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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2장 주님이 주님이신 이유

LNCK 2025. 4. 22. 20:2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삶의 통찰력

https://www.youtube.com/watch?v=PGwrl9l65ww

주님이 주님이신 이유            왕상12:1~7           2025.04.18. 

본문은 솔로몬이 세상을 떠났고, 아들 르호보암에게로 왕권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상상하기 힘든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때는, 요즘 같은 시대가 아니죠. 
요즘은 권력자에게 뭐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또 국가원수에게도 막 욕을 하는 사람도 있고, 참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나라입니다.
우리만 그런게 아니고, 뭐 전 세계가 이제는 다 그런 세상이 되었어요. 

그래서 존경이나 존중심, 이런게 찾아보기가 어렵고, 권위에 대해 쉽게 도전하죠. 
이게 오늘 이 세상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부모를 존중할 줄 모르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중할 줄 모르고, 
또 정치 영역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좀 씁쓸하고, 마음이 불편할 때도 많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본문의 이 때는, 그런 때가 아니잖아요. 이 때는 절대 왕정 시대입니다. 
왕이 한마디 하면 다 '예' 하던 됩니다. 누가 감히 왕의 권력에 도전하겠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이 죽고 나서 벌어진 일은, 바로 그런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깜짝 놀랄 일이, 이스라엘 안에서 벌어지게 되었는데,

백성들이 몰려와서 '당신 의견을 들어보겠다' 
왕이 될 사람(르호보암)에게 그렇게 도전적으로 말하는... 
마치 후보를 놓고 청문회를 하듯이, 요즘으로서는 뭐 그게 당연하지만, 
그때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을, 본문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이제 르호보암이 왕이 되어야 되는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 르호보암이 왕이 되어야 될 곳이 어디입니까? 당연히 예루살렘입니다. 

그 할아버지 다윗이, 여보스 사람에게서 빼앗아서 도성을 삼았고, 
거기 궁궐을 지었고, 또 솔로몬 때도 궁궐을 더 아름답게 지었고, 
그리고 거기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거기가 모든 것의 중심지입니다. 

이제 르호보암도, 그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등극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설령 백성들이 할 말이 있다고 해도, 예루살렘으로 찾아오는게 당연하죠.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와서, 르호보암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우리가 이런 생각을 조금 했는데요...' 이렇게 말하는 것도, 그 당시로서는 놀랄 일인데 
오늘 본문 왕상12장에 보면,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온게 아닙니다. 
오히려 왕이 될 르보보암이 어디로 찾아갔느냐 하면, 세겜으로 찾아갔습니다.

왕상12: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거부터가 벌써 뭔가 이상한 겁니다. 
아니 당연히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야지요. 그렇죠. 

그런데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1
이건 참 앞뒤가 안 맞는 얘기입니다. 

르호보암을 전심으로 왕으로 추대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백성들의 대표인 장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다 올라와야지, 
백성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떡하니 백성의 대표들이 세겜에 모여 가지고, 
'르호보암이여, 세겜으로 오시라' 이래가지고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찾아가는 길입니다.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을 볼 수 있는 거죠.

◑왕상12:2~3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런데 세겜에 가보니까,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 한가운데 누가 있느냐 하면, 
여로보암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 여로보암이 누굽니까? 
그는 솔로몬의 신하로서, 애굽에 정치적 망명을 가서 있었던 사람이죠. 

그 전에 어느 날, 여로보암이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 아히야 였습니다. 
아히야 선지자가 여로보암에게 깜짝 놀랄 말을 했지요. 
자기가 입었던 옷을 다 찢어 가지고, 열두 조각을 만들고는,
여로보암에게 하는 말이 '당신이 이 중에서 10조각을 가지라' 

여로보암이 어안이 벙벙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자신에게 하는 말을 무슨 뜻인지 깨닫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야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셔서 
너에게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열 지파를 주려고 하니 
네가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다윗의 집안처럼 복을 받을 것이다' 왕상11:29~31, 38

그래서 열 지파를 여로보암에게 주시는 그런 말씀을, 아히야가 전한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의 비밀이 없으니까, 
아마 그런 얘기가 솔로몬의 귀에도 들어갔겠죠. 

