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입맞춤 | 아 1:1-4 25.12.29. Youtube
◈사랑의 입맞춤 아1:1-4 2025.12.29.
특새 인삿말 주1)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말씀은 아가 1:1~4절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수도 없이 들었을 거예요.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는 거죠. 특별히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 아주 선명하게 얘기했죠.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서도 제일은 사랑이다’
우리 기독교에 소망과 믿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소망, 믿음 이게 얼마나 중요해요?
그런데 사랑이 제일이라는 거예요. 사랑이 빠지면 nothing, 아무 것도 아니니라!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어요. 롬13:10절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사랑하면 율법을 완성한 거예요. 별짓을 다.해도 사랑이 빠지면 nothing,
이게 바울이 지금 사랑을 피상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뭔가 모호한 사랑을 얘기 하지 않아요.
요한은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면 사랑은 뭘까요?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죠. 사랑은 관계예요.
여러분, 여기에서 관계는 공적 관계가 아니라, 개인적 관계를 말합니다.
최근에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85년간 연구한 결과가 이렇게 공개됐는데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사람과의 따뜻하고 의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라고
했습니다. 이게 행복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거죠.
‘부도, 명예도, 학벌도 아니고, 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얘기예요.
그런데 여기서 관계는 어떤 관계죠? 그냥 관계가 아니고, 질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면 질적인 관계는 뭘까요? 질적인 관계, 그것을 우리는 친밀성이라고 얘기합니다.
친밀함, 인터머시!
현대인들은 관계를 많이 맺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친밀한 관계, 친구가 천 명, 만 명 있으면 뭐합니까? 친한 친구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친밀한 관계, 친밀하지 않으면 관계를 맺기보다는 거래예요. 거래,
주고받는 거래, 상업적 관계 손익이 계산되고 있어요.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밀성입니다. 무수한 관계들, 사업상 만나고, 일로 만나고,
어떤 이익관계로 만나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나고, 얽히고, 섥히는 그런 관계는 필요하죠.
그런데 그 관계를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잖아요.
친밀성을 얘기할 때, 우리는 부부관계를 떠올립니다.
이 세상에 부부보다 더 친밀한 관계는 없어요.
그리고 그 친밀함을 어떻게 유지하여 가느냐가 부부생활의 핵심입니다.
친밀성을 잃어버리면, 부부관계가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게 의무적 관계로 변합니다.
관계 안에서의 즐거움이 뭘로부터 오느냐? 친밀함을 통해 주어진다는 거예요.
그 즐거움이 어디에 있냐? 친밀감 때문에 오는 거예요.
친밀감이 없는 부부생활은 그냥 주고받는 관계예요. 기계적이고, 수동적이고...
그러면 어떻게 되죠? 행위만 남고, 사랑은 없어요. 행위만 있는 거예요.
그 순간부터 부부의 관계는 불편해지기 시작해요.
부부지만.. 어쩔 수 없이 명목만 유지하며 살아가는 커플이 굉장히 많습니다.
사랑이란? 친밀한 관계예요. 친밀함이 빠진 사랑은, 사랑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그 친밀한 관계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밀함에서 삶의 에너지가 나오는 거예요.
살아갈 에너지가 그 친밀한 관계 안에서 나오는 거예요.
사랑은 친밀함입니다.
이걸 우리의 신앙의 영역으로 옮겨보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란, 역시 친밀한 관계여야 합니다.
그게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교리적 연결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의 회복이에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기도생활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기도는 일방적 호소, 혹은 부르짖음 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친밀함이 빠져버리면 기도는 종교적 행위가 됩니다.
그 기도 생활은 오래가지 못해요.
하나님과의 의무적 관계 안에서의 기도는, 언제나 주위를 맴돌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힘들어합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친밀한 관계보다, 상거래적 관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애정이 빠진 종교적 열정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기도시간이나 예배시간이 즐겁지 않다면,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될까요?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즐거웠어요. 그런데 예배를 처음에는 너무 행복하게 드렸어요.
예배를 아무리 들여도 지겹지 않았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 영적으로 메말라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아가서>는 개인적이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 안으로 우리를 이끌어들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구원을 제도화된 교회 안에서 너무 딱딱하게만 받아들여진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신앙은 교리적 이해를 넘어, 사랑의 관계로 가야 합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잃어버렸다. 그 첫사랑을 회복하라’
이게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몰라요.
첫사랑을 잃어버렸다... 그럼 뭘까요? 사랑을 잃어버리면, 행위만 남는거에요.
