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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장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LNCK 2025. 4. 8. 09:4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교회론
https://www.youtube.com/watch?v=oAIKrPsTCa8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전1:26~31            2025.03.30.  

▲도입

고전1:18~4장 끝절까지가 <교회 분쟁과 관련된 사도 바울>의 교훈인데, 
전체적인 내용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그냥  간략하게 요약하면,

고전1장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십자가가 주제가 되고,
2장은 깨닫게 하는 성령에 대해서,  
3장과 4장은 정확한 사역자들에 대한 교훈인데,
 
지난주 다루었던 말씀은, '하나님의 미련한 지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道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또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또 하나님의 지혜(1:18)라고 바울은 교훈을 했습니다.
   ☞1:18~25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능력...  rfcdrfcd.tistory.com/15982292
  
오늘 다루는 1:26~31절까지는, 표현이 조금 죄송한데 <하나님의 미련한 공동체>입니다. 
지난 주 말씀은 <미련한 지혜, 즉 십자가>
그런데 오늘은 <교회>에 초점을 맞춥니다.  

고린도 교회에 초점을 맞추면서 "하나님의 미련한 공동체"가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사람들, 그분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낮은 조건의 사람들을 부르신 것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이야기 합니다.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하나님이 너희를 부르셨을 때 ,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그때 우리들의 지위, 신분이 정말 어떠했나요? 
또 우리들의 모습과 상태가 어떠했는가? ...  한번 잘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그때 우리들의 모습, 상태를 한번 잘 생각해 봐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평가를 하죠. 
26절에서 3번이나 반복되는 표현이 '많지 않다' 라는 표현입니다. 

'육체를 따라' 라는 말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라는 뜻이고,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당시 아테네, 또한 고린도는 지혜 자체를 가장 귀한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헬라 문화권에서 철학이 아주 발달했죠.
당시 지혜로운 자가 가장 탁월한 사람으로 여겨졌던 시대인데, 
너희들 중에는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았다는 거죠. (소위 '가방 끈'이 길지 않았죠)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는 NIV나 대부분 영어 번역은 '영향력'으로 번역합니다. mighty,  influential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조건의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거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 사회는 집안이 중요했습니다. 가문이 중요했죠. 
한국 같으면 양반, 서구에서는 귀족 계층 등 문벌 좋은 자가, 고린도교인 중에 많지 않았다는 거죠.  

이렇게 바울은 먼저 그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너희들의 상태였다는 거죠.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구원의 일을 하셨는가요? 
27절과 28절에는 또 3번 등장하는 표현이 '택하사' 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택하셨는가 하면 
1)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the foolish 
학적인 배경, 스펙이 별로 없는 이런 미련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택하셨고,

2)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the weak
힘과 관련되어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고 

3)  '하나님은 세상의 천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despised    :28
이것은 낮은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니까, 존경 대신에 멸시를 받는 사람들이죠. 

낮은 계층의 사람들, 그래서 멸시받는 자들,
멸시를 받으니까 때로는 마치 없는 사람처럼, (요즘 말로 투명인간) 여겨졌던 사람들, 
바로 이들을 하나님은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택하신 이유, 목적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미련한 자를 택하셔서,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나니' :27

또 '세상에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shame 하려 하셨고' :27

'천하고 멸시 받고 없는 자들을 택하여, 있는 자들을 폐하려 하셨다' :28 는 것입니다.

'폐하다'는 무력화시켜버리셨다 nullify ... 라는 뜻입니다. 

28절의 '없는'은, 문맥상 '존재 가치가 없는'이란 뜻입니다.

