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2]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 (갈5:1) 2025.12.29. 신년기도회 Youtube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 갈5:1 2025.12.29. 신년기도회
오늘부터 이제 3주 동안 기도회로 모입니다.
여러분 시작 때보다 중요한 것은 끝날 때입니다.
항상 이렇게 시작하는데, 끝날 때 보면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3주 지나고 나면.
그럼 우리가 그 믿음의 뚝심이 그래도 3주는 가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함께 3주 동안 한번 기도하면서 끝까지 달려봅시다.
정말 피치 못한 일이 있는 것 아닌 이상, 주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그 기도의 자리와 시간을
지키십시오. 그게 믿음입니다. 주 앞에서 그 시간과 자리를 지키는 게 믿음입니다.
뭐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잖아요. 3개월도 아니고, 3년도 아니고, 3주 동안 기도하자는 건데,
우리가 한마음으로 끝까지 한번 달려봅시다.
갈라디아서 5: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아멘.
2026년도에 살펴보려는 말씀은 갈라디아서입니다.
올해 주시는 말씀은 <새 영, 새 마음, 그리고 자유의 새 날>인데요.
이것이 새언약의 내용이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새 영을 부으시면
우리 안에 새 마음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마음이 달라지고, 마음이 새로워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날을 여시는데, 그 새로운 날의 핵심은 자유예요.
우리를 속박하고 있던 모든 죄, 우리를 속박하고 있던 모든 타락한 육신의 원함들,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풀어 자유케 하십니다. 그래서 자유의 새 날을 여십니다.
이 새 언약을 경험하고 누리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갈라디아서의 배경>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
그리고 <자유>에 대한 말씀을 또 한번 같이 살펴보면서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자유에 대한 책’이라고 알려져 있죠.
또는 ‘믿음에 대한 책’, 그래서 이거 ‘소 로마서’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루터 같은 경우에는 ‘로마서와 더불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책 중에 하나다’
이렇게 불렀던 책이기도 합니다.
구원이 뭔가에 대해서, 로마서와 더불어서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는 책이
갈라디아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근데 로마서는 길잖아요. 근데 갈라디아서는 짧아요.
그래서 더 짧고 간결하게, 구원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로마서가 조금 더 바울이 풀어서 쓴 책이라면,
좀 더 풀어서, 좀 더 신학적이고, 좀 더 학문적으로 이렇게 쓴 책이라면,
갈라디아서는 어떻게 보면, 조금 더 날 것의 느낌이 납니다.
바울의 감정도 막 드러나 있고요. 막 거기에 이제 분노하는 모습도 나오고,
할례를 강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렇게 할례가 좋으면 잘라버려라’ 막 이러고요.
뒤에 가면 굉장히 과격하거든요. 갈5:12
그러니까 이것이 그렇게 걸러지지 않은..
어떻게 보면 바울의 감정과, 또 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그런 개인적인 사랑이
드러나 있는 그런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배경부터 살펴볼 텐데요.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1차선교여행 때 개척한 교회인데, 이방인 교회입니다.
근데 바울이 이제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잘 세워놓고 떠났더니,
바울이 떠나고 난 후에 문제가 생기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율법주의 크리스찬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긴 한데, 안 믿는 사람은 아니고요.
유대인 중에 예수 믿은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을 때, 3천 명씩 회개하고 돌아왔잖아요.
그래서 예루살렘에 굉장히 큰, 유대인 크리스찬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거기가 이제 당시 기독교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죠.
3천 명, 5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면서, 졸지에 이제 큰 교회가 생기지 않습니까?
그곳에 있는 성도들은 대부분이 누구였겠어요?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유대인이었겠죠.
물론 그 안에도 이방인 성도들이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유대인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어떤 성도들이 있었냐면, 율법주의자들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크리스찬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율법은 지켜야 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는, 그것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전한 복음은 틀렸어, 바울이 전한 복음은 잘못된 거예요’ 하면서
‘크리스찬이 돼서도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돼’ 그러면서 바울을 비난하고,
바울의 가르침이 틀렸다 그러고,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 그러고,
그러면서 바울을 공격하고, 바울의 가르침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 중에서 특히 뭐를 지켜야 된다고 했냐면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강조했어요.
할례를 왜 강조했는가는 뒤에서 좀 설명할 텐데,
이로 인해서 갈라디아 교인들은 율법과 복음 사이에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초대교회 안에는 그 두 부류의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크리스찬과, 이방인 크리스찬.. 이 두 부류가 있었죠.
그래서 유대인 크리스찬들이 주로 있었던 데는, 예루살렘 교회였고
그리고 이방인 크리스찬들의 제일 헤드는 어디였겠어요? 안디옥이죠.
