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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3장 왜 은혜인가?

LNCK 2025. 5. 15. 18:31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은혜

[세광교회-주일예배] 왜 은혜인가?  | 2025-0511

 
◈왜 은혜인가?      롬3:21~24         2025.05.11.       ' 은혜에 잠기라' 2강

『은혜에 깊이 잠기라』 시리즈 설교, 오늘은 두 번째 시간입니다. 
왜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한가요? 그 은혜가 도대체 무엇인가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칠레 탄광 매몰 사고를 통해서 깨닫는 ‘은혜’
2010년 8월 5일 칠레 북부 산호세 금‧구리 광산 매몰로 
33명의 광부가 지하 700m에 매몰되었으나 
69일(10월 13일) 만에 구조된 기적적인 사건이 있었죠.

첫 연락은, 사고 17일째에 이르러서야 광부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죠.
생존자 확인을 위해 뚫고 내려간 구조대의 드릴에, 
매몰된 광부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쪽지를 매달아 올리면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 메모는 유명한 문구가 됐죠.
“우리는 대피소에 무사히 있다, 33명 모두”

광부들은 대피소에서 통조림, 참치, 물 등 제한된 식량으로 
생존의 고통과 불안 속에서도, 규율을 유지하고 역할을 분담하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구조 작업은 69일만에 성공했는데, '피닉스'라는 특수 구조 캡슐을 지하에 밀어넣어서,
한 명씩 캡슐에 태워서, 전원 구조합니다.

그들을 구조했을 때, 온 세계가 다 집중해서 보고 있었고, 
칠레 대통령도 현장에 있었으며, 구조해 나오는 사람들을 대통령이 안아주며 축복했습니다. 
생환자들에게 많은 선물을 줬고, 그 선물을 준 사람 중 한 명은 스티브 잡스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유를 얻어서 집으로, 또는 고향으로, 자기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이 '은혜'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하기에, 
이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우리들은 지하 700m 가 아니라, 지하 7천 미터가 넘는 그런 갱도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우리 스스로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하 700m 밑에 갇혀 있었던 광부들, 그 가운데는 경험이 많은 광부로서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또 별로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서로 광부로서의 경험이 차이가 있지만, 누구도 예외없이  
한 사람도 전혀 그곳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선하게 살고, 믿음이 좀 있고/ 믿음이 좀 없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결코 우리의 갱도에 갇혀 있는 사람들처럼 
자기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 우리 그 누구에게도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구조되어 나올 수 있는데, 누군가가 우리를 구조했습니다. 

우리는 구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상급과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대통령께서 우리를 안아주셨습니다. 

우리들을 그곳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은혜의 바다 Ocean of Grace 로 인도하셨습니다. 
구조된 우리들의 삶은, 그 은혜의 바다에서 은혜를 경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 삶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설교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은혜의 바다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그 은혜의 깊은 바다에 우리가 깊이 잠기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은혜의 전제 조건
-은혜를 깨달으려면, 먼저 내가 '갱도 속에 갇힌 죄인'임을 철저히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가? 
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는가? 
그 이유와 내용을 알 수 있는 위대한 본문이 있는데 그것이 로마서입니다. 

우리가 이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이 로마서가 우리에게 주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상고해 보기를 원합니다.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로마서는 1장 2장과 그리고 3장 전반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위대한 은혜의 메시지, 그 전제조건 prerequisites 이 되는 말씀은 
'우리는 다 죄인이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하 갱도 700m가 아니라, 7천m, 전혀 구조될 수 없는 그 갱도에 갇혀 있는 
구조 받기 전의 우리들의 모습을, 한 번 머리로 그려 보십시오. 상상해 보십시오.

아주 캄캄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지하 갱도 속에서,
아무 빛도 없는, 정말 칠흑같은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다 죄인이고, 그 죄를 리스트를 갖고 있는 죄인이기에,
우리는 그 갱도 속에 갇혀 있는 그 광부들처럼 전혀 소망이 없었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그런 죄의 이름들 계속해서 나열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동성애, 성적인 부패들, 불의와 추악과 탐욕과 악의와 살인과 
그리고 분쟁과 그 외 많은 죄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런 죄인이 바로 우리들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죄들은 이방인들이 지은 죄라고 사도 바울은 언급하고 있는데, 

롬1장에 이런 이방인들의 죄를 나열할 때 
사람들은 다 좌절했고 절망했고 아파했습니다.