'아니 저 녀석이, 그러면 내 나라를 노린단 말인가?' 
이렇게 해서 여로보암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11:40
애굽으로 망명을 가서 거기 있었는데... 이제 솔로몬이 죽자, 그가 돌아온 겁니다.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2
솔로몬이 죽었고, 여로보암도 '그 소문을 들었어요'.  
여러분, 그가 스스로 돌아왔다기보다는, 백성들이 그를 불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렇게 백성들이 애굽으로 가서 여로보암을 세겜으로 모셔온 것입니다. 
아니 백성들이 왜 여로보암을 애굽에서 모셔왔을까요? 

이미 백성들의 마음이 여로보암에게로 옮겨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거죠.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을, 아마 일부 백성들이 받아들였을 거예요.

'솔로몬의 가문에는 이제 우리가 별로 기대할게 없다. 
이제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럼 누가 있느냐? 여로보암이 있지 않느냐?'
백성들 중에 일부는 그렇게 주장한 겁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을 모셔온 겁니다. 

그들은 애굽에 있는 여로보암을 찾아가서
'우리와 함께 이스라엘로 갑시다. 솔로몬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 그 아들이 왕이 되어야 될 상황인데, 
이제 당신이 돌아가서 기회를 보아서 뜻을 이룰 때가 왔습니다. 

이때 여로보암의 마음에는, 아히아가 자신에게 옷을 찢은 조각 10개를 가지라고 
하면서 했던 그 예언이 생각이 났겠죠. 그래서 돌아온 겁니다. 

그래 가지고 세겜 성에서 백성들과 함께 있으면서 
백성의 장도들은 르호보암을 보고 '여기로 내려오라' 이렇게 한 거죠. 

어느새 여로보암은 아직 왕으로 불리지만 않았지, 
그 백성들의 마음의 왕이 되어 있는 상황이고, 
여로보암이 그런 입지에 있다는 것은, 
르호보암이 대단히 위태롭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거죠. 

여러분은 나중에 결국은 나라가 이렇게 분열된 걸 다 아시는데, 
그 여로보암이 왕으로 등극해 가지고, 북왕국 이스라엘을 개국하면서 
첫 번째 도읍지로 삼았던 곳이, 바로 그 세겜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왕상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이거는 여로보암이 세겜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을 출발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나중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는, 중간 변천 과정을 거치면서 
사마리아가 수도가 된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데 
처음에 출발은 세겜에서 시작했어요.

거기서 르호보암을 '오라' 이렇게 불렀고,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내려간 겁니다.  12:1
부른 주체는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의 대표들)'이었어요. :3

여러분, 눈치가 있는 사람 같으면, 로호보암은 벌써 '뭔가 잘못되고 있다' 라는 걸 
알아챘어야 돼요. '백성들의 마음이 벌써 많이 떠났구나...' 
'여로보암이 벌써 저들의 마음에 왕이 되어 있구나' 이런 걸 간파했어야 되는데, 
르호보암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래서 여로보암이 백성들과 함께 르호보암을 세겜에서 만났는데 
뭐라고 질문하였습니까? 

◑왕상12:4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이 말을 최후통첩 하듯이 한 겁니다. 
'우리는 조건이 있다. 어떻게 할 거냐? 
우리 마음에 안 들게 대답하면, 우리는 당신에게 관심 없어! 
우린 여기에 여로보암이 이미 있어!' 이제 그런 투로 말한 거죠. 

르호보암은 당황했겠죠.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며, 일단 시간을 벌기로 합니다.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5

◑12:6~7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그래서 르호보암은 아버지와 함께 나라를 다스렸던 늙은 대신들을 먼저 만나요. 
'여차저차 한데, 어떻게 대답하는게 좋겠습니까?' 

그러자 연로한 대신들이 그 어린 르호보암에게 참 지혜로운 충고를 해 줍니다.  
이때 그는 41세 였다고 합니다. 대하12:13

노인들의 조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겠죠. 
'당신 아버지 솔로몬 왕이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는 하겠지만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짐이 참 무거운게 사실입니다. 

솔로몬 왕이 건축을 많이 하다 보니, 세금도 많이 거둬들였고, 
그들이 와서 노역을 해야 됐고, 그러니 백성들의 삶이 너무 고단하니까 
이제는 당신(르호보암)이 왕이 되면, 무거운 짐을 다 덜어준다고 하시고, 
내가 당신들을 잘 섬기겠소 라고 대답하시면, 백성들이 당신을 따를 겁니다' 
이렇게 충고를 해 준 거죠.

