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Z3cKbx-HVQo
◈참된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심상14:36-46 2025.04.13. 사무엘상25강
사울이 그의 잘못된 맹세로 인해, 자기 아들까지 죽일 뻔한 위태로운 장면입니다.
※중반부 43절부터가 하이라이트입니다!
◑삼상14:36 '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백성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추격전을 일시 중단했습니다.
사울왕이 아직도 포기를 못하고, 밤에 이 추격전을 재개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왕이 보기에 좋은 대로 하소서' 참 협조적이고 순종적인 착한 백성들이죠.
이런 태도가 팀을 일삼불란하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나 팀 리더가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면, 전체가 다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 되잖아요.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각자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하는게 맞을까요?
아니면 왕의 주문 대로 하는게 맞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방향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창1장에 가장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이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자 우리 가정에 좀 적용을 해보면,
제가 오늘은, 인물들의 심리와 가정에 대한 얘기를 좀 많이 하려고 합니다.
우리 가정에서 결정권을 더 많이 갖고 있는 분이 계시죠?
'우리 가정은 아빠가 보기에 좋은 데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엄마가 만족스러워하는 방향으로 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가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는 목사님이 보기에 좋은 방향으로 가는가?'
아니면 '성도들이 보기에 이 방향이 옳은 것 같다... 해서 그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하는가?'
전에 제가 교회에서 사역할 때, 이제 부서마다 행사가 있으면 디자인을 하잖아요.
그래서 '디자인을 해 보시라고...'
근데 행사 장소 디자인들은 제가 기본적으로 한 번씩은 확인을 해 보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보라색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으셨는지)
전부 보라색으로 디자인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보기 좋은데, 보기에 좋지가 않아요.
제가 이제 다른 색깔도 많이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를 결정할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방향으로 가야겠다'
이 마음으로 결정을 하셔야 돼요.
◑14:37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제사장이 하나님께 질문하자고 제안을 했고, 사울왕은 두 가지를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첫 번째는 '추격을 할까요, 말까요?'
-두 번째는 '그러면 승리를 우리에게 주시겠습니까, 안 주시겠습니까?'
사울왕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타내고 싶었을까요?
후자이잖아요.
제사장이 갖고 있는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께 질문을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37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명쾌하게 대답해 주시나요. 아니죠.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명쾌하게 대답을 안 하실 때도 있다고요.
저를 한번 따라해 보세요. '무응답도 응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무응답을 통해서, 사울이 깨달아야 되는 것은
'추격할까요? 승리할까요?' 이거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기보다는,
이번에도 또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것이죠.
▲그래서 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1) 첫 번째는,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셨다. 하나님 나를 버리셨다'
이렇게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의미하는 거예요.
자 그러면, 하나님이 기다리신다면, 나도 기다려야 하는 것이죠.
2) 두 번째는 '하나님의 무응답 때문에
하나님 내가 이 중요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내 결정을 위해서 하나님이 빨리 대답을 하셔야 된다'
이렇게 푸시를 하는 분들이 계세요.
여러분, 내가 결정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선제적으로 더 중요하다면,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하실 때는, 결정 자체를 유보해야 되는 상황인 거예요.
3) 세 번째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응답을 하지 않으시는 이유가
내가 나만의 정답을 이미 정해놓고, 하나님이 그 정답을 주시도록 강요하는 그 태도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을 안 하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그런 나의 태도 자체를 돌이켜 봐야 되는 것이죠.
사울의 경우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하나님께 '제가 언제부터 얘기했습니까?
왜 빨리 응답을 안 하십니까?' 하며 막 혼내는게 기도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안 돼죠.
◑14:38~39 '사울이 이르되 너희 군대의 지휘관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누구에게 있나 알아보자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아니하매'
자, 사울이 첫 번째 잘못된 맹세에 이어서
두 번째 잘못된 맹세를 또 하는 거예요.
-'오늘 음식을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 죄가 내 아들 요나단에게 발견되어도 반드시 죽으리라'
여러분 사울의 스토리를 보면서, 내면적인 문제점들이 드러납니다.
사울의 캐릭터는 자기 성찰이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의 잘못된 맹세 때문에, 이 문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되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는 거죠.
여러분 만약에 지휘관들이 그 제비뽑기에서 걸렸으면, 그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던 거예요.
