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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4장 내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LNCK 2025. 4. 9. 10:03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내적 치유

https://www.youtube.com/watch?v=-2I5ifz8SGg

내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삼상14:24-35       2025.04.06. 

오늘 본문은, 사울왕이 내린 저주의 맹세 때문에, 백성들이 곤란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맹세인가 하면, '오늘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24

오늘 사울의 심리, 또 요나단의 심리, 이 두 가지를 보면서 
우리의 내면 세계를 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삼상14:24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이 날에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 날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놀라운 반전의 승리를 체험한 날입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왜 피곤했을까요? 

전쟁에서 승리는, 쌓였던 필요도 한 번에 날려주는 효과가 있잖아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그날 거둔 승리는 
추수 날에 이삭을 줍듯이, 그렇게 원수를 치는 승리였어요. 
그러면 승리의 기쁨으로 충만해야 정상이 아닌가요? 

제가 두 가지 얘기를 해 드리겠는데요. 제가 예전에 제가 이제 전도사를 할 때였습니다. 
한 기업의 대표를 하고 계시는 집사님이, 항상 가을이 되면 직원들을 데리고 지방에 가서 
밤을 새면서 워크숍을 하신대요.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면서. 

근데 이분이 이제 한밤 중이 되면, 직원들이 더 이상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뭐 피곤해 하잖아요. 졸고 그러니까... 전부 차에 태워 갖고 가까운 과수원에 데리고 와서 
담을 넘게 해서 과일 서리를 시킨다는 거예요. 

그러면 직원들이 '도대체 우리 대표님이 왜 그러시냐?' 
그러고서는 처음에는 주저주저 하다가, 그 과일 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피곤한 줄 모르고 밤을 샌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전도사로서, 이 집사님을 그냥 두면 안 될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아니, 집사님, 그런 거를 직원들에게 시키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아 그게 사실은 저희 부모님 과수원입니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여러분, 사람이 뭔가를 그냥 이렇게 쉽게 거둔다... 
이것은 재미가 없습니다. 피로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축구, 농구 같은 운동경기를 할 때, 지는 팀은 피로감이 엄청나게 누적됩니다. 
운동선수들은, 특히 프로 선수들은, 육체적인 단련을 맥시멈으로 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가 신체를 지배한다는 거예요. 엄청난 영향을 받죠.
정반대로 이기고 있는 팀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막판이 돼도 이기고 있는 경기는,
경기력이 훨씬 더 향상이 됩니다. 

그 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두었던 승리는, 놀라운 하나님이 주신 승리였고, 
죽다가 살아난 것일뿐만 아니라, 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을 
완전히 반전시켜 주신 감격적인 승리였어요. 

자 그렇다면, 피곤할 일이 없어야 정상인데, 문제는 우리가 본 것처럼, 
사울 왕이 백성들에게 맹세를 자원하게 한게 아니라 강요했다 라는 거예요.

무슨 맹세였는가요? '저녁이 될 때까지 원수 블레셋에게 보복을 할 것인데, 
그 보복이 완료될 때까지, 누구도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사울왕은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기 군사들에게 핸디캡을 부과한 거예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했을까요?' 

여러분, 직장에서도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좋은 거잖아요. 
네,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죠.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매우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저의 동기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죠. 

정말 내가 좋아서, 내가 기뻐서, 내가 행복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수치심과 복수심으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똑같이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지만, 
내면의 동기에 따라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거예요.

사울왕은 이 전쟁에서 간절히, 승리를 거두고 최선을 다해서 원수를 직면하기를 원했어요. 
여기까지는 좋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 기저의 동기가 뭐라고요? 
수치심과 복수심이에요. 
'나를 이렇게 수치스럽게 만든 저 블레셋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 이런 거였죠. 

(사울이 수치를 느꼈던 이유는, 블레셋의 군대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고, 13:5
무엇보다 아직 전쟁이 결판이 나기도 전에 '노략꾼(약탈자)'들을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13:17
'이건 이긴 전쟁이나 다름 없다' 하면서, 노략꾼을 보내서 사울과 이스라엘을 모욕한 것이죠.)

