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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장 2026년, 하나님의 터닝포인트

LNCK 2026. 1. 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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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하나님의 터닝포인트 (2026-01-04) Youtube

 

◈2026년, 하나님의 터닝포인트            수1:1~4                   2026-01-04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에 앞서 시 한 편을 읽고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반칠환 시인의 “새해 첫 기적”입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2026년 새해를 맞이한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기적입니다.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새해를 주신 것은,

이 새해 동안에 경험할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믿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가운데, 어떤 분은 황새처럼 날아서, 어떤 분은 말처럼 뛰어서,

어떤 분은 거북이처럼 걸어서, 어떤 분은 달팽이처럼 기어서 새해를 맞이했을수도 있습니다.

 

저마다의 삶의 모습이 다르고, 삶의 속도가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드렸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있어야 할 그 자리로 인도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다시 시작한 새해, 나답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모든 과정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저희는 새해를 맞이해서 한 해 동안, <여호수아서>를 본문으로 하여

주일마다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전체 주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강하고 담대하라”

 

이 사실을 정말 믿는 2026년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여호수아서는 과거의 전쟁 이야기만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영적 전쟁의 비결을 담은 책이 여호수아서입니다.

 

여호수아서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싸워야 할 7개의 부족과, 31명의 왕의 이름들이  주1)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한 해를 살아가면서 마주할

7개의 부족과 31명의 왕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전쟁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형편이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우리는 영적 전쟁의 한 복판 가운데 놓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 해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가 싸워야 할 모든 적들을 피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싸워나가서, 차지해야 될 모든 땅을 차지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무엇보다 2026년도가, 우리 인생 가운데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터닝포인트란, 어떠한 사건, 결단, 깨달음을 기점으로

삶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사람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고, 내적인 가치판단이 달라졌기 때문에,

터닝포인트를 한 번 경험한 사람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청년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임한 예수님을 만난 사건과 같습니다.

사울의 인생 가운데 터닝포인트는, 다메섹 도상이 되는 것이죠.

 

모세가 호렙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장소가 모세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터닝포인트를 경험한 사람은, 절대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 것을 경험했는데, 하나님을 몰랐던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을 만나면, 내 인생가운데 전혀 새로운 단계로 뛰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한 해 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여러분들이 터닝포인트를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수아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성경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책입니다.

-첫 번째, 여호수아서는 성경 문학 장르 상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성경을 열면 창세기, 출애굽기, 래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등장하는데

이 5권의 책을 율법서라고 합니다. 율법을 다루고 있는 책이에요. 문학 장르가 율법입니다.

 

그 다음은 <여호수아>가 등장하는데, <여호수아>는 역사서입니다.

성경의 문학 장르가 율법에서 역사로 넘어가는 터닝포인트가 여호수아서입니다.

 

-또한 여호수아서는 성경의 저자가 바뀝니다.

조금 전에 말했던 그 5권은 저자가 모세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등장하면서 여호수아가 저자로 올라와요.

저자가 바뀌는 터닝포인트가 되는 것이죠.

 

-또한 여호수아서는, 땅의 배경이 바뀌는 터닝포인트입니다.

모세오경의 주요 무대는 애굽과 광야입니다. 여호수아서는 가나안 땅입니다.

이 이후로부터 모든 배경은 가나안 땅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역사의 무대가 바뀌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여호수아서는 리더십의 터닝포인트가 이루어졌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에게서 → 여호수아에게로 리더십이 넘어갑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의미에서 여호수아서는 터닝포인트의 지점인데

우리가 2026년 한 해 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하면 우리가 이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터닝포인트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1. 첫 번째는, 여호와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여호와의 종 되었을 때부터 이루어집니다.

 

수1: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수아세의 첫 출발은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었다’는 말로 시작되어져요. 첫 시작부터 불안합니다.

 

위대한 리더가 죽은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 전체에 큰 충격이었어요.

운동 경기로 따지자면, 광야 40년을 통과한 것은 예선전이었습니다.

광야 40년을 거쳐 오는 동안에, 모세는 훌륭한 팀의 감독이었어요.

또한 탁월한 선수였습니다.

 

‘모세 혼자 다 했다’고 말해도 무방할 만큼, 그는 탁월한 감독이었고, 선수였습니다.

