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34] 인내로 영적 크레딧을 쌓으라 2025.6.20 - YouTube
◈인내로 영적 크레딧을 쌓으라 히10:26~39 2025.06.20.
◑도입 / '인내'는 영적 성숙의 척도
"인내"는 히브리서 전체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인내는 히브리서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 전체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죠.
'인내'는, 영적인 만능 열쇠 같은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인내를 통해서 받게 된다'고 말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히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 위해서 '인내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자, 크리스천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한데, 그 이유는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여러 가지 일들을 행하십니다.
우리 개인의 영적인 성장도 행하시고, 교회에 부흥을 주시기도 하시고,
사회를 갱신시키도 하시고,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서 변화시키시기도 하시는 등
많은 일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그 일이 이루어지는 통로는 동일한데, 그 통로가 뭐라는 거예요? 인내라는 거예요.
그것이 오늘 본문 36절입니다.
'인내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한 것을 받기 위함이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항상 누군가에게 먼저 약속으로 주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시면서 일을 행하시는데
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받는 통로는 항상 뭐라는 거예요? 인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는 영적인 만능열쇠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내가 없이는 받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행하시는 모든 일은, 인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기도응답을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100% 받을 수 있는 비결이 있는데, 뭔지 아세요?
그 비결은, 응답 받을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하는 거예요. 그럼 다 받아요.
그 기도제목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면, 계속 인내하며 기도할 수 있고요,
하나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면, 인내하며 기도하지 못하게 되고, 중단하게 되지요.
응답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 다 응답 받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인내'의 반대말은 뭐냐 하면 '포기'예요.
인내의 반대말은 실망이 아니라, 포기예요. 멈추는 거예요.
그래서 멈추게 되면,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하죠.
그러나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면, 항상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또한 인내는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죠.
출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모세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면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세요.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내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니까 당연히 인내는 선하고 좋은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내가 그렇게 쉽지는 않죠. 인내가 그렇게 달갑지는 않습니다.
내가 참고 인내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이 힘든 것을 (인내를) 왜 좋고 선한 것이라고 할까요?
사실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인내하셨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오늘 살고 있는 거 아닙니까?
만약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지 않으셨다면, 벌써 끝났죠.
여러분이 예수 믿기 전에 일은 차치하고,
예수 믿고 나서도 지금까지 얼마나 하나님을 못살게 굴었나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하나님이 오래 참고 인내하시는 분이 아니시면, 우리는 애당초 끝났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인내할 것을 생각하면.. 달갑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내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죠. 아멘.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오래 참으시는.. 그 인내가 하나님의 속성인데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도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인내하시는 것처럼,
당신 백성들도 오래 참고 인내하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라'고 하시잖아요. 엡4:13
그러면 여러분, 그리스도의 장성원 분량까지 자라간다고 했을 때, 그 구체적 내용이 뭘까요?
결국 인내예요.
여러분,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게 뭔가? 생각해 보세요. 오래 참는 거예요.
'영적으로 미숙한 게 뭔가?' 생각해 보세요. 못 참는 거예요. 그게 영적으로 미숙한 거예요.
잘 생각해 보세요.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건 뭐냐면
속 썩이는 사람이 있어도 참고, 화가 나도 참고, 힘들어도 믿음을 지키고...
그러니까 모든 '영적인 성숙'이라는 것은 결국 구체적으로는 뭐예요?
인내하는 거예요.
▲미성숙하다는 건 뭐예요? 못 참는 게 미성숙한 거예요.
누가 조금만 뭐라고 하면, 와악! 하고 화내고,
조금만 뭔가 속상한 일 있으면 뒤집어지고,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뒤집어졌다 엎어졌다... 이게 뭐예요? 미성숙한 거죠.
그러니 '미성숙하다'라는 것의 구체적인 데피니션은 뭐냐면, 참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라' 그랬을 때, 뭐가 자라라는 거예요?
인내함이 자라라 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내용은 인내라는 거예요. 왜?
모든 영적인 일은 인내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모든 영적인 일은, 하나도 예외 없이 인내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래요.
그것은 제 얘기가 아니라, 오늘 본문 성경 말씀이죠.
히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한 것을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려면, 그것이 응답되는 것을 보려면
반드시 인내를 통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는 영적인 만능 열쇠 같은 거예요.