활동만 남는거에요. 친밀감을 잃어버린 건조한 관계만 남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베소 교회가 얼마나 열심히 예배를 드렸겠습니까?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성경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오늘날로 치면, 세미나를 얼마나 많이, 또한 훈련도 얼마나 많이 받았겠어요?
근데 어느 순간 무료한 반복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의 위험은, 시간이 흐르면서 틀에 박힌 의식의 반복에서 시작이 되는 겁니다.
모든 게 형식화되고 진부해지는 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신앙의 무기력 증세가 나타납니다.
환희가 사라지고, 경이로움에 대한 기대감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마치 부부가 이혼한 건 아직 아니에요. 그런데 이혼과 별반 차이가 없는 상태,
그런 신앙의 상태로 전락하기가 쉽다는 겁니다.
배우자에 대한 관심도, 흥미도 사라진 상태는 무미건조하죠.
그러나 여러분, 결혼관계 안에서 부부관계만큼 더 큰 즐거움은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에 대한 기대감이 넘쳐나야 정상이지요.
여러분 구원은 출애굽 사건 이상의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거예요.
출애굽 사건이 얼마나 엄청난 겁니까? 홍해를 가르고, 바로의 군대를 무찌르고...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춤을 추었어요. 그 경이로움!
근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출애굽 사건보다 훨씬 더 큰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 신앙의 경이로움을 잃어버리고,
감격도 없고, 기쁨도 없고, 신앙의 행위만 남아있을 수 있다는 거죠.
▲자 여러분, 이 아가서를 통해서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은,
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의 회복입니다.
여러분 아가서를 보면, 사랑에 대한 책인데, 진부한 장면이 하나도 없어요.
이 아가서를 다 설교하려고 하면 몇 년 걸릴 수도 있어요.
단어 하나하나를 그냥 비껴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랑에 대한 가슴뛰는 얘기들로 꽉 차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사랑을 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예요.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이유가 뭘까요? 사랑하라고 만드신 거예요.
안 그러면 남자만 다 있으면 되지요, 뭐. 얼마나 징그럽겠어요?
세상에 여자만 다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지루하지 않겠어요?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거는 사랑을 하라는 거예요. 결혼이 왜 존재하나요?
그보다 더 큰 사랑이, 그 더 큰 즐거움이, 그 외에는 없다는 거예요.
외도? 안 돼요. 그걸로는 기쁨이 없어요. 문제는 우리가 사랑을 힘들어하는 거예요.
사랑에 너무 서툴러요. 다른 기술이 부족한 게 아니라, 사랑의 기술이 부족해요.
에리히 프롬의 얘기처럼.
사랑에 실패를 하는 거예요. 사랑에 대한 상처들이 많아요.
그래서 사랑을 회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결국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세요? 죄의 문제가 있어요.
죄가 모든 것을 다 파괴했지만, 특별히 파괴한 게 사랑의 관계를 파괴한 거예요.
죄가 끼어들면, 이 사랑의 관계에 그냥 파열음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한다고 하는데, 사랑을 수단화하는 거예요.
자기 만족을 위해서, 자기의 내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도구화하고, 수단화하고
그래도 사랑이 채워지지 않으면 가스라이팅하고, 폭력을 하고...
요즘 매스컴에 늘 나오는 뉴스잖아요.
여러분, 아가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아요.
대신에 성적인 언어들, 성적인 표현들이 쏟아져 나오는 독특한 책입니다.
내용이 성인을 위한 것처럼 보여요.
그러나 부모의 지도하에, 우리 자녀들이 들어야 될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게 뭔가요? 그 사랑의 원형이 뭔가요?
오리지널, 그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그 사랑의 뭔가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이 사랑을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랑이 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성경 아가서가 그걸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가서는 겉으로 보면 굉장히 세속적인 책처럼 보여요.
그래서 이 정경에 채택되는데도 오랫동안 신학적으로 논란이 있었던 책이에요.
유명한 랍비 아키바 라는 분의 표현에 의하면
‘모든 세계는 아가서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때만큼 가치있지 않다.'
위 말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사랑 언약이 이 세상 모든 가치보다 우선하고 중요하다'
는 뜻입니다.
'모든 성경은 거룩하다. 그러나 아가서는 지성소다. 거룩한 책 중에 거룩하다.’라고 했어요.
이 아가서는 시예요. 표현이 풍부합니다. 그리고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암시적이고 다양한 이미지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가서는 설교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책입니다.
글쎄요. 여러분, 아가서는 설교를 많이 못 들어보았을 거예요.
어떤 주석가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책이 아가서다.’ 그랬어요.
제가 이 아가서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게 됐어요. 해석이 어려운 거예요.
지나친 알레고리, 풍유적인 해석도 경계해야 하지만,
또 풍유가 없으면 또 해석이 안 되는 책이 바로 이 아가서예요.
