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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2장 나팔을 불어라

LNCK 2025. 6. 1. 07:5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요엘서 

https://blog.naver.com/karamos/80142305260

 

◈나팔을 불어라           욜2:1~14              2003.02.05.

 

요엘서를 그동안 두 번에 걸쳐서 말씀을 보았습니다.

제목을 살펴보자면 첫 번째가 '깨어 울찌어다' 입니다. 왜 깨어 울어야 하는 것입니까?

두 번째 제목이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소망하는 날이 여호와의 날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날이 기쁨과 감사의 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판의 날이 되기에 깨어 울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은 2:1절의 말씀처럼 ‘나팔을 불고 호각을 불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도 역시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기에, 나팔과 호각을 불어서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민방위의 날에 경계경보를 발령하여 대피시키는 것처럼, 경고의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역할입니다.

 

이러한 경고는 사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열방에 경고의 나팔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속받아 나온 것은,

온 세상의 제사장의 나라가 되기 위함입니다.

 

자기들만 구원받아서 잘살라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나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계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기에

이들에게 심판을 가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 받음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하나님께 불순종하더니 저렇게 망하였구나’ 하는 것으로도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죄인을 구속하심도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크심을 드러내시는 것이며,

죄인을 심판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나팔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하여 적을 이기게 되는 경우나,

또는 불순종함으로 적에게 패배하게 되는 경우도

결국 하나님의 나팔의 역할이 되는 것입니다.

 

◑서론 / 성경전체에서 나팔을 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본문 말씀에서 나팔의 경고와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이 어떤 경고가 되는지를 증거 하고자 합니다.

 

▲1. 제일 먼저 나팔소리가 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후에

시내 산에서의 나팔소리입니다.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 나는 나팔소리입니다.

 

이 나팔소리는 사람이 부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 난 소리입니다.

출애굽기 19:13절에, 나팔소리가 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 앞에 나아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산으로 접근은 하지 못하게 합니다.

산으로 가까지 접근하다가는 죽게 되기에, 모세만 시내산으로 올라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의 말을 믿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출19:16-19절입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하나님의 강림하심의 모습입니다.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게 울리니 진중의 모든 백성이 다 떠는 것입니다.

나팔소리는 하나님의 강림사건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감히 접근이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나팔소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알리시는 나팔소리입니다.

 

▲2. 그리고 나팔소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

신호로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 모이라는 신호로서, 전시에도 나팔을 신호로 사용하였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질 마지막 날에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불면서 행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임으로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불면서 행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팔소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를 또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나팔을 부는 내용이 있습니다.

 

▲3. 희년(50년째)의 속죄일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레위기 25:8-12절입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여기서 나팔을 불라고 하는 때가 710일 속죄일에 나팔을 불라고 합니다.

7월 1일에도 나팔을 붑니다. 이날도 안식일로 지킵니다.

이러한 나팔 부는 것은 가을 추수를 거두어들이는 초막절과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7월 15일부터는 초막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레위기 23장에 나옵니다.

그리고 레위기 25장에서는 희년과 연결된 속죄일에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

 

매년 나팔이 불어지지만 희년의 나팔소리가 나면

전국에서 종으로 팔려 있던 유대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땅이 팔린 자들이 다시 돌아오는 참으로 기쁨과 감사의 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년이 제대로 지켜진 기록이 성경에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안에는 제대로 나팔소리가 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속죄일에 형식적인 나팔은 불었을지 모르지만

참으로 종들이 돌아오고 땅이 다시 회복되는 그러한 나팔소리는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다린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회복될 날을 기다린 것입니다.

 

기득권자들은 자기들이 율법대로 살고 있다고 여기기에

여호와의 날을 얼마든지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율법을 지킨다고 하였지만

그들 나름대로 재해석하면서 자기들의 편리대로 적용하여 지킨 것입니다.

 

이것이 외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기다린 날은 회복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임을 요엘서가 증거하고 모든 선지서 들이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봅니다.

 

요엘서 2:1-3절입니다. "시온에서 (경고의)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

 

기다린 여호와의 날이 어둡고 캄캄하고 빽빽한 구름의 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하고 많은 백성이 쳐들어 온 것이기에,

이들이 지나가고 난 자리는 불탄 것처럼 황무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마치 전에는 에덴동산 같았으나 후에는 황무하여 지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에서 피할 자가 없다는 것을 나팔을 불고 호각을 불어서 경고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고가 1장에서부터 계속 반복이 됩니다.

