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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지킨 레갑 족속 렘35:12-17 2008년
"하나님은 레갑족속이 살았던 문화도피적인 이상한 삶의 스타일을 따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세상 갖가지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 그들과는 다른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 사는 사람들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 아래 설교문 중에서
◑서론
이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가 있습니다. 마트에 가도, 거리에 가도, 학교에 가도, 국회에 가도,
교회와도 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주전 600년 경 예레미야 시대의 유대백성들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귀로 듣는 것(hearing)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listening)은
대단히 겸손한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듣기 위해서는 다른 소리들에 대해서는 귀를 닫고
듣고자 하는 소리에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의지를 접어두고 듣는 소리의 지시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교만하면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고
학생들도 교만하면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교만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교훈도 듣지 않고 서로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듣지 않고 싸웁니다.
오늘날 가장 심각한 비극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4장을 보니 시드기야왕과 유다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척하다가
듣지 않았습니다. 노예를 해방시키라는 말씀을 듣는 척하다
상황이 조금 호전되자 풀어주었던 노예를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10년 전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예레미야 35장은 여호야김 때 있었던 일입니다. 35:1
34장 (시드기야 때)보다 적어도 10년 이전의 사건입니다.
여호야김왕 시대 “레갑족속” 이야기를 예레미야가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5장은 레갑족속에 대한 이야기로
“레갑족속은 마음으로 듣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특별한 족속이었다.”는 말씀입니다.
◑1. '마음으로 듣는 것'의 실제적인 예 (렘35:1-11절)
2절에 보니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너는 레갑 족속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명하여 사람들에게 술을 마시게 하라는 얘기인데, 얼마나 이상한 명령입니까?
레갑족속은 장막에 살며 떠도는 유목민족으로
도시 문화에 동화되기를 거부한 사람들입니다.
(모세의 장인 호밥의 후손, 겐 족속, 이스라엘에 편입된 이방인)
원시적이고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로
어떤 학자는 이들이 철물을 다루는 일꾼이라고도 말합니다.
이들이 사막에 돌아다니다가 바벨론이 쳐들어오자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예루살렘에 들어와 살았습니다. :11
11절에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가 두려운즉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고
우리가 예루살렘에 거하였노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시민들은 이상한 족속이 우리 가운데 들어왔다고 수군수군 대고
레갑족속은 순식간에 예루살렘 시민들의 뉴스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이상한 레갑족속을 실물교육의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그들을 이스라엘 종교의 심장부인 성전에 불러다가 중요한 시험을 했는데
5절이 그 시험입니다.
“내가 레갑 족속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5
포도주 사발을 가득 놓고 이것을 마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레갑족속은 이것을 거부합니다.
▲근동지방의 풍습에 따르면 손님들에게는 두 가지 철칙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먼저 먹을 것을 달라 하지 말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주는 것은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어기게 되면 우정을 깨는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버린 것으로 보고 죽여도 되는 것입니다.
사사기 4장을 보면 가나안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가나안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철병거 구백승을 거느리고 쳐들어 왔습니다.
시스라가 쳐들어 왔는데 하나님이 바락을 일으켜서 시스라를 물리쳤습니다.
시스라가 모든 군사를 잃고 맨몸으로 혼자 도망을 가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습니다. *겐 사람은 레갑 사람의 조상
삿4:19절에 보면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우라
내가 목이 마르도다 하매 젖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우고”
그리고 이상한 일을 합니다. 밖에 나가서 장막 말뚝을 뽑아서 살쩍에 박아서 죽였다고 했습니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이 말뚝을 뽑아
가나안 군대장관 시스라의 얼굴에 박아 마치 곤충채집할 때에 매미 잡듯이 잡아버렸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물을 조금 달라고 했는데
왜 물은 안주고 우유를 주며, 또 그것을 달라했다고
그렇게 말뚝을 박아 죽이기까지 하는가? 하고 이해가 안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손님들은 먹을 것을 달라고 먼저 요구하지 말고,
주는 것은 묻지 말고 먹으라는 중동의 풍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레갑족속은 예레미야가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하는 말에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35:6~7절에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우리는 조상 요나답이 지시한 모든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우리와 250년 전에 맺은 언약을 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스토리는 열왕기하 10장에 나옵니다.