아가서를 대할 때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진하게 나옵니다.
그 사랑의 친밀함의 원형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거예요.
여러분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방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사랑을 먼저 배우는 거예요.
우리 애가 알고 있는 사랑은, 많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많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 사춘기 때, 친구들에게 이상하게 사랑을 배웁니다.
대중매체들, 미디어들의 영향이 엄청나게 악영향을 끼칩니다.
성이나 결혼이 왜곡된 채 노출되어 있습니다.
죄가 들어오면서, 순수하고 거룩했던 욕망이 왜곡되고 타락하게 되었어요.
오늘날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스며들어와 있는 거죠.
그래서 성은 굉장히 노골적이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이고 상업적인 것으로 변했어요.
그래서 오늘날 세상은, 사랑이 빠져버린, 고유한 순수한 사랑에 빠져버린,
행위만 강조되는 거예요. 포르노그래피가 대표적인 거죠.
그래서 오늘날 세상은 세상은 사랑이 빠져버린 성이 상업화되어 버린 거예요.
인격성이 결여된 성을, 자기의 만족을 위한 도구로 오용하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에마저도 이 사랑이 변질되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배우자를 기쁘게 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연구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배우자와 싸워 이기기 위한 연구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거예요.
상대의 욕구가 아니라, 나의 욕구를 채우려고 상대를 도구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메시지가 되는 거죠.
아가서는 우리를 진정한 사랑으로 안내해줍니다.
매우 섬세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의 아름다움, 그 찬란함에 눈을 뜨게 해주는 책이 아가서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신랑과 신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또 오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소개됩니다.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유했던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이 아가서는 사랑의 노래예요. 그리고 연애시입니다.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좀 어색할지도 몰라요. 좀 연세드신 분들은 ‘아유, 무슨 사랑?’
오랫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
아니면 어떤 분들은 좀 외면하고 생각하지 않아 왔던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러나 이 아가서를 그래서 그런 분들은 읽어도, 금방 가슴이 뛰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아가서를 계속 살피면,
첫 주는 음~ 별로네 이러다가,
둘째 주는 약간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셋째 주는 심장이 펑펑 뛰고 두근거리는... 앞으로 그런 시간이 될 거예요.
본래 사랑은 여러분, 가슴 뛰게 하는 겁니다. 사랑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이 필요하지 않는 순간도 없어요. 사랑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없어요.
사랑은 우리로 살게 하는 힘이에요.
우리가 방금 전에 찬양 했잖아요. ‘주사랑이 나를 숨쉬게 해’
세상에 사랑보다 더 귀중한 게 있습니까? 아무리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사랑이 빠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사랑의 결핍이라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자, 그러면 나는 진정한 사랑을 언제 경험해 보았는가요?
그걸 우리가 질문하면서, 이제 이 설교를 시작해야 합니다.
아가서를 다루는 동안, 우린 두 남녀의 사랑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려고 해요.
이 두 남녀의 사랑, 그 숨막히는 사랑의 장면들을 우리가 들여다보는 거죠.
그러면서 그 사랑을 지켜보는 우리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야 되는 거예요.
그 안에 있는 그 사랑의 놀라움, 경이로움, 호기심, 기쁨, 환희, 즐거움,
그 안으로 우리도 들어가 보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안에 그 사랑이 회복되고, 우리의 가슴이 다시 사랑으로 불이 타오르는
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정말 숨쉬는 게 아니라, 살맛이 나고 생기가 높고, 활력이 높고 다이나믹해지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대가 되십니까? 기대하시나요?
◑자 이제 솔로몬 아가서 1장으로 들어갑니다.
1:1 ‘솔로몬의 아가라’
이거는 솔로몬이 지었다는 말이죠.
아가서를 영어로 Song of Songs ‘노래들 중의 노래다’ 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다르게 얘기하면 ‘가장 뛰어난 노래다. 비할 바 없는 탁월한 노래다’ 라는 뜻이죠.
또 시로서 우리의 마음을 흔들죠.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신부와 신랑이 번갈아 가며 서로를 향한 대화가 나누어집니다.
때로는 화자가 정확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여러분이 읽어보면, ‘이거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이지?’ 이게 헷갈릴 때도 있어요.
독백과 대화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아가서 노래의 주제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아가서의 첫 단어를 보십시오. 첫 단어는 1:2절에 나오는 거죠.
1:2절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자, 아가서의 첫 단어는 입맞춤이에요.
사랑이 시작되는 단계에요.
신부가 먼저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갈망을 드러내죠.
