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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장 십자가와 그 좁은 길

LNCK 2025. 4. 17. 21:14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고난주간>      ▣ 십자가

십자가와 그 좁은 길 | 마 7:13-14 | 25.4.14 - YouTube

 

◈십자가와 그 좁은 길             마7:13~14                  2025.04.14.  

◑도입

금년 고난 주간 특새 주제가 "십자가, 예수 따라가는 길" 입니다.
십자가는 추상(관념)이 아니죠. 
그리스도가 걸어가셨던 길을 우리가 따라가는 거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가셨던 발자국을 우리가 보면 되는 거죠. 그 길을 보고 따라가는 겁니다. 

십자가가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라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주님이 걸어가셨던 그 발자국이 선명하니까, 그 길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추상이 될 수가 없고, 우리가 매일 걸어가야 될 현실이 되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딱 하나예요.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겁니다. 
항상 기준은 그거예요. '누가 어떻게 했느냐?' 뭐 이런게 아니고, 
뭐 위인이나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고, 
항상 그리스도가 걸어가셨던 그 길이... 우리가 따라가는 기준입니다. 

근데 이게 쉬운게 아니에요. 
왜냐면 그리스도가 걸어가셨던 길이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쉬운 길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나 쉬운 길은 아니지만, 우리의 목표는 십자가여야 된다는 거죠.

그리스도가 목표고 그리스도가 걸어가셨던 길은 십자가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방향은 언제나 십자가 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는 '세속화'가 매우 깊어졌습니다.      ↔십자가 신앙
'세속화'라는 말은, 교회와 교회 바깥이 같아졌다는 거예요. 

교회가 세상과 비슷해지고, 또 우리도 세상에 나가면 별로 다를 바 없는 세속화!
그래서 이 시대에 십자가는 굉장히 아련합니다. 

우리의 교회 안에도 이미 십자가의 복음이 굉장히 희미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난 주간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이 고난 주간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분들을 저는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이 십자가 주제를 가지고, 한 주간동안 여러분들과 이렇게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신앙생활에서 십자가를 빼버리면, 종교 생활로 전락하는 겁니다. 
그냥 종교 생활이에요. 종교 클럽에 다니시는 거고... 
그래서 우리가 종종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돼요. 
점검할 때 항상 기준은 십자가입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멀어졌느냐, 가까워졌나요? 

십자가를 믿는 것과, 십자가를 실제로 따르는 삶은 다른 것입니다. 
믿는다는 사람은 많아요. 근데 거기를 따라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결코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종종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시됩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르면, 세상 살아가는 방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길이에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변형된 십자가'를 따르는지도 모릅니다. 
일그러진 십자가, 그 희석된 십자가의 복음! 
그건 우리가 개발한 십자가이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십자가 아닌 거죠.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면, 십자가를 다시 선명하게 (정립)해야 됩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이 십자가를 따르는, 그리스도를 예수를 따라가는 길이라는 
주제를 살필 텐데, 십자가를 다루기 때문에, 내용이 좀 강도가 높을 수 있어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도 '십자가와 그 좁은 길' 그랬잖아요.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나올지라도, 
오늘도 '좁은 길'을 듣고, '이 길은 아닌가 보다' 생각하지 마시고,
결국 이 길이 '기쁨의 길'입니다.  *금요일 설교제목

강도가 높은 말씀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 자체가 버겁습니다. 
저도 설교하기가 솔직히 버거운 주제입니다. 

십자가는 깊습니다. 너무 깊어요. 그래서 신비롭습니다. 
저도 매년 고난 주간에 십자가 설교를 하지만, 매년 신비롭습니다. 
너무 신비롭고, 경이롭고, 찬란하고, 아름답고...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너무 가볍게 다루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표피적으로 십자가를 훑고 지나가는 거죠. 

섣부르게 십자가를 대하면 다칩니다. 그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요. 
십자가는 굉장히 레디컬(급진적) 하죠. 또 터프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것을 이제 요구하는 것입니다. 

자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길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예요.
이 십자가는 우리의 신앙을 교정해 주는, 그런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길을 걷는 자'라고 할 수 있죠.
'예수를 따라가는 길' 이라고 할 때, '길'이라는 말은 

우리가 길을 걷는 사람들이고, 또 천국에 도달할 때까지는, 우리는 길 위에 있어요. 
순례자이기도 하죠.  on the way 

근데 이 길은 끝이 있어요. 근데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길을 걸을 때는 언제나 이정표가 중요하죠. 
어디를 가면, 가는 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이정표가 잘 세워져 있으면, 길을 걸을 때 큰 도움을 받습니다. 
낯선 길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죠.