안디옥이 가장 본부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크리스찬은, 베드로와 야고보를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파,
또는 히브리파 크리스찬들이라고 불렸다면,
이방인 크리스찬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중심으로 한 안디옥파
또는 헬라파 크리스찬들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이 바울서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거의 전 생애가
선교여행과 더불어 두 번째로 중요한 싸움이 뭐였냐면,
이 히브리파 크리스찬들하고의 싸움이었어요. 그들이 계속 율법 지켜야 된다고 하니까...
바울이 계속 이렇게 교회를 개척해놓으면, 바울을 좇아와가지고서
‘율법 지켜야 돼, 할례와 절기를 지켜야 돼’ 그러니까 바울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바울서신의 대부분은 뭐냐 하면, 사실은 여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렇겠죠. 물론 바울이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다 썼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그렇진 않았을 거예요. 바울이 제일 많이 시간을 쓴 것은 ‘선교’였겠죠.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바울의 가장 주된 사역이었겠지만,
그렇지만 불신자들한테 편지를 썼을 리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바울이 쓴 편지는, 신자들에게 썼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자들을 향한 바울의 가장 큰 관심, 싸움은 뭐였냐면,
‘그 율법 지키라는 말씀’ 이게 바울을 엄청 스트레스 받게 한 거죠.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럴 거면 잘라버려’
막 이렇게 말씀한 걸 보면, 바울이 얼마나 그것 때문에 분노했는지를 알 수 있죠.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갈5:12)
그래서 바울 서신을 이해하려면, 이 배경을 이해해야 됩니다.
바울 서신의 거의 대부분의 배경은 뭐냐면,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하는
이 율법주의자들과의 논쟁이에요.
‘그게 아니야, 복음은 자유야! 복음은 율법이 아니고 은혜야!
복음은 행함이 아니고 믿음이야!’ 이게 바울서신의 거의 대부분의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서신을 이해하려면, 바울 평생에 걸친 가장 중요한 싸움 중에 하나가
‘히브리파 크리스찬과의 갈등이었다’ 하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서신이죠.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하는 예루살렘에서 온 그 율법교사들에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 사람들이 잘못된 거예요’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갈라디아서입니다.
▲자 그런데 이들은 이제 히브리파 크리스천들이 다 그랬던 건 아니지만
이들 중에 상당수는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믿었는데
특별히 할례를 중요시했습니다. 왜 할례를 중요시했냐면, 그 사람들의 논지는 이랬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신 것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었죠. 이방인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예수께서는 언약의 성취로 오셨어요.
그러니까 예수께서 언약의 성취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는데,
그렇다면 이 언약은 누구에게 성취된 거겠어요?
언약의 대상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었으니까,
‘이 언약의 성취도 당연히 유대인들,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해당되는 성취이지,
언약 밖에 있는 이방인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예수의 복음에 참여하기 위해선, 이방인들이 먼저 언약 안으로 들어와야 된다...
그러면 어떻게 언약 안으로 들어오느냐? 할례를 받아야 된다!’
그러니까 그 당시 할례는 뭐였냐면,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의식이 할례였어요.
그러니까 이방인들도 유대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아 나는 그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 같아. 나도 언약 백성이 되고 싶어!’
그러면 이방인들이 유대교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공식적인 루트가 있었는데,
할례를 통해서 들어와요.
그러니까 할례는 뭐냐면 언약의 표징이었기 때문에
‘나도 그 언약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하는 것으로, 이제 할례를 받는 거예요.
그래서 구약에도 보면 이방인 노예들이 있는데,
그 이방인들이 너희 유대인 안에 들어오려면 할례를 행해라 그러잖아요. 주1)
그래서 이 할례라고 하는 것이 일종의 유대화되는,
조금 더 정확하게는 여호와 언약 안으로 들어오는 그런 개종의식이었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할례를 주장한 거예요.
‘너희가 예수를 통해서 구원 받는 건 맞다. 하지만 그 예수는 언약의 성취로 오신 분이니까
일단 언약 안으로 들어와라. 그리고 나서 예수를 믿어야지 효력이 있다.’
그게 이 사람들의 논지였어요. 들어보면 굉장히 논리적이죠.
그러니까 이방인 성도들이 헷갈린 거예요.
그리고 그 당시에 있었던 성경은 다 구약 성경밖에 없는데, 신약은 만들어지기 전이니까요.
구약 성경 읽어보면 그렇거든요. 들어보니까 맞아요.
‘그러니까 할례를 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어려움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할례를 통해서 유대인으로 개종을 하고 나면,
그리고 예수를 믿으면 그게 이제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일단 유대인이 되었으면,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유대민족에게 주신
어떤 민족의 법 같은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율법도 지켜야 돼’
이게 이제 율법주의자들의 기본적인 논지였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복음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복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 가운데에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는 거예요.
