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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장 요단강을 건널 준비가 되었는가?

LNCK 2026. 1. 2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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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강을 건널 준비가 되었는가? - 2026-01-18   Youtube 

 

◈요단강을 건널 준비가 되었는가?           수1:10~18                 2026-01-18  

 

여러분, 오늘 설교 제목은 “요단강을 건널 준비가 됐는가”입니다.

이 제목을 보실 때 혹시나 ‘죽을 준비가 되었는가’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요단강을 건넌다’는 말은 죽음을 비유해 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땅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요단강을 건너간다’는 것은 비로소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단강을 건널 준비가 되었는가?’ 라는 질문은

곧 ‘하나님이 우리 인생 가운데 약속하신 그 땅을 밟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큰 두려움 가운데 휩쌓여 있었습니다.

전임자인 위대한 모세도 요단강을 건너지는 못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요단강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동일한 말씀을 주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수1:6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7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9

 

끊임없는 두려움에 휩쌓여있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반복되는 말씀을 듣자,

자기만의 감정, 자기만의 생각의 회로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합니다.

 

자기 안에 날뛰었던 모든 두려움의 감정을 잠재우고,

자신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 마음이 들 때까지 하나님 앞에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됩니다.

 

언제까지 머물러 있는 것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대체할 때까지,

그 순간까지 그 앞에 머물러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혹시 나이아가라 같은 큰 폭포 앞에 서 보신 적이 계십니까?

그 앞에 서게 되면, 거기서 떨어지는 물의 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의 모든 소리를 압도해버립니다. 옆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도 들리지가 않아요.

 

그 순간에 내 안에 품고 있던 모든 생각들은 씻겨나갑니다.

오직 폭포에서 떨어지는 그 물소리 가운데, 내 영혼이 압도되는 거예요.

 

그 현장을 떠났는데, 얼마 동안 계속 내 가슴이 두근두근거립니다.

그리고 마치 내 안에, 무언가 울려 퍼지는 울림이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게 압도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압도되기까지, 그 말씀 앞에 머물러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래 머물러 계셔야 됩니다.

잠깐 머물러 있으면, (잠시 압도되었다가도) 다시금 내 마음이 올라옵니다.

 

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으로 바뀔 때까지.. 말씀 앞에 머무는 거예요.

여호수아는 그때까지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불안한 감정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감정이 내 영혼까지 차오를 때까지 머물러 있게 되자..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10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수1:10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위 구절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단어는 ‘이에 then’입니다. ‘이에’는 무엇입니까?

앞의 사건 바로 다음에, 곧바로 이어서 여호수아는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자기 안에 있던 모든 불안, 생각, 감정을.. 말씀으로 바꿔버렸어요.

자기 안에 있던 모든 고민을 말씀으로 바꿔버립니다.

자기 안에 있는 모든 불안한 감정을 말씀으로 덮어쓰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이 ‘이에 then’로 시작하는 것은,

그 직전에 여호수아가 ‘9절 말씀앞에 꽤 머물러 있었다’를 나타내는 단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하고 담대하라 말씀하셨으니.. 그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서 건너가라 말씀하셨으니..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단한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진짜 순종입니다. 몸의 순종 이전에, 마음과 생각의 순종이 있어야 됩니다.

마음과 생각이 순종하고, 몸이 따라 가는 것이죠.

 

말씀이 멈추라면 멈추는 거예요. 말씀이 가라면 가는 겁니다.

나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움직일 때,

우리 인생 가운데 말씀이 약속한 놀라운 일이 펼쳐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 단어가 ‘이에’ 라는 단어가 되는 거죠.

 

▲여호수아의 리더십은 그의 순종에서 나왔습니다.

여호수아는 성경에 있는 인물 가운데, 가장 순종을 잘한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그의 리더십은 팔로워십에서 나왔어요.

리더십이 이끄는 능력이라면, 팔로워십은 따라가는 능력이겠죠.

