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티니] 1. 실로암의 소경 (요 9:1-12) - YouTube
◈실로암의 소경의 데스티니 요9:1-12 2021년 데스티니 1강
◑하나님은 나를 향한 데스티니를 가지고, 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렇죠. 우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지으시고 창조하실 때
계획을 가지고 창조하셨지, 그냥 연습으로 만들어 본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각자는 한 사람도, 우리 하나님께서 대충 연습으로 만들어 보시고,
'어, 얘는 실패다' 이렇게 창조하신 분은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완전한 하나님의 플랜, 디자인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플랜을 영어로는 데스티니 destiny 라고 부릅니다.
근데 데스티니에 해당하는 한국말 단어가 적당한 게 없어요.
이게 보통 '운명' 또는 '부르심, 소명' 이렇게 번역을 하는데, 다 정확한 번역이 아니에요.
이 데스티니 라는 영어 단어의 정확한 번역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 destiny 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계획이 사실은 우리 운명인 거죠.
사실 우리 운명이 있긴 한데, '운명'이란 단어을 쓰기에는 좀 너무 네거티브한 면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데스티니'라는 말을 그대로 씁니다.)
'운명이니까 어쩔 수 없어, 그냥 따라 가는 게지' 그런 의미의 '운명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가지고 계신 그 계획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에요.
무슨 '팔자 소관' 이런게 아니라는 거예요.
굉장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중하고, 또 충만하고, 또 우리를 정말로 기쁘고,
의미있게 하는 그런 계획들을 가지고 계셨어요.
그래서 이 '운명 팔자'는 조금 네거티브 한데,
'데스티니'는 그런 부정적 뉘앙스가 아니고, 아주 긍정적인 뉘앙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그냥 대충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그래요.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을 향한 아주 특별한 기대가 있습니다.
그냥 자녀가 대충 살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 각자를 향해서 '얘가 참 의미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얘가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아주 충만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 소원이 있어요.
그리고 자녀들이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면, 막 거기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어요.
왜냐하면 사랑하니까!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근데 여러분, 인간 부모도 이럴진데, 하늘에 계신 가장 완전하신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 각자를 향한 계획이 없으시고, 우리 인생을 향한 소망이 없으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시지요.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향한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충만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또 그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세요.
이것을 우리가 데스티니 destiny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이런 자기 데스티니를 이루어 가는 사람이 생각보다 참 적다는 거예요
그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데스티니를 이루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이 가진 고유한 데스티니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계획이에요.
그래서 창조자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위해 지음 받았고, 어떤 인생을 살아야 되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연구한다고 알 수 있는게 아니에요.
우리 창조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디자인하실 때부터 가지고 계신 계획이기 때문에
우리를 만드신 분을 만나 봐야 돼요.
그분을 만나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고,
'아 이 분이 나를 창조하신 분이시구나, 아 이런 분이 나의 아버지시구나,
아 이분이 나를 향해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구나' 이거를 아는 순간,
우리 안에 내가 무엇을 위해 지음 받았고, 무엇을 왜 살아야 되는지를 알게 되는
그 은혜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결국 내가 무엇을 위해 지음 받았는지를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인생이 결국 낭비되어집니다.
낭비되어지고 마지막에 인생을 다 끝마칠 때쯤 되면, 반드시 남는게 뭐냐면 후회해요.
'아, 이렇게 사는게 아니었는데... 아, 나는 잘못 살았다. 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공수레 공수거, 그냥 허무하게 왔다가, 그냥 이 세상을 허무하게 떠나는구나...'
이런 후회를 남기게 되는 것이, 나를 만드신 분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고, 즉 나를 만드신 분을 만나는 거예요.
창조자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마음을 알게 되고, 나를 향한 계획을 알게 되는 거예요.
이것을 알게 될 때, 자기 삶의 이유와, 목적과, 충만함들이 부어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나에게 가지고 계신 계획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충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 계획을 알게 되면,
그리고 누구라도 이 계획을 믿음으로 취해서 살게 되면, 놀라운 인생을 살게 돼 있어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뭐 모세는 특별하게 만드시고, 다윗은 특별하게 지으시고,
여러분은 대충 만드시고... 이런게 아니라는 거예요.
누구라도 우리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계획을 알게 되고,
그 계획을 이루어 가는 삶의 여정 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는 정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의 축복과 풍성함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것들을 누리게 되기를 너무너무 바랍니다.
'복음' 이라는 것은, 그래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되찾아 주는 거예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회복시켜 주는 거예요.
이것이 회복되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불행하게 삽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런 충만함과 행복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이 데스티니에 대한 설교를 2009년도에 한번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사실 제가 원하는 거를 다 설교하지 못했어요.
제가 한 6개월 정도를 하려고 그랬는데, 두 달 정도 하다가 끝냈는데
이번 기회에 쭉 이어서 나머지 뒷부분을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데스티니 설교 시리즈'를!
