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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22 – 날아가는 두루마리 (2021.03.14 주일예배) - YouTube
◈날아가는 두루마리 슥5:1~4 2021.03.14.
◑도입 / '심판'이 있어야 구원이 완성된다
*여기서 심판은 주로 '죄의 징계'를 뜻함, 최후 심판은 약간만 나옴
본문은 스가랴서 5장입니다.
스가랴가 봤던 8개의 환상이
스가랴서 전반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그 8개의 환상 중에 6번째, 7번째의 두 가지 환상이, 본문 슥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번째, 5번째 환상이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듯이,
6번째, 7번째 환상도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4번째, 5번째 환상의 내용은, 인간의 죄에 대한 것이었죠.
인간의 죄와 연약함을 하나님은 어떻게 회복하시는가 하는 내용이었다면,
이제 본문 6번째, 7번째 환상을 살펴보겠는데, 그 내용은
6번째 환상은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이고,
7번째 환상은 <에바 속에 있는 한 여인>에 대한 환상인데,
이 두 환상은 모두 다 죄와 심판에 관련된 환상입니다.
그래서 본문 6번째, 7번째 환상의 주제는
<죄와 그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이 스가랴의 환상의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적어도 크게 세 부분으로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1) 1~3번째 환상은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환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읍을 회복하시고, 거기에 불성곽이 되어 주시고,
그 안에 영광으로 거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실 영광스러운 유업들과
또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격려, 약속, 회복, 위로... 이런 메시지였습니다.
소망을 주는 메시지였죠.
2) 이어지는 4번째, 5번째 환상은 (두 번째 카테고리인데, 첫 번째는 회복)
그것은 '그렇다면 죄인인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있는가?',
또 '죄와 무기력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이라고 하는...
그래서 우리 죄와 무기력을 해결하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것이
4번째, 5번째 환상이고, 두 번째 카테고리에 속한 환상이었죠.
3) 그리고 세 번째 카테고리가 오늘 본문 6번째, 7번째 환상입니다.
이 환상들은, <죄를 정결케 하시는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할 때,
그것이 전 세계의 역사를 끌고 가시는 글로벌한 역사든지
아니면 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든지, 한 교회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든지,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든지... 다 동일한 어떤 원리들이 있어요.
▲동일한 프린시플 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 세 가지가 전부 다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항상 어떤 일을 행하시려고 할 때,
1) 먼저 회복에 대한 약속들,
또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는 데스티니의 완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시는데,
2) 그러고서 두 번째로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럼 내가 약속한 것들을 너희가 어떻게 이루어가는가?'
개인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고, 나라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너희에게 약속한 이 놀라운 축복과 소망들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간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에요.
3)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게 있는데, 마지막 세 번째 요소가 있는데, 심판입니다.
그게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환상인데요.
마지막 8번째 환상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위임식.. 결론에 대한 얘기고,
세 번째 반드시 기억해야 될 건 뭐냐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축복하시고 힘주시는 그런 사랑의 하나님이신 거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그 공의를 이루시기 위해서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을 보면 계시록도 그렇고 또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복음서 말씀을 보면,
항상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항상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속성이 있는데,
처음에 소망을 주심으로, 비전을 주시고
그 다음에 은혜로 그 일을 시작하게 했어요.
은혜를 주심으로 우리로 그 길을 걸어가게 하세요.
처음에 소망과 비전을 주시고, 그 다음에 은혜를 주심으로써 그 일을 시작하세요.
그렇지만 그 일을 마치고 완성하는 것은, 심판이 있어야 돼요.
그 일을 마치고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심판을 거쳐야 됩니다.
심판을 통해서 모든 악이 제거되고,
정결함에 이르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역사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에 이를 수 없다는 거예요.
개인도 마찬가지고, 나라도 마찬가지고,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궁극적으로 이끄시려고 하는 마지막 완성의 모습은
하나님과 같은 영광에 이르는 모습이거든요.
