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얻기 위한 세 가지 용기 2026-01-11 Youtube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한 세 가지 용기 수1:5~9 2026-01-11
우리가 지난 주에 살펴보았듯이, 모세의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가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첫 번째 주신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주는 땅으로 들어가라 였습니다.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주신 말씀이 오늘의 본문인데 한 가지를 반복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그 약속의 땅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이후에, 한 가지를 세 번 반복해서 말씀하시는데.
‘강하고 담대하라’ 1:6, 7, 9
하나님은 말씀을 주실 때, 괜히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에게 이 말씀을 주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냐면,
여호수아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가 너무 크게 두려워하니까 하나님께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세 번 반복하시는데,
점점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6절에 ‘강하고 담대하라’
7절에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9절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그만큼 여호수아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호수아는 사자의 심장을 지닌 사람 아니었습니까?
여호수아가 두려워한 적을, 여러분은 본 적이 있습니까?
그는 이전에 한 번도 두려워한 적이 없었습니다.
성경 가운데 여호수아가 가장 먼저 등장한 본문은 전쟁터였습니다.
광야 가운데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싸움꾼 아말렉의 공격을 받습니다. 출17장
이때 오합지졸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가서, 승리한 장군이 여호수아였습니다.
그의 첫 등장의 모습입니다. 그 이후로부터 여호수아는 항상 전쟁의 선봉에 서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40년 전에 여호수아는 이미 가나안 땅을 면밀히 정탐하고
그 땅에 대한 평가를 끝낸 사람이었습니다. 그 땅의 지형을 파악했고, 군사력을 파악했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능히 그 땅을 차지한다’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른 10명의 정탐꾼이 악평하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을 했을 때,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어가면서, 그들에게 이처럼 말을 합니다.
민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러분,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입니다. 정탐 다녀와서 보고 한 말입니다.
‘그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식은 죽 먹기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을 떠났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들을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을, 한 절에 두 번이나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 여호수아는 두려워하고 있어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우리가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예배당에 앉아있지만, 각자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붙잡지 않으면, 그 마음을 우리가 통제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때는 두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두려울 수 있습니다.
지금은 두려운데, 나중에는 두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생각해보면 그때는, 모세가 항상 뒤에 있었습니다.
아말렉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 뒤를 돌아보면 모세가 뒤에서 두 손들어 기도하고 있었죠.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이 보고할 때도, 리더는 모세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었으니,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었고,
40년 전에 이미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 본인이지만 *정탐한 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 순간에는 누구보다 두려워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잘 아셔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연거푸 세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감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선물이지만,
감정을 따라 움직이지 마십시오. 감정은 좋은 선물이지만,
감정은 말씀의 통제를 받아야 할 영역이 되는 것입니다.
타락 이전의 감정은, 사람의 나침반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마음 가는 대로 행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타락 이후에, 사람의 감정이 함께 타락했습니다.
심지어 양심도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양심, 타락한 감정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감정 가는 대로 인생을 옮기면, 어려운 일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그 이후에, 죄를 지은 이후에
마땅히 그 순간에 품어야 할 감정과, 그렇지 않은 감정이 혼용하여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가인이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께 거부당했어요.
그 순간에 가인이 품어야 할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자신의 예배를 돌아보며,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보다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나오도록 마음을 품는 것이 맞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가인은 품지 말아야 할 마음을 품습니다.
동생을 시기하고, 그 마음을 따라 기회를 엿보아서 동생을 죽입니다.
다윗은 충직한 부하 우리아의 아내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았어요.
그 순간에 마땅히 품어야 할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빨리 그 자리를 피하여, 나 대신 목숨 걸고 전장에서 싸움하고 있는
우리아와 그의 가정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품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감정은 음욕을 품습니다. 그 마음을 따라 충직한 부하를 죽입니다.
타락한 이후의 감정은, 더 이상 우리 인생 가운데 나침반과 지도가 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은 좋은 것이지만,
‘통제받은 감정’이야말로 나에게 선하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아니다. 그 감정이 아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네가 40년 전에 품었던 그 마음이 맞는 마음이다. 그러니 강하고 담대하라!’
