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8 주일 말씀 / 여호수아 3:1-13 / 가보지 않은 길 Youtube
◈가보지 않은 길 수3:1~13 2025.12.28.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서의 한 부분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를 필두로 오랜 광야 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요단강 앞에 서 있습니다. 건너편에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면 드디어 기다리던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길은 어떠한 길입니까? 본문 수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미지의 길, 불확실의 길,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운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수3:5b ‘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우리도 곧 새해를 맞이하는데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예전에 한 방송을 봤는데요. 후배 여자 연예인이 선배 여배우에게 물었습니다.
‘선배님, 저는 나이가 50인데, 50세가 되면 인생을 좀 알 줄 알았는데
인생이 뭔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선배님 나이가 되면, 어느 정도 인생을 알 수 있겠지요?’
선배의 여배우가 답했습니다. ‘아니야, 이것아 나도 몰라,
내가 지금 70살인데, 70살을 처음 살아보는 거야. 그러니까 또 실수해.
내가 내년이면 71세인데, 71살은 또 처음 살아. 매일매일이 처음 사는 날이야.
두 번 사는 게 아니라, 맨날 처음 사는 거라서 매일 실수해!’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제가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다 똑같구나. 나만 어려운 게 아니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나는 또 얼마나 실수하며 살아갈까? 얼마나 또 넘어지며 살아갈까?’
저도 매일매일이 처음 사는 날이니까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전에 가봤던 길이 아니라, 가보지 않은 길이니까요.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며칠만 지나면 2026년이 됩니다. 가봤던 길이 아니라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새해 2026년도에는 무슨 일이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아멘! :5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보지 않은 길에서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경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은 세 가지 단계로 살펴보겠습니다.
◑1. 첫 번째는 <기다리는 단계>입니다
먼저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1절인데요.
수3:1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여기 ‘유숙하니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쳐보시기 바랍니다.
‘유숙하다’는 말은, 하룻밤을 자며 머무른다는 뜻입니다.
왜 이 말에 제가 동그라미를 치라고 했냐면, 선뜻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요단강 앞에 서 있습니다. 요단강만 건너면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그렇게 기다려왔던 가나안 땅이 눈 앞에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가나안 사람들은 간담이 녹아있습니다.
바로 앞에 2:24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 땅의 모든 주민이 (가나안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이 보고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로 보낸 정탐꾼들의 보고였습니다.
여리고는 가나안 땅의 첫 성인데요. 그 땅을 정탐한 정탐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고했습니다. ‘그 땅의 모든 주민, 즉 가나안 땅 사람들이,
우리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간담이 다 녹아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벌벌 떨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들도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또 애굽의 군대와 광야에서 적들을 진멸시키신 하나님과,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두렵다’ 완전히 기가 꺾여 있었습니다.
여러분, 전쟁은 기 싸움이지 않습니까? 운동 경기도 보면 흐름이, 즉 기세가 참 중요합니다.
기세가 넘어오면, 지던 경기도 순식간에 뒤집어지더라고요.
전쟁의 기세가 이스라엘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지금이 공격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돌격 앞으로’ 해서 빨리 쳐들어가야 했습니다.
지금 쳐들어가서 전쟁을 하면, 이미 사기가 꺾인 가나안 민족들을 다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뭐하고 있습니까? 유숙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2절에 보니까, 며칠 동안 유숙을 했습니까? 3일 동안 유숙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멈추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그러면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뒤에 보니까 그 이유가 이렇게 나옵니다.
3: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바로 요단강의 수위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기와 건기가 아주 뚜렷합니다.
비가 올 때는 아주 많이 오고, 적게 올 때는 근 6개월 동안 아예 비가 거의 안 옵니다.

그래서 요단강 수위도 우기와 건기 때에 아주 큰 차이가 납니다.
위 사진을 보면, 건기 때 요단강은, 평균적으로 강폭이 30M밖에 되지 않습니다.
깊이도 약 1M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1M면 어른 허리 정도로 얕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건널 수 있습니다. 그리고 30미터 정도만 강을 건너면 됩니다.
그러나 우기 때는 어떻습니까? 바로 아래 사진이 우기 때의 요단강인데요.
수위가 3~4미터 정도로 높아집니다. 강폭도 거의 1.6킬로미터로 아주 넓어집니다.
건너려면 1.6킬로미터를 가야합니다. 물살도 굉장히 빨라서 수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언제였냐면, 본문 15절에 보면, ‘곡식 거두는 시기’였습니다.
곡식 거두는 시기면, 우기를 말합니다. 비가 많이 오는 시기,
더군다나 곡식 거두는 시기는, 단순히 비만 많이 온 게 아니라
북쪽에 위치한 헤르몬 산에 눈이 녹아서, 그 물이 요단강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요단강이 범람했습니다. 그 얘기가 15절입니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요단강이 홍수로 범람하던 때였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뭔가 싸인이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지, 전전긍긍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하필 이때, 요단강 앞에서 기다리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본문 5절인데요.