그냥 대충 죄의 때가 묻고, 죄하고 엉겨서 살고, 이런 모습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영광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마지막 완성된 모습인데
개인이 됐든, 아니면 교회가 됐든, 마찬가지인데
이를 위해선, 심판을 통하여 죄가 제거되지 않고서는 완전함에 이를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보면, 큰 심판이 있는 거죠. 큰 심판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미루고 미루시다가, 알곡과 쭉정이가 있는데
쭉정이를 밭에서 미리 빼려고 하다가, 알곡이 다칠까봐...
심판을 미루고 미루고 미루시긴 하시지만,
결국 마지막에 완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죄와 더러움을 완전히 제거하시는 심판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만 완성에 이를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개인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다 끝내고 나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그때 최후의 심판이 있겠지만,
꼭 그렇게 죽음을 앞두고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의 삶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들, 그 역사하시는 어떤 순간들을 보면
항상 심판이라는 요소가 같이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돼요.
단순히 비전과 은혜만 가지고 그 일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 뭔가 향하시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 과정에는 심판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심판을 통해서 (구속사역의) 완성의 방점을 짓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좀 무거운 주제이긴 합니다.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면, 사람들이 교회 잘 안 와요.
그래서 현대교회에서 심판에 대한 메시지는 점점 희석되는 것 같아요.
은혜에 대한 메시지가 훨씬 더 풍성해지고...
기억해야 될 것은, 성경은 은혜와 심판을 다 얘기하고 있다는 거예요.
구약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의 맨 마지막도 심판으로 끝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삶 가운데 정말 하나님의 역사가, 더 성숙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완전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물론 우리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엔 완전할 수는 없지만,
지금보다 더 큰 완전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심판이라는 과정을 거친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의 데스티니가 충만한 완성에 이르기 위해선
반드시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죄 문제를 두 가지로 해결하시는 거예요.
첫째는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 은혜를 통한 죄사함,
그 죄사함을 통해서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요.
두 번째는 심판을 통해서 죄를 제거하시는 거예요. *여기서 '심판'은 죄의 징계를 뜻함
심판은 그냥 단순히 벌을 주고, 단순히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에 본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제거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세요.
은혜... 은혜를 통한 죄사함, 은혜를 통해서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도 하시지만
심판... 동시에 심판을 통해서 죄를 제거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은혜를 통해서 먼저 시작하세요.
그리고 은혜가 우리에게 오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기뻐하게 되고, 하나님께 더 감사하게 되고, 감격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게 되고, 예배하게 되고... 그렇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은혜만 가지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단계에 이를 수는 없어요.
은혜로 시작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완성의 방점을 찍기 위해서는 뭐가 있어야 되죠?
네, 심판이 함께 있어야 돼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만, 만약에 우리가 은혜를 은혜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은혜를 받고 나서도, 그러니까 은혜를 받고 인정하고 누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끌어안고 산다면,
계속 반복적으로 죄 가운데 머문다면... 결국 어떻게 될까요?
사실 이게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 아닙니까?
은혜를 경험했다고... 여러분은 죄로부터 다 자유케 되셨나요? (죄 안 지으세요?)
물론 죄의 심판으로부터는 자유쾌 됐을 거예요. 의롭다고 칭해 주셨으니까.
그렇지만 실제적인 죄의 문제들이, 다 우리 삶에서 제거된 것은 아니죠.
우리 삶 가운데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거되지 않고 덕지덕지 붙어있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그 가운데 빠지게 되는 그런 죄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분명한 것은 뭐냐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죄가 우리 삶 가운데에 덕지덕지 붙어있는데,
그 상태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수준에 이르게 하실 수는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향한 놀라운 계획과 데스티니를 가지고 계신데,
우리 삶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실질적인 죄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데스티니의 충만함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죄의 속성은.. 하나님의 계획을 파괴하는 거예요.
죄의 속성은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는 것이고,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데스티니를 왜곡하고 파괴하는 거예요.
그래서 죄가 계속 남아있으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도
내게 해결되지 않는 죄들이 계속 남아있으면
그 죄의 문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을 계속 파괴해갑니다.