그러면서 '지휘관들이 아니면, 자기 아들조차도 죽이겠다'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사울은 과연 이스라엘의 승리와 안위를 원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자기 동족, 자기 자식까지 죽여서라도 자기의 분풀이를 하기 원하는 사람인가요?
제가 예전에 파뉴아 뉴기니에 선교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선교사님이, 제가 40일간 있는 동안, 그날은 사냥을 하러 나갈 거라고 하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마을 전체에 큰 잔치가 앞으로 이제 열리기 때문에
사냥을 나갔는데 왈라비 사냥을 하러, *캥거루인데 굉장히 작은 사이즈의 캥거루가 있어요.
모든 사냥꾼들 막 수십 명이 다 모이는 거예요.
그래서 아침 일찍 사냥꾼의 집에 찾아갔는데,
어느 사냥꾼이 초면에, 제게 창을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더라고요.
제가 그 창을 받아 갖고 '이걸 어떻게 쓰나?' 하면서, 그 집 앞에서 한번 던져 봤거든요.
그랬더니 어디서 나타나는지, 어떤 원주민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노발대발 난리가 난 거예요.
물론 원주민 언어라서 제가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 분이 너무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때 선교사님이 '이곳에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마을 안에서는 창을 던지면 안 됩니다.
마을 밖에 나가서 던져야 되는 겁니다' 저는 몰랐죠.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서 창을 던지면 될까요, 안 될까요?
네, 절대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맹세'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있잖아요.
마5:34~37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여러분, 예수님은 왜 맹세가 악하다고 하셨는가요?
그런데 다른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맹세하신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맹세가 다 잘못됐다는게 아니라, 두 가지 측면을 얘기하신 건데
1) 첫 번째는 거짓된 맹세
2) 두 번째는 잘못된 맹세 ... 두 가지 경우입니다.
1) 여러분, 내가 지금 사실이 아닌 것을, 사람들에게 억지로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느라고
일부러 힘을 실어서 맹세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것은 그 자체로 '거짓된 맹세'입니다. 이거는 의도 자체가 불순한 거죠.
2) '잘못된 맹세'라는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해서 사실 확인조차 안 하고
무조건 자기 마음에 단정하고 정죄하는 거예요.
'걸리기만 해 봐라, 넌 죽었어!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야'
이렇게 그냥 자기 입술로 빨리 속단을 하고 맹세하는 것,
이것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라는 거죠.
사울 왕이 두 번째 잘못된 맹세를 합니다.
백성들에게는 '너희는 저쪽에 서라. 나와 요나단은 이쪽에 서겠다'
그리고 우림과 둠밈으로 다시 제비를 뽑았는데, 어느 쪽이 뽑혔어요?
자기 쪽이 뽑혔어요. 자 그러면 여러분 상상을 해 보세요.
*우림과 둠밈 :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쓰는 돌
자기 편이 뽑히는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걱정의 탄식이 나왔을 것 같아요. 왕이나 왕자에게 이제 문제가 생긴 거잖아요.
그리고는 다시 또 제비를 뽑았는데 누가 뽑힙니까? 요나단이 뽑혔어요.
여러분 사울은,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었든간에, 아니면 왕자가 되었든간에,
누구 하나를 잡아야 직성이 풀릴 거 같은 날인 거예요. 이런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죠.
◑14:43~44 '사울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가 행한 것을 내게 말하라
요나단이 말하여 이르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
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사울의 추궁에 요나단이 대답을 하는데, 요나단의 대사를 보면
굉장히 짧지만, 그가 얼마나 내면세계가 건강한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자기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꿀을 먹었다...'
왕의 명령을 어기게 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죠.
그러면서 '억울하다. 날 살려달라, 난 못 죽는다' 이렇게 얘기하지 않고,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제가 왕의 명령대로 죽어야 된다면 죽겠습니다' 이렇게 표현을 해요.
이렇게 착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사울은 뭐라고 쏘아붙이냐면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내가 너를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나에게 임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여러분, 레위기를 보면, 부지 중에 지은 죄는, 속죄제물을 드려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에 나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잘못된 맹세를 성실하게 실천하려는 인물이었죠.
제가 예전에 네 가지 리더십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드린 적이 있어요.