▲여러분, 드라마를 보면서,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대리만족으로 
가장 통과 통쾌하게 보는 종류가, 복수극이 아닌가 싶어요. 
한국 사람도 복수국 좋아하지 않나요? 얼마 전에 굉장히 유행했던 그런 드라마도 있었죠. 
이런 겁니다. '나를 조롱하고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속으로 너희들 두고 봐라 내가 성공해서 다 복수를 해 줄 테다' 

여러분 복수심처럼, 일정 기간 사람의 마음에 동기부여를 강력하게 해줄 만한게 없어요. 
그러면서 이 복수심이라는 것은, 
'어쩌면 인생에 굉장히 효과적인게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수심은, 그렇게 속 시원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복수심은, 자기 영혼을 연료로 불태워서 바치는 일이에요. 결국 자기가 죽게 돼 있어요. 
자기가 망할뿐만 아니라, 복수의 대상인 그 사람도 망가뜨리게 돼 있어요. 

성경에서 복수에 대한 고전적인 이야기가 창세기에 나오는데,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요셉을 무척 싫어했어요. 
당연히 싫어했겠죠. 왜냐하면 그 동생을 보면서 
'그래? 네 인생 얼마나 잘 되나 한번 두고 보자' 이런 마음이 들었던 거죠,

시기심, 우리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는 수치심, 그래서 생긴 복수심, 
이런게 그들 안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그들은 불행해지고, 
결국에는 자신의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아서 그 동생도 불행하게 만들었어요. 

자 그러면 애굽에서 끌려간 요셉은, 종살이 옥살이를 13년 동안 하면서 
'두고보자, 내가 성공해서 복수해 줄테다' 이런 생각을 했나요?

아니었어요. 여러분, 그 동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회복시켜 주시니까, 형들을 용서하고 가정에 치유자가 됩니다. 

▲여러분이 일터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계신가요? 대부분 열심히들 일하고 계실 거예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면,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어머, 정말 성실하시네요. 너무나 귀하시네요' 이렇게 칭찬을 하겠죠? 

그러나 여러분의 내면에, 비교의식과 경쟁심, 복수심과 자기증명 욕구가 강하게 깔려 있다면,
사실은 이건 다른 문제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칭찬받을 만한 인생을 살고 있는게 아닐 수도 있어요. 
복수를 위해서, 자기 영혼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는 사람은 
일종의 '내적인 분신자살'을 시도하는거나 마찬가지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세상이 가는 길, 사울이 가는 길을 가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왜 열심히 사는가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줄로 믿습니다. 
(복수심에 불타서, 그게 에너지가 되어서, 열심히 살면 안 됩니다. 그건 내적인 자살입니다.)
감사와 찬양과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지금 복수에 대한 얘기를 하는 중입니다. 
두 번째, 불타는 복수심이 갖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는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없게 만듭니다. 흥분된 감정이 눈을 가리기 때문이에요. 

사울은 '나를 이렇게 수치스럽게 만들다니...' 
그러면서 이제 '블레셋 군대에 대해서 내가 복수를 하고 말 테다' 이런 생각을 했잖아요. 

여러분, 사울을 수치스럽게 만든게 블레셋 군대인가요, 아니면 사울 자신인가요? 
그리고 이 전쟁은 사울이 먼저 촉발한 것이기 때문에,   13:3
블레셋 군대는 자극을 받고 올라온 거예요. 

그러니까 '블레셋이 이렇게 많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다니...' 
그런데 사실 이건 블레셋이 잘못한게 아니라, 

사울 자신이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고,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자기 손으로 드린 것, 
그렇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한 사울 자신이 
스스로 어려움을 만든 것이었어요. 

자 그러나 자기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셀프 러브죠. 
자기애가 너무나 강한 사울은, 자기 잘못을 인정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자기가 그걸 인정하는 순간, 자기는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유형이에요. 
그러니까 그 원인을 타자에게 전가시키고, 
그리고는 그 타자가 잘못했다고 몰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적군만 쫓아가서 몰아가는게 아니라 
끝까지 자기 곁에 남았던 충직스러웠던 그 600명의 사람들을, 등에 칼을 들이밀면서까지 
'오늘 해질 때까지 음식을 먹으면 죽여 버린다'는 거예요. 
이렇게 자기 사람들까지 몰아붙이잖아요.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그래서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자기 영혼만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도 불타게 만듭니다. 

결국에는 거룩한 성전을, 복수전으로 전락시키면서, 
공동체 전체를 경색시킴으로써, 

요즘 젊은이들 많이 쓰는 표현인데 '팀플레이, 팀워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군에게 사격을 가하는 '팀 킬'을 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회사에서 팀이 있는데, 팀장이 팀원들에게 
'너희 팀원들은 팀장인 나를 배신하면 안 돼!'
그래놓고서는 팀장이 팀원들을 배신하는... 그런 행동을 지금 사울이 한 것입니다. 