그래서 우리의 데스티니는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데스티니를 찾을 수 있고,
이 데스티니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은 도대체 뭔지, 그래서 이것들을 어떻게 넘어가야 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앞으로 몇 주에 걸쳐 좀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데스티니 설교 시리즈' 첫 번째 시간으로 요한복음 9장에 등장하는
소경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저희가 한 가지 깨닫게 되는게 있는데
세상이 그렇게 공평해 보이진 않는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아주 부잣집에 태어나서, 세상 부러울 것 없이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아주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끼니 걱정을 해야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좋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서, 놀면서 공부해도 항상 1등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죽어라 공부해도, 어느 한계를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지금 방배동에 계신 우리 하전도사님,
이 분은 정말 주위 사람을 이렇게 막 실망시키시는 분이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 분이 공부하는 걸 본 적이 없고, 늘상 노는 거 같은데,
보면 공부를 정말 잘 하세요. 학위도 굉장히 짧은 기간에 끝냈고, 또 서울대 교수로 갔고,
서울대 들어갈 때도 수석 입학으로 화려한데, 별로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는 분은 아니세요.
그러니까 타고난 게 있어요. 짧은 시간 동안에 공부를 해 내는 능력이 있어요.
근데 어떤 사람은 죽어라 공부해도, 잘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어느 한계 이상은 못 넘어요.
이게 보면 좀 불공평하죠...
어떤 사람은 보면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 날 때부터 건강에 문제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요...
하여간 세상은 보면, 이렇게 공평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유리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어떤 분야로 놓고 볼 때, 불리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맹인, 소경은
결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어요.
이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과 경쟁을 할 수 있겠어요? 아마 절대로 경쟁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오늘날도 사실 소경이, 정상적인 삶을 살기는 참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장애들이 있고, 편견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게 더구나 심했습니다.
뭐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 이런 게 전혀 없던 시절이었죠.
오히려 장애인들은 '신의 저주를 받고 태어났다'고 멸시하고 사회에서 쫓아내고 그런 때였죠.
아마 이 소경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이 소경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뭐냐면, 거리에서 구걸하는 것 뿐이었어요.
다른 길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 소경이 결국 걸인이 되었습니다.
자 사람들은 이것을 그의 운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게 네 팔자야.. 네가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떡하냐?
네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을, 그냥 그걸 네 운명이라고 여겨! 네 팔자야, 받아들여!'
그리고 아마 소경도 이것을 받아들이고 살았을 거예요.
▲많은 경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데스티니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정해준 팔자, 또는 운명을
자기의 데스티니라고 믿고 삽니다. 사람들이 결정해 준 거짓 데스티니죠.
2절에 보면, 사람들이 이 소경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9: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자기의 죄이든지
또는 부모의 죄이든지, 어쨌든 신의 형벌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는 거예요.
이 질문을 보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어떤 편견이 있는 걸 알 수 있어요.
'저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게 죄 때문입니까? 죄가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봐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이미 죄 때문이다' 라고 전제하고 질문한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의 질문은 '(죄 때문인 것은 당연한데), 그러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사람들은 이런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이 소경에게
'이게 네 운명이야, 이게 네 데스티니야, 너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났어'
이렇게 짐 지운 거지요.
그런데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뭡니까?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사람의 죄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은 전혀 다른 데스티니가 있다는 거예요.
너희가 생각하고 있는 그 데스티니는 잘못된 거고,
예수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진짜 데스티니가 뭔지를 알고,
그것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먼저 해야 될게 있는데,
가장 먼저 해야 될 건 뭐냐 하면, 사람들이 우리에게 짐 지어준 거짓말들을 부숴야 돼요.
'거짓 데스티니' 여기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아, 이게 원래 나의 데스티니가 아니었구나. 나는 원래 이걸 위해 지음받은 존재가 아니구나'
'아, 나는 이것이 나에게 너무너무 큰 불행이고, 나는 뭐 재수 없다. 운명이었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이렇게 여기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먼저 있어야 돼요.
그래서 거짓 데스티니에 대한 신념이 풀렸을 때
나의 정말 데스티니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겁니다.
▲1. 세상은 크게 두 가지로 우리에게 거짓 데스티니를 짐 지우는데
첫째는, 이 소경에게 그랬던 것처럼, 낙망시키는 것입니다.
낙망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아주 대표적인 거짓 데스티니입니다.
그래서 주로 이것을 우리가 쓰는 말로 '팔자'죠.
'팔자소관이야, 그게 네 팔자야' 이게 보면 사람을 낙심시키는 거예요.
'넌 어쩔 수 없어, 너는 원래 그렇게 타고났잖아, 너는 원래 그냥 그렇게 생겼어,
너는 원래 키가 작아, 너는 원래 머리 숱이 적어, 너는 원래 뭐 집안이 그래...'