그런데 팔짱을 끼고 기뻐하면서 계속하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롬2장을 시작하면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스스로 죄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똑같은 죄를 저지르고 있지 않느냐고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롬1장의 이방인들의 죄보타
2:1절부터 ~ 3:20절까지, 훨씬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이 유대인들에 대한 죄를 지금 선포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죄를 그들에게 쏟아놓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에 대해서 너무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자신이 그중에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면서 
똑같은 죄를 저질렀던 바로 그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했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이 모든 것이 그의 과거였고, 그의 모든 죄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전혀 살 소망이 없는... 그래서 로마서 서두의 결론은,  1:1~3:20
'우리는 다 죄인이고 전혀 소망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는 다 죽어야 할 사람이다. 
자연인은 곤경에 빠져 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선포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문제인데, 이러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절대로 내 힘으로 거기에서 나올 수 없으니 
이 문제를 해결할 구원자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진노대로 그냥 심판하시면 끝나지 않습니까? 
심판하시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렇게 심판하신 후에 
하나님의 뜻대로 어쩌면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수도 있었고, 
심판하신 후에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롬3:21절이 시작되는 그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놀라운 메시지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해답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로마서 3장 21~24절 말씀은 성경의 핵심입니다. 
성경이 다 없어진다고 할지라도, 
이 네 구절만 있으면 성경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이 네 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복음에 있어서 문이 열리는 그 중심 추와 같아서 
우리의 삶과 이 세상에 인류의 역사를 뒤바꾸는 위대한 포인트가 
바로 이 3:21~24절의 말씀입니다.

롬3:21~24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21절은 '이제는' 으로 시작하지만, 
많은 성경은 “그러나 이제는” 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3:20절까지 우리는 소망 없는 사람이요, 우리는 다 죄인이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믿음이 좀 좋다는 사람도,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죄를 범했고 
죽어야 할 바로 그 상황에서, “그러나 이제는"                   *헬. '데'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3:21~22

모든 사람이 다 700m 아래 그 갱도에 갇혀서 죽을 수밖에 없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 되었느니라'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이고 
죽어야 마땅한 우리들에게,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했다고 
로마서 3:21~24절은 우리에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어떤 방식으로 임했는가요?  본문 롬3:21~24절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 은혜의 모습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특징 세 가지는 

첫 번째,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세 번째, 무료다. 공짜다 라고 말합니다. 
이 3가지를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의는,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가 무엇을 지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시고, 
'너희가 율법을 지키면,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겠다'고 약속하신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 율법대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율법 외에' without the Law, apart from the Law
우리가 무엇인가 하고 지켜서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칠레의 광부들과 마찬가지로, 
광부들이 거기에서 구원받기 위해서, 구출되기 위해서, 무엇인가 열심히 노력했습니까?

그건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그와 같이 우리가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려 해도 소용이 없어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 우
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어요.

▲2. 의는 믿음으로 얻는다. (그러니까 은혜입니다)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믿음으로 얻으니.. 은혜인 것이지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우리는 믿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그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 그 은혜가 우리에게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 대해서 더 한 걸음 나가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내가 진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내 믿음이 구원받을 만한 충분한 믿음이 되는가?

내가 예수를 믿어 내가 주님의 자녀 되었고 내가 예수를 믿는 그건 분명한데, 
내 믿음이 혹시 너무 작지는 않을까? 내 믿음이 너무 약해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 
내 믿음이 정말 진실한 믿음일까? 구원받을 만한 분량이 될까?' 라고 의심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믿음은 믿음의 양이나 얼마나 진실한가 큰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믿는가? 즉 믿음의 대상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대상입니다. 믿음의 분량이 아니에요. 
'내가 얼마나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거면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탈 때, 이 비행기와 조종사에 대해서 믿음이 큰가, 믿음이 작은가에 따라서 
그 비행기에 탈 수 있고, 또한 그 비행기에서 또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종사와 그 비행기를 믿으니까, 탑승하는 것입니다. 

근데 어떤 사람은 '나는 믿을 수가 없어..  비행기가 날다가 떨어지면 어떡할까?'
걱정이 많아요. 그런 사람은 비행기를 타지 않겠죠.

그러나 '나는 믿음이 이거밖에 안 돼' 해도, 
그렇지만 비행기에 탈 수 있을 정도의 믿음은 가지고 있는 거예요. 
믿음이 작지만, 그 비행기를 탄 사람과, 
믿음이 커서 그 비행기를 탄 사람.. 두 사람 다 비행기를 탔으면, 둘 다 목적지까지 갑니다.

