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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34장 언약 위반과 그 결과

LNCK 2025. 3. 2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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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aramos/80141961256

 

언약 위반과 그 결과           렘34:8-11             2008년

 

◑서론

 

1863년 1월 1일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날입니다.

“미국 땅에서는 피부색이나 인종에 관계 없이

아무도 인간은 다른 인간을 노예로 삼을 수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선언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악인 노예제도가 종지부를 찍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듬해에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 선언을 취소해 버리고

미국은 다시 노예 유지 국가가 된다라고 했다면

우리는 아브라함 링컨을 영원토록 욕했을 것입니다.

노예해방을 선언하고 다시 그것을 취소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34장을 보면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백성에게 일어났습니다.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이 주전 589년 후반에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왜냐하면 시드기야가 언약을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조공을 드리겠다는 언약을 위반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배반해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앞서 주전 605년에 군신관계가 체결되었죠.

 

그러자 주전 589년에 바벨론이 연합군을 형성해 침공해 왔습니다.

본문 34:1절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모든 군대와 그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바벨론 군대만 와도 대단한데, 바벨론 치하에 있는 모든 국가의 군대를 함께 모아

연합군을 형성해서 쳐들어 왔습니다.

시드기야의 유다가 감당하기 불가능한 세력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

 

▲바벨론 왕은 먼저 수도인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음식과 물이 들어가는 노선을 모두 차단하는 작전을 썼습니다.

 

주전 589년에 쳐들어와 2년 동안 이렇게 포위하고 있다가

결국 주전 587년에 완전히 멸망시켰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면, 주변 다른 도시들은 저절로 멸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장기 둘 때 장(將)을 잡으면 나머지 차(車), 포(包), 마(馬), 상(象), 사(士), 졸(卒)은

살아 남아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 34장은 주전 588년에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루살렘과 유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다백성과 예루살렘에 있는 왕이 언약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위반하고, 사람과의 언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34장은 언약을 깨는 자들(covenant breakers)의 스토리입니다.

 

◑1. 먼저, 왕인 시드기야가 언약을 위반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왕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역대하 36:11~13절에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일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일년을 치리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의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였으며

느부갓네살왕이 저로 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케 하였으나

저가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바벨론왕이 예전에도 침공한 적이 있습니다. 바벨론왕은 유다를 3차에 걸쳐 침공했습니다.

주전 605년에 1차, 주전 597년에 2차 침공을 했습니다.

 

그때(2차 침공 때) 석달 열흘 치리한 여호야긴 왕을 폐위시키고,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느브갓네살 왕이 시드기야에게 “너는 이제부터 나의 봉신(Vassal)이 되어

조공을 바치라”는 언약을 맺게 했습니다.

 

봉신은 정복국가가 피정복국가를 속국으로 삼고 피정복국가의 왕을 세울 때에

속국의 왕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suzerain(종주) and vassal(봉신) contract

 

그런데 시드기야는 왕과의 언약을 무시하고 반항했습니다.

그래서 느브갓네살이 쳐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사람과의 언약도 위반했고, 나아가 하나님과의 언약도 매우 가볍게 여겼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왕제도가 시행되기 전부터 왕이 행할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신명기 17:18~19절에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왕은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 옆에 두고 읽어야 하나

시드기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왕하24:19

시드기야의 인생은 “여호와 앞에 악한 자더라”라는 한귀절로 요약됩니다.

 

여러분이 죽어서 장례를 치를 때 여러분 인생이 “여호와 앞에 악한 자더라”로 요약된다면

얼마나 가련하고 비참하며 불쌍하겠습니까?

 

결국 주전 587년 예루살렘 성내에 기근이 심하자 왕이 군사들을 동원해서

예루살렘 성벽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야 굶어 죽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시드기야 왕은 야반도주했습니다.

 

그러다 바벨론 군대에 잡혀 그의 아들들이 그의 보는 앞에서 모두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두 눈을 뽑히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시드기야는 21살에 왕이 돼 11년을 통치하고 나이 32살에 이렇게 비참한 꼴로

인생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언약을 가볍게 여겨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도자를 뽑을 때 능력이 부족해도, 자신이 말한 약속에 신실해

그것을 지키는 사람을 뽑아야 됩니다. 손바닥 뒤집듯이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지도자로 삼으면, 하나님의 개입을 받게 되어, 그도 망하고 공동체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유다백성들도 언약을 위반했다  (노예를 풀어주었다가 취소하고 다시 노예 삼음)

 

유다는 왕이 언약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위반했습니다.