이 연로한 대신들은 솔로몬 옆에 있으면서 '이렇게 통치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평소에 했던 사람들이라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죠. 

그래서 르호보암에게 충고를 해 준 건데, 
로호보암은 그 의견을 따르지 않고,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함께 자라난 
젊은 친구들에게 '어떻게 대답하는게 좋겠느냐?' 이렇게 또 자문을 구하게 되죠. 
그들의 답은 이렇습니다. 

◑12:10~11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이게 젊은 이들의 충고였어요. '왕이 처음에 기선이 꺾이면 나라를 통치 못합니다. 
처음부터 기선을 제압하고, 그들이 꼼짝 못하게 해야, 왕권을 지킬 수 있지, 
처음부터 물렁물렁하게 양보하고 그러면, 당신은 앞으로 나라를 못 다스립니다. 
엄하고 세게 밀고나가야 됩니다.' 이런 식으로 조언한 거죠. 

그런데 르호보암이 그 두 가지 의견 중에서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거예요. 

르호보암이 가서 그렇게 강한 말로 여로보암과 백성들에게 이야기하니까 
이미 백성들은 다 마음이 흔들리던 중이고, 
여로보암을 애굽에서 불러왔을 때는 여로보암에게 이미 마음이 가 있는 중인데, 
어떻게 이 나라를 되돌릴 수가 있겠습니까? 

대부분 백성들이 르호보암을 떠나게 되었고,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2지파만 다스리는 초라한 왕으로, 
작은 나라의 왕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 이스라엘 대부분은 다 여로보암을 세겜에서 왕으로 초대해 가지고, 
나라가 두 쪽으로 분열되는... 이런 비극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상황은 다들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제 우리가 의문점이 드는 거예요. 
'르호보호함은 바보였나? 판세가 눈에 안 보였나? 
눈이 멀었나? 왜 이렇게 생각이 없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여러분, 그는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잘 몰랐던 거 같습니다. 
상황을 모르는 거죠. 
다른 말로 하면,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모르는 거죠. 

그 옛날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유명한데요. 
아직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기 전이라서 그랬던 걸까요?

여러분,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을 아는 거, 이거는 인생 사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상황에 있는 건가? 

야고보서 말씀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약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듣는 것 가지고는 안 되고, 실천해야 된다는 거죠. 

약1:23~24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사람이 청동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어요. 
그런데 당시는 유리 거울이 없어서 그런지, 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린다는 거죠. 

말씀을 듣기는 들었는데, 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와 같다는 거죠. 
말씀을 들을 때는 '아 정말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데...' 이랬다가,
조금만 지나면 다 까먹는 사람과 같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도 르호보암처럼, 
옳은 말, 바른 조언, 설교 말씀을 안 듣는 게 습관이 되고, 
만성이 되면... 자기가 처한 상황을 몰라요. 
왠만하면 남의 말 안 듣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항상 자기 판단이 옳은 줄로만 알죠.

그럼 왜 르호보암은 그런 판세를 몰랐을까요? 
이미 백성의 대표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한테 찾아오지 않고, 
자기를 세겜으로 오라고 불렀을 때,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벌써 경계하던 그 요주의 인물인 여로보암이 떡하니 
백성의 대표들 가운데 있는 걸 보면, 알아차렸어야 되잖아요.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근데 그게 뭔지를 모르는 거예요. 

아마 그게 (좋은 말 안 듣는 게) 몸에 푹 베인 사람처럼, 중독된 사람처럼, 
르호보암도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있는 거죠. 

르호보암이 중독된게 뭘까요? 
저는 그 아버지 솔로몬이 수십 년 동안 아들에게 보여준... 바로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솔로몬은 백성들을 참 무겁게 다스렸어요. 
지혜의 왕이라고 했지만,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세금도 많이 내야 했고, 
건축 공사도 많이 했어요.

성전을 지은 것은 잘 했지만, 그 뒤로도 왕궁을 13년 동안이나 지었고, 왕상7:1
또 애굽에서 데려온 왕비를 위해서도 궁을 지어야 했어요.
그러니까 백성들 입장에서는 성전건축 7년을 더하면, 최소 20년 이상 계속 노역에
동원된 것이지요.

