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건축 재개 스5장 출처
성전재건을 위한 기초작업이 순전하게 진행되었으나
사마리아인들의 훼방으로 성전재건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자신들의 이권문제 때문에 바사 정부에 로비를 하고
고소를 한 것 때문에 중단되었습니다.
성전 재건 중단이 B.C.537년이었다면, 중단된지 16년 동안이나 지났습니다 (4:24).
그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유다 백성이 성전재건을 재개하도록 했습니다.
내용구조는
-선지자들의 출현 (1-2절),
-강 서편 관리 닷드내의 호의 (3-5절), *맨 아래 '절별 해석' 보세요
-닷드내 의 상서 (11-17절)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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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서 포로로 수십 년 동안 살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총으로 말미암아 귀국하여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성전건축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할 때만 해도,
성전건축이 끝나게 되면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를 다시 드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왜곡된 고소, 고발을 비롯하여 뇌물까지 주면서
성전건축을 집요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건축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중단되었고, *4:1~5, 24
성전건축에 대한 열정과 생각은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갔고, 기억 속에서 아스라이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 때에 유다 백성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두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5:1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그 두 사람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였습니다.
이 두 선지자가 유다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는 영적인 나팔을 불었습니다.
특히 학개 선지자가 성전건축을 미루고 있는 유다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학개 1:2-5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하나님께서 고레스왕을 통해서 유다 사람들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베푸셨던 것은 그들이 돌아가 성전을 짓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았던 사람들은 귀국하여서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반대에 부딪히자 중단이 되었고, 그 이후로는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그 미룸이 16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에 속이 상하신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아직도 주의 성전을 지을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성전은 황폐한 상태에 있는데, 너희는 판벽한 집에서 사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판벽한 집’은 ‘판자를 댄 집’ 또는 ‘지붕이 덮인 집’을 의미합니다.
‘나무판자를 벽에 대었다고 하는 것’은 ‘아주 화려하게 꾸민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으로 하면 집안 내부를 최고급 원목가구나 최상의 대리석 제품으로 꾸몄다는 의미입니다.
또 ‘지붕이 덮였다’는 것은 ‘가건물이 아닌 완성된 집’이리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전은 이렇게 초라한 상태로 방치하면서
너희들의 집은 최고로 꾸미고, 너희들은 완성된 집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집은 미완성의 상태로 두는 것이 옳으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의 삶이 옳은지 그른지 돌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의 이러한 외침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5: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두 선지자를 통해서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에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곧 바로 ‘일어났’습니다.
‘일어나다’가 히브말로 ‘쿰’(‘소녀야 일어나라’가 ‘탈리타쿰’이다.)’입니다.
그것은 ‘기립(起立)했다’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일을 위해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고 할 때에
그것이 단지 기상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결단한 것을 실행하는 첫 발을 내딛었다는 의미이듯이,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두 선지자를 통해서 들려진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서,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일을 결단하고 실행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결단의 발걸음은 16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5:3-5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아뢰었으나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성전건축 공사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 등의 관리들을
통하여 적법한 지에 대한 조사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전건축 공사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성전건축 공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유다의 장로들을 불꽃과 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며, 동행하셨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아무리 총명한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수학이나 과학문제
를 다 풀어낼 수 없습니다.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그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비록 총명하지 않더라도 그 곁에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같은 대학자가
있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초등학생과 아인슈타인이나 뉴턴과의 차이보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차이가 훨씬 더 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돌보시면 어떤 방해 세력이 있어도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져 갑니다.
▲5:6-17은 강 서편 지역의 총독이었던 닷드내와 그의 동료들이 다리오왕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성전을 지어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5:8 ‘왕께 아뢰옵나이다 우리가 유다 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본즉
성전을 큰 돌로 세우며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일하므로 공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에’
총독 닷드내 일행이 성전건축 현장을 확인해 보니, 성전을 짓는 사람들이 큰(잘 다듬은) 돌과
돌 사이에 잘 다듬은 나무를 넣는 방법으로 성전 벽을 만들고 있었고,
‘부지런히’ 일을 했다고 합니다.