지도자가 언약을 위반하니 백성들 전체가 모두 따라한 것입니다.

 

본문 렘34:8~11절이 그 내용입니다. 시드기야 왕이 노예해방을 선언했습니다.

원래 율법에는, 동족을 노예로 삼았으면, 7년째는 풀어주라고 규정했죠. 출21:2

국가가 위기를 당하여, 뒤늦게나마 희년 율법 규정을 준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언약에 참가한 방백들과 모든 백성들이, 왕을 따라서 노예를 해방시켜 버렸습니다.

근데 사실은, 바벨론에 포위를 당하여, 먹을 게 바닥나자, 노예를 내쳤다고 합니다.

노예 먹을 것까지 줄 수는 없었던 거죠.

 

그런데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케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복종시켜 노비로 삼았습니다.

예레미야가 그걸 비판하는 겁니다. ‘왜 또 노예를 삼느냐?’는 거죠.

 

▲레위기25장, 신명기15장, 출애굽기21장을 보면, 하나님은 안식년 제도를 명령하셨습니다.

7년째 되는 해를 안식년으로 해서 세 가지를 하라 하십니다.

 

첫째로 땅에 파종도 경작도 추수도 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래서 그 땅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농산물은 나그네, 노예, 종 그리고 짐승들이 먹고 살게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년 땅 휴식제도입니다.

 

둘째로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돈을 빌려줬다 6년 동안 못 받았다면

7년째는 그 빚을 탕감해 주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동족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은 경우, 7년째는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라는 것입니다.

출21: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그런데 평소에 하나님의 율법을 전혀 존중하지 않던 시드기야가

갑자기 율법의 말씀을 따라 노예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려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단히 교활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바벨론 군대의 포위로 인해 성내에 양식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식들에게도 줄 양식이 없는데 노예까지 어떻게 먹이겠느냐는 생각으로

노예를 해방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상황의 변화가 왔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잠시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37:5절에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바로왕과 애굽 군대가 나오자, 그들과 싸우려고 잠시 예루살렘에서 철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내에 다시 물과 음식이 공급되고, 가정에 일거리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유다백성들은 노예해방선언을 철회하고, 힘없는 노예들을 다시 노예로 삼았습니다.

34:16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 

이처럼 유다백성이 노예를 해방시킨 이유는 “신앙” 때문이 아니고

“공리적이고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신앙 때문에 노예를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필요 때문에 해방시켰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필요하니까, 해방시켰던 노예를, 다시 노예로 삼았던 것입니다. 완전 억지죠.

34:11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우리는 우리의 이익 때문에 신앙을 버리지 말아야 됩니다.

손해가 와도 “나는 신앙 때문에 하지 않겠다.”라고 해야 합니다.

주일날 영업을 하지 않아 하루 손해 보면, 하나님께서 6일 동안에 나머지를 축복해 주십니다.

주일날까지 돈을 벌겠다고 하면 돈도 못 벌고 몸도 피곤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두 찾아가십니다.

 

▲언약을 위반한 결과가 어떻습니까?

34:17절이 그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나를 듣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한 것을 실행치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선언하여 너희를 칼과 염병과 기근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열방 중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칼에 죽을 자유, 염병과 기근에 죽을 자유를 선언하셨다는 말은

이상하고 이해하기 힘든 말로 하나님의 “아이러니(irony)”입니다.

즉, “빈정된다, 비꼬아서 말한다, 반어적으로 말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면 하나님이 우리를 빈정대십니다.

하나님의 빈정대심을 당하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인 것입니다.

 

▲원래 언약(covenant)이란 생명을 걸고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의 히브리어 “베리트”는,

동사를 쓸 때에 반드시 언약을 자른다는 “카라트”라는 동사를 씁니다.