모든 민족 가운데에 미치는..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아무 차별이 없는,
오직 예수 그리스로를 통해서!
할례? 아니야 그런 거 필요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로를 통해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게 되는 거예요!
하는 것이 이제 바울의 주장이고,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 갈라디아서입니다.
자 그래서 복음은 뭐냐 하면 율법이 아니라 은혜며 속박이 아니라
자유라고 하는 것을 이제 바울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바꿔 말씀하면, 율법은 자유가 아니고 속박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갈라디아서를 아주 차근차근 묵상해 나가면
‘아 바울이 말씀하는 게 이거구나’ 하는 굉장히 복음에 대한 엑기스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벌써 지난주, 지지난 주에, ‘시내산, 시온산’ 하면서
벌써 대충 말씀을 드렸는데, 그건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예요.
율법은 우리를 더 속박하고, 더 자유를 빼앗고,
더 두렵게 만들고 하지만,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그게 아니고
자유 가운데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라고 하는 그게 복음인 것을 이제 말씀합니다.
◑자 <자유>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가 있어요. 그게 복음이죠.
타락한 인간이 속고 있는 게 있는데,
타락한 인간은 자기가 이미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미 자유가 있다면, 예수 안에서 자유가 있다는 말은, 좀 넌센스지요.
이미 자유인인데 ‘예수 믿어! 그러면 자유가 주어질 거예요’ 이상한 말씀잖아요.
그러니까 그 말씀은 뭐냐면, 예수 믿기 전에 타락한 인간들은 자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자유가 없다는 뜻이에요. 타락한 인간은, 죄의 종이고 마귀의 종입니다.
롬6:17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롬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 아래에 팔려서 죄의 노예가 됐다는 거예요. 죄의 종!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타락한 인간이, 이 사실을 모른다는 거예요.
왜? 마귀는 거짓의 아비거든요. 마귀는 거짓말하는 존재예요.
그래서 마귀의 제1전략이 뭐냐 하면, ‘인간이 죄의 종, 마귀의 종이라는 사실을 모르도록’
하는 거예요.
여러분, 자기가 종이라는 걸 알고, 노예라는 걸 알면, 이게 계속 반항할 거 아니에요.
계속 반항하고 저항해서, 거기서부터 벗어나려고 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일 좋은 방법이 뭐겠어요? 모르게 하는 거죠.
종인지 모르는데 종이에요. 그게 이제 마귀가 하는 일이라는 거예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러니까 마귀의 제일 중요한 속성은 뭐냐면.. 거짓이에요.
그런데 거짓을 제 것처럼 말한대요.
그러니까 거짓인데, 진짜인 것처럼 믿고 있는데, 사실은 거짓이라는 거예요.
이게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들은 종인데, 진짜 자유인인 것처럼 느낀다는 거예요.
사실은 자유가 없는데, 진짜 자유인인 것처럼 느낀다는 거예요.
이 거짓의 결과, 인간은 죄의 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기가 자유인이라고 속으면서 살아갑니다.
가끔씩 답답하기는 해요. 가끔씩 답답하고, 뭔가 속박을 느끼기는 한데
그럴 때마다 ‘에휴, 인생이 원래 그런 거지 뭐’ 이렇게 자조하면서 넘어갑니다.
율법의 역할은 뭐냐면, 이것을 깨우쳐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율법은 하나님이 왜 주셨냐면, ‘너희가 자유가 없는 존재야.
너희는 어떤 자유가 없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자유가 없어!
죄를 행할 수 있는 자유는 있어, 근데 너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자유는 없어!’
이거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거예요.
성경이 그랬죠.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롬3:20
율법의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는 거예요.
어떻게 깨닫게 하냐 하면 ‘오케이, 네가 진짜 자유가 있다면, 그럼 율법을 한번 지켜봐!’
했더니 안 되거든요.
그럼 아무리 열심히 해봐도 안 되거든요.
그러면서 ‘아 그렇구나.. 내가 사실은 자유가 없었구나’
이걸 깨닫게 하는 게 율법의 역할이라는 거예요. 이게 이제 구약입니다.
▲자 그렇다면, 정말 타락한 인간에겐 자유가 없을까요? 이것부터 한번 살펴봅시다.
자유가 뭐지요? 자유라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그걸 자유라고 그래요.
자유는요, 권리면서 동시에 능력입니다.
자유는 권리면서 동시에 능력, 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자유예요.
예를 들어 봅시다. 영국이나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가면, 왕이 사는 왕궁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곳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죠.