이제 요단강을 눈앞에 앞두고, 본선게임을 치러야 되는데

그 본선을 앞두고, 감독 겸 선수가 죽은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눈에 보시기에도, 남다른 존재였습니다.

여호수아서 바로 앞에는 신명기 34장이 등장하는데, 그때 모세를 다음처럼 말을 합니다.

 

신34: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즉 모세는 그만큼 남다른 존재였어요.

여호수아도 위대했지만, 모세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알던 자’입니다. 유일한 존재입니다.

광야 40년을 겪는 동안 모세가 ‘길’이었어요. 그가 대장군이었고, 그가 제사장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430년간의 애굽의 종살이를 끝낸 리더이자,

40년 동안의 광야를 통과하게 만든 목자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과 율법을 근간으로 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형성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모세의 리더십은 독보적이었어요.

 

광야를 겪는 동안에, 모세와 함께하면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본선 게임을 앞두고, 가나안 땅 초입에서 임종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는 굉장히 두려운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그 두려운 순간에, 누가 가장 두려웠을까요? 여호수아입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모세를 살펴봤던 여호수아,

그는 모세가 누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모세가 감당했어야 할 모든 것을, 자기가 감당해야 되니.. 얼마나 큰 두려움이 있었을까요?

 

더군다나 지금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가 무엇이냐면,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순간에 모세는, 40년 전 상황이 주마등처럼 떠올려졌을 것입니다.

40년 전에 똑같은 상황 가운데 있었어요.

 

약속의 땅을 바로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배성은 12명을 뽑아서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여호수아였어요. 돌아왔는데 부정적인 보고를 하는 10명의 정탐꾼의

소리를 들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밤새도록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는 모세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리더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반란을 일으키려 합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다시 광야로 들어가 40년간의 연단의 시간을 갖게 되죠.

 

여러분 그때 리더가 누구였습니까? 모세였어요.

모세가 리더여도 그 일(가나안 차지)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리더여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어요.

모세가 그 순간 리더였을 때, 끌어내려질 뻔했습니다.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어요.

 

40년이 지났습니다. 동일한 상황(가나안 진입 목전)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바뀐 것은 리더밖에 없어요. 여호수아가 그 순간이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사람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겪는 스트레스 가운데 가장 높은 것 중에 하나는 무엇이냐면,

갑자기 중요한 자리에 올라가는 경험이라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큰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저(설교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김은호 목사님의 뒤를 이어서,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두려운 순간의 연속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수아가 맨 첫 번째로 했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무엇이냐면, 모세가 했던 그 일을 계속 수행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호와의 종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읽었던 수1:1 말씀에는 모세와 여호수와를 소개하고 있는데,

소개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1절을 가만히 보면,

모세를 말할 때는 ‘여호와의 종’이라고 말했어요.

 

여기서 종은 ‘에벳’인데, 이 말은 주인에게 전적으로 소유된 소유물을 말합니다.

모세를 말할 때는 한 단어이면 됐어요. ‘여호와의 종, 모세’ servant

그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사람이었어요. 그는 누구보다 충직한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를 소개하는 표현은 무엇입니까?

‘모세의 수종자’

수종자라는 뜻은 ‘봉사하다, 섬기다, 시중들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minister

 

그러니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겼어요.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였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하나님 같은 존재였어요. 자기 이름 역시 모세가 지어준 것입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호세아입니다.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 민13:16

그런데 모세가 그를 여호수아로 불러서,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와 여호수아의 결정적인 차이였어요.

약속의 땅을 바로 앞에 두고, 여호수아가 했어야 할 첫번째 과업은 무엇이냐면,

모세의 수종자에서 → 여호와의 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모세를 사이에 두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그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

그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는 작업이, 그에게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는 무엇이냐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을 상징합니다. *중재자

그가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고, 그가 있어야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껴지는

그 어떤 것, 그 모든 것이 모세가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그 돈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채우신다’는 안정감을 누리고 있다면,

그 돈이 내겐 ‘모세’가 되는 것이죠.

 

내 안에 어느 정도 건강이 있어야, 그 건강한 상태 가운데

‘내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 라고 느낀다면,

그 건강이 내 인생 가운데 ‘모세’가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녀가.. 때로는 노후 대책이.. 우리 인생 가운데 ‘모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그 모세의 수종자가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지금 여호수아에게 이것을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호칭을 통하여 너의 정체성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기 위하여

첫 번째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이냐면, 내가 직접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구의 수종자가 아니라요. 즉 사람의 종이 아니라요.