‘내게 입맞추기를 원한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대상을 향하여 자신의 갈망을 드러내는 거예요.
여러분,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을 더 받고 싶은 갈망이 생겨요.
입맞춤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확증입니다.
신앙이 그래요. 신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요, 교리적 동의가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누리는 단계로 가야 하는 거죠.
사랑의 경험이 가장 먼저입니다. 신앙의 길에 처음 들어섰을 때 무엇을 경험하느냐?
이게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의 초입에서 뭘 경험했느냐는 거예요.
사랑을 경험해야 돼요.
▲아, 저는요. 축복 중에 하나가, 처음 주님을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났을 때,
사랑의 주님을 만났어요. 어디에서요? 십자가에서.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그 속에서 하나님의 그 사랑이 뭉클하게 그 소년의 가슴을 적셨어요.
사랑, 사랑에 눈을 떤 거예요. ‘아, 이런 사랑이 있었구나..’ 와, 뒤집어졌어요.
그때 저는 완전히 뒤집어졌어요.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사랑을 갈망하게 돼요.
갈망하는 마음을 표현한 게 ‘입 맞춰달라’는 거예요.
사랑을 갈망하는 요구는 나쁜 거 아니에요.
부부간의 에로스, 그 에로스는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선한 거예요.
그러니까 에로스가 왜곡되고 타락할 위험성은 있어요. 자기중심적으로.
그러나 그 에로스가 있어야 사랑이 가능해요. 입맞춤은 다소 도발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감정적 표현이 아니라, 깊은 소통을 원하는 것입니다.
입맞춤이란 의무적 행동이 아니라, 갈망의 표현입니다.
입맞춤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 안에서만 일어납니다. 입맞춤은 억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내면에 숨어있는 욕구를 보여줍니다.
사랑은 갈망하게 합니다. 그 갈망은 매우 강렬한 것입니다.
여러분, 갈망하지 않는다면 사랑하고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내게 입맞추라’는 말은,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여인은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압니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깊은 갈망, ‘내게 입을 맞춰주세요.’
사랑의 관계는 친밀함을 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부부간에도 토닥토닥, 신혼에 토닥토닥, 그죠?
막 투정이 있고 하는 거는 뭐예요? 나를 사랑해달라는 얘기예요.
더 좀 깊이 친밀하게 사랑해달라는 갈망이, 투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수많은 요구들로 나타나기도 해요.
여러분, 입맞춤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평화, 때로는 존경, 때로는 화해,
발에다 입을 맞추는 하인의 입맞춤이 있고, 친구들의 뺨에 입을 맞추는 입맞춤이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는 입맞춤은 사랑의 표현이예요. 그것은 결합, 연합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뺨에나 이마나 할 수는 있지만, 입을 맞추지는 않습니다.
특별한 관계에서만 허락 됩니다.
이 입맞춤의 정점은 결혼관계 안에서 일어납니다.
복음은 우리가 주님께 입맞추기보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신 이야기에요.
이게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입맞춤은 1대1로 하는 겁니다. 여러 명과 동시에 입맞춤하지 않습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개인적인 관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개인적으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개인적으로 받았습니다. 단체로 부르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불러내시고 1대1의 인격적 관계로 부르십니다.
익명의 그룹 단위로 부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입맞춤이에요.
여러분, 주님을 향한 갈망이 있습니까? 사랑할수록 사랑은 더 갈망하게 만듭니다.
주님을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요.
여러분,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갈망이 있어요.
그분에 대한 갈망, 사랑하는 관계는 갈망이 일어나게 돼 있어요.
더 가까이 가고 싶어지고, 더 친밀해지고 싶어져요.
그런데 이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가로막는 게 있어요. 그게 바로 죄예요.
죄가 끼어드는 순간,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식어버려요.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식어있다면, 이유가 무엇일까요? 죄가 끼어든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여러분 인간의 마음은, 자기가 갈망하는 것을 향해 있어요.
그리고 그 갈망하는 것을 향해 자기도 모르게 나아가고 있어요.
반드시 그 갈망을 추구하게 돼 있어요.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1:2b
여기서 ‘낫다’는 것은, ‘더 즐거운’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즐거움과 기쁨을 상징합니다. 포도주보다 더 나은 사랑이라는 거죠.
잔치를 할 때 포도주가 반드시 있습니다. 포도주로 인해 잔치는 풍성해지죠.
포도주를 마심으로 인해, 서로의 관계를 열어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쁨이 넘치고, 흥분 상태가 됩니다. 가로막고 있는 담을 허물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포도주는 일시적인 것이죠. 포도주에 취해 있을 동안만 유지되는 즐거움,
근데 여기 참된 사랑은 ‘그 포도주보다 낫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4:7에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다른 어떤 즐거움보다 더 낫다는 겁니다.