왕궁에 들어갈 자유가 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 생각해보세요.
왕궁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데, 왕궁에 들어갈 자유가 있어요.
이건 두 가지가 동시에 있어야 돼요.
첫째, 왕궁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돼요.
왕족이든지, 아니면 허가증을 받았든지, 초대장이 있든지,
하여간 법적인 권리가 있어야 자유롭게 왕궁에 들어갈 수 있죠. 권리가 없으면 못 들어가죠.
그런데 둘째, 권리가 있어도, 능력이 있어야 들어가요.
무슨 말이냐면, 다리가 부러져서 꼼짝도 못해요.
그러면 아무리 초대장을 받았어도 못 갈 거 아니에요.
또는 초대장을 받아서 권리는 있는데, 내가 지금 한국에 있어서
영국까지 가려면 비행기 표를 사야 되는데, 돈이 없어요. 이러면 못 갈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무리 권리가 있어도, 실질적으로 그 땅을 가서 거기를 밟고 하려면,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 능력이 없으면, 자유를 누릴 수 없어요.
그래서 자유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권리 플러스 능력입니다.
능력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아무리 내가 걸어갈 수 있고,
그 왕궁 앞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제 마음대로 왕궁에 못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권리 +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다면 정말 타락한 인간에게 자유가 있을까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율법은 ‘그렇지 않다’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해보라는 거예요. 누구도 완전히 못 지킨다는 거예요.
지키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있어도 못 지킵니다. 왜? 지킬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롬7:19~20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22~24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다는 거죠. 진심이었다는 거예요.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그 마지막 마지막 결론이 뭐냐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안 되더라는 거예요.
해보니까 안되더라는 거예요.
바울이 진짜 원하는 거는 선을 행하는 거였고요.
바울이 진짜 원하는 거는 율법 다 지키는 거였어요. 그렇죠.
그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잖아요. 바울이 진심으로 그렇게 원했어요.
근데 안 되더라는 거예요. 바울도 안 됐는데, 세상에 누가 이걸 하겠어요?
바울처럼 정말 특심한 열심이 있었던 이 사람이 해도 안 되는데...
우리도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의미냐면,
우리에겐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 특별히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줄 알았지? 한 번 해봐! 안 될 거예요’
이게 율법의 역할이라는 거예요.
‘한 번 다 해봐! 안 되잖아?’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자유가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어도, 행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거예요.
특별히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의 종이에요. 죄를 벗어날 힘이 없으니까.
죄를 벗어나고 싶은데, 안 되니까.
율법의 역할은, 우리가 죄의 종이고 노예일 뿐, 자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거예요.
딱 여기까지가 율법의 역할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뭐예요? 복음의 역할이에요.
복음은 뭐냐 하면, 이렇게 죄로 인해 자유를 뺏긴 인간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하면, 자유를 주신 하나님이세요.
창조주 성부 하나님도 그렇고, 성자 예수님도 그렇고, 성령님도 그렇고
모두 자유를 주신 분이세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선악과죠.
죄로 인해 자유를 뺏겼어요.
예수께서는 그 뺏긴 자유를 되찾아 주세요.
성령께서는 그 자유를 누리게 하세요.
그러니까 삼위 하나님이 다 뭐 하시는 분이시냐면,
자유를 주시고, 뺏겼는데 다시 찾아주시고, 실제로 누리게 하시고...
이게 삼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거예요.
자 어제 1강에서 살펴봤듯이,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세요.
인간 자유의 근원은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이 통제하면 안 돼요. 그 자유는, 사람이 통제하면 안 돼요.
하나님이 주신 거기 때문이에요.
▲자 그런데 불행하게도 죄가 들어오죠. 죄의 치명적인 결과는 자유를 뺏어간다는 거예요.
죄로 인해 인간은 죄의 종이 됩니다. 죄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는 죄의 종, 마귀의 종이 돼요.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마귀는 거짓 아비이기 때문에,
우리가 죄의 종이고, 마귀의 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속입니다.
마치 내가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자유롭게 선택하는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고
믿게 해요. 이 거짓의 결과, 인간은 ‘죄의 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속으며 삽니다.
그런데 삶은 점점 피폐해져가고, 속박은 점점 우리를 옥죄어옵니다. 이게 죄의 결과예요.
이 이야기도 제가 어저께 잠깐 나눴죠. *갈라디아서 1강
그러니까 육체의 탈레마(소원)가 있고, 성령의 탈레마가 있는데
육체의 탈레마를 계속 좇아가면 어떻게 되냐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계속 벗어나는 거예요. 그러면 인생은 계속 망가지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단 말이에요.