‘부지런히’의 의미는 ‘신속하게’, ‘철저히’입니다.
성전을 다시 짓는 사람들은 과거에 반대자들로 인해서 성전건축이 미루어졌다가
오랫동안 방치된 것을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아주 빠르게 진행하면서도 대충대충하지 않고 철저하게 일했던 것입니다.
11절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건축하여 완공한 것이었으나’
닷드내 일행이 왜 성전을 건축하려는 지를 물었을 때에 유다의 장로들은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_솔로몬이 지었던 성전’을 다시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다의 장로들은 성전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성전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께만 예배하며,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만남의 집이었습니다.
다시 하나님과의 만남의 집을 회복하려는 것이 성전건축의 이유였습니다.
▲다리오왕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5:17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전각에서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서 바벨론 포로가 되었다가 고레스 왕 때에,
하나님께서 왕을 통해서 성전을 칙령을 내려 주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으로 가지고 갔던 성전의 금그릇, 은그릇도 다 돌려주라고까지 하셨다고
하는데, 그것이 맞는지 왕실 규장각에 있는 문서를 살펴서 그것이 맞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라고 요청하는 말로 편지를 맺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찬찬히 묵상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해 가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성전을 다시 짓다가 방해를 받아서 중단된 된 것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고, 기약없이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미루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다시 성전을 짓도록 촉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다시 건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 중에 제 마음을 계속 누르는 한 단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초심(初心)’입니다. 이 단어는 제가 늘 잊지 않으려고 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성전건축의 기초를 놓고서
얼마나 감격스러워했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그 기쁨과 감격은 그저 아련한 신앙적인 추억으로만 16년 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교회가 처음 개척되고 나면 처음 사람들은 굉장히 열심히 섬깁니다.
그러나 1년, 2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열심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고
지금은 밋밋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개인도 동일합니다. 처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서는 열심으로 섬기다가
수년이 지나고 나면, 처음 신앙의 열정과 순수함은
“아- 옛날이여!”가 되어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자주 형편없고, 보잘 것 없는 저를 목회자로 불러주신 은총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마음이 흐트러지려고 할 때에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기억하며, 마음을 잡곤 합니다.
우리 모두 처음의 마음을 잊지 마십시다. 우리가 초심을 잊지 않게 되는 것은
이기심과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든 나를 떠날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순리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밑가지의 삶을 살 때에 우리는 초심을 잃지 않고 믿음과 생활이 새로워집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신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처음 신앙을 회복하는 은총의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으로 해석된 시선 5:6-17 출처
5:6-9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인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바삭 사람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라 그 글에 일렀으되
다리오 왕은 평안하옵소서 왕께 아뢰옵나이다 우리가 유다 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본즉 성전을 큰 돌로 세우며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일하므로
공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에 우리가 그 장로들에게 물어보기를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라고 하였느냐 하고’
다리오 왕에게 올린 편지 내용에는 그들이 직접 보고 듣고 말한 바였습니다.
닷드내와 그 동료들은 유다 행정 구역에 세워지고 있는
지극히 큰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지극히 큰 하나님'이라 부른 것은 그들의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페르시아인들이평소 쓰는 표현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큰 돌로 세우고, 벽에 나무를 얹으며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고,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벽에 재목을 쌓는 방법은 솔로몬 성전의 건축을 따라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무너졌던 신앙을 세우는 영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닷드내는 이런 열심 뒤에는 숨은 동기가 있을 거라 의심하고,
장로들에게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성전을 건축과 성곽 완성을 명령했는지 물었습니다.
5:10-12 ‘우리가 또 그 우두머리들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아뢰고자 하여
그들의 이름을 물은즉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건축하여
완공한 것이었으나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이 성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닷드내는 성전 착공에 참여한 자들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아뢰려고 물었습니다.