거기에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으로 나오는데, 요나답과 동일인물이죠. 10:23
북왕국의 가장 사악한 왕인 아합은 농사의 신인 바알을 숭배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예후라고 하는 강력한 사람을 일으켜서
아합 집안과 바알 숭배자들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그런데 예후가 보니, 레갑족속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바알신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답을 사마리아의 바알신 숭배자들을 전멸시키는데 사용했습니다.
요나답은 바알신 숭배자들이 마시는 포도주도 바알신 숭배자들이 사는 집도
바알 신이 주도한다고 하는 농사도 싫어했습니다.
그러므로 250년 전에 그 후손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너희는 포도주를 마시지 마라. 집에도 살지 말고 텐트를 치고 거기서 살아라.
그리고 너희는 포도를 재배하는 포도원을 만들지 마라.
그리하면 너희와 너희 후손은 영영토록 이 땅에서 생명이 길리라.”는 언약입니다. 35:6~7
그런데 그 후손들은 250년 동안이나 자기 조상 요나답의 언약을 깨지 않고 순종하며 지켜왔습니다.
하나님은 이 레갑족속을 마음으로 듣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모범적인 예로써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마음으로 듣는 것'의 실제적인 의미 (렘35:12-16절)
영국과 미국에서는 1835년부터 국제 레갑족 모임(International Order of Recabites)이
형성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근거로 그리스도인은 포도주를 한 방울도 마셔셔는 안된다는
절대 금주운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은 포도주를 한 방울도 마시면 안된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레갑족속이 포도주를 안 마신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한 방울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레갑족속처럼, 집도 짓지 말고 장막에서 살고,
포도원도 재배하지 말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 말씀의 핵심은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가 아니라,
그들이 조상의 말 한 마디를 마음으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레갑족속과는 달리 유다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지 않았다는 것을
대조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레갑족속은 불완전한 인간 지도자(요나답)가 한번 말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250년 동안 지켜 순종했는데
유다족속은 오류 없으신 하나님이 계속 반복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레갑족속은 이 세상의 일시적이고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말한 것도 듣고 순종을 했는데
유다족속은 하늘의 영원한 문제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도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하나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좇아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거하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나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은 순종하고, 중요한 일은 불순종합니다.
예를 들어 교통순경의 빨간 불일 때 횡단보도를 건너지 마라는 말을 철저히 지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멸망의 지옥길인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생명길인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시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의사가 “담배를 계속 피우면 폐암에 걸릴 것입니다.” 그러면 금방 담배를 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하면 무시하고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투자 상담가가 “여기에 돈을 투자하면 내년쯤에는 두 배의 부자가 될 것입니다.”하면
그 말을 믿고 투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는 너의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좀과 동록이 해하지 않는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은 듣기 싫어합니다.
또한 건강문제를 상담하는 사람이“당신은 이런 저런 음식을 먹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철칙으로 여기고 지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당신은 예수 믿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죽어도 다시 살고 다시는 병이 없고 슬픔이 없는 몸으로 부활해서 영원토록 살 것이다.”
라고 말하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안 듣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이 얼마나 모순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이 점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사람들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살겠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귀로 듣기만 하고, 실제 삶에서 불순종한다면
그것은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귀로만 듣는 것(hearing)이지 마음으로 듣는 것(listening)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되게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개인적으로 장기적으로 말씀이 삶을 지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일날 왜 놀러가지 않고 교회 와서 예배드리느냐? 기도하며 살아야 하느냐?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살아야 하느냐?
어려움 가운데도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느냐?
원수라 할지라도 사랑해야 되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레갑족속 조상 말 한 마디가, 레갑족속의 250년 삶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 말씀에 실제적으로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귀로 듣고 삶으로 불순종하는 것은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귀로 마음으로 듣고 삶으로 순종하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요10:27절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삶으로 순종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한주 동안에 말씀 때문에 여러분 삶을 고치려 했던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나는 이렇게 살고 있구나.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으니
내가 이것을 고쳐야 되겠구나.”
했던 것이 지난주에 몇 가지나 있으셨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3. “마음으로 듣는 것”의 실제적인 중요성 (렘35:17-19절)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듣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듣는 자에게는 축복이 있고, 듣지 않는 자에게는 재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에는 말씀을 듣지 않는데도, 축복이 오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맹인이 안내견을 끓고 다닙니다. 그런데 개가 주인인 맹인의 바지에다 소변을 봅니다.