사울이 '저녁까지 음식 먹으면 배신이다' :14 
여러분 '그래서 블레셋과의 복수전을 저녁 되기 전에 완성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복수전을 완성하기는 커녕, 군인들이 너무 배가 고파서 지치니까 
결국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마지막 결론이 난 거예요. 

결국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밀어붙였지만, 
그 사람들이 하지 못하도록 만든 주 원인이, 사울 자신이었습니다. 

▲미국 농구 NBA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라는 팀에 지미 버틀러 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지미 버틀러가 역행적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버림을 받았는데 
어느 백인 아주머니가 이 아이를 거두어서, 
이 아이가 선수로 성장할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키워줬죠. 

같은 팀 안에 있는 스테픈 커리 라는 선수는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미국 농구, 전 세계 농구의 패러다임 체인저입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농구는, 물론 골 밑에서 포스트 플레이로 경기를 주도하기도 했지만, 
3점 슛은 보조적이고, 
대부분은 골 밑과, 3점슛 던지는 자리의 중간 지역,
여기를 '미들 레인지'라고 하는데, 이 미들 레인지에서 던지는 2점슛이 
승리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거든요. 

그런데 스테픈 커리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돌파도 많이 하지만, 
3점슛으로 경기를 완전히 판도를 바꿔 놓거든요. 

그래서 NBA 역사상 최초로 3점슛을 4000개를 돌파했습니다.
근데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입니다. 

자 그러면 지미 버틀러는, 그에 반해서, 
스테픈 커리는 한 경기에 뭐 30. 40. 50점 이렇게 넣거든요. 

근데 짐 버틀러는, 시즌 평균 득점 수가, 한 경기당 평균 17점 정도예요. 
그러면 그다지 주목할 만한 선수가 아니잖아요. 

근데 이 선수의 놀라운 점은, 이 선수가 코트에 들어가는 순간, 
팀의 조직력 전체가 상승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선수가 들어가면, 다른 네 명의 같이 뛰는 선수들이, 다 기록이 향상되는 거예요. 
반대로 스타 플레이어 한 사람이, 팀 플레이를 하지 않고 팀킬을 하는 경우, 
오히려 이것이 마이너스가 되어서 경기를 지는 경우가 많아요. 

자신이 독주하기 위해서 슛을 난사하고, 
어시스트를 하는게 훨씬 더 좋은 상황에서, 자기가 드리블 하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피고, 
그러면 개인의 성적이 중요하지, 팀의 승리를 하는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 거예요. 

이런 선수가 있으면 팀워크는 망가지고, 팀 플레이는 늪에 빠지고 맙니다. 
물론 세상에 살아가면서, 이기적인 동기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그러나 지미 버틀러 처럼, 팀 플레이를 하고, 다른 선수들이 잘 뛰도록 도와주는 선수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잖아요. 무엇이 좋은 길인지를 알잖아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모두를 살리셨어요. 그리고 그분도 다시 살아나셨어요. 
이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본다면, 
내가 헌신을 해서 팀을 살리는 길이, 손해보는 길이 아니라,
결국에는 나도 사는 길이 될 줄로 믿습니다. 

어제 와 그제 '카이로스 일터 예배 컨퍼런스'를 했는데 
작년에 이어서 올해 2회였잖아요. 못 오신 분들은 너무나 애석합니다. 
진짜 작년보다 훨씬 더 좋았고, 
저희가 일주일 안에 영상을 올릴 텐데, 확인해서 보시면 좋겠고, 내년에는 꼭 오십시오.

특별히 올해는 더 집중력 있게 일터에서의 아주 실제적인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배우는 시간이어서, 제게도 상당히 유익했어요. 

여러분, 일터에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일터에서 회사에서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고, 이 조직에 충성을 다 했는데 
난 잘 인정을 못 받고 있다. 나를 승진을 잘 시켜 주려고 하지 않고, 
적절한 사례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보니까, 관찰을 해보니까, 

열심히 일을 하기는 커녕, 늘 사람들하고 잡담이나 하고 있고, 회식을 더 선호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승진을 하고, 인정을 받더라.. 야 이거는 억울하지 않나?'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저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에요. 
왜냐면 제가 어디 가서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해요' 이렇게 어필하는 유형이 아니거든요. 
그냥 나를 세워 놓은 곳에서, 충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유형이니까요. 