20년 건축 외에도
후람이 솔로몬에게 되돌려 준 성읍들을 솔로몬이 건축하였고, 대하8:2

'또 광야에서 다드몰을 건축하고 하맛에서 모든 국고성들을 건축하고
또 윗 벧호론과 아랫 벧호론을 건축하였고,  
또 바알랏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들과 모든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니라' 대하8:4~6

물론 그때는 국운이 강성하여, 주변국에서 데려온 노예들에게 일을 많이 시켰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도 건축에 동원되어 고생이 많았다고, 
지금 르호보암 자신이 실토하잖아요.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11

성을 많이 짓고 할 때마다, 백성들은 동원되어서 노역을 해야 되니까 
참 고단하고 힘든 나날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솔로몬은 북이 영화를 누리면서 군림하는 왕이었지 
백성들의 아픔을 알아주고, 힘든 거를 같이 짐을 나누어 지는 그런 왕은 아니었어요. 
그게 솔로몬의 통치 DNA 이에요

솔로몬은 그런 식으로 쭉 다스렸지, 남의 말을 듣지 않았던 거죠. 
여러분 똑똑한 사람의 약점이 뭐냐 하면, 
주변에서 늘 '어휴 당신은 똑똑합니다. 당신은 능력이 뛰어나요'
이런 말을 많이 듣다 보면, 그게 자기 마음에 굳어져 가지고 
'나는 똑똑한 사람이야!' 이게 자기 자아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남의 말을 들어야 될 때가 와도, 안 듣는 거죠. 
내가 똑똑한데, 남의 말이 귀에 안 들어오거든요. 

나중에 선지자들이 와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나님이 화 내십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아요. 그리고 맨날 이렇게 군림하는 거예요. 
그거를 그 르호보암이 옆에서 다 보고 배우는 거예요. 은연 중에라도. 

그거를 뭐 한두 번 본게 아니고, 아버지가 보여주던 통치 스타일,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몇십 년을 보면서, 르호보암의 마음속에도 그게 차곡차곡 쌓인 거예요.

그 아버지의 통치 DNA가 아들에게도 그대로 넘어가서, 
하도 다급하니까 원로 대신들한테도 질문을 했긴 했지만, 
원로 대신들이 '가서 내가 섬기겠다고 하십시오. 잘 섬기면 될 겁니다'
이 말이 자기 귀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그냥 그건 한쪽 의견일 뿐이고, 로호보암의 DNA와 딱 맞는 거는 
그 젊은 사람들이 해준 말이었죠. '더 세게 나가야 됩니다. 
그들을 전갈과 채찍으로 징계한다고 하세요.' 
그게 자기의 평상시 생각하고 딱 맞는 거예요. 

그러니 3일 후에, 백성의 대표들을 만났을 때도, 
원로 대신들의 의견 같은 거는 생각이 안 나고, 
자기 평상시 생각하고 일치하는 젊은이들의 충고를 따라 대답하니, 
나라가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르호보암이 어리석어서 나라가 분열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르호보암은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했을 뿐이에요. 
'아버지의 그 DNA가 아들에게 그대로 넘어간거다...'

그래서 그 아버지도 높은 곳에 앉을 줄 알았지. 낮은 대로 내려갈 줄은 몰랐고, 
그 아버지도 군림할 줄 알았지, 백성들을 섬길 줄은 몰랐는데,
이 아들 역시 똑같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죠. 
여러분 이게 가져온 그 비극이 얼마나 큰가 하는 거를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런데 왕 중에 왕이신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예수님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여러분 이거 사실은 로호보암이 했어야 될 말이에요. 

'여러분 내가 이제 왕이 될 입장인데, 이렇게 만나는 시간을 가지니 기쁩니다. 
우리 아버지가 여러분을 힘들게 한 거 내가 알고 있어요. 
이제 나는 여러분을 섬기는 왕이 될 겁니다. 자 가서 나라를 더 부강하게 합시다.' 

이렇게 했어야 되는데, 그리고 뭔가 백성들이 기뻐할 만한 구체적인 정책을 
펼쳤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했잖아요.
 