그러자 맹인이 과자를 꺼내서 개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옆 사람이 ‘저런 개는 머리를 한 대 때려줘야지 왜 과자를 주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맹인이 ‘내가 과자를 줘야, 개의 머리가 어디 있는지 알게 아니냐’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과자를 주는 것은,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때려주려고 머리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 불순종해도 일이 잘 풀린다면
그것은 때리려고 머리를 찾기 위해 과자 주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재앙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나의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모든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는, 군사적인 이유도, 정치적인 이유도 아닌,
오직 영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듣지 않으면 영원지옥 형벌을 받게 되는 재앙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재앙이 오지만 들으면 복이 옵니다.
19절에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죽여도 레갑족속은 살아남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느헤미야 3:14절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이 말씀을 보면
레갑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도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두 종류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일반계시로 말씀하십니다.
시편 19:1절로 3절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늘도 땅도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전에도 천지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천지를 운행하는 하나님이시다.”는 하나님의 존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특별계시로도 말씀하십니다.
특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는 말씀이요 성경을 통해 하는 말씀입니다.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말씀하지만
특별계시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구원받느냐 하는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마음으로 듣지 않는 것입니다.
일반계시를 듣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이것만 아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특별계시를 보고 내 죄가 어떻게 용서받고 나는 어떻게 구원받느냐를 듣고 깨달으며
믿어야 됩니다. 인간의 비극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마음으로 듣지도 않고
마음으로 믿지도 않는다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은 8:47절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기록되었고,
24절에도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죽어도 은혜 가운데 죽어야지 죄 가운데 죽으면 안됩니다.
죄 가운데 죽으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은혜 가운데 죽어야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되는 이유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너무나 분명합니다.
예수 안 믿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지은 죄 가운데 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 가운데 죽으면 죄에 대한 심판이 있고 심판을 받으면
그는 영원형벌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반계시의 소리도 특별계시의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특별계시를 듣고 믿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늘에 속한 복도 주시고 땅에 속한 복도 주시며 죄사함과 영생과 부활의 축복은 물론이요
평강과 기쁨과 소망의 복도 우리에게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수많은 소음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과연 “하나님 말씀”에 지배 받는 삶이 가능하냐?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35장에서 레갑족속은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조상 한 사람의 말씀으로도 250년 순종하며 살아오는 것이 가능한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짧은 인생을 사는 것이 왜 불가능하냐는 말입니다.
시편 90:10절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이 살아봐야 70년 혹은 80년을 살고 길어야 90년을 삽니다.
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왜 불가능하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레갑족속이 살았던 문화도피적인 이상한 삶의 스타일을 따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세상 갖가지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 그들과는 다른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 사는 사람들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과는 달리 살 수 있는 용기와 헌신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말씀에 지배받으며 말씀이 중심이 된 21세기의
영적인 레갑족속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절별 해석
35:1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5장은 앞의 장들보다 훨씬 먼저 일어난 사건이 취급되고 있다.
왜냐하면 35장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은 "여호야김 때에" 말씀되고 이루어졌던 일들이다(1절).
그러나 이 일은 여호야김의 통치 말년에 일어난 것임에는 틀림없다.
왜냐면 이 사건은 바벨론 왕이 군대를 이끌고 "이 땅에 올라온" 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11절).
이 침입은 왕하 24장 2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건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사건은 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을 배반하였으므로 일어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반역적인 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신 후에도 계속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죄에서 돌아설 것을 종용하셨다.
그러면 그도 그의 진노를 그들에게서 거두실 생각이시었다.
이 목적 때문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레갑 족속을 예로 든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별하여 다른 이스라엘 족속들과 같이 생활하지 아니하였다.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에서 자기들을 구별하기보다 엄격히 하였다.
그들은 본래 겐 족속 출신이었다.
"이는 다 레갑의 집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족속이더라" (대상 2:55)고 하였다.
겐 족속들 중에 적어도 이스라엘 땅에 정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던 사람들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후예였다(삿 1:6).
우리는 겐 족속들이 아말렉 족속들을 떠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삼상 15:6, 삿 4:17).