에스라 5장에서는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 세 번 나옵니다.
3절에서 “누가 성전을 재건하라고 했는가”를,
9절에서 “성벽 공사를 누가 마치라고 했는가”를 묻습니다.
10절에서 성전 건축 참여자가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누구의 권위로 누가 성전을 재건하고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에 유다 사람들은 자신을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고 답합니다.
이름을 물었더니 쌩뚱맞게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신앙고백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참 왕은 페르시아 왕 다리오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성전을 재건케 하신 하나님이시며,
성전 재건은 인간이나 민족의 의지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창조주이자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명에 따라 시작된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이스라엘의 큰 왕, 즉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으나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져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갔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들의 죄로 인해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민족들 가운데로 흩으시고,
성전이 파괴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과거에 그들은 성전이 파괴된 것을 애굽이 돕지 않아서
혹은 군대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생각했으나, 이제는 영적인 문제로 보았습니다.
세계를 제패한 왕이라도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면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의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5:13-16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고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금, 은 그릇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 왕이 그 신당에서 꺼내어
그가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라고 부르는 자에게 내주고 일러 말하되
너는 이 그릇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제자리에 건축하라 하매
이에 이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지대를 놓았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아직도 마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유다 백성들은 고레스 원년에 행해진 고레스 칙령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는 성전 재건을 허락했을 뿐 아니라, 느부갓네살 왕이 가져갔던 성전 기물도 돌려주었습니다.
이에 세스바살이 성전 지대를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와 유대인들의 신앙적
침체로 완공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성전은 마무리 될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고레스를 바벨론 왕으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고레스는 바벨론 왕이 아니라 페르시아 왕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를 바벨론 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를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고레스는 스스로 자신을 바벨론 왕으로 표현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을 세우면서 바벨론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점을 강조하여
당시 사람들의 반감을 줄이려 했던 것입니다.
둘째, 성경기자의 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대표하는 나라는 바벨론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시킨 자도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었고,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명한 자도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바벨론 왕 고레스였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세상에 의해 무너진 성전이지만,
하나님의 간섭으로 세상에 의해 재건 되는 성전인 겁니다.
곧 하나님께 성전의 건설과 무너뜨림이 달린 것입니다.
세상의 강대국에 좌우되는 것 같아 보여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말입니다.
선지자를 보내어 예언하며, 성전을 짓도록 동기부여 하신 분도,
직책있는 자를 지도자로 세운 것도, 성전 건축이 중단되지 않도록
장로들을 돌보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성전을 짓도록 이방 왕의 마음을 만지신 것도, 기물들을 다시 돌려보내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5:17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전각에서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닷드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며,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전각 있는 고레스 왕의 조서를 확인해 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는 세상의 의심과 불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왕에게 고레스 칙령을 확인 후 기쁘신 뜻을 보여달라고 하는데,
이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결정하시고 알려주시기 바랍니다'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우리는 종종 끝을 두려워 합니다. "마지막은 허망하진 않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합니다. "이러다 망하는 것 아닌가?"
위험하고 아찔한 순간들, 마음 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때 우리 마음이 특히 그렇습니다.
저도 가끔 "나의 끝은 어떠할까?"하고 자문합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물론 이렇게 고민하다보면, 걱정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성경 구절들을 떠올리며 이내 "모두 주님께 달렸다 주님께 맡겨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러
하나님을 더욱 붙들게 됩니다.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치고, 우리를 도와줄 손길이 없다고 느껴져도
희망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눈물 나는 시간을 지나도 낙심하지 않기 원합니다.
우리 인생이 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면
그분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며, 그분 안에서 인생이 마무리 되기 때문입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듯 해도. 때론 평탄하지 않아도 원하는 그림은 아닐 수 있어도
실망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일이 지연 되어도 수치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그의 손 안에 온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의 주체는 하나님이며, 세상 일과 흥망성쇠는 하나님께 달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주를 신뢰하고 붙들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가 주께 붙들려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끝내 붙들어 가십니다.