그 사랑은 일시적인 만족이 아니고, 지속적이다...
여러분, 세상은 감정적 사랑을 찾죠. 그리고 일시적인 만족에 쉽게 빠져듭니다.
그리고 금방 실망하고, 금방 허무에 빠집니다.
육체적 사랑의 만족은 너무 짧고, 목이 곧 마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깊고도 안전하고도 지속적인 기쁨을 줍니다.
포도주는 감각을 자극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존재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자,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뭘까요?
기쁨이라는 것, 즐거움이라고 하는 것이죠. 이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 대조되는 겁니다.
‘당신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습니다.’ :2
주님과 우리의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즐거움,
이 즐거움이 세상에 어떤 즐거움보다 능가하는 것이어야 된다는 거죠.
주님의 사랑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면, 다른 것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른 기쁨이 다 사라져도, 주님의 사랑은 남는 것이라는 거죠.
중요한 것은 기쁨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안에 주어지는 즐거움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기쁨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극기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무슨 고행이 아닙니다.
천국은 즐거운 나라예요. 즐거운 나라!
신앙생활은 즐거움이에요. 희열이에요. 환희예요. 기쁨이에요. 신앙생활은 즐거운 거예요.
제가 목회를 하는 동안에, 이 원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붙들고 있어요.
교인들을 즐거움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억지로 할 게 하나도 없어요. 특새도 억지로 할 거 없어요.
교구에서 억지로 오라고 푸시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안 돼요. 그러면 안 돼요.
이번 기회에 잃어버렸던 기쁨을, 잃어버렸던 즐거움을 회복하게 되기를 추구합니다.
저는 목회가 너무 즐거워요. 너무 행복해요.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어요.
저는 설교 준비하는 것도 행복하고, 설교하는 것도 행복하고... 행복합니다.
설교를 미리 준비를 해놓고, 여러분들 만날 시간을 기다리는 거예요.
오늘도 일찍 일어나가지고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예배시간이 빨리 되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어서.
그리고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 빨아당기는 것을 보면.. 이거 얼마나 행복해요?
▲1: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향기가 등장합니다. 근동지방은 기후가 더워요. 끈적끈적해요.
먼지가 많아서 향유를 많이 썼어요.
몸을 씻을 때마다 향기로운 기름을 몸에 붓고 문질렀다는 거예요.
부유하고 왕족이나 이런 경우에는 굉장히 비싼 향료를 썼대요.
입맞춤은 촉각이에요. 포도주는 미각이에요. 향유는 후각을 건드려요.
사랑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자극해요.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느껴요. feeling
사랑에는 터치가 있어요. 감각적인 터치가 있어요.
향기는 후각을 자극하여 감각을 건드려요.
사랑하는 이의 향기...
소리도 그렇지요.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뛸 때가 있잖아요. 청각을 건드려요.
사랑하면 감각이 다 깨어나요. 예민해져요.
향수를 맡을 때 누군가를 떠올리는 거잖아요.
그리스도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있단 말이에요.
그분의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향기,
복음서를 묵상하면 그리스도의 향이 확 나요.
그리스도의 삶과 인격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에 그냥 취하게 되어 있어요.
묵상이 딴 게 아니에요. 그 말씀 앞에, 그분의 향기에 젖어드는 거, 그게 묵상이에요.
같이 있으면 그 향이 나에게 배어오는 거예요.
그를 만나고 왔는데, 그 향이 나에게 배어오는 거예요.
10년, 20년 신앙생활한 분을 만나면, 그 향이 나에게 배어오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삶은 탁월합니다. 그 탁월함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는 짙고 매혹적이에요.
그 향기는 온 인류를 끌어당기고도 남아요.
주님의 겸손과 온유함에서 향기가 스며나옵니다.
그 주님의 사랑과 인내와 용서의 향기가 짙게 묻어 나오는 거예요.
그 향기에 취하게 되는 거예요. 그 향기는 붙잡을 수는 없어요.
그러나 향기는 머물러 있고, 남습니다. 그 향기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스윗하다는 거예요.
사랑에 빠지면 후각에 예민해집니다. 상대의 향기에 예민해지고, 그 향기에 이끌립니다.
향기가 나면 그곳으로 따라갑니다. 향기는 은은히 우리의 삶에 스며듭니다.
사랑은 향기처럼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퍼져나갑니다.
강요로 기쁨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의 영역에 강요가 들어가면 안 돼요.
강요가 들어가는 순간, 사랑의 관계는 뒤틀어져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향기 나는 사람이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그냥 향기가 풍겨요.