복을 주신 건 뭐냐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대로 살면,
그 안에서 복을 누리도록 만드셨어요.
더 인생이 풍부해지고, 풍성해지고, 행복해지고.. 이렇게 만드셨는데, 사람이 자꾸 벗어나요.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자기 삶이 망가지는 거죠. 원래 창조주의 질서에서 계속 벗어나니까.
그래서 이 육체의 탈레마(소원)를 따라 사는 것도, 표면적으로는 자유인 것 같아요.
왜? 내가 원하는 걸 하니까.
그런데 이게 거듭되고 거듭되고 거듭되면, 점점점 인생이 망가지면서
오히려 더 큰 속박이 오게 됩니다.
더 큰 속박이 오게 되기 때문에, 이건 자유에 이르는 길이 아니에요.
자, 여하튼지 간에 죄로 인해서 자유를 뺏깁니다.
예수께서는 이 죄로 인해 뺏겼던 자유를 되찾아 주세요. 이게 복음의 내용이죠.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래서 두 번째는 뭐냐면, 성부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셨는데 뺏겼어요.
그리고 이제 두 번째로 등장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고, 자유를 되찾아 주십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1) 첫 번째 주자는 뭐냐면 율법이에요. 율법이 왜 첫 번째 주자냐 하면
자유가 뺏겼던 사실을 알아야 되니까!
자기가 자유를 뺏겼다는 사실을 모르면, 그럼 회복되기가 어렵죠.
그래서 이걸 깨닫게 하시는 것이 율법이에요.
그래서 이것을 깨닫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아 나는 죄를 벗어날 수가 없구나. 내가 죄인이구나. 내가 자유가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게 회개고, 그게 율법의 역할이에요.
그래서 구약 시대가 어디까지지요? 침례요한까지가 구약이에요.
예수님부터 신약이거든요. 침례요한의 마지막 메시지가 뭐예요? 회개하라잖아요.
율법으로 대표되는 침례요한까지의 그 전체의 큰 주제는 뭐냐면 ‘회개하라’는 거예요.
‘너는 죄 가운데 종이야. 너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해.
네가 죄인이야.’ 그러니까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구원’이라는 건,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걸 알아야, 구원이 의미가 있어요.
그래야 구세주 예수님이 필요하지,
내가 죄인이라는 걸 모르면, 구세주가 필요 자체가 없잖아요.
자, 율법의 역할이 여기까지입니다. ‘네가 자유인이라고? 오케이, 그럼 율법 지켜봐’
근데 해보면 어떻게 돼요? 안 돼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타락한 인간은, 율법을 지킬, 죄를 짓지 않을 자유가 없어요. 그것을 깨달아요.
죄를 짓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지어요. ‘죄의 종’이죠.
이것을 깨닫는 것이 율법의 역할이고,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구약 전체는 율법으로 요약되고,
그 율법의 마지막 결론은 뭐냐 하면, 침례 요한의 메시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그것이 옛시대, 율법의 이야기입니다.
2) 그 다음 두 번째 주자는 이제 은혜예요.
죄를 깨닫는다고 죄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요.
죄를 깨닫는다고 ‘죄의 종’된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몸이 아파가지고서 병원가서 진단합니다.
진단해서 MRI도 찍고, 다 해봤더니 ‘아 병이 뭔 줄 알았어’
그렇다고 병이 치료되는 건 아니죠.
이게 율법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죄의 종으로부터 법적으로 해방돼야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자유의 두 요소가 뭐라고 했죠? 권한과 능력이라고 했죠.
왕궁에 들어갈 권한이 주어져야 되고, 들어갈 능력이 있어야 돼요.
예수께서 하신 일은 뭐냐 하면 <권한>을 주신 거예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뭐냐 하면 <능력>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권한을 주셔서,
‘이제 너희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있어. 더 이상 너희는 죄의 종이 아니야’
‘내가 (예수님이) 마귀에게 죄값을 다 치러줬어. 너희는 더 이상 거기에 매여있지 않아도 돼.
법적으로 자유할 권리가 있어!’ 이게 예수께서 하신 일이고,
그런데 그 자유를 실제로 어떻게 누리느냐?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이해가 되시죠? 그게 이제 자유에 이르는 길이라는 거예요.
▲예수께서는 이제 구속의 일을 행하셨는데, 구속이라는 건 뭐냐면 죄값을 치렀다는 거예요.
노예 주인에게 값을 치르고 노예를 사서, 노예 상태에서 풀어주는 거를
구속 redeem 이라고 그럽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 일을 하셨어요. 마귀에게 우리의 죄값을 다 치르시고,
우리를 사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우리는 마귀의 종이 아니에요.
