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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 행19:1-7 2011-06-12
케냐에 마사이 족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한동안 같이 생활한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마사이 족들이 불붙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장정 세 명이 홈이 파인 나무에 강한 막대기를 대고 힘껏 비벼대면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불씨가 생겼고,
거기에 마른 나뭇잎이나 마른 코끼리 똥 같은 것을 대니 불길이 타올랐다고 합니다.
그 피운 불길을 각 가정에 옮겨 붙인다고 합니다.
이 마사이 족들의 식사는 짐승을 구워 먹어야 하기 때문에 불이 필요합니다.
밤에는 난방의 역할을 하며, 목숨을 지켜주기까지 합니다.
잘못 물리면 말라리아에 걸려 죽게 할 수 있는 무서운 모기를 쫓아낼 뿐만 아니라,
맹수들의 위협으로부터도 보호해줍니다.
▲성도들도, 교회도 성령의 불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불을 붙이지 못하거나 붙였다 하더라도, 그 불이 꺼지면 끝장입니다.
성령의 불이 꺼지면 마귀의 무도회장으로 변합니다.
원수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고,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는 마귀를 틈타지 못하도록,
우리 성도들은 개인의 심령에 성령의 불을 붙여야 합니다.
특히 교회에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불을 성도들 개개인에게 붙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의 불길이 좀처럼 타오르지 않는데 있습니다.
성령의 불을 사모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아무리 물세례를 받고 말씀을 알고
교회에 다니는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성령을 받지 못하면 능력있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늘 마귀에게 패하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을 마지막 때에 보내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요엘2:28~30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세례요한도 말했습니다.
눅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예수님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이 성령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요20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제자들이 두려움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곳입니다.
문을 닫아두었는데도 부활의 주님은 들어가셔서 제자들에게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러면서 못에 찔렸던 손과 창으로 찔렸던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성령입니다.
지금은 성부 하나님의 시대도 아니요, 성자 하나님의 시대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 하나님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을 하셨고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행19장의 내용을 봅시다.
아볼로는 고린도 지방에 있고, 바울이 따로 에베소를 찾았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세워진 것은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때입니다.
그런데 에베소는 이방인이 살고 있는 아시아입니다. 해양도시입니다.
무역중심의 교통이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두란노 서원도 있고, 야외 극당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해서 곧바로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 성령문제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바울이 물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이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왜 이 질문을 했는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다는 것은,
성령을 받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원 받았습니까?’라고 묻거나 ‘천국 들어가는 것을 믿느냐?’고 묻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까 그렇게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에베소에 도착해서, 신자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도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한 얘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은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바울은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됩니다.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19:2
성령님이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성령운동을 터부시하는 보수주의 신앙을 가진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어떤 기독교 교회는 성령님에 대한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말씀만을 강조합니다.
물론 말씀이 중요합니다. 말씀 듣고 변화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첫 번째로 만났던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지금은 성령시대로서 보혜사 성령의 능력을 받아
주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분명히 성령을 받았고 성령 체험을 강하게 하고서 사도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에베소에 내려와서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고 했으니
바울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기가 찰 노릇입니다.
▲사도행전8장에도 보면 예루살렘에 핍박이 심하여 많은 사람들이 흩어졌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중에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는 빌립이 전하는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걷게 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소문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사는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서 확인해 본 결과를 1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었다’ 행8:16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안수하며 기도하니
사마리아 신자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8:17
오늘 날도 얼마든지 이런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지금도 이런 현상이 있습니다.
△여러분 무당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무당들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대한경신연합회”라는 한국 무속인 연합회가 있습니다.
이 연합회 홈페이지 첫 화면에 “대한민국 30만 무속인 단결과 화합”이라는 글이 뜹니다.
그런데 무당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학습 무당과 강신무당입니다.
학습 무당은 배워서 된 무당이고, 강신 무장은 신이 그에게 내려서 된 무당입니다.
그런데 굿 하는 모습과 질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습무당에는 사기꾼이 많다고 합니다.