근데 이정표가 너무 오래돼서 지워져 버리거나, 또 이정표가 없으면, 길을 잃어버리죠. 
그러면 위험한 거죠. 낯선 길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위험한 겁니다. 
자칫하면 광야에서는,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정표를, 이번 한 주간 동안 
'십자가'라는 이정표를 따라가는 거죠. 

그런데 신앙의 길, 순례길을 걸어가다 보면, 두 갈래 길이 나옵니다. 
그래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항상 인생은 선택이고, 또 믿음의 삶도 선택입니다. 
우리가 항상 어떤 일을 선택해야 되잖아요. 그죠? 
선택할 때는 반드시 무엇이 요.구되느냐? 믿음이 요구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뼈 아픈 경험을 했던, 그런 것들이 있을 거예요. 
그때는 분명히 믿음의 선택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믿음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선택했던 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실수가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말씀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택해야 되죠. 
오늘 아침에도 우리가 그런 일(믿음의 선택)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에서, 첫 번째로 우리가 선택해야 될 것은 
좁은 길과 넓은 길 사이의 선택입니다. 

우리 인생에 수많은 길들이 나옵니다. 
우리 인생이 가는 길에, 수많은 갈래 길이 나오는데, 크게 나누면 두 길입니다. 
하나는 넓은 길이고, 하나는 좁은 길이에요. 

여러분들이 이 두 갈래 길의 선택 지점에서, 반드시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이제 나아갈 길을 선택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거예요. 
-넓은 길로 갈 건가 
-좁은 길로 갈 것인가?
여러분, 선택을 앞두고 기도할 때... 딴 거 없습니다. 이게 선택의 갈림길이예요. 

인간의 본성적 마음은, 넓은 길로 가고 싶어 하죠. 편한 길, 꽃길입니다.
'꽃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가시밭길로 걸어갈 것인가?' 
자, 이 두 길 사이에 선택해야 될 상황에 놓인다는 거예요. 

'주님, 내가 선택을 해야 되는데, 어떤 길입니까?' 
두 길은, 비슷한 길이 아니에요. 완전히 다른 길이예요. 

십자가의 길은 어느 길일까요? 당연히 좁은 길이죠.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이 어디입니까?' 하고 물을 때, 
어려운 길이면 그게 맞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려운 길을 안 가고, 자꾸 넓은 길로 선택해서 가는 거죠. 
세상을 향하여 가는 길은, 넓은 길이에요. 
주님이 걸어가셨던 길은 좁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길의 결과는 확연히 다르죠. 
넓은 길로 가는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고...
근데 그 길이 너무 넓어서, 가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그 말은 뭐냐면, 대부분은 다 그 길로 간다는 거죠. 

좁은 길로 가면,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거죠. 
근데 그 길로 가는 사람은, 너무 적다는 거예요. 

멸망으로 가는 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 
멸망과 생명.... 극과 극입니다. 

근데 이 두 갈래 길에서, 우리는 심사숙고해야 되죠. 
하나는 생명의 길이고, 하나는 멸망의 길이라니까요. 

그래서 여러분, 마태복음 7장에서 두 길을 소개하는 겁니다. 
-지혜로운 길과, 어리석은 길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사람과, 하늘에 쌓아두는 사람 

-뭐 전부 다 두 길입니다. 하나님과, 제물, 
-좁은 길과, 넓은 길 

넓은 길은 어떤 것이죠? 
넓은 길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반대의) 좁은 길이 나오겠죠. 

◑1. 가족관계에 있어서 넓은 길과 좁은 길

여러분, 유대사회에서 '가족'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안정감을 주는 핵심이죠. 

특별히 농사를 짓던 시대에 가족 구성원이 생계에 영향을 줘요. 
우리나라도 옛날에 자식을 많이 낳으면, 농사를 짓는데 도움을 받잖아요. 

이렇게 가족 관계가, 좁은 길로 또는 넓은 길로 가는데 있어서  
이게 우리에게 하나의 장애물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굉장히 급진적이에요. 
좁은 길로 가는데 방해가 되는게 뭐냐? 그걸 제거해야 된다는 거죠.