 

모세는 위대한 리더였지만,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이 위대했을 뿐입니다.

 

내가 의지하고 있었던 그 모든 것 내려놓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도, 그 자체만으로 안정감을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종이 되면 우리 인생의 모든 걱정이 사라져요.

주인이 걱정하지, 종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걱정도요,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

종이 무슨 걱정을 합니까? 걱정은 주인이 하는 거예요. 종은 뭐합니까? 순종하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봐야 아무 답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그 말씀이 우리 인생의 대안이 되는 줄 믿습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이 현장 가운데 ‘모세’를 내려놓았어요. 그리고 여호와를 붙잡습니다.

그의 정체성이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순간이, 그의 인생가운데 터닝포인트가 되었어요.

 

▲그가 모세를 내려놓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경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수24: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여호수아서 마지막 장에, 여호수아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때 여호수아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어요?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

 

1:1절에서는 모세의 수종자로 등장했는데,

그가 죽을 때는 여호와의 종으로 죽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새해를 시작하면서,

아직도 누군가의 수종자로 인생을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예배를 터닝포인트 삼아, 우리 인생이 올 한 해가 끝나는 마지막 그 시점에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한 해를 끝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정체성이 바뀌어야 인생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올해를 터닝포인트로 만들 수 있을까요?

사명을 붙잡아야 합니다.

사명을 붙잡을 때 우리 인생까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게 됩니다.

 

수1:1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성경은 1절과 2절에서 ‘모세가 죽었다’는 말을 두 번 반복합니다.

그만큼 모세의 죽음은 중대한 사건이었어요.

모세는 좋은 리더였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이, 하나님의 계획의 수정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의 죽음이 하나님의 역사役事의 차질을 의미하지 않아요.

그는 좋은 리더였지만, 그를 사용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분은 여전히 살아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명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줄 믿습니다.

 

모세를 사용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여호수아가 붙잡으면 동일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죠.

사명의 바턴 터치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너는 일어나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동일한 비전을 여호수아에게 주십니다.

그 사명을 붙잡는 순간, 여호수아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향해 가지신 계획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붙잡았을 때, 내 인생 가운데 진정한 터닝포인트를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은 누구하고도 일하실 수 있어요.

다만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을 붙잡지 않은 사람하고는 일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누구하고도 일하실 수 있지만, 그 사명의 문을 열어두셨는데,

그 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사람하고는 일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붙잡으십시오.

그 사명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면, 매일 주일 강단에서 선포되는 그 말씀을 붙잡으세요.

그 말씀 붙잡고, 한 주 단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이끄시기를 원하는 그 장소에. 도착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핑계대기를 멈추십시오. 내 자격과 환경과 배경과 능력을 말하지 마세요.

 

우리를 창조하신 그 분께서,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 분이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은 내 인생 가운데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말씀인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 사명을 붙잡으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지만,

그 사명을 내려놓으면, 내 인생은 다시 유턴합니다.

 

출애굽 1세대는 40년 전에 지금과 동일한 장소(광야)에서, 동일한 비전의 말씀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사명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민13:32~33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들은 약속의 땅을 악평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을 삼키는 땅’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땅이었어요. 너무 좋으니까, 본인들이 갖기에 부담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메뚜기 같았을 것이다’

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땅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이, 내면이 무너졌기 때문에

내면이 무너진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면 의심하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그 땅 앞에서 주저앉은 것입니다.

 

사명이 주어졌는데, 한 발만 내디디면 그 땅은 내 땅인데,

그 사명을 거부하자 어떻게 됩니까? 유턴하게 됩니다. 다시 광야로 돌아가요.

광야로 돌아간 그들의 인생은 끔찍했습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인생을, 무려 40년간 살아갑니다.

 

그 광야의 모래바람 속에 묻혀, 출애굽 1세대가 전부 다 죽게 되었어요.

40년이 지났습니다. 출애급 2세대가 동일한 사명 앞에 서 있어요.

다시 찾아온 그들의 인생의 터닝포인트!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맞을까요?

 

그 사명을 붙잡아, 터닝포인트로 삼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그 사명을 거부하여, 다시 한번 인생을 유턴해야겠습니까?