여러분, 우리 안에 지금도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올라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마음과 생각이, 지금 이 순간에 품어야 할 생각과 마음일까요? 분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생각과 마음을 통제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각 사용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저자는 인간의 생각과 마음의 상호작용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말합니다.
「코끼리 위에 탄 기수를 상상해보라고 말을 해요.
코끼리 위에 탄 기수는, 의식적인 생각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생각을 따라 코끼리를 움직이게 하려고 하는 것이죠.
거대한 코끼리는 무의식적인 감정을 상징합니다.
훈련받은 코끼리는 기수에 따라서 움직일 것입니다.
하지만 훈련받지 못한 코끼리는, 기수가 아무리 싸인을 줘도,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죠.
훈련받은 감정은 그 사람의 통제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훈련되지 못한 감정은, 그 사람의 인생을 주도해 버립니다.
그리고 통제받지 못한 감정을 따라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은,
마치 훈련받지 못한 코끼리처럼, 그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안에 마구잡이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다 따르지 말고,
그 감정을 말씀을 따라 분별하여 움직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감정이, 말씀의 통제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감정은 안전합니다.
감정은 불과 같습니다. 그 불이 화로 속에 있을 때, 따뜻한 불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때는 따뜻하고 도움을 주지만, 화로 밖에 있는 불은, 집안 전체를 태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감정은 좋은 것이지만, 그 감정이 말씀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면
우리 인생 전체를 태울 수도 있다 라는 말입니다. *감정, 감성, 감수성 다 비슷한 말
그러니 여러분, 말씀 안에서 감정을 다스리십시오.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감정이 우리의 생각을 주도하고, 감정이 우리 인생을 주도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통제되지 않은 코끼리'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기를 원하시는 사람은, 두려움을 못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 가운데 있지만, 말씀을 붙잡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쓰임 받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이전에,
여호수아의 불안한 마음을 먼저 점령하기를 원하셨어요.
그의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2026년 새해를 살아갈 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새해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약속하신 그 모든 땅을 밟아 나갈 수가 있을까요?
감정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내면을 점령하고 말씀으로 다스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그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마땅히 품어야 할 용기 세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아닌 용기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할 용기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나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1. 사명을 감당하는 용기
수1: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 “내가 주리라 한 땅을 차지하게 하겠다”
즉 사명을 주시면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면,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길 원한다면, 강하고 담대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명은, 현재 그 사람의 능력보다 더 큰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능력에 맞는 사명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능력보다 큰 사명을 주신 이후에,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은 나중에 주십니다.
그 사이까지 우리의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붙잡아야만,
흔들림 없이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불안감을 아세요.
우리 안의 내면이,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하고 염려가 많으신 줄 아십니다.
그분이 감정을 주셨기 때문에, 누구보다 우리 감정을 잘 알고 계세요.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의 감정을 무시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그것보다 선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그 용기있는 마음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것 한 가지밖에 없었어요.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이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거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내가 너에게 가나안한 땅을 줄 것인데, 그 전쟁을 이길 수 있을 만한 식량과 무기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 그 땅을 이길 전략은 무엇인지.. 너의 생각은 무엇이냐?’
이런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어요. 단 한 가지만 요구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하는 용기입니다.
‘내가 할 건데, 내 옆에 붙어있어라!
내가 할 거니까 강하고 담대하게 내 옆에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이후에 살펴보겠지만 가나안 땅의 모든 전쟁은 그와 같았습니다.
요단강을 멈추고 건너갔을 때, 여호수아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강하고 담대하여, 즉 용기를 갖고서 그분의 보폭에 맞춰 요단에 발을 담근 것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 그가 한 것은 무엇입니까?
강하고 담대하여 일곱 바퀴 돈 것밖에 없습니다.
해를 중천에 멈추게 한 다음에, 싸울 때 여호수아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강하고 담대하여 하나님과 함께 전장가운데 들어간 것밖에 없었어요. 수10:13 아얄론 골짜기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 옆에 서 있었을 때, 가나안 땅은 조금씩 조금씩 밟아나가고
확장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2026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준 모든 일들에 대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감당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그 가정, 일터, 관계, 사역, 모든 것 그 모든 것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두려움이 올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을 묵상하면 두려워요.