27~28절 말씀을 들으니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기분이  좋으신가요? 아니면 혹시 이런 생각도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생각보다 속이 좁으신가? 
아니 잘난 사람들은 하나님이 꼴을 못 보시나? 
왜 지혜 있는 자들, 또 소위 강한 자들, 세상에 힘 있는 자들이 많은데, 
그런 자들은 안 택하시고,  
어리석고, 약하고, 없는 것들을 택하셔서, 있는 자들을  창피스럽게 만드시나?
하나님은 속이 좁으신 분이신가?'   물론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세상이 볼 때는 별로 지적으로 내세울 게 없고, 
또 별로 능력도 없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이분들이 비교적 예수님을 잘 믿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저계발국 사람들이 훨씬 예수님을 갈망하는 수치가 높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함을 입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이 되고,  
그들 속에 성령님이 역사하셨을 때, 
세상의 지혜와 부와 가문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실 때, 그때 어떻게 되느냐? 
세상의 지혜와, 부와, 있는 자들은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지금 사도 바울은 이야기했습니다. 첫 번째 교훈이, 
'너희의 부르심을 한번 잘 살펴보면, 하나님은 약하고, 미련한 것들을 택하셔서 
정말 강하고, 지혜롭고, 이 세상에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이렇게 바울은 교훈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이 어떻게 다가오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목회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 말씀은 사실 제 삶을  바꿔 버렸던 그런 말씀 중에 하나였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전도사를 했던 곳이, 서울 내수동 교회 대학부 였습니다.
그런데 이 내수동 교회 대학부에는 누가 있었느냐? 
1980년대 당시 복음주의권 대학생들 중에서는, 가장  신앙이 좋으면서도 
스펙이 화려한 학생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아주 스펙이 화려한 학생들이 정말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로 툭 치면 그냥 '스카이'였어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외국인을 위한 해설)
명문대생들이 무수히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그 교회에는 누가 있었느냐? 내수동교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빈민가는 아니지만, 아주 힘겹게 살아가는 달동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에서 어린 시절부터 내수동교회를 다녔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수동교회는 어떤 슬픔이 있었는가 하면, 
'내수동교회 고등부를 졸업하면, 교회를 졸업한다'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 고등부에서 자랐지만, 대학부로 올라가 보니까,  
거기에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그 스펙과 조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면, 교회를 졸업하는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서 전도사 사역을 할 때, 제가 고민했던 것 중에 하나가


'도대체 기독교는 잘난 사람들을 더 잘나게 만들어 주는 공동체인가?
스펙이라든지 모든 것을 잘 갖춘 사람들을, 
신앙을 통해서 더 선하고 더 영적으로 성공까지 시켜주는...
교회는 잘난 사람들을 더 잘나게 만들어주는 공동체인가?' 

물론 그런 일도 일어나겠지만, '그것이 가장 우선적인가?
아니면 이 세상의 관점으로 봤을 때는, 어떤 것도 별로 갖추고 있지 못하는... 
지식이나, 부나, 배경이라든가... 정말 제대로 갖춘 것 없는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을 만나서, 그들의 삶이 가장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되는 
거기에 우선권을 두어야 되는가?'  

제가 이 문제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후자 쪽이 그래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해서,
별로 조건이 좋지 못했던 형제 자매들에게 조금이라도 제가 힘이 되려고 노력을 했었고요. 
그러다가  대학부 전도사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큰 고민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사역지는 어디로 가야 되나? 어디서 사역을 해야 되나?' 
다시 말해서 '강남으로 가야 되나, 난지도로 가야 되나?'  
이것이 저한테는 큰 숙제였어요. 

제가 그래도 서울대를 나왔고, 내수동교회에서 전도사 사역을 했는데,
그때는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내수동교회 대학부가 제일 명성이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다음 사역지는, 좀 더 화려한 곳으로 옮겨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지금 친구들처럼, 또 선배들처럼, 강남으로 가야 되나? 
아니면  난지도로 가야 되나?' 이 결정을 앞두고 제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난지도를  선택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울의 빈민가였고, 쓰레기 매립지였던 그곳에서, 
저는 3년 반 동안 그분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 제 생애에, 소위 강남에 있는 잘 나가는 분들은 제가 접할 수 없었지만,
세상 밑바닥에서 정말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과 3년 반의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어쩌면 제 목회 가운데 가장 귀한 교훈을, 저는 그곳에서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난지도가 철거가 됐습니다. 거기에 상암동 축구경기장 또 하늘공원이 생기면서 
그곳이 다 철거가 되어서, 또 한 번의 고민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늦더라도 다시 강남으로 가야 되나?' 

그런데 저는 항상, 고향이 대구인데, 대구로 오면 마음이 너무 힘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저하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앙이 뜨겁고 훌륭했던 그런 친구들, 또  후배들이, 
정말 교회를 많이 떠나갔습니다. 

