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4ㅣ가녀린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의미(전1:1 - 11) Youtube
◈가녀린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의미 전1:1~11 2026.01.04.
새해가 밝았습니다. 굳은 결심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사람이 새로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새해는 언제나 ‘새로 시작하자’는 말로 가득하지만,
작년의 걱정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몸은 1년만큼 더 무거워지고,
거기에 비해서 지혜도 자라고, 걱정도 줄고, 사람도 성숙해지고 넓어지고.. 그러면 좋겠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다고 느낄 때, 우리는 참 회의감을 느낍니다.
▲오늘부터 <전도서> 강해를 시작합니다.
새해 첫 주일부터 ‘헛되고 헛되다’ 라는 말을 하려니 부담이 되긴 하는데,
이 말은 ‘인생을 비관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아무 의미 없으니, 대충대충 살아!’ 하는 염세주의도 아닙니다.
여러분 전도서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한자로 ‘도를 전한다’는 말이잖아요.
히브리어로는 코헬렛 인데, ‘전도자 preacher’ 라는 말입니다.
본문 1:2절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게 5번이나 ‘헛되다’를 반복했는데,
정말 진짜 인생이 헛되면, 아무런 의미도 없으면, 5번이나 말할까요?
한 번도 말하기 싫어할 거예요. 뭐 입만 아프지 않겠습니까?
전도자, 이 코헬렛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도서 맨 마지막 12장에 보시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12:9~10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전도자는 힘써, 뭔가를 노력한 사람입니다.
전도자, 코헬렛은
-회중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깊이 탐구하고,
-무게를 재듯 검토하며,
-바르게 정돈해서
-듣는 이에게 와닿는 말로 표현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정직하게 기록하는 ‘지혜 교사’입니다.
힘써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다음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전12: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이 들으면 ‘아멘!’ 할 것 같은 말씀입니다.
1:17~18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그러니까 전도서 안에 두 말이 똑같이 나옵니다.
-‘내가 지혜를 얻기 위해서 굉장히 힘써 노력했다’ 라는 말과,
-그렇지만 ‘그 지혜의 한계, 지혜로운 사람이 치러야 될 대가, 고뇌가 있다’는 거죠.
여러분, 진리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있습니다.
진리가 두 개라는 말이 아니고, 하나인데,
우리가 보고 표현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 헛되고 헛된 인생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2
이렇게 한 번만이 아니라 5번이나 말하는 것은,
그냥 한 번 ‘헛되다’ 하고 끝나지 말고, 끝까지 가보라는 거죠. 파고들으라는 거죠.
‘치열하게 생각해 보라’는 초청입니다.
이렇게 전도서는 질문하는 책입니다.
전도서에는 ‘무엇이 유익한가?’ 하는 이런 의문문도 굉장히 자주 나옵니다.
저는 이 5번의 ‘헛되다’라는 말을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인생에 있어서 5번이나 벽에 부딪힌 사람’
‘그냥 살짝 부딪힌게 아니라, 아주 세게 한계에 부딪힌 사람, 그것도 5번이나!’
▲성경에 야곱이라는 사람이 나오죠. 여러분 야곱처럼 치열하게 열심히 산 사람이 없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뒤쳐지지 않으려고, 형의 발 뒤꿈치를 붙잡고
‘내가 먼저 나가야지’ 했잖아요.
그리고 그때 뒤졌던 것, 장자의 명분을 만회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력을 많이 합니다.
마침내 기회를 잡고 성공한 것 같았어요.
근데 그 성공이 자기 인생을 꼬이게 만들어서, 집에 못 살고 외국으로 도망가잖아요.
‘아 이거 아니구나, 장자의 명분을 받았다고 인생이 풀리는 게 아니구나.. 헛되구나’ 알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뭐 합니까? 결혼하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 게 인생의 복이구나..'
그래서 마음에 드는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을 투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꾸린 가정이, 하루도 편한 날이 없어요.
‘이것도 아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 다음에 뭐합니까? ‘돈을 많이 벌어야지’
그래서 정말 열심히 돈을 법니다. 꽤 많이 모았어요. 거부라고 할 만큼.