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하나님께서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데, 앞서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성결,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너희를 성결하게 해야지, 이 요단강을 건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결, 거룩하다’는 히브리어로 카도쉬입니다.
‘구별하다, 따로 떼어놓다’는 뜻입니다. (너희는)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들과 달라야 합니다. 뭐가 달라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싸울 가나안 정복 전쟁은 하나님께 속겠습니다.
칼과 총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닙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느냐’에 전쟁에 승패가 걸려 있습니다.
그 사실을 지금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의욕이 앞서 있습니다. 적들은 간담이 서늘해져 있습니다.
이제 쳐들어가면, 이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 힘으로 승리하는 게 아니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요단강이라는 인생의 장애물을 딱 허락하셔서, 어쩔 수 없이 기다리게 하십니다.
이방 사람들과 전쟁하는 방식이 달라야 된다는 겁니다.
그 넘실거리는 요단강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습니다.
‘아,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구나.
요단강 하나도 우리 능력으로 건널 수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되는구나.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셔야 하는구나!’
그 사실을 요단강 앞에 머물면서 깨닫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무언가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유능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3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요단강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은, 무능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단강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간은, 결코 낭비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거룩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시간이었습니다.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해를 살아갈 때, 요단강 같은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빨리 건너야 하는데, 빨리 가고 싶은데, 빨리 목적지에 이르고 싶은데,
하나님이 우리 앞에 요단강을 두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준비하고 노력한 계획들 앞에, 가로막힌 요단강을 두실 때가 있습니다.
진로의 문제든지, 건강의 문제든지, 관계의 문제든지, 가정의 문제든지, 사업의 문제든지,
하나님이 우리 앞에 인생의 장애물을 딱 갖다 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거룩을 배웁니다.
‘아 그렇지,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지, 하나님의 백성의 방식대로 살아야 되지...
아 그렇지, 내 힘으로는 안 되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야만 이 전쟁을 이기는 거지...’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 주시지 않으시면, 내 인생은 스스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철저하게 자각하고 깨닫는 시간을 갖게 하십니다.
그 기다리는 시간들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그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가 더 성결하겠습니다.
제가 더 철저하게 거룩하게 성결하겠습니다. 구별되겠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제가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그 고백을 하도록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 고백 위에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나를 통해 기이한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단계는 기다리는 단계입니다.
◑2. 두 번째는 <따라가는 단계>입니다
3: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여러분, ‘따르라’는 단어에 표시를 해 두시기 바랍니다.
앞에 1절에서는 ‘유숙하니라 (기다리라)’는 단어에 표시를 했습니다. 두 번째는 ‘따르라’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따라야 합니까? ‘여호와의 언약궤를 따르라’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언약궤를 따르라’는 말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특히 4절에 보면 부연 설명이 나옵니다.
따라가는데 따르라 하나님이 거리를 정해 주십니다.
3: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 사이의 거리를 정해 주십니다.
그 거리가 2천 규빗쯤 되게 하라고 말합니다.
평균적으로 한 규빗은 45CM로 볼 때, 2천 규빗은 약 900M입니다.
1KM가 조금 못 되는 거죠. 그 간격을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면 앞사람의 뒤통수가 아니라 언약궤를 누구나 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최소 2백만 명쯤 되었습니다. 200만 명이 붙어 줄줄이 걸어가다보면
앞사람 뒤통수만 보이겠죠. 간격을 둬야 언약궤가 보입니다. 그 거리가 900미터였습니다.
900미터 간격이면, 시야가 가려지지 않습니다. 앞 사람의 뒤통수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시선을 주님께 돌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앞서 가시기 때문입니다.
▲3: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언약궤가 앞서 나아간다’고 말씀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는 말입니다.
3: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또 ‘너희 앞에서’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보다 앞서 가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앞서 가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따라가면 되었습니다.
모세도 그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신31: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또한 하나님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라고,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친히 앞서 가십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모세도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신31:8
▲여러분,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길을 과거에 한 번도 지나보지 못했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입니다. 익숙한 광야를 떠나, 생소하고 낯선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합니다.
어디가 길인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입니다.
또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물이 넘쳐서 범람하는 강입니다.
강을 건너는 동안에도 두려울 수 있습니다. ‘이 강이 나를 덮치지는 않을까?
이러다가 빠져 죽는 거 아닌가?’ 주변을 돌아보면, 염려와 두려움이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그랬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만일 주시면 주께서 나를 명하사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마14:28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갈 때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폭풍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그는 바닷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주님의 구조를 받기는 했지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비슷한 상황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럴 수 있었습니다.
주위에서 넘치는 강물을 보면, 두려울 수 있습니다. 또 주변을 보면, 놀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시는 말씀이 본문 3~4절의 말씀입니다.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언약궤만 바라보고, 다른 것은 일절 보지 말고, 주위의 넘실거리는 강물을 바라보지 말고
즉 하나님만 보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라’ :4
그리하면 하나님이 길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길을 내신 하나님이, 요단강 속에 길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또 미지의 땅 가나안에 길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를 인도하는 자가 누군지 제대로 보라는 겁니다.