자기 일에 성실하기보다는 줄서기에 급급해 보이는...
맨날 사람들하고 만나고 다니고, 이야기나 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사람들이 리더로 발탁이 되는 조직, 

'야, 이 조직은 정의롭지 못한 조직이야, 
정말 충성을 다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모르는 조직이야' 이런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어요. 

근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게 얼마나 단편적인 생각인지를 알게 됐어요. 

제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면 
일터에서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좋은 선수가 되는 건... 중요합니다. 

그러나 경기가 계속되면 계속 될수록, 그 좋은 선수들을 한 팀으로 묶어낼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하고, 연결자들이 필요한 거예요. 

다시 말해서 이것을,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의 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성도 매우 중요한 거예요. 
그러나 팀원들과 팀원을 연결하고, 팀과 팀을 연결하고,
이 기업과 파트너 기업을 연결하는... 제너럴리스트들이 필요한 법이에요. 

그러니까 일을 하는데 있어서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관계성이 그 못지 않게 중요할뿐만 아니라, 때로는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묵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조직, 이 조직은 잘못됐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단편적인 생각이에요. 

▲여러분 사울왕을 보십시오 사울왕이 늘 칼만 휘두르고, 싸움만 잘하면 되나요? 
그는 왕이지, 일개 싸움꾼이 아닙니다. 
그런 전체를 살리고, 조직을 살려야 되는 역할을 해야 되는 사람인 거잖아요. 
그런데 싸움, 전투에만 너무 내적 동기가 부여돼 있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요나단도, 사울왕도 탁월한 장수들인 것은 맞았습니다. 
근데 안타까운 것은, 사울은 팀킬을 하는 사람이었고, 
요나단은 팀플(팀플레이)을 하는 사람이었죠. 

자기가 헌신함으로 팀을 살려내는 사람! 
저와 여러분이 요나단 같은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근데 사울은, 팀이이기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자기의 부끄러움, 자기에게 수치를 준 대상을 찍어 누르는게 중요한 사람이었던 거죠.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자기 주위 사람들을 압박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어요. 

▲여러분, 우리 삶 가운데, 나의 과도한 열정 때문에 아이들이 위축되는... 그런 일은 없나요? 
오히려 자기는 '아니, 자녀의 공부 환경을 조성해줬는데, 왜 애가 공부를 안 하지?' 

근데 자녀의 학업 욕구가 점점 저하돼 간다면, 
사실은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지라도, 
엄마 아빠가 사울 역할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라는 거예요.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등 뒤에서는 칼을 대고 있는 거죠. 
나의 편향된 열정 때문에... 내 체면 때문에...

일터에서 직원들이 자신의 능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고 
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고자 하는 욕구가, 만약 저하된다 그러면, 
'내가 사울과 같은 리더가 아닌가?'를 정직하게 돌이켜 보셔야 되는 거예요. 

물론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직원들을 교육하는 것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베이스라인까지는 끌어올릴 필요가 있어요. 

그렇지만 결국에 그 팀이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요? 자발성이 있어야 돼요. 
시켜서 완성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정말 잘 되려면, 자기가 공부를 좋아해서, 공부를 해야 돼요. 
'그런 애가 어디 있냐? 그래서 나는 애를 다그친다'고 하는데, 

근데 어느 포인트를 넘어서면, 여러분이 손을 놓으셔야 돼요.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 되고, 내적 동기부여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일도 마찬가지죠. 내가 열심히 하고 싶어서 일해야지, 
눈치 보면서 일하는 조직은 잘 될 수가 없어요. 

◑14:29~30 '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제가 <사무엘상>을 좋아해서, 많이 읽었고 많이 묵상했는데 
이번에 요나단을 좀 새로운 각도로 봤어요. 

요나단은 아버지의 맹세를 몰랐죠. 
그래서 꿀을 발견하고 지팡이로 찍어서 먹고서는 눈이 밝아졌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로 옆에 있던 백성 중에서 한 사람이 
'사실은 당신의 아버지가 이런 저주의 명령을 했고 맹세를 시켰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대번에 요나단이 뭐라고 반응을 했는가요?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한글 성경에 굉장히 우아하게 표현했지만 :29
영어 버전에 보면 '내 아버지가 트러블메이커다. My father has troubled the land'

 

그러니까 '아버지가 사고를 치셨네!' 이렇게 얘기했어요. 
'백성이 자유롭게 음식을 먹었다면 더 큰 승리를 거두었을 텐데...'