'똑부 똑게 멍부 멍게' 기억나세요.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 등
사울은 '멍부 리더' 타입인 거예요. 멍청하고 부지런한 리더라는게 뭐냐면,
잘못 결정을 하고, 그것을 열심히 이루려고 하는 사람,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열심히 추진하는 사람,
그는 자기만 망하는게 아니라, 자기와 함께하는 조직이 다 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울의 잘못된 맹세와 잘못된 열심은, 지금 요나단을 죽이려고 하는데
이후로는 다윗을 죽이려고 하죠.
'다윗,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리고 다윗 사냥에 자기의 평생을 바치니까,
인생 낭비, 국력 낭비가 얼마나 심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면, 감정이 잘못되고,
감정이 잘못되면, 그 사람의 의지가 잘못돼요. 그래서 전 인격이 망가지게 돼 있다고요.
저는 굉장히 다양한 분들을 만나잖아요.
근데 정신과적인 질병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이 뭐냐면,
망상 장애예요.
망상 장애라는 것은, 이제 잘못된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인데,
인생의 다른 영역은 멀쩡해요. 근데 딱 그 영역만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병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지 않아요.
병이 있다고 인정을 해야 치료를 받으러 갈 거 아니에요?
그래서 망상 장애 환자들은, 자기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료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사울은 어떤 타입일까요? 사울은 피해 망상입니다. 자기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이걸 이룰 수 있었는데, 내가 손해를 보고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해자를 찾아야 되고, 가해자를 제거하기 위해서, 모든 걸 쏟아부어야 되는 거예요.
불행한 인생이죠. 자기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의 가정도, 그의 나라도 불행한 거예요.
여러분, 진리의 말씀과 진리의 영이 충만한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 하나님, 우리 가운데 임하여 주셔서
우리의 생각에 질서를, 우리의 감정에 평안을, 우리의 의지에 거룩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고후10: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여러분! 우리의 '생각의 영역'이 영적 전쟁에 최전선이라고 말합니다.
왜요? 우리 생각에 왜곡된 인지를 딱 심어주는 순간, 이게 도미노처럼 무너지게 돼 있어요.
사람이 내면적으로, 존재적으로!
지난 한 주간 동안 제가 많이 얘기했던 건데요.
인생이 힘든 구간을 지나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주님, 힘듭니다'
딱 이렇게 1절만 호소하십시오.
그렇지 못하고 2절 3절 넘어가서 '뭐 하나님이 나를 버린 거 아니냐?'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망쳐졌어!' 이렇게 자꾸 2절 3절로 넘어가지 마십시오.
가족 탓을 하고... 집에서 창을 던지고 그러면... 더 어려워지게 돼 있습니다. 왜요?
내 소중한 사람, 내 소중한 공간을 스스로 무너뜨리잖아요.
그러니까 힘들어서 하소연을 했는데, 더 힘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 사울의 내면 세계를 보면, 사울은 잘못된 맹세를 왜 강행하려고 했을까요?
이게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나는 이 맹세를 신성하게 여겨서 지키려고 했을까요?
아니면 자기가 내뱉은 말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되는 걸까요? 후자인 거예요.
이런 자기애적 성향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사람이잖아요.
이 사람은 원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백성들이 하나님과 지켜야 되는 약속, 제사장만 제사를 집례할 수 있다는 그 약속도,
쉽게 무너뜨리는 사람이잖아요.
'이 맹세가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야 된다'가 아니라
'자기가 말했기 때문에 지켜져야 된다'는 거예요. 내 말이 곧 법인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 법이 아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을 내세워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했던 것이죠.
▲제가 교회에서 굉장히 많은 가정들을 상담하면서
여러분에게 벌써 올해만 한 세 차례 이야기를 하는 거 같은데
정말 간곡하게 권면 드리고 싶은게 있어요. 그건 뭐냐면,
가정이 깨어지고 아픔이 있고,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녀들이 방황을 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너무나 모범적인 가정에서 자녀들이 방황하게 되더라는 거예요.
제가 상담하는... 방황하는 자녀들 케이스의 절반이 그래요.
그럼 모범적으로 살지 말라는 거냐? No
부모가 과거에 학생 때 모범적으로 공부했어요. 부모는 모범적으로 직장 생활 했어요.
부모가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요. 근데 참 놀랍게도 그런 상황이 되면
아이가 굉장히 숨이 막히게 돼 있어요. 희한합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적으로 바른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부모가, 주일 아침마다 싸우는 거예요.