그런데 고향에 돌아가는 길에 얍복강 가에서 뭐합니까?
‘내 생명이 죽음 앞에 놓여 있구나.. 이것(물질)도 아니구나..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그렇게 인생이 위기와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그 헛됨을 생각하고, 그 인생이 전환이 되죠.
그리고 나서 이 야곱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았는데,
자기의 인생을 어떻게 정리하는가요?
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저는 조금밖에 못 살았습니다. 130년 밖에요.
130년을 살아 보니, 한마디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만난 사람 중에,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이 있잖아요.
다섯 남편을 만났다 그랬습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나름대로 ‘앞으로 행복하게 살겠다’고 기대를 했을 것 아닙니까.
매번 결혼할 때마다 ‘이 사람은 다르겠지.. 행복을 주겠지’
‘아니네, 이 사람도 아니네’ 그러다가 5명이 지나갔어요.
오늘도 물동이를 들고 왔다 갔다 합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진짜 내 남편이라고 할 수 없는 그 사람과 지금 한 지붕 밑에 살면서,
그 사람을 위해서 물을 떠나르면서, 헛되고 헛되다.
내가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하고, 물 떠오고, 밥하고... 누굴 위해서 일 하나?
꼴도 보기 싫은 그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물 떠나르고, 지겹게 밥할 수밖에 없는 내 신세여!’
‘그러다가 남편이 사고 치면, 내가 수습해야 되고
겨우 정신 차릴만 하면, 남편이 또 한눈 팔고,
마음에 안 들면 발길질하고.. 어이구 지겨워...’
그런데도 또 물을 길러 와야 돼요. 밥을 해야 돼요. ‘헛되고 헛되다’를 되뇌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만 예를 들었는데, 사실 대부분 인생들이 다 그렇다는 거죠.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2
◑2.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한 한 평생
1: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아이고 지겨워, 아이고 지겨워...’ 그 말이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어디에서요? 우리 마음 속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10
여러분 깜짝 놀랄 만한 것 같지 않습니까?
평생을 살아보니, 인생이 수고와 슬픔밖에는 별거 없다 라는 거예요.
모세의 일생 가운데, 이집트 대 제국의 왕자로서 산 세월이 40년이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럭셔리하게 살았는데,
‘그때는 좋았어.. 그때는 인생이 진짜 재밌었지, 살려면 그렇게 살아야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 왕자 시절도 포함해서 수고와 슬픔뿐이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전도서>가 솔로몬의 이름으로 전해져 오잖아요.
모세도 마찬가지로 고백했어요, 그는 더 큰 제국의 왕자였어요.
모세가 이집트 제국에서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요?
나오기 싫었는데 사고 쳐서 쫓겨나왔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의 섭리로, 자기 발로 나왔습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위 구절에 보니, 모세가 자기 발로 나왔어요. 당당하게 나왔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만 보면, 모세는 의로운 일을 하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 상주심을 바라보고 달려가니까,
모세의 그 마음이 늘 의로운 일을 하니까, 의미로 가득하고 보람이 가득 찼을 것이다...
라고 우리가 생각하기 쉽지만,
시90편을 읽어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모세조차도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이다’ 그랬습니다.
광야에서 모세의 쓸쓸한 표정,
대단한 일에 쓰임 받으면서도 쓸쓸했던 그 모세의 표정,
이집트의 왕자로서 럭셔리어스하게 살면서도 지겨워했던 그 삶,
솔로몬 왕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3. 대단한 업적, 성취를 이루어도 인생은 허무합니다. 지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가난하니까.. 말단 직원이니까.. 내 인생이 헛된 거지... 지겨운 거지...
내가 돈 좀 모으고, 승진하고, 번듯한 집도 사고, 사업에 성공하면,
주위에 인정받고, '저 사람 유능하다'는 소리 들으면, 인생은 재밌겠지.. 살 만하지... 브라보!’
그게 아니라는 거죠.
여러분 그러니까 전도서가 솔로몬을 등장시키는 거예요.