계속 파괴해가서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공동체적으로도 그렇고, 또 한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죄라고 하는 문제가 있으면, 결국 죄로 인한 한계에 딱 갇혀버려요.
그래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해요.
물론 하나님의 은혜와 죄사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나면, 그 전에 지었던 죄 중에 많은 부분들이
씻겨나가기도 해요.
그렇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죄의 문제들이 있죠.
그리고 그것이 저와 여러분이 어디까지 하나님의 계획을 누릴 것인가 하는 것을
딱 한정 지어버리는 거예요.
그 이상은 더 이상 가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이 온전한 하나님의 계획, 온전한 하나님의 축복을
다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 죄를 제거하시는데
그 제거하시는 것이 바로 심판을 통해서 입니다.
그러니까 심판은 뭐냐면, 죄를 제거하시는 거예요. 그게 심판이에요.
그래서 말라기서를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말3: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여기서 '깨끗하게 하며', '깨끗하게 하며', '깨끗하게 하며', '연단하며'가 반복해 나오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데 심판하시는 목적이 뭐라는 거예요?
깨끗하게 한다는 거예요.
깨끗하게 하며, 깨끗하게 하며, 그래서 공의로운 재물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하겠다...
이런 말씀이죠.
그러니까 심판의 본질은 뭐냐 하면 '깨끗하게 하는' 거예요.
심판은 저주와 무슨 벌을 주고.. 우리가 막 두려워서 벌 받는.. 이게 본질이 아니라
본질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거예요. 정결하게 하는 거예요.
왜 깨끗하고 정결하게 합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다 우리 가운데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복이 다 우리 가운데에 충만함에 이를 수 있도록
그 죄 문제를 제거하시는 거예요.
죄가 제거되지 않으면, 절대로 그 수준에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시는...
그래서 비로소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에 이를 수 있게 하는... 이게 심판입니다.
그래서 말라기 3:2절에 보면 '금은을 연단하는 불'이라고 했어요.
불 심판은 뭐냐 하면, 금과 은을 정결하게 하는 소멸하는 불이라는 거예요.
금과 은을 정결하게 하려면, 이렇게 센 불에다 집어넣어서 불순물들을 다 빼내고,
금은을 녹여서 순전한 것만 빼내는... 그게 심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세요. consuming fire
우리 하나님의 심판은 소멸하는 불이세요. 신4:24
우리를 정결케 하는 불이세요.
그래서 그것이 비록 뜨겁고 고통스럽고 그럴지라도
그것을 통과하면서... 우리 안에 죄가 제거되는 거예요. 정결하게 되는 거예요.
불순물들이 빠져나가는 거예요. 그것이 심판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은혜로 시작해서 심판으로 완성되는 거예요.
시작과 마무리는.. 은혜로 시작해서 심판으로 마무리되는 거예요.
▲지금 저희가 살펴보는 슥5장의 내용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환상은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얘기입니다.
오늘은 5:1~4절까지 6번째 환상을 살펴보고,
다음 시간에는 5:5~11절의 7번째 환상을 살펴볼 텐데,
6번째 환상은, 각 개인 차원에서 어떻게 심판하시고 죄를 제거하시는가 하는 내용이고,
7번째 환상은, 그 죄가 조금 더 구조화되고, 조금 더 문화 속으로 스며들어서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또는 글로벌하게 그렇게 타락한 구조와 문화가 만들어진
이런 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다루시는가 하는...
조금 더 확장된 죄의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6번째 환상,<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을 살펴보면서,
우리 삶, 개인의 삶 가운데 또는 가정 가운데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비교적 작은 규모죠. 사회적으로 구조화되고 문화화되기 이전의
우리 가운데 있는 이런 어떤 각각의 낱개의 죄들,
그 죄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슥5:1 '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본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있더라'
슥5: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스가랴가 환상 중에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봅니다.