이런 수많은 팔자를 들먹이면서, 끊임없이 사람을 낙담하게 하고 낙심시키는 것,
이게 여러분,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거짓 데스티니의 첫 번째 특징이에요.
이건 사실은 데스티니가 아니고 저주지요.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자녀에게 이런 저주를 퍼붓는 분 계세요?
근데 요즘은 부모님들이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요. 옛날에는 이게 아주 일상사였어요.
일상사에서 자녀들을 향해서 저주인지도 모르고, 저주를 계속 퍼부어요.
'야, 네가 원래 그런 거지... 이놈아, 네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는데...
너는 네 팔자야...' 하여간 과거에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끊임없이 저주한게
우리나라의 문화였고 유산이었어요. 이거 끊어야 됩니다.
여러분 그건 저주지, 우리의 데스티니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냥 그렇게 살도록 짓지 않았다는 거예요.
저주받은 삶을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완전하게, 가장 충만하게, 가장 행복하게
그렇게 살도록 디자인하시고, 그렇게 계획하셨지
우리가 '아유, 너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할 수 없어, 너는 원래 머리가 나쁘잖아,
너는 원래 뭐 건강이 이렇잖아...' 이것은 세상이 우리에게지는 거짓 데스티니입니다.
이것으로부터 빠져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자녀에게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부모로부터나 또는 친구로부터나
하여간 누구로부터 이런 저주를 받았더라도 믿지 마세요.
그것은 여러분을 향한 올바른 메시지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렇게 계획하지 않으셨어요. 여기서부터 빠져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을 놀라운 존재로 만드셨고,
여러분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은사들을, 여러분의 삶 속에 계획하셨어요.
물론 어떤 사람은 머리가 나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건강이 좀 안 좋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는 다른 재주가 있다고요!
우리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만 나타낼 수 있는 일들을 다 계획하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이 갖고 있는 잘못된 가치관이 있어요.
그래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은 어떤 삶이냐?
'의사가 되고, 판사가 돼야 돼!' 이런 잘못된 가치관들...
가장 성공적인 삶은 어떤 삶이냐?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돼!' 뭐 이런 것들...
뭐 공부 잘하는게 죄는 아니지만,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니거든요.
모든 사람을 다 그렇게 하라고 창조하시지도 않으셨어요.
그런데 세상이 다 프레임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게 성공적인 삶이야... 이게 의미 있는 인생이야...'
그런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모든 사람을 다 거기로 그냥 밀어 넣으려 해요.
막 안 들어가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쑤셔 넣고...
근데 막상 거기 들어가 보면, 정말 성공적이고 행복하냐? 그렇지 않거든요.
거기에 들어가 보면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원래 그걸 하도록 지은 사람이, 그 프레임에 들어가면 행복해요.
근데 나는 적성이 전혀 안 맞아요.
나는 의사하고는 전혀 안 맞는 사람이에요.
나는 막 사람 피만 보면 막 소름이 돋아요.
그런 사람이 만약 억지로 밀어넣어져서 의사가 됐다고 하면, 그가 행복하겠어요?
날마다 날마다 소름 돋는 경험을 해야 되는데요...
여러분, 그렇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맞아요. 어떤 사람은 머리가 안 좋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음악에 대한 재능을 주셨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음악에 대해서는 진짜 재주가 없어요.
그러나 그림을 잘 그리는 재주를 주실 수도 있고...
하여간 하나님께서는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게 만드셨어요.
하나님은 의사나 변호사만 만드신게 아니에요.
나머지는 다 들러리로 만드신게 아니라고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 각 사람이 자기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참 완전한 계획들을 세우셨는데,
사람들이 여기에다 인간적인 등수를 매기는 거죠.
이것은 여러분,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잘못된 데스티니입니다.
이것을 좇아가지 마세요. 그럼 인생 망합니다.
이것을 좇아가면, 내 인생은 절대 행복하지 않아요.
나에게 디자인 하신 하나님의 목적, 나를 창조할 때 가지고 계신 계획이 있어요.
그것이 혹시 사람들이 바라볼 때, 뭐 그렇게 대단한 거 같아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그 길을 계속 가게 되면, 거기서 뭐가 나타나는 줄 아세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나타나요. 우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시작해요. 할렐루야!
창조자 하나님을 만나면, 나를 원래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그 길에, 딱 세워 놓으십니다.
그래서 그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내가 행복해지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도 거기서부터 은혜를 받기 시작하고,
도움을 받기 시작하고... 여러분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방식이에요.
▲여러분, 우리를 지으신 그 길로 들어서게 되면,
먼저는 자기 적성에 맞습니다. 적성에 맞으니까 잘 하게 돼요.
잘하게 되면 열매가 생겨요. 또 능력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럼 그 능력을 가지고 뭘 할 수 있냐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으면, 뭐가 생기냐면, 모두가 행복해져요.
