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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7:1~8:10 2007-04-12
오늘 설교의 제목이 ‘마헬살랄하스바스’인 이유는,
이 단어가 본문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설명하는데 많은 구절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사8: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아주 큰 판 하나를 취하고,
거기에 통용문자, 즉 누구나 알 수 있는 글자로 ‘노략, 멸망이 속히 올 것이라’는 의미의 단어
‘마헬살랄하스바스’를 기록하라고 명하십니다.
이는 마치 경부고속도로 입구에 큰 전광판을 만들어 놓고 God loves you 같은 글을 써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대형광고를 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이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단어는 우리가 볼 때는 길고 어려운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는 유대인들이 볼 때에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단어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큰 서판에 ‘마헬살랄하스바스’를 써서 예루살렘 어귀에 붙여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낳은 둘째 아들에게도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이름을 붙이도록 명하셨습니다. ‘노략과 멸망이 속히 올 것이라’ 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이사야의 첫째 아들 이름은 스알야숩이고,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내가 내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3절).
따라서 이사야 선지자는 집 안에 있든지, 집 밖에 있든지 어디서나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단어를 보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밖에 있으나 집 안에 있으나 언제든지
‘노략과 멸망이 속히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고 증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1. 배경
그렇다면 멸망이 예고된 나라는 어떤 나라들일까요?
바로 유다를 괴롭히는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이 그 대상입니다. ↙
8:4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의 네 왕조(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에 걸쳐서 65년간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못된 왕이 바로 아하스였습니다.
아하스는 인신제사를 즐겼고, 우상숭배를 조장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선한 왕으로 인정받았으나, 이런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하스는 나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교만으로 인해 가장 가까운 나라들인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을 들어
남유다를 치게 하셨습니다. 아람 왕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가 연합군대를 형성해서
유다를 침공한 ‘르신-베가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의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하루에 12만 명이나 되는 유다 백성들이 목숨을 빼앗겼고, 20만 명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을 제외한 모든 땅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는 마치 적군이 대한민국에 쳐들어와서 대한민국의 모든 땅을 점령하고
서울 하나만 남게 된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닥치게 되자
아하스 왕과 예루살렘에 사는 거민들의 마음은 산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습니다.
순 우리말로 '사시나무 떨 듯 두려움에 떨었다'는 의미입니다.
아하스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저 버티기 작전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버틸 때는 버티더라도 물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식수의 근원을 찾아서 살피고자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하스 왕이여! 르신과 베가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 같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라.” 7:4
그러나 아하스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믿지 않고 반문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땅을 빼앗기고 이제 예루살렘만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그들이 망한다는 말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아하스의 대답을 들은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무슨 징조를 구하든 다 들어주실 것이니
징조를 구하라고 명했습니다. 7:11
그러나 아하스 왕은 “나는 징조를 구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합니다. 7:12
아하스 왕의 마음은 청개구리 마음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골라서 하고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징조를 구하지 않더라도 큰 징조를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God with us)’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아하스와 유다 백성들이 르신-베가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미 임마누엘의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예루살렘에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르신과 베가의 군대가 강력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망하고,
유다 백성들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약속하셨습니다.
은혜 가운데 가장 큰 은혜는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여서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기세등등한 전진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있고,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에게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없기 때문에 결국 망하는 것은,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변화된 삶을 사는 우리도, 망하기는 다 틀린 존재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어떤 때는 죄를 짓고,
어떤 때는 불신자들보다 모든 조건이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망할 수 없습니다.
이 임마누엘의 은혜는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미리 아시고 택하신 영혼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임마누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도 때로는 위기를 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마누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결코 망하거나 지옥에 가는 법이 없습니다.
▲르신과 베가가 강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여도, 임마누엘의 은혜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곧 망하게 된다는 메시지가 바로 ‘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바 될 것임이니라”(8:4절).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이고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이사야의 둘째 아들인 ‘마헬살랄하스바스’가
'내 아빠, 내 엄마'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내 아빠, 내 엄마를 말할 수 있는 시기를 대략 2~3세라고 본다면
이 말씀은 곧 2~3년이 지나기 전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앗수르 왕 디글락벨레셋에게 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인 것입니다.
◑2. 두 나라의 패망 이유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성공 일보 직전에 도리어 큰 낭패를 본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첫째로 사단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을 삼자”(사 7:6).