그만큼 출세해도, 그만큼 부유해져도, 그만큼 큰 권력을 가져도,
그 솔로몬만큼 똑똑하다는 소리 듣고, ‘대단하십니다’하고 인정받아도,
인생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류 역사상 가장 강성한 나라, 로마 제국이 최고조일 때
황제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였습니다. AD 121~180
그가 쓴 <명상록> 읽어보신 분 계시죠? 옛날에 <국어 교과서>에도 소개되었습니다.
그 책을 읽어보면, ‘얼마나 인생에 대해서 회의적인지’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이런 말을 하고 있잖아요.
‘내가 세계적인 제국을 이루었다’
오늘날로 치면 ‘내가 세계적인 기업을 세웠다’ 그래서 뭐? So what?
‘내가 이만큼 부자됐다’ 그래서 뭐?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1:9
뭘 대단한 일을 했다... 그러는데요. 지나고 보면요. 다 바람에 흩어지는 거예요.
칭기즈칸이 최단 기간에 세계를 정복했지만, 순식간에 그의 제국은 무너졌습니다.
그 모든 업적은 바람에 흩어지고 없어져 버렸습니다.
모세와, 솔로몬, 아우렐리스 황제와, 칭기즈칸.. 새로운 것이 무엇이 있는가요?
자크 엘룰은 이런 말을 했어요. ‘칭기즈칸은 칼로 사람을 죽였고,
우리 세대는 원자탄으로 사람을 죽인다’ 뭐가 새로워졌습니까? 본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1:4~8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8
이 말은, 내가 너무 힘겨워서, 힘들어서, 도저히 힘이 딸려서 못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의미로 ‘피곤하다’는 말이 아니라, 인생이 ‘지겹다’는 말이에요.
최근 한 2년 사이에 한국에 갑자기 쇼펜하우어 라는 철학자의 책이 유행인데요.
쇼펜하우어의 인생 철학의 아주 중요한 테마가 그겁니다.
「인생은 이렇게 추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옛날에 그런 시계추가 있었죠
한 쪽에는 뭔가 하면 ‘고통’이 있습니다.
힘들고, 아프고, 눈물 흘리고, 못 살겠다.. 하는 그런 때가 있다는 거예요.
늘 그렇진 않지만, 그런 때가 종종 있죠.
그러다가 추가 반대 쪽으로 옮겨져서 ‘이제 살만하다’ 하는 때가 와요.
근데 살만하다 하면, 인생이 어떤지 아십니까? 그때부터는 지겨워요.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인생은 고통과 지겨움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고통스러워서, 도저히 힘들어서 못 살겠다... 그랬다가,
살만하면 이제는 지겨워서 한 눈 팔고... 그거라는 거예요.」
여러분의 인생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고통에 있습니까? 지겨움에 있습니까?
‘고통의 원인은 결핍이다’ 이렇게들 생각합니다.
돈이 없든지, 건강이 없든지, 사람들의 인정을 못 받든지... 그게 결핍인데,
그 결핍이 채워지면, 그 다음부터는 지겨움이 찾아온다는 거죠.
성경은 비슷한 통찰을 공유하면서도 조금 다릅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1:7 이게 무슨 말이에요?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1:8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 그만큼 끝이 없다는 거죠.
이런 결핍, ‘아직은 모자라요’ 하는 느낌이 끝이 없다는 거예요.
얼마나 채워야 만족한다고 하겠습니까?
▲비슷한 정서를 잘 표현한 분 중에, 한국의 소설가, 원래 신문기자였는데
김훈이라는 분이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밥벌이 먹고 사는 게 얼마나 지겨운지.. 지긋지긋하다’는 거예요.
그 책의 마지막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도저히 밥 먹을 컨디션이 아닐 때가 있잖아요)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이런 책이에요. ‘잡설’이라고 본인이 썼습니다.
글을 쓰다가 이렇게 말해요.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글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죠.)
밑도 끝도 없다. 그러니 이 글에는 결론이 없어서 좋을 것이다.
결론이 있을 수 없는 글이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그 이상의 뭐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겠죠?)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이 분 김훈의 대표작이 <칼의 노래>라는 책인데,
거기 나오는 ‘이순신은 실존한 그대로는 아니고 자기가 만든 사람이에요.
