나가서 양 떼를 쳤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주인 목자는, 왜 잃은 양을 찾아서, 99마리가 있는 들판으로 가지 않고,
동네로 돌아온 것일까요? :6

그 이유는, 
1) 잃은 양을 찾았는데, 양을 치료할 필요가 있어서, 조퇴하고 집으로 돌아왔거나
2) 본문에는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었지만,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99마리의 양들과 다 함께, 같이 양을 치던 목자들과 다 함께 동네로 돌아온 거죠.   
아마 2)의 이유일 것입니다.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6절에, 즐거워 어깨에 멜뿐만 아니라, 집에 와서 벗과 이웃을 다 불러 모아서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다' 
그러면서 잔치를 벌일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아내분들은 남편이 이런 행동하시면, 계속 데리고 사시겠어요? 
아니면 내보내겠어요? 

아니 양 한 마리 찾았다고, 기뻐하면서 벗과 이웃들을 다 불러서 잔치를 벌이면,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양보다, 어쩌면 잔치 비용을 더 많이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여기서 '벗'은, 아마 같이 양을 치던 목자들이 되겠지요.

어쨌든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그 기쁨 때문인 것입니다.
그 기쁨이 너무 큰 나머지... 무슨 비용을 따질 경황이 없는 거죠.

또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을 마치 애완견, 반려견 다루듯이 귀하게 여기는 문화라고 하죠. 
우리나라도 공원에 가면, '잃어버린 고양이, 잃어버린 반려견 찾습니다. 
결정적 제보를 해주시면 사례하겠습니다' 이런 사진과 전단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례비가, 고양이나 반려견의 거래 가격보다 훨씬 더 비싼 거죠. 돈 문제가 아닌 거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7절에 결론적인 교훈을 주십니다.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는게 뭔가 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데,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할 것이다'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비유에서 지금 양이 회개를 했나요? 양이 회개하지 않았죠. 

결국 여기에서 지금 '회개'는 뭔가 하면, 
끝까지 찾고 찾으시는 그 목자의 사랑에 감동되어서, 
그가 발견되었을 때, 그 사랑의 품에 안기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여러분, 회개해서 목자가 찾아 나선게 아니고, 
찾고 찾으시는 그 목자, 그래서 양이 발견되었을 때 
그 사랑의 품에 안기는 것이 바로 회개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교훈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목자는 누구를 나타내겠습니까? 
이 목자는 사실은 이중적입니다. 

1) 직접적으로는 결국 누구를 나타내느냐? 하나님을 나타내죠.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계 속에서 어떤 분으로 묘사했느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목자'입니다. 

시80:1 '요셉(이스라엘)을 양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하나님을 누구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목자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사랑하시나요? 

양 한 마리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 찾고 찾으시는... 
정말 찾아낼 때까지 찾으시는 분이, 바로 이스라엘의 목자입니다. 

2) 그런데 이 '목자'라는 표현은, 동시에 어떤 뜻을 담고 있나요? 
비판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냐면 구약 성경에서 '목자'라는 것 하나님께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표현하는 단어였습니다

겔34: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위 구절에서 '목자'는 누구를 뜻하느냐?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이나 종교지도자들이죠.
제정일치 사회에서, 종교지도자는 정치지도자와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책망하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자기 배만 불리고, 양떼를 먹이고 있지 않는구나'

겔34:5~6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책망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겔34:11~12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내가 내 양을 찾고... 내 양을 찾아서...' 
본문 눅15:4의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와 같은 표현이죠.

이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예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시죠.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를 목자이신 하나님은 찾고 찾으시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했느냐? 
자기 배만 부르게 하고, 양들이 흩어졌는데도, 찾고 찾는 목자가 없었고...

바로 이런 상황에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님은 누구시냐? 
바로 선한 목자가 되셔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시는 일'을 감당하실 거라는 겁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냐? 
바로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와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1

눅15:8절부터는 두 번째 비유가 나옵니다. 

◑15: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드라크마는 그리스 은전인데, 데나리온과 같은 단위입니다. 노동자 하루 품삯이죠.
열 드라크마니까, 일당을 10만원으로 계산하면 100만 원 정도 되죠. 