 

여호수아는 태어날 때부터 ‘애굽의 종’이었습니다. 근 40년간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 이후에 모세의 수종자 servant 가 되어 모세의 말에 순종합니다.

그러니 그의 인생 80세 어간까지, 그는 종으로서 순종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어요.

 

그 이후에 리더가 되어 25~28년간 이스라엘을 이끄는데,

20년 동안 그가 발휘했던 리더십은, 따르는 능력, 순종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그의 리더십은 너무나 안전했어요.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끌고 가기 때문에, 그는 안전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정말 순종의 사람이었던 것이죠.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순종의 리더십을 가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들여 나가는 사람들인데

우리의 역할은 리더로서 서는 거지만, 그보다 앞서 ‘따르는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어떤 자질로 세상을 섬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복음으로 물들여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담대한 것과 무모한 것은 달라요.

여호수아는 무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담대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지, 무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었지, 대책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의 대책은 말씀이었습니다. 그의 대책은 하나님이었어요.

그런 확신이 있으니까, 그는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거예요.

 

▲여호수아는 지금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에 바로 앞에 관문인, 요단강 앞에 서 있습니다.

40년 전에 모세가 이끌었던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지 못했어요.

요단강 건너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길 원했지만, 그 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두려워서 주저앉았고, 불평하여 광야로 되돌아갔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다양한, 수많은 요단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부분이 있어요.

우리의 삶을 이끌기 원하시는 땅이 있습니다. 예비하신 축복이 있어요.

 

그것은 우리에게 약속된 것인데, 우리는 그곳으로 가기를 원하는데,

그곳을 넘어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됩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기가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환경이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 주저앉아, 우리가 약속받은 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 안으로 들어가는, 그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영혼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그 땅에 들어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를 위하여 여호수아가 오늘 행했던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2026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우리 인생을 향한

그 모든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을까요?

세 가지로 한번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 번째는 <말씀을 믿는다면,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말씀을 믿는다면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지금 시작해야만 합니다.

여호수아은 두려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 믿었어요.

 

‘그 땅을 네게 주리라. 밟는 모든 땅을 너에게 주겠다’

그것을 진짜 믿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여호수아가 행한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 그는 첫 번째로, 관리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수1:10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여호수아가 리더로서 첫 번째 명령을 내리는 대상은 누구냐면 관리들이었어요.

이 ‘관리’를 원어로 보면, 소태리 라는 단어를 쓰는데, 그 뜻은 '행정가들' 입니다.

 

여호수아는 첫 번째 명령을 누구에게 내렸냐면, ‘행정가들 officers’에게 내렸어요.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전시 상황이에요. 요단강을 건너면 바로 전쟁을 치러야 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전쟁을 치르기 위한 군대 장관들을 모으지 않고,

행정관들을 불러 모읍니다.

 

왜 여호수아는 첫 번째 명령으로, 군지휘관들이 아닌 행정가들을 불렀을까요?

그는 진짜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신다. 승리를 주신다!’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를 주신다면, 그들이 해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그 땅에서 살 준비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행정가를 부르는 거예요.

 

군대 일은 하나님이 행하실 것이다. 승리를 주실 것이다.

그러니 행정가를 불러다가, 승리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진짜 믿음의 사람이었어요.

그는 그 땅에 이미 살고 있는 사람처럼, 가나안에서 살 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죠.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말씀이 주어졌을 때,

그 말씀이 이루어질 상황을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맞는 준비의 자세로 들어가는 겁니다.

 

▲2. 여호수아는 양식을 준비하라고 명령합니다.

 

1:11a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전시 상황에서 ‘무기’를 먼저 준비하는 것이 맞을 것인데,

‘양식을 준비하라’고 말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창과 방패로 삼는 겁니다. 그러니 무기 준비가 끝났어요.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실 겁니다. 그 다음에 할 일은 무엇이냐면,

그 땅에 들어가서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하려고, 지금 ‘양식을 준비하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지금 양식을 준비하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출애굽 2세대 백성들은, 굉장히 낯선 명령이었습니다.