작은 믿음이든 큰 믿음이든, 그 구원의 비행기에 타면, 
그 믿음이 크건 작건 상관없이 우리는 그 목적지까지 갑니다.
(*여기서 믿음은, 회개하고 회심한 믿음을 뜻하며, 지적 동의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큰 믿음을 가져야 하나요? 
믿음의 분량이, 우리들의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가요? 그렇지 않아요. 

믿음의 분량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은, 그 비행기 안에서의 우리들의 삶을 좌우합니다. 
비행기 안에서 얼마나 그 비행을 즐기는가, 
기쁘게 그 비행을 즐기면서 가느냐를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비행기에 대한 믿음이 적은 사람은, 그 비행기에서 즐길 수가 없어요. 하나도 기쁘지 않아요. 
그러나 비행기와 조종사를 확신하고 믿는 사람은 
창문 밖도 내다보고, 잠도 자고, 얼마나 여행을 즐기는지 몰라요. 

여러분, 그 비행을 즐기고 싶습니까? 불안해서 벌벌 떨면서 가고 싶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분량과, 믿음의 순수함과, 믿음의 질이 결정하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작은 믿음을 가지고 내내 불안해하면서 갈지라도, 
또는 큰 믿음을 가지고 그 비행 여정을 기뻐하고 즐기면서 아주 행복하게 갈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은 믿음을 가졌기에, 끝까지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입니다.

은혜는 믿음으로 받습니다. 우리의 삶의 얘기가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하나님의 그 은혜의 대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 은혜의 바다로 우리를 인도하셨고, 
그 바다에 깊이 잠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오늘 깨달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값없이 의롭게 되니.. 은혜입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값 없이'
하나님의 은혜는 무료입니다. 값 없이 공짜로 주셨어요. 
그렇다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일에, 전혀 본전이 안 듭니까? 
전혀 자원이 안 듭니까? 그냥 저절로 된 일입니까? 

하나님 편에서는 어마어마한 너무너무 큰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는 거저 주신다는, 그냥 공짜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공짜로 주시기 때문에 비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너무너무 비싸서 우리가 그 값을 지불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공짜로 주십니다. 
  
(요15: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 똑같은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유 없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도레안' 입니다.

그러니까 롬3:24절과 요15:25절을 연결해서 보면,

하나님은 은혜를 '값 없이, 이유 없이' 주셨어요. 

이유 없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원인과 결과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기 위해서 무슨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어요?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얻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유 없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어떤 원인도 제공을 안 했는데, 
그냥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신앙 생활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믿음이 점점 커가고 믿음이 장성하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좀 더 윤택하고, 좀 더 능력 있고, 좀 더 깊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것이지,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 얻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이 은혜 네 가지 면 
(구속과, 속죄와, 칭의와, 양자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은혜의 네 가지 그림

한 가지 면을 봤을 때 우리는 전체를 다 볼 수 없는 거죠. 
한 면을 봤을 때 우리는 전체를 볼 수 없지만, 네 가지 면을 우리가 다 볼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반응합니다.

▲1. 은혜로 구속, 그래서 나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 redemption 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속량=구속 (Redemption) : 값을 지불하고 자유를 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첫 번째 면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종과 노예에서 →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들을 향하신 크신 은혜의 면은 구속입니다. 또는 속량이라고 말합니다. 

죄의 종에서, 마귀의 종에서, 사탄의 나라의 묶임에서
우리를 예수님의 피값으로 사셔서, 그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속, 또는 속량'은   *Redemption 
헬라어 성경에는 아폴뤼트로시스(ἀπολύτρωσις) 입니다. 
이것은 '값을 지불하고 자유를 준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노예를 해방시킬 때, 누가 값을 치르고 그 노예를 사서,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당시에 '값을 지불하고 노예에게 자유를 줬다'는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잘 이해가 되었어요. 그때는 종이나 노예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로마시에 사는 사람 중에 거의 절반 정도가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시장마다 노예 시장이 섰고,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서, 
그 노예를 자기 마음대로 일을 시킬 수도 있고, 그에게 자유를 줄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베푸신 그 하나님의 은혜는 
값으로 사서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사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바로 이 그림입니다. 

노예로서는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내가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주인이 돈을 지불하고 내가 사겠어요. 
노예는 이제 사슬이 묶인 채로 그 주인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주인이 '내가 너에게 자유를 주겠다. 네 마음대로 살아라.' 
이것처럼 그 사람에게 기가 막히고 놀라운 사건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어요.