한 여인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열 드라크마를 준비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가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 제가 어떻게 이 말씀을 좀 생생하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좀 도움을 주십시오' 이랬더니만,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 주셨는지,
금요일 날 기도회 마치고 제가 집에 가 보니까 지갑이 없었어요.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정말 이 여인과 비슷하게, 전등불을 켜고 완전히 샅샅이 뒤졌는데 
결국 못 찾았어요. 지갑에 카드도 한 두개 들어가 있으니, 혹시나... 염려가 되었지요.

그때  밤 12시가 되니까, 아내가 보다 못해서 자기가 가세해서 함께 온 집을 다 뒤졌습니다. 
한참을 찾다가 아내가 '여기 있잖아!' 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찾은 지갑을 제게 딱 주면서 하는 말이 
'그냥 줄 수 없으니까 적당히 협상을 하자' 그래서 제가 소정의 사례를 지불하고 받았어요.

여러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죠? 뭐 완전 제정신이 아닙니다. 
지금 여인이 이렇게 정신없이 막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9절을 보면, 여인이 잃은 은전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찾으니까 또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이는 겁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내가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다' 

◑15: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여러분, 이런 여인을 아내로 데리고 사시겠어요? 
'아니 잃어버린 것도 옆에서 지켜보니까 답답한데,
또 찾았다고 지금 잔치를 벌인다고?'

제가 한번 이렇게 설교를 하니까, 꼬마가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목사님, 이 여자는 정말 어리석은 바보네요. 
아니 10만원 찾아가지고 벗과 이웃을 다 초청하면, 
대충 라면 끓여서 과일하고 대접해도 10만 원은 더 들겠어요...'

여러분, 그 아이 말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나? 
정말 바보같이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이성적으로 사랑하시는게 아니고, 바보같이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지금 열 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그걸 되찾고 나서는,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는 
바로 잔치를 벌이는... 이게 뭔가 하면 '기쁨의 힘'이라는 거예요.
'잃은 자녀를 찾을 때, 하나님이 이만큼 기뻐하신다' 

그러면서 10절에 똑같은, 잃은 양의 비유와 똑같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여러분, 지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비난하고 정죄하고  
그들이 벌을 받으면 기뻐했을 수 있겠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천사)들 앞에 기쁨이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그분은 우리 인생에 참 목자가 되셔서, 그 분의 자녀를 잃어버렸을 
때 포기하지 않고 찾아낼 때까지 찾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찾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정말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정말 바보 같은 기쁨, 바보 같은 사랑으로... 기뻐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적용 / 이 비유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도전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바로 죄인 하나가 돌아왔을 때 기뻐하시는.. 그 예수님의 기쁨, 그 기쁜 편에 있는지, 
아니면 죄인 하나가 돌아왔을 때 수군거리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편에 있는지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도 지금은 목사가 되었고, 
모태신앙이지만 저도 한번 잃어버린 자가 되었던...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서울로 이렇게 갔으니까, 자유잖아요. 
부모님도 곁에 계시지 않고,  
또 제가 아는 교회라고는 하나도 없는 도시, 이제 새로운 교회를 찾아가야 되는데, 

그래서 제가  소개받았던 교회는, 학교 기숙사에서 버스타고 가면 1시간 반이 걸렸어요. 
교회에 한번 갔다가 돌아와서는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대구에서는 뛰어가면 5분 만에 교회를 갔는데,
서울에서는 교회가 1시간 반이 걸렸어요.   

그래서 고생해서 교회를 가도, 뭐 저를 환영해 주는 사람도 없고, 
또 좀 자유롭고 싶잖아요. 

또 그때 주일 오후 2시에 프로야구가 시작이 되어서, 또 프로야구도 봐야 되고... 
근데 또 저는 그때 약간 운동권 쪽에 영향을 받아서, 운동권 선배가 또 저를 양육했습니다. 
매 주일마다 선배가 저를 불러서, 운동권 교재를 같이 읽고 토론을 하고... 
그래서 양육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점점  신앙과는 거리를 가지게 되었던 거죠.
아마 그 상태로 계속 갔다면, 저는 아마 다시 돌아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근데 그때 내수동교회에 대학원 선배가 한 분 계셨는데,
이 선배가 같이 대학교 기숙사에 있었으니까  
후배들이 소위 유리 방황하는, 목자 없는 양 같이 유리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이분이  매일 새벽마다 '야, 우리 경건의 시간을 같이 하자' 
그래서 제가 동의를 하고, 매일 아침마다 경건의 시간을 갖도록 약속했습니다. 
기숙사 한 방에서. 