그 첫 번째 갈림길이 가족 관계입니다. 
주님은 가족 관계를 통해 주어지는 의존적 관계를 끊으라는 거죠.

눅14: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첫 번째 요건이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굉장히 과격한 말씀이에요.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식 형제 자매를 미워하라... 는 것은,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거죠.
우리는 여기서 숨겨진 뜻을 파악해야 합니다. 
가장 안정감을 주는 관계인 가족관계까지도, 예수님은 흔들어 버리시는 거죠. 

여러분,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가 적용해야 합니까? 
아브라함을 부르신 장면을 보세요.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이건 보통 얘기가 아니에요. 

자, 주님은 하나님 외에 의지할 만한 것들의 싹을 다 잘라버리라는 겁니다.
내가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하나님 아닌 것을 의존하고자 하는... 
모든 싹을 다 잘라버리라는 거예요. 그게 좁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히 농경시대, 부족시대에서 그건 너무 어려운 명령이었죠.
아브라함에게 '너의 고향과 아버지 집을 진짜 떠나라'는 거예요. 이건 잔인한 거죠. 

여러분, 십자가의 길에 가족이 방해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가족은 혈육이잖아요. 근데 가장 기본적인 그 혈육의 관계까지도 경계하라는 거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성경은 진짜 부모를 미워하고 배우자를 미워하라는 건 아니죠.
성경은 에베소서 6장에 보면, 부모를 공경하라, 부부가 사랑하라, 형제간에 화해하라... 
가족관계를 강조하잖아요. 

예수님은 가족 정도가 아니고, 자기 자신조차 미워해야 된다는 거죠. 
그게 주님과의 관계를 방해한다면, 주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정리해라는 거죠.

'네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느냐?'는 거죠.
주님보다 늘 '자녀, 자녀...' 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건 좁은 길로 가는게 아니에요. 넓은 길로 가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좁은 길로 갈 때, 가족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근데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그 땅으로 가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이 불순종한게 하나 있어요. 조카 롯을 데리고 간 거예요. 

서로가 나그네 길에 얼마나 의지가 됐겠어요? 근데 목초지 문제가 생기죠. 
그때 아브라함이 믿음의 선택을 합니다. 뒤늦게나마... 
'아, 같이 갈 사람가 아니구나' 아니 롯이 먼저 아브라함을 떠났죠. 
그제야 아브라함은, 혈육을 완전히 떠나 보낸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하시지 않습니다.
'가족도, 너 자신도 미워하라'는 말은,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따를 만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죠.

모든 대가를 지불하고, 모든 걸 다 잃어버려도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될 분, 우리가 따라가야 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예요. 그분을 놓치면 안 된다는 거죠.

근데 우리는, 우리의 삶에 가장 안정감을 주는, 가장 가까운 관계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데 계속해서 장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역사에서 많은 믿음의 사람들, 아름답게 살았던 사람들은
이거(가족 미워함)를 한번 통과해요. 여러분, 140여년 전에 우리 한국에 왔던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같은 선교사님들도 마찬가지예요. 명문가 출신들입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에 올 때는, 1~2달에 걸쳐서 배를 타고 오신 거예요.
그때 미국에서 모든 것을 다 자르고 오신 거예요. 모든 것을 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서 오신 거죠.

에콰도르에서 순교한 짐 엘리엇도 마찬가지죠. 누가 그를 쉽게 이해할 수가 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따를 만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걸 (가족 의지) 하면 통과해 보신 분이, 여기에 계십니까? 
내가 의지하고자 하는 모든 싹을 다 잘라 버리는 거죠.

주님밖에 없는, 주님만 보이는 그 선택! 어려운 거죠. 
아무나 이렇게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 특별히 십자가의 예수를 만난 사람만이 가능한 거죠. 

왜냐면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그러셨으니까요. 
그 독생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하신 분이, 아버지 하나님이시니까. 
다 끊으신 거잖아요. 

◑2. 두 번째, 우리가 좁은 길로 가는데 방해되는게 뭐냐? <물질>이에요

물질, 이게 늘 문제입니다. 물질이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주님은 물질 소유로부터 주어지는 안정감을 포기하라는 거죠. 
그래야 좁은 길을 갈 수가 있어요. 주님이 가셨던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어요. 