이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리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랬거든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사랑해서 자기 생명을 주셨을 때, 가장 행복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셨어요.
우리를 창조하신 그 자리에서 있으면, 즉 자기 데스티니를 찾아서 그대로 살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데,
여러분 이게 얼마나 행복한지는... 직접 경험해 보셔야 돼요.
그전까지는 그냥 '어떻게 하면 내가 조금 더 많이 가질까?
어떻게 하면 내가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해질까?'
이렇게 좇아가면 절대 행복해지지 않아요.
이게 사실은 마귀가 거짓말 하는 거예요.
'이거 해 봐, 저기 올라가 봐, 그거 가져 봐, 그럼 너는 행복해져!'
천만에요. 거기 가면 행복해지지 않아요.
근데 전혀 행복할 것 같지 않은 곳에, 행복이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섬길 때,
그래서 그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걸 볼 때,
거기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지는지요... 이게 원래 하나님의 속성이거든요.
▲(남을 도울 때, 행복하다는 주제를 담은 일화)
제가 여러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제가 굉장히 행복했던 내가 언제였냐면, 미국의 유학생으로 가 있을 때,
제가 장학금 받는게 좀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TA를 해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나라에서도 장학금을 또 조금 줬어요. 그래서 여유가 조금 있었어요.
그때 저희 교회에 어떤 형제 하나가 있었는데, 이 형제가 재정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부모님도 안 계시고, 혼자서 거기서 자수성가한 형제였는데,
저하고 비슷한 나이 또래였어요.
근데 이 형제가, 자동차 바디샵을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어느 공장에 들어가서 배우다가,
다시 공업학교에 들어가서 배웠는데,
자기가 일하던 메케닉 샵에서 정직하게 일하다가 잘렸어요.
회사에서 계속 거짓말하라고 시키는 거예요.
자동차에 고장나지 않은 것도 고장났다고 말해라고 시키고,
고치지 않고도 고쳤다고 말해야 되고...
'나는 그렇게 못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잘렸어요.
잘려도 학교는 계속 다녀야 되는데, 할 수 없이 햄버거 굽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게 공부했어요. 그런데 생활비는 벌어도, 학비가 모자란 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느 날 제가 기도하는데 '너 여유가 조금 있지 않냐? 그를 도와라'
근데 제 마음 가운데 조금 어려운게 있었어요.
왜냐면 '아유 주님, 그래도 이게 여유가 있는게 아닙니다.
이 장학금은 3년만 받는 거고요. 공부는 한 5, 6년 해야 되고요. 나중에 가면 돈이 없게 돼요.
지금 이거 좀 모아두지 않으면, 저는 나중에 힘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게 계속 부담을 주셨어요.
그래서 그냥 그 형제 모르게, 제가 꽤 큰 돈을 헌금을 했어요.
무기명으로 해 가지고 '아무 형제한테 주십시오'
그러고 이제 그 다음 주 셀 모임에서 보니까, 이 형제가 너무 행복해 하는 거예요.
난 그렇게 행복한 얼굴은 처음 봤어요.
자기가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어, 학교를 계속 다니게 됐다는 거예요.
제가 그때 딱 하나 깨달은게 뭐냐면 '아, 행복을 돈을 주고도 살 수 있구나'
저는 처음 알았어요. 저는 행복은 돈 주고 못 사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돈을 어디다 쓰느냐에 따라서, 행복을 살 수 있더라고요.
이건 돈 때문에 행복한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그 기회를 사용하면, 그 안에 생각할 수 없는 행복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알게 된게
'아 내가 스스로 행복하려고 애쓰면, 절대 행복해지지 않는구나'
근데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내가 좇아갔을 때,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곳에서 있으면, 어떤 기회들이 생기냐면,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겨요.
근데 거기에 서 있지 않으면, 절대로 도울 수 있는 기회는 생기지 않습니다.
왜요? 내 적성에도 안 맞는 걸 하느라고, 지금 싸우고 막 전쟁하고 있는데,
남을 도울 여유가 어디 있어요?
내 적성에도 안 맞는 일을, 그저 세상적으로 성공하려고 돌진하다보니,
이리 치고 받고, 저리 치고 받고... 그러면 하여간 모든 사람이 다 적으로 보이고,
모든 사람이 다 나의 경쟁자로 보이고...
내 거 조금 뺏을까봐 막 열 받고... 이렇게 살지요. 남을 도울 여유가 없어요.
그런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그냥 거기서 뭐가 안 생겨도 그만이에요.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뭐...
큰 이윤이 안 생겨도 그만이고, 이거 하느라 손해를 봐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뭐 이리 봐도 행복, 저리 봐도 행복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발견하셔야 돼요.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제가 이렇게 대충 보니까
지금 뭐 여러분의 진로를 바꾸기에는 좀 늦었어요. 나이가 너무 많으십니다.