오늘은 인내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인내에 대한 첫 번째 고찰은, 지금 방금 얘기했듯이,
<인내는 하나님께 속한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벧후3:9 '...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롬9:22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자 여기 보면,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님도 모두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그리고 심지어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함이래요.
이거 뭐예요? 우리도 오래 참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속성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인내가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멸망하고 끝났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빚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하나님을 묘사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 '사랑'이신데,
그 사랑의 속성이 뭐예요? 오래 참는 거래요.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고 시기하지 아니하며'
위 구절에 사랑의 첫 번째 속성이 뭐예요? '사랑은 오래 참고...'
그러니까 '사랑'은 곧 '인내'라는 거예요.
자 여러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오래 참아주는 거잖아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오래 참아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러셨듯이, 우리도 그러는 (인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 엄마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건 뭐예요?
아이가 그렇게 힘들게 하는데도 참아주잖아요.
아이를 키워보신 어머니들은 알지만, 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첫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알 거예요. 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24시간을 요구한단 말이에요. 아이는 봐주는 거 없어요.
조금 애가 크면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게 있지만, 어렸을 때 한 살, 두 살 될 때까지는
24시간을 부모에게 요구합니다.
여러분, 누군가에게 24시간을 요구당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그것을 참아주죠. 왜? 사랑하니까!
이런 인내가, 바로 사랑이잖아요. 그래서 자기 아이가 아니면.. 그건 못 해요.
자기 아이가 아니면, 24시간을 돌봐 줄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돌보듯이 24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친 엄마가 아니면 못해요.
왜? 사랑!
그래서 사랑은 첫 번째 요소가 뭐예요? 오래 참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인데
그것은 더 인내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조금밖에 인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더 인내합니다.
더 오래 참을 수 있게 되는 것, 이게 영적 성숙이에요.
▲사랑은 또 '온유하며' 그랬잖아요. 고전13:4
온유는 뭐예요? 화를 참는 거죠. 화를 내지 않고 인내하는 거니까,
이 '온유'도 결국 본질에 들어가면, 인내하는 거예요.
내 안에서 막 화가 나고, 분이 올라오고 이러는데
그것을 표출하지 않고 인내하는 게 온유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의 속성들을 보면.. 그 뿌리에는 항상 '인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인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의 뿌리 같은 것입니다.
또 '무례히 행치 않는' 것도 뭐예요? 고전13:5
나의 욕구를 인내하는 거죠. 뭔가 그 사람에게 이렇게 욱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것을 인내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의 모든 속성들, 또는 영적인 성숙함의 거의 대부분의 속성들은,
그 뿌리에 뭐가 있는 거예요? 인내가 있는 거예요.
인내를 통해서 이 영적인 속성들이 나오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그 뿌리에 내려가 보면, 인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적인 건 뭐예요? 인내하는 거예요.
누가 영적인 사람입니까? 오래 참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에요.
누가 미성숙한 사람입니까? 못 참는 사람이 미성숙한 사람인 거예요.
인내하지 못하는 게, 미성숙한 사람인 거예요.
조금만 자기에게 감정 상하는 일이 있으면, 못 참고, 가서 하여간 해대야 돼요.
이런 게 미성숙한 거예요.
그럼 성숙한 것은 뭐예요? 인내하는 것, 그게 성숙한 겁니다.
◑2. 둘째, 인내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인격적 대상을 향한 인내가 있고,
-또 비인격적 대상을 향한 인내가 있습니다.
이게 두 개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인격적 대상을 향한 인내란..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아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도, 또 그 사람 때문에 불편하고 손해를 좀 봐도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이 사랑의 중요한 속성입니다. 사랑하면 참아주죠.
갓난 아이를 돌보는 것이 힘들어도, 엄마가 그것을 참아주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해냅니다.
그래서 인격적 대상을 향한 인내는 사랑입니다. 결국 사랑하는 거예요.
반면 비인격적 대상을 향한 인내가 있습니다.
이건 뭐냐 하면, 환란이나 핍박이나 질병이나 고통이나...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 굉장히 힘들어요. 그것을 그냥 참는 것도 인내죠.