막10:23~25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무슨 얘기예요?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매우 어렵다... 
그럼 뭘 얘기하는 거죠? 천국 길을 갈 때, 소유가 방해가 된다면, 그 소유를 포기해라는 거죠. 

자, 갈수록 길이 좁아진다는 느낌이 들죠?
'괜히 왔네 오늘 새벽에, 이 말씀을 안 들었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죠.

예수님은 재산 소유를 부정하신게 아닙니다. 
주님은 소유를 하시지 않았지만, 머리 둘 곳이 없이 사셨지만, 
소유를 부정하신 건 아니에요. 기독교는 소유를 인정해요. 

그런데 뭘 얘기합니까? 소유의 위험성을 얘기하는 거예요. 
이 소유욕, 물질욕 때문에, 대부분은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린다는 거예요. 
천국을 놓친다는 거예요.

물질은 우리의 마음을 다 빼앗아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탐욕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그랬죠. 골3:5

물질에 마음이 빼앗기면 물질에 끌려갑니다. 영혼이 길을 잃어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눈이 어둡거나 멀어 있어요.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어요. 
눈이 있지만 보는 눈이 없어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둠의 길을 걸어가는 거죠. 

그래서 빛이 없는 상태의 길이, '넓은 길'입니다. 
그래서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언제나 염려와 두려움 가운데 살아요. 

여러분 중에 혹시 지금 염려와 두려움이 있다는 말은... 
지금 넓은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죠. 

자신이 붙들고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염려!
자신이 더 가지지 못 해서 괴로워하고,  더 가지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늘 마음에 평안이 없는 사람은... 지금 '넓은 길'로 가는 중이에요.

또 소유나 명예, 어떤 것이든...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거예요. 
가지고 있지만 늘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입을까를 늘 염려하고, 
더 많이, 더 많이 쌓으려 하고, 또 안전을 필요이상으로 추구할수록 
자기 삶에 불안이 더 엄습해 오죠. 
안정된 삶을 자기 힘으로 붙들려고 하면 할수록, 두려움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내가 안정된 삶을 추구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내 삶을 움켜쥐어야 되죠. 
움켜질수록 더 삶은 피폐해지고, 극도로 이기적인 존재가 돼요. 

이기적인 존재가 되면, 폭력적인 존재가 돼요. 
갈수록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 자기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는 거죠.
그래서 특별히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반드시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자 오늘날 여러분, 보십시오.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을 추구할수록... 행복은 더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갈수록, 멀리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늘의 비전, 천국 소망... 이런 건 뭐 관심도 없고,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 해요.
그러면 계속 세상의 염려는 늘어나게 돼요. 

여러분, 불안의 해독제는.. 하나님께만 집중할 때 해결되는 거예요. 
부와 명예와 같은 것에 고개를 돌리면, 불안과 염려, 두려움이 밀려오게 되어 있죠.
그러면 당연히 넓은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 오늘날은, 어느 시대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 세상이죠. 
근데 어느 시대보다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가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죠.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운데, 어느 시대보다 결핍 증세를 더 많이 느끼는 시대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붓기 때문이죠.
그때 자아는 갈수록 더 축소되고 소진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질의 관심을 쏟아 부을수록, 영원의 세계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돈과 영성은 깊이 연결되어 있어요. 깊이! 

여러분, 돈으로 안 되는게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착각하지 마세요. 
세상은 돈이 신인 거예요. 근데 신은 신인데 가짜 신이죠.

비극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겁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번영의 복음' 이 한국교회 안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아무도 돈 문제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혹시 요즘 돈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까? 
-신앙문제로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까?
둘 중에 걱정이 어느 쪽에 더 많습니까?

내게 돈이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돈을 성경적 기준을 가지고 사용하고 있는가요?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혹시 돈 아닙니까? 
자, 물질을 의지하는 삶은, 결국 '넓은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이 인정하시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이 좁은 길은 예수께서 가셨던 그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좁은 길로 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죠?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합니까? 
이 좁은 길로 가는 길에는 유혹이 많아요. 우리 시선을 빼앗는게 너무 많다는 겁니다. 

 

염려가 뭐죠? 우리의 시선이 분산되고, 좇는게 많을 때 염려가 옵니다. 다초점일 때!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를 좇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를 선택해야 돼요. 
넓은 길과 좁은 길을 동시에 갈 수가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몸이 하나이니까. 

