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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6장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LNCK 2026. 1. 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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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1 04 주일예배 말씀 / 6:1-14 /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Youtube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수6:1-14                2026.01.04. 

 

수3장에서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들어왔다고 이제 끝난 게 아닙니다.

발 뻗고 자는 게 아닙니다. 이제부터 그들 앞에는 싸워야 할 전쟁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합니다.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 첫 번째 전쟁이 바로 본문의 여리고성 전투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작년 한 해를 건너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새해가 됐으니 모든 것이 새롭고 평안합니까? 그렇지 않을 겁니다.

우리 앞에도 싸워야 할 전쟁이 있습니다.

 

흔히들 ‘삶은 전쟁이다’라고 말합니다. 삶은 계란이 아니라 삶은 전쟁과 같습니다. 하하하

예배당의 문을 나서는 순간 또 전쟁이 시작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치열한 경쟁, 치열한 싸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학생들은 입시 전쟁을 하고, 청년이 되면 입사 전쟁을 하고,

결혼을 하면 육아 전쟁을 하고, 아이가 크면 집을 사기 위한 분양 전쟁도 있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전쟁과도 같습니다.

 

2026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우리 앞에도 여리고 성과 같은 굳건한 성벽이 딱 버티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데, 어떻게 이길까? 이게 만만치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요단강이 갈라지고 마른 땅처럼 건너는 그 귀한 일을 경험했지만,

이 여리고성 전투는 또 처음입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전쟁은 이제 첫 시작입니다.

첫 시작, 첫 번째 전쟁을 이겨야, 나머지 다른 전쟁도 이길 수 있는데 만만치 않습니다.

 

▲여리고성은, 가나안 땅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강력한 성입니다.

얼마나 강력한 성인지 고증을 거친 복원도를 한번 보실까요?

 

 

보시듯이 여리고성은 두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성과 외성이 있는 거죠.

외성, 바깥쪽 성벽은 약 10~13미터로 높은 성이었습니다.

이 외성을 돌파한다고 해도, 또 안에 있는 내성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외성과 내성 사이에 가파른 경사로가 있습니다.

이 경사로가 한 35~40도 된다고 합니다. 가파른 경사지를 올라야 하는 거죠.

첫 번째 성벽을 뛰어넘고 돌파하는 것도 어려운데,

첫 번째 성벽 넘는다 해도, 두 번째 성벽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까요.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다 죽는 겁니다. 위에서 화살을 쏘고, 돌을 던지고, 창을 던지면

다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창과 칼이 무기의 전부였던 당시에, 이 여리고 성은 사실상 인간의 힘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는 성입니다. 더군다나 본문 1절을 한번 보십시오.

이 여리고 성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출입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마른 땅같이 건넜다는 소식을, 여리고 주민들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문을 듣고 성문을 굳게 잠갔습니다. 빗장을 걸고 딱 닫아놓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틈이 없는 견고한 성인데, 빗장까지 잠그고 있으니, 도저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여리고 성은 난공불략의 요새와도 같았습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이런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을 수 있습니다.

도저히 내 힘과 내 생각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해결할 수 없는 여리고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전쟁 어떻게 승리합니까? 어떻게 이길까요?

그 승리의 비결을 3가지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이 전쟁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전쟁은 바로 <영적 전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전쟁은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 힌트가 바로 7이라는 숫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7이라는 숫자가 계속 반복됩니다.

수6: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7이라는 숫자가 반복됩니다. 일곱 제사장, 일곱 양각나팔, 일곱째 날,

또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이렇게 7이라는 숫자가 반복됩니다.

 

또 6절에 7이라는 숫자가 두 번 반복됩니다.

또 8절에도 7이라는 숫자가 두 번 반복됩니다.

 

여러분 7이라는 숫자는 어떤 숫자입니까?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이자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일곱째 날이죠. 또 안식년이 7년째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안식년이 일곱 번 반복되면, 49년째 안식년이 되고, 그 다음에는 희년으로 지킵니다.