물론 이것이 이렇게 딱 구분되는 건 아니에요. 막 섞여 있기도 해요.
인격적 대상에 대해서 인내하는 것이, 비인격적 대상을 향한 인내를 포함할 때도 있습니다.
'그 인간이 뭔가 굉장히 힘든 상황을 자꾸 만들어...'
그럼 내가 고통스러운 데도 참아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이 딱 이렇게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충은 나눠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향한 인내, 그것은 이제 그 사람을 참아주고 용납해 주는 거라면,
비인격적 대상이라는 것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들어요.
뭐 질병이 있거나, 고통이 있거나, 환란이 있거나 해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것,
그것도 인내입니다.
비인격적인 대상을 향한 인내란
-첫 번째는 고통이 있는 상황에서 인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고통이 없는 상황이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서
인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통이 있는 상황에서 인내한다는 것은, 아까 얘기했듯이
질병이나 또는 핍박이나 육체적인 고통.. 이런 것을 인내하는 것이고
둘째 고통이 없는 상황이지만, 원하는 것이 더뎌서 인내하는 것이 있죠.
예를 들어서 한국 사람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식당에 가서 '빨리 빨리' 뭐 이런 말 있잖아요.
그것도 인내지요.
원하는 것은 뭐예요? 밥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근데 그게 내가 원하는 만큼 빨리 안 나와요. 그럴 때도 인내해야 되는 거죠.
또는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이게 출고가 빨리 안 돼요.
올해 연말이나 돼야 나온대요. 그러면 하여간 그것도 인내해야 되잖아요.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인내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섞여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것이 비인격적인 거, 고통이 있는 거/ 없는 거...
이렇게 칼로 무 자르듯이 딱딱 나눠지는 건 아니에요. 섞여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로 구분해 보는 것은,
왜냐하면 인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 그래요.
인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나눠서 들여다보면,
'이것이 왜 힘들까? 이걸 참아주는 게 왜 힘들까?'를 들여다 볼 때
'아, 인내의 본질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임의로 구분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내의 본질>이 뭘까요?
몇 가지로 구분해 보면 본질을 볼 수 있게 되는데,
이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질문을 던져봐야 됩니다.
'인내가 왜 힘들까? 인내하는 것이 왜 어려울까?'
인내가 우리 내면에 어떤 부분을 건드리기에 어려운가를 성찰해 볼 때,
인내의 본질이 무엇인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먼저 '비인격적인 인내'부터 보죠.
고통이 있는 경우 인내가 힘든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고통스러우니까!
그러니까 인내가 어려운 거죠.
그래서 이 당연함으로 인해서, 이 경우는 '인내의 본질이 무엇인가'가 잘 안 보여요.
고통이 있으니까 당연히 힘든 거죠.
그래서 여기는 잘 안 보이는데, 그러나 물리적 고통이 없는 경우에도 인내는 힘들죠.
이때는 왜 그럴까요?
예를 들어서 수능을 보고 대학에 원서를 냈어요.
그리고 나서 발표 날짜가 될 때까지 되게 힘들죠. 인내하는 것이 힘듭니다.
빨리 발표가 났으면 좋겠죠.
이건 물리적으로 고통스러운 건 아닌데, 힘든단 말이에요.
이때 인내가 왜 힘들까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는, 불안하기 때문에 힘든 거예요.
내가 기대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 불안이 인내를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대학에 지원해놓고 발표를 기다릴 때 힘들죠.
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힘든 것의 정체죠.
그리고 이 불안은 구체적으로 뭐냐면, 믿음의 부재에서부터 오는 거예요.
확실히 붙을 거라고 하는 믿음이 있으면, 안 불안하겠죠.
그런데 믿음이 없으니까 불안한 거예요.
그러니까 불안과 믿음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거죠.
믿음이 없으니까 불안한 거고, 불안하다고 하는 것은 믿을 수 없으니까 불안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관련되어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신뢰가 부족할 때
인내가 힘들어지는 거예요.
▲1. 그래서 인내의 본질, 그 첫 번째는 <믿음> 입니다.
그러니까 인내를 힘들게 하는 이유는 뭐냐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부족하니까 인내가 어려워집니다.
