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 요일 2:15-17 | | 25.3.14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요일2:15-17 2025.03.14.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5~17
오늘 이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에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여러분 여기서 '이 세상'은 뭘 말하는 것일까요?
타락한 세상을 말하는 거죠. 죄로 오염된 세상, 죄로 망가져 있는 세상,
그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여러분들이 오늘 밤에 다시 한번 바라봐야 돼요.
우리가 지금 세상 속에 사는데, 매일 세상 속에서 사는데,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이 왜 이 얘기를 하죠?
이 세상이나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시대에 있었기 때문이죠.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여요.
근데 마음은 세상을 향해 있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마음이 세상으로 향해서 바라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세상으로 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 하고 있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요?
교회는 나오는데, 마음은 세상을 향해 있어요.
그러면 결국은 세상으로 가게 돼 있어요.
처음에는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했는데,
근데 어느 순간 파트너가 바뀌어 버렸어요. '세상'으로 파트너가 바뀌어 버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죄악 많은 세상'이라고 하고 우리가 말하지만,
이 죄악 많은 세상을 도피할 수는 없어요. 이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요.
우리가 다 수도원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세상에 한 가운데 사는 겁니다.
그리고 치열한 세상 안으로 들어가야 돼요. 등지고 살 수가 없습니다.
▲자, 왜 우리가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되는가요?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을 닮아가게 되어 있어요. 세상을 따라 살게 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로마서 12: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이 세대가 그렇죠.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주님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야 되죠.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이 우리를 따라오는가요?
세상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아니면 우리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요?
어때요? 여러분, 내가 세상에 영향을 좀 더 많이 주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나에게 영향을 더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까?
바울이 한 사람을 언급하는데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딤후4:10
데마는 본래 바울의 동역자입니다. 아주 가까운 관계였어요.
바울과 함께 동역을 하고, 로마제국 전역을 다니고, 복음을 전하고...
또 특별히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개인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바울 곁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누구입니까? 바울이야 말로 영적인 거장입니다.
바울 같은 분과 함께 동역하는 것, 이거는 진짜 영광이고 특권이죠.
한 때는 열정적으로 같이 다녔단 말이죠.
그러니까 누가 보아도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처럼 보였던 인물인데,
그런데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
이 세상을 사랑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바울과 결별을 한 것입니다.
'바울을 떠났다'는 이 말은 뭘까요? 신앙의 길을 벗어났다는 겁니다.
'세상을 사랑했다'는 말은, 주님을 떠났다는 말을 뜻합니다. 그 원인은 뭐예요?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래서 사도요한은 오늘 선명하게 메시지를 줍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여러분 세상을 사랑한다는게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세상에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힘들어요.
물론 세상에 얼마나 매력적인 것들이 많은지요...
우리 눈을 사로잡고 유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의 영혼을 호객하는 것들이 꽉 차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데마는 그러면 어떻게 바울을 떠나게 되었을까요?
세상을 사랑하고 주님을 떠나는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우리가 알아야 돼요.
세상을 사랑하는 증상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1. 세상을 사랑하는 증상은 서서히 나타납니다.
데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게 아니에요. '갑자기'가 아니라, '서서히!'
여러분, 기억하셔야 돼요. 조금씩 마음이 떠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영적 온도가 조금씩 떨어지는 거예요. 교회와 조금씩 멀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본인이 잘 몰라요.
주일 예배를 계속 온전하게 드리지 않는 거죠.
지각하다가... 처음에는 묵도 할 때쯤 들어오다가,
나중에는 대표 기도 할 때 즘 들어오다가,
나중에는 설교할 때쯤 들어오다가,
나중에 설교 마칠 때쯤 오다가,
나중에는 축도할 때 오다가... 합니다.
길이 너무 막혀 가지고, 2부 예배에 오려고 했는데, 3부까지 기다리기는 그렇고,
2부 끝에 축도 받고 가는 거예요.