'왜 이불에서 빨리 안 나와? 왜 준비 빨리 안 해?
너 주일 예배 안 나가면 용돈 끊을 거야!'
'너 아빠하고 얼굴을 보지 않을 생각이냐?
너 신앙생활 열심히 안 하면, 하나님이 너를 치실 수도 있어!'
이런 부모님의 강압적인 신앙 교육,
'아니 그럼 목사가, 성도 가정의 자녀가 주일날 안 나와도 된다는 얘기를 하는 거냐?' No
물론 주일 성수는 소중하고 중요하죠.
그러나 정말 그게 소중하고 중요하고 좋은 것이면, 좋게 얘기를 하셔야 돼요.
아무리 좋은 것도, 강요하고 강압하면, 안 좋은 것이 됩니다.
아이들은 내용을 듣는게 아니라, 그 내용을 전달하는 부모의 태도를 보는 거예요.
'와 저렇게 성질을 내다니...'
그러니까 여러분 집에서 분위기 좋을 때, 신앙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애가 말을 안 들을 때, 교회 안 나오려고 할 때,
1년에 한 두 번 '새벽기도회에 가자' 그러는데
그런 날에 '내가 왜 새벽에 교회가야 되는데?' 그러고 성질낼 때,
그럴 때만 부모가 신앙 이슈를 말하게 되니까,
자녀가 신앙에 대해서, 반발하게 되는 거죠.
자녀는 이런 분위기를 기억한다고요.
그 (좋은) 말을 하는 부모의 태도를 기억한다고요.
▲여러분, 왕이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서 열심히 싸우고 승리하는 거는... 좋은 거죠.
그런데 자기 백성들을, 자기 아들마저 죽일 듯이 밀어붙이면서 전쟁을 하는 왕은,
이건 안 좋은 거예요.
물론 부모님들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저도 부모이고, 아들이 둘 있잖아요.
여러분, 부모들이 제일 걱정하는게 뭔가요? 아이가 신앙을 버릴까 봐!
'이러다가 내 아이가 하나님과 멀어지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이 아이가 열심히 인생을 살았는데,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는 커녕,
아이의 인생에 화가 임하면 어떡하지? 그럼 내가 아이를 제대로 못 키운 게 되잖아...'
여러분 그런데, 제가 이제 '두려움'에 대해서 늘 말씀드리는 건데
여러분이 그것을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그 일이 일어나게 돼 있어요.
'아이가 하나님을 떠날까봐 두려워서' 내가 아이를 압박하고
나의 강박과 집착을 아이한테 몰아붙이잖아요?
그러면 아이가 실제로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고요.
그런 케이스를 저는 계속 보는 거예요.
내가 두려워서 아이에게 신앙 이야기를 하는 중에,
내가 화를 내고, 싸우고, 혼내고... 그러면 아이는 '이거 신앙은 정말 안 좋은 거네'
이런 생각을 하게 돼 있어요.
근데 부모는 뭐라고 생각하냐면 '나는 신앙이 좋은데, 애는 신앙이 안 좋은데,
이걸 어떻게 하지?' 여러분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 있다면, 기도하셔야 돼요.
너무 쉬운 얘기라서 여러분의 아무 반응이 없지만,
여러분, 왜 기도를 하셔야 되냐면 기도 가운데 여러분이 몸부림치면서
자녀의 인생에 대한 부모에게 있는 근본적인 두려움을 내려놓으셔야 돼요.
그래야만 아이에게 신앙을 이야기할 때, 평안이 아이에게로 흘러가게 돼 있어요. 할렐루야!
▲저는 어린 시절에, 정말 제 인생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 내버려 두고, 포기하고 인생을 살았거든요.
제가 제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확신이 없을 때, 저희 어머님은 저를 위해서 새벽마다 기도하고
금요일 철야기도 하고, 밤마다 기도하시고....
그렇게 기도하며 하나님께 얻은 확신을, 저에게 얘기해 주시는 거예요.
'상준아, 너의 인생은 하나님이 반드시 귀하게 쓰실 것이다'
재평생에 정말 감사한 것은, 저희 어머님은 일찍 떠나셨지만, 저에게 화를 내신 적이 없어요.
지금 제가 생각해보면 '야 얼마나 아들이 한심했을까?'