 

그러니까 숫자 7은 완전수이자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이 숫자 7이 반복된다는 것은, 이 전쟁이 그냥 전쟁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인간의 능력과 군사력으로, 칼과 칼 창을 잘 사용해서 승리하는 전쟁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고, 영적인 전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힌트가 또 하나 나오는데요. 이 싸움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3절에 보면 군사가 나옵니다. 군사가 나오기는 하는데, 이 군사의 역할이 뭐냐 하면

제사장을 보호하는 역할입니다.

 

6:4절을 보시면 제사장이 주도적으로 나옵니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또 5절에도 제사장이 나옵니다.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며’

또 6절에도 제사장이 나옵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9절을 보십시오. 무장한 군사들은 어떤 역할이냐면, 제사장들을 앞뒤로 보호하는 역할입니다.

6:9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여리고성 주위를 도는 이스라엘 진영의 배치는 이렇습니다.

메인은 제사장들입니다. 무장한 자들, 군인은 제사장을 앞뒤로 에워싸고 있습니다.

 

한 팀은 양각 나팔을 부는 제사장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팀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 뒤에 있습니다.

제사장들 앞뒤로 군사들이 있습니다.

 

 

가운데 보면 나팔을 부는 제사장이 있고요. 그 뒤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뒤로 군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군사들의 역할이 뭐냐면, 제사장들을 보아하는 역할만 합니다.

한마디로 제사장이 주도하는 전쟁입니다.

 

또 하나,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팔의 종류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쟁할 때 신호로 쓰는 은나팔입니다.

또 하나는 예배 때 불던 양각나팔입니다. *뿔 각, 양뿔로 만든 나팔

 

그런데 제사장들은 어떤 나팔을 불어야 합니까? 양각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전투를 하는데, 예배 때 쓰는 양각나팔을 불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전쟁은, 세상적인 전쟁이 아닙니다. 총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닙니다.

영적인 전쟁, 철저히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칼 하나, 창 하나, 활 하나 사용하지 않았던 전쟁입니다.

제사장이 주도한 전쟁, 그래서 이 전쟁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인생의 전쟁이나 싸움은

영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엡6:12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여러분 우리가 올 한해 인간적으로 갈등하고 반목하고 싸우고 헤쳐나가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삶만이 아니라, 가정의 문제, 또 교회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악한 세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악한 영들이 그 배후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적 전신갑주를 취하여 입어라

즉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그분의 힘으로 싸우라. 깨어 기도하라!고 권면했죠.

이게 에베소서 6장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딤후4:7절에서 순교를 앞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여러분, 바울이 파이터였습니까? UFC 선수였습니까? 아니었죠.

그런데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의 싸움, 이 영적인 싸움을 잘 마쳤다는 뜻입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싸우는 이 믿음의 싸움, 영적인 싸움을 잘 싸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성도의 진정한 승리는, 이 영적인 승리입니다.

끝까지 하나님 편에서 믿음을 지키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는 것,

그것이 바울이 말한 진짜 승리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가만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우리 자녀들, 또 우리 교회, 우리 가정을 가만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영적인 전쟁인데, 이미 이긴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수6: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여러분, 아직 여리고성 전쟁이 벌어지기 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줄 것이니’가 아니라, 뭐라고 하시죠?

넘겨주었으니!’ 놀라운 선언입니다. 완료형, 과거형입니다. 이미 넘겨주었다는 것입니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싸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미 이긴 겁니다.

이 싸움은 여호와의 전쟁, 영적인 전쟁인데, 이미 이긴 싸움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전쟁은 영적인 전쟁이요,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고,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이 구원은 절대 취소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하나님 싫어요’ 하고 도망가도,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붙잡아 주시고, 택한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의 구원도, 예수님을 믿으면 이미 결론이 났습니다.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여러분 세상과의 싸움도,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16:33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이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 보면, 상실을 경험하고, 핍박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믿는 성도는 최종적으로 반드시 승리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이미 예수님의 이김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위협하고 넘어뜨린다 할지라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고후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많은 영적인 전쟁이 있습니다. 교회는 더욱더 치열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교회도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예수님은 마16:1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르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아멘

교회가 환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시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는, 최종적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마귀의 건세를 깨뜨리시고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선언을 참 좋아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정말 교회를 위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할 때, 이 말씀 붙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 문제 때문에 교회가 시험되지 않도록 해주세요. 교회를 붙들어 주시고,

교회가 이 영적인 시험을 이기게 해주세요.’ 이 마16:18절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담대함이 있습니다.