여러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온도가 떨어지고, 주님과 멀어지는 거예요.
징후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찬송 부를 때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
건성으로 부르는 거예요.
어느 날 보니까 내가 건성으로 찬송을 하고 있어요.
주님을 고백한다는 찬송을 부르는데, 내 마음은 식어있어요.
은혜로운 곡을 무덤덤하게 부르는 거죠.
설교를 듣는데 집중하지 않아요. 귀에 잘 안 들어와요.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아요.
듣기는 듣는데 삶에 적용하지도 않아요.
예배 자리에 앉아 있는데,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오는 거예요.
이게 멀어지는 겁니다. 그냥 그런 해프닝이 아니고, 점점 멀어지고 있는 징후들이예요.
진단을 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점점 세상으로 가고 있다는 거예요.
죄를 지어도 이전과 같이 슬퍼하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오늘 잘 진단 하셔야 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오늘 이 말씀을 받고 가셔야 돼요.
안 그러면 위험한 거예요. 죄를 지어도 이전과 같이 슬퍼하지 않아요.
회개의 기도도 별로 없어요. 건성으로 회개합니다! 양심이 둔해져 있는 거죠.
봉사를 해도 열정이 식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한지도 꽤 오래되요.
영적으로 내가 성장하는 것 같지도 않아요.
여러분,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첫 번째 일어나는 곳은 어디냐 하면 마음, 영혼입니다.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드러나지 않죠. 예민하지 않으면 못 알아차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릴 수 없고, 나도 나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거죠.
여러분,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세상을 향해 조금씩 더 가까이 가는 거예요.
교회와 멀어지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그러면서 그만큼 세상으로 더 가까이 가는 거예요.
문제는 그런 자신의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영적인 눈으로 보면 심각한 상태, 중증이에요. 근데 가볍게 여기는 거죠.
왜요? 난 지금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까!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어... 나는 예배에 잘 참석하고, 나는 봉사도 하고 있고,
철야까지도 나오는데?' 나는 결코 하나님을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 항상 그래요. 위기인데, 위기가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위기를 위기로 보지 못하는 거예요. 왜 그렇죠. 둔감해진 겁니다.
영적 둔감성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느슨해진 거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믿음의 길을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느슨해지고, 작은 것들을 허용하면서 서서히 망가져가는 거죠.
▲2. 두 번째, 세상을 사랑할 때 일어나는 증상이 뭐냐면
세상의 악한 문화에 소극적인 저항을 하는 거예요.
세속적인 것들에 대해서 강한 저항을 해야 되는데, 소극적인 저항을 하는 거예요.
이게 참 어려운 거예요.
오는 주일에는 제가 버가모 교회에 대한 얘기를 할 텐데, 일맥상통하는 거예요.
핍박을 받을 때는 정신 바짝 차리고 있습니다. 깨어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매일 기도해야 돼요.
여러분의 집에서 누가 예수 믿는 거 반대하는데, 오늘 철야에 오신 분은
지금 이 밤에 기도도 살살 기도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이게 긴장감이 있거든요.
결사적으로 매어달리는 거예요.
근데 유혹기는 그렇지 않아요. 느슨해져 있는 거예요. 헤이해져 있는 거예요.
여러분, 경계심이 무너져 있다는 겁니다. 이게 조금씩 일어나는 일인데,
세속적인 것들이 슬며시 내 삶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중요한 것은, 명확한 성경적 기준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어요.
오늘날 특징은, 우리의 신앙과, 세상과의 경계선이 모호해졌어요. 선명하지 않아요.
이게 요즘 하나의 어떤 흐름, 트렌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에 앞선 세대에서는 구분 선이 확실했어요. 십계명을 확실하게 가르쳤어요.
오늘날에는 십계명을 잘 가르치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 그럼 어떻게 돼요.? 죄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거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죄가 아니라고 해서, 죄가 아닙니까?