△이 사건에 대해서 장발장이라는 영화,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을 보겠습니다.
장발장 영화에서 신부와 장발장의 대화입니다.
성당에서 은 기구를 훔쳐 도망간 장발장이 경찰에게 잡혀 옵니다. 

신부 : 그런데, 왜 은촛대는 안 가져갔나? 그건 최소한 2000프랑 정도되는 물건인데 말이야, 
왜 그것들을 두고 떠났나?

경찰 : 그럼 장발장이 말한 것(신부님이 주었다)이 사실이란 말인가요?

신부 : 그래 맞아요. 그를 다시 데려와 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젠 정말 안심입니다.

장발장 : 진짜 나를 놓아주는 거 맞죠? (다 가고 장발장과 신부만 남았다.)

신부 : 잊지 말게, 절대 잊지 말게, 너는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장발장 : 약속이요? 왜 이렇게까지 하시나요?

신부 : 장발장, 내 형제여 이제는 더 이상 은을 훔쳤다고 자책하지 않아도 되네,   
나는 이 은으로 당신의 영혼을 산 거라네, 그리고 두려움과 증오에서 벗어나게. 
이제 하나님께 돌아가게나

'내가, 이 은으로 네 영혼을 샀다. 이제 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이것이 오늘 본문 롬3장,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림과 같습니다.

'장발장, 너는 유죄야,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이 은으로 너를 샀다'는 이 대화
처럼,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사셨습니다. 
은으로 우리를 사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셨어요. 
그리고 “넌 자유다.”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2. 은혜로 속죄 :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롬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두 번째 은혜의 그림은,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씻어 주신 것입니다. 
속죄 (Atonement)의 은혜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화목 제물'은, 다른 말로 '속죄 제물'입니다.
영어로 propitiation,  또는 sacrifice of atonement 인데, 

구약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 속죄에 대해서 ‘키푸르’라는 단어를 쓰고 있고, 
하나님께서 너희들은 7월 10일 '대속죄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실 때 
그 이름이 ‘욤 키푸르’입니다. 욤은 날이고, 키푸르는 속죄, 

하나님께서 대속하는 제물을 통해서, 우리를 속죄해 주셔서, 
오늘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다 덮어 주시고, 그 죄를 속하여 주셨다, 그 죄를 다 갚아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속죄에 대한 ‘욤 키푸르’라는 이 단어가 등장한 것은 하나님께서 
레16장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가 덮일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대제사장에게 이런 명령을 하셨어요. 
'대속죄일 날, 우리의 모든 죄가 속해지는 날에 의식을 거행할 텐데 
그것이 너희 죄가 속해지는 바로 그 ceremony 이다.

너희는 염소 두 마리를 택해서, 한 마리는 너희들의 모든 죄로 인해서 
그 염소가 책임지고 그를 죽여 제물로 드리고, 
또 한 마리에게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모든 백성들의 죄를 그에게 안수하고, 
그의 머리에 모든 백성들의 죄를 얹고 그를 광야로 보내라.' (아사셀의 염소)

우리는 그 양을 '희생양 또는 속죄양'이라고 말합니다. scapegoat 
여러분, 우리들이 잘 아는 그 단어(희생양)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그 염소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그 머리에 얹고,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지고 광야로 뚜벅뚜벅 걸어가던 그 염소, 
그렇게 함으로써, 그 모든 죄가 불모지(광야)로 날아가 없어져 버린다고 여겼습니다.
(그 아사셀 염소는, 광야에서 맹수에게 찢겨 죽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죄를 다 지고 뚜벅뚜벅 걸어가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는 ‘희생양’이 광야로 내보내 지듯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은 성 밖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13: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지고 십자가 위로 올라가셨어요.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예수 그리스도께 덮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Exchange가 일어났어요. Spiritual exchange 
놀라운 영적인 교환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속죄의 은혜' 입니다.

▲3. 은혜로 칭의 :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롬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칭의(Justification) : 하나님께서 나를 옳고, 깨끗하고, 거룩하다고 선언하심이 '칭의'입니다.

세 번째,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고,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죄를 다 갚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 모든 죄를 다 됐다. 이제 됐다 
이게 너희들에게 베푸는 나의 은혜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걸로 끝나지 않았어요.  
또 은혜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크신 하나님의 은혜... 