 

그러므로 "make covenant"가 아니라 "cut the covenant" 라고 씁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짐승을 쪼개 놓으시고

언약 맺는 당사자는 쪼개 놓은 짐승사이로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34:18절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34:18~20절에 “송아지를 둘에 쪼개고 그 두 사이로 지나서 내 앞에 언약을 세우고

그 말을 실행치 아니하여 내 언약을 범한 너희를 곧 쪼갠 송아지 사이로 지난

유다 방백들과 예루살렘 방백들과 환관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내가 너희 원수의 손과 너희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붙이리니

너희 시체가 공중의 새들과 땅 짐승의 식물이 될 것이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언약을 세울 때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사이로 지나갑니다.

그런데 언약을 어기면 쪼개진 송아지 신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를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게 하고

죽어서도 그 시체가 짐승밥이 되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시드기야와 백성들이 언약을 위반하자

하나님은 잠시 물러갔던 바벨론 군대를 다시 불러들여,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키셨습니다.

 

34:21~22절에 “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을 그 원수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 성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 성읍들로 황무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3. 새 언약을 주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이처럼 왕도 백성도 언약을 지키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십니다.

유다백성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모두 파하였습니다.

옛 언약을 위반하였습니다.

 

우상을 숭배했고 안식년도 지키지 않았으며, 형제를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돌비에 새긴 십계명도 다 어겼습니다.

그 대가로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이 490년 동안 안식년을 한 번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490년을 7로 나눠, 70년 동안 그 땅은 안식년을 누리고,

백성들은 70년 포로생활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70년 안식년을 찾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안 지키면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역대하 36:21절에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약을 지키면 무제한으로 복을 주시지만

언약을 어기면 반드시 그 대가도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일과 십일조 그리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십시오.

 

▲백성들이 옛언약을 파하였기 때문에, 새언약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옛 언약을 파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새언약입니다.

 

렘31:3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new covenant)을 세우리라”

 

32:40절에도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영영한 언약(everlasting covenant)이 새언약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서의 핵심내용입니다.

 

예레미야서는 “다윗에게 날 의로운 가지”를 통하여 옛 언약을 어긴 백성들 가운데

남은 자들(the remnant)이 죄사함과 축복과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다윗에게 날 의로운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구원과 죄사함과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는 새언약의 선포와 일점일획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약의 메시지와 구약의 메시지는 완전동일한 것입니다.

렘23:5~6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이 언약을 지키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옛 언약을 어겨 죄인된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셨고 지금도 베푸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남은 자와 이방인 가운데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가리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숨기신 자들(the hidden ones of God)”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새 언약의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의 사죄(Forgiveness)와

의롭다함을 받는 칭의(Justification)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이 하나님과 화친(Reconciliation)하는

3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주의 백성들도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라의 지도자도 백성들도 약속을 지켜야 잘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께 이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다고 약속하지만,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언제 그랬냐며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신실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언약을 지키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결혼도 언약입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살겠다는 언약입니다.

 

그런데 배우자가 싫다며 도저히 안되겠다 하는 것이야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겠지만,

성도인 우리가 주도적으로 언약을 깨서는 안됩니다.

배우자가 조금 맘에 안들고 형편이 어렵다고 결혼언약을 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과 침례의 언약도 지켜야 됩니다.

평생 여호와 하나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고 살겠다고 약속하고 살다가

어느 순간 우상을 찾고 점을 보러가는 것은 언약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일상생활에서 사람과 한 약속을 지켜야 됩니다.

돈을 언제까지 갚겠다고 하면 지켜야 됩니다.

정 못 지킬 형편이면 찾아가서 용서를 빌어 기간을 연장해야 됩니다.

약속을 안 지키면 하나님이 그 사람 인생에 개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 아랫사람에게 한 약속도 반드시 지켜야 됩니다.

사람은 보통 윗사람에게는 잘하지만, 아랫사람, 약자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잘 하는데서 그 사람의 인품과 품성

그리고 영성의 수준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식당의 종업원에게 회사의 부하 직원에게 막말을 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학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미워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약을 지키는 신실한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절별 해석

 

34: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바벨론의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바벨론 제국 내의 여러 속국(민족들)에서 온 원정군들이

예루살렘 공격에 가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종주국 왕이, 봉신 국가들로 구성된 부대를 거느리고 진군하고 있는 모습이다.