죄의 정의는 하나님의 내리시거든요.
문제는 성경이 절대적 기준인데, 문제는 성경을 우리가 안 보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기준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거죠.
기준이 없는 사회를 우리는 '사사기 시대'라고 그러죠. 이스라엘의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던 시대! 그러니까 그게 뭐예요? 방종이었죠.
기준이 없으니까 그냥 자기 마음대로 사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사사기를 보면, 뒤로 갈수록 더 심해져요.
기준이 없으니까 뒤로 갈수록 더 악화되는 거잖아요.
나중에는 그 시대의 지도자들이 무너졌으니까... 다 말할 것도 없는 거예요.
요즘은 사실 우리의 목사님들의 설교도 메시지가 선명하지 않죠. 두리뭉실해요.
말씀을 말씀대로 세게 선포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왜요? 설교자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 요인도 있죠.
어쩌면 우리 모두가 세속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겉으로는 성과 속의 구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구별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것을 우리는 '세속화'라고 얘기해요.
이 '세속화'라는 말을 쓰는 것은, 교회가 더 이상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없을만큼
교회가 세상을 닮아 있을 때, 그걸 '세속화'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자 여러분, 우리 각자 자신을 한번 살펴봅시다.
나는 믿지 않는 사람과 만나면, 안 믿는 직장인들이나, 안 믿는 이웃들과 만나면
확실히 내가 다르다는 걸 느끼는가요? '난 진짜 확실히 달라'
안 믿는 친구와 만나면 '확실히 내가 달라!'
자 그러면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가요?
다른 점을 한번 셀 식구들과 나눠 보세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에요.
다른 점을 발견했다면, 뭐냐는 거죠? 다른 점이 있다면, 몇 가지나 찾아낼 수 있을까요?
그 다른 점이... 행동일 수도 있고, 생각일 수도 있고, 가치관일 수도 있고...
어쩌면 옷차림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끼리만 만나고 있는데도, 그 차이를 발견하게 어려워요.
우리 믿는 사람들끼리 함께 있어도,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없죠. 이미 우리는 다 비슷하니까요.
(예수 믿은 사람들이 대부분 다 세속화 되어버렸다는 얘기)
예를 들면, 예수를 믿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이미 세속화되어 있다면,
예수를 믿는 동료들, 교인들을 함께 만나도,
내가 다른 점을 느낄 수 없다면, 내가 그들과 비슷하다면... 변질되어 있는 거예요.
확실하게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이 내 주변에 있으면,
내가 변질되어 있는게 느껴지겠죠. 그죠?
다른 점을 느낄 수가 있는 거예요.
소돔성에 살던 롯과 아내와 두 딸을 보면, 그 소돔성 문화에 이미 젖어 있었어요.
창세기를 보면, 동성애가 가득한 그 땅의 문화에, 그들이 별로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여요.
구별점이 없었다는 거죠. 이미 그 땅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서 정리하고 좀 기도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자 그러면 왜 주님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 그 이유는 뭘까요?
▲1. 첫 번째는,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서예요.
세상을 사랑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무너지고 망가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죄악된 삶의 가속도가 붙어 버려요.
우리는 본래 죄인이에요. 근데 그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별해 내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주셨는데, 다시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이제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이, 그 세상과 함께 가속도가 붙어서 이제 달려가게 돼요.
그러면 죄를 통제할 수 있는게 없어요.
그러면 그 죄는 우리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어 버려요.
여러분, 세상 안에는 구조적으로 죄의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어요. 거짓이 난무해요.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는 세상은, 사단이 역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죄에 대한 충동성이 강하게 작동을 합니다. 여러분, 세상은 어떤 곳이죠?
하나님을 거부하는 문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문화들이 넘쳐납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것을 다 거부합니다.