그 세 번째 은혜의 그림은, 하나님께서 나를 깨끗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칭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깨끗해졌다고 법적으로 선포된 것입니다. 롬3:26

즉 '너는 의로운 존재야. 너는 깨끗한 존재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이렇게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 힘으로 깨끗해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칭의 Justification은 법정 용어인데, 우리가 깨끗해졌다고 법정에서 선언하는 것입니다. 
(판사가 '무죄' 판결하는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깨끗해졌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깨끗이 씻음 받았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로마서와 성경에 보면, 우리들은 수많은 죄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죄는 탐욕, 정욕, 분노, 거짓, 부정, 이기주의, 교만, 이것이 우리들의 죄예요. 

우리들의 모든 죄가 다 예수 그리스도께 다 덮어 씌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죄들에 가위 표가 그어졌습니다.

'아니야, 이제 너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라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깨끗하다'고 선언하시는데, 
이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간 후에, 이 모든 것들을 다 덮으신 후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의를, 우리에게 덮어주셨다는 사실이에요.

그 의는 '너는 완전한 존재야'라고, '너는 고귀한 존재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거룩해, 너는 신실하다. 너는 깨끗하다. 너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이다.'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책감 가운데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어요. 

어떤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항상 죄책감 속에 살아갑니다. 
'나는 너무너무 불결해서 나는 주님 앞에 설 수 없는데, 
주님께서 아니야 너는 이제 깨끗한 여자야. 너는 순결한 여자야. 너는 완벽한 여자야. 
너는 깨끗한 공주야. 너는 완벽한 하나님의 거룩한 여자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주님, 나는 너무너무 죄가 많았어요. 
마치 나는 화장실 변기 내릴 때, 그 물에 싹 씻겨 내려가야 할 그런 존재가 나입니다.'하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고 있을 때, 

우리 주님께서 내 어깨를 툭 툭 치면서 '아니야 너는 완벽한 존재야. 너는 깨끗한 존재야. 
너는 순결해 너는 거룩해. 너는 거룩한 왕자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세 번째, '칭의' 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요. 네 번째 '양자됨'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칭의'받은 사람의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화'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믿음으로 '칭의' 받은 사람이, '성화'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적 동의에 불과합니다) 

▲4. 은혜로 양자됨 : 하나님께서 나를 아들로 입양해 주셨습니다.
(롬8:15~16) 1'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양자됨 (Adoption)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주셨습니다.
정말 위대한 하나님의 크신 은총, 크신 은혜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아들로 입양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친아들과 양자를 차별하는 문화가 과거에 있었는데, 
당시 로마 사회는, 양자도 친아들과 똑같은 법적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양자'는 '아들'로 봐도 됩니다.

'너는 내 아들이야'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은혜, 내가 아무런 이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데, 
너무너무 큰 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아닙니까?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 우리가 의롭다고 하시고, 
그것만 해도 너무너무 감사한데, 
'너는 내 아들이야' 이렇게 아들이 되고, 상속자가 되고, 입양됐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양자 입양' 하면, 우리는 아기 때 입양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 사회는, 장성한 어른들을 입양하기도 했어요.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에서, 왕이나 귀족들이 자기의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양자를 입양해야 했고, 또 적당한 사람을 아들로 삼아, 그에게 자기 소유나 지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양자가 된다는 것은 '벤허' 영화에서 우리는 볼 수 있어요. 
주인공 유다 벤허는, 나이가 많이 든 장성하 어른인데도, '
한 로마 장군이자 유력한 정치인의 아들이 되는 거예요. 양자로 입양되는 것입니다. 

양자로 정하면, 이 아버지는 그 아들을 데리고 법원으로 갑니다. 
법원에서 이 양자에 대한 Identity(정체성)를 다 새로 바꾸는데, 
과거의 모든 삶을 다 지워버립니다. 

과거는 완전히 지워버리고, 이제 그에게 새로운 이름과 명예를 주고, 새로운 가문을 주고, 
새로운 유산을 주고, 새로운 지위를 주고, 새로운 소망을 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이것이 입양되어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과거를 다 지우시고, 이제부터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신분, 새로운 미래,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다 합해봤더니 십자가의 그림이 됩니다. 
이 은혜를 다 합해봤더니 그 아름답고 반짝반짝 빛나는 그 다이아몬드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고 
더 이상 펜을 들어 계속해서 로마서를 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탄성을 지릅니다.

(롬8: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은혜의 길은 십자가에서 발견됩니다. 
은혜의 길은, 하나님의 그 크신 우리들을 향하게 하신 그 놀라운 일들로 인해서 발견됩니다. 
은혜의 길이 어떤 길일까요? 변화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그 놀라운 역사 때문에 
우리가 이 은혜를 경험하기 전에 살아왔던 삶, 그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보는 관점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내가 과거에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보는 관점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은혜 가운데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