우리 인생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누가 우리 인생을 시작했으며, 누가 우리의 인생을
완성 시킵니까? 인생을 시작하신 이가 하나님이라면, 마치시는 이도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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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5장 절별 해석
스5: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선지지들...예언하였더니'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게을리하는데 대한 질책성의 선포였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훼방으로인하여(4:4, 5)
성전 재건을 중단한 후 대적들의 방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그 고귀한 사업을 재개하지 않았었다(학 1:2).
그러나 이 예언 중에는 소망의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학 2:9, 슥 1:17, 2:12, 3:3).
한편 학 1:15 과 슥 8:9에 따르면 성전 재건 사업이 재개된 때는
다리오 왕 2년(B.C. 520년) 6월 24일이다.
'잇도의 손자 스가랴’
'스가랴'라는 이름은'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의 의미이다.
이 사람 또한 학개처럼 B.C. 520년 경에(슥 1:1) 활동한 선지자로서 스가랴서의 저자이다.
추측컨대 그는 제사장 가문의 후손이었던 것 같다(느 12:16).
그런데 그는'잇도'의 손자가 아닌 그의 먼 후손일 것이다.
그 이유는 '손자'(바르)가'아들'의 의미뿐만 아니라'자손' 및'후손'의 뜻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느 12:16, NIV) 그렇다면 '잇도'는 분열 왕국 초기의 선지자였을 것으로 추측된다(대하 9:29, 12:15, 13:22).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사람'
유다 지파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의 사람들까지를 모두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귀환민들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저자가 여기서'유다 사람'만을 언급한 까닭은, 그들이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 역사의 주역이며 또한 그들의 숫자가 제일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5: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일어나(쿰)' 이것은 문자적 의미의 기립(起立)을 가리키지 않는다.
다만 어떤 중대한 일의 본격적 수행에 앞서 이뤄지는 마음의 결단을 뜻한다(삼상 16:12,
시44:26, 사 60:1). 백성들이 이 같은 마음의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도구삼아서 그들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이다(학 1:14).
'시작하매'
이같은 성전 재건사업의 재개는 학개가 예언 활동을 한 때부터 8일 만이었다(학 1:1, 14, 15).
또한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훼방으로 중단된지 약 16년 만이었다.
'함께 하여 돕더니'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 활동이 성전 재건이 재개된 후에도 계속됐다는 점에서 볼 때
(학 2:1, 10, 슥 1:1, 7, 7:1),
두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독려로써 성전 재건 사업에 일조(一助)를 한 듯하다.
스5:3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강 서편 총독 닷드내'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던 당시의 유프라테스 강 서쪽을 통할했던’
총독'은 '우쉬타니'였다는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 있다.
B.C. 521년경에 바벨론인들의 반란이 진압된 바 있으며,
바사 제국은 이 진압이 있은 직후인 B.C. 520년에 바벨론 지역과 메소포타미아 서편 지역을
관활할 새 총독 우쉬타니를 임명하였다는 것이다.
바벨론인들의 반란이 있었던 직후에 바사 황제는 그 속령들의 제반 움직임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각 관할 총독들로 하여금 지역민들의 동태를 면밀히 파악해 보도록
지시를 내렸을 것이고,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닷드내 일행의 팔레스틴 방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수 있다.
따라서 여기의 '총독 닷드내'는 '우쉬타니' 밑에서 일하던 고위 관리였던 것 같다.
더구나 여기의 '총독'(파하트)은 구약성경 내에서 '장관'(왕상 20:24), '방백'(에 8:9, 9:3)
등의 의미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스룹바벨의 직함과 동일하며(6:7, 학 1:1,14),
강 서편의 광활한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이 팔레스틴까지 직접 올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위와 같은 견해를 뒷받침해준다.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
추측컨대 이 사람은'닷드내'의 부하로 '서기관' 정도의 직책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4:8).