여러분, 어둠은 빛을 싫어하죠. 거짓은 진리를 밀어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타락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기 원하십니다. 창조의 원형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시고,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는데,
우리가 다시 세상을 향하면... 그 죄의 오염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죄의 오염으로부터, 우리가 보호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이 오염이 무섭습니다. 죄에 오염되는 경로를 막아야 돼요.
죄의 쓰레기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면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자, 이 오염의 경로,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순간,
우리에게 급속도로 죄의 오염이 찾아오는데, 그 경로를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자, 경로가 분명하죠?
여러분 세상 문화들이 갈수록 아주 화려하고 강력합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쫙 깔렸어요.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도 요물이죠.
여기에 모든게 들어 있어요. 터치하는 순간에
우리가 온 세상을 다 가질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요.
우리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여러분, 이런 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이 세상으로 향하도록 유혹하고 있느냐는 거죠.
여러분, 예전에는 포르노 물을 접하는게 어려웠어요. 어떻게 구해요? 볼 수가 없어요.
근데 지금은 어때요? 핸드폰이 있어요. 원터치예요.
어디 뭐 찾아서 헤맬 것도 없어요. 그냥 원터치예요. 편리하기 이를데 없어요.
그러니까 죄를 짓는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24시간이에요. 핸드폰은 무소부재 해요. 없는 곳이 없어요. 어디에나 가능해요.
와이파이가 터지면 어디서나 가능해요.
어디에서든지, 언제나 자신의 욕망을 해결할 수 있게 해 줘요.
상업주의자들은 온갖 옵션을 걸어놓고, 조금만 돈을 더 내면
더 좋은 것을 제공해 주겠다고 유혹을 해요.
그리고 한번 유혹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해요.
한번의 선택으로 끝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어요. 누구나 중독자가 될 수 있어요.
오늘 지금 누구든지 중독자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미 중독에 빠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예요.
처음에는 게임을 그렇게 많이 하려고 한게 아니에요. 심심풀이로 한번 하려고 했어요.
근데 손을 못 떼는 거예요.
도박, 스포츠 도박? 그렇게 빠지려고 시작한 게 아니에요.
근데 한번 덫에 빠지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쾌락을 좇는 육신의 욕망은, 길들여지지 않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워요.
죄성으로 가득한 이 욕망이, 그냥 욕망이 아니에요.
죄성으로 가득한 욕망은 성난 망아지처럼 뛰는 거죠.
여러분, 사람이 망가지는 것은 너무 쉬워요. 특별히 오늘 날!
한 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한때는 은혜를 구했어요. 한때는 열심히 기도도 했어요.
한때는 훈련도 받았어요. 한때는 교회 직분자도 했어요.
그런데 한 방에 날아가는 거죠.
한때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한 사람이,
어느 날 악마의 제자가 돼요. 어둠의 자식이 돼요.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백성들, 갈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 살아가야
되는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는 순간, 모든게 멈추어 버리는 거죠.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지 마라'
그 세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게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어요.
그 육신의 욕망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드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2. 여러분 또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될 이유가 뭔지 아세요?
세상은 우리가 사랑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바꿔야 대상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누가 이 망가진 세상을 바꿀 수 있겠어요?
여러분,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에요.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세상은, 너무도 보시기에 좋았어요. 너무도 아름다웠어요.
여러분, 인간도 걸작품으로 만드셨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존재로!
여러분, 하나님이 만드신 건 다 아름다워요.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시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어요.
문제는 죄로 인하여, 온 세상이 망가져 버린 거예요.
모든 것의 왜곡이 찾아왔어요.
'남자와 여자'라는 성 정체성의 왜곡이 찾아왔어요.
정상을 비정상으로 변질시켜 버렸어요.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모습을 스케치하죠.
로마서 1:23~28절을 보십시오. 각자 찾아보세요.
여러분, 여기서 특징이 뭐냐면 '모든 것을 역리로 바꿨다'는 거예요.
이게 죄가 하는 일이에요. 뒤집어 놓은 거예요.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상을, 인간이 역리로 바꾸었습니다.