봉신국이 군대를 지원하여 그 종주국의 원정을 돕는 것은

종주국과 봉신국 간의 조약에 근거한 것이었다. 요즘 현대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다.

 

그리고 '모든 성읍'이란 예루살렘 주위의 성읍을 말한다.

예루살렘과 그 주변의 성읍들에 대한 공격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유다 군대는 수세에 몰려, 튼튼한 성벽이 있는 성읍들로 후퇴하여 예루살렘 성을 겨우 지키고 있었다.

그 성읍들은 하나씩 침략자들의 공격에 무너졌으며,

마침내 최후의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던 예루살렘만 남았던 것이다.

 

34: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

 

본절에는 새로운 내용이 덧붙여져 있는데, 그것은 이 성을 불태운다는 것이다.

고대 국가들은 전쟁 때에 시체들을 불태우곤 하였다.

또 때로는 그 재를 모아서 용기에 담아 땅에 묻기도 하였다.

 

아무튼 예레미야의 위협의 말씀은 이전의 것보다훨씬 더 강한 것이었다(21:4-7 참조).

그러나 시드기야는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성의 멸망이라는 실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친애굽 정책을 고수했다.

 

34:3 네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손에 넘겨져서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의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할 것이요 너는 바벨론으로 가리라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앞서 1, 2차 침략으로 체결된 충성 서약을 위반하고

바벨론 왕에 반역한 속국의 왕(봉신)으로서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의 자비를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그는 배반한 속국의 왕으로서 종주국의 왕을 만나게 될 것이다(겔 17:11-21).

그는 엄청난 처벌을 받을 것이 뻔하다.

 

한글 개역 성경은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고 있는데,

본문과 같은 장면은 고대 근동의 현존하는 문헌에도 잘 명시되어 있다.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과 대면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내용은

왕하25:6, 7에도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34:4 그러나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혹자는 이를 단순한 예언적 약속으로 보지 않고

이를 조건적 의미로 해석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주의해 듣고 항복하면 너의 생명만은 구해줄 것이다'라고 이해한다.

 

어쨌든 시드기야는 장님이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지만,

살해당하지는 않았으며 감옥에서 죽었다. ↙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 52:11

 

34:5 평안히 죽을 것이며 사람이 너 보다 먼저 있은 네 조상들 곧 선왕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네게 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끝까지 항복할 것을 촉구하였다(38:17, 18 등).

시드기야가 지금 곧 항복하면, 그의 생명은 구제될 것이고

또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21:8-10참조).

 

그러나 항복하지 않으면 왕과 백성과 그 성이 모두 참혹한 비극의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다만 본절에서는 그러한 비극 가운데서도 시드기야가

'평안히' 큰 고통없이 임종을 맞게 되리라는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

 

'분향'

왕의 장례식 때 분향하던 것을 뜻하는 듯하다(대하 16:14, 21:19 참조).

 

34:6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 모든 말씀을 예루살렘에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니라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고하니라'

예레미야는 그의 메시지를 생명을 걸고 왕에게 고하였다.

그는 여호와를 두려워하였을 뿐 다른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34:7 그 때에 바벨론의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들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라기스와 아세가라...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바벨론 원정군의 진행 과정에 대한 세부적 사항의 일부가 언급되고 있다.

그들의 작전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성읍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성벽을 갖춘 성읍들로는 오직 라기스와 아세가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의 공격은 대단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라기스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37Km 정도 떨어져 있는

오늘날의 '텔 에즈-두웨이르'(Tellez-Duweir)로 알려진 곳이며,

 

아세가는 라기스 북쪽으로 약 17Km 떨어져 있고,

예루살렘에서 서남서 방향으로 29Km 떨어져 있는

오늘날의 '텔에즈-쟈카리야'(Tellez-zakariyah)이다.

 

34:8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34:9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34:10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하여 놓았더니

 

여기서부터 예레미야가 전한 예루살렘 종말에 대한 본장에서의 두 번째 담화가 시작된다.

이것은 앞의 것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달되었을 것이다.