환경은 계속해서 변하는데, 그것에 따라 감정도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가운데 평안이 생기게 되는 줄 믿습니다.
△두려움이 올 때, 우리에게는 부를 이름이 있어요.
그 이름 붙잡고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주시기 이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수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거야, 버리지 아니할 거야, 너를 대적할 자가 없어.
내가 네 옆에 있단다. 내 이름 붙잡고 두려움 속으로 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군대를 가면 받는 훈련 가운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레펠 훈련이 있습니다.
인간의 공포심이 가장 많이 든다고 하는 11~15미터 위에 올라가서
몸에 줄을 매달고 뛰어내리는 거예요.
웬만한 강심장도 그 위에 올라가면 사색이 됩니다. 두려운 거죠.
그때 옆에 교관이 있습니다. 교관이 꼭 묻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러면 그 이름 부르고 뛰어내립니다. ‘어머니’ 부르고 뛰어내리는 군인도 있습니다.
두렵지만, 조금 전까지 무서웠지만, 그 이름 부르고 두려움 속으로 뛰어내리는 거예요.
그때 그 이름이 힘을 주고, 능히 감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이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부를 이름이 있어요.
그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 이름의 능력을 믿으세요. 상황을 바꾸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상황 속으로 주의 이름 붙잡고 진군해 들어가십시오.
그러할 때 상황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우리 인생 가운데 펼쳐지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용기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용기입니다.
두려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운 그 순간에 그 예수 이름 붙잡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용기는 <말씀에 대해 순종하는 용기>입니다.
수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두 번째 용기는, 첫 번째 용기보다 더 강한 용기를 요구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말씀을 지킬 때는,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무시하는 이 세상 가운데서, 말씀을 따라 걸어가는 용기는,
정말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께 받아서 여호수아에게 준 (율법의) 말씀이었어요.
그러므로 여호수아 곁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을 전해 주는 모세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지만 말씀은 남아있죠.
여러분 곁에도, 하나님의 마음과 말씀을 전해주는 누군가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토저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 사람의 음성을 들으라!
Listen to the man who listens to God」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 사람의 음성을 들으라!
여러분, 주변 가운데 하나님이 예비하신 올 한 해를 살아가면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게 전해주는 사람
우리 주변까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아는 사람,
세상에서 성공하는 법을 아는 많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 중요한 분들이지만, 내게 정말 중요한 분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 하나님과 깊게 기도로 교제하는 사람,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 그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어서,
그분들과 교제하는 순간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비좁습니다. 험난합니다. 꼬아져 있어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우로나 좌로나 치우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말씀을 가만히 보십시오. 무엇에 대하여 치우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환경에 대하여, 재정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관계에 대해서 치우치지 말라가 아니라
오직 한 가지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하여, 말씀에 대하여 치우치지 말라!
여러분, 환경은 계속 변하지만, 그 변하는 환경 가운데 말씀 붙잡고 치우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에, 약속의 땅을 걷게 되는 줄 믿습니다.
환경을 묵상하면 두려워요. 환경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말씀에 내 시선을 고정해 나가는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중도를 지키라는 말이 아닙니다.
미지근함을 유지하는 말도 아닙니다. 그 ‘치우치지 말라’는 말의 뜻은,
‘외면하다., 돌아서다., 이탈하다., 정도에서 벗어나다’ 라는 의미가 있어요.
즉, 말씀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은,
말씀에서 벗어나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어 우리 영혼이 무감각해지면,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 말씀이 내 영혼 가운데 스며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장난 엔진에 아무리 기름을 넣어봐야, 엔진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죄인에게 말씀을 아무리 쏟아 부어줘도, 말씀을 흡수하지 못합니다.
고장난 수신기에 전파를 아무리 많이 보내도, 전파를 수신하지 못합니다.
말씀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어요.
고장난 브레이크는 차를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말씀에서 벗어나면, 우리 인생을 붙잡아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떠나 좌로 우로나 치우쳐 (죄 짓지) 말라’
그 상태는 우리를 정말 위험에 빠뜨리는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연히 이런 글을 보게 되었어요.