그러면 자녀들이라도 잘 키우십시오. 자녀들이라도 잘 키우셔서,
정말 우리 하나님 안에서 쓰임 받는 그런 사람들 될 수 있도록 잘 가이드 하시기 바랍니다.
괜히 자녀들을 푸시하지 마세요. '너는 의사가 돼야 돼!'
의사는 그냥 될 사람만 되면 돼요.
원래 의사로 타고 나지 않았으면, 의사 일이 너무 피곤해요.
자 여러분을 창조하신 분, 그분의 계획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될게 뭐냐면, 창조주를 만나야 되는 거예요.
이게 복음이에요.
우리를 만드신 분을 만나야 되는 거예요. 거듭나야 되는 거예요.
이 복음 안에서, 여러분은 참된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이 놀라운 축복의 비밀들을, 눈을 가려서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불평이 나오게 하고, 원망과 고통과... 막 이게 쌓이게 하죠.
그러나 하나님을 딱 만나고 나면, 이 비밀이 딱 벗겨져요.
'아,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드셨구나'
'나는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 때문에, 더욱 막 원망스럽고
하나님, 나를 왜 여자로 태어나게 하셨어요? 나를 왜 이렇게 태어나게 하셨어요? 하고
계속 원망했는데... 나중에 이 비밀이 딱 벗겨지고 나니까
와 이래서 날 이렇게 만드셨구나...' 그게 축복인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복음이에요. 이게 복음!
그래서 저주도 기쁨으로 바뀌고요. 고통도 기쁨으로 바뀌고, 축복으로 바뀌고,
이것이 여러분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2. 세상이 주는 거짓 데스티니의 두번째 특징은 뭐냐면
별것 아닌 거에 우리 인생을 다 걸게 한다는 거예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예요. 거기에 우리 인생을 다 걸게 한다는 거예요.
사실 여러분, 우리가 진짜 죽고 살 것처럼, 막 이렇게 매달리는 문제들 중에 한 50% 이상은
한 발자국만 거기서 떨어져서 생각하면, 그냥 안 돼도 그만인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진짜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죽고 사는 중대한 문제가 그렇게 많으세요?
사실은 아니더라고요.
'이거 안 됐다고' 내가 너무 막 디프레스가 되고
'이게 반드시 됐어야 됐는데...' 그래서 막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그런 문제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서 생각하면
'아이 뭐 그럴 수도 있네...' 하는 사소한 문제들이지,
그것 때문에 진짜 우리가 죽느냐 / 사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몇 개 안 돼요.
거의 대부분의 것은, 그냥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거예요.
그런데 마귀가 우리에게 속이는 건 뭐냐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걸, 막 너무 중요한 것처럼 속이는 거, 이거는 참 쉽거든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너무 중요.한 것처럼 속이는 거예요. 이거는 쉬워요.
그래서 마귀가 항상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인생 가운데 '와 이것 때문에 내가 너무 막 불행하고, 큰일이고, 힘들고'
막 이런 문제들이, 조금만 여유 있게 생각해 보세요. 정말 그런지...
사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요. 그냥 없어도 그만이에요.
중략
그게 물질이든지, 승진이든지, 외모든지, 연인이든지
우리가 살면서 정말 대단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잖아요.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는 거 있잖아요. 무슨 아파트라든지, 자동차든지, 보석이든지...
그걸 두고서 마귀가 우리에게 항상 거짓으로 속이는 거예요.
'그게 없기 때문에 내가 너무 막 불행하고, 큰일이고, 힘들고...'
근데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빛이라' 그랬어요. I'm the light of the world!
그래서 어두운 방에 빛이 딱 들어오고 나서 나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이, 진짜 보석이 아니라, 그냥 무가치한 돌인 것이 보이는 거예요.
심지어 바울은 더 심하게 '배설물'이라고까지 표현했거든요.
'뭐야? 이걸 내가 여태 껴안고 살고있었구나'
이게 마귀가 속이는 두 번째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진짜 거짓말인 것을,
어둠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게 대단한 줄 알고, 속으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게 내 인생을 대단하게 만들어 줄 것처럼... 마귀가 우리를 속이는데,
실제로 여러분 우리가 진실이 뭔지를 딱 파악하고 나면,
'이걸 내가 왜 붙들고 있었지?' 하고 비로소 내려놓게 되는 거죠.
이 다음에 여러분의 인생을 다 끝마치고 정리할 때, 혹은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
정말로 여러분 인생 가운데 '이건 너무 소중했다' 라고 말할 것이
과연 몇 개나 있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많지 않아요. 대부분의 것들은 있어도 그만,
어떤 것들은 너무 중요한 줄 알고 살아왔는데 '별거 아니었네'
이런게 태반이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 그랬냐면 '내가 빛이라' 그랬어요.
내가 어둠 가운데 있으면, 속는다는 거예요.