다만 30만 무당중에 강신무당은 약10%정도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가짜 무당이 그만 큼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걸 성령에 비유해서 좀 죄송합니다만)
그런데 문제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내가 직접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된 사람,
성령의 기름부음 받은 성도가 있는가 하면, *'강신'에 비유
교회에 나온지는 수년이 되고, 교회의 직분도 받고 봉사도 하지만 진정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구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고, 성령의 임하심도 경험하지 못한
일종의 기독교인으로 흉내만 내는 학습 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습 무당'에 비유
심지어 목회자들에게도 두 부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학습'과 '강신'이지요. *강신 : 신이 내림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다른 사람의 신앙의 형식이나 모양만 흉내 낸다면, 바른 신앙이 됩니까? 안 됩니다.
성도는 예배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찬양을 통해서,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령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물었던 질문을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에 여러분은 성령 받았느냐?’
아니 에베소 교회 교인들처럼 성령이 뭔지를 제대로 모르고 계시는 분은 없습니까?
성령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우선은 성령을 경험했는지 못했는지는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까?
성령의 임함은 어떤 현상들이 있습니까?
우선은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변화가 주어지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무는 그 열매로 알듯이, 성령이 임하면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물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있지만 실제적으로 성령이 임했을 때
어떤 현상들이 나타났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부터 살펴봅시다. 성령이 있는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하는 에베소 제자들에게
바울이 다시 물었습니다.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그들의 대답은 “요한의 세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란 무엇을 말합니까? 여기까지는 하나님을 믿지만,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구약은 아는데, 아직 신약의 복음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세례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윤리적입니다. 도덕적입니다.
회개를 촉구합니다.
마3:7-12, 눅3:3-14절에 보면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서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
회개하지 않으면 찍혀 버린다’고 외쳤습니다.
임박한 심판에 대해서 아주 강렬하게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도덕적인 말씀을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두 벌 옷을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
세리가 와서 ‘어떻게 할까요?’ 하니 ‘정한 세 외에는 더받지 말라’했습니다.
군인들이 와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강포하지 말고 무고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아라’고 했습니다.
도덕적인 메시지입니다.
가장 적절하고 가장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덕적 윤리적 메시지입니다.
‘바르게 살아라. 욕심 부리지 말아라. 정의를 위하여 살아라’
그렇다고 직장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자리에서 정직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라고 합니다. 윤리적 메시지입니다.
이런 메시지에만 머물러 있다면, 아직 세례 요한의 세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말을 들은 바울이
다시 세례 요한이 일러준 말을 되풀이 합니다.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고 한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바로 ‘예수님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아니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까지 세례 요한의 세례에서는 오직 잘못된 것만 알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잘한 것인지를 알기만 했습니다. 아니 깨닫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이제는 용서의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받았을 때는 양심의 가책만 있었고 후회만 있었습니다. 늘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옛 사람은 완전히 죽어버리고 은혜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쁨이 있습니다. 감격이 있습니다. 감동이 있습니다. 이제는 삶의 환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다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는 의인이 없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율법으로 내가 의롭게 살아야만 하는 것으로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니 용서가 되었고
용서받은 기쁨으로 자신 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의 도움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 위대한 사실을 깨달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다시 바울은 안수를 하였습니다.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6절에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여러분, 안수를 하니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임재하심을 바랄 때 때로는 안수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느냐에 대한 말씀은 다음 주일에 하겠습니다.
오늘은 성령이 임했을 때는 어떤 현상이 나타났는가에 대한 말씀을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성령을 받았는지 못받았는지, 아니 자신이 성령임재한 신앙인지,
아니면 단순히 종교인으로 학습된 신앙에 머물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심을 무엇을 통해서 확인이 되었습니까?
방언과 예언이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성령이 임하니까 바울이 하는 설교를 전에는 못 알아들었는데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성령의 역사가 지금도 일어납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중국 교회를 다녀와서 말씀드린 것 기억하십니까?
류양교회 관해주 집사님이 주일이 되면 자기 교회에서 예베를 인도하고
오후에는 인근 마을에 있는 부태 한족 교회에 지도자가 없어서
관집사님이 가서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부태 마을에 조선족 교회가 있었는데 설교하던 집사님이
한국에 돈벌로 가 버린 후에 조선족 교인들이 뿔뿔히 흩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한 조선족 할머니가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중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특히 설교는 잘 못 알아듣는데, 그날에 한족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관집사가 중국어로 하는 설교를 너무도 은혜롭게 한국말로 들렸다고 고백을 했다고 했습니다.