이들 겐 족속 중 한 집안의 명칭이 레갑이었는데
이는 그들 조상 중의 레갑이란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이었다.
그의 아들이며 장남으로 요나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당시에 지혜와 강건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 사건이 있기 300년 전인 이스라엘의 예후 왕 시대에 활동하였다.
35:10 장막에 살면서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대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방황하던 때를 바람직한 기간으로 보았다(2:2, 3).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예레미야 당시의 유다 백성은 명색만 아브라함의 자손일 뿐
하나님의 임재와 뜻을 거부하는 완악한 심령을 지니고 있었다.
본문에서 레갑 족속에 관한 이야기를 등장시키는 것은
당시 유다 백성의 영적 상태와 비교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레갑 족속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단언할 수는 없으나,
그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는 열심에 집착해 있었고
또 그들의 조사인 요나답이 명령한 것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준수했다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35:11 그러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를 피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고 우리가 예루살렘에 살았노라
'느부갓네살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조상의 명에 따라 평생 장막 생활을 하던 레갑 족속 사람들은
그들이 현재 이 성 안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그것이 그들의 신조를 버린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했다.
즉 군사적 위협 때문에 그들은 일시적으로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35:12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5:1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가서 유다 사람들과...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레갑인들의 삶을 상징적 의미로 거론한 목적은
순종과 배도를 분명하게 대조시키기 위함이었다.
물론 예레미야 자신도 레갑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따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이런 방식을 따르길 원했는지, 아니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생활 방식이라고
보았는지 하는 점은 본 문맥과 관계없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전통적인 신조에 변함없이 충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다 사람들에게 본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율법과 계명을 그들이 불순종하고,
또 종잡을 수 없이 왔다 갔다하는 이스라엘의 태도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잘못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가 되었던 것이다.
35:14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의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끊임없이 말하여도 너희는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
35:15 내가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끊임없이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따라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살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35:16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나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
이스라엘은 레갑인들이 선조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여호와는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고 선지자들을 수세기에 걸쳐서 계속하여
그들에게 보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제 레갑인들의 생활 지침이 그들을 정죄하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레갑인들은 인간인 선조에게서 명령받은 신조를 종교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준수하여 왔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도 지키지 않았다.
35:17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내가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레갑 족속의 모범과 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배도와 반역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제 그들의 배도와 반역이 더욱 더 돋보이고 있는 만큼
그들에게 임할 형벌과 재앙이 선포된다.
선지자들의 거듭되는 호소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듣지 않고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고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처벌이 주어질 것이다.
레갑인들을 불러 행위 예언의 일부로 나타내고 있는 이 사건은
B.C. 602년경에 일어났던 것인데,
이미 이때부터 이스라엘에서는 회개의 기운이나 증표가 전무한 상태였었다.
35:18 예레미야가 레갑 사람의 가문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모든 규율을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였도다
35:19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재앙 선포와는 대조적으로
여기서는 레갑 족속들의 후손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이 주어진다.
'내 앞에 설 사람'
이는 흔히 성전에서 제사장 직분을 맡아서 여호와를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사용되던 표현이다(7:10, 15:19, 신 4:10, 10:8).
레갑 족속 사람들에게 어떠한 직분이 맡겨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후대의 전승에 의하면 그들이 성전 봉사의 직분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즉, 유대인들의 성격 주석의 일종에 해당하는 미쉬나에는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들'이
매년 일정한 시기가 되면 성전 제단에 사용되는 나무를 가져왔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물과 관련된 분야에서 요나답의 후손들이 봉사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는 B.C. 586년의 예루살렘 멸망 이후 레갑 족속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느헤미야 당시로 넘어가면, 그들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는데,
즉 레갑의 아들 말기야란 사람이 분문을 수리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느 3:14).
그는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기록은 그가 더 이상 이전의 레갑 족속 사람들의 유랑민 생활 방식을 하고 있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마도 강요에 의해서거나 또는 부득이한 환경 때문에
많은 레갑 족속들은 전통적인 생활 양식을 포기하거나 바꾸어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전통적인 생활을 버렸다고 해서 여호와의 율법을 존중하고
거기에 철저한 순종을 해야 한다는 고귀한 원칙을 포기한 것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