 

'모든 백성과 언약하고 자유를 선언한 후에'

시드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맺은 언약의 내용은 9, 10절에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이 언약을 맺은 이유에 대해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견해로 갈린다.

 

1) 계속되는 적군의 침공 위협으로 인해 성 밖에서 자유롭게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없게

되어, 가난한 자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노예로 전락하는 사례가 빈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바벨론의 공격 이전에 노예 해방을 통해 그 주인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다.

 

2) 본문의 언약은 일종의 개혁조치의 일환으로서,

이를 통해 하나니의 은총을 받고자 했다는 견해.

 

3) 노예를 해방시켜 전투에 참여케 하고자 했다는 견해.

 

34:11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자유케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시드기야가 제안한 언약은 모든 방백과 백성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노예들은 자유인으로 풀려났던 것이다.

 

그러나 노예들이 풀려난 것은 잠시였다. 포위 공격이 잠정적으로 풀려지자

그들은 그들의 결정을 번복하여 그들의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노예로 끌어왔던 것이다. 이들은 정말 예레미야가 수시로

‘언약 파기자’라고 지적했던 바와 같은 그런 행동을 보인 사람들이었다.

 

34:12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히브리어 본문에는 한글개역과 같이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라고

여호와라는 말이 중복되어 있어서, 거칠게 들린다.

그러나 이런 중복은 예레미야 산문 문체의 특성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34:1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것의 문자적 표현은 '애굽 땅에서부터, 노예들의 집에서부터'이다.

이런 표현은 모세 오경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이와같은 번복과 배신에 대한 예레미야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이를 여호와와 이스라엘간에 맺어진 언약과 결부시켜서 설명한다.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언약을 세우셨다(출 19:4-6).

그들 역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여호와의 능력에 의해 해방되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를 다루는 문제는 언약 율법에서 대단히 중요한 항목이었다.

 

34:14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너희 형제...칠 년 만에 너희는 각기 놓으라'

형제 히브리 사람이 팔려서 6년 동안 섬겼으면 7년이 되는 해에는 그를 놓아주어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하라는 명령은 출21:2-6, 신15:12-18에 명시되어 있다.

 

출애굽기의 내용은 일반적인 언급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여자 노비에 대한 사항은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신15장의 내용은 각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노예 해방이 제 7년으로 명시된 것은 그것이 7년 주기의 마지막이고

또 안식년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율법에는 제 7년에 농부들은 밭을 갈거나 밭에서 나는 산물을 수확하지 말도록

규정되었다(출 23:10, 11, 레 25:3-7).

 

그리고 본절의 '칠 년 만에'란 말의 문자적 번역은 '매 칠 년 끝에'인데,

실제로는 '만 육 년끝'을 말한다.

따라서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칠 년째가 되는 때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네게 팔렸거든'(이마케르 레카)은 '그 자신을 너희에게 팔지 않을 수 없었던'

또는 '팔려지지 않을 수 없었던'으로도 번역된다.

그들이 팔려햐 했던 이유는 빚 때문이었다.

 

34:15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하되'

그 당시 백성들은 일시적이나마 회개하고 여호와께 용납될 수 있는 행위를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노예 해방을 선언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노예 해방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 곧 성전에서 행하여졌다.

그러나 그것은 곧 여호와를 모독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한 언약이 곧 파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벨론의 포위 공격에서 일시적으로 풀려나자 금방 태도를 바꾸어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힘으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는 죄악을(출20:7)

범했던 것이다.

 

34:16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

 

'자유케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삼았도다'

어떤 주석가들은 B.C. 622년 요시야 당시에 있었던 언약 갱신(왕하 23:1-3)이나

또는 느헤미야 당시에 있었던 그것(느9:38)과 같은 그런 보다 일반적인 언약 갱신 의식이

노예 해방 선언과 함께 치러졌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시드기야와 그의 백성들은 여호와를 섬기고 또 그의 율법에 순종하기로 맹세하였으며,

그 율법에는 안식년에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언약 갱신의 외형상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상징할 수도 있는

이런 노예 해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 문맥에는 이에 대한 암시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언약을 맺음으로써 여호와를 증인으로 내세웠으며,

여호와가 증인으로 참석한 그 언약이 파기됨으로 해서

여호와의 이름이 더럽혀졌으며 여호와의 율법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34:1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자유를 선언한 것을 실행치 아니하였은즉'

여호와의 이름이 먹칠된 이 시점에서 이제 여호와는 그들에게 칼을 내리실 것이다.

