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막6장 예수님의 가족

LNCK 2026. 1. 5. 11:05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리더쉽, 목회자   

https://blog.naver.com/karamos/220214216621

 

◈예수님의 가족                         막6:3~4                2010-10-31

 

◑서론: 예수님께는 육신의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 요셉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형제들과 여동생들이 있었다.

막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로마 가톨릭에서는 다른 형제들은 요셉이 전 아내에게서 나은 자녀라고 보며,

마리아는 예수님만 낳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너무 무리한 해석이고,

실제로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 예수님은 장남이시고 그 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동생들로 인해 그렇게 덕을 보지 못한다.

첫째 아버지 요셉이 일찍 돌아가셨기에, 예수님은 동생들을 돌보셔야 했다.

 

왜 예수님께서 공생애가 30년이 되어서 시작되었을까?

하나는 제사장이 사역을 시작하는 나이가 30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동생들이 자립할 때까지, 예수님 없이도 설 수 있을 때까지 도우셔야 했기 때문이었다.

 

가나 혼인 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말한다.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이는 예수님이 늘 집안일과 어려운 일에 의논 대상자

그리고 중요한 역할을 가정에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동생들을 맡아야 하는 책임, 만약 동생이 없이 혼자 였다면

훨씬 부담이 작았을 것인데.. 그 집안 돌보는 일을 예수님은 하셔야 했다.

 

또 예수님은 동생들로 인해 많은 오해를 받으신다.

오늘 본문 뒤에 보면 예수님은 확실히 메시야가 아니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왜냐하면 그 출신을 알기에.

 

6장에서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했을 때 “그 부모 우리가 아는데”라고 말한다.

메시야가 그런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동생들을 보니 메시야 가족은 틀림없이 아니고

그 아버지 목수를 보니 더더욱 아니고.

그래서 예수님은 이 가족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참된 모습이 가려지고 또 대접받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형제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힘들게 한다.

막3장에 예수의 친속들이 예수를 붙들러 나아왔다, 이는 그가 미쳤다함을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리아도 포함되어 있는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마리아는 처녀의 몸에서 잉태하여서 놀랍게 예수님을 낳았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예수님을 그대로 잘 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마리아가 생각한 그리스도와

예수님의 실제 삶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태고지를 받을 때,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예물을 드리고 경배했을 때,

목자들이 찾아와서 천사의 말을 전해 주었을 때, 마리아는 아들을 대단하게 생각했을 것인데

실제로 예수는 대단하고 비범하기 보다는, 평범에 더 가까웠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그가 낳을 구세주가 이렇게 종교지도자들과 대립하고,

이렇게 소박하게 지내실 줄을 몰랐던 것 같다.

예수님은 그가 생각한 것과 너무도 다르게 사시고 행동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처녀의 몸에서 잉태하였지만 예수님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특히 남편을 일찍 여이고 장남을 의지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기에

더더욱 예수님을 더 많이 염려 했을 것으로 본다.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부터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시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어려움을 예수님은 감당하셔야 했다.

 

◑본론

 

오늘은 예수님의 가족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참된 형제가 누구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형제들은 예수님의 형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가족이 되려면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예수님의 형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오늘 본문에서 말씀한다.

 

▲1. 믿음으로 영생을 가진 자 (들이 예수님의 가족이다)

예수님의 가족이 되려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가져야함을 오늘 알려 준다.

예수님의 가족은 성령에 의해서 묶으시는 영원한 관계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그분의 가족이 됨을 오늘 본문을 말씀한다.

 

예수님은 지금 위험에서 피해 계신다. '유대로 다니려 하지 않으심은 그를 죽이려 함이라.' 요7:1

칼빈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셨기에 그 한계 아래 살으셔야 하고,

그래서 겸손하게 이를 받아들이시며, 쓸데없이 이른 고난을 맞지 않기 위해 피해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형제들은 예수님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면서,

이렇게 숨어지내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를 이를 수 없다고 말한다.