메뚜기 떼들이 덮치는 자연재앙과, 적군이 쳐들어오는 재앙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고들은 최종적으로 여호와의 날이 임박한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다시 요엘서 2:4-11절을 봅니다.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그들이 용사 같이 달리며 무사 같이 성을 기어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아니하며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기어오르며 도둑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적이 쳐들어오는 정도가 아닙니다.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잃게 되는 날입니다. 이 두려운 여호와의 날을 당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나팔을 불어 경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출애굽기에서 보았듯이 시내산에서 나팔소리와 함께 강림하신

그 두렵고 놀라운 하나님의 날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성경 한곳을 더 봅니다.

 

스바냐 1:14-18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날이 이렇게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여호와께 범죄 한 세상에 대한 이러한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온 땅의 모든 거민이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날에는 금과 은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금과 은이면,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제 국민은행에 잠시 다녀왔는데 어느 한 창구에 줄이 길게 서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로또 복권을 산다고 줄을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당첨이 되어 수 백 억원을 받으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저도 잠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죄 짓는 일 외에는 달리 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이나 은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요엘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큰 나팔소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경고의 나팔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제

 

경고의 나팔소리가 들린다면, 듣고서 회개하는 자들이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방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을 자기가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서 33장에서 파수꾼이 적이 오는 것을 보고 나팔을 불지 않으면

파수꾼이 그 피 값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아서 그 성안에 사람이 죽으면

죽은 사람은 자기 죄로 죽지만, 그 피 값을 파수꾼에게 찾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나팔의 기능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팔을 불기는커녕, 나팔을 부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인 것입니다.

오히려 거짓 평안을 좋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소리를 좋아합니까?

나의 귀를 즐겁게 하여주는 거짓 평안의 말이 좋습니까?

아니면 쓰리고 아플지라도 경고의 나팔소리가 좋습니까?

 

오늘날 교회라 세상에 대하여 나팔소리가 되고 있습니까?

교회라고 하면 꼭 자신을 빼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몸 된 교회라면 이 세상에 대하여 빛과 소금입니다.

이것은 단지 윤리 도덕적 차원에서 세상사람 들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보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 언약의 나라를, 아들의 나라,

그 피로 이루신 나라를 사모하는 백성인가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낮에 성령이 임한 백성의 특징의 결론 부분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0:7절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계시록 8장에서 천사들이 일곱 나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차례대로 불게 되는데, 마지막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게 되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게 되리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팔소리가 들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비밀이란 무엇입니까?

 

계시록 11:15-18절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 나팔소리를 들으시고 이 언약의 말씀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

 

노아는 홍수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지만, 하나님께 순종해서 방주를 지었다.

성경 기록을 봐도 그렇고, 과학적 발견도 증언하는 바에 의하면

노아 홍수 이전에는 이 세상에 비가 아예 없었다고 한다.

그냥 지면에서 안개와 이슬이 올라와 식물이 자랐던 것이다. 2;6

 

비는 노아의 홍수 때 최초로 내린 것이다.

그러니까 노아에게는, 비의 개념이 없었고, 홍수가 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명하시니, 이해는 안 되었지만, 노아는 순종했다.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순종)하였더라 창 7:5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히 11:7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는데,

마음으로 믿은 것에 더불어 순종의 발걸음이 있었다.

 

 

날마다 순종하는 사람이... 사명자다!

 

아녜스 곤자 베자시오는

로레토의 성모 마리아 수녀회에 입회하면서

자신은 교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18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안락한 수녀원을 떠나

캘커타의 빈민가로 가서

가난하고 죽어 가는 이들을 위해 일하라는 소명을 받았다.

 

그는 그 일이 필생의 과업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나,

 

그로 인해 후에 그는 마더 테레사라는 이름으로

온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테레사는 새로운 소명을 느꼈을 때

순종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

 

비록 그것이 지금까지 지내 오던

편안하고 안정적인 자신의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테레사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엄청난 소명은 아닐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안주하는 삶의 자세에서 벗어나

주위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라고 촉구한다.

 

때때로 그 소리는 나팔 소리처럼 크게 울리지만

어떤 때는 바람처럼 잔잔하게 속삭이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 듣고자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소명을 주실 때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신다!

 

그 부르심과 시키시는 일을

오늘도 묵묵히 순종해서 수행할 때

지위와 나이에 관계없이

오늘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