법적으로는 완전히 자유합니다. 더 이상 묶여있을 이유가 없어요.
그럼 이런 질문 하실 거예요. ‘목사님, 그래도 예수 믿고 나서 죄를 짓잖아요.’
그렇죠. 여러분, 예수 믿고 나서 죄 한 번도 안 짓은 분은 아무도 없죠.
예수를 믿은 후에도 죄의 유혹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죄의 힘 역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뭐가 자유가 된 겁니까? 이전과 달라진 게 없잖아요.
우리는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없고, 그럼 뭐가 달라진 거죠?
예수 믿기 전에도 우리는, 율법을 아무리 지키려고 해봐도,
하나님의 뜻을 아무리 행하려고 해도 안 됐고, 죄 안 지으려고 해도 안 됐어요.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면 그럼 되냐? 예수 믿고 나서도 안 되잖아요.
예수 믿고 나서도 죄를 안 질려고 하면 안 질 수 있느냐? 안 되거든요.
그럼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거냐는 거예요.
달라진 게 있어요. 뭐가 달라졌는지 아세요? 죄를 지어도 벌을 안 받아요. *영벌을 의미
이게 달라진 거예요. 죄를 안 짓는 게 아니에요. 죄를 지어요.
왜?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건 아직 해결이 안 된 거예요.
죄를 짓는데, 뭐가 달라졌냐 하면,
죄를 지어도 벌을 안 받아요. 왜? 죄의 벌(죄값)을 다 이미 치르셨어요.
(*그런데 이런 혜택이 회개, 회심하고 진정 거듭난 성도에게 적용되지,
지적동의로 예수 믿는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임)
그러니까 내가 지금 지은 죄, 과거에 지은 죄, 미래에 지을 모든 죄까지
예수께서 이미 다 값을 치러버리셔서,
그래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든지 간에, 딱 재판관 앞에 가면 ‘무죄’ 이렇게 나온다는 거예요.
무죄일 리가 없는데요? 제가 죄를 지었는데요. 무죄! 이게 달라진 거예요. *천국 법정
내가 죄를 안 짓도록 달라진 게 아니라, 계속 죄를 짓는데,
심판대 앞에 가면 ‘무죄!’ 이렇게 판결이 나온다는 거예요.
이거를 뭐라 그러는 거예요? 은혜라고 그러는 거예요. 은혜!
그러니까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 건 뭐예요? 율법이에요.
이거로는 죄를 안 지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해결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 우리를 의롭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로 그냥 의롭게 해버리신 거예요.
‘너희가 죄 짓는 거 알아. 앞으로도 질 거 알아. 계속 죄 지을 것도 알아.
그래도 내가 그냥 무죄라고 할 거야!’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생명으로,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그 죄 값을 다 치뤄버리신 거예요. 이것을 구속의 은혜라고 부릅니다.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게 아니에요. 적어도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은 그래요.
그럼에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죄에 따르는 형벌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 은혜로 인해 우리는 자유를 누립니다. 죄 속에서도 자유를 누립니다. 왜?
죄를 짓지만, 정죄함이 없기 때문에,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죄의 모든 형벌을 도말하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에!
이게 복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이걸 믿는 순간 자유가 임하는 거예요. 안 믿으면 할 수 없어요.
이미 옥문을 다 열어놓으셔도, ‘아유 난 안 믿어’ 그러면 그냥 옥 안에 계속 있어야죠.
그런데 ‘옥문을 여셨다’고 하는 것을 믿는 순간, 그냥 옥에서 나오면 되는 거예요.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죄를 지어도 정죄함이 없습니다.
거짓말을 해도 정죄함이 없고, 뭐를 해도 정죄함이 없어요.
백번 지어도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그렇다는 거예요.
왜요? 죄에 따르는 형벌을 예수께서 대신 치르심으로,
우리를 죄의 벌과 상관없는 의인이 되게 하셨어요. 적어도 법적으로는 우리는 의인입니다.
아멘! 어떤 죄를 지어도 여전히 법적인 신분은 의인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폴 워셔 목사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이런 칭의론, 구속론, 구원론은.. ‘삶의 증거’를 통해 확증될 수 있다는 거죠.
이런 복음의 내용들을,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하고, 입술로 아멘 했다고,
즉 ‘지적 동의’ 했다고, 이 구원의 은총이 무조건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진짜 회심하고, 복음으로 진짜 삶이 변화된 사람에게만, 이런 은총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진짜 회심했는지의 여부는, 그의 ‘삶의 변화’를 보고,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는 거죠.
그가 구원받은 여부는, 인간은 확실히 모르고 하나님만 정확히 아시겠지만요.