다윗 왕가, 즉 메시야의 족보를 끊어버리고자 하는 사단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처럼 사단에게 이용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사단은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실컷 이용해 먹은 후에 폐기처분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사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사단은 가룟 유다를 실컷 이용한 후에
결국 그의 인생과 영혼을 완전히 망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단적인 시도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사 7:7).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요, 부족하고 연약한 유다 왕국을 통해서
위대한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감히 르신과 베가가 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할 수 없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특별히 북왕국 이스라엘이 실로아 물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일러 가라사대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8:5-6)
르신은 아람 왕을, 르말리야의 아들은 베가 왕을,
'이 백성'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을 지칭합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이 르신과 베가를 기뻐했다”는 말은 르신과 베가,
즉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자신들에게 풍요와 축복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르신과 베가를 의지하면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습니다.
‘실로아’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이며 헬라어로는 ‘실로암’이라고 합니다.
‘실로암’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연못의 이름입니다.
이 연못은 예루살렘 거민들의 식수 근원지인데,
히스기야 왕이 성 밖의 수원지인 기혼샘의 물을 바위를 뚫어 만든 지하수로를 통해
성안으로 끌어들여 만든 샘입니다.
기혼샘에서 실로암 못까지의 직선거리는 315m, 수로의 길이는 525m입니다.
이 사실은 원시적으로 형성된 통로를 히스기야 왕이 확장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기혼샘의 물이 바위수로를 통해 525m를 천천히 흘러 들어와서
예루살렘 성 안에 형성된 연못이 바로 실로암입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하시는 사건이 나오죠.
예수님께서는 진흙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긴 후에, 그것을 소경의 눈에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셨죠.
소경이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자 눈이 떠져서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실로암은 ‘보내심을 받았다(sent)’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실로아, 혹은 실로암 물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은혜가 바로 실로암입니다.
북왕국의 백성들이 ‘실로아 물을 버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베가나 르신,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버리고
눈에 보이는 인간이나 세상의 총과 칼 같은 권세와 무력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운명을 겪게 된 것입니다.
꼭 취해야 할 것은 버리고, 버려도 상관없는 것은 기뻐하였기 때문에
북왕국은 주전 721년에 앗수르 왕 디글락빌레셋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람 왕 르신도 곧 망했습니다. 나중에 남왕국도 바벨론에 망하게 되죠.
◑3. 아하스의 어리석음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남왕국 유다의 왕인 아하스도 이들보다 조금도 나을 바가 없다는 점입니다.
아하스도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 8:7절의 말씀대로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를 바라보며 부러워했습니다.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는 앗수르를 관통해서 흐르고 있는 유프라테스 강을 의미합니다.
아하스가 보기에는 예루살렘에 흐르는 조그만 실로아 물은
어마어마한 큰 강인 유프라테스와 비교하면 시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하스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있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유프라테스 강을 사모한 것입니다.
아하스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를 사모했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을 의지하여, 르신(아람)과 베가(북왕국)의 공격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성전과 왕궁에서 은과 금을 모두 취하여 뇌물을 만들어 앗수르 왕에게 바쳤습니다.
앗수르 왕에게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켜 달라고 청탁한 것입니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더니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아람)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왕하 16:7-9).
앗수르 왕은 아하스의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포로로 잡았고 또 르신을 죽였습니다.
▲아하스의 의도는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그 눈을 남왕국으로 돌려 곧 이어 유다도 침공하였습니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적을 이용하다가, 적에게 당하는 꼴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8:7-8절).
유프라테스 강, 즉 앗수르 왕의 세력은 북왕국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남왕국 유다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유프라테스 강물이 유다에도 창일하여 목에까지 차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보면 빙산에 부딪힌 배에 물이 차올라 사람들이 서서히 잠기는 장면이 있죠.
처음에는 물이 발목, 그리고 무릎 정도에서 머무르지만 물이 밀려들어올수록
배와 가슴, 심지어 목까지 차오르게 됩니다.
목까지 차오른 후에도 물이 계속 밀려오면 그 사람은 결국 죽게 됩니다.
유다가 지금 처한 상황이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유프라테스 강물이 유다에 높이 차올라
자신들의 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의 은혜가 있는 실로아 물을 버리면서까지
사모하던 유프라테스 강물에 도리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8:8절)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말씀은 이해하기가 약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말 성경의 번역 순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그러나 오 임마누엘이여!”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는 말씀은
앗수르의 세력이 유다를 침공하고 구석구석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망하지 않습니다. 바로 임마누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8:9-10절이 바로 그 약속입니다.
“(오! 임마누엘이여!) 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
▲앗수르가 아무리 유프라테스 강 같아서 유다에 밀려들어와 그 물이 목까지 차오른다고
할지라도 이런 도모는 결국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 임마누엘이여!’라는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유다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부족하고 죄악이 많아서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다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과 앗수르가 강할지라도,
그들이 연합해서 유다를 공격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패망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있습니다.