 

왜냐면 이들은 한평생 양식을 준비해 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도 만나가 내리고 있습니다. 만나는 요단강을 건너야 멈추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소출을 먹기 시작한 바로 다음 날, 만나가 멈췄죠. 수5:12)

 

지금까지 한 번도 음식을 준비한 적이 없어요.

그냥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주시면, 떨어진 만나를 거두어 먹고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 ‘양식을 준비하라’라고 명령을 내리니,

사람들은 너무나 의아한, 처음 듣는 명령을 듣고 있는 것이죠.

 

이 순간에 여호수아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까?

광야시대를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살아갈 ‘가나안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광야를 살아가던 삶의 모습과, 가나안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다릅니다.

광야는 계속 이동해야 되기 때문에, 정착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만나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제 정착해야 됩니다. 농사를 지어야 됩니다.

목축을 해야 됩니다. 스스로 먹는 것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여호수아는, 그 전에 ‘양식을 준비해 두어라’ 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는 거죠.    주1)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그는 진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광야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일명 “엄마 카드 시대”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줄여서 ‘엄카’ 라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용돈 받을래, 엄카 쓸래?’ 물어보면, 대부분 ‘엄카 쓸래요’라고 합니다.

용돈은 한도가 있는데, 엄카는 한도가 크기 때문이죠.

 

    제 첫째 딸 아이가 수능시험 보고나서, 생애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을 해서, 최근에 드리어 급여를 받았어요.

    그 돈을 받아보고나서, 절망감에 쌓여있더라고요.

 

    아이가 자기가 일해서 돈을 버니까, 한 가지 특징이 생겼습니다.

    무언가를 사거나 사 먹을 때, 자기 급여로 환산해 보는 거예요.

    ‘이건 두 시간 일해야 버는 값이다..’

    그래서 ‘너무 비싸다’ 싶어서 안 사는 것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오랜만에 딸에게 ‘외식하러 가자’고 말했더니, 아이가 ‘그거 얼마입니까?’ 물어보더라고요.

    ‘얼마 정도다’ 라고 말했더니,

    ‘그 돈이면 제 하루 급여인데, 내가 한 시간 만에 쓸 수가 없다. 그러니 집에서 밥 먹자’고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 딸이 지금 '엄카'가 끝난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딸이 스스로 ‘지금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이 정도 월급을 받았는데.

    앞으로 나는 이 정도 급여를 받기를 원하는데, 그럼 얼마나 더 열심히 일해야 될 것인가?’

    그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 아이가 독립할 것을 알고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 시간이 올 것을 안다면, 미리 준비할 수밖에 없는 거죠.                     주2)

 

여호수아는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지만,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 안에 살고있는 사람처럼, 백성들을 이끌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주셨다면, 여러분이 그 말씀을 붙잡았다면,

그 말씀 속에 이미 살아가고 있는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땅이 있어요.

그것이 비전이든, 꿈이든, 어떤 단어를 쓰든지 간에,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역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땅에 이미 들어가 있는 사람처럼 준비하시고,

그렇게 반응하시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사람이 진짜 믿음의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꿈과 비전을 말하는데, 그 이후에 살아갈 모습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선교사로 보내달라고 기도하는데.. 언어 준비를 안 해요.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재무제표를 볼 줄 모르고, 사업 아이템이 아직 미정입니다.

관계 회복을 꿈꾸는데.. 그 사람을 찾아가지 않아요.

 

닫힌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 문고리를 잡아당기지 않습니다.

풍랑을 통과시켜달라고 말하는데.. 노를 젖지 않아요.

이 모든 것은.. 사실은 그걸 믿지 않는 거예요.

진짜 믿으면 믿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가 올 것을 믿으면.. 우산 들고 나가는 겁니다.