그 얘기는 뭐냐면, 인내의 본질은,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자, 우리가 뭔가를 인내한다 라는 건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뜻인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고통과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한다는 건 뭐냐면
'하나님이 좋은 일을 하실 거야.. 하나님이 결국엔 이기실 거야..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셔!'
이것을 신뢰하는 것이 인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인내의 가장 뿌리에 내려가 보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히10:36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인내를 얘기하고, 바로 이어서 믿음을 얘기합니다.
인내를 얘기하고 바로 믿음을 얘기하면서,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자가 아니라,
결국은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다' 즉 '끝까지 참는 자다'... 이런 뜻이죠.
그러니까 인내는 믿음하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잠깐 정리하면,
인내가 힘든 첫 번째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어떤 믿음?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는 믿음,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거라는 믿음,
또한 하나님은 실패하지도 않으시고, 실수하지도 않으신 분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결국 인내 라는 거예요.
좋으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부재가, 인내를 어렵게 합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좋으시고 선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곧 인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2. 인내의 두 번째 본질은 <소망>입니다.
핍박이나 환란이나 질병 등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인내를 힘들게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절망입니다.
이 상황이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 거예요.
이 고통이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 인내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소망의 부재가 인내를 어렵게 해요.
소망이 있으면, 비록 지금은 힘들어도, 하여간 인내할 수 있어요.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10: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자, 더 나은 것, 더 낫고 영구한 소유, 더 나은 나라... 그러니까 소망이 있다는 거예요.
결국엔 우리가 하나님의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이고, 결국엔 부활에 이를 것이고,
결국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것이고, 결국엔 하나님이 이기게 하실 것이고,
결국엔 승리하게 하실 것이고... 이 소망이 있을 때, 우리가 인내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소망이 살아있으면, 인내는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죽으면, 인내도 죽습니다.
그래서 인내의 두 번째 본질은 소망이에요. *첫번째 본질은 '믿음'
결국은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소망,
결국은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이라는 소망,
결국은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소망,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소망,
이 소망이 인내의 두 번째 본질입니다.
▲3. 인내의 세 번째 본질은 <절제의 부재>입니다.
핍박이나 환란 같은 특별한 물리적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인내가 어려운 이유는,
그냥 내 욕망이 스스로 컨트롤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빨리 먹고 싶은데, 음식이 빨리 안 나와요.
그러니까 여기서의 인내의 어려움은 뭐예요? 빨리 먹고 싶다 라는 내 욕망인 거죠.
이게 이제 절제가 안 되고 컨트롤이 안 되니까, 힘든 거죠.
자동차를 사는데, 즉시 출고가 안 돼요.
빨리 세 차를 내가 몰아 봐야 되는데, 이 몰아보고 싶은 욕구가 이게 컨트롤이 안 되는 거죠.
그게 인내를 어렵게 합니다.
그래서 인내가 힘든 세 번째 이유는 뭐냐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하고 싶은 욕구... 가 절제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욕구가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 ... 이걸 들여다 봐야 돼요.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다 할 수 있다면,
내가 하나님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다 할 수 있다면, 내가 하나님이죠.
그러니까 이 욕구의 본질은 뭐냐면, 내가 하나님이 되고 싶은 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거죠.
사실 이 욕구는, 선악과 따 먹고 싶어하는 욕구하고 정확히 같은 거예요.
그 욕구의 뿌리는 죄라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다 하고 싶은 것'
아니요, 여러분.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 우리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피조물이지 창조주가 아닙니다. 우리는 백성이지 왕이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타이밍에 다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타이밍에 해야 되는 것,
그것이 창조 세계의 질서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욕구는 뭐냐면, 다음 구절에 나와요.
마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의 타락하지 않은 올바른 욕구는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타이밍에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는 것이 올바른 욕구예요.
그래서 이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인내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셔!'
'내가 인내하기 힘든 것은, 내 타이밍을 원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얻고 싶은 거예요.
그게 안 되니까 인내가 힘든 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타이밍에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 구속받은 욕구가 있는 사람은, 샬롬이 있어요.
우리가 샬롬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뭐예요?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얻고 싶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샬롬이 없어지는 거죠. 그것은 타락한 욕구 때문이라는 거예요.
뭐예요? 내가 왕이고 싶고, 내가 창조주이고 싶고, 내가 하나님이고 싶은 타락한 욕구입니다.
