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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4장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LNCK 2025. 5. 7. 19:4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사회적 책임         <개척 사례>

https://blog.naver.com/karamos/220270491001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4:8-9            2013.06.02.

 

빌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빨간 줄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유월에 우리 갈릴리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27년 전, 1986년 6월 1일입니다. 27년 전에 세워진 갈릴리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오늘 다시 한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984년 저는 13년간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일을 마치고, 호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13년 동안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저는 수많은 고난을 겪었으며, 
네 번에 걸쳐 3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많은 매를 맞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고전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40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매를 맞으면서 몇 번 매를 맞나 세어본 것입니다. 

세 번이나 태장을 맞고, 한번 돌로 맞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저도 여러 번 테러를 당하기도하고, 여러 번 춥고 배고픔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사도 바울을 만나서, 
사도 바울하고 저하고 누가 더 고생을 했는가 따져볼 생각입니다. 하하하

아무튼 13년간 고생하다가 가족들과 함께 호주로 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1984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호주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가운데 있었고, 
우리나라는 군사독재의 억압가운데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두고 편안한 곳으로 떠난다는 것이, 제 신앙적 양심으로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호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2년간만 호주에서 쉬고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호주에서 2년이 지나 돌아오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첫째로는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일할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오라는 데도 없고, 갈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식구들과 함께 살 집도 없었습니다. 
호주에서의 2년 동안 건강도 회복되었고, 박사학위 논문도 썼습니다. 

한국에 돌아올 여건이 되지 않았지만, 호주에서는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호주 시드니에 세워진 갈릴리교회의 담임목사였고, 당연히 사택도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학교에 적응해 안정이 되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돌아올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일부러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기도 하고, 아이들을 위해 부부가 떨어져서 살기도 하는데,
그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돌아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는 군사독재의 횡포가 심해서 
언제 또다시 감옥에 가게 될지 모르는 입장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제가 호주에서 돌아온 뒤에, 두 번이나 감옥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또 한번은 조사를 받고 간신히 풀려난 적이 있습니다.

▲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제가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에는 일자리가 없지만, 호주에 일자리가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한국에 돌아가야겠다고 고집을 피우니까 
사람들이 '그러면 일자리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날 때, 호주에) 꼭 2년만 있겠다고 약속했지만, 
일자리가 생길 때까지 (호주에서) 기다린다고 해도, 
누구도 저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단호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간단한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생각한 뒤에, 무작정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대단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2년이 지났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 
제 아내나 아이들이 다 그러자고 했습니다. 

제 평생에 목회를 하면서 가족이 걸림돌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에 대해서, 
저는 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였는데, 
결혼하고 몇 달 후에 공장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군사독재시절 제가 여러 번 감옥에 갔지만, 아내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만 해라, 조심하라'는 말조차 하지 않고, 제가 하는 대로 묵묵히 따라왔습니다. 

최근에도 제가 조기은퇴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내나 아이들이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많은 수고를 했으니, 이제는 그만 몸과 마음을 쉬라'고 했습니다. 

제가 퇴직금을 다 털어 지리산 골짜기에 도서관을 짓는 것에 대해서도 
제 아내나 아이들이 다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1986년 5월 1일, 저는 세 식구와 함께 무작정 호주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이 사실을 알게 된 호주 교회의 지도자들이 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호주에 온 한국의 목사들은, 어떤 핑계를 대서든지 호주에 머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돌아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일자리(사역지)를 놔두고 
일자리(사역지)도 없으면서, 무작정 한국에 돌아가려고 하는가... 의아해했습니다.

제가 돌아간다는 것을 안, 한국의 많은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1986년) 당시 하도 험한 세월을 살다보니, *당시에 데모가 아주 많았죠. 최루탄도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나 호주에 가려고 애를 쓰고, 가기만 하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외국에 나갔던 사람이 되돌아 온 것은, 아마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저와 저의 가족들의 이런 행동에 가장 놀란 것은, 
호주교회의 지도자들이나, 한국의 저를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누구보다 하나님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일을 별로 보신 적이 없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무작정 고향을 떠났던 아브라함 뒤로,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도 깜짝 놀라셨을 것입니다.

▲이때 저희들은 앞길이 막막했고,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셔서 
저와 저희 식구들을 위해서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을 모아놓고 
저 인목사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뭔가 대책을 세워져야 하는가?’ 
이렇게 대책회의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련한 대책이, 바로 이 갈릴리교회였습니다. 
제가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꼭 일개월 후에 시작한 교회가, 바로 갈릴리교회입니다. 

갈릴리교회는 하나님이 저를 위해서 세우신 대책이었습니다.

물론 갈릴리교회를 개척, 세우기는 했지만, 
당장 교회당도 없고, 교회당을 얻을 돈도 없고, 함께 교회를 시작할 교인도 없었습니다. 