요7:3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아마 형제들은, 제자들이 떠나가고 요6:66

지금 있는 제자들마저 힘이 빠져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지난주 생명의 떡에 대해 말씀하신다음 많은 제자들이 떠나갔다고 했다. 요6:66

제자들의 숫자가 현격이 줄었고, 또한 지금 있는 제자들도 두려움에 불안에 사로잡혀 있기에

형제들이 보기에 이제 한번 멋지고 큰 것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투가 어떠했을까?

 

학자들은 이 말투는 책망하는 말투, 조롱하는 말투, 부추기는 말투였다고 한다.

비겁하게 숨어 있다고 책망하고

능력 있는데 한번 해 보지 뭐하느냐고 조롱하고

한번 보여 보라고 부추기는 말투가 오늘 형제들이 예수님께 하는 말투이다.

 

이 말은 사탄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한다. '성전 꼭데기에서 뛰어내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받아주시고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알아 볼 것이니.'

요한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다.

믿지 않기에 가족이 되지 않은 것이다.

 

매튜 헨리는 말한다.

'은혜는 혈통을 따라 흐르지 않는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가정도 그렇다.

그리스도의 친족이 되었다는 것은 큰 명예이지만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예수님의 가족이 되려면 믿어야 한다. 아들에게 있는 생명을 가져야 한다.

같은 아버지를 모셔야만 형제가 되는 것인데, 이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막3장에서 모친과 형제들이 찾아 왔을 때 예수님은 자기 주위에 앉은 자들을 둘러 보시며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내 모친과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3:33-34)

 

눅11:27-28

“무리 중에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예수님 말씀하신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예수님의 형제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

형제들이라도 하나 될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믿음에 있다. 믿음으로만 예수님의 가족이 될수 있다.

 

▲2. 하나님의 때를 사는 자 (들이 예수님의 가족이다)

예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때를 알고 그 때를 준비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시간을 알고 그 시간에 살기에 세상이 싫어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워하기도 하며

핍박하기도 하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가족이다.

 

오늘 본문은 초막절을 배경으로 한다.

초막절은 유대인3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데, 가장 큰 절기이며 기쁨의 절기이다.

예루살렘 반경3키로 이내 있는 남자들은 다 참석해야 하고, 텐트(초막)를 치며 7일간을 보내고

가장 큰 날이 8일째 되는 날에는 제사장이 물을 높이 들어서 그것을 땅에 붙는데

이런 축복이 위로부터 임함을 보여주는 의식이 있는 절기이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것을 기념하며 또한 계속 인도해 주실 것을 바라보는

과거와 미래를 함께 축하하는 절기이고, 이때는 동시에 추수감사절도 되어

많은 수확물을 거두어 들인 상태라 풍요가운데 보내는 절기이다.

 

형제들은 이 절기를 지키러 가면서 예수님보고 가서 기적을 보이라고 말하는데,

이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 때는 항상 예비 되었지만 내 때는 아니다 라고 말씀한다.

 

이는 무슨 뜻일까?

‘항상 준비되었다’는 말을 우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러나 원래의 뜻은 늘 때가 있다고 믿는 자는, 아무 의식도 아무 상명감도 없는 자라는 말이다.

언제라도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을 주님은 ‘너희 때는 언제나 있다’고 지적하신다.

 

다음 구절에 세상은 너희를 받아주지만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데

이는 내가 세상을 향해 책망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세상이 항상 때가 있다고 일러 주고 그러니 오늘 하지 말고 내일로 미루라고 하는데,

 

이를 잘 따르는 자들이 형제들이고,

그러나 예수님은 미루지 않고 단호하게 분명하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기에

세상이 미워한다는 말이다.

 

즉, 세상은 세상에 위협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때가 있으니 다음에 하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해야 할 때를 알고 계시고, 그래서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한다고 말씀하신다.