이 타락한 본성의 욕구가, 우리의 인내를 어렵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주에 대한 경외,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는 거죠.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하는 걸 인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엇을 이루실 것이고, 언제 이루실 것인지는 하나님만이 결정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죠.
'나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이게 인내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인내의 세 번째 본질은, 다른 말로 '하나님을 향한 경외'예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있을 때, 우리는 인내할 수 있어요.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이루어지지 않아도, 인내할 수 있어요.
왜?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이다.'
이게 우리의 욕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잠깐 정리하면, 비인격적인 인내를 어렵게 하는 것은
첫째는 믿음의 부재고
둘째는 소망의 부재고
셋째는 절제의 부재, 이것은 곧 경외심의 부재입니다.
자, 바꿔 말하면 하나님이 행하실 것에 대한 믿음이 인내고
선하신 약속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소망이 인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곧 인내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이루어질 것을 원하고 믿고 소망하는 사람은
그 안에 샬롬이 있습니다. 낙심과 포기가 아니라,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샬롬이 있습니다.
그래서 Keep going in shalom 이게 하나님을 향한 경외이고, 믿음이고, 소망입니다.
◑'인격적인 인내'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인격적인 인내는 뭐겠어요? (비인격적 인내처럼) 역시 그 상황을 초래하는 존재가 있죠.
다른 사람들!
자 그러니까 여러분, 결국 복음은 뭐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결국 하나님을 향한 인내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웃을 향한 사랑이, 인격적인 대상을 향한 인내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내'라는 것은 결국 복음의 가장 뿌리에 자리 잡고 있는 거죠. 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이 곧 인내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러면, '하나님을 오래 참아드리는' 거예요.
오래 참아드린다고 하는 게 뭐예요.? 믿어드리고, 소망을 놓지 않고, 경외하고 하는 게
하나님을 오래 참아드리는 거죠. 이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고요.
▲인격적 대상을 향한 인내는,
결국 인내를 어렵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이웃에 대한 것이죠. 이웃에 대한 태도입니다.
자, 인격적 인내가 필요한 이유는 함께 살아가려면,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혼자 산다면, 인격적 인내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려면 다르죠.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할 수는 없죠. 왜요? 저 사람도 원하는 게 있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과,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이 충돌할 수도 있는데,
그때는 용납이라는 인내가 요구되고요.
또한 반대로 내가 원하는 것과,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이 같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양보라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그래서 인격적 인내는, 상대에 대한 배려고 존중입니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위해, 내 것을 양보하고, 내려놓고, 희생하는 것이
인격적 인내의 본질이고,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거예요.
성경은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게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이웃에 대해서 오래 참고 견디는 거예요.
무례히 행하지 않는 거예요. 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 주는 거예요.
화내지 않는 거예요. 이게 참아주는 거죠. 모든 것을 참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은.. 배려하고, 존중하고, 믿어주고, 양보하고, 희생하고...
이게 인격적 인내의 내용인 거죠.
반대로 사람에 대해서 인내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기다려주지 못해요. 받아주지 못해요. 용납도 못해요.
그럼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죠. 무례한 거죠.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폭력적인 것이고, 막 대하는 것이고, 착취하는 것이고... 이것은 인내의 반대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인내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인내는, 우리를 향한 사랑과 긍휼에 기초하죠.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기에 오래 참고 기다려주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인내로 말미암아, 오늘도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겁니다.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아멘!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역시
하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인내의 결과>는 뭘까요?
히브리서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인내의 결과는 약속하신 것을 받는 거래요. 인내에는 큰 상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인내의 결과는,
▲1. 인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영광!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인격적인 인내), 환란이나 질병이나 고통이나 하는 상황을
허락하시기도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거예요.
어떤 영광?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영광!
구체적으로 어떤 거에요? 인내하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라는 거예요.
환란이나 고통의 상황 속에서 인내함을 통해
우리는 인내의 본질인 믿음, 소망, 경외를 키워가게 되고,
이렇게 함양된 인내를 이웃을 향해 나타내므로 말미암아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치 않는 상황을 허락하실 때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드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세요.
절대로 우리에게 안 좋은 거를 주시는 분은 아니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모든 어렵고 힘든 질병 이런 것들은
사실은 죄로부터 온 것이고, 원수로부터 온 것이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에요.