즉 회개 없이 예수 믿는 사람, 명목상의 신자들, 불신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신자들은
이런 칭의, 대속, 구원의 은총이 주어진다고 착각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값싼 은혜'로 전락해 버릴 위험이 크다는 것이고, 그건 칭의 구원이 아니라는 거죠.
그걸 수 백~수 천 번 반복해서 설교한 것은, 폴 워셔 목사의 공로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아래에 계속 설명이 나옵니다만,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되면,
-죄의 형벌로 부터 자유케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이건 신분의 변화를 의미하죠.
-새 영을 받고, 새 마음이 되어서, 즉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법을 자발적으로 지키며 산다..
그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거죠)
맞아요. 예수께서 구원하신 것은 뭐냐면, 우리의 신분을 바꾸신 거예요.
우리의 신분을 바꾸신 거예요.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서, 내 삶의 패턴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내가 딴 사람이 되지는 않아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대학교 졸업하고 오랫동안 있다가, 드디어 취직을 했어요.
대기업에 취직을 했어요. 그럼 신분이 바뀌었어요. 학생이 아니고 삼성 직원이에요.
그런다고 해서 여러분이 다른 존재가 되는 건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어제까지 하던 일을 하나도 안 하고,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고...
이런 거는 아니잖아요. 그냥 살아왔던 패턴이 있으니까 똑같이 그렇게 삽니다.
하지만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의 행동이 하루아침에 다 바뀌는 건 아니에요.
그것은 시간이 필요해요. 어떤 시간이냐 하면,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그 자유를 하나씩 하나씩 누리는 힘을 받아서 누려가야 돼요.
그건 좀 다른 얘기인데, 예수께서 하신 일은 뭐냐면 신분을 바꾸신 거예요.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종이 아니라 자녀로.
종은 궁궐에 들어갈 권한이 없지만, 왕의 자녀는 들어갈 권한이 있습니다.
자녀에게 주어지는 자유가 있다는 거예요. 아멘.
◑구원받은 성도의 정상적인 삶의 모습 (새 영을 받아서, 새 마음이 된 삶의 모습)
▲자유를 누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첫 번째 주자가 율법이고 죄를 깨닫게 합니다.
두 번째 주자가 뭐라고요? 은혜 은혜로 신분이 바뀌어요.
세 번째 주자가 성령이에요.
그래서 <갈라디아>에서도 보면, 결국 가장 많은 분량을 어디에 배당하고 있냐면,
‘성령님’이세요.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함으로냐,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냐?’ 갈3:2
그러면서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길게 합니다.
왜? 자유를 실제적으로 누리게 하는 것은, 결국 내주하시는 성령님이시거든요.
근데 여러분, 이거(자유를 실제로 누림)는 한꺼번에는 안 돼요.
이게 한꺼번에 된다는 건 뭐냐 하면, 우리의 인생이 망가져야 돼요.
사람이 어저께랑 갑자기 순간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려면,
내 안에 그동안 행했던 모든 것들이, 이렇게 찢어지고 망가지고 막 그런다는 뜻이거든요.
근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세요. 우리 인격을 막 찢으면서 망가뜨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을 그대로 성장하게 하시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성장한다고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에요.
그래야 우리 안에 있는 인격이 그대로 보존되면서, 점점 성숙해 갈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유를 누리게 하시는데, 인스턴트하게, 한순간에 하게 하시지 않으세요.
과정을 거쳐가면서, 내 안에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그것을 하루, 이틀, 10년, 20년 그러면서 점점점 자유를 누리게 해가시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주자는 뭐냐면 성령님이세요.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제 뭐를 하시냐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권한>을 주시고요. *자유는 권한 + 능력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로 자유를 누릴 능력을 주신다는 거예요.
어떻게? 우리 안에 성령께서 새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새 영을 우리 가운데 부으시겠다’ 어떻게? *이게 새언약에서 약속된 거죠. 겔36:26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 우리에게 새 영(성령)을 부으시는데,
그 새 영이 우리 안에 오셔서, 내 마음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우리 안에 새 마음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새 마음이 만들어져서,
그 마음의 소원(탈레마)을 따라 살아갈 때,
내가 자유와 기쁨과 감격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데,
그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옛날에는 마음은 딴데 가 있는데, 억지로 율법적으로
억지로 내 행동을 쳐서 복종시키려고 하고,
그게 안 되면 좌절감, 두려움, 정죄감에 휩쌓여 살았는데,
그런데 예수께서 그 모든 두려움, 좌절감, 정죄감을 다 처리하셨어요.
‘너희가 실패해도 괜찮아. 백번 실패해도 괜찮아.
정죄감은 없어. 내가 이미 다 처리했어!