▲또한 아하스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를 사모했다는 말에는
그가 이방의 우상을 들여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단을 보고
드디어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단을 만든지라”(왕하 16:10-11).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하러 다메섹에 갔을 때,
그는 그 곳에서 우상의 단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보았던 우상의 구조와 제도를 그려서
당시 제사장이었던 ‘우리야’에게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야는 왕명에 따라 이방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서 각종 제사를 드리며 우상숭배를 조장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제사장이 왕명에 따라 하나님을 배반하는 기회주의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자를 불러 ‘노략이 속히 임할 것’이란 사실을 증거 하게 하셨습니다.
마치 담배 피워 폐암이 걸린 사람에게 담배 피우는 것은
폐암 걸려 죽을 짓이라는 것을 증거 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기회주의자였던 우리야로 하여금 ‘실로아 물’을 버린 자는 모두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2절).
◑4. 구원의 비밀 ‘임마누엘’
임마누엘의 은혜를 받은 주의 백성들은 흉용하고 창일해 보이는 유프라테스 강을
사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시원찮아 보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물을 마시며 살아야 합니다. 임마누엘의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단어는 ‘마헬살랄하스바스’이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단어는 바로‘임마누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7:14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도 특별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불신자들과 다를 바 없이 죄도 짓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어려움도 당하는 것 같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한 것 같아 보입니다.
똑같다 못해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남들이 즐겁게 놀러가는 주일에 교회에 가야하고, 열심히 번 돈 중에 십분의 일을 떼어서
십일조와 헌금으로 내야 하니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는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있습니다.
아무리 불신자들이 출세하고 굉장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임마누엘의 은혜가 없는 출세와 권세는 연기 나는 부지깽이에 불과합니다. 7:4
‘앗수르의 무력과 영광’이 연기 나는 부지깽이 같았던 것처럼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권력은 모두 연기 나는 눈속임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임마누엘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실로아 물’은 보내심을 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유프라테스 강을 바라보지 말고, 부러워하지 말고, 실로아 물을 받아 마셔야 합니다.
실로아 물로 우리의 눈을 씻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해도 우리는 결코 멸망당할 수 없습니다.
유다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 ‘임마누엘’의 역사가 절대로 망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 또한 결코 망할 수 없는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유프라테스 강이 아무리 크고 강해보여도, 우리는 그것을 사모하거나 부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실로아 물은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땅 밑에서 흘러도
우리의 승리의 비결은 바로 실로아 물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영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면서도
‘누가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혹은 ‘어디에 좋은 성경공부가 있다’는 소식만 들으면
부지런히 따라다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교회와 목사님은 마치 실로아 물 같이 시원찮다고 생각하고,
소문이 많은 곳은 유프라테스 강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광고가 거창하고 신령해보여도 그런 곳을 따라다녀서는 안 됩니다.
저는 목사가 된지 20년이 넘었지만 소문 따라다니는 신앙인치고
영성이 건강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교회에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경우를 압도적으로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도 사모하지 말아야 하지만,
영계에서도 번쩍거린다고 해서 모두 금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잘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하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교회와 목사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곳에 은혜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른 비도 주시고, 늦은 비도 주시며, 때로는 소낙비와 같은 은혜도 주십니다.
소문 따라다니는 신앙인들은 마치 365일 소낙비만 기다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365일 소낙비의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 365일 소낙비만 내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우리는 모두 물에 빠져 죽게 될 것입니다.
소낙비는 이른 비 내릴 때와 늦은 비 내릴 때 잠깐씩 오는 비입니다.
역사를 살펴봐도 성령의 폭발적인 은혜는 초대교회에 잠시, 중세기에 잠시,
그리고 근대기에 잠시 나타났습니다.
부흥도 매년 있는 것이 아니라 대략 50년 만에 잠깐씩 오다가 사그라지고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 그리고 소낙비를 적절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소낙비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섭리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소낙비만 기다리지 마시고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의 은혜를 사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은 어쩌다 한 번씩 먹는 특식으로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주권으로 특별한 은혜를 부어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별다를 것 없이 매일 먹는 밥과 반찬이지만 이러한 음식들을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하듯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의 은혜를충실히 받을 때에 우리의 신앙이 건강해집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허물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진실하게 기도하면서
우리의 영혼에 임마누엘의 은혜, 실로아 물의 은혜가 끊임없이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이 사모하는 유프라테스와 같은 부귀와 축복과 권세,
소문만 무성한 유프라테스와 같은 헛된 영성을 추구하지 마시고
하루 세 끼 양식을 먹듯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한 실로아 물을 마시는
건강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