아들이 공부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뭐 제대로 하는게 없는데
'도대체 얼마나 한심하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두려움과, 불안과, 근심과, 걱정을,
어머니는 기도의 자리에서 다 쏟아 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확신! 그걸 어린 제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 확신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흘러가는 부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4: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여러분, 왕이 맹세를 하니까, 이번에는 백성들이 맹세를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맹세가, 왕의 맹세를 압도했잖아요.
그럼 이 45절의 결론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 세 가지를 생각해 보면,
이 백성들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사울이) '내가 더 쫓아가서 더 잡아야 되는데...'
1) '아직 얻지 못한 것을 바라보지 말고, 이미 하나님이 주신 승리도 너무나 귀하지 않느냐?'
여러분, 이렇게 감사의 고백을 하며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불만을 사라지게 할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불안심리를 녹이는 효과가 있어요.
불안심리라는 것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놓치게 될까봐 불안 불안한 것이거든요.
근데 감사의 고백이 있으면, 이 불안심리가 사라지게 돼 있어요.
2) 두 번째, 오늘 이 승리는 하나님과 요나단이 동역한 결과였다는 거죠.
사울은 자기애 적 성향이 강하니까, 자기가 주인공이 돼야 돼요. 자기 멋대로 해야 돼요.
그런데 '사울 당신이 주인공이 아니고, 하나님과 요나단이 오늘이 승리를 이룬 주인공이다.'
3) 세 번째, 사울의 맹세가 무효화 됐잖아요.
이것을 통해서 사울의 맹세가 잘못됐다는 걸 보여준 거예요.
왕의 과실은, 사실은 왕의 오판 때문에 생긴 문제였던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리더십을 논할 때, 여러가지 핵심적인 것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디시젼 메이킹, 바른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냐?'
사울이 '오늘 음식을 먹는 자는 죽으리라. 왕자 요나단일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여러분, 잘못된 결정을 내려놓고, 그것을 공표하고, 사람들에게 호언장담하잖아요.
결국에 백성들이 고기를 피채 먹게 되고, 14:32
요나단이 아버지의 그 명령을 모른 채 과실을 범하게 되고...
그렇다면 이 전체 스토리를 읽는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야 백성들이 잘못했네...' 이렇게 생각을 할까요?
'왕자가 잘못했네..' 이렇게 생각할까요? No
'왕인 사울이 잘못했네' 이렇게 생각하게 돼 있다고요.
그런데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을 할 줄 모르죠.
여러분,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자기 잘못을 잘 인정 못하는 사람들이 있죠.
자 그러면 '이 사람이 자존심이 세서 그렇다'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아요.
여러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면, 두 번째 문제가 생기는데
(나의, 또는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게 돼 있어요.
내가 내 잘못을 인정해야, 내 잘못을 스스로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요.
그러니까 사울은 그게 안 되니까 아들의 실수도 용서할 수 없고,
아들의 인생을 용납해 줄 수가 없는 거예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소중한 지인들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얘기해요.
'나는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기 때문에, 바르게 살아왔기 때문에, 당신을 용서 못하는 거다'
아니에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은혜를 베풀지 못하게 돼 있어요.
이걸 제가 아는 것은, 제가 십대 때, 아주 심각한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이에요.
제가 제 자신을 볼 때, 내 관점과 내 생각과 기준은 완벽주의인데,
어린아이가 어떻겠어요? 엉성하고 실수 투성이잖아요.
그런 나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어서... 제가 늘 죽고 싶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니까, 가족도 용서하지 못하고, 친구도 용서하지 못하고,
늘 집에서 싸우고... 학교에서 싸우고... 맨날 싸우고 다녔어요.
그런데 지금은 나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용납해 주시는 주님이 계시잖아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교회에서도 만약에 제가 잘못한게 있으면,
'어, 이건 제가 실수한 겁니다. 제가 잘못한 겁니다' 하고 편하게 인정하는 거예요.
내가 어떤 성경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제가 답을 모를 때면
'제가 모르는데 제가 알아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편하게 인정하는 거예요.
목사들이 이거를 편하게 인정하기가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내가 나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어야, 용서할 수 있고,
그래야 다른 사람의 잘못도 용서하고, 그 사람을 용납해 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요나단이 아버지의 자기 합리화 때문에 죽을 위기까지 처했었잖아요.