여러분, 남자가 남자로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근데 남자가 여자가 되려고 한다는 거예요.
여자가 남자가 되려고 한다는 거죠. 반대로도 마찬가지죠.
여러분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그 경계선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한 남자와 여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날 우리 문화안에 깊이 적응하고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어떤 증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이런 롬1장 말씀들을 들을 때 기분이 상해요. 왜요?
이미 내 안에 다른 거짓된 진리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죠!
다른 지식이 먼저 들어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예요.
먼저 거짓된 진리가 우리 안에 자리를 잡아 버리면,
더 이상 하나님의 진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거죠.
그러면 이미 세상의 사람이 되어 있는 거예요.
마귀가 거짓된 진리를 퍼트리는데 열심입니다. 무엇이 먼저 자리를 잡느냐 하는 거죠. 주1)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귀가 마귀의 공격지는 '다음 세대'예요.
온갖 거짓된 정보와 지식을 미디어를 통하여 십자포화를 퍼붓는 거죠.
여러분 마귀는 진리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에 귀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는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죠.
왜곡된 것을 바르게 잡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 죄로 오염된 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역리로 모든 것을 뒤집어 놓은 그 세상에 한 가운데
가서 하나님의 진리로 바르게 잡는 일을,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기신 거죠.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 청년들이라면, 남녀가 사귀는 일도 멋지게 해야 돼요.
'교제를 해도 저렇게 하는구나' 이거를 보여줘야 돼요. 세상 사람과 비슷하게 하면 안 돼요.
최근에 우리 교인 중에 한 분이, 펜션을 운영하시는 분인데,
그런데 나이가 아주 어린 친구들이 남녀가 함께 와서 투숙을 한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한두 명이 아니고, 그냥 막 몰려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팬션을 팔아 버렸어요.
여러분, 사랑을 해도 멋지게 해야 돼요. 사랑과 불륜은 다른 거잖아요.
여러분 불륜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아요. 누가 보아도 뭔가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식당이나 카페 하는 분들이 불륜남녀가 오면 딱 표가 난다고 그래요.
유난히 가깝대요. 하하하하
부부끼리 오면 그냥 뭐 무심하게 드시고 가는데...
행동거지도 이상해요. 여러분 정상적이지 않는 것은 아름다운게 아니에요.
그리고 시작은 모르지만, 끝이 안 좋게 돼 있어요.
여러분 욕망 자체가 나쁜 것 아닙니다. 문제는 뭐예요? 통제되지 않는 욕망이에요.
통제되지 않는 욕망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교란시키는 거거든요.
결혼 관계 안에서 불륜도, 지금 굉장히 지금 늘어나고 있어요. 그게 통계로 나와 있어요.
결국은 배우자에게 배신을 하고, 결국 불행으로 마치게 돼죠. 진짜 사랑이 아닌 거죠.
요즘 혼전에 동거 경험이 넘쳐나요.
미디어에서도 뭐 연예인들도 그냥 뭐 부끄럽지 않게 얘기를 해버 려요.
말도 안 되는데... 그러니까 그게 정상처럼 보이는 거죠.
세상이 너무 타락해 있으니까, 죄의 편만함이 일어나는데...
그 기준 자체가, 우리가 그거를 보다 보니까, 거기에 대해서 우리도 거북함이 없어져 버렸어요.
여러분, 오염이 무서운 거예요. 그러면 오염되어 있다는 말이 뭘까요?
그런 것들을 바라볼 때, 내 안에서 불편함이 없는 거죠.
여러분 광안리에도 주말에 보면, 굉장히 어린 커플들이, 캐리어 끌고 왔다갔다 해요.
그걸 죄를 죄라고 볼 수 있어야 되는데, 그런 기준이 무너져 버렸어요.
거기에 미디어가 한몫을 해요. 영화를 보아도 그런 장면을 계속 보면 나중에 무덤덤해지잖아요.