여러분 요나단의 심리를 한번 볼게요. 
요나단이 아버지가 허락을 안 해줄 것을 예상하고, 
그냥 자기 목숨을 걸고 적진에 뛰어들어서, 승리의 기점을 만들어 내잖아요.  14:1
그것도 굉장히 자율적인 결정이었다는 거예요. 

사실 왕의 명령과 허락을 받지도 않고, 그리고는 단독 행동을 한 거였잖아요. 
굉장히 자율성이 강한 남자죠. 

그게 또 한편 '백성들에게 탈취물을 먹고 싸우게 했다면, 훨씬 더 잘 싸웠을 텐데...' :30 
근데 이 말을, 요나단은 누구에게 했는가요? 
자기 혼잣말로 한게 아니라, 사울 왕의 군사들 앞에서 한 거예요. 

여러분 '왕이 잘못했다. 탑 리더가 잘못했다'는 얘기를 
그 사람들 앞에서, 전체 조직 앞에서 하기가 쉬워요, 어려워요? 어려운 겁니다. 

게다가 왕이 자기 아버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요나단을 보면서 
'야, 이 사람은 마음이 상당히 자유롭고 건강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여러분, 요나단을 이렇게 좀 표현을 해 볼게요. 
'현실과 이상 양쪽에 대한 감각을 고루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좋은 리더가 되는 모든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죠. 

첫 번째 케이스를 놓고 보면, 블레셋 군대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밀고 들어옵니다.
이 적대적인 상황과 현실이... 그러나 하나님의 승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상이 있는 거예요.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이렇게 큰데, 요나단은 믿음으로 돌파해 내잖아요. 
그러면 똑같은 상황에서 사울은 돌파를 했나요, 못했나요? 못 했어요. 

자 두 번째 케이스는 오늘 상황입니다. 
부친의 권위를 지켜줘야 된다는 것, 게다가 왕의 권위이기 때문에 
제가 그것을 이제 '당위성'이라고 표현해 볼게요. 

그래서 당위성은 이상과 같은 개념이에요. 
이상주의자들은 항상 현실성보다 당위성이 강하게 돼 있어요. 

즉 '교회는 이래야 돼, 가정은 이래야 돼, 남편은 이래야 돼, 아내는 이래야 돼, 
엄마는 이래야 돼...' 이렇게 이상주의자들은 항상 당위성으로 이야기합니다. 
근데 당위성으로 이야기하면 현실성이 약해지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왕의 권위를 지켜야 되는 이상은 있지만, 즉 당위성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사울 왕이 잘못 판단을 했잖아요. 그게 사실이잖아요. 
그러니까 요나단이 이걸 솔직하게 인정을 했다는 측면도, 제게 매우 훌륭해 보이는 거예요. 

우리 모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 점에서는 사울이나, 요나단이나, 우리나 똑같은 상황이에요. 

하지만 요나단은 하나님의 승리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믿음의 결단, 
믿음의 헌신을 한 사람이에요. 할렐루야!

그런데 사울왕은, 그 현실을 돌파도 해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하나님의 승리의 이상을 포기도 못하고... 중간에 애매하게 서 있는 거예요. 

여러분, 현실과 이상의 그 중간에서 자리를 못 잡고 가만히 있잖아요. 
그러면 LP판을 돌리다가 이렇게 판이 튀는 거하고 똑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러면 사람의 내면과 정서가 디스오더, 장애가 일어나요. 

그래서 내가 현실이든 이상이든, 어느 한쪽에 명확하게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할 줄 아는 
힘을 갖는게 중요합니다. 건강한 내면을 위해서.

여러분 헌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대단한 헌신을 결단하는 거 같지만, 제가 인생을 이렇게 50여년을 살아보니까 
일단 '하나님, 제가 저를 세워 주신이 자리에서 제가 헌신하겠습니다' 딱 결단하면, 
그 헌신의 결단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더라고요. 할렐루야! 

'그래, 너 기특한 생각을 했다. 너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기로 했구나. 
너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기로 했구나. 내가 사람을 보내줄게! 
내가 모든 가능한 길을 열어줄게, 내가 너에게 힘과 지혜를 주겠노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자 그렇게 첫 번째 승기를 잡는 사건이, 요나단에게 일어납니다. 
근데 두 번째, 상황을 보면, 여러분 이상을 포기할 수 없는 강력한 믿음의 사람들이 
때로는 현실감각이 매우 빈약하게 돼 있어요. 