'두루마리'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고대 사회에는 성경을 다 두루마리에 기록해서 말아놨죠.
두루마리가 지금으로 얘기하면 책입니다.
두루마리가 날아간다고 하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5:3절에 보면, 이 두루마리에 율법의 저주가 기록되어 있어요.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둑질하는 자가 끊어질 것이고, 맹세하는 자가 끊어질 것이다' 하는 저주가 있습니다.
자 여러분, 4절에는 '내 이름을 헛되이 부르고 헛되이 맹세하는 자' 가 나오죠.
이 두 구절은 십계명 중에 있는 거죠.
'맹세하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 중 3번째 계명이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 중에 8번째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1~4계명은 '대신 계명'이고
5~10계명은 '대인 계명'입니다.
그러니 3번째 계명은 '대신 계명'의 대표이고,
8번째 계명은 '대인 계명'의 대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스가랴가 본 환상은, 십계명을 환상 중에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루마리는 '모세의 십계명'에 해당하는 두루마리라는 거예요.
그리고 모세의 십계명은, 더 나아가서 무엇을 상징합니까?
모세에게 주신 모든 율법을 상징하는 거죠. 모든 율법을 대표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대표하고 상징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죄에 대한 것들을 상징하고 있죠.
그리고 이것은 신약으로 넘어오면, 십계명은 무엇으로 압축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로 다시 압축됩니다.
이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에요.
마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구약 전체가 이 두 개로 요약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십계명도 당연히 이 두 개의 계명으로 요약되는 거죠.
본문의 두루마리에 기록된 두 계명은, 십계명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 두루마리가 신약적으로 주고 있는 메시지는 뭡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죄예요.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결국 이 두 계명이 뭐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큰 두 가지 계명으로 요약되는데,
또 고린도전서에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여러분, 구약에만 저주 얘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계명은
신구약 모두에 다 들어가 있다는 거고,
그걸 어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던 말씀이, 신약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거예요.
구약적인 메시지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신약에도 역시 동일하게 얘기하고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확장하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자도 역시 심판을 받는 거예요.
구약의 개념이 아니라, 신약까지 동일하게 흐르는 메시지라는 거예요.
그래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로 대표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 심판이 있다는 거예요. 저주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전16:22
저주가 있다는 건데 이 저주가 뭐예요?
구체적으로 본문 3절에서는 '끊어지리라'
'끊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끊어진다는 거예요.
그게 저주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심판의 내용은 뭐냐면,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끊어지는 거예요.
좀 더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거죠.
그러니까 심판의 본질은.. 제거예요. 죄를 제거하시는 건데 끊어지는 거예요.
▲성경을 보면 크게 두 종류의 제거, 끊어짐에 대해서 얘기하십니다.
두 종류가 사실 비슷한 내용이긴 합니다.
-첫째는, 사람을 제거하시는 심판이 있어요.
-두 번째는, 개인의 삶 속에서 죄를 제거하시는 심판이 있어요.
그래서 사실 두 번째 심판은 어떻게 보면 은혜예요.
우리의 삶 속에서 죄를 제거하시는 심판이니까요.
1) 첫 번째 종류의 심판은 사람을 제거하시는 심판입니다.
어디서부터 제거하세요?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좀 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다는 거예요.
왜 그럽니까?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데스티니가 있는데,
이 데스티니를 이루어 가려고 하는데,
그 가운데 도무지 죄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끼어있어요.
그러면 그 공동체가, 원래 계획하신 하나님의 데스티니에 이를 수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뭐 미워하셔서 저주하신다기보다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 제거하시는 거예요.
대표적인 예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지요.
행5:3~5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취하십니다.
심판하신 거죠. 그래서 공동체로부터 끊어내셨어요. 공동체로부터 제거하셨어요.
사람들은 '아니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시지?'
근데 여러분, 관점을 좀 다르게 보셔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게 있어요.
산모가 임신을 했는데, 아주 심각한 위기가 와서, 둘 다 살릴 수 없는 상황이 됐어요.