 

‘그렇지, 주님의 교회지. 주님의 교회니,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지.

주님이 지켜주시지..’ 이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 그래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싸움이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전쟁은 이미 이긴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넘겨주실 것이니.. 이렇게 미래 시제가 아니라, 이미 넘겨주신 (완료)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우리는 영적 전쟁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입니다.

‘하나님 편인가, 마귀 편인가?’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인가, 마귀가 좋아할 만한 일인가?’

‘교회를 세우는 일인가, 교회를 허무는 일인가?’ 결국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이긴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싸우면 이기는 전쟁입니다. 순종으로 싸우면, 이기는 전쟁입니다.

그 사실을 두 번째 대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 싸움은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싸움을 어떤 방식으로 하냐면, 3절에 ‘믿음으로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수6: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여러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4절은 더 이상합니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절도 ‘마지막 순간에 나팔을 불고 큰 소리를 질러라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때 올라가라’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여러분, 이게 전쟁의 방식이 맞습니까?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아니 전쟁을 해야 하는데, 성 주위를 돌라니요? 이런 전략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왜 하루에 한 번씩 돌아야 됩니까?

이왕 돌아서 그 성이 무너질 거면, 하루에 여러 번 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근데 하루에 딱 한 번만 돌라고 하십니다. 이 순종이 더 어렵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데 그만 거기까지만 해!’

하나님, 저에게 더 능력이 있는데요. 저에게 더 좋은 복안이 있는데요?’

아니 됐고, 하루에 딱 한 번이다!’ 이게 더 힘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창으로 칼로 돌진하는 게 아니라, 나팔을 불라고 하십니다.

큰 소리를 외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침해 백성들이 순종합니다.

 

13절에 보면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

 

16절을 보면, 그렇게 6일을 지납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돈 거죠.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날에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돌되 일곱 바퀴를 돌고요.

나팔을 불 때 큰 소리로 외치고,

 

수6: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결국 그 성을 점령했습니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리고성 주위를 돌자,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똑같이 따라하면 안됩니다. 우리도 무작정 똑같이 돌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건물을 계약할 때, 그 건물 주위를 돌고 돕니다.

그러면 돈은 좀 부족하지만, 그 건물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도는 분들이 실제로 계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포인트는 도는 게 아닙니다. ‘돌면 무너진다가 아닙니다.

이건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만능 공식이 아닙니다.

오늘 여리고성만 돌아서 무너졌습니다.

앞으로 남은 가나안의 어떤 성들도, 어떤 전쟁도 뱅뱅 돌아서 정복하지 않습니다.

여기 여리고성 딱 한 곳만 돌아서 무너졌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포인트는 돌아라가 아닙니다. 돌면 무너진다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포인트는 순종에 있습니다. 순종할 때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이해되지 않고, 현실을 모르는 말씀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면 진짜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난공불락 같은 여리고 성도, 믿음으로 순종할 때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성을 돌라는 말도 안되는 작전을

하나님이 명령하셨지만 순종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했더니, 정말 성이 무너졌습니다.

 

▲히11:30절에 보면, 이 내용을 신약적으로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7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이게 믿음입니다.

 

영어 성경으로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으로 보면 after 라고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여리고를 돈 다음에’ .. 그 후에입니다.

 

여리고를 다 돌고 난 다음에, 성이 무너졌습니다.

6일 정도 되니까 성벽에 금이 간 게 아닙니다.

‘한 바퀴만 더 돌면 무너지겠구나’ 이런 기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루 돌고, 이틀 돌고, 6일을 돌아도, 아무런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7일째가 되어도 균열 하나 없었습니다. 고함 지르기 직전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금 하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믿음으로 순정했더니, 말씀대로 다 돌았더니

그 후에 약속대로 성이 무너졌습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 여리고성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과, 현실 사이의 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보는 여리고성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 현실 앞에서 우리는 낙심할 수 있습니다. 절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 주님의 뜻이 아니었나? 말씀대로 살아도 안 되는 건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십니다.