여호와는 칼과 염병과 기근의 '자유'를 내려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들이 노예 해방을 다시 번복하였기 때문에

이제 여호와는 그들을 보호하여야 할 의무에서 해방되실 것이다.

 

그들이 이제 불순종과 반역으로 인해 여호와의 보호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칼과 염병과 기근으로 넘겨질 것이다. 언약을 파기함으로 해서
그들은 그 언약의 저주 조항(신28:15절 이하 등)을 스스로 불러들이게 되었다.

다음절에서부터는 언약 의식에 대한 흥미있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34: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송아지를 둘로 갈라서 그 사이로 지나는 언약 의식은 창 15:10, 17에 나타나는데

이 의식의 의미는 언약 당사자들에게 언약 파기시의 저주를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즉, 둘로 갈라진 이 짐승의 운명이 언약을 어긴 자에게 임하게 될 것이란 의미였던 것이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언약 의식이 거행되었는데,

한 짐승을 여러 부분으로 쪼개어, 언약 파기자에 대한 징벌의 상징으로 보였다고 한다.

 

34:19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쪼갠 송아지 사이로...'

쪼갠 송아지 의식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희생의 제물로 쓰이고 있는 송아지는 하나님께 바쳐졌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동의와 지지를 확보하였다.

 

2) 희생물은 척추뼈를 세로로 절단시켜서 코에서부터 엉덩이까지 정확히 양분되게 하였고,

그리고 양편에 갈라져서 놓여야 했다.

 

3) 양분된 그것은 서로 마주보이도록 놓여야 했으며 그 사이로 지나가게 했다.

 

4) 언약에 참여한 양 당사자는 한쪽 끝에서 그사이로 지나가서 그 가운데서 만나며

그리고 거기서 언약을 맺고 만약 언약을 어기게될 경우 희생물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저주 의식을 거행한다.

 

5) 마지막으로 양 당사자는 희생물을 먹으면서 잔치를 벌인다.

하나님은 4)의 경우를 근거로 해서, 20절에서 언약을 어긴 이들 유다 백성들의 시체들로

하여금 공중의 새들과 땅 짐승의 밥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34:20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너희 원수의 손과...식물이 될 것이며'

언약을 위반한 자들은 적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고

그 시체는 새들과 야생 짐승들의 밥이 되도록 매장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참혹한 광경은 본서 앞 부분에서 자주 언급되었다(7:33, 16:4, 19:7).

 

이런 저주를 받을 사람은 노예를 소유했던 모든 계층의 사람들,

곧 유다와 예루살렘의 방백들, 궁정 관리들, 제사장들, 그리고 토지 소유자들이 포함되었다.

 

34:21 또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을 그의 원수의 손과 그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시드기야가 비록 언약을 주도했었고 또 노예를 해방시키긴 했지만,

그는 다른 여러 면에서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이 저주에서 구제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한편, 우리는 이 구절에서 바벨론 군대가 포위 공격을 풀고 물러갔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다시 돌아올 것이고

또 예루살렘과 모든 유다 성읍들은 폐허가 될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애굽 군대가 예루살렘을 구원하기 위해 진군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위 공격을 풀고 애굽 군대를 치려고 물러났다.

이 예언이 전달된 것은 바로 이런 막간의 때였던 것 같다.

 

34: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

 

'그들이 이 성을 쳐서...불사를 것이라'

유다의 멸망이 얼마나 철저하였는지 하는 점은 최근에 조사된 고고학적 자료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올브라이트는 '팔레스틴의 고고학'(Archaeology of Palestine)

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B.C. 6세기 초에 대부분의 성읍들이 파괴되고,

그 이후 다시는 건설되지 않았으며, 또 그 당시 어떤 성읍들은 파괴된 지 얼마 후

다시 사람들이 거주했다...포로기 동안 파괴되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던 성읍은

단 하나도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