 

△다시 찾아온 새해, 2026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새해는 수1장과 같은 상황으로 볼 수 있죠

과거와 다른,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할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금년 해를, 내 인생을 뒤집어 놓을, 변화시킬 터닝포인트로 만들 수가 있을까요?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사명을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인생은, 과거와는 남다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지난 주간에 한 글을 읽게 되었어요.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교사가 용병을 이긴다”

저는 처음에, 어떤 선교 대회에서 나온 설교 제목인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이 말을 누가 했냐면,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인 오픈 AI, 챗GPT를 만든

OpenAI CEO인 샘 알트만이, 자신의 전 직원에게 메일로 보낸 제목이 이것입니다.

“선교사가 용병을 이긴다”

 

우리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냐면, 값비싼 용병이 아니라

선교사의 마인드로 이 기업에 대한, 시대에 대한,

사명감이 있는 그 사람을 원한다.

사명감이 있는 그 사람이 용병을 이긴다」는 말입니다. 너무 멋진 말이지 않아요?

 

일반 기업에서도, 사명감을 지니고 있는, 그 선교사 마인드가 있는 사람들을 원한다는 거에요.

한번 따라해 보시겠습니까?

‘선교사가 용병을 이긴다. 돈 받고 일하는 용병이 되지 말고,

사명감으로 일하는 선교사가 되자’

 

우리가 정말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선교사 마인드로, 이 땅 가운데 사명을 받은 자답게,

선교사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자기 사명이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명이 있기 때문이에요.

 

▲조니 에릭슨 타다 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Johnny Erickson Tada

 

 

이 여인은 1967년 당시 17살이었을 때, 수영을 굉장히 잘했는데

다이빙을 했는데 수심이 얕았어요. 머리를 강바닥에 부딪혀 목뼈(경추)가 손상되었습니다.

그리고 목 아래로 전부 다 하반신 마비가 되었어요.

17살의 나이에, 그의 미래가 전부 다 날아간 것 같은 상황에 빠진 것이죠.

 

좌절해서 침상에 누워서, 옆에 있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빠, 나를 제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빠는 가구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사랑하는 딸 아이가 전신 마비가 되어서 병상에 누워서 그런 말을 한다면,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이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너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거야. 우리 손으로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단다.

우리가 손으로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란다.

 

조니, 우리는 이 수많은 문제의 이유를 다 알지는 못해.

그러나 나는 믿어.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말이야.

조니,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드시고, 계획 속에서 인도하실 그 주님을 다시 믿지 않겠니?’

 

조니는 그 침상에 누워, 그 자리를 자기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삼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절망 속에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태 속에서라도, 나를 향한 사명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재활치료에 임하게 돼요.

 

그리고 치료를 받던 중에, 붓을 입에 물어서 그림을 그리는 법을 훈련받습니다.

그 이후에 다양한 그림을 그려,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꿈과 소망을 안겨주는 사역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어요.

그 이후에 작가로, 연설자로, 방송진행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냐면,

기적적으로 일어선 이야기가 아니라, 일어나지 못했지만, 주저앉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일어나지 않았지만 주저앉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황새처럼 달려가고, 어떤 사람은 말처럼 뛰어가고,

어떤 사람은 굼뱅이처럼 기어가지만,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조니가 책에서 이런 글을 썼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실 만큼 잔인하지 않으시고

그 고통을 헛되게 두실만큼 무관심하지도 않으시다.

나는 걷게 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과 함께 걷는 법을 배웠다.」

 

사명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외침입니다.

자기 모습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걷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주저앉지 마십시오.

 

◑3. 내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입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1: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주었노니’ 무슨 뜻입니까?

완료형입니다.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소유권을 넘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가서 싸우면, 줄 수도 있는데...’ 이런 거 아니에요.

‘가면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도 아닙니다.

‘이미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해야 될 일이 있어요. 그것은 무엇이냐면, 그 땅에 가서 발로 밟는 거예요.

그 땅이 내 땅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내가 밟는 모든 땅을 나에게 주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땅을 밟아 나가는 것입니다. 밟는 모든 땅이 내 땅입니다.

 

그럼 여러분, 어디까지 가시겠어요?

감히 잘 안 오실 수 있는데, 오늘 예배 끝나고 나가는 동안에,

여러분이 밟는 모든 땅이 여러분의 땅이 된다고 그러면, 여러분 어디까지 가시겠어요?

 

저는 안 멈출 겁니다. 저는 안 멈출 거예요.