그거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절대 하나님이 그런 것을 일부러 만들어서 주시는 분은 아니세요.
그런데 때로는 원수가 그렇게 하도록 잠깐 놔두실 때가 있다는 거예요.
잠깐 왜 잠깐 놔두시는가요? 그걸 허락하시는 이유가 뭐라는 거예요?
우리에게 인내를 함양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거예요.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롬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결국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은, 연단은 소망을 이룬대요.
소망이라는 건 뭐냐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그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결국 소망인데,
이 일의 시작은 인내를 통해서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주1)
우리 말 성경에 '연단'은 영어성경에 보면 '성품, 인격 character'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환란이 있는데, 이 환란은 인내를 만들어내고,
그리고 이 인내는 우리의 성품을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성품은, 성도를 소망에 이르게 한다는 거예요.
어떤 소망?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소망' 엡4:13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소망을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자기 개인의 소원 성취가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가 변화되는 거예요.
우리의 존재가 그리스도를 닮은 존재로 변화되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참 소망이죠.
그래서 그 시작이 뭐예요? 환난으로 인한 인내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어떤 환란이든지, 질병이라든지, 육체의 고통이든지,
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는다든지... 이런 일들...
'이상하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기도하는데 안 들어주시지?' 뭐 그런 것들 있잖아요.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죠. '빨리 빨리'
정말 그런 것 같기는 해요. 제가 서양 선교사들을 보면 굉장히 느긋합니다. 정말이에요.
굉장히 느긋하고 샬롬이 있어요.
그래서 30년, 40년 선교 사역하고도, 한 명도 열매가 없는데도, 긴장도 안 해요.
한국 선교사들 같았으면, 10년만 열매가 없으면 안달이 납니다.
안달이 나고 '내가 부르심을 잘못 받았나? 돌아가야 되나? 교회에 뭐라고 보고하나?'
서양 선교사들은, 회교권에서 30년, 40년 동안 아무 열매가 없어도 평안해요.
이게 이제 한국 사람들의 장점이면서 약점인데,
빨리 빨리... 우리는 뭐든지 빨리 빨리 쇼부(승부)를 봐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이게 사실은 하나님의 성품이랑은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어요.
좋은 점도 있긴 한데, 안 맞는 부분들도 있어요. 뭐죠?
기도응답이 빨리 안 되면, 빨리 뒤집어져요.
기도응답이 빨리 안 되면, 빨리 실망하고 빨리 포기를 해요.
10년 20년 이렇게 기도한다고 하는 건... 생각을 잘 못해요.
기도는 여러분 반드시 응답 되거든요.
그런데 언제 응답 되냐면, 하나님의 타이밍에 응답이 돼요.
'하나님의 타이밍'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케이, 내가 타이밍을 정했어. 넌 20년 될 때까지는 안 돼!' 이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목적이 있으신 거잖아요.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목적이 있으신 거잖아요.
이게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리신다는 거죠.
그러니까 빨리빨리 기도응답이 이루어질 것을 재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빨리 순종하는 것이
기도응답을 앞당기는 길이라는 거예요.
자 근데 어쨌든 간에, 뭐 40년 50년 이렇게 셋업(정)하신 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타이밍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것을 이루실 때까지... 그게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응답받기를 원하는 거죠.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그것은 사실은 영적으로는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타이밍에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영광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허락하셔서 사용하십니다. 그것이 인내의 결과입니다.
사실 '영적인 성숙'이라는 것은,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결국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인내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래 참는 사람을 만드시겠다는 거예요. 그게 인내거든요.
그게 사랑이고, 그게 소망이고, 그게 믿음이고, 그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고,
이게 다 같은 거잖아요.
오래 참을 수 있는, 인내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성숙하다고 하는 것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내의 환경을 너무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냥 힘들어도 좀 참읍시다. 조금만 인내합시다.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면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랬어요.
감당할 만하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잔인한 분이 아니세요. 감당도 못하는 걸 우리에게 주고 나서 '인내 해!'
그래서 막 죽이시는 분은 아니거든요. 감당할 만한 걸 주세요.
믿음과 소망과 하나님을 경외함을 굳게 붙잡으면, 그러면 감당할 수 있어요.