'7~8년 전에 나 같은 뺀질이는, 대학으로 서울에 올라가서 주님을 만났는데,
대구에 남아있었던 내 후배들은, 그렇게 신앙 좋은 애들이 왜 다 떨어져 나갔나?'

이유는 딱 하나예요. 나는 서울에 있었고, 친구들은 대구에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기도하며 결심했어요.
'하나님, 제가 부족하지만, 고향 후배들한테 조금이라도 신앙의 울타리가 되고 싶습니다' 

저한테 가장 큰 숙제는 이거였어요. 
당시 저한테, 고향에 있는 후배들은, 표현이 죄송한데, 어떻게 보였느냐 하면 
'날개가 하나 잘려버린 새'같이 보였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은 잘 못 느끼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서울에서 대구로 한 번씩 내려오면,
후배들이, 그 귀한 애들이, 자신의 가치를 잘 느끼지를 못해요. 

뭐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야, 나 지잡대 출신인데, 내 인생에 무슨 거창한 게 생길 수 있겠어? 
웃기는 소리 하지마!'   *지방 소재의 잡다한 대학

정말 자기 인생이 아름답게 꽃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사실 많은  후배들이 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제가 기도했던 게 뭔가 하면 
'하나님, 자본주의 사회가 잘라버린 저들의 한쪽 날개, 거기에 하나님의 날개를 붙여주셔서 
지금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붙여주신 날개를 가지고 
한번 우리 청년들이 활활 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제가 도울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내일 교회로 부임해 오게 됐습니다. 
그때 담임 목사님과 면접을 하고서, 통과해서 내일교회 청년부 목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2년이 지나서, 담임목사님이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김성덕 목사
'야, 네가 처음에 우리 내일교회에 지원을 해가지고, 그때 면접을 봤는데, 
그때 내가 정말 궁금한 게 많았다...'

왜냐하면 아니 학벌도 서울대를 나왔고, 
자타가 공인하는 당시 내수동교회 대학부 전도사를 했는데,  
당시 내일교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교회였거든요.

저는 올 때, 사실 '내일교회'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왜냐하면 개척해서 급성장을 한 교회니까, 저는 타지에 있었으니까, 알지를 못했던 거죠. 

'아니, 갓 성장한 이런 교회에, 왜 스펙이 좋은 저 젊은 목사가 지원을 했나? 
아마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잘 거두어 줘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셨대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해서 내일교회로 왔고, 담임목사님은 이제 은퇴하시고,
지금은 제가 담임목사가 되어서 지금까지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올 때, 제 주위 친구들이 이야기했죠. 
'야, 왜 내려가냐, 왜?'  
아시죠? 대구는 '목회자의 죽음'이라고 불려지는 곳입니다. 

그때 제가 웃으면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야, 서울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올 수 없는 동네야. 
그래서 나는 예수님 제자들이 나올 수 있는 동네, 난 지방으로 갈 거다!
예수님 제자 12명 중에 예루살렘 출신이 있냐, 없냐?'

여러분, 아십니까? 예수님 제자 12명 중에, 예루살렘 출신은 아무도 없어요. 다 어디냐?  
대부분 다 사람들에게 무시받았던 갈릴리 출신의 사람이었어요.    주1)

그 예루살렘에 똑똑한 청년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문벌 좋은 자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왜 그들을 버려두고, 예수님께서는 그 갈릴리의 어부들, 성격 급한 사람들, 
왜 이런 사람들을 제자로, 사도로 부르셨을까요? 

바로 바울이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조건들이, 최종적인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비록 세상적인 지혜가 부족할 수도 있고, 부가 부족할 수도 있고, 
때로는 가문이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르침과,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은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떤 아름다움과, 거룩함과, 영광보다 더 귀한 것을,  
하나님은 만들어 가실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장황하게 드린 것은, 
저는  성도님들 중에 어쩌면 성공한 삶을 사시는 분도 있고, 
어쩌면 스스로 나는 볼품이 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아무리 우리들의 삶이 보잘것없는 삶인 것처럼 보여진다 할지라도,  
주님은 그분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통해서 
이 세상에 어떤 것들도 만들어낼 수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의로운 삶들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 놓여져 있든지 간에,  교만해서도 안되지만, 포기하지도 말고,  
하나님과 함께 하루하루 동행하며 아름다운 삶을, 
하나님과 함께 만들어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신앙인은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저는 자라면서 부모님들이, 부모 세대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성공했던 순간보다는, 실패하는 순간들을 더 많이 지켜보면서' 살아왔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목회자로 서 있는 이 순간, 
저는  부모님들이, 믿음으로 성공하신 것도 저한테 엄청난 자양분이 되었지만, 