애굽에서 너희를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광야 40년 동안 너희를 인도해온 하나님이
새로운 땅, 가나안 땅까지도 인도하실 것이니,
너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보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 해, 우리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처음 가는 길입니다. 가다 보면 요단강 앞에서 멈추어 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또 가다 보면 주변에 두려운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위협하는 여러 가지 환경의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어디로 가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나를 덮칠 것 같은 삶의 문제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바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이, 앞으로 새해에도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뒤를 따라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언약궤)만 따라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의 소리에 끌려갈 것입니다.
세상이 떠드는 숫자와 확률이 두려울 것입니다. 눈앞의 문제에 매몰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그분의 뒤만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앞서지 말고 뒤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안전하게 걷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한 길로, 평안하게 걷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놀랍게 경험할 것입니다.
◑3. 세 번째, 마지막 단계는 <들어서는 단계>입니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순종하는 단계인데요.
3: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들어서라'라는 단어의 표시를 하시기 바랍니다.
1절에 ‘유숙하니라’
3절에 ‘따르라’에 이어
8절에 ‘들어서라’에 밑줄이나 동그라미를 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십니다. ‘요단강에 들어서라!’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홍해를 건넌 사건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약 40년 전에 이스라엘은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출14장에 보면, 그때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홍해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홍해와 지금 요단강이 다른 게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홍해를 어떻게 지나가게 하셨죠? 먼저 하나님이 바다를 갈라주셨습니다.
밤새도록 갈라주셨습니다. 큰 동풍을 일으키셔서, 큰 동풍은 ‘뜨거운 사막 바람’인데요.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셔서, 홍해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다가 마른 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갈라진 그 가운데를, 홍해 바닥을 육지처럼 걸어갔습니다.
물은 그들 좌우에 벽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요단강은 어떻습니까? 요단강도 이스라엘이 마른 땅처럼 지나갑니다.
그런데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3: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물이 갈라지는 게 먼저가 아닙니다. 먼저 강속으로 ‘들어가라’입니다.
지금 넘실거리는 물이 빠르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강에 먼저 믿음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먼저 한 발을 내디디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13절입니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홍해와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방법은 다릅니다.
홍해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갈라놓고, 이스라엘은 그냥 지나가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이 먼저 강물을 밟아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갈라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할 때,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십니다.
‘아 하나님이 여셨구나’ 그냥 지나가면 됩니다. *홍해
어떤 때는 전혀 길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물이 넘치고 있습니다. 강이 갈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말씀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요단강
‘한번 내디뎌봐라. 믿음으로 발을 들여놓아봐라’
그때 발을 내 디뎠을 때, 요단강처럼 갈라지는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출애굽 당시에는 신앙의 초기였습니다. 신앙으로 치면 초신자였습니다.
그들에게 발을 먼저 내디뎌보아라고 하면, 아무도 못 내딛습니다.
그들은 아직 신앙의 초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바다를 먼저 갈라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습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기적을 봤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또 반석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하나님,
지난 40년동안 하나님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또 불신앙의 세대들이 다 죽었습니다.
이제는 믿음의 세대, 출애굽 2세대들이 요단강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앞으로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앞서 말한 대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의 훈련을 시키시는 겁니다.
순종하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내던지는 믿음을 훈련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여전히 요단강에 물이 넘실거리지만 발을 디뎌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단강에 먼저 들어서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15절 이하로 넘어가 보면 그 모습이 나오는데요.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5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넘실거리는 요단강 물을 밟았습니다. 그러자 16절입니다.
3: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요단강의 물줄기가 완전히 끊겼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홍해를 먼저 갈라주실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요단강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먼저 말씀 앞에 순종하기를 요구하십니다.
먼저 요단강에 발을, 믿음으로 내디디면,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요.
그러나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노를 져야 할 때는, 물이 들어왔을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해 주실 때입니다.
여러분 오늘 요단강이 갈라진 때를 보십시오 요단강 물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광야에서 40년도 버텼는데, 몇 달 더 못 버티냐고...
몇 달만 지나면 우기가 끝나고 건기라고... 그때는 요단강을 편하게 건널 수 있는데,
그때까지 버티자고... 조금만 더 버텨서 상황이 완벽한 때 건너가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물이 넘실되지 않은 때가, 완벽한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가 완벽한 때입니다.
그때 믿음으로 순종해 보면, 요단강이 멈춥니다.
▲여러분, 작년 한 해를 돌아보십시오.
아니면 지금까지 걸어왔던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에게도 요단강의 기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도저히 환경은 갈 수 없는 환경인데, 기적적으로 열렸던 경험들이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어떤 모습들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했던 걸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뜻을 굽혔을 때, 내 계획을 접었을 때,
내 욕심을 내려놓았을 때, 요단강의 일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늘 말씀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씀에 여러분의 발을 내디뎌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경험할 것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보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올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합니다.
그 앞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기다리는 단계..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거룩을 배우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따라가는 단계..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 들어가는 단계.. 여전히 물이 넘실거린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발을 내딛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