공동체 안에서 향기 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들은 금방 알아봐요. 향기와 악취는 차이가 나요.
권력욕이나 명예욕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아요. 향기는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예요.
우리 공동체의 마을, 사랑방에서 나는 향기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한가운데서 독특한 향기를 드러내는 삶이예요.
우리의 말과 행동, 말에서 향기가 나요. 행동에서 향기가 나야 돼요.
움직이는 동작에서도 향기가 나야 돼요.
예수의 향기에 젖은 사람은, 예수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게 돼 있습니다.
3절에 보니까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이름이 중요하죠.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개인적이고 친밀함을 말합니다.
아직 이름을 모르거나, 이름을 부르는 관계가 아니라면 친밀할 수가 없습니다.
이름이 중요합니다. 근데 오늘 본문에는 어떤 이름도 언급이 없어요. 왜?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사이에는 이름이 필요 없기 때문에, 오직 그와 그녀만이 존재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너와 나만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천국에는 우리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친밀한 관계로 불러들이시며, 그 이름을 부르십니다.
▲1:4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쉬운성경이 쉽게 풀어서 이렇게 4절을 번역했습니다.
(여인) '나를 빨리 데려가 주세요. 나를 당신의 침실로 데려가 주세요. 오 왕이시여!'
(친구들의 합창) '우리는 당신을 즐거워하고 또 기뻐합니다. 우리는 포도주보다 달콤한
당신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여인) '아가씨들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여기서 ‘우리’가 나오는 것은, 술람미 여인의 친구들의 노래입니다.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뒤에서 받쳐주는 백싱어 back singer 가 있죠.
아가서에는 그들의 노래가 가끔씩 석여 나오죠. 그래서 시의 노래를 더욱 살려주죠.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들이시니’
여기서 ‘이끌다’ 라는 단어를 주목하십시오.
‘이끌다’ 이 표현이 멋있는 단어죠.
여러분 사랑의 힘이 뭘까요? 사랑의 힘이 그거예요. 그냥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거예요.
자석과 같아요.
매력이라는 단어가 그거예요. 매력이라는 단어가 뭐예요. 이끌다, 이끄는 거예요.
몸과 눈과 마음을 사로잡아 빼앗아가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기울게 돼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청년들도 이렇게 같이 모이는데,
뭐 하다가도 계속 사랑하는 사람을 쳐다보게 돼 있어요. 그쪽으로 계속 보게 돼 있어요.
왜? 그가 나를 이끌어가는 거예요. 그게 매력이라는 거예요.
그동안의 사랑의 나눔이 무르익었어요. 그 다음 뭐예요?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같이 만나자는 얘기예요. 너는 나를 인도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당신을 따라가겠다...
그래서 오늘 여기 표현은 ‘이끌어들이시니 달려가리라’ 굉장히 여기에 긴박감이 있어요.
여기에는 뭐가 보여요? 두 사람밖에 없어요. 사랑이 깊어지면 두 사람만 보여요.
두 사람만 같이 있고 싶어져요. 그런 사랑의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만 보였어요.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사랑의 열병을 앓는 거죠. 진짜 저는 이걸 경험했어요.
제가 사춘기 때, 진짜 그 주님의 사랑에 빠지니까요. 이성이 눈에 안 들어와요.
진실이에요. 믿어주세요. 여학생들이 눈에 안 들어왔어요.
한참 오랫동안 장가 못 갈 뻔했어요. 그분과 사랑에 빠졌어요.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사랑에 빠진 거예요.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잠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요.
때로는 교회에서 그냥 살았어요. 하루 종일 예배 드려도 괜찮아요.
아무리 찬송을 불러도 지겹지가 않아요. 1장부터 5백 몇 장까지 다 불러도 좋아요.
주님만 생각하면, 후렴을 100번을 불러도 지겹지가 않아요.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들이시니’
자 여기에서 ‘이끌림’은 어디로 이끌어들이는 거죠?
자 이 이끌림은 어디에서 완성됩니까? 침실에서 완성되는 겁니다.
침실은, 내실은 사적 공간이에요. 사랑을 나누는 공간.
신랑은 강하게 그녀를 이끌어들입니다.
신부의 반응은 ‘나를 이끌어주소서. 나는 당신에게로 달려가겠습니다’ 응답이죠.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신부는 ‘내실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내실은 친밀함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은,
그리스도를 더 알고자 하는 갈망이 커집니다.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영혼들을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습니다.
신앙이란, 그리스도의 매력에 이끌린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리스도는 우리의 존재를 당신에게로 강력히 이끌어 들이셨어요.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사랑으로 이끌어 들이십니다.