밟는 모든 땅이 내 땅인데, 어떻게 멈출 수가 있단 말입니까?

 

물론 여기서 ‘땅’을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땅’,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범위’를 뜻하죠. 오늘날 우리가 가진 부동산의 땅이 넓지 않아도,

그 ‘영향력’은, 온 세계에 미칠 수도 있죠. 그런 의미의 땅입니다.

마5:5절에 온유한 자가 차지하는 ‘땅’도 그런 의미죠. ‘내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의 땅’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해를 주셨어요.

새해를 주셨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새롭게 경험할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상상 그 너머에, 하나님의 더 큰 약속의 축복의 땅들이 있어요.

끝까지 밟아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땅을 약속해 놓으셔도, 우리가 밟지 않으면 우리 땅이 안 돼요.

 

수험생에게 대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학생이 ‘내가 합격할 리가 없는데 동명이인인가? 잘못된 거 아닌가?’

이런 마음 가지고 등록을 안 했어요.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불합격이에요.

 

합격했는데, 믿음을 가지고 등록하고 가면 되는데,

그걸 하지 않으면, 합격했지만 불합격입니다.

 

부모로부터 엄청난 땅을 상속받았어요. 그럼 누구 거에요? 내꺼죠.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의심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요. 등기부를 이전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법적 권리가 나에게 있습니까? 없어져요.

내 땅이지만, 등기 이전을 해야, 그 정도 수고는 해야만, 내 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너의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땅을 너에게 주겠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도장을 찍어야 됩니다. 그 도장이 무엇입니까? 발바닥이에요.

발바닥 도장을 찍으란 말입니다. 가서 싸우란 말입니다.

‘네게 준 네 땅이니까 쟁취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너의 땅이 될 것이다!’

 

여러분, 멈추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진 땅은 더 넓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땅의 경계가 다음과 같아요.

수1: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지도를 보면, 남쪽의 경계는 광야. 북쪽의 경계는 레바논입니다.

동쪽의 경계는 유브라데입니다. 서쪽의 경계는 대해 예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땅은 정말 큽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 땅을 다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저 파란색 경계 안까지만 이스라엘이 획득한 땅이에요.

다윗 때도, 이 모든 땅을 얻지는 못했어요.

왜요? 쉬운 길만 찾아간 거예요.

거친 길을 안 간 거예요. 싸울만한 상대하고만 싸운 것입니다.

 

강해 보이는 적들은 피하고, 도망치고, 주저앉느라.. 그 땅을 발로 찍지(밟지) 못했어요.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경계가 저렇게 넓은데,

우리가 두려움으로 휩쌓여서, 내가 얻을 수 있는 만만한 곳만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끝까지 나아가십시오. 말씀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명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향해 주신 땅의 경계는 훨씬 더 넓게 있는 줄 믿습니다.

 

전쟁은 치르는 거예요. 패배자가 아닌 정복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한계를 정하지 마십시오.

‘한계란, 한 게 없는 사람들이 하는 핑계이다’ 라는 말이 있어요.

 

한계를 탓하지 마시고, 말씀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지지 마세요.

 

육체의 유혹을 막으시고,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전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되는 줄 믿으십니다.

 

그 한 해가 2026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한 해의 마지막에, 먼 훗날에 뒤돌아보았을 때,

‘오늘 이 예배 시간이 내 인생 가운데 터닝포인트였습니다!’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모든 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마음 담아서 ‘주님이 주신 땅으로’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여러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해를 허락하신 이유는

단순히 인생의 날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새해 동안 우리가 경험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그러니 멈추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정복자로 살아가십시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여호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뭔가를 (모세를) 두지 마세요.

 

모세처럼, 여호수아처럼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내 인생의 사명인 줄 믿고

그 말씀에 내 인생을 담는 것입니다.

 

끝까지 나아가십시오. 멈추지 마세요.

환경 따지지 마십시오. 내 자격 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하세요.

위대하신 하나님, 2026년에도 나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 사명 감당케 하여 주시옵소서.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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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여호수아서 12장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정복한 왕들의 목록이 기록되어 있는데,

모세 시대에 요단 동쪽에서 정복한 왕 두 명(아모리 사람의 시혼 왕과 바산 왕 옥)과

여호수아 시대에 요단 서쪽에서 정복한 왕 31명의 이름과 영토가 함께 기록되어

 33명의 왕이 언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