빛이 내 인생 가운데 들어오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돌멩이를 들고 있으면서,
그게 다이아몬드인 줄 착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빛 가운데로 나오라는 거예요...
그것 가졌다고 천국 가는 것도 아니고,
그거를 누리고 있을 때조차도 행복하지 않아요.
사실은 맨날 근심과 걱정과, 빼앗길까봐 불안하고... 이러고 사는 거예요.
이 마귀가 얼마나 우리 인생을 파괴하고 있는지요.
이걸 여러분이 볼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을 만나세요. 그리고 빛 가운데로 나가십시오.
그랬을 때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를, 볼 수 있게 될 거예요.
정말 인생의 행복과 삶의 의미가 어디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될 거예요.
자 이런 거짓 데스티니를, 여러분이 부숴야 됩니다.
여러분이 진짜 자기 데스티니를 찾기 원하신다면,
우리 하나님이신 여러분에게 정하신 데스티느를 찾기 원하신다면,
이 꿈으로부터 먼저 깨어나셔야 됩니다.
세상이 주는 거짓말들, 낙심시키는 것들, 속이는 것들,
이것들이 뭔지를 먼저 깨닫으십시오.
그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데스티니고 뭐고 들어갈 틈이 없어요.
그래서 먼저 가짜 행복, 가짜 성공을 부숴야 돼요.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진짜 데스티니를, 여러분의 생각과 삶 가운데 시작하실 줄 믿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소경에게 지워진 거짓 데스티니는 낙담이었어요. 저주였습니다.
'너는 소경이야! 너는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야!'
이것이 세상의 말하는 이 소경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거짓 데스티니에 대해서, 예수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하세요.
요9:3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할렐루야!
여러분이 생각하는, 아마 마음에 안 드는 여러분들의 환경이나 조건들이 있을 거예요.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내 유전자는 왜 이럴까? 나는 왜 먹기만 해도 살이 찔까?'
'나는 왜 머리가 숱이 적을까? 나는 왜 남자로 태어나지 않고 여자로 태어났을까?'
하여간 그래요. 세상은 어쩌면 그거 가지고 나를 비웃을지도 몰라요.
'너는 원래 그렇잖아, 너는 원래 그거밖에 안 되잖아' 그렇게 비웃을지 몰라요.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하신다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하세요.
'그게 왜 그런 줄 아느냐?
네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런거다.
네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런거다!'
와 여러분, 이 음성을 들으셔야 돼요. 이 음성을들을 때
우리가 평생 갖고 살아왔던 그 한과, 평생 갖고 살아왔던 쓴 뿌리가 해결될 수 있어요.
'네 모습이 왜 그런 줄 아느냐?
네 삶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런거다.
네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런거다...'
2000년 전 실로암 연못 근처에서 만났던 소경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예요.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걸 주신 거예요. *나의 특징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기도하면서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거예요. 할렐루야!
▲여러분 송명희 시인이라고 아시죠?
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태어났고, 거의 전신마비였습니다.
근데 이분이 요즘 고백하는 얘기를 들으면
자기는 다시 태어나도 이렇게 태어나겠다는 거예요.
이걸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이 너무너무 많다는 거예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거예요.
우린 참 이해하기 힘들지요. 세상 기준으로 봤을 때는 '얼마나 힘들까?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근데 송명희 시인은 자기가 다시 태어나도, 이렇게 태어나도 상관 없다는 거예요.
비밀이 있어요. 비밀!
그 안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내시고,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는 일, 그 비밀!
여러분도 자기 데스티니를 발견하면요,
어떤 사람이라도 어떤 조건 가운데 태어났더라도
여러분 그 안에 기쁨과 행복과 감사가 있습니다. 아멘!
이걸 발견하시고 누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누굴 만나야 돼요? 예수님을 만나야 돼요.
여러분 인생에 대해서 얘기해주는 수많은 목소리도 다 쓸데없습니다.
다 별로 영양가가 없어요.
오로지 한 분만 우리 인생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해 줄 수 있어요.
나를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만나셔야 돼요.
그리고 우리 인생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를 들으십시오. 아멘!
◑자 이어지는 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
어둠 가운데 있으면 속는다는 거예요. 빛 가운데로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지음 받았는지, 왜 지음 받았는지,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되는지...
예수님의 빛 가운데 나아오면, (환하니까) 그 진리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께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9:6~7절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우리의 데스티니를 이루기 위해서 두 번째로 필요한게 있는데,
(첫째는, 잘못된 데스티니 로부터 벗어나는 거였습니다)
근데 두 번째는, 우리 인생에 내 데스티니를 실질적으로 막고 있는 장벽이 있다는 거예요.
이 장벽을 무너뜨려야 되는 거예요.
이 소경의 눈은, 예수께서 아무리 뭐라고 말씀하셔도, 결국 소경의 장벽입니다.