그런데 새벽에 선배가 깨우러 오면, 어떻게 일어나겠어요? 
뭐 선배가 6시에 와서 노크 하면, 악착같이  문을 안 열어주는 거죠. 

그러면 그 선배가 기숙사 방문을 두들기다 두들기다가, 결국 이렇게 돌아가십니다.  
몇 번이나 그렇게 했어요. 

근데 여러분 아시겠지만, 또 이런 선한 분을 돌려보내고 나면, 
다시 잠자리에 들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꿈자리도 사나워요.
막 어디서 떨어지는 꿈도 꾸고, 뒷골이 땡기기도 하고...

그래서 하루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나서 '늦게라도 참석하자'
그래서 그 선배와 약속한 곳에 가면, 
막 선배가 제 이름과 다른 후배들 이름을 한 명씩 막 부르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계셨어요. 
그 인상이 너무나 강렬해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이거는 매일 이고요.

또 교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마 매주 토요일에)
그래서 저보다 한 살 많은 선배와 같이, 일대일 성경 공부를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1년 동안 매주일 한 번씩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1년 동안 제가 딱 두 번 만났어요. 
나머지는 제가 다 선배를 바람맞추었습니다. 

'내가 갈게요' 그러고 또 빵꾸내고, 또 빵꾸내고... 
그래서 제가 그렇게 계속 빵꾸를 내다가, 한번은 마음이 괴롭잖아요. 

그래서 제가 늦게 나마 교회까지 한 1시간 반 걸려서 갔더니만, 
선배가 혼자서 이렇게 무릎을 꿇고 막 기도를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가니까 이 선배가 너무  반가워하죠. 
반가워하면서 갑자기 저보고 무릎을 꿇어라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잘못했으니까 무릎을 꿇어야죠. 그래서 무릎을 꿇었어요. 
그러자 그 선배가 저한테, 저 한 사람을 위해서 설교를 준비를 했어요. 

제가 대학생 1학년이었고, 그 선배가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자기가 뭐 안다고, 그 분이 설교를 하나 준비해서, 저한테 5분 동안 혼자 설교했어요. 

근데 내용은 지금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근데 그 선배들의  도움을 통해서, 
제가 하나님과 멀리 떨어질 뻔 했는데, 
그분들 때문에... 제가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하나님 안에 머물기로 제가 결심을 했습니다.   

 

그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신앙적으로 성숙해서, 뭐 지금은 제가  목사까지 될 수 있었죠. 
그러니까 그때 제가 대학1학년 때 방황하다가 
주님 앞에 다시 돌아왔던 그 순간을 제가 한번 되돌아보면, 

'야, 내가 돌아왔을 때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셨겠구나. 
정말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뻐하셨겠구나' 

그런데 저만이 아니라 우리 성도님들도 똑같습니다. 
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우리도 길을 잃어버렸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찾고 찾아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제가 그렇게  대학시절에 (1학년 말 방학 때) 주님을 만나고 
그 후에 고향 대구에 한 번씩 내려 오면... 제 마음이 많이 어려웠어요. 

왜냐면 전에 저보다 신앙이 더 뜨거웠던 선배들, 후배들, 친구들이 있었는데, 
정말 많은 숫자가 교회를 떠났습니다. 정말 많은 숫자가 교회를 떠났어요. 

'도대체 이 차이가 뭔가?
나 같은 뺀질이는 대학 다니면서 그래도 신앙이 좋아져서, 하나님께 내 삶을 드렸는데, 

나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신앙적으로 훌륭했던 친구들, 선배들, 
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갔을까?'  

그냥 제가 내린 결론은 딱 하나였습니다. 
'나는... 목자의 심정으로 끝까지 나를 찾아주는 선배들이 있었고,  
제 친구들은... 그런 선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여러분, 청년의 시절에 한 번씩 빗나가지 않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교회 오는게 싫어지는 사람, 교회 말만 들으면 막 짜증 나는 사람...

그런데 그때 끝까지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주고, 
옆에서 그의 원망을 다 들어주고, 격려해 주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생명의 참된 길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었던 선배들, 그 선배들이 저에게는 있었고,
제 친구들은 그런 선배들을 제대로 가치를 못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차이였죠. 