근데 예수님은 달라요. 예수님은 섬기려 오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도리어 당신의 목숨까지도 대속물로 주러왔다고 말씀하시고,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 왕과, 르호보암이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 주님이 진짜 왕 중에 왕이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높아서 왕중의 왕이 아니고, 힘이 있어서 왕중의 왕이 아니라, 
가장 높고, 가장 강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아지셨고, 가장 약해진 모습으로 섬겨 주셨고, 죽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나의 왕,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때 우리 눈에 진심으로 눈물이 흐르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오늘은 성 금요일입니다. 
우리 주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이유가 있나요? 전혀 이유가 없어요. 

높은 걸로 치면 가장 높고, 강한 걸로 치면 가장 강하신 우리 주님이신데, 
우리 주님은 어쩌자고 그렇게 십자가에까지 내려가셔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해 섬겨 주셨나요?      중략

◑적용

여러분, 저는 부족한 목사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섬기고 있는데, 
많은 목사님들의 목회를 가만히 봅니다. 우리 동기 목사님들도 보고, 
이렇게 주변에서 많이 보고 듣고 그래요. 

근데 보면, 어떤 목사님이 평생을 이렇게 목회하는 분이 있고, 
어떤 분은 몇 년 있다가 교회가 시끄러워지고, 
또 몇 년 있다. 교회가 시끄러워져서 목회가 이어지지도 못하고, 
성도들도 상처받고, 교회도 자꾸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교회가 위축되고, 
그런 거를 참 많이 보아왔어요. 

여러분, 목회자가 70이 돼서 은퇴를 하면, 둘 중 하나입니다. 
그냥 은퇴 목사가 있고, 원로 목사가 있습니다.
교회법에, 한 교회에서 20년 넘게 오래 목회한 분은 '원로 목사'로 추대해 줍니다.
목회지를 옮겨 다니시는 분들은, 20년이 안 되니까 원로 목사가 못 되시잖아요. 

곽선희 목사님의 유명한 얘기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분이 곽선희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드렸어요.
'곽목사님, 원로 목사와, 원로가 못 되고 그냥 은퇴 목사님하고 뭐가 다릅니까?'

그러니까 곽목사님의 명답이 이겁니다. 
'내가 보니까 원로가 못 되고, 그냥 조금씩 조금씩 계속 옮기다가 은퇴한 목사님들은 
대체로 엄청 똑똑하더라고...
그런데 원로 목사들 모인데 가보면, 다 어리숙한게 뭔가 나사가 빠진 거 같아...'
그렇게 얘기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무슨 얘기일까요? 

한 교회 오래 못 계시는 목사님들의 특징은, 다 똑똑하다는 거예요. 
다 똑똑하고 다 잘해요. 설교도 잘 하고, 다 잘하는데 
문제는 성도들을 품지를 못하는 거예요. 

성도들을 사랑해 주고, 섬겨주고, 품고 그래야 되는데... 그거 왜 못 품을까요?
당신이 워낙 수준이 높고, 당신이 아는게 많고 그러시니까, 
성도들이 뭐 하는게,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그래갖고 목사님이 자꾸만 얘기하죠. '집사님, 그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렇게 하니까, 그 집사님은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하는 건데 
목사님이 자기 수고를 알아주고 '집사님, 참 애씁니다. 고마워요' 이렇게 해야 될 텐데, 
'집사님, 그렇게 하면 안 하는 것만 못 합니다' 라는 식으로 막 야단치니까, 
상처 받는 거예요. 그러면 그 집사님이 나가 떨어지는 거죠. 

그러면서 손에서 일을 놓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한 명, 두 명 자꾸 쌓여가요.
이 사람도 상처받고, 저 사람도 상처받고... 그럼 누가 옳을까요? 

목사님 말이 옳지요. 목사님 말이 옳은 건 맞아요. 
옳은 건 맞는데, 열매는 안 되는 거예요. 상처만 주는 거죠. 

그래서 제가 그런 거 보면서 참 많이 배웠습니다. 
'옳은 말 한다고 열매가 되는게 아니구나' 

여러분, '옳은 데도 불구하고 그게 비수가 돼서 남을 찌를 때도 있구나' 
그럴 때 목사님이 속으로는 좀 답답할 때가 있어요.
'이 집사님이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그게 교회에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 집사님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거예요. 
'아, 집사님 수고 많으시다고...' 이렇게 격려하고,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한 사람 나가 떨어지는 것보다는, 아쉬운 그게 더 나아요. 
차라리 교회에 아쉬운게 많아도, 성도들이 다 기쁨으로 하는게 
훨씬 공동체를 위해서는 좋은 거거든요. 

