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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0장 복의 근원이 된 사람

LNCK 2025. 4. 1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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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근원이 된 사람                창30:25-32                  2001.01.07.

 

헤르만 헤세의 <어거스터스> 라는 작품 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내외분이 오랫동안 애가 없어서 몹시도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마침내 기다리던 아들을 낳았습니다. 온 집안이 기뻐합니다.

그 어머니의 기쁨은 더더욱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그날 밤에 신비한 노인이 이 산모에게 나타나서

"이 아이를 위해서 한가지 소원을 말하라, 그 한가지 소원은 내가 꼭 들어주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생각했습니다. 딱 한가지거든요.

무슨 말을 할까 많이 생각하다가 소원 한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낳은 이 아들은 앞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라고 소원했습니다. 그 노인은 말하기를 "그래, 네 소원을 들어주마" 했습니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형제의 사랑을 받고,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이웃의 사랑을 받고, 온통 사랑을 독차지하며 많은 칭찬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느 날 그 노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래 만족하냐?" 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여인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왜냐면 아이가 자라면서 사랑만 받으니까, 자기는 당연히 사랑 받아야될 자인 줄 알고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교만하고, 걷잡을 수 없는 아주 극단적인 정신적 미숙아로

자라게 되더란 얘기지요.

 

그래서 어머니는 소원을 바꾸어서 하는 말이

"이제는 사랑 받기 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하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참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내 소원이 이루어지면 되겠다고, 출세하면 되겠다고,

재물을 얻으면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는 그저 병 없이 늘 건강하면 좋겠다고... 우리 바램이 많습니다.

 

우리 새해에 들어서 또 다시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의 소원 가운데는

'하나님이여 금년에는 베푸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라는 소원이 없습니다.

 

'어떻게든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이런 소원이 없다는 말이에요.

 

사실은 이것이 아니고는 행복은 없습니다.

여기에 도달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창세기 12장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사건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십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너는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 하고 명령하시면서 그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여러분 깊이 생각하십시오.

"네가 복되게 살리라" 가 아니고 "네가 복의 근원이 되리라."  *서두의 예화를 기억하세요.

 

‘물론 너 자신도 행복해야겠지, 하지만은 너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리라’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여러분 아시는 데로 내가 아무리 복 받으면 무엇합니까? 주변에 굶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아무리 좋은 집에 살면 무엇합니까? 내 문간에 하루종일 거지가 찾아오는데...

내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불행한데, 난들 어떻게 복되단 말입니까? 그건 복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좀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거예요.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복 받는 거예요. 그리할 때 그것이 바로 내가 복된 것이에요.

이것을 성경은 "복의 근원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 것.

 

글쎄 아브라함은 그랬거든요. 한평생 발붙일 만큼도 땅을 얻지 못하고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자도 아니고 자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에요. 뭐 출세, 권세, 없어요.

한평생 천막 걷어 지고 유목민으로 이리 방황하고 저리 방황하고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고 살았어요. 그러나 그는 복의 근원이 되었어요.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모든 민족 모든 나라가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리라’ 얼마나 깊고 귀중한 말씀입니까?

 

▲일본에 하루야마 시게오 가 쓴 <뇌내혁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근데 여러번 제가 강단에서 말씀을 드려서 읽으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신앙적인 책은 아닙니다만, 한 번 쯤은 읽을 만한 책입니다.

그런데 한 3년 전에 나와서 (1996)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비소설계에서는 베스트셀러 탑으로 꼽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 속에서 그는 말합니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뭘까? 그건 아마 건강일 것이다"

 

뭐 본인이 의사니까 건강이 복의 근원이지. 아, 병들고 행복한 게 어디 있습니까?

돈이면 뭣하고 부자면 뭣합니까? 아 명예면 뭣해?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것을 연구한 그런 책입니다. 그는 요약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피곤치 않게 사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몰두하지 말고,

피곤치 않게 건강을 돌보며 살아야 된다.

 

두 번째는 적절하게 잠을 자야 된다. 잠까지 설치면서 뭘 하겠다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잠을 잘 자야 되고, 또 하나는 식욕을 절제해야 한다. 먹고 싶다고 많이 먹고,

먹고 싶지 않다고 안 먹고, 이래 가지고는 건강할 수가 없어요.

식욕을 딱 절제할 줄 아는 그런 인격이어야 되겠다.

 

그 다음에는 화를 내지 마라. 뭐 화내면 나쁘다는 건 누가 모르나.

그러나 좌우간 건강에는 해로운 거예요.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다스려야 되겠고 그리고는 계속적으로 두뇌 활동을 해야 된다” 그랬어요.

 

자꾸 생각을 해야 되요. 그래 어느 시인 영감님은 그랬다네요.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계속 한국의 강을 외우고 산을 외우고

"무슨 강, 무슨 강, 무슨 강…" 하루 종일 외워요. 왜요?

정신이 흐려지면 안 되니까. 뇌를 사용해야 되니까...