그래서 산모를 살리고 아이가 죽든지, 아이가 살고 산모가 죽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 돼요.
그랬을 때 우리가 무엇에 포커스 하느냐는 거예요.
죽이는 거에 포커스하느냐, 살리는 거에 포커스하느냐?
사실 이것은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죠.
살리려고 하는데, 둘 다 살 수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하는 거죠.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경우도, 그 관점을 가지고 보셔야 돼요.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 할지라도 죽음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않으세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의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세요.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지
악인이라도 죽음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세요.
그러나 할 수 없이 제거하셔야 될 때가 있는 거예요.
왜요? 죽이려고?
아니요. 살리려고.
그렇지 않으면 다 같이 죽는 거예요. 그 공동체가 다 같이 죽는 거예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제거하시는 심판을 하세요.
거기서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다 같이 죽는 거예요.
산모도 죽고 아이도 죽고... 다 죽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를 선택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와요.
그게 이제 심판으로 나타나는데, 사람을 제거하는 심판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대표적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런데 여러분 이런 상황은, 꼭 죽음으로 제거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죽음은.. 조금 극단적이고 강하게 심판이 나타난 경우인데, (이런 일도 있지만)
꼭 그렇게 나타나는 건 아닌데, 하여간 공동체로부터 끊어지는 형태로 나타나요.
예를 들어서 이혼을 하면서, 가정공동체로부터 끊어진다든지
이런 것도 똑같은 원리죠.
가정을 살리시기 위해서.. 그 안에 죄가 있기 때문에, 뭔가를 제거하시는 거예요.
끊어지는 거예요. 관계가 파괴되고, 해체되고...
또는 교회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는 소그룹이 깨지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쨌거나 사람을 끊어내는 심판은, 관계로부터 끊어지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저도 이런 거를 경험한 적이 있어요. 참 괴롭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그 교회에 이제 아주 심각한 죄가 나중에 드러나고,
교회가 굉장히 고통스러웠는데, 결론은 어떻게 끝났냐면,
그 죄를 지었던 사람이 교회로부터 영구적으로 끊어지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만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에 엄청난 타격이 와요.
다른 사람들 사이에도 엄청난 타격이 오고... 이게 심판이죠. 끊어지는 거예요.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살려야 될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죄를 끊어내세요.
사람을 끊어내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심판은, 여러분 어떻게 보면 최후 통첩에 가까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런 종류의 심판은 미루고 또 미루세요.
그렇게 쉽게 단행하지 않으세요. 미루고.. 참아주시고.. 또 참으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거든요.
그래서 계속 참아주시고 계속 미루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을 끊어내는 심판은, 쉽게 흔하게 일어나지는 않아요.
제 목회 경험을 보면, 생각보다 훨씬 하나님이 오래 참으세요.
그래서 어떨 때는, 우리가 숨 넘어갈 것 같아요.
'이거 왜 하나님이 해결 안 하시죠?'
아니 이렇게까지 됐는데, 하나님은 아무것도 안 하시는 거예요.
사람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갔어요.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가고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때까지도 하나님은 참으세요.
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제거하시는 심판은, 우리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너무 쉽게
'넌 끝이야!' 이렇게 하시는 게 아니에요.
정말 사람들은, 숨이 꼴딱 넘어갈 정도로 '이래도 아무 일도 안 하신다는 거야?'
그럴 때까지 하나님은 인내하세요. 참고 참고 참으시다가.. 심판하세요.
그래서 여러분, 성경도 보면 대부분의 심판이 마지막 때로 몰려 있잖아요.
이게 미뤄진 거거든요.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도 그러셨잖아요.
'그냥 두라. 마지막 추수 때까지 두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 원하시기 때문에, 심판을 미루시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 요한계시록에 심판이 다 미뤄져 있고,
복음서에도 보면, 예수님께서도 심판은 미루고 미루다가 맨 마지막에 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인내하시는 성품 때문에 그래요.
계속 끝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그래도 혹시 돌아올까? 그래도 혹시 기회가 있을까?'