안 보이는 거예요. 인생의 많은 가능성들을 다 닫아 버려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것(소경의 닫힌 눈)을 부수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 복음입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것, 그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
예수님은, 이 소경의 눈에 창조의 능력을 덧입히십니다.
소경의 눈에 진흙을 이겨서 바르십니다.
흙은 창조의 능력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처럼,
흙은 창조의 능력입니다.
이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소경의 눈에 바르시는 거예요.
그랬을 때 이 소경이 재창조의 능력을 나타내어, 눈을 뜨고 보기 시작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실로암'이라고 하는 말이 참 의미심장이에요. '보냈음을 받았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곳에 딱 갔더니,
거기서 우리의 장벽들이 무너지더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많은 사람들은, '아, 내 인생의 장벽들이 왜 이렇게 안 무너질까?'
'예수 믿었는데도 목사님 안 무너져요' 막 이러시는 분들이 있는데, 무너뜨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보내시는 곳에 가면 무너지는 거예요.
그 장벽은,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 모양이 다를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환경이나, 육체적인 장벽이.. 장벽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가서 맞닥뜨려 보면, 그게 장벽이 아니라, 전혀 다른 장벽이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내신 곳에 가면, 거기서 장벽을 무너뜨려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데스티니'가 우리말로는 '부르심. 사명'이란 말로도 번역되는데, 정확한 번역이에요.
우리가 사명이 있는 자리에 가면은,
거기서 하나님께서 일할 수 있도록 장벽을 무너뜨려 주십니다.
예를 들어서, 이 소경에게 '실로암에 가서 씼으라' 그러셨는데, 그가 실로암으로 안 갔어요.
'뭐 실로암까지 가서 씻어? 우리 집에 가서 씻으면 되지...'
그러면 여전히 소경으로 남아있는 거예요. 보내신 곳에 갔을 때 장벽이 무너진 거지요.
보내신 곳에 가지 않거나, 다른 곳에 가면, 여전히 그 장벽이 남아있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이, 내 인생의 장벽을 무너뜨리시는 것은,
우리 인생의 데스티니를 가로막는 것을 치우시는 것이지,
내 데스티니와 상관없이 무조건 일하시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순종해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나아갈 때,
그 앞에 가로막을 수 있는게 없어요.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셨기 때문에, 어떤 것도 나의 데스티니를 가로막지 못해요.
뭐 사망도 가로막을 수 없다고 그랬어요.
'권세나, 사망도,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다'고 바울이 로마서 8:38~39절에서 얘기하잖아요.
그 무엇도 가로막을 수가 없어요. 그분은 어떤 장벽도 그냥 다 무너뜨리세요.
근데 나의 데스티니에 내가 서 있지 않으면, 그 장벽이 무너져야 될 이유가 별로 없어요.
차라리 장벽을 조금 남겨둬서, 내가 어디 엉뚱한 데로 멀리 못 가도록 하는게 낫지요.
이거 치워졌다가 엉뚱한 대로 빠져서 멀리 멀리 가면, 나중에 절대 못 돌아올 거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장벽을 무너뜨려 주시는 것은,
우리의 데스티니와 필수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제 간증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기 전까지, 제가 여러번 간증했지만, 말을 참 많이 더듬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말을 아주 심하게 더듬었어요.
대학을 들어가서도 더듬었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도 더듬었어요.
목회하기 바로 직전까지도, 말하는게 이게 편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은, 제게 굉장히 굉장히 힘들었어요.
말을 더더더 더듬었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제게 공포였어요, 공포!
근데 말을 더듬는다고 하는게, 여러분 생각보다 큰 장벽이더라고요.
이게 생각보다 큰 장벽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막아 버려요.
제가 뭐가 되려고 해도, 이게 그 길을 가로막는 장벽이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수가 되고 싶었는데, 교수가 되는 꿈을 꾸고 있으면 행복하다가도,
교수로서 강의하는 생각을 하면... 고통스러워져요. 말더듬는게 자명하니까요.
그러니 벌써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러면 강의 안 하고 어떻게 교수가 될 수 없을까?'
그래서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학교수를 하면, 말을 안 해도 될 것 같더라고요.
그냥 수학은, 칠판에 쓰면서 문제를 30분, 40분 계속 풀어나가면 되니까요...
그래서 수학을 전공했던 건 아닌데요. 하여간 이게 저한테는 굉장한 장벽이었어요.
굉장히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다가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나고,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그래서 '내가 목사가 돼야 되는 거 아닌가?' 했는데, 그 생각을 하루 만에 접었어요.
왜냐면 '내가 말을 더듬는데 무슨 목사가 되나?'
근데 나중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목회를 하라고 인도를 하셔서, 목회를 시작하게 됐는데
목회를 시작하고, 이제 설교 처음으로 하게 된 날, 바로 전날까지도 괴로웠어요.
'내가 과연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나는 평생 이러고 살아야 되는 건가?'