희망 없이도 잘 사는 인간이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려본 것이다’라는 거예요. 이순신이라는 페르소나를 빌려서 그려본 거예요.
「희망이나 전망이 없이도 살아야 되는 게 삶이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희망을 전제하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나는 희망 없이도 역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헛된 희망이, 인간을 타락시킨다.
인간은 헛된 희망 때문에 무지몽매해 진다.
결정적으로 인간이 무지몽매 해지는 것은 어설픈 희망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헛된 희망, 어설픈 희망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인생이 헛되다는 거죠
◑4. 전도서에서 ‘헛되다’는 말의 의미
여러분, 성경이 진정한 희망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견고한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견고한 희망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헛된 희망을 버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질문하는 거예요. ‘인생에 뭐가 의미가 있는가?’
전도서가 말하는 ‘헛되다’라는 단어는, 사실 이게 번역하기 굉장히 힘든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로 헤벨 인데, 이게 ‘헛되다. 아무 의미가 없다. nothing’ 이라기 보다는,
‘입김, 안개, 숨결’ 이란 뜻입니다.
안개가 눈에 보입니까? 입김이 눈에 보입니까? 잠시 보이는데, 손에 잡을 수가 없어요.
너무 가벼워요. 그리고 있었는데 금방 사라져버리잖아요.
잡히지 않음, 설명불가능함, 이것이다 라고 공식으로 만들어낼 수가 없는 거예요.
인생의 의미, 인생의 행복... 사람이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인생은 부조리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인생에 목표가 있었어요?
이것을 목표로 달려왔는데, 막상 달성하고, 손에 쥐고나서 보니까 별것 아니다...
그게 헤벨(헛되다) 이에요.
우리가 거기에 너무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까,
인생이 무거워지고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목표.. 이게 내 인생에 전부 다인 줄 알았는데,
막상 죽음의 문턱에서 보니까, 얍복강 가에서 보니까,
인생의 결정적인 위기를 만나서 다시 돌이켜보니까,
‘그만큼 대단히 중요한 것은 아니었네’ 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내 인생에 어떤 목적을 정해놓고 부여했던 그 의미들이
사실은 아주 가벼운 조그만 연기처럼 흩어지는
금방 있다가도 없어져버리는 헤벨 임을 깨닫고.. 그 수준으로 만족해야,
그때부터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헛되다는 말은,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붙잡을 수 없고, 내 공식, 나의 성공, 행복, 방정식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식합니다.
그래서 정직한 탄식은, 과도한 의미 부여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게 뭡니까? 교회 안에서 억지로 괜찮은 척, 거룩한 척,
아무 질문이 없는 것처럼, 인생에 회의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 그게 신앙이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을, 전도서는 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3000년 전에 쓴 이 책이,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요?
‘당신들이 의미라고 생각하고 고집하고 살았던 그거 다 해체되어야 된다’ 라고 하는
이 시대의 고민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김훈 참조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에 딱 맞는, 21세기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성경이 이 전도서예요.
2016년에 이런 책이 나왔습니다. <노오력의 배신>
제가 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마는..
책 내용이 과도할 만큼, 걱정스러울 만큼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온 배경, 이 문제의식은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전도서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옛날 세대의 성공 공식이 뭐예요?
옛날 세대의 성공 공식은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송대관의 노래
그런데 우리 아버지 때는 그랬지만, 이제는 다르다는 게 젊은이들의 아우성이라는 거예요.
아버지들이 집에서 뭐라 그럽니까?
‘야 인마! 네 아버지는 시골에서 단돈 몇 십만원 들고 여기 와가지고 장사하고 사업해서
너희들 다 키웠어. 집도 샀어’ 맞아요. 근데 그거는 그때고요. 지금은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도 노력해봤어요. 안 돼요.’
‘야 너희들이 충분히 노력 안 해서 그렇지, 더 해봐’
그래서 ‘노오력’이라는 말이 나온 거예요.