「어떤 젊은이가 외딴 섬에 홀로 사는 수도사를 찾아갑니다.
높은 바위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수도사입니다. 그에게 묻습니다.
‘요즘도 악마와 씨름하시는지요?’
이때 수도사가 이렇게 말을 했대요.
‘나도 늙고, 내 안에 악마도 늙어서 더 이상 씨름하지 않습니다.
대신 요즘에는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이 젊은이가 놀라서 묻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한다고요?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기길 바라나요?’
그때 수도사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니요. 나는 하나님께 지기 위한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지기 위한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며, 말씀을 순종해서 걸어가는 씨름이 되는 겁니다.
지금 내 상황이, 지금 내 형편이, 지금 내 육체가, 지금 내 감정이,
지금 내 재정 상태가... 말씀을 지키기 너무 힘들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아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배하라. 말씀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오직 말씀 위에 서 있기를 축복합니다.
▲3. 세 번째 용기는, <두려움 속에서도 나아갈 용기>입니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8절에서 하나님은, 두려움을 극복할 아주 실제적인 방법 세 가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첫 번째는 ‘그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성경을 계속해서 읽으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라.'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려면, 방법은 무엇일까요? 암기하는 것밖에 없어요.
암기하여 그것을 주야로 묵상, 음미해 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 안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암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말씀이 배이도록, 말씀을 따라 열심히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나의 입에서 말씀이 나가고, 나의 생각에 말씀이 있고,
나의 행동에 말씀이 묻어있으면, 나의 인생은 두려움 가운데서도
능히 강하고 담대한 자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말씀을 주셨을까요?
약속의 땅을 점령해 나가는 전쟁은, 결국 ‘소리 전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소리 전쟁’입니다.
우리 인생 안에 수많은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그 소리들 가운데, 내가 어떤 소리를 붙잡을 것이냐가
약속의 땅에서 치르는 전쟁의 핵심이 된다는 것이죠.
누구든지 자기 사명을 굳게 붙잡고, 약속의 땅에 한 발을 내딛게 되면,
누구든지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사탄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 네가 하겠다고? 모세도 못했어. 너가 모세보다 뛰어나냐?
너는 종 출신이잖아?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나이도 많이 들었는데...’
‘네가 40년 전에 정탐할 때, 거인 아낙 자손들을 보았지?
걔네들 지금 키가 더 컸다. 네가 거인들을 감당할 수 있겠어?’
이런 수많은 소리들이, 사명의 땅에 말씀을 붙잡고 들어가는 순간에
울려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소리에 마음이 붙잡히면 발목이 묶이는 거예요. 결박당해요.
한 발도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 수많은 소리들을 잠재우는 소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소리가 되는 줄 믿습니다. 그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에
사탄의 소리는 들려질 수가 없어요.
그러니 ‘날마다 성경을 읊조려라, 밤낮으로 묵상해라, 그 말씀대로 살아가라’고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에,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십시오.
성경을 계속해서 읽는 것입니다. 우리 손에서 성경을 내려놓지 않는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성경책이, 정말 정말 지저분해지기를 축복합니다.
읽다가 은혜 받아서 줄치다가.. 읽다가 가슴이 뜨거워져 눈물이 뚝뚝 흘러서..
읽다가 기도가 튀어나와 침이 튀기는 바람에.. 성경이 지저분해지는 것입니다.
지저분해지는 것만큼, 그 말씀이 내 영혼을 기경하는 (밭 가는) 거예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암기하십시오. 묵상으로 들어가세요.
여러분, 정말 큐티책을 사십시오.
여러분 3천원밖에 안 되는 그 책 한 권이, 나의 한 달을 붙잡아 줄 겁니다.
그 말씀 앞에 머무세요. 더 오랜 시간 머물러 계십시오.
그 말씀이 우리 인생을 인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아갈 때, 그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보여주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을 뭐라고 부릅니까?
‘걸어다니는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넘어뜨릴 세상의 소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말씀을 읽으시고, 묵상하시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탄은 식욕이 엄청납니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무엇이냐면,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떨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13장을 보면,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립니다.