문제는, 두 길이 나타나서 혼란을 일으키는 겁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두 길을 동시에 좇으려고 할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안증세, 신경성 질환을 앓고 있는 분이 있다면... 아마 다초점입니다. 
'염려'라는게 마음이 분산이 돼서, 천갈래 만갈래로 나누어져 있을 때 생깁니다. 

집중하는게 너무 많아요. 근데 집중은 한 곳에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날의 영적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졌죠. 
그 영적인 집중력을 잃어버리니까, 오만가지 세상의 것들이 나를 끌어당겨요. 

그러니까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거죠.
무슨 재주로 그 정신이 온전해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주님은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죠.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거예요. 한 분만 섬기라는 거예요.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두 길을 함께 걸을 수가 없어요. 좁은 길이냐/ 넓은 길이냐? 
그래서 주님은 한 길에 집중하라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딴 게 아닙니다. 영적인 집중력입니다. 
그 집중력은 하나님에 대한 집중력, 즉 좁은 길에 대한 집중력입니다.

두 길을 좇는 동안에는, 염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염려를 그냥 달고 살아야 돼요. 
두 길을 좇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그러니까 결단을 하셔야 돼요.  
'난 오직 이 길만 좇겠다!' 한쪽만 선택하세요. 

염려를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해 보세요. 안 돼요. 
염려와 싸움에서 우리는 못 이깁니다. 
여러분, 염려가 우리의 삶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립니까? 

해결의 길은, 염려와 싸우는게 아니고, 시선을 옮기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겁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라는 거예요. 아멘! 여기에서 결정이 나는 거예요.

자,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 겁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거예요. 

돈이 아니고.. 가족이 아니고.. 이 세상 권력이 아니고... 
내 삶을 맡길 수 있는 곳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좇는 삶을 사는게... 염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요. 

늘 돈을 생각하고, 돈을 쳐다보고 있으면서 
'염려가 없게 하옵소서' 하는 기도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아주 마귀가 주는 '염려의 영'이, 그런 사람에게 오히려 들러붙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좇아갈수록.. 삶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더 우리를 옭아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넓은 길은 우리가 보기에 쉬워 보여요. 근데 쉬운게 아니에요. 
인생이 더 꼬이는 겁니다. 더 어려워지는 겁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일이 왜 중요합니까? 
그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3.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

주님이 걸어가신 길은 좁은 길, 십자가의 길, 
주님은 십자가에서 결국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좁은 길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하셨습니까? 마7:14

여러분 좁은 길은, 우선 보기에는 험악해요. 
손해 보는 일, 억울한 일, 내 자아가 죽는 일, 
우리를 보아도 죽음의 길로 가는 것 같아요.
이 좁은 길은 죽음의 길처럼 보여요. 

근데 여러분, 그 길을 따라가면... 그 길의 끝에서 
생명을 하나님이 보장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자기가 죽기를 결심하셔야 돼요.
죽어야 부활이 오잖아요. 죽어야 살려 주시잖아요. 그래서 좁은 길은 죽는 길이에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데,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넓은 길을 자꾸 선택하는 거예요. 

막10:37절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지러 가고 있는데,
지금 제자들은 우리를 오른편에, 왼편에 앉게 해 달라는 거예요.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왕권을 회복하시면, 
우리 형제들을 오른쪽과 왼쪽에 앉히십시오' 하며, 서열 다툼, 자리 청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모습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좌에 앉기를 원하던 사람들이었어요. 세속적인 명예를 좇는 사람들! 
항상 '내 이름이 어디에 나오나?' 거기에 몰두하는 사람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 길을 가시고 있는데, '오른쪽 왼쪽' 할 때예요? 
세속적인 명예를 좇는 거잖아요. 

제자들에게는 십자가의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때 주님은 이렇게 자리 다툼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막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너희는 지금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길을 잃어버렸다. 
멸망으로 가고 있는 넓은 길을 너희가 선택하는구나...' 

그러면서 예수님은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 잔이 뭐죠.?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너희가 내 고난의 동참할 수 있느냐?'는 거죠. 

지금 제자들은 받을 영광만을 생각하고 있는 거잖아요.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이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과 똑같아요.
인기와 명예를 구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환호와 박수를 받고자 하는.... 