여러분 이런 일들이 가정에서 종종 일어납니다.
우리가 사울같은 아버지 어머니라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아버지의 체면을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대리만족을 위해서...
'야, 내가 내 인생의 젊은 날을 다 바쳐서 내가 대학 공부하고, 내가 직장 생활하고,
결혼해서 내 꿈을 이루는 거 다 포기하고 너를 키웠는데, 네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해?
네가 인생을 열심히 안 살아?' 하면서 아이를 몰아부치는 거예요.
엄마가 이루지 못한 인생의 만족, 꿈... 이걸 네가 이루어야지!
'내가 너를 위해서 이 모든 희생을 다했는데...'
그래서 엄마의 대리만족을 위해서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거죠.
왜 우리가 자녀들의 잘못이나 실수를 보면서,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가요?
두 가지로 심리적인 이유를 보면,
1) 자기 인생의 불안과 불만족을 아이에게 쏟아붓는 거예요.
사실은 내가 내 인생에 만족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불안하고, 내가 두려운 거예요.
그걸 아이한테 막 쏟아붓고 있는 거예요.
2) 두 번째는 정반대인 거 같은데, 사실은 동전의 양면이에요.
뭐냐면 내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권력 의지가 강한 부모들이 있어요. 안 그런 거 같죠?
'내가 장차 널 왕으로 세우는 거야...' 이게 사울이 늘 요나단에게 하는 이야기거든요.
'내가 너를 제대로 된 인생으로 키우는 거야, 내가 너 인생을 성공시켜 주려는 거야,
내가 널 살리는 거야, 엄마 말을 들어야지 네가 사는 거야...'
근데 이 말의 이면엔 뭐가 있을까요? '말 안 들으면 너는 나 한테 죽어!'
이 무시무시한 얘기가 담겨 있는 거예요. 섬뜩한 얘기죠.
여러분, 아이나 배우자를 심리적으로 머니플레이션(조종) 하면서
내가 비로소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이 두 명 이상이 모여있으면, 권력 의지가 있거든요.
이건 정치인만 있는게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컨트롤을 하는 순간, 사람은 강해지게 돼 있어요.
자 제가 이제 심리적인 이야기를 계속 하니까,
지난주에도 한 분은 '제가 심리학을 전공하는데 너무 재밌습니다'
또 한 분은, '심리 얘기만 계속하니까 잘 못 알아듣겠습니다'
자 지금 이 상황을 조금 쉽게 설명하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힘이 세져요, 약해져요?
힘이 세집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구출하러 들어갔던 사람도, 그 사람이 괴물 같은 악력(쥐는 힘)이
발휘되니까... 같이 죽는 거예요.
여러분, 사울이 방금 전까지 두려워하고 위축되어 있던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조금 기를 펴게 되니까, 사람들을 막 죽이려고 합니다.
자기 부하들을 막 죽이려고 합니다. 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물에 빠진 사람 심정'이에요.
두려움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강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요.
그건 그 사람이 강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약한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자꾸 소리 지르는 사람은, 사실 내면이 강한 사람이 아니고, 약한 사람 이에요.
강한 사람은 그렇게 소리 지를 일이 없어요.
사울이 겉으로 볼 때는 굉장히 강해 보이지만, 내면 세계가 굉장히 약한 사람인 거예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성령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이시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귀신 충만'하면, 귀신은 사람을 꼭두각시 인형놀이 하듯이,
인격적으로 대우하는게 아니라, 조종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사탄에게,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 인격이 파탄나고,
그 사람의 인생이 마귀에게 조종을 당하거든요.
그런데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신다고요.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면,
나도 내 가족을, 내 주위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요나단과 사울의 인생을 보면, 압도적인 군대의 힘으로 블레셋이 침공해 왔을 때,
왕이 두려워하고 있고,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있었죠...
그때 요나단은 원망하지 않잖아요. 그들을 비난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자기가 생명 걸고 나가서 승기를 잡아오잖아요.
그런데 사울은 거꾸로입니다. 자기가 위축되어서 두려워 떨던 사람이,
이제 좀 기를 펴게 되니까, 음식 먹겠다는 백성들을 죽이려고 하고,
아무 것도 모르고 먹은 아들마저 죽이려고 하잖아요.
요나단은 어디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되는지를 아는 사람이고,
사울은 어디에서 목숨 걸고 싸워야 되는지를 모르는 사람인 거예요.