낙심하지 마십시오. Keep going 하십시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그런 큰 일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2. <인내하는 자에게 큰 상급>이 있대요.
인내의 결과는, 인내를 통해서 큰 상을 받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히10:35
그래서 인내로 하나님을 경외함을 나타낸 자들에게는 큰 상이 있습니다.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21 악에게 짖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위 구절은 인내에 대한 말씀이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또 원수가 뭐라고 해도,
인내하라는 말씀이예요.
우리가 인내할 때 뭐라는 거예요? 원수의 머리에 숯불이 쌓인다는 거예요.
이건 뭐냐면 일종의 영적인 크레딧이에요. *마일리지 적립
우리가 인내할 때마다 쌓이는 크레딧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때가 찼을 때, 우리는 큰 상, 쌓였던 크레딧을 한꺼번에 받게 된다는 거예요.
요즘 항공사 마일리지가 있습니다.
저도 비행기를 많이 타다 보니까, 항공사 마일리지가 제법 있는데,
이 마일리지를 쌓다 보면, 항상 갈등을 겪게 됩니다. '제주도 갈 때 쓸까?'
'아니야, 조금만 더 모았다가, 미국 갈 때 쓸 거야' 막상 쓰려면 자리가 없지만요.
뭐 이런 게 있잖아요. 이게 이제 마일리지죠. 크레딧이 쌓인다는 게 이런 거예요.
'인내로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는다'는 게 뭐냐면,
원수의 머리에 인내할 때마다. 숯불을 하나, 둘, 셋, 넷... 계속 쌓아놓는다는 거예요.
1층, 2층, 3층이라고 이해해도 됩니다.
그런데 그 위에 이렇게 첩첩이 쌓아놨다가, 한 방에 그냥 왕창 써 먹는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찔끔찔끔 원수를 쿡 찌르고, 쿡 찌르고...
이렇게 숯불 하나씩 써서는 별로 타격을 못 주는데,
그 원수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중에 한 꺼번에 그게 불이 붙으면, 그냥 한 방에 원수를 박살내는 거죠.
이 얘기를 지금 위 로마서 구절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반대의 크레딧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인내에는 항상 큰 상이 있다고 했단 말이에요.
문제는 우리가 이 상을, 조금 빼서 찔끔 쓰고, 조금 빼서 찔끔 쓰고... 이렇게 할 거냐?
아니면 차곡차곡 상급을 모았다가 한 방에 쓸 거냐? 이게 인내라는 거예요.
모으고 모아서 한꺼번에 큰 상으로 받을 것인가?
그것은 어떻게 얼마나 인내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내해 오신 여러분 잘하셨습니다.
아직 크레딧을 쓰지 않으셨다면 잘 하셨어요.
이제 모아서 한꺼번에 쓸 수 있다는 거예요. 큰 상이 여러분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남발하는 공수표가 아니라, 성경의 약속이잖아요. 히10:35
인내함으로 그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서 있는 사람은,
크레딧을 쌓은 것만큼 큰 상급이 있다는 거예요.
많이 쌓으면 많이 쌓은 것만큼, 큰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힘내십시오,
히브리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히10:2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2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주께서 속히 일하신다는 거예요. 속히 일하신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43:50분까지 녹취, 길어서 후략
.................................................
주1)
롬5:4절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이렇게 말씀했는데,
여기서 '연단'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키메)의 뜻은 proving 입니다.
유명한 고후13:5절에 '너희 믿음을 확증(도키마조) 하라'고 했죠. 어원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롬5:4절의 '연단'은, 원어로 '확증하다, 증명하다'는 뜻입니다.
뭘 확증하고 증명해요?
인내를 확증하고, 인내를 증명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확증을, (그 인내의 증명, 확증을, 오래 인내하고 참음을 증명하면)
그 확증은 소망을 이루느니라'
그걸 영어성경에는 character (성품을) 이라고 주로 번역했는데,
인내를 통해서, 성품이 연단되어 성숙해진다... 이렇게 의역한 거죠. 맞습니다.
원래 뜻은, 환난은 인내를, 그 인내를 계속해서 인내가 증명되면,
그 증명이 소망을 이룬다.. 라는 해석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