정상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만약 그런 생각을 한다면, 세상으로 많이 들어간 거예요.
여러분 그런 건 나쁜게 아니고요. 죄입니다. 간음은 죄입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이성에게 기웃거리는 그것은... 간음으로 가는 길이잖아요.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라 그랬어요.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고 왜곡된 거잖아요.
사랑을 왜곡시킨 거예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는가 하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세상에 영향을 주고 있느냐? 세상에 영향을 받고 있느냐?'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어느 것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느냐?
여러분 세상이 매력적으로 보입니까? 만약에 타락한 세상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면,
그곳으로 가게 되어 있을 겁니다. 언젠가는 갑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뭡니까?
역리로 뒤집혀진 세상을, 순리로 고쳐놓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원리와 법칙을 뒤집어 놓은 것을,
우리는 다시 뒤집어 원상복귀 해 놓아야 된단 말이에요.
그게 우리의 사명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아름답게 지으신 것들, 하나님이 아름답게 만드신 것을
우리가 그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는 거예요.
진짜 부부의 사랑이 멋있는 거잖아요. 진짜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그 테두리 안에서
그 울타리 안에서의 그 사랑, 그 원리와 법칙 안에 사랑은, 정말 기가 막힌 거거든요.
근데 그것을 쾌락으로 바꾸고, 너무도 얄팍한, 헌신 없는 사랑,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왜곡된 걸 바로 잡는 일이에요.
왜곡된 것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해주고 보여줘야 되는 거예요.
결혼의 오리지널이 뭔가를 가르쳐 줘야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 창세기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모든 오리지널이 그게 다 나와 있어요.
-가정의 오리지널, 부부 관계의 오리지널,
-관계의 오리지널, 우리 삶의 모든 것에, 원래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진리를 다 가르쳐 놨어요.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거짓이라고, 당신이 속고 있다고,
그 길로 가면 망한다고... 말해줘야 되잖아요. 진짜 사랑이 뭔지를 알려 줘야 되잖아요.
그럴려고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알아야 돼요.
근데 문제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많이 안 본다는 거죠.
교회도 성경을 잘 안 가르쳐 주고... 그러면 어떻게 돼요?
우리는 세상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거죠.
우리가 세상을 진리로 인도하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야 돼요.
그냥 대충 성경을 알아 가지고는 안 돼요.
여러분, 우리가 위험한 것 중에 하나는, 우리가 '자기만의 성경'을 따로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게 어떤 성경이냐? '내가 좋아하는 구절만 모아 놓은 성경'이에요.
성경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들만 열심히 붙들고 사는 사람은,
'자기만의 성경'이 있는 거예요.
원래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골고루,
편식하지 않고, 일부분만이 아니라 전체 모든 맥락, 성경의 핵심적인 진리가 있는데,
이걸 공부 안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구절만 다 끌어모아 가지고, 딱 한 권을 만들어 놨어요.
그게 성경책입니까? 여러분, 그건 성경책이 아니에요.
말씀을 균형 있게 배워야 돼요. 제대로 된 성경 공부를 해야 돼요.
성경을 모르는데 어떻게 성경적 원리대로 살겠습니까?
그게 틀렸는지/ 맞는지, 어떤 것이 거짓인지/ 진리인지를 어떻게 분별할 수가 있겠어요?
성경을 공부하면, 성경적 렌즈 (세계관)을 가지게 됩니다.
이게 지금 오늘 우리의 과제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는 지속적으로 죄악된 욕망이 일어나요.
또 우리가 세상을 살면,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매일 일상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는 현상들이 일어나는데...
우리의 마음이 무엇으로 지배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문화들이 더 많이 지배하고 있는가?
끊임없이 끊임없이 미디어들이 밀려와서 우리가 벗어날 수가 없게 하는 거죠.
저는 핸드폰에게 '스마트폰'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가 않아요.