여러분, 십자가의 길은 인기 있는 삶이 아닙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그 길을 가는게 아니에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가는 거지요. 

여러분, 좁은 길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는...그래서 열매를 맺는 거잖아요. 
썩어야 생명의 탄생하는 거거든요.  요12:24
좁은 길은, 이 썩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예요. 

썩는 것은, 땅 속이라서 보이지 않잖아요. 근데 썩어야 돼요.
그 썩는 과정은 아무도 알 수가 없어요. 흙 속에 가려져 있는 거잖아요.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자기 과시로 나아가고 있죠.
스펙을 부풀리고, 경력을 부풀리고, 그냥 자기를 드러내고, 나를 봐 달라고... 
거의 발악을 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탐욕이 무서운 거예요. 
뭐 나라를 위해서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막 선전하는데... 
그 인간의 내면에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겉으로 보면 멋있잖아요. '나라를 위해서!' 
근데 대중 앞에 환호를 받는 그의 내면에는, 부글부글 거리는 탐욕이 있을 수도 있죠.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그래서 역사 속에서, 언제나 그게 드러나는 거예요. 
인간의 탐욕으로 무너지는 거예요. 자기 숭배, 자기 우상화.... 

여러분, 사람들 앞에 내가 불가피하게 드러났을 때라도... 조심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누가는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 앞에, 한 단어를 딱 넣었어요. '날마다'
(복음서의 다른 병행구절에는 '날마다'가 없어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 날마다 죽으라는 거예요. 눅9:23
여러분, 우리의 자아가 얼마나 매일 펄펄 살아나는지 몰라요. 왠만하면 안 죽어요. 
그러니까 좁은 길을 가기가 힘든 거죠. 

좀 억울한 일을 당하면 견디지를 못해요.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불안해 가지고 야단하죠. 
자아가 막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나 여기 있어.. 내가 얼마나 충성했는데...' 

여러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을 줄 알아야 돼요. 물론 힘들어요. 
아니, 결혼생활 한 30년 했으면, 둘 다 다 죽어 있어야지요... 

결혼한지 30년, 40년이 되었는데, 아직 전혀 안 죽었어요.
돌아가실 때까지도, 그냥 혈기가 남아 있는 분이 있어요. 진짜 대단한 거예요. 

갈2:20절을 늘 암송하세요. 그리고 날마다 자아가 죽는 길을 연습하세요.
그게 생명의 길, 행복의 길, 참 자유의 길입니다.

우리 본성으로는 그게 안 돼요. 그게 우리 본성은 남을 자꾸 이기려고 그래요. 
남한테 절대 안 지려고 그래요. 

그렇지만 여러분, 누가 나를 이기려고 하면, 그냥 져 주세요. 
그분은 이겨야 사는 분이고, 우리는 죽어야 사는 사람이니까요!

자아가 죽으라고 하면, 진짜 힘들어하는 분들 많아요. 
여러분, 봉사 열심히 하는게 중요하지 않아요. 
다들 교회 봉사는 열심히 해요. 근데 봉사하면서 자아가 죽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목사님도 한 평생 헌신하고 나서... (은퇴할 때 허전하겠지만) 죽으면 돼요. 
안 죽으려고 하니까... 목사님들이 은퇴할 때 막 시끌법적 한 거죠. 
좋은 일을 하고 나팔 불지 말라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교회도 우리 교회의 이름을 막 자랑하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 예수 이름만 자랑하면 돼요. 여러분 우리 수영로교회 교인들은 겸손해야 돼요.

'우리 교회는 부산의 최고의 교회다!' 그러지 마세요. 예수님만 자랑하세요.

기도 생활 열심히 하는게 중요하지 않아요. 
기도 생활을 오래 했으면, 자아가 완전히 죽어야지요.

기도 열심히 한 걸 가지고, 다른 사람 그냥 기죽이면... 그런 기도는 말짱 도루묵이에요. 
좋은 일 하고 나서, 조용히 묻히는 겁니다. 그걸 훈련해야 돼요. 죽는 훈련!

십자가로 가는 길이 그거예요. 
십자가는 완전히 죽는 거예요. 