▲저도 부산에서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참 힘들더라고요. 
그때는 성도들이 다 건축 전문가로 변합니다. 갑자기 다 건축 전문가로 변하셨어요. 

그래가지고 뭐 시공회사는 부도가 났고, 
은행 이자는 한 달에 몇 천만 원 내야 되는데 재정은 없고,
공사는 중단됐고...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다 사방에서 듣는 정보들이 있으니까, 각자 나름대로 의견들을 제시하는데 
그게 딱 일치하면 얼마나 좋아요? 근데 다 생각이 달라요. 
생각이 다르니까 조정이 안 되고, 조정이 안 되니까 다 화가 나 있고... 그런 거예요. 
어디나 다 그렇겠죠. 

그러면 그분들이 찾아오는 데가 어디겠어요? 담임 목사인 저를 찾아오는 거예요.
'목사님,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여기까지 골조는 올렸는데, 
이제 벽돌을 붙일 차례가 됐는데, 벽돌 색깔을 정해야 되는데 의견 통일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이제 같이 가서 모였더니 다 의견이 달라요. 
교회는 뭐니 뭐니 해도 빨간 벽돌이어야 된다. 뭐 노란게 산뜻하다. 
아니다, 고동색 벽돌로 하면 무게감이 있어 보인다...
이렇게 다 생각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 색깔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끝에 꼭 붙이는게 
'목사님도 저랑 생각이 같으시죠?' 
이렇게 딱 한마디 덧붙입니다!
 
거기에 넘어가면 안 되는 거예요. 
거기에 넘어가면 교회를 하나로 만들 수가 없어요. 
그러면 저는 '빨간벽돌 파'가 되고 마는 거니까요. 

그래서 제가 참 고심이 되더라고요. 제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제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휴, 저는 색맹이라 잘 몰라요' 이렇게 말했는데,
오죽 답답하면 그렇게 말했겠어요? 저는 색맹이 아니거든요. 

저도 다 제 생각이 있지만, 저까지 한마디 하면 더 복잡하니까요. 
그날은 '벽돌 색은 뭐든지 나름 괜찮고, 튼튼하게만 지으면 저는 좋습니다' 
이렇게 대답했거든요. 

근데 여러분, 그런 게 교회에는 참 많잖아요. 
뭐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그때는 교회를 섬기는 담임목사가 처신을 잘해야 되는 거예요. 
그때 가장 중요한게, 아무도 상처받지 않게 하는 거예요. 

목회자는, 누구도 상처 받지 않게 교회를 이끌어가는 게 아주 중요해요.
(르호보암처럼, 백성들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거죠) 

목사가 유능하게 끌고 나가는 것도 좋지만, 
유능하든지/ 못 하든지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다 이렇게 품고 나가야죠. 그저 '수고하신다'고 말해 드리고, 
좀 마음에 안 들어도 '잘 하십니다' 이렇게 하면서 
힘든 일은 목사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그렇게 하는게 섬기는 거죠. 

그런데 자기 능력이 많은 분들일수록 그걸 잘 못해요. 
자기 기준에 안 차니까 자꾸만 이렇게 야단치는 거예요. 

그럼 성도들은, 목사님 말씀이 맞다는 걸 알긴 알아요. 
알지만 기분이 안 좋은 거죠. 사람은 원래 그런 겁니다. 

그래서 똑똑하고 유능한 목사님인데, 평생 목회를 못하고 몇 년만 있으면... 
이게 교회도 상처가 많아져 가지고, 목사님 설교가 귀에 안 들어오고, 
결국 목사님도 그게 상처가 되니까 또 교회를 떠나시고... 
그래 갖고 원로 목사가 못 된다는 거예요. 

곽선희 목사님이 '원로 목사님들 모인데 가면, 다 나사 풀린 거 같이 뭔가 어수룩하다'
그게 아주 고단수의 말씀이에요. 어수룩해서 어수룩한게 아니라,
한 교회를 오래 목회하는 분들은, 어수룩한 것처럼 늘 처신하는 거죠. 