그때 제가 그래서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제가 결심을 한게 바로 그거였어요. 
후에 목사가 되어서 제가 대구에 내려오게 된 이유도, 바로 이 이유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인데 
저도 이 대구에 후배들이 이렇게 많은데, 
혹시라도 정말 그들을 목자의 심정으로 찾고 찾아주는 그 선배들이 없어서 
이 생명의 길을 떠나는...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제가 부족하지만, 하나님, 이들을 찾고 찾는 목자의 심정으로 그들을 돕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제가 그들을 돕고 싶습니다.  
하나님, 이들에게 제가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더 이상 정말 넘어가지 못하는 울타리를 쳐줄 수 있도록...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그래서 대구에 와서 청년들을 이런 마음으로 섬겨왔습니다.

▲최근에 공식적으로 이런 통계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2012~2022년 10년 사이에 기독교 복음화율은 2012년도에 22%였습니다. 
근데 10년이 지난 2022년에 15%로 추락을 했습니다. 그러니 7%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더 충격적인 것은, 20대와 40대는, 불과 10년 만에 반토막이 났습니다. 
제일 많이 떨어진 세대입니다.

특별히 20대는, 2012년도 21%였는데, 2022년도에는 9%였습니다. 
그래서 20대와 40대는, 지금 반 토막이 났고, 
그 반토막이 나고 나서 남은 사람들 중에도 1/3은 가나안 성도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교회를 나가지 않는 성도가 무려 30%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지금 우리들 주위에도, 한 때 젊은 시절에 예수님을 믿다가
그 후에 가정을 이루고 직장생활하다 보면, 
한번 발을 멀리하게 되면, 정말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다시금 주님 품에 돌아오기 어려운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우리 내일 교회가 오늘 이 말씀을 한번 기억하셔서, 
여러분 잃은 자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 바로 원동력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원동력이 되어야 되는 거죠. 

여러분, 지금 교회는 점점 '자기 자신만 배불리는 목자'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겔34:
자기 자신에게만 귀를 기울이고, 
자기 자신, 내 자식, 내 사업장, 나의 행복, 나의 기쁨... 
그러면서 잃어버린 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할지라도, 아무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금 저는 우리 성도들, 또 사역자들, 순장님들이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무장되어져서 
여러분, 잃어버린 자를 찾고 찾을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고 
어쩌면 여러분들 가운데, 오늘 예침 컨퍼런스가 있는데, 
정말 예친을 힘들어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내가 거기서 또 낯선 사람과 내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막 이러는게 
얼마나 귀찮고 번거롭겠습니까? 소위 프라이버시가 얼마나 힘들어집니까? 

그렇지만 제가 말씀드려요.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그 이유 때문에 
여러분은 예친 모임에 참석해야 돼요. 

저는 소위 청년들을 섬기면서, 제가 한 맺혔던 순간이 있어요. 
제가 잃어버렸던 청년들, 정말 그 잃어버린 순간에 망가졌던 수많은 청년들, 
그런데 다 그때가 언제였느냐? 
그들의 인생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잘못된 선택과 판단을 했던 순간이 언제였느냐? 
바로 공동체를 떠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공동체를 떠나서 아무런 간섭없이 내 혼자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그들의 인생에 피할 수 없는, 회복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파괴적인 선택을 했던 경우를 
저는 그런 청년들을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거는 여러분들이 예친모임에서 성도들과 사랑의 삼겹줄로, 
믿음의 삼겹줄로 모이는 것은,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너무 중요한 거죠. 

그래서 아무리 우리들의 삶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신앙의 삼겹살로 묶여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 그분은 우리들의 삶에 빛이 되십니다. 
생명이 되십니다. 

어떤 고난도 뒤집어서 복이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저는 성도님들이 오늘 예친 컨퍼런스가 있는데 
정말 이번 한 학기 동안 다시 한번 우리 모든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목자의 마음을 다같이 가져서 
정말 우리들 주위에, 우리 가족들 중에도 잃어버린 영혼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찾아낼 때까지 그들을 찾아나서는 성도들이 되시고,  
여러분들이 기쁘게 공동체 예친에 함께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세상을 복되게 하는 귀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