'그 동료' 또한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닷드내'의 부하들로 짐작된다.
'나아와(아타)' 이것은 단순히 '오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서,
성전 재건을 중단시키는 공작을 했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던
4:2의 '나아와'와는 다르다. 본절에 나오는'닷드내'와 그 일행은 성전 재건에 대해서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달리 부정적 시각을 갖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사실 본절부터 6:13 까지를 자세히 살펴보더라도,
닷드내 등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증거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닷드내'가 예루살렘에 온 까닭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불평에 대해서
실상을 파악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고 봄이 무난하겠다.
'성곽(城郭)을 마치게 하였느냐'
여기서 '성곽'(우솨르나) 은 파피루스에 기록된 고대 아람어 문서에서는 많이 발견되지만
그 의미만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은 '목재로 된 구조물', 즉 '건축물을 장식하기 위해 외부에 붙여지는 판자’
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같은 주장을 근거로 해서 루돌프는
'닷드내'등의 페르시아 관리들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성건 재건 작업이 재개된 이후 그 공사가 상당히 진척된 시점이었을것이라고 추정한다.
한편, '마치게 하였느냐'(레쉬클랄라)는 4:13의 '마치면'과 동일한 단어로
현재 진행의 의미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스5:4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아뢰었으나
여기의 '1인칭 복수 우리'는 본 문맥의 흐름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필사자의
실수에 따라 '3인칭 복수'인 '아마루'가 잘못 옮겨졌다고 본다(NIV, RSV).
이 경우, 원문에 충실하게 옮기면 '그래서 그들은 이런 식으로 물었다 :
이 건축에 종사하는 자의 이름들이 무엇이냐?'로 될 것이다.
당시에 실제로 성전 재건을 주도하던 인물은 '스룹바벨'과 '예수아'였다.
그런데 닷드내 일행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상소 내용에는 '세스바살'이라는 이름만 나온다(14, 16절).
따라서 우리는 이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이 동일인이라는 단서를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스5:5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저희가...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문자적으로 '그들이 그들을 중지시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것은
닷드내가 왕의 하달을 받을 때까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스스로의 판단을 유보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시 34:15).
'이 일을 다리오에게 고하고'
6-17절은 이러한 '닷드내'의 보고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건축사업이 합법적인 것인지의
여부를 알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문자적으로는'이에 관해 쓰여진 답서가 올 때까지'이다.
따라서 여기의'기다렸더라'는 원문에는 없는 것으로서, 페르시아 관원들이 성전 재건을
중단시키는 일을 유보했었던 사실을 강조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번역이다.
스5:6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인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바삭 사람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라
'아바삭 사람'
이 단어는 애굽 땅의 엘레판틴에서 발굴된 파피루스 문서에서 유사한 형태로서 발견되며,
그 의미는 '고하는 자' 혹은 '조사하는 자' 등일 것이다. 따라서 여기의 '아바삭 사람'은
페르시아 관원들의 구체적 직함이지 어떤 부족의 이름이 아니다(4:9 주석 참조).
스5:7 그 글에 일렀으되 다리오 왕은 평안하옵소서
'그 글'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전 건축이 합법적인 것인지의 여부를 질문하기 위한 보고서를
가리킨다. 그런 이 원문에는 본 문구 뒤에 '그들이 보낸'이라는 말이 있다.
스5:8 왕께 아뢰옵나이다 우리가 유다 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본즉
성전을 큰 돌로 세우며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일하므로 공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에
'우리가...가서'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다 사람들에 대한 불평과 관련하여
관리로서의 공무 집행을 위한 것이었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전'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1)'지극히 크신'을 예루살렘 성전의 엄청난 규모를 형용하는 것으로 보고
'하나님의 지극히 큰 전'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
2)'지극히 크신'을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고
한글 개역처럼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 등 두 가지이다.