가만히 계시면서, 알지만 모르는 것처럼... 다 이렇게 성도들 격려하고 품어주고 
이렇게 해서 사랑으로 섬긴 분들이 오래 목회 하시고...
그러면 교회도 성장하고, 또 목사님에게도 마지막에 원로 목사가 되는 명예도 오고...
그렇더라고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흔히 목사님들이 하는 말 중에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목회를 율법적으로 하지 말고 복음적으로 해야 된다' 
율법적 목회는 정죄하는 겁니다. 야단치고 '당신이 틀렸어요!' 이렇게 하는 거는
율법적으로 목회하는 건데... 성도들에게 상처가 되는 거죠. 

여러분, 야단치고 정죄하기로 하자면, 우리 주님이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우리를 야단쳐도 끝이 없을 거예요. 우리는 밤낮 야단 맞을 짓만 하니까요. 

그런데 주님은 그거 다 들춰내 갖고 지적하시면서 '네가 그때 언젠가 그랬지?' 
이런 주님이 아니시고 
'내가 너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간다. 
흰 눈처럼 양털처럼 내가 깨끗하게 씻어 준다' 그게 복음이에요.  

복음은 품어주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려면 말만 갖고는 안 되니까, 발도 씻어 주시고, 십자가에 대신 달리기도 하시고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어요. 

우리가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그분의 힘과 위세가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억지로 무릎을 꿇는, 그런 굴종이 아니고 
우리는 예수님을 정말 더 높여 드리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은데,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까... 
그래서 우린 기쁨의 순종을 하는 것이지, 강제적 굴종을 하는 건 절대로 아닌 거죠. 

여러분, 우리 교회는 한경직 목사님의 모범을 알고 있잖아요. 
한목사님은 왜 존경받나요? 
한목사님은 정말 예수님 닮으려고 노력하셨어요. 
그래서 목사님은 정말 섬기는 분으로 살다가 천국에 가셨어요. 

<애니아의 집>에 한번 가보시면, 몸을 손가락 하나도 자기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중증 중에서도 가장 중증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들이 있는데, 
거기서 다 우리 교회가 섬기고 있는데... 원래 한목사님의 정신이 그런 거죠. 
<보린원>이 그랬고... 

그래서 정말 어렵고 힘든 이들을, 그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어렵고 힘드니까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시고 
그렇게 한목사님은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에서 그들을 섬겨 주셨어요. 
주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도를 사랑하신 거죠. 

저는 영락교회에 와서 연세 많은 분들이, 이런 말씀하는 거를 많이 들었어요. 
어떤 노 권사님이 저보고 '우리 할아버지가 여기서 맨날 나를 쓰다듬어주셨다' 

그래서 제가 '할아버지가 여기 성도였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니까 
한경직 목사님을 할아버지라고 하는 거예요. 

한목사님이 교회 마당에 서셔서, 
자기가 교회 오면 맨날 쓰다듬어 주시고, 또 등도 두드려 주시고... 이렇게 해주셨다고...
그 얘길 지금 말씀하는 거예요. 
한 목사님께 받은 그 사랑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는 거죠. 

한목사님께서 하신 설교도 은혜가 됐겠지만, 
아주 어릴적 때부터, 목사님이 사랑의 손으로 그렇게 섬겨 주신 것이 
지금도 연세가 많아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에 쓰다듬는 손, 또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 주시고, 
몇 마디 인사를 건네신 그게, 이 권사님에게는 그 어떤 설교보다도 은혜가 된 것이고, 
감동이 된 거 아니겠어요?              ☞한경직 목사님 1902~2000 

여러분, 왜 주님이 진짜 주님이시고, 르호보암이나 그 아버지 솔로몬은 
그렇지 못한가요? 우리가 이거를 오늘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그 사랑, 주님의 그 섬김,
주님의 그 대속의 죽음, 우리를 위한 그 낮아지심... 이걸 생각하면서 
나도 주님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성도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건 정말 어려운 싸움이에요. 이거보다 더 어려운 영적 싸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강하게 나올 때, 나도 강하게 나가 맞서 싸우는 건 오히려 쉬울 수도 있는데, 
이렇게 낮아져서 섬기는... 내가 바보가 돼서 섬기는... 
정말 무능한 자처럼 섬기는... 

예수님이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어린 양처럼, 그렇게 섬기고 죽으신 그거는 
가장 어려운 영적 전투입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그 승리를 모두가 다 거두시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