집에서 TV 채널이 수백개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디를 가나 우리가 피할 길이 없는 거죠.
그거를 보니까 말씀보다 어디에 지배를 받겠어요?
지금 내가 어디에 더 많이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가요?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어디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가요? 가장 원초적인 질문이잖아요.
여러분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사랑하지 말라'
이 육신의 정욕은 우리를 잠시도 멈추지 못하게 합니다.
그대로 두면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아무도 몰라요.
▲여러분 세상이 얼마나 경쟁적입니까?
경쟁적으로 우리의 탐욕에 막 불을 지르는 거죠.
눈이 그냥 한순간에 충혈돼서, 우리 시선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계속 보는 거죠.
안목의 정욕, 우리 눈이 잠시도 가만 있지 못 해요. 계속 뭘 보는 거죠.
그리고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끊임없이 더 나아지려고 해요.
여러분, 우리 한국 사람처럼 비교를 많이 하는 민족이 별로 없을 거예요.
(좁은 땅에 인구 밀도가 높게 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어요)
옷도 그냥 입으면 되는데, 자꾸 다른 사람이 입은 옷과 비교를 해요.
제가 호주에 살 때는, 옷을 입는 것을 가지고 서로 비교하는 걸 못 봤어요.
별로 계절의 차이도 없고요. 무슨 유행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그냥 뭐 10년, 20년 입는 거예요.
그리고 수영장에 가도, 한국에서는 그 몸매로 절대 수영 안 오실 분이 오셔요.
당당하게 바닷가에서 수영하죠.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비교를 많이 한다는 거죠.
우리는 좀 더 많이, 좀 더 높이, 좀 더 크게, 좀 더 멋있게...
여러분 좋은 옷 입는 거 나쁘지 않아요. 좋은 옷 입으면 좋죠. 근데 문제는 뭐예요?
'좀 더'가 문제예요. '좀 더, 좀 더' 하니까 나중에 패션에 과도하게 집착을 하는 거죠.
연예인도 아닌데 갈 데까지 가는 거예요.
얼굴 성형도 다섯 번, 여섯 번... 성형 중독자들이 많아요. 중독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멈춰야 되는데, 멈추지를 못하는 왜요? 욕망이에요.
이게 무슨 병입니까? 만족하지 못하는 병이에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결국 이것도 미디어예요. 셀럽들이 만들어내는 영상물을 함부로 보고 따라가면 안 되는 거죠.
유명 스타들, 헐리우드 스타들, 그들이 일상을 막 공개하잖아요. 그걸 따라갈 수 있겠어요?
근데 영향을 받는 거예요.
오늘날 화려함의 세상에, 화려함의 극치들이 미디어를 통하여 노출이 되고 있죠.
너무 멋있고 너무 화려한 거잖아요. 우리가 생각 없이 보는 거죠.
근데 생각 없이 보는 동안에 우리는 세상을 향해 있는 거죠.
그리고 내 욕망에 불을 지르는 거죠. 다양한 영향을 받는 거죠.
여러분, 광고들이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욕망의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결국은 굴복하게 만듭니다. 스탑을 하면 되는데, 스탑이 안 되는 거죠.
욕망이 나를 지배합니다. 지배를 당하는 순간, 끌려가는 거예요.
어디까지 데려갈지는 몰라요. 나중에는 어떻게 해요? 수입보다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럼 빚을 지겠죠? 카드로 메꾸고, 나중에는 집까지 정리하고,
빚을 내서 고급차를 타고, 결국 빚이 늘어나서 이자의 이자가 붙고...
여러분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건,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다리가 찢어지는 거죠.
▲여러분, 내가 요즘 무엇을 가장 많이 자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셔야 돼요.
그걸 보면 내가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알 수가 있어요.
여러분이 오늘 자랑하고 있는게 뭐죠? 주목해 보세요.