그러나 첫째, 피정복국의 종교를 존중하는 것이 페르시아 정부의 일관된 식민지 정책이었으며
둘째, 원문상 형용사 '지극히 크신'이 단어 '하나님' 바로 뒤에 있으며
셋째, 건축 중이던 성전이 그 규모에 있어서 그리 대단하지 못했다(3:12)는 점 등에서 볼 때,
2)의 것이 보다 더 타당성이 있다.
'선전을 큰 돌로 세우며'
여기의 '큰 돌'(에벤 겔랄)에 대해서는
1)`큰'이라는 형용사를'구르다'의 의미가 있는 어근'갈랄'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굴려야만 성전 재건 공사장으로 옮길 수 있을 정도의'무거운 돌'이라고 하는 견해,
2)'큰'이라는 형용사를 아카디아어 '갈랄루'에서 파생된'겔랄'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고
원초적인 건축이 아닌, 재건에 유용한 '조그만 돌' 혹은'자갈'이라고 하는 견해,
3) 형용사 '큰'을 어근 '갈랄'에서 온 것으로 보고 또한 문맥적 상황을 감안하여
'잘 다어진 돌'이라고 하는 견해
그렇다면 첫째, 옛 솔로몬 성전을 목격했던 노인들이 실망을 할만큼 새 성전의 규모는 작았으며(3:12)
둘째, 비록 재건(再建)이기는 하지만 조그만 돌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셋째, 본 문구 뒤에 나오는'나무'가 완전히 가공된 재료임을 가리키는 등,
본 문맥상의 흐름에서 볼 때 위의 견해들 중 3)이 가장 적절한 듯하다.
'벽에 나무를 얹고'
이것은 대개의 경우 1) 건축물의 내외벽에 미장용 판자를 붙이는 것.
2) 지진 등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할 목적으로 벽과 벽 중간 중간에 나무를 대는 것
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위의 것들 중 두 번째 견해가,
고대 중근동에서 위와 같은 건축 방식이 지극히 보편적이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보다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스5:9 우리가 그 장로들에게 물어보기를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라고 하였느냐 하고
'누가...명하여' 이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스5:10 우리가 또 그 우두머리들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아뢰고자 하여 그들의 이름을 물은즉
성전 재건의 합법성 여부를 확인키 위한 기본적 조처이다(4절).
스5:11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건축하여 완공한 것이었으나
'천지의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천지의 하나님'이라고 칭한 것은
페르시아 왕 다리오에게는 친근감 있게 들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의 황실은
'하늘의 신' 또는'하늘과 땅을 창조한 신'으로 여겨지는'오르무즈드'를 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칭호를 사용한 것은 타협적 의미이기 보다는
오히려 도전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12절을 통해 미루어 보더라도,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 사건은 하나님의 무력(無力)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불신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권능 행사로 말미암은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천지의 하나님의 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재건 사업은
다른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방해를 받거나 중지되서는 안됨을 강력히 시사해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솔로몬 성전은 B.C. 966년에 착공되어(왕상 6:1)
7년 후인 B.C. 959년 가을에 완성되었었다(왕상 6:38). 따라서 제 2 성전이 건축되던
그 시기를 약 B.C. 518년 경으로 본다면
솔로몬 성전이 완공된 것은 그때부터 약 440여 년전이 되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큰 왕'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솔로몬의 탁월한 업적 때문에 그에게 '큰'(라브)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음이 분명하다(4:10).
'완전히(쉬클레)' 원문에는 본절의 맨 뒷부분에 놓여 있으며,
이는 문자적으로 '마쳤다'의 뜻을 가진다.
스5:12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이 성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손에 넘기시매' 이것은 유다 왕국의 멸망이 철저히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결과였음을 분명히
시사해주는 말이다. 한편 '넘기시매'(예하브)는 '주다'의 뜻을 가진다.