 

그래서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시작해서, 올 한해도 하나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순종 못하는 게 아닙니다.

순종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순종 못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해 주십니다. 설교를 통해서 늘 말씀해 주십니다.

그 말씀, 여러분이 한 주간 동안 붙잡고 사셔야 합니다.

‘왜 나에게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해 주셨지? 오늘 나에게 왜 이 말씀을 주셨지?

내가 순종해야 할 부분이 뭐가 있지?’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여러분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랍니다. 또 삶이 좀 변하기를 원합니다.

‘나도 좀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싶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순종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보고 싶고, 순종은 없고...

그러면 여리고 성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뭐 대단한 거 하라는 게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이 명령하신 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말씀대로 한 바퀴 도는 거였습니다.

 

오늘 한 바퀴 돌고, 또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한 바퀴 돌고... 큰 게 아닙니다.

여리고 성을 한 바퀴 다 도는데, 주석을 보니까,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고학 발굴 결과 대략 둘레 600~1000m(약 10,000평), 너비 100m 정도의 이중 성벽)

넉넉히 20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돌았다고 합니다. 1Km면, 빨리 걸으면 20분이면 돼죠.

 

대단한 것 아닙니다. 힘든 것을 하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 한 바퀴 도는 게 전부였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한 주, 한 주 주시는 말씀,

그 말씀들을 하나씩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한 바퀴, 한 바퀴 돌 듯이,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단한 말씀이 아니라, 매주 주시는 말씀 앞에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정말 난공불락과 같은 우리 인생의 여리고 성도 무너질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순종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말씀들은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도 있습니다.

말씀을 딱 들었을 때 ‘그래서는 안 될 이유’들이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는데도 하기 싫은 죄성이 제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일, 해야 할 싸움이 바로 이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를 깨뜨려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실 일도 아니었다.

하나님은 한 순간에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데 7일을 쓰셨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여리고 성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는 여리고가 무너지기를 원하셨다는 겁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불신앙, 교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 불안,

원망하는 마음, 비난하는 마음, 우리 안에 있는 이런 철옹성과 같은 여리고가

무너지기를 원하셨다는 겁니다.

짜 여리고성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한편으로 꽤 설득력 있는 해석 아닙니까!

여러분 올 한해, 우리 앞에 여리고성이 있습니다.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짜 싸워야 할 전쟁은 순종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에 빗대어 말하면 ‘바보야 문제는 순종이야!’

문제는 순종입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가진 무기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여리고 성도 아니라, 진짜 문제는 우리 안에 순종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무기가 아니라 ,순종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남은 모든 가나안 정복 전쟁은

바로 이 순종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이 첫 번째 여리고성 정복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앞에,

여러분을 깨트리는 순종이, 올 한 해 있기를 바랍니다.

대단한 거 아닙니다. 멀리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오늘도, 지금도, 내 귀에 들려주시는 이 말씀 앞에

믿음의 순종, 조용한 순종을 하나씩 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난공불락 같은 우리 인생의 여리고 성도 와르르 무너질 것입니다.

 

여러분, 올 한해 우리 안에 이런 고백이 가득하기 원합니다.

‘목사님, 이 말씀 앞에 순종했더니,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셨어요.

여리고 성과 같은 어려운 문제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어요.’

여러분, 이런 순종의 간증, 올 한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3. 세 번째, 우리 앞에 맞닥뜨린 이 전쟁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침묵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돌 때,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침묵으로 순종하라’입니다.

 

6: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성을 돌 때, 외치지 말고, 음성도 들리게 하지 말고,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는 겁니다.

침묵하라는 명령입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사항은, 다름이 아니라 6일 동안의 침묵이었습니다.

그리고 7일 째도 마지막에 ‘외치라’ 하실 때까지, 아무 말도 하면 안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은 한편으로 보면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실패의 핵심 원인은, 뭐냐면 바로 말이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말을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민14: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같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온 회중이 이 말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이 더 좋았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런 배은망덕한 말을 쏟아냅니다. 이 말을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민14: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결국 32~33절에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이스라엘은 불평하는 말, 원망하는 말 때문에.. 궁극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이 말이 바이러스처럼 전체 회중에게로 쫙 펴져가지고

내 옆에 있는 사람 물들이고, 온 이스라엘 공동체를 물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신신당부를 합니다.