'노오력'은 '노력'을 과장한 말로,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의 벽을 넘기 어렵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모순 속에서 청년들이 겪는 무력감과 좌절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헛되고 헛되다’ 이게요. ‘내 뜻대로 안 된다’ 이게요. 오늘날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세도 인생을 다 살아보니, ‘그 년수의 자랑이 수고와 슬픔뿐이라’ 그랬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이 전도서는 나이가 지극히 든 분들이 좀 이해가 되는 성경이지만,
사실은 젊은이들에게 더욱더 필요한 말씀입니다.
젊은 시절에 인생 전체를 조망하며, 어설픈 희망에 매이지 않는 지혜가
오늘날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견고한 희망으로 자라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혹 내가 기울인 노력이 실패하더라도,
생각만큼 이 공식이 안 먹히더라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혹 내 노력이 성공하더라도, 그거는 잠시예요.
인생의 의미가, 거기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전 세대의 고정된 틀의 사고,
‘이게 행복이야, 이게 성공이야, 이 정도는 번듯하게 살아야 돼’ 그걸 넘어서야 된다는 거죠.
거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8:32절을 함께 읽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은,
진리 아닌 것, 진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전부 다 상대적이라는 거예요.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해서 내가 죽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유를 향해 가는 길에,
그 자유를, 그 진리를 제한하는 장애물을 제거하자’ 하는 그 질문, 그 회의가
바로 전도서인 겁니다.
◑5. 인생을 깊이 관조(생각)해 보게 해주는 전도서
재작년에 일본 영화, <Perfect Days, 완벽한 날들>이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영화 선전문구에 보면 ‘당신의 하루는 어떤 기쁨으로 채워져 있나요?’ 이렇게 되어 있죠.
이걸 보면, 뭐 멋진 여행을 가든지, 아주 로맨틱한 데이트를 하든지, 파티를 하든지,
혹은 대단히 중요하고 인정받는 일을 하면서, 빛나는 자리에 있든지...
뭐 그런 것을 장려하는 영화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도쿄에서 주인공이 화장실 청소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전체가 다양한 화장실을 방문해서, 청소하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직접 영화를 보시면 ‘지겨운 영화다’ 하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보지 마세요.
그런데 이 <퍼펙트 데이즈>라는 제목을 곱씹어 보면,
참 깊이가 있고, 아름다운 제목이요, 또한 영화입니다. 한번 보세요.
<전도서>를 쭉 읽으면서, 함께 보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주인공은 그 좁은 방에서 일어나서
열쇠 다 챙겨서 집 앞에 나오면, 자판기가 있어요.
캔 커피 하나 내려서, 트럭을 타고 몰고 이제 청소하러 갑니다.
정성을 다해서 청소해요. 여러분, 세면기나 변기 밑에 보이지 않는 구석 있잖아요.
그걸 아무도 안 보는데, 그걸 닦으려고, 거울을 갖다 놓고 닦아요.
그리고 청소 도구를 시에서 다 지원하는데, 그게 마땅치 않으면,
더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해서, 자기 돈으로 청소 도구를 사서 청소해요.
함께 일하는 동료 젊은이가 보기에,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취미도 있어요. 옛날 카세트 테이프 아시죠?
거기에 있는 옛날 노래 계속 들으면서 다니고요.
퇴근 후에는 헌책방에 들러서 책을 뒤져보고, 책을 사서 방에 와서 혼자 읽고...
그런 영화입니다. 재미없겠죠?
남이 화장실 청소하고, 밤에는 책 보는 영화가 뭐가 재밌겠습니까?
근데 이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았고요.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중간에 보면, 이 주인공이 큰 회사의 중역이었거나,
대단한 집안 배경의 사람일 것 같다는 그런 암시가 잠시 나와요.
무슨 사연으로 이 자리에 와 있는지, 왜 화장실 청소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설명은
전혀 안 나옵니다.
물론 이 삶이 외롭지 않고, 행복하기만 하다는 말은 아니에요.
메시지는요. ‘큰 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 화려한 삶을 사는 거나, 화장실 청소하면서 나름대로 성실히 사는 거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쪽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그런 느낌이 다가와요.