지난 5월 달에 태국 방정열 선교사님의 선교 보고 때
그곳에서도 태국 현지인들이 방언을 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한국에 간 유학생이 방언기도를 하는데, 한국말로 하고 있더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알아듣지 못하던 설교가 은혜롭게 들립니다.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설교가 귀에 들어옵니까? 깨닫습니까? 은혜롭게 들립니까?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 성령님이 임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언도 했다고 했습니다.
예언을 했다는 것은 이들의 입술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경험하였으니 자신들이 예수님에 대해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말씀을 잘 듣고 깨닫게 되고 깨달은 주님을
자신의 입술로 증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외에 다른 현상은 없을까요? 시간관계상 자세하게 다 말씀드리지 못합니다만
사도행전2장에 보면 성령을 받았을 때 삶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선 베드로의 공식적인 설교를 듣고서 마음에 찔림을 받아 회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37절에 보면 “형제들이 우리가 어찌할꼬?” 이때 베드로가 일러줍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2:38).
이 말씀을 받고 세례 받은 자가 3천명이었습니다. 이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3천명이 성령을 받으니까 어떤 현상이 나타났습니까? 여러 가지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났지만
가장 많이 그리고 크게 영향을 끼진 현상이 나눔의 현상이었습니다. *삶의 변화
그것이 자주 인용하는 2:43절 이하의 모습입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나누고
심지어 재산을 팔아서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었습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소유주로 알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필요한 자에게 잘 나누어줍니다.
비전센타의 아나바다에 물건을 자주 내어놓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성령충만한 증거입니다. 어떤 성도는 성령의 강동을 받아 가난한 사람,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요긴하게 사용하라고 내어놓기도 합니다.
남몰래 돕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나타난 현상이 잘 모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충만 받았습니까?
성령을 받으셨다면 잘 모여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령충만한 성도들은 너무 잘 모였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였다고 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공적인 예배에 빠지지 않는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충만 받으면 교제가 잘됩니다. 그리고 찬송을 절로 나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성령충만의 최종 결과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불신자들에도 칭찬 듣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충만 하면 기도하기를 힘씁니다. 초대교회가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성령이 임재하심을 의미합니다.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을 사도 바울도 확인을 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권고하였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성령충만 받으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찬양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삶을 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20).
성령이 충만하면 불평이 사라집니다. 원망도 사라집니다. 오직 감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삼라만상이 춤을 추듯이 보입니다.
모든 것이 선하게 보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분명함으로 성령이 모른다면
오늘부터 성령을 받아 성령안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이미 성령을 받아 그 능력으로 사신다면 지속적으로 성령충만한 삶이 되셔서
증인의 삶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령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
♣찰스 스펄전 목사의 전기에 보면, 그 목사님에게 정말 힘든
몇 가지 요인이 있었는데, 정말 우울증으로 너무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너무 심해서 도무지 설교를 할 수가 없어 다음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설교를 할 수 없어서 자기 연구실에 문을 잠그고 거기에서 그냥 숨어 있었던 적도 있었죠.
성도들 몇이 가서 문을 부수고 들어가 ‘목사님 설교해 주시라’고 목사님을 끌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의 간증은 이랬어요.
「내가 설교하러 계단을 올라가는데 한 계단 올라가면서 “나는 성령의 능력을 믿습니다.”
다음 계단도 “나는 성령의 힘을 믿습니다.” “나는 성령의 능력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일터로 들어갈 것입니다. 회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첫발을 내디디면서
‘나는 성령의 능력을 믿습니다. 성령이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라고 하고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성령의 능력을 믿습니다.’라고 선포하며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들의 삶은 변하게 될 것이고, 그때 우리들의 삶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지난 2천년 신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성경을 중앙에 두고서
‘이성’(철학)과 ‘은총’(체험, 성령)이 좌우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역사였다.
대부분의 경우 신학은 이성(철학)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신비주의,
17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경건주의,
20세기 오순절운동 등
은총(체험, 성령, 감정)쪽으로 기울어진 경우도 있었다.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
성경이 늘 강조하는 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