왜냐하면 나는 이상과 당위성만 생각하기 때문에, 뜬구름 위에 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요셉이 꿈만 꾸고 있으니까, 
현실의 밑바닥에서 훈련을 13년을 받도록 하신 거예요.
현실 감각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부친의 권위, 왕의 권위를 지켜내야 되는 왕정 시대 사회입니다. 
3000년 전에 그런 시대에, 여러분, 그 당위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인 사울 자신조차도 인정하지 못하는 잘못을, 
그 아들이 너무나 편안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우리 아버지가 트러블을 일으켰네' 딱 이렇게 얘기를 해버리잖아요. :29

그러면 여러분, 사울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는가요? 
가장 중요한 충신이었던 다윗을, 나중에 죽이려고 하잖아요.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도, 요나단이 똑같이 반응해요. 
'아버지, 그것은 잘못하시는 겁니다' 

근데 사울은 끊임없이 합리화시킵니다. 
'야, 이거는 다 이 나라를 너에게 물려주고 싶어서 하는 얘기야,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정신을 차려!' 그러면서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계속 합리화시키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아니요. 아버지, 잘못하시는 겁니다'
이 얘기를 계속해요. 

그러면 아버지가 잘못한다고 지적을 하니까, 그러면 왕의 권위(아버지 존경)도 포기하고,
자신의 왕자로서의 권위도 포기하고, '나는 그냥 내 갈 길을 가겠다' 
(사실 이렇게 다 때려치우고 가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근데 아니요, 요나단은 평생의 아버지 곁을 지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이상도, 현실도 둘 다 포기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에요.

성경을 보면서 가장 아까운 인물 중에 하나가 요나단입니다. 
리더가 갖춰야 될 요소를 정확하게 다 갖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어제 카이로스 집회 때도 제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여러분, 우리가 일터에서나 세상에서, 이상과 현실 양쪽 진영을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이걸 다 붙잡고 있잖아요. 

그러면 20여년을 그렇게 지내오면서 제가 뭘 느꼈냐면 
'영혼의 날개 쭉지가 찢어질 것처럼 힘들더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을 놔야 편안해지는 거예요.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에 그냥 안주하고 타협하든지... 
아니면 현실감각을 포기하고, 그냥 나는 꿈만 꾸면서 몽상가로 지내던지... 
많은 사람들이 한쪽을 내려놓습니다. 그래야만 부담스럽지 않거든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두 가지를 포기하지 않기를 원하세요. 
왜냐하면 이 두 가지를 붙잡고, 내 날개 쭉지가 찢어지는게 아니라,
믿음의 어깨가 넓어지는 거예요. 믿음의 배포, 믿음의 가슴이 넓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울처럼 현실에도 돌파하지 못하고, 이상도 이루지 못하고... 
애매한 중간지대에서 주변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요나단처럼 현실과 이상의 다리를 놓는 인생이 될 것인가? 

여러분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이 아무리 척박해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꿈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꿈을 꾼다 할지라도 
차가운 밑바닥의 현실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는... 명확한 현실감각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이 요나단과 같은 인생이 되고, 
그 사람이 다윗과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이에요. 

◑14:31~34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

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31절에 '믹마스에서 아얄론까지 블레셋 군대를 따라가면서 쳤다' 이렇게 돼 있죠. 
중부 믹마스에서, 블레셋의 본진이 있는 해안 지역까지 가려면,
그 중간에 쉐펠라 (구릉지역, 중산간)을 지나가게 되는데, 아얄론 골짜기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완전히 패배감에 사로잡혀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도주하는 그 도주로를 좇아갔던 거예요. 
그러니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을 한 거죠.

하지만 사울왕의 맹세를 들었던 사람들은 배가 고픈데도 음식을 못 먹었어요. 
그러니까 저녁이 되자, 적들을 좇는 것도 멈춘 채, 그냥 전리품들 중에서 가축들을 끌어다가 
마구잡이로 잡아먹은 거예요. 해가 져서, 이제 사울의 맹세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게 '피채 먹었다' ... 모세오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피를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생명 존중 사상을 말씀하시잖아요. 

사울이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라고 말했어요. :33 
'믿음 없이 행하다' 라는 표현이 히브리 문장에서 원래 한 단어 이더라고요. 
'배신 행위를 한다' 이런 뜻이에요. 