청소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샌드위치 싸온 거하고, 우유 하나 갖다 놓고
벤치에 앉아서 먹습니다. 벤치에 앉아서 점심 먹는 사이에
위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그 사이로 햇살이 쫙 비췹니다.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옛날 사진기, 올림푸스 사진기로 사진도 찍고요.
그렇게 살아가는 <퍼펙트 데이즈, 완벽한 날들>은
‘이런 것이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생각하던 행복한 삶이 좀 다른 모습이지도 않을까?’ 하는 질문을
아주 진지하게 제기하는.. 여운이 오래가는 영화입니다.
행복이란..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데, 여러분, 사람들이 사는 게 다 비슷하잖아요.
큰 차이 없어요.
-어떤 사람은 들꽃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가고, 들꽃을 밟고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겨우 감지하고 들꽃을 흘깃보고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멈추어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빙그레 웃고, 누리고 하는...
그런 들꽃 같은 건지도 모릅니다.
김훈 작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 아팠다.」
▲여러분 세상이 얼마나 더러운 곳인지 모릅니다.
최근에도 신문에 어떤 갑질 이런 이야기 나오는 거 보고요.
저는 ‘그 사람이 참 못 됐다’라기보다는,
여러분 그런 (갑질하는) 말을 듣고 살아야 되잖아요.
우리 동료들이, 우리 자녀들이, 출근해서
그런 정말 치욕적인 말을 견디고 듣고 살아야 되는...
밥벌이를 위해서, 커리어를 위해서...
여러분, 이런 세상이 얼마나 더럽습니까?
그런데 더럽다고 버리기에는요, 외면하기에는요. 너무 아름다운...
가슴 아프도록 아름다운 면들이, 또 이 세상에, 우리 인생에 있다 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 전도서 말씀을 통해서
‘헛되다’라고 시작했던 바로 이 삶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내 삶 안에 하나님이 숨겨놓으신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전도서> 성경은, 우리의 수고와 성취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거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전도서는 쾌락과 소비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시간 가지고, 인생을 만족하며 살아라’ 그럽니다.
다만 그것이 영혼을 대신하지 못하게 합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겸손할 수 있다며.. 참 지혜를 가르칩니다.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고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을 성실히, 진지하게, 집요하게, 끝까지 밀고 갑니다.
질문하는 용기, 끝까지 밀고 가는 끈기,
거기서 자유가 생기는 거예요.
과도한 의미 부여로부터의 자유,
우리가 행복하자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노력했는데,
저축하고 아껴서 이만큼 왔는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노력하고 성공을 위해 뛰는 건 나쁘지 않습니다.
헛되고 헛되기만 하다는 말이 아니라, 가볍다는 거예요.
인생은 잠깐이면 지나가는 안개, 입김과 같다는 겁니다. *허무, 헛됨
잡으려 하면, 손에서 다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전혀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고요. 가볍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작은 것(입김, 연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서
‘이것 아니면 죽는다. 이것이 있어야 내 인생에 행복할 것이다’ 하고
너무 올인하고 살았기 때문에,
우리가 내 행복에만 너무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바로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심각하게 가로막고 있다는
역설적 진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헛되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전도서야말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기쁨을 가져다주는,
우리에게 복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눈에 보이는 것, ‘해 아래에서의 모든 수고가 무엇이 유익하랴?’
‘해 아래 일’(현세)에만 한정되어 있으면,
아무리 성공해도.. 여러분, 허무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땅의 재물을 모으는 것,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이 땅에서의 쾌락, 거기에 모든 것을 걸면... 인생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세가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의 전체 사역을 이끌어가는 키워드가 이겁니다. On Journey(여행 중)
우리는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나그네들입니다.
이 땅이 우리의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그것을 알기에, 하늘 소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이 땅의 소망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이 땅에서의 삶을 하루하루를 온전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On Journey’ 나그네 길임을 아는 인생이
하루하루를 순간순간을 ‘온전히’ 풍성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word play
여러분,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하늘 소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삶도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은혜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부터 3개월 동안 온 교회가 함께 전도서의 말씀을 묵상하는데
이 말씀을 통해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 견고한 소망, 찬 기쁨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진리의 사람, 자유의 사람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