우리 부모님들 세대가 믿음 때문에 실패했고,
그분들의 어떤 그런 실패와 고통 때문에 치렀던 그 고통의 시간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것이 제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그런 자양분이 되고 있는지요...  저는 생생히 느낍니다. 

저는 그런 오기가 있어요. 저는 어르신 할머니들 중에, 
진짜 자기 자식들이 지지리도 잘 되는 일이 없는, 그런 불쌍한 할머니 성도가 있으면, 
저는  할머니 생각을 많이 해요.  

또 여자분들 중에, 남편이 잘 되는 일이 없어서 지지리도 고생하는 여인들을 보면서, 
저는 우리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아, 우리 어머니도 저러셨지...'

그때 교인들이 '우리 어머니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셨지 (성도들이 혀를 찼었지)' 

그러나 그분들이,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의 순간에서도,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들고, 
하나님과 함께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아름답게 가꾸어 갔을 때, 
그때 그분들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오늘날 저희들 같은 사람들이 서 있는 거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낮은 자들을 택하신 이유로 첫 번째는,      ①
하나님은 부자들, 성공한 사람들만 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밑바닥에 있고, 때로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낮은 자들을 택하신 이유가 29절에 기록되어 있어요.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사람이 자랑하는 것은 눈뜨고 못 보시는 분이시구나'  
그래서 바울이 이야기합니다. '아무 육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②

나의 지혜가 이걸 만들어냈다...  
나의 부와 나의 가문이 바로 나를 이런 사람이 되게 했다...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십니다.  
이건 팩트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부와, 그 어떤 가문이  
하나님의 지혜와 부와 하나님의 권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랑하지 못하게 하는 제일 큰 이유는 무엇이냐? 한 구절만 더 보겠는데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유명한 구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와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너희 구원의 이유는, 너희들 안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하셨고,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을 주셨는데 
이유가 뭐라는 겁니까? 딱 하나!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도대체 이 '자랑'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하나님이 이거 못하게 하시려고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하셨나요?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자랑'은 무엇이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비극과 다툼, 고통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느냐?
자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엡2:11절부터 '철천지 원수였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근데 유대인과 이방인을 철천지 원수가 되게 한 게 무엇이냐?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이들을 철천지 원수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인 율법을, 
자기들만 가졌다고 자랑하니까,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짐승 취급을 했고, 

이걸 보니까 정말 이방인들은 '율법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분노하는 거죠. 
율법을 가지고 자랑하는 게 어떻게 됐느냐? 
유대인과 이방인을 철천지 원수가 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랑의 이유가 되는 율법을, 십자가로 파괴시켜 버리셨습니다.  
꼭 기억하셔야 되는데 '자랑'이라는 것은, 인간적인 조건을 '자랑'하는 것은 
이 세상을, 공동체를 파괴시켜버립니다. 그리고 철천지 원수의 관계로 만들어버리게 돼요. 

▲요즘 새로 우리가 '예친'을  연령대별로 조직을 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어젯밤에 남편하고 대판 싸워가지고, 지금 교회 와서 설교를 듣고 계시지만 
도 닦는 마음으로 인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그래서 근근히 참고 예배를 드렸어요. 
그래서 마음을 추스리고  예친 모임을 갖는데, 
거기서 한 아줌마가 성령 충만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거죠. 

자기한테 고민이 있다는 거예요. 무슨 고민이 있느냐? 
'우리 남편이 나밖에 모르고, 나만 사랑해주고,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미리 알아서 다 해주고...'

그 이야기를 딱 듣는 순간 어떻게 되겠습니까?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이 딱 생기는 거죠.  