그 씨앗이 길가에 떨어집니다. 그때 새가 그 씨앗을 보고 와서 먹어치워버립니다.
‘땅’은 성도의 마음이에요.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새’는 악한 자예요.
악한 자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면,
지금 여러분의 영혼 가운데, 지금 여러분의 생각 가운데, 지금 여러분 마음밭 가운데
뿌려지고 있는 그 씨앗을 가장 좋아합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생각 속에, 마음 속에 날아다니며
그 씨앗이 떨어지면 개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 그 말씀을 지켜내십시오 그 말씀을 품어내셔야 됩니다.
AI 시대 가운데 사탄은, 성도를 공략하는 전략을 바꿔버렸습니다.
예전에는 말씀을 못 듣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얼마든지 듣게 만듭니다.
하루종일 말씀을 듣게 만듭니다. 그런데 떨어지는 족족 먹어치워버립니다. *AI로 집중력 저하
이 상태로 1년, 2년, 5년, 10년을 넘어가게 되면.. 우리는 길들여져요.
이런 마음이 생기는 거죠. ‘말씀 들어봐야 별거 없구만’ 하고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말씀은 듣지만, 말씀과 상반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한 해 동안 다이어트 하시되, 제발 말씀 다이어트는 하지 마십시오.
말씀에 대해서 만큼은 포동포동 살이 올라야 됩니다.
눈두덩까지 올라올 정도로 포동포동, 말씀에 대하여 살이 쪄서
사탄이 감히 내 속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씀으로
채워져 나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리차드 윔브란트 Richard Wurmbrand 라는 목사님이 계세요. *범브란트 목사
공산주의 루마니아에서 목회하시던 분이신데, 말씀을 전하시다가 체포되어서 감옥 가운데
14년 동안 투옥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3년은 홀로 독방에 있었어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독방에 홀로 3년간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그런데 그 순간에 그 목사님을 붙잡아 준 것은 무엇이냐면
그분이 암기하였던 그 말씀들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되뇌어 묵상하는 거예요.
그 말씀을 소리내어 읊조리는 것입니다.
혼자 독방에 있으면서 벌떡 일어나서, 앞에 강대상이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그 강대상에 손을 얹고 끊임없이 설교하는 것입니다.
들을 사람 없지만, 자신의 영혼을 향하여 선포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말씀이 자기를 살렸다 라고 고백합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괴롭히고 고문해요. 너무 미움이 올라오지만,
그때 말씀을 묵상하니, 그가 불쌍히 여겨지고,
그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경이 없던 그곳에서 말씀이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활자로 된 성경은 없었지만, 말씀이 나를 떠나지 않아, 그 말씀이 나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결국 우리 속에 우리가 붙잡은 말씀이, 우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한 해 동안 말씀을 많이 읽으십시오. 묵상하세요. 말씀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럴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지킬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다음처럼 끝이 납니다.
‘그리하면 네 길이 형통하리라.’
‘그리하면 두렵지만.. 염려되지만.. 두려운 그 감정 따르지 마라.
내 말을 따라 강하고 담대하라! 그리고 전진해 나아가라
그리하면 네 길이 형통하리라’
△‘형통’이라는 단어는 사칼 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능력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감정과 생각을 통제하여 나아가는 능력,
그것을 성경에서는 형통이라고 합니다.
이 형통이 성도의 성공의 기준이에요. 성도의 성공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잘나가는 것이 성공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과 우리는 성공의 기준이 달라요.
우리가 말하는 형통의, 성공의 기준은 무엇이냐면,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내 안에 내면의 감정이 어떠하든지 간에,
내 생각이 어떠하든지 간에, 말씀대로 통제받아 말씀을 걸어가는 그 상태,
그 상태를 보고 형통하다고 말하고, 그 상태가 성도의 성공입니다.
여러분, 성공하십시오 한 해 동안 정말 성공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길은 말씀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찬양하겠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주 나의 하나님이 지켜주시네
놀라지 마라 겁내지 마라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주 나의 하나님이 지켜주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