우리가 기준을 확실하게 가지고, 말씀대로 살겠다는 무장을 매 순간 하지 않으면
수많은 것들에 의해서 우리는 무너지는 거예요. 세상은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유혹으로 가득한 세상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듭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 앞에 굴복하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되죠.
오늘 우리가 명심해야 되는 구절이 17절에 있어요.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있느니라'
잠깐이라는 거죠. 나중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조금만 지나면 초라해집니다.
인간은 죽어요. 죽는 순간 모든 게 사라집니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세상은 우리를 계속 속여요.
대단한 것이 있는 것처럼 속여요. 반짝반짝거리면서
'행복이 여기 있다고.. 기쁨이 여기 있다고.. 계속 유혹을 하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가 소망해야 할 것, 그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결론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돼요. 여러분, 결론을 알고 나면 답이 나와요.
사람들이 헤매는 이유는, 결론을 모르니까 헤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배웠어요.
성경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미리 내다보게 하셨어요.
오늘 이 말씀이, 미리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주는 거예요.
세상은 지나가는 거라는 거죠. 그 헛된 것을 위해 인생을 바치지 말라는 거죠.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거예요. 흑자 인생을 살아야 되잖아요.
자 여러분 마지막에 끝에 남는 것은 뭐라고요?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2:17
명확하죠. 여러분! 다 사라지고 오직 한 가지만 남아요.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여러분, 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바울은 갈라디아서 6:24절에 이렇게 얘기해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여러분, 우리는 육체의 그 정욕과 탐심을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어요.
내 육신은 내 힘으로는, 육신적 욕망을 이길 수가 없어요. 여러분 판판이 져요.
그래서 이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해야 되는데,
이것이 한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매 순간 일어나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딱 하나밖에 없다는 거죠.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14절의 말씀이 그거예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6:14
바울은 한 가지만 기억하고 자랑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여러분 세상의 그들은 세월이 지나면 다 초라해져요.
아무리 대단한 것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빛이 바래요.
세상의 영광을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걸 자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십자가에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내 정과 욕심이 못을 박는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생기는 끊임없는 유혹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속지 말고,
하늘의 영광에 눈 뜬 자들이 되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 될 수 있는게 아니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하늘의 영광을 보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죠. 세상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세상은 우리를 속이는 것이고,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고,
거짓된 것으로 우리의 삶을 낭비하게 만드는...
오늘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돌이키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영원히 거하느니라' :17
오늘 우리에게 주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분의 뜻을 행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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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사람은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을, 진리라고 믿는 성향이 있습니다.
어린이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 인데요.
과거에 어느 두메산골 시골 마을은, 주민들 모두가 문맹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만에 그 마을에 한 나그네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을 어른들은, 그 나그네에게 정중히 부탁하여, 서당을 열 터이니
우리 아이들에게 글을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나그네는, 그 부모들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훈장이 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였고, 나그네는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그네 훈장이 좀 배운게 없어서
하늘 천天 자를 써 놓고 '땅 지'로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땅 지'를 제창했습니다.
그리고 땅 지地 자를 써 놓고 '하늘 천'이라고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배웠습니다.
이제 이 나그네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며 그 마을을 떠났고,
새로운 나그네게 지나가다가, 그 마을의 훈장직을 수락했습니다.
훈장은 '하늘 천天' 자를 써 놓고, '하늘 천' 하고 읽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일제히 '땅 지' 하고 읽었습니다.
훈장은 혀를 차며 '땅 지地' 자를 써 놓고 '땅 지'하고 읽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일제히 '하늘 천'하고 읽었습니다.
결국 며칠이 못 되어, 두 번째 훈장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늘 천天 자를 써 놓고, 땅 지로 가르치고,
땅 지地 자를 써 놓고, 하늘 천 자로 가르치는... 실력 없는 훈장이라는 이유에서였죠.
'누구든지 처음 배운 것을, 진리로 알게 된다'는 교훈을 주는 어린이우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