남편과 싸우고 온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저 사람과 나는 상종하면 안 돼!'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 생긴 막힌 담은, 누구도 허물 수가 없어요. 

어제 자녀들이 학교에서 시험 철이 됐는데, 
우리 애들은 공부도 안 하고, TV 스포츠 중계만 보고 말이죠. 또 게임만 하고... 
그래서 애들과 집에서 대판 싸우고 교회에 왔는데, 

또  성령 충만한 아줌마가 은근한 목소리로 또 이야기하는 거죠. 
'저에게 고민이 있습니다. 우리 자식들은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항상 더 잘 합니다.
더 나를 만족시켜주고... 저는 이 은혜를 감당을 못해서 힘들어 죽겠습니다...' 

만약에 이 따위 나눔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사람들 사이에 막힌 담이 딱 생기게 되는 거죠. 자랑 때문인 거죠.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야, 저 인간은 상종 못할 사람이다'
여러분, 교회 속에 막힌담은 다 이래서 생긴 겁니다. 자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고, 
그것을 가지고 상대방을 더 잘 섬기는 데 사용하지 않고, 자랑하는 데 사용하다가, 
교회가 갈갈이 찢어져 있어요.  

저는 제가 말씀드렸죠. 제가 대학 다닐 때, 신영원의 노래 중에 '유리벽'을 정말 좋아했어요. 
'유리벽, 유리벽, 아무도 깨트리지 않네 
모두가 모른 척 하네' 

정말 바로 옆에서 손을 잡을 래야, 손을 잡을 수가 없어요. 안 잡혀요. 
왜?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어요. 

▲저는 교회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압니다. 
주일날 다 깔깔깔 웃으면서 뭐 마치 천국처럼 서로 대화하며 교제하는데,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오늘 교회 갔다가 기분 잡쳤다...' 다 그렇게 하고 돌아가요. 누가 자랑하기 때문인 거죠.

▲제가 청년들을 섬겼기 때문에 아는데, 가슴 아팠던 이야기가 뭐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먼저 취직했던 자매들이, 제법 좋은 회사에 취직했던 애들이 있었어요. 

경리나 사무원으로 취직하는 거죠.

그런데 걔들이 갑자기 저를  찾아오더니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목사님, 제가 대학 가야 되겠어요!' 
'야, 너 대학 가면, 졸업하고 나중에 이런 직장에 못 들어가!' 

그럼 뭐라고 말하느냐? 
'목사님,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 가면 괜히 돈 내버리고, 
졸업하고 나와서도 이런 좋은 직장에 못 들어간다는 거 알지만,
 
목사님, 나는 사회에서도 내가 고등학교 밖에 졸업 안 했다는 것 때문에 
내가 설움 당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데, 교회에 와서 설움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에 갈래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억장이 무너졌어요. (과거에는 학벌 차별이 정말 심했지요)

어르신들도 있잖아요. 남자분들이 저한테 찾아와서 
'목사님, 제가 당분간 교회를 방학 하겠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그러면 이렇게 이야기해요. 
'목사님, 교회에서도 사람 대접 받으려면, 돈이 있어야 됩디다.
목사님, 제가 돈 벌어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못 둘아오셨어요. 
언제부터 교회가 이런 공동체가 되어버렸죠?  

한국 사회는 배고픈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배 아픈 것이 문제라는,
그런 지적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배가 아파서 못 살아요. 배가 아파서... 

여기 지금 교회에 있으면서도, '배가 아파서 못 사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아요. 
왜 사람들을 배 아프게 만들었습니까? 

그 좋은 것을 나만 가졌다고 자랑하니까... 사람들이 배 아파서 못 사는 거죠.  
이게 무엇이냐? 바로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겁니다. 

저는 정말 제가 많은 사람들 섬기면서, 우리들의 사소한 부주의한 자랑이, 
주위 사람에게 얼마나 비수같이 그들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많이 목격했습니다.