끝까지 기회를 주시는데, 그렇다고 영원한 건 아니에요.
어느 순간이 되면, 하나님께서 딱 멈추시는 때가 있어요.
그리고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끊어내십니다. 사람을 제거하는 심판!
그래서 제 신앙생활을 보고, 또 목회해 왔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이런 순간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 같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렇게 사람을 제거하는 심판이 있을 때는,
제거되는 사람이든, 남아있는 사람이든... 상처가 엄청나게 크고요. 큰 고통이 있어요.
마치 팔을 잘라내는 것 같거든요. 공동체는 몸이고 유기체이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지체가 끊어져 나가면, 정말 팔을 잘라내는 것 같은 아픔이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은, 쉽게 행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해야 될 것은, 영원히 심판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타이밍이 있어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야, 여기서는 이제 그만이야'
하시는 순간이 반드시 있어요.
더 이상 참지 않으시고, 기회를 거두시는 순간이 있는데,
문제는 뭐냐면, 그때가 언젠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때가 언젠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태복음에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심판의 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마24: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여기서 '인자가 온다'는 건, 심판주로 오시는 걸 말씀하시는 거거든요.
'생각지도 않았을 때 인자가 오리라'... 생각지도 않았을 때 심판이 온다는 거예요.
그 심판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죄에 대한 심판의 특징은.. 언제 심판이 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심판은 치명적이에요.
누리던 관계에서 떨어져 나오는 고통이고,
심한 경우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이 땅에서 사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여러분, 죄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지 마세요.
죄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 미루지 마세요.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내일로 미루지 마세요.
오늘 하나님이 죄책을 주셨다면, 오늘 회개하고 돌이키세요. 중략
2) 두 번째 종류의 심판이 있는데, 이것은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 죄를 제거하시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심판이라기보다 '징계 discipline'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데,
이 징계를 통해서 우리 삶 속의 죄를 제거하시는 거예요.
이것은 최후 통첩이 아니라 우리 개인을 정결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히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자 우리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 끌어안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우리 삶에서 제거하시기 위해서
사랑의 매를 드실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심판(징계)의 모습으로 나타나죠.
예를 들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앗수르라고 하는 매를 드셨죠. 심판이었죠.
또 남쪽 유다에게는 바벨론이라고 하는 매를 드셨죠. 심판으로 보였죠.
그런데 이게, 심판이 아니라 징계였던 거죠.
영원히 하나님께서 끊어내신 것이 아니라,
그 징계를 통해서, 그 심판을 통해서
그들(우리) 안에 있는 죄를 끊어내신 거죠.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아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여러분 괜찮지 않습니다. 죄는 가볍고 무거움을 떠나서 절대로 괜찮지 않아요.
어떠한 죄도, 가볍고 무거움을 떠나서 절대로 괜찮지 않아요.
모든 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복된 데스티니를 망가뜨리고
우리로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해요.
그렇기 때문에 또한 죄의 결과인 심판, 또는 징계가
얼마나 무겁고 또는 얼마나 가벼울지.. 우리는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목적은, 그 죄에 대한 그 죄의 무게에 합당한 벌을
주기 위한 게 아니에요. 잘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심판은 죄에 대한 벌 개념이 아니에요. 잘 생각해 보세요.
죄는요.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심으로 대가를 다 치렀어요.
그래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 징계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징계의 크기와 무게는.. 죄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 징계의 목적은 뭐예요?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죄를 제거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완전함에 이르게 하려는, 복을 누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그래서 징계는 어떻게 결정되냐면,
그 사람이 이 죄를 끊어낼 수 있는 무게를 주시는 거예요.
죄가 아무리 작더라도.. 그 사람이 그것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이만한 (큰) 환경이 필요한다면 그거 주시는 거예요.