'이 전을 헐며' 이에 대해서는 왕하 25:9과 대하 36:19을 참조하라.
스5:13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고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元年)’
'고레스'를'바벨론 왕'이라고 한 것은, 페르시아 스스로가 자신들을 바벨론의 합법적이고,
정통적인 계승자로 자처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자연스럽다.
근래에 발견된 고레스의 조서는 고레스가 자신에 대해서
'나는 세상의 왕, 위대한 왕, 합법적인 왕, 바벨론의 왕, 쉐르와 아카드의 왕, (세상의)
네 가장자리의 왕 고레스이다'라고 언급했었음을 보여준다.
특별히 여기서 유다 사람들이 고레스를 '바벨론 왕'이라고 언급한 까닭은,
성전 재건을 허락한 고레스를 느부갓네살과 직접 연결지우려고 한 의도 때문이었다.
이 같은 의도는 결국 느부갓네살이나 고레스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쓰였으므로 성전의 파괴가 필연적이었듯이
성전의 재건도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강력히 암시하려는 궁극적 목표와 연결된다.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하게 하고' 이것은 구체적으로 고레스 왕이
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을 재건할수 있도록 팔레스틴으로 귀환을 허락한 것,
2) 성전 재건의 비용에 쓸 수 있도록 바벨론 사람들로 하여금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물을 주도록 한 것(1:4)을 가리킨다.
스5:14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금, 은 그릇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 왕이 그 신당에서 꺼내어
그가 세운 총독 세스바살 이라고 부르는 자에게 내주고
스5:15 일러 말하되 너는 이 그릇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제자리에 건축하라 하매
본절에서는 성전 기명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시 반환된 사실에 대해서 다뤄지고 있다.
이는 유다 민족의 성전 기명이, 다른 민족의 신당에 보관되는 것은
유다 민족에게 있어서 엄청난 수치였으나,
이제 그 종교적 수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까닭에 본절에서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이 같은 종교적 수치의 모면은 다른 나라에 강제로 끌려가서 사는 정치적 수치에서
벗어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스5:16 이에 이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지대를 놓았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아직도 마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여기서 유다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 행위로 인한 재건 사업의 중지(4:1-5)에 대해
언급지 아니한 까닭은, 여기서는 다만 그 당시 진행 중이던 성전 재건 사업이
고레스의 허락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래서 그 허락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공사는 합법적임을 부각시킬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때'는 '세스바살'이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성전 지대(址臺)를 놓는 등
건축 사업을 시작한 때를 말한다.
또한 '건축하여 오다'(미트베네)는 '건축하다'의 의미를 가진 동사 '베나'의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미완료적 진행형, 즉 '건축해 오고 있는 중이다'로 번역함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6여년이라는 상당한 기간 동안 성전 재건은 중지, 방치된 상태였다.
스5:17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전각에서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바벨론에서 왕의 국고에 조사하사’
'국고'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문서 보관소'를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페르시아 왕, 특히 고레스의 조서 사본이 바벨론에 있던 '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었던 까닭은, 페르시아 왕들이 바벨론 왕들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운 것과 결코 무관치 않았을 것이다.
고레스가 다른 종교에 대해서 관용적 태도를 취했으며 그리고 다른 종교의 파괴된 신전들을
다시 짓도록 명령했던 사실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토판이 근래에 발견된 곳도
옛 바벨론의 고토(故土) 라삼(Rassam)이었다.
'이 일에 대하여' 이것은 다리오 왕이 성전 재건 공사를 계속 진행시킬 것인지의 여부의 문제를 가리킨다.
'보이소서(이쉴라흐)’
'문서 혹은 사람을 보내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쉘라흐'의 사역형 미완료 시제로
결국 이것은 닷드내가 자신의 직무와 관련하여 자신이 보낸 보고서에 대한
왕의 답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불만을, 왕의 답신을 통해서
잠잠케 하려는 닷드내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호의적 태도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