‘너희가 성을 돌 때는 침묵해라.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이 이 명령을 안 하셨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스라엘 공동체는 와해됐을 겁니다. 분명히 돌면서 불평의 말이 또 나왔을 겁니다.

원망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여리고 성을 돌다가 옆에 있는 사람한테 옆구리 쿡 찌르면서

‘이거 어떻게 생각해? 이번 명령은 엉뚱하고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해서 뭐 무너지겠어?’

‘아니 전쟁을 해야 되는데 성을 계속 돌라뇨?’

‘나도 그 얘기하고 싶었어요.’

‘안 되겠다. 여호수아에게 가자. 이건 아니다 라고 건의하자’ 이런 말들이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지파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저쪽 지파도 그렇고, 저쪽 가문도 그렇고,

불평과 원망의 말은, 중원의 불처럼 순식간에 온 회중 가운데로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될까요?

다시 40년 방야생활을 시작하는 겁니다.

여리고 성이 아니라, 그 전에 이스라엘이 말 때문에 와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6일동안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침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말은 전염되고,

말 때문에, 여리고성이 아니라, 먼저 이스라엘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 그러면 침묵하는 동안 뭐 했겠습니까? 기도했을 겁니다.

하고 싶은 말, 해야만 할 것 같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습니다.

그 시간 동안 기도하고, 기다리고, 기도하고, 기다리며 순종했습니다.

그때 여리고성이 무너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순종할 때,

이해가 되지 않고, 설득이 안 되면, 우리 입에서 말이 나갑니다.

부정적인 말, 비난하는 말, 질책하는 말, 원망하는 말, 불평하는 말..

그런 말들이 횡횡하면, 그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구만 좋아할까요? 마귀만 좋아하는 일입니다.

영적인 전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7일째 이 은혜를 경험하려면 침묵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본문 11절 한번 보십시오. 11절에 보면 눈에 띄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자니라’ 라는 표현입니다.

 

6:11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는데, ‘자니라라는 단어가 새롭게 제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밤에 자는 건 당연한 건데, 자니라라는 단어를 기록했을까?‘

 

이미 말씀 드렸듯이, 성을 도는 데는 2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성 둘레가 600미터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은, 진영으로 돌아와서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뭐 했다고요? 돌아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진영 : camp

자는 시간은 철저히 어떤 시간입니까? 침묵의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이 자니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침묵을 강조하는 겁니다.

 

침묵하는 동안 그들은 기도했을 겁니다. 그랬을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교회 공동체가 어떤 일을 결정하고 시행할 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소통의 창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중구난방식으로 여기서 ‘내 생각은요..’ 하고 말하고,

저기서 ‘내 생각은요...’ 하는 말들이 나오고,

저기서 불평하는 소리, 또 여기서 불평하는 소리가 튀어나오면

공동체는 회해되기 십상입니다. 말하는 대신 침묵하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침묵과 기도 앞에서 마귀가 떠는 겁니다.

교회가 시끄러울 때, 교회가 요란할 때.. 세상은 교회를 우습게 여깁니다.

 

그런데 교회가 정말 어려운 일인데, 정말 힘든 일을 만났는데.. 교회가 침묵합니다.

온 교회가 기도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하나 되어 순종합니다. 그럴 때 세상은 ‘역시 교회는 다르더라’

그때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의 악한 영들에게’ 영적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여리고 성과 같이 내 힘으로 안 되는 자녀들, 배우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 그때 여러분 원망하고 불평하는 대신에, 침묵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 사람 붙잡고 씨름해도 소용없다는 거, 우리가 다 알지 않습니까?

괜히 말하면 관계만 더 나빠집니다. 말하는 대신, 침묵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뭐가 됩니까? 됩니다.

여러분, 어리석어 보이고 헛수고처럼 보이지만

기도하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엡6:12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승리를 주십니다.

여러분, 내일부터 신년 새벽 기도회가 시작됩니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건상 안 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기도를 힘입어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하는 대신 침묵하고 기도하며 순종할 때

우리 앞에 있는 여리고성도 무너질 것입니다. 영적인 승리를 경험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