강을 세계 강까지 다 외웠다 그래요.

 

어쨌든 이 머리를 많이 써야 건강하지요.

멍청하게 앉아있으면 치매 걸릴 뿐만 아니라, 몸도 비틀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머리를 많이 써야 합니다. 그 뇌의 건강, 뇌의 운동을 하는 거지요.

 

“그리고 적당한 운동을 해야 된다..” 이렇게 책을 써 내려갑니다.

그런데 이걸 다 말하고 나서 다시 깊이깊이 생각해 보니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빠졌어요.

 

“그게 마음의 평안이에요. 그게 55%예요. 마음의 평안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이 평안해야 되겠는데..." 또 다시 연구를 깊이 합니다.

 

그러면 제 2권에 가서 또 말합니다. “정말 마음이 평안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나?”

뭐 나름대로 생각해 많이 해보니까 그는 중심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주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봉사. 아무 조건도 바램도 없는 그러한 희생적 봉사를 할 때,

그때가 사람이 정신이 가장 맑고, 또 몸이 건강해 질 수 있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희생적 봉사, 자원 봉사를 할 때는, 대뇌피에서 아주 고질의, 높은 질의 엔돌핀이

팍팍 쏟아져서 나오고, 그때는 아드레날린이 전혀 안 나온다.

그래서 어떤 병균도 이길 수 있고 건강할 수 있다...” 그게 결론입니다.

 

여러분 알아서 하세요. 이것만은 분명해요.

베풀지 아니하고는 절대로 평안하지 못해요.

평안해야 여러분이 가진 건강도 지킬 수 있고, 모든 것을 지킬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우리는 너무 슬픈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2001

뭐 정치한다는 사람들, 경제 한다는 사람들 물고 찢고 싸우고 정신이 없습니다.

시기 질투 모략 중상, 언제까지 이래야 됩니까? 정말 목불인견입니다.

 

모택동 영감의 어록집이 생각나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칼이 없는 전쟁이 정치다. 칼이 있는 정치가 전쟁이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거예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고 있어요.

이러고 이 땅에 복이 임하겠습니까? 오늘 깊이 생각해야될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답답하고 괴로운 세상을 다 보시면서도

어찌 생각하면 천지 개벽을 해서 당장 그냥 화끈하게 문제를 처리해야될 것 같으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한 가정을 선택하시고 한 민족을 선택하셔서

그를 통하여 서서히, 마치 겨자씨를 보는 것 같이 씨뿌리는 비유같이

조용히 조용히 슬며가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선택의 도리입니다.

하나님은 만백성을 구원하려고 하시면서 한 사람을 먼저 선택을 했어요.

그 다음에는 선택받은 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길 원하세요.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증인으로 살길 원하세요.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를 좋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인격적 구원입니다.

 

물리적이고 기회론적이고 운명적이고, 무슨 천지개벽을 하는 이런 방법이 아니고

정말 인격적이고 한사람 한사람을 감화하고 중생케하고 가르치고 바로잡고

그리고 그 역사가 파급 파급 파급되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가도록,

여러분 이것이 인격적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입니다.

 

보세요. 노아 홍수때 많은 사람이 범죄했어요.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어서 홍수로 멸하시려고 할 때, 멸하시는 데 무슨 준비가 필요합니까?

당장 때려 부수면 되지. 그러나 그렇지 않았어요. 노아라고 하는 한 사람을 불렀어요.

"방주를 만들어라." 120년동안.

 

방주 만드는데 120년 걸린 게 아니에요. 문제는 120년이 집행유예의 기간이요,

선교기간이요, 구원을 기다리는 기간이었어요.

 

노아의 식구들을 통해서 전체가 감동 감화돼서 이 진노를 면하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경륜이 거기 있었어요. 그러나 저들은 이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노아의 여덟식구만 구원받고 나머지는 다 홍수에 죽어갑니다.

 

또한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이 크게 크게 진노하고 계십니다. 당장 전부 진멸하겠다고 하시는데,

모세라는 사람 하나가 하나님 앞에 서서 "정히 그러시려거든 내 생명을 취해주십시오."

간절히 하나님 앞에 중보적 기도를 함으로써, 진노를 거두시는 것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분명히 애굽으로 팔려간 하나의 노예입니다.

보디발이라는 사람의 집에 팔려간 노예입니다만,

그 요셉이 거기에서 하나님 앞에 신앙적으로 바로 서고, 윤리적으로 바로 서고,

도덕적으로 바로 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하여 그 집에 복을 주었어요.

 

그 집 마나님은 요염한 여자예요. 그 남자도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요. 복 받을 것은 없어요.

그러나 요셉이 그 집에 있는 동안 요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그 남편도 형통하고요 하는 일이 다 잘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는 복의 근원이었습니다.

 

다시 신약으로 돌아와 보면 로마로 가는 배 한 척이 있습니다.