 

△이번 칠레 33명의 광부를 69일 만에 살려낸 사건을 보면서 우리 모두 감동을 받았다. *2010

한명 한명이 올라 올 때 마다 세바스챤 피녜라 대통령이 만나 포응을 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 어떤 중계보다 감동적이고 리얼한 모습을 보았다.

 

이때 피녜라 대통령은 34번째 광부로, 실제적으로 이 일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동정과 함께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가진 대통령으로 존경을 받게 되는데,

이 세바스챤 피녜라 대통령은, 호세 피녜라의 동생이다.  *칠레 경제학자, 칠레 개혁 정치가

형 호세 피녜라는, 칠레 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 개혁의 귀감이 되는 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

 

이 둘 다 하버드 경제학 박사인데 그의 형은 칠레 국민 연금을 개인의 선택에 따라 들게 함으로

실제로 노조나 연금 회사의 부패와 비능률을 제거하고,

그리고 국민들 한명 한명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실제로 받는 혜택이 좋아지게 하는

그래서 모든 연금 개혁의 모범으로 역사를 남긴 자이다.

 

그가 쓴<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보면 32세의 나이로 노동부 장관에 부임하고

그는 곧 연금 개혁에 착수하는데,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무엇인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숙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개혁이건 도전이건 어떤 결정이나 프로젝트에 있어서

그것을 해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여기에는 아무런 비결도 없다. 때가 이르렀을 때에 너희 일을 하라고 복음서는 말한다.”

 

“관직에 입각했을 때부터 연금 개혁에 기한을 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기한을 정해 두지 않고 일한다는 것은 바쁠 것이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칠레에서 무척 위험하다.

중남미가 약속만 하는 나라. 내일로 미루는 나라, 연체와 외상수표의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이다.”

 

비전이 있고 사명감이 있으며 목적의식이 분명한 자는 아무 때나 일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정해진 때가 있고,하나님의 때를 살아가고 있으며 그래서 한때 한때를 쉽게 생각할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형제들과 예수님의 차이가 난다.

 

형제들은 아무 때나, 항상 때가  동일했다.

아무 비전도 아무 목적도 사명도 없기에 세상이 하라는 것을 하면 되고

세상이 시키는데로 하면 되기에.

 

그러나 예수님은 매 순간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계시고,

매 때가 사명을 갖고 일을 하시는 때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처럼 부주의하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을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이 일하시니 우리도 일한다고 말해야 그분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오늘 저녁 전도 집회가 있는데, 어떤 이에게는 그냥 집회일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영원의 가치를 갖는 시간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초조하게 기다려온 간절한 시간일 것이고, 어떤 이는 그냥 한번 보는 시간일 것이다.

 

언제나 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이 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

이때가 바로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간절히 마지막까지 전도에 힘을 내야 한다.

 

▲3. 예수님께 오는 자 (들이 예수님의 가족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에게로 가는 자이다.

오늘 본문에서 형제들은 예수님을 가라고 한다.초막적을 지키로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그리고 예수님이 가시지 않자 자기들이 먼저 올라간다.

 

예수님은 며칠 더 있다가 올라가시는데,

나는 가지 않는다는 말은 지금 가지 않는다는 말이지 올라가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셨다.

그리고 올라가신 다음부터 예수님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찾아든다.

 

어떤 사람들은 미쳤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출신을 봐서 분명 메시야는 아니라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어디서 그런 가르침을 받았는가 의심한다.

그리고 잡고자 하고,또 죽이려고 한다.

 

예수님은 이것을 다 거친 다음에

명절 큰 날에, 곧 마지막 날에 큰 소리로 외치신다.

요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셔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생수의 강이 중요하다.

보통 물이 아니라 강이다.

물의 양이 너무 많아

내가 가진 것은 아주 보잘 것 없게 하고

또 그 양이 너무 많아

나의 부족은 생각도 하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있는 자는 자기 것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없는 자는 자기가 주님으로 풍성하게 되어 아주 존귀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우리 모두 그분의 가족이 되는 것.