여러분, 지금 사울왕이 백성들한테 잘못했다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이런 결과가 생긴게 사실 누구의 잘못이에요? 사울의 잘못이죠. 

이 정도 상황이 되면 '내가 잘못 생각했네.. 내가 잘못 마음을 가졌네.. 제 잘못이었습니다'
이 얘기를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 와도 '내 탓이요!' 를 말하지 못하는 사울과 같은 심리를 가진 사람들은 
자존심을 내세우는 정도가 아니라, 병든 영혼이라는 걸 아셔야 돼요. 

여러분, 가족들에게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아들아 내가 잘못했다. 딸아 내가 잘못했다'
이 얘기를 못 하시는 분들, 
직원들에게 이 얘기를 못 하는 분들은, 내면의 문제가 생긴 거예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사에 남편탓, 아내탓, 부모 탓, 역기능적인 원가정 때문에, 
내 자녀들 때문에, 안 좋은 직장 상사 때문에, 이상한 조직 때문에... 하고 탓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정직하게 인생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대동소이한 상황에서 삽니다. 다 문제가 있어요. 
완벽한 상황에서 일하고, 완벽한 상황에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요나단의 마음을 갖는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사람이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고,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고... 합니다. 

근데 또 어떤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사울의 마음을 갖는 거예요. 
내가 더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고... 
'그들 때문에 이 모든 문제가 생긴 것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제 팀킬을 하게 되는 거죠. 
우리는 과연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요?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면 좋겠는데요. 
아치볼드 하트 의 <참을 수 없는 중독>이란 책이에요. 
제게도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고, 제가 한 3번 정독을 한 책인데 
중독의 증상은 상당히 여러 가지가 있어요. 

우울증이라든지, 분노 중독, 이런 정서적인 중독 패턴이 있고, 
또 쇼핑 중독, 성 중독, 이런 어떤 행위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고, 
또 물질 중독, 머터리얼 중독이라고 하는데, 
알코올 중독이나 니코틴 중독 같은 중독에 빠지는 사람도 있어요. 

또 미국 사람들은 어떤 중독이 많냐면 '독서 중독'이 있어요. 
활자를 읽는 거를 내려놓으면 불안증세가 생기는 거죠.
'우리 아이들이 좀 독서 중독에 빠져야 되는데...' 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여러분 종교도 중독입니다. 종교 중독이 뭐냐면 
신앙생활을 내가 열심히 하는 이유가 
내가 이렇게 기도하고 예배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 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강박적으로 종교 생활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근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중독을 치유하는 제1단계가 뭔지 아세요? 
'내가 중독자다' 라는 걸 인정하는 거예요.  

제가 설교하면서 '저는 좋아하던 영화도 다 내려놨고 커피조차도 안 마신다'
이런 이야기하는 이유는 뭐냐면, 저는 중독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 외에는 내가 다른 것들을 가능한 내려놓고 살아야겠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축구는 못 내려놨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사울처럼 매사에 자기 합리화를 하고 '다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가 잘못한 거야' 
'블레셋이 나에게 수치심을 준 거야, 백성들이 잘못한 거야'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치료의 길이 없어요. 생각을 해 보세요. 

가족들에게 막 성질을 내고, 집안 물건을 다 던지고... 
왜 당신은 그렇게 화를 내나요? 

'너희들이 이상한 짓을 하니까, 내가 화를 낸 거지... 
나는 절대로 분노 중독이 아니야'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희 직원들이 일을 제대로 못하니까...
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망쳐서 내가 술을 많이 마신 거지... 주사를 좀 부렸을 뿐이지... 
나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야' 이렇게 얘기합니다. '다 너희들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은 중독이 맞아요. 분노 중독자예요. 중독은 늪과 같은 것입니다. 
늪에 빠진 사람은 자기를 건져낼 수 없어요. 누군가가 그 사람을 건져내 줘야 돼요. 

우리 인생은 다 죄의 중독, 유혹의 중독, 어둠의 중독, 불안과 우울의 중독에 
많이들 빠져 있어요. 이 늪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가 늘 정직하게 기도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제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은, 사울같은 내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예요. 

앞으로 등장하게 될 다윗은, 여러분, 내 마음의 절반은 다윗이지만, 절반은 사울이에요.
이거를 바르게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으면, 
우리의 내면에 놀라운 치유와 변화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