모두 276명이 타고 가고 있는데 그들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이 배는 파선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장도 백부장도 선주도 못됐어요.

 

그러나 그 가운데는 바울이라는 사람 하나가 있어요.

이 바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배를 무사하게 했어요.

 

그리고 "내가 가이사 앞에 서야하겠다." 그 경륜 때문에 그들은 다 무사했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들의 생명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너 때문에 그 사람들을 살려준다' 이런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게 복음이 아니겠습니까?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하나님은 의인 열명을 찾았습니다.

'의인 열명만 있으면 이 성을 사하리라' 그러나 열명이 없었어요.

 

예레미아 5:1절에 보면, '너는 이 거리를 왕래하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를 만나라.

한 사람만 있어도 이 성을 사하리라' 바로 이런 사람들이 복의 근원이에요.

 

망하는 세상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꼭 필요해요. 이런 사람(복의 근원)만 있으면 망하지 않아요.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신학적으로 깊이 연구해 보면, 노아 홍수 이전에 에녹이라는 사람을 먼저 데려갔어요.

에녹을 데려간 다음에 (홍수로 세상을) 내려쳤어요.

에녹이 살고 있는 세상을 하나님이 심판하지 못해요.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였어요.

 

그의 의와 그의 믿음과 그의 진실과 그의 순종을 보시고

한 사람을 보시고 전체를 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시고 때로는 거두십니다.

 

왜요? 이 한 사람을 통해서 파급효과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전체에 대하여 참으십니다. 이 의미, 역사하는 역사에 기대를 걸고

하나님은 진노를 참으신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가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복을 줄 때, 자식이 망하는 것을 눈으로 보도록 하지 않습니다.

한 어머니에게 복을 주실 때, 그 자식이 잘못되는 것을 그 어머니가 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이걸 아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해요.

 

그 행복 중에는 이웃 사람들도 다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다른 사람은 다 죽어가고 고생하고 너 하나만 살리리라'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 아니에요.

그건 행복도 아니고요. 더불어 기뻐하고 다같이 행복해야만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고로 하나님의 사람 하나를 위하여, 그 이웃과 그 가정과 그 가문과 그 전체를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고 복 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 분명히 라반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거짓말도 잘하고 욕심도 많아요. 또 우상 섬기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이 집에 조카 되는 야곱이 있어요. 야곱이 와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어요.

이 머슴 하나를 보고, 하나님께서 이 집에 복을 주었는데... 라반도 눈치가 빨라요.

그건 알고 있어요. "나는 복받을 사람이 못 되지만

너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집에 복을 주신다는 것을 내가 깨달았노라."

그거 한 마디가 아주 귀한 거예요. 그 깨달음이 아주 중요한 것이에요.

 

라반의 증거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너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집에 복을 주신 것을 아노라.

그런고로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창30:27~28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 뿐 아니라 그의 윤리 생활도 반듯하게 살았어요.

진리 안에 살고 진실하게 살고 충성되게 살았어요.

나님께서 야곱을 보시고 라반의 집에 복을 주셨어요.

 

요즘처럼 확실한 지도자가 필요한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때든지 그랬지만, 지도자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귀한 지도자 한 사람이 이렇게 아쉽습니다.

 

요새 리더십이라고 하는 그런 학문들이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만,

리더십에는 몇 가지가 있어요.

요새 와서 뭐 경영인이라고 합니다만 소유경영인, 전문경영인, 그런 말을 합니다.

 

뭐 사장님이다 회장님이다 재벌이다 하는 사람은

"이건 소유다. 내거다. 그리고 내가 왕이다" 하고 쥐고 있지요. 이런 경영, 이것 가지고는 안 되죠.

 

요즘 그래서 구조 조정을 해 가지고 '전문 경영인에게 권리를 돌려라',

이게 바로 오늘의 사회 문제가 아닙니까?

전문 경영인, 전문 경영인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 위에 인격 경영인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돼요.

그래야 이 나라도 살고 경제도 사는 거예요. 이게 바로 인격경영인이요.

 

이것보다도 신학적으로 말씀드리면 오늘 여기 신앙적 경영인이 필요해요.

하나님이 보실 때 그 사람을 보고 그 회사에 복을 내 리시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보고 그 가정에 복을 내리시고 그 민족에게 복을 내리실 수 있는

그러한 복의 근원, 복의 근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어둡습니다. 우리 눈에,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은 다 못마땅합니다.

언제까지 세상만 탓하겠습니까? 문제는 나 하나의 문제입니다.

내가 복의 근원이 될 때 내가 있는 직장이 삽니다. 내가 있는 가정이 삽니다.

 

여러분 세상 너무 탓하고 세상이 달라지길 바라고 헤까닥 변하길 바라고,

그렇게 몸부림치지 마세요. 하나님은 오늘도 그렇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고 우리가 다같이 복의 근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이 민족 앞에 하나님께서는 큰 복을 더하실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진실의 사람,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그 몇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