거기에 성별도 신분도 경제적 차이도 의미가 없어지는 곳

바로 이런 이유에서 조롱이 있고 위험이 있고, 의심이 있어도 주님께로 가야 한다.

이보다 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할 수 있기에.

 

△에스라서에 보면,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의 명단이 나온다.

이 명단은 누가 이스라엘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명단인데,

여기에 제사장, 레위인, 성전 문지기, 다윗의 후손만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는 느디딤과 솔로몬의 신복의 후손들이 나온다. 

'솔로몬의 신복의 후손들'

이들은 솔로몬을 섬기던 종의 자손인데, 주로 이방인들이었다. 스2:55, 58     주1)

 

느디님들은, 기브온 사람들을 비롯해서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에 귀화하여 성전에서 허드렛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스2:43, 느7:46

이방인으로 전쟁에 패한 뒤, 예루살렘으로 끌려와 성전에서 심부름하던 자들이다.

 

그런데 성전을 재건하라는 고레스왕의 명령을 듣고

그 후손들도, 이방인들임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의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이들은 아마 영원히 느디님이라는 신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름들이 다른데, 몇 사람을 보면 하수바는 ‘빠르다,’  스2:43

르바나는 ‘희다’  스2:45

느고다는 '얼룩덜룩하다’ 등  스2:48

분명히 그 이름은 이방인으로 종의 이름이다. 

 

이름만 봐도 차별을 받을 수 있는 자이다.     주2)

느디님은 그럼에도 성전을 짓기 위해 왔고, 이들의 이름을 하나님은 성경에 올려 주셨다.

그래서 그 이름의 가치는 새롭게, 빛나게 된 것이다.

 

온 것으로만 판단하시고

온 것으로 성경에 올려주시는 것

이것이 바로 생수의 강이 주는 역사이다.생수의 강이 너무 많고 강하기에

누구도 높고 낮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모두 감사하고 모두 감격하고 모두 감동하는 것.

 

이 생수의 강이 그 배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주님은 이 생수의 강을 주기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말한다.

물과 피를 흘리심으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고

우리는 그 강물로 인해 모두가 다 성령의 사람,예수님의 형제가 된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다음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말씀하신다.

요20:17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그래서 그분은 그에게로 오라고 하신다. 앞에 어떤 장애가 있든지 두려워말고 내게로 오라고.

어떤 신분이든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그러면 생수의 강 안에서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가족이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인도하자.

아무 염려하지 말고 그 분앞으로 계속 나가자.

성경에 이름과 같이,약속대로,생수의 강이 우리를 놀랍게 축복해 주시며

우리는 그분의 가족으로 예수님의 형제 자매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

 

주1)  솔로몬 신복의 후손들

이들의 일부는 틀림없이 가나안 원주민들의 후예일 것이다.

솔로몬이 그곳 원주민을 자신의 역군으로 삼은 바있기 때문이다(왕상 9:20, 21).

 

또한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 중 상당수는, 솔로몬의 군대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온 자들의

후손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앗수르 왕 산헤립(B.C. 705-681)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강대국의 국왕이 타민족을 포로로 잡아다가 자신 혹은 자국의 신(神)에게 봉사토록

하는 것은 고대 중근동의 일반적 풍습이었다.

 

주2) 이름만 봐도 차별을 받을 수 있는 자이다 

맨큐의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내용인데,경제학자 두 명이1300개가 넘은 일자리 광고에

5000장의 이력서를 보내 실험을 해 보았다.절반은 흑인들이 잘 쓰는 이름,

‘라키샤 워싱톤’이나‘자말 존스,’절반은 백인들이 잘 쓰는 이름, ‘그렉 베이커,’ ‘에밀리 왈스.’

이력의 내용은 거의 비슷했지만 회사의 반응은 달랐다고 한다.

백인 이름의 이력서에 흑인 이름 이력서 보다50%이상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