막 되게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어요. 딱 첫 설교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말더듬 것을 고쳐주셨거든요.
딱 첫 설교하는 그 날 그 시간부터, 제가 말 더듬는 걸 완전히 고치셨어요.
야~ 정말 놀랍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 실로암이 뭔지를 알아요. 가라 그러시면, 순종해서 가면
막힌 장벽은 무너지는 거더라고요.
여리고성이 아무리 커 보여도, 가라 그래서 가면, 그냥 무너지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여러분, 보내시는 곳에 순종해서 가세요.
그럼 거기서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체험하게 될 거예요. 할렐루야!
뭐 저만 장벽이 무너진게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이런 경험들 정말 많이 했어요.
우리가 보내심을 받은 곳에 가면, 하나님은 가로막힌 장벽을 무너뜨리세요.
자 그런데 여기에 아주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이 말더듬는 게 해결되기를, 진짜 오래전부터 기도해 왔어요.
제가 철들고 나서 처음 했던 기도가 뭐냐면 '하나님, 나 말 더듬지 않게 해 주세요'
어렸을 때 내가 계속 그 기도만 계속 했어요.
왜냐하면 초등학교 때 애들이 계속 나를 놀리니까요.
애들은 멋모르고 제가 더듬는 것을 흉내 내고... 그러면 제가 막 미치겠는 거예요.
중고등학교를 갔는데, 중고등학교 때는 제가 공부를 좀 잘했어요.
그러니까 계속 반장을 시키는데, 이 반장이 제게는 너무너무 괴로운 거예요.
앞에 나와서 얘기를 해야 되고, 그 다음에 수업 시작하기 전에 '차렷, 경례'를 해야 되는데,
그 짧은 말 한 마디가 안 되는 거예요. '차렷, 경례'가 쉽게 되지 않으니까,
학급 학생들이 계속 기다리고 있고...
그러면 선생님이 '부반장이 해!' 그러면 부반장이 일어나 가지고 '차렷, 경례'를 했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여러분 이게 그 당시에는 제게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그래 가지고 제가 제일 먼저 했던 기도, 제일 많이 했던 기도가 뭐냐면
'하나님 이것 좀 고쳐주세요'
근데 그 기도 안 들어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저의 이 고질적 문제가 어디서 해결됐냐면, 결국 보냈음을 받은 곳에 가서야 해결이 됐어요.
도저히 설교할 형편이 아니었는데, 순종해서 설교를 하니까... 저절로 고쳐져 버렸어요.
근데 완전히 고쳐지기 전에, 그 중간에 '말 더듬는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든' 일이 있었어요.
대학교 1학년 말에,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또 그 안에서 성숙해 가면서,
실제로 말 더듬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들었어요.
말은 여전히 더듬었는데, 그로 인해 제가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어졌어요.
왜냐하면 '아, 하나님이 나를 그냥 이렇게 지으셨구나.. 하나님이 내 모습 그대로 그냥 쓰시겠구나..'
그러니까 제가 편해졌어요. 굉장히 편해졌어요. 정말이에요.
그래서 그 전에는 막 사람들이, 제 앞에서 웃거나 웃음을 참고 그러면,
제가 막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돌아오면 막 시무룩하고 그랬는데,
예수님을 분명히 만나고 난 다음부터는 '웃으면 웃으라지 뭐'
별로 거기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점점 받지 않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렇게 살면 되지 뭐...'
하나님께서 제 내면에 있는 장벽을 먼저 부수신 거예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부수시기 전에, 내면에 있는 장벽을 먼저 부수신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강을 누리는 걸, 알게 하시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이게 왜 중요한지 보세요.
제가 겉으로 드러나는 장벽을 부수신다고 해도, 근데 내면의 평화가 없으면,
그 장벽은 부수나 마나입니다. 여전히 힘든 거예요.
그 문제는 해결됐을지 몰라도, 다른게 저를 괴롭히지 않겠어요?
다른 문제로 나를 괴롭히지 않겠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머리가 계속 빠져요. 이건 뭐 괴롭지 않겠어요?
하여간 여러분이, 내면의 장벽들이 무너지지 않으면,
겉으로 드러나는 거 무너뜨려 봐야, 별로 효과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무너뜨리시는게 있는데, 뭐냐면 우리 내면에 있는 장벽이에요.
우리가 왜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지, 왜 불안해 하는지, 왜 두려워하는지... 이걸 먼저 무너뜨리세요.
그리고 때가 됐을 때, 하나님께서는 필요에 의해서, 우리의 장애들을 제거하시는 거예요.
일을 해야 되는데, 그 장벽 때문에 못 하니까, '오케이 그럼 내가 장벽을 해결해 주마!'
그래서 지금 제가 설교를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제가 뭐 설교할 필요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계속 더듬도록 놔 두셨겠죠.
그래도 저는 행복했을 거고요. 할렐루야!
길어서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