그래서 본 훼퍼 목사는 그런 얘기를 해요. 
'그리스도가 우리를 부르신 것은 죽으라고 부르신 것이다' 

그런데 다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교회들이 시끄러운 거예요. 
여러분 사역을 하다가 시끄러우면, 잘못하는 거예요. 절대 잘 하는게 아니에요. 
조용 해야 돼요. 사역이, 그 사역자가 그냥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흘러가는 거예요. 

자꾸 소리를내는 거죠... 자기 소리를 내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고, 과시하려고 하면,
그거는 넓은 길로 가는 거예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겁니다.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걸 증명해야 합니다.

섬기면 섬길수록 내가 더 죽어가는 사람...
그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이며, '좁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면, 
더 이상 세상에 대해서 염려할게 없어요.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에요. 
이제 '나'라는 자아는, 이전에 옛 자아가 아닌,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새 사람, 새 생명을 가진 자아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승리가 보장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한 거죠.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두려움이 올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길을 가야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던 제자들도, 늘 두 가지 길에서 혼란스러워했어요. 
십자가의 길과 배신의 길 사이에서, 배신의 길을 선택할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아차 하면 십자가의 길에서 벗어나는 거죠.
십자가의 길은 세상의 길과는 너무 다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은 언제나 낯설어요. 
불편하고 너무도 좁은 길이지만, 우리를 홀로 가게 하시지 않습니다. 

 

이미 주님이 그 길을 걸으셨고, 우리가 그 길을 갈 때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죠. 
바울은 그 십자가의 길을 따라갔고, 그리스도가 받은 고통에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 없는 승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거쳐야 돼요. 
근데 그 길이 좁은 길이예요.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의 이정표를 삼아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점점 넓은 길로 가고 있지는 않는지? 
이번 고난 주간에 우리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아야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이전보다 더 어렵고, 더 억울하고, 더 손해보고, 더 외롭다면...
잘 가고 있는 거예요. 

'왜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힘들지?' 
그게 제대로 가고 있는 거예요. 

'신앙생활이 편해 진다?' 잘못 가고 있는 겁니다. 
고난을 어색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은 어려운 겁니다. 
누가 쉽다고 얘기했습니까? 

목사님들도 그러더라고요. 목회가 어렵대요.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리더라고요. '목회가 본래 어렵지... 쉽나?' 
하나님이 하실 일을, 인간이 하니... 그게 얼마나 어렵겠어요?

여러분 처음에는 좁은 길로 가다가, 어느 정도 가면 넓은 길이 열리는게 아닙니다. 
좁은 길은 계속 좁은 길입니다. 

신앙의 길을 오해하니까 문제가 생겨요. 
'좁은 길이 아니고, 가면 편해진다'고 생각하니까... 타협을 하게 되는 거잖아요. 
십자가 신앙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면, 가까운 사람들도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나를 이해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는 길에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지 않는다고요.
그러니까 유혹이 오죠.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쪽으로 가고 싶은 거지요. 

그러나 여러분, 좁은 길은 육신적으로는 힘들 수 있어요. 
그러나 영혼은 갈수록 자유로워집니다. 이게 비밀입니다.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은, 쓸데없는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삶이 심플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동행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만 집중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로 살면, 세상의 일들로 시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왜 세상의 문제에 얽혀 있습니까? 
세상 일에 빠져 있으니까 그런 거죠.

우리는 천상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좁은 길,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그러나 여러분 그런 길을 걸어갈 때, 힘들고 어렵지만 
주님이 도우신다는 사실입니다. 

마11:28~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여러분, 홀로 간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주님이 함께 하고 계세요.
십자가의 길을 가면, 주님이 나와 함께 가십니다. 반드시! 

십자가의 길을 나홀로 가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고난의 길, 주님을 위하여 좁은 길을 가는데, 주님이 내버려 두십니까?
아닙니다. 반드시 함께 하십니다. 아주 가까이 해 주십니다.

그래서 내게 오라는 거예요.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벅찰 때가 있습니다. 
벅차죠. '이걸 내가 어떻게 감당해?' 

여러분 그때는 내가 하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셔야 됩니다. 
주님께 은혜를 구하면, 감당할 힘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고요. 때로는 등을 떠밀어 주십니다.
내가 가는 좁은 길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 길에만 생명이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갈 때,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10:10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그 십자가의 길, 그 주님이 앞서 가신,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그 뚜렷한 발자국을 따라서 오늘 우리가 걸어감으로써, 
풍성한 생명을 얻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기도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