또 죄가 아무리 크더라도,
'이 사람은 이만한 (작은) 징계만 있으면 끊어낼 수 있어'
그럼 그거를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징계는, 벌받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으로부터 벌받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과 축복과 은혜지... 저주와 벌 주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 삶 가운데 죄를 제거하시는 심판은
사실은 심판이라는 표현이 조금 부정적이긴 한데, 그래서 '징계'라고 부르죠.
하여간 사랑의 매예요.
사람을 제거하시는 심판도 사실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저주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공동체를 살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시거든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시고,
우리 삶 가운데 개인적으로 임하는 심판도
나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라는 거예요.
여러분 혹시 아직 해결하지 않은 죄가 있으십니까?
혹시 하나님 앞에서, 또는 이웃 앞에서 범하고 있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그 죄가 얼마나 무겁고 가벼운 건지 우리는 몰라요.
작은 거 하나라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죄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 있다면,
오늘 순종하고 회개하십시오...
◑2절과 4절을 살펴봅시다.
5: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니이다
5:4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것을 보냈나니 도둑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의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나무와 돌과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여기 보면 두루마리의 크기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 넓이는 여러분 정확히 솔로몬 성전의 낭실의 넓이하고 똑같습니다.
왕상 6장을 한번 읽어보시면 솔로몬 성전을 짓는데요.
낭실의 넓이를 정확히 20규빗, 10규빗으로 짓습니다.
본문의 두루마리가 성소의 낭실과 크기가 똑같아요. 왕상6:2~3
낭실(=주랑)은.. 성소로 들어가는 곳의 '현관' 같은 곳이에요. 왕상6:2 대하4:3
또 요엘서에 보면, 낭실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욜2: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낭실은 어떤 곳이었냐면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곳이었어요.
백성들이 성소 안으로는 못 들어가니까, 성소와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낭실(주랑)이었죠. 지붕은 있는데, 벽이 없는 곳이죠.
그래서 이곳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도 하고,
이곳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도 하고, 이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도 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제사장을 통해) 은혜를 선포하시기도 하시고,
또 그곳에서 징계를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또 그곳에서 판단과 심판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곳이... 낭실이에요.
그런데 이 낭실만한 크기의 두루마리가 지금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는 거예요. 5:2
두루마리의 크기 20규빗 X 10규빗은, 성전의 낭실 크기와 일치한다고 했습니다.
이 환상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상징적인 메시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 크기는 '낭실'과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을 대면하는 곳(낭실)이라는 거예요.
사실 여러분, 우리 죄 문제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하지 않는 한 절대로 드러나지도 않고, 해결되지도 않아요.
제가 회심 후 지난 30여 년 동안 신앙생활의 결론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날마다 낭실에서 하나님을 대면하듯이 대면하는 사람이 아니면,
죄가 죄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요.
그리고 죄가 드러났을 때 회개하지도 않고요.
이 죄를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도 몰라요.
옛날에 성경을 읽었으니까, 성경을 머리로 알고 있지... 그렇게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날아다니면서... 내 삶에까지 들어온 거잖아요.
날아다니면서 우리 집까지 들어왔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이 스가랴의 환상은, 굉장히 신약적인 환상이에요.
원래 고정되어 있는 성전, 하나님을 대면하여서 그분을 만나고
심판과 은혜가 풀어지는 그 장소가... 이제는 포터블 portable 로 바뀌었다는 거예요.
포터블(이동식)로 바뀌어서 날아다니는 말씀이, 우리 가운데로 들어왔다는 거예요.
각 사람의 집 가운데로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전 마당 낭실에서처럼) 대면할 때,
죄가 드러나게 되고, 그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 있는 애통한 마음이 나오게 되고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고... 이게 다 말씀이 일으키는 힘이에요.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죄 문제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을 대면하듯이 성령을 대면하지 않고는, 절대로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단언할 수 있어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듯이 대면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대면하지 않고는
내 죄의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아요. 절대로 해결되지 않아요.
그러면 여러분 날마다 낭실처럼 날아다니는 두루마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하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고 죄를 사하시는...
또 그곳에서 죄를 깨닫게 하는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고, 죄의 무게를 깨닫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는 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