호11:4절에 보니까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사랑은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신자들의 갈망은 무엇일까요?
‘주께 가까이, 주께 더 가까이’ 이게 사랑의 속성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더 깊은 갈망으로.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끌어당기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끌어당기실 때, 우리는 달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주시기를 갈망합니다. 신앙의 핵심이 뭘까요?
주를 향한 갈망이 식어지지 않는 것, 그 갈망이 우리의 삶에 기쁨과 활력을 주는 것압나다.
‘왕이 나를 자기 방으로 이끌어들이셨다’
이 여인은 그 연인을 왕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사랑의 시에서는 연인을 그렇게 부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에 빠지면 상대를 왕자라고, 때로는 공주라고 불러요.
사랑에 빠지면 남이 보기는 어떠하든지, 나에게는 그가 왕으로 보여요.
그리고 이 왕의 침실은 가장 깊은 곳, 왕을 깊이 만나는 곳, 바로 지성소.
하나님의 임재로만 가득한 곳,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요.
초대받은 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 왕이 아끼고 사랑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왕과 조금도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들어갈 수 없는 방,
이 방은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의 핵심이에요.
여러분 여기에서 이 밀실, 이 왕이 초대한 이 방은,
오늘 우리의 신앙으로 얘기하면 공개된 예배를 말하지 않아요.
주일 예배나 기도회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과 다른 차원입니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비밀한 시간!
이 영역은 하나님과 나만이 알아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줄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 있어요.
이 시간은 강요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기꺼이 이끌려 들어간 시간과 공간,
예수님은 아버지와 이 시간을 가지셨어요.
이른 아침, 때로는 밤이 맞도록, 홀로, 아버지와 독대하셨어요.
신자는 이 시간에 대한 비밀이 있어야 됩니다.
그 비밀한 공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길은 갈라지는 겁니다.
공개된 공간에서만 주님을 만나고 끝나면, 신앙은 깊이 들어가지 않은 거예요.
주일날 공적 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끝낸다면,
그 관계는 굉장히 얕은 관계예요.
밀실, 여기가 핵심이에요. 깊은 사랑을 나누는 곳, 이곳은 다른 세계에요.
둘만 아는 세계에요. 밀실이 없다면, 아직 둘은 사랑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왕의 방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를 이끌어들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환대를 받고, 즐거운 교제를 나누는 특권을 누려야 합니다.
이 시간,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충분히 누리는 시간,
당신의 그 시간, 그 방안에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시고,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우리를 기도의 세계로 이끌어들이시고, 그 안에서 우리의 영혼은 회복되고,
안식을 넣고, 새로워지고, 사랑은 더 깊어져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무엇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게 핵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원하는가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원하는가요?
물론 하나님이 주신 것도 좋아요. 그러나 주신 것에만 머물러 있다면,
아직 사랑의 관계는 아니에요. 우리는 하나님에게 능력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원합니다. 그러나 응답을 받고 나면, 하나님을 잊어버려요.
여러분 우리의 가장 큰 갈망은, 응답 자체보다 하나님 그분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불순물이 많이 끼어들어요. 사랑의 조건이 너무 많아요.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것도 끼어들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안에 다른 것이 끼어들어선 안 됩니다.
나는 그냥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당신이십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가 주어졌으가 아니라, 그냥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내가 다른 것을 다 빼앗겨도, 난 당신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게 사랑의 태도, 이게 순수한, 정직한 사랑이라는 거예요.
▲4절 하반절에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여기 ‘마땅하니라’는 말은, 주님은 사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어요.
우리가 주님을 찾기 전에, 주님이 먼저 나를 찾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당겨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걸 다 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누구를 사랑하겠느냐는 거죠.
‘사랑하는 게 마땅하니라’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신앙을 한번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확인해야 될 중요한 게 뭘까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열망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봉사는 하고 예배의식에는 참여하는데, 마음은 굳어 있지는 않습니까?
첫사랑을 기억하십니까? 주님과 나만의 시간으로 기뻐했던 순간을 혹시 잊고 있지 않습니까?
성찬식 할 때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십니까? 주님으로 인해 즐거웠던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일을 하는 거예요. 일을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사랑을 위해 일이 존재하는 거예요.
우리는 일을 위해서 일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일을 사랑해요.
주님을 위한 ‘일’에는 얼마든지 시간을 보냈는데, 주님 ‘사랑’을 위한 시간은 없었어요.
우리는 모든 것을 ‘일’로 다 바꿔버렸어요. 그러다가 일에 지치면 갈 곳이 없어요.
어떤 ‘사람은 사랑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니에요. 사랑하면 일은 쉬워져요. 사랑하면 사람이 저절로 변화가 돼요.