그러니까 정죄감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지 마,
의무감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지 마, 그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거야!’
그럼 뭘로 섬기는 거예요? 기쁨으로, 열정으로!
그건 어디서부터 와요? 성령님으로부터 옵니다.
‘이제 너희 안에 내가 새 마음을 만들 거야,
너희 안에 안 되고, 실패하는 것에서 오는 정죄감, 두려움, 나는 안 돼 하는 낙심되는 마음,
그걸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거는 이미 내가 다 처리했어.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어, 끝!
그 대신 내가 새 마음을 줄 거야..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
그 마음을 줄 텐데, 새 영을 주면, 너희 안에 새 마음이 만들어질 거야.
그 마음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 그 마음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마음껏 살아봐!
하나님 앞에 마음껏 뛰어봐!’ 이게 복음이라는 거예요. (이게 ’변화된 삶‘이라는 거죠)
예수께서 이걸 선포하시는 거예요.
’너희의 모든 정죄함은 이제 다 끝났어.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1
정죄함 가지고 하지 말고,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 안에서 마음껏 뛰어봐,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여러분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특권입니다. 뭔 짓을 해도 형벌이 없다니까요.
뭔 짓을 해도 형벌이 없다니까요. (그런데 진정 구원받은 자는 뭔 짓을 계속 하지 않죠.
어쩌다가 한 번 실족할 수는 있어도, 그걸 계속해서 지속, 반복적으로 실족하지는 않죠.
왜냐면 새 영의 내주로, 새 마음을 가졌으니까요. 억지로 안 하는게 아니라, 싫어서 안 하죠)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카운트 하시는 게 뭔가를 다시 한번 보세요.
우리 안에 두 마음이 있어요. 성령이 있고, 육신이 있죠.
두 개의 제너레이터, 발전기가 이제 마음(의 소원)을 만들어내죠.
그러면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항상 성령의 제너레이터가 돌아가는 건 아니에요.
육신의 제너레이터가 돌아갈 때가 있어요.
그럼 이것 때문에 이제 실패하고 넘어지고 죄짓고 그러죠.
여러분, 알라하고 여호와 하나님 차이가 뭔지 아세요?
알라는 천칭 저울을 하나 이렇게 딱 가져요.
한쪽 접시에 육신으로 죄 짓는 거 계속 카운트해가지고 이렇게 무게를 재 놓고,
반대쪽 접시에 알라의 뜻대로 행한 거, 선을 행한 거를 또 다 모아서 무게를 달아요.
마지막에 뭘 하냐면, 어느 게 더 무거운 지를 재는 거예요.
그래서 천국과 지옥을 가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두려움이 근본적인 동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 그러시냐면, 육적인 발전기(율법적 동기)에서 만들어내는 거 있잖아요.
이거는 아예 카운트를 안 하시겠다는 거예요.
이거는 하나도 카운트를 안 하시겠다는 거예요. 예수의 보혈로 끝났거든요.
영적인 발전기(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 여기서 만들어지는 거 있잖아요.
이것만 계속 무게를 재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급을 주십니다.
그 새 마음을 좇아서 얼마나 행했는가... 그것만 계속 카운트하시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거는 진짜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아무리 실패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거 카운트 안 할 테니까 넘어지어도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그러나 고의적으로 계속 실패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롬6:1~2
네 물론 우리가 계속 육신을 좇아 살고 있으면요. 현실에서 삶은 좀 힘들 겁니다.
어쩔 수 없어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법칙이, 죄를 지으면 인생이 꼬이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나 새 영, 새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계속 육신을 좇아서 살게 되지는 않고,
반대로 성령을 좇아 의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되어 있어요. 그게 자연스러운 귀결이에요.
그래서 성도에게는 자유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을 쫓아 살아갈 때 계속 우리 안에 이 자유가 더 증가되고 증가되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 같이 일어나서 기도합시다.
혹시라도 여러분 안에 그런 율법의 정죄함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여러분 오늘 예수의 십자가 앞으로 나갑시다.
그 정죄암은 여러분 예수 안에는 없는 거라 그러셨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정죄암이 없다 그랬는데, 롬8:1~2
근데 이 정죄암이 어디서부터 와요? 마귀에서부터 오는 거예요. 속이는 거예요.
마귀가 계속 거짓말하는 거예요.
우리 거짓말로부터 좀 벗어납시다. 거짓말로부터 벗어납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율법의 정죄함이 없어요.
혹시라도 우리 안에 이 정죄함, 그건 율법인데,
율법에 묶인 것이 있다면, 오늘 다 끊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길어서 후략
..................................
주1)
출12:43~49절은 유월절 규례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방인(노예 포함)의 할례에 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출12:44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48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남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