교인이라고는 여섯 명이 모였지만, 제대로 헌금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선교단체에서 1천만원을 빌려서, 사글세로 구로구청 사거리에,
낡은 빌딩 창고 같은 방을 얻어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의자를 살 돈도 없어서,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남은 의자를 모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처음 갈릴리교회를 시작할 때, 의자는 다 이 교회 저 교회에서 
하나씩 얻어온 짝짝이 의자였습니다.

그때 제 사례비는, 제 친구 목사 10명이, 한 달에 4만원씩 모아서 
1년 동안 월 40만원씩을 주었습니다. 

저와 저의 교회가 이 친구들의 은혜를,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27년 전 우리 갈릴리교회가 시작된 역사입니다.  *1986

2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갈릴리교회는 하나님만을 믿고 
아무 대책없이 호주에서 돌아온 인명진 목사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이었고,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지금도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저에게 최고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만약 제가 호주에 남아 있었다면, 과연 오늘과 같은 축복을 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만약 갈릴리교회가 아니라 좋은 자리에 갔다면, 
정말로 제가 갈릴리교회를 통해서 받았던 축복과 같은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자고로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최고의 축복을 주십니다. 
사람을 믿고 사람을 의지하면,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최고의 축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축복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지나간 27년 동안 저는 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이 갈릴리교회에서 보냈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자랑스러운 목회를 지난 27년 동안 했습니다.  *38~65세

저는 27년 동안의 목회사역에,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며 하나님께서 넘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갈릴리교회의 담임 목사 후보가 되신 최목사가 와서 
이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저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제 마음 속에 ‘하나님, 이런 행복하고 축복된 마무리를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저 때문에 속도 상하시고 걱정되는 일도 많았고, 아슬아슬 하신 일도 많으셨을 텐데, 
고비고비마다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이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이제는 저의 이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날 힘들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죽을 뻔 했던 일, 힘들고 어려웠던 일을 용케도 견뎌내고 여기까지 온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니 감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젊었을 때, 가난한 사람을 위해 온 삶을 다 바치며 살았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저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일로, 
특별히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로, 자신의 온 삶을 다 바쳤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인생은 최고의 인생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죽지는 못했지만, 굶주리고 매 맞고 헐벗으며...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제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교만한 말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도 저는 어느 자리에서든, 누구 앞에서든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저 만큼 잘 산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설적인 사람입니다. 제가 이렇게 살아있지만, 
제가 살아온 일이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축복하셨고 은혜로 여기까지 이끌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갈릴리교회의 목회사역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믿는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가르치시는 복음의 진리를 
거침없이 마음껏 증거하고, 최선을 다해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진리를 신앙의 양심에 따라 
마음껏 증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시지만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이 알고 자신이 믿는 것을 
강단에서 소신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교인들에게 가르치면 교인들이 떠나니까 
교인이 모이지 않고, 교회가 어려워지니까... 소신껏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불행입니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들이, 
자신이 믿는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지 못하고, 
교인들의 눈치를 보고, 교회를 경영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음에도 없는 설교를 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불행이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런 이유로 많은 목회자들이 갈릴리교회를 부러워합니다. 
어떤 목사는 자신의 사역지를 사임하고, 
갈릴리교회의 부목사가 되어 소신껏 목회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가 갈릴리교회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은, 제가 믿는바 복음의 진리를 
눈치 보지 않고, 어떤 거리낌도 없이, 그 말씀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27년 동안 줄기차게 여러분에게 증거한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서기관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성경의 대의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한마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예수님을 믿으면 돈 많이 벌고 축복받는다'고 말합니다. *20~30년 전

그러나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복음입니다. 돈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돈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수능시험을 볼 때마다 미어터지는 것은 자식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거나, 자식을 우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현대교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교인들의 마음을 거스리는 말입니다. 

‘교회를 다니면 자식이 잘 됩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기도하면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갈 것입니다.’ 라고 말하면 교인들이 좋아하고 따라 올 것입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치려고 교회에 나옵니다. 
참 이상합니다. 이렇게 병원이 많은데도, 지금도 교회에 오는 이유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병을 고치러 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병 고치는 은사를 행해본 적도 없고, 오히려 초를 쳤습니다. 
‘병 고칠 생각하지 마라. 무슨 이유로 병을 고치려고 하느냐? 
70, 80 잔치하려고 하느냐? 오래 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루를 살아도 10년을 산 것처럼 살아라.’ 

이런 말은 사실 병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 27년 동안 그 어떤 사람의 눈치도 보지 않고, 
교인들이 싫어하든 말든 소신껏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여러분이 귀가 따갑게 들은 설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만을 사랑하고 가족만을 사랑하는 가족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평생 내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서 땀 흘리고 수고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닌, 내 식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수고하고 땀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받는 월급 중에 다른 사람의 몫이 담겨있다'고 여러분에게 수없이 말씀드렸습니다.
 