제가 또 쉬운 질문을 할게요. 가정에서 교회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목숨 걸고 싸우면
돼요, 안 돼요? 안 돼요!
오늘 교회로 오시면서, 이미 한판 싸우신 분들도 있을 거예요.
'오늘 춥다고 미리 옷 준비하라 그랬지? 그런데 왜 옷을 갖춰 입지 않았니?'
'왜 빨리 안 나와? 시간이 늦었는데...'
그럼 예배가 소중하다는 얘기를 하는 건데... 물론 예배가 소중하죠.
그러면 좋은 걸 얘기하려면, 좋게 얘기하셔야 된다고요.
그래서 올 때 싸우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오늘 목사님 설교 들었지? 바로 네 얘기야!' 그러면서 또 대판 싸우고...
원수 사탄과 싸우고, 어두운 세상과 싸워야 되는데, 왜 아군끼리 자꾸 싸우고 있는가요?
제가 캐나다에서 이민 목회하면서, 발견한 문제점이 이거예요.
한국에서 자기가 뭐 좋은 직장 다녔어도, 아무런 경력, 학력, 이력이 인정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거기 가면 그냥 육체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분들이 캐나다 주류 사회에서는 눌려서 아무 소리를 못 내다가,
교회 와서는 큰 소리 지르면서 싸웁니다. 왜요? 같은 한국 사람들이고, 만만하니까...
그래서 싸우는 거예요. 교회가 맨날 싸워요.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거예요. 사울하고 똑같죠?
위축돼 있다가, 조금 기가 펴지면, 성질내고 싸우는 거예요.
그러면 이민 사회만 그럴까요? 한국 사회도 똑같아요.
여러분 직장에서 상사에게 잘 보여야 되잖아요. 거래처에 잘 보여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 앞에서는 굽신거리다가, 집에 와서 자기 아이들, 또는 자기 아내한테는
막말하고 성질내는 거예요. 이것처럼 비열하고 치사한게 없어요.
본문의 사울왕과 모양이 똑같은 거예요.
'야 내가 그렇게 치사한 인간이었나?' 자기 자신을 좀 돌아볼 필요가 있거든요.
그런데 아빠들만 그런가요? 엄마들도 똑같아요.
아이들이 뭐 처음부터 끝까지 말 안 듣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다가, 전화가 걸려오면... 순식간에 음성 변조 되잖아요.
'아니 집사님...' 그러면서 막 천사의 목소리가 나오죠. 천사의 목소리!
애들이 막 눈이 휘둥그래져서 '(엄마를 보고) 저 분이 누구신가?'
여러분, 우리 안에 절반은 사울이라는 걸 아셔야 돼요.
내가 이걸 어떻게 해야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두려움의 문제를 사람한테 쏟아 놓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도로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셔야 돼요. 그래야만 축복이 내게서 타인에게로 흘러갈 줄로 믿습니다.
요나단과 같이 귀한 자식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내가 사울 같은 부모라면,
얼마나 비참한 이야기입니까? 이건 안타까운 거예요.
'이 나라에서 하나님이 왕이신가, 사울이 왕인가?'
조직 직제상 사울이 왕이 맞죠. 그러나 그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이 계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왕이신가, 내가 왕인가요?
물론 인생은 내가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러나 나에게 오늘 하루 호흡을 주시고, 오늘 생명을 주시고,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내 영혼아 평안할 지어다!'
사람이 두려움 가운데 있으면, 두 가지 정반대 패턴이 나온다고 그랬죠.
-확 위축돼 있거나
-조금 기가 펴질 것 같으면 폭주하거나
사람이 이 두 가지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게 돼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내 근심, 걱정, 두려움을 다 맡겨 드리면
하늘의 샬롬, 하늘의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하고, 그래서 내가 평안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여러분은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어요.
'아들아, 네가 공부를 안 하려고 하는구나. 공부하면 다 너에게 유익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평안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제가 틴에이저 때 공부도 안 하고, 뭐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
저희 어머니가 '반드시 하나님께서 너를 만나 주실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실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은 너를 세우실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은 너를 쓰실 것이다...'
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어머니는 평안한 음성으로
나에게 블레싱을 계속 해 주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여러분 그런 부모가 되셔야 돼요. 이 시간에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