제 기도 제목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나님, 저의 성공이 남에게 고통이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성도들의 성공이 남에게 도전이 되어야 되지, 
다른 교우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이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지금  바울이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낮고 비천한 사람들을 택하시는 이유 두 번째는, 자랑하시면 안 돼요!   ②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것은 '자랑하려는 자는, 주를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③   ↙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가지,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라는 말은 :30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입니다. 
앞에서 주님께서 세 번이나 하나님은 택하셨습니다.  :27~28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 되셨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습니다. 
이거는 제가 지난주 설교 때, 제가 주님을 만났을 때, 
정말 하나님께서 모순덩어리인 저한테 
'내가 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단 하루이지만 천국을 맛봤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겉잡을 수 없는 질문이 생겼어요. 
'야,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불꽃 같은 눈동자를 가지고 너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데,
그런데 너는 모순덩어리인데,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너를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너를 의로운 자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나? 이거는 말이 안 돼! 
너의 어제의 경험은 거짓이야!' 라고 사탄이 저를 시험했습니다. 

이런 회의적인 생각들이 막 나를 엄습할 때 
그때 하나님께서 저한테 말씀하셨어요. 제게 답을 주셨어요.

'야, 나는 너를 볼 때 그리스도를 통해서 너를 보고 있어!'
'너는 누구냐? 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야!' 

저는 성령의 감화로 깨달았어요. 
주님이 저한테 주셨던 '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야!' 

바로 오늘 30절 말씀이 이거죠. 
'저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를 보실 때마다, 
저는 예수님 속에 들어가 있으니까, 누구만 보이느냐? 
하나님 눈에는, 저를 둘러싸고 계시는 예수님만 보이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저에게 무엇이 되셨는가요?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습니다. 
그분이 갖고 계시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저의 것이 되었죠. 
30절 말씀은 이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분적인 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들 속에 누가 계십니까? 성령님이 계셔서 
마침내 우리를 예수님처럼 지혜롭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누가 만들어 가십니다.
성령님이 반드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자랑하는 자는 누구를 자랑해야 되느냐? 
바로 나를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나를 정말 의롭게 만들어 가시는 그 주님을 
우리는 찬양하고, 자랑해야 된다는 거죠.             ③

저는 제 인생에 어느 순간에 깨달았어요.
제 삶이 너무 모순덩어리 같고, 제게는 지혜도 부족하고, 거룩함도 없는 것 같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셨던 가장 놀라운 약속이었어요. 

'너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바로 너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  :30
 
'예수님의 것이 바로 내 것이 되었구나.  
성령님께서 나를 이런 존재로 바꿔주셨구나. 앞으로도 계속 바꾸어 주시겠구나!'

그때부터 저는 제 인생에 대해서 미래의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항상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어요. 

'지금 나는 바둥바둥 살면서 괜찮은 것 같지만, 겨우 꾸려나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주저앉는 거 아니야?'
이렇게 항상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제가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30절 말씀을 통해, 
'나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나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구나. 
이 예수님 안에 있으니까, 주님이 내 인생의 끝을 정말 좋게 만드시겠구나!' 

그때부터 저는 제 인생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게 되었어요.  
'저는 앞으로 달라질 겁니다' 그런 믿음이 생긴 거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달라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달라질 겁니다. 
제가 원해서가 아니라, 바로 성령님께서 저를 계속해서 바가지 긁으셔서, 
또 저를 바꾸시고 해서, 성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요16:8 참조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언제 내 모습이 제일 아름다울까?'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그때 내가 제일 아름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죠. 

그런데 이 말씀은, 제 인생에도 빛이 되었지만, 
제가  청년들, 또 성도님들을 섬기면서, 가끔 이럴 때가 있습니다. 

'야, 내가 저 사람은 내가 감당이 안된다' 
특별히 어떤 청년들은 '야, 쟤는 도대체 내가 감당을 못 해'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기도할 때 '하나님 쟤는 안됩니다. 쟤는 아무리 봐도 
쟤는 제가 감당을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던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때 하나님께서 저한테 질문을 세 가지를 하셨어요. 

1) '야, 관형아 너는 뭐가 그렇게 잘 났냐?'  물으셨어요. 
그때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주님, 저는 모순덩어리인데, 주님이 저를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셔서 
주님이 저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까, 
제가 예수님 안에 있으니까, 저는 예수님 때문에 잘난 사람이 됐습니다.'   