이웃 사랑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것은 제 평생의 삶을 통해서 경험한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 지금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축복을 주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드는 보험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가장 행복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얼마나 행복하냐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재물과 명예와 권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물론 그것들이 우리에게 잠시 주는 행복이 있지만,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돈이 우리에게 기쁨도 주지만, 돈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염려와 걱정도 하게 됩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근심이 많은 사람이, 이건희 회장일 것입니다. 
우리를 진심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이웃사랑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주노동자선교 사역을 비롯해 
여러 가지 가난한 이웃을 돕는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전 세계의 이목이 우리나라에 집중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8년 우리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온 세계가 지켜보면서 
코리아 드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들이 한국에 가면 틀림없이 나그네로서 고생을 할 텐데 
누구에게 이 사람들을 맡겨야할까?' 아마도 천사들과 함께 대책회의를 여셨을 것입니다. 

'이들을 어느 교회에 보내야, 이들에게 제대로 복음을 전할 것인가?' 
여기저기 둘러보시다가, '서울의 구로동의 작은 교회, 갈릴리교회가 어떨까?'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아마 이때 하나님 곁에 천사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말렸을 것입니다. 
“교회당도 작고 150명이 모이는 작은 교회입니다. 
일 년 재정이 1억도 안 되는 교회입니다. 
어떻게 이 작은 교회가 이주노동자들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주노동자들을 섬길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장소가 협소하고, 사람이 없고, 재정이 부족한 것을 
다 채워주실 대책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갈릴리교회는 작은 교회이고 교회를 세울 재정도 없으니까, 
소망교회를 통해서 교회당을 지어주셨습니다. 

교회당을 지으면, 교인이 모이고, 봉사할 사람이 생기고, 재정도 넉넉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앉아 계신 이 교회당은 
이주노동자를 섬기기 위한 대책으로,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주노동자를 섬기겠다는 믿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나머지를 책임져주신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를 섬기기 위한 대책이 
갈릴리교회의 예배당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주노동자 선교를 통해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섬긴 것이 아니라, 그들 때문에 교회당이 생겼고, 
그들 때문에 많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축복만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갈릴리교회에서 왔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큰 상급을 주실 것이고, 그때 받을 주의 상급이 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배고팠을 때 닭튀김을 해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고쳐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저들이 나를 보살펴주었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때 가서야 여러분이 저에게 고마워하실 것입니다. 
이 교회를 다녔던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축복이었는지를 
그때(최후 심판대)가 되면 알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의 도시락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배고파 굶주리고 계신 160명의 '작은 예수님'을 우리의 식탁에 초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을 절약해서 해야 합니다. 
먹을 것 다 먹고,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식탁을 통해서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 사랑의 도시락봉사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베트남에 송아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보는 대로, 잔칫집에는 가난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없는 잔치는, 잔치가 아닙니다. 
잔치가 있을 때 돈을 절약해서, 가난한 베트남 농가에 송아지를 보내고 있는데, 
금년까지 650마리를 보냈습니다. *베트남전 한국군 참전 때 일부 폭력 사죄 의미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 
천 마리 이천 마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송아지 한마리가 베트남의 한 가정이 잘 살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것은 단지 송아지가 아닙니다. 
언젠가 그 송아지가 뛰어노는 들판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서 
마침내는 하나님의 교회가 우뚝 세워지게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주노동자선교를 하면서, 사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800여명이 세례를 받고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베트남에 송아지를 보내는 일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몽골에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가보니 5-6년 전에 심은 나무들이, 지금 제 키를 훨씬 넘는 나무로 자라서 
갈릴리 숲을 이루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호수를 살리는 일도,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지구를 다시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우리 갈릴리교회가 크게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27년 동안 두 가지 큰 싸움을 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몰아내고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섬기는 '하나님 제일주의'의 영적인 싸움, 

또 하나는 내 가족과 나만을 사랑하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사명을 감당하는 영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우리의 인생을 축복으로 이끄는 것이라는 것이 
지난 27년간 우리가 칠천을 통해, 배우고 깨닫고 경험한 것입니다.

지난 27년간 우리가 보고, 듣고, 배운 바 이 귀한 복음의 진리가 
여러분의 삶에 떠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 갈릴리교회에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배운 바를 잊지 말고 실천하는 교회, 
그래서 이 교회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을 살아서 그 인생이 행복하고, 

이웃을 돕는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삶에 축복이 넘치는 은혜가 영원토록 세세무궁토록 
주님 이땅에 오시는 날까지 갈릴리교회와 여러분의 삶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