사랑을 하면 일이 즐거워져요. 사랑하면 저절로 계명을 지키려고 해요.
사랑을 하면 기쁨이 넘쳐요.
최고의 즐거움 속에서, 주님이 주신 일들을 넉넉히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초대하십니다.
친밀한 사랑, 사랑의 관계,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가끔 어떤 분은 오해해요.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여깁니다.
반대예요.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즐거움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즐거움이 넘쳐요. 그 즐거움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즐거움과 거리가 먼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부르신 게 아니에요.
사랑의 즐거움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시고자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제 3주 동안 그 친밀한 사랑 안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친밀한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친밀한 사랑이 그냥 자동적으로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많은 대가가 필요해요. 그러나 대가를 지불할 만한 거예요.
아무리 우리가 값진 대가를 지불해도, 그 친밀한 사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건 충분한 것입니다. 왜요?
해 아래에서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주님과 사랑하는 그 관계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보다, 더 큰 것은 없기 때문에.
그 행복과 비교할 게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주님은 그 사랑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그 친밀함 안으로 들어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특새 3주 동안 이 아가서를 살펴보는 가운데
친밀한 그 주님의 내실 안으로 들어가는, 깊고 깊은 사랑의 관계 안에 빠져드는,
이 풍성한 은혜,
그리고 잃어버렸던 갈망이 회복되는 역사가 여러분들에게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마 이 아가서가 여러분들의 신앙을 완전히 바꿔놓는
회복의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생명> 찬양을 부릅시다.
........................................
주1) 특새 인삿말
자, 신년 특새 3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3주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참석한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서 한번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이번 3주 동안 우리가 은혜 받는 일에 집중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해마다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한 간증들이 많아요.
3주 동안 은혜 받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한 얘기들이 너무 많은데요.
‘이번 집회가 나를 위한 집회다’ 항상 여러분들 그렇게 생각하시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사모하면서 나오시기를 바라고,
컨디션 조절하시고, 스케줄 조절하시고, 삶의 우선순위를 특새에 맞춰서 참여하시길 권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마귀도 어떻게 해요? 마귀도 특새합니다.
그래서 막 새벽부터 난리고, 밤에도 난리를 치고,
우리가 은혜 받지 못하도록 방해할 거라고요.
뭐 갑자기 안 생기던 일이 생기고... 막 이러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하셔야 특새에 완주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렇대요. 진짜 타이어 펑크 한 번도 안 나는데, 특새에 가려니까
타이어 펑크가 나 있더래요. 새벽에 나오려고 하니까 별 일이 다 생기는데,
여러분들 다 극복하시길 바라고요.
또 지금 온라인으로 들으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으신데, 불가피해서 온라인으로 들으시고
가급적이면 직접 나오셔서 은혜를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특새 기간동안에 여러분의 기도 제목을 여러분들이 스스로 다 정하세요.
그리고 기도 제목을 글로 쓰세요.
머리로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노트 받으셨죠? 거기에 글로 쓰셔야 됩니다.
글로 첫 번째 기도 제목, 두 번째, 세 번째, 열 가지 정도 기본적으로 선명하게 쓰는 거하고,
안 쓰는 거하고 큰 차이가 납니다.
반드시 여러분들이 이번 특새 3주 동안에 ‘내가 이 기도를 위해서 내가 집중하겠다.’
그 특새 기도 제목 중에는, 영적인 기도 제목,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그리고 또 가족과의 관계, 또 뭐 공동체나 여러 가지 기도 제목을 정하시면 됩니다.
서로 좀 격려를 하시면서, 카풀도 하시고, 아너스 드라이버 그것도 신청하셔서,
또 이렇게 서로 나누어가지고 같이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멀리 계시는 분들, 어떤 분들은 아예 이 근처에 임시 숙소를 얻어가지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또 교회에서 주무시는 분들은 또 약간 편의를 제공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이용을 하셔서,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은혜를 받겠다..라는 작정을 하시면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고, 은혜의 길을 열어주시니까,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그렇게 참여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제 이 3주 동안에 특별히 우리는 이제 몸에 다 익어 있기 때문에
이제 벌써 15년째 하는 거기 때문에, 아마 여러분이 다 이제 익숙해져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 아시겠지만, 저녁 시간을 잘 활용하시고,
저녁에 일찍 주무시는 거, 9시 뉴스하기 전에 주무셔야 이게 승산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체력이 견뎌내질 못합니다. 일찍 주무시는 거,
그럴려면 일찍 집에 귀가하시는 거, 그런 것도 아시고, 밤에 일을 벌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