2) 그러니까 주님께서 두 번째도 질문을 하셨어요. 
'야, 저 사람 속에, 바로 저 청년 속에 내가 있냐/ 없냐?' 하고 질문을 하셨어요. 

'네가 지금 포기하고 싶은 사람... 다시는 얼굴도 안 보고 싶은 저 사람 속에 
예수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 하고 질문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떡합니까? 
지금 저 분도 역시 기도하고,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하니까, 
'주님, 저 분 속에도, 저 청년 속에도 예수님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하고 제가 말씀드렸어요. 

 

3) 그때 세 번째 말씀은 '야, 찍소리하지 마!' 이게 세 번째 주님이 저한테 주신 답이었어요. 
'야, 저 사람 속에 내가 있어. 그러면 뭐 감당이 안 된다니 하는... 그런 찍소리 하지마!' 

제가 이 말씀을 듣고 순하게 반응을 했죠. 
'주님, 제가 앞으로 찍소리 안 하겠습니다.' 

근데 그때 하나님이 저한테 말씀을 주셨어요. 
'야, 내가 바로 저 사람을 귀하게 만들 거야. 
내가 저 사람을 귀하게 만들 거니까, 야 너는 찍소리 하지마!'  
이렇게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부터 취미가 하나 생겼습니다.  
제가 여러분 주위를 혹시 한 번씩 거닐면, 
착해서가 아니고, 감당이 안 돼가지고 제가 그 사람 주위를 거닙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얼굴을 쳐다봐요. 
제가 속으로 하나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죠. 
'하나님, 아무리 봐도 쟤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안 될 것 같은데, 근데 주님은 뭘 믿고 저한테 
내가 그를 존귀하게 만들어 주겠다... 하고 약속을 하십니까?'  

그러면서 제가 꼭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드리죠. 
'하나님, 제가 두고 보겠습니다. 그게 되나, 안 되나... 
주님께서 정말 바꾸시는지... 그게 되나, 안 되나... 제가 반드시 두고 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나 여러분들이 다 똑같지만 
교회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러면 저는 지금도 이빨 깨물고 하는 말이 뭔가 하면 
'하나님, 제가 두고 보겠습니다. 되나, 안 되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내가 되나, 안 되나... 반드시 두고 보겠습니다.' 

저는 이 각오가, 결국은 또 벅찬 삶을 새로 시작해야 되는데, 
어떻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는가? 

다시금 믿음 때문에 소망이 생기고, 
이 소망 때문에 이제는 미움과 포기, 원망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하는 삶을 다시금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저는 내일교회가 이런 교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는, 바울이 도전한 것처럼, 어떤 상황 속에 놓여져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지혜와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상황이 있든지 간에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다시금 아름다운 삶을 계획하고, 도전하고, 실천하는 거죠.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우리가 세상 자랑을 내려놓고  
자랑 대신에 우리가 감사를 드리고, 주안에서 자랑하며,
주님이 주신 것 가지고 바로 사람들을 잘 섬기면서 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고 

세 번째, 나 자신을 향해서도 꿈을 꾸셔야 돼요.  
저는 우리 교회 이름 그대로, 제 인생에 '내일'이 있습니다. 

왜요? 예수님 때문에 제 인생에 내일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인생에도, 여러분 속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의 인생에는 내일이 있습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사랑하고 섬기는 가족들이 있고, 교회 식구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하더라도, 그들 속에 계시는 예수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 속에 계시는 예수님이, 반드시 그들을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만드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힘들게 해도 다시 한번 믿음으로 '제가 두고 보겠습니다' 라고 다짐하고, 
이 한 주간도 사랑하며 섬기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80장 다같이 부릅니다.

1 나의 생명 되신 주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의 흘린 보혈로 정케 하사 받아 주소서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 줄로서 나를 굳게 잡아 매소서

2 괴론 세상 지낼 때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
주를 믿고 나가면 나의 길을 잃지 않겠네

3 세상 살아갈 때에 주를 더욱 사랑합니다
밝고 빛난 천국에 나의 영혼 들어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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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예수님의 12제자들은, 가룟 유다만 빼고, 갈릴리 출신들입니다.
가룟 유다는, 가룟 출신인데,
가룟이 어디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구약의 그리욧, 또는 그릿 일 것이다... 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