약속한 차가 올 것을 믿으면.. 그 시간에 그 장소로 나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만 증명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에 걸맞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러분, 올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에, 믿음 있는 자답게 날마다.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수아는 그 확신 속에서 지금 이렇게 말을 하고 있어요.

 

1:11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여호수아가 말을 하고 있죠.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강을 건너 들어간다 ...’

분명한 비전, 분명한 약속을 믿는 사람은, 날짜와 목표를 선포하는 거예요.

 

보다 긴박하게 말씀드리자면 ‘72시간 이내에 우린 그 땅에 들어간다. 요단강을 건넌다’

여호수아는 이미 확신 가운데 있는 겁니다.

 

올 한 해를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그 확신을 가지고, 준비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먼저 은혜 받은 자가 먼저 헌신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두 번째로 전쟁의 선봉에 설 자들을 부릅니다.

전쟁에서 선봉에 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앞선자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든 전쟁 가운데 선봉에 섰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선봉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를 부릅니다.

1:12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세지파는 (정확히 말하면 두 지파 반은)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가장 싸움을 잘하는 지파들이었어요.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죠.

야곱의 표현에 의하면 다혈질이고 싸움을 잘한다라고 기록되었어요. 창49:3참조

 

갓지파는 그 이름 자체가 ‘군대’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갓지파를 암사자에 비유합니다. 신33:20

‘모든 것을 찢어버린다’라고 표현해 두었어요. 그만큼 싸움을 잘 하는 지파입니다.

 

므낫세 지파는 요셉의 장자인데, 그 지파가 너무 커서 반으로 나눠서

각각 한 지파를 이룰 만큼, 므낫세 반지파는 숫자도 많았고,

앞으로 벌어질 모든 전쟁 가운데 항상 선봉에 서게 됩니다. 싸움을 가장 잘합니다.

 

대상5:18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 중에서 능히 방패와 칼을 들며 활을 당겨

싸움에 익숙한 자가 44,760명이었다’

 

므낫세 지파에서 나온 유명한 사사가 기드온과 입다입니다.

사사기에서 가장 전쟁을 잘 했던 사람들이 므낫세 지파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두 지파 반을 부른 거예요.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지금 여호수아는 이들을 불러다가, ‘일전에 모세가 살았을 때 그와 약속을 했던 것을 지키라’

고 말합니다. 그 지켜야 될 내용은 무엇이냐면 14절에 나와 있어요.

 

1:14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14절의 말씀을 해석하기 위하여, 우리는 민수기 32장을 살펴봐만 합니다.

이 내용은 민32장의 모세가 살았을 때 사건을, 배경하고 있습니다.

 

 

위 지도를 보면, 가운데 강이 흐르고 있는데 요단강입니다.

그 요단강 동편 쪽에 보면 므낫세半, 갓, 르우벤 지파의 땅이 보일 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이쪽’이라고 표현해 놓았어요. 이쪽은 동쪽을 말하는 거고요. 수1:14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서 서쪽 가나안 땅으로 넘어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민32장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냐면,

 

모세를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 땅을 먼저 점령했습니다.

점령해놓고 보니까, 그 땅이 너무 좋았어요. 평원이었고, 풀이 많았고, 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므낫세半, 르우벤, 갓지파는 힘이 쎘기 때문에 재산도 많고 짐승들도 많았습니다.

그 땅을 보고 모세에게 요구했습니다.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모세가 불같이 화를 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들이 가야 할 곳은 어디냐면. 요단 동편 쪽이 아니라

요단강을 건너서 서쪽 가나안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아니 강도 건너기 전에, 너희가 먼저 땅을 달라고? 이 좋은 땅에서 정착하겠다고?

너희는 이기적이다. 공동체를 깨트린다’하고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그때 모세가 기도해서, 얻은 중재안이 무엇이었냐면

‘이 땅을 너에게 주겠다. 그런데 너의 처 자식과 짐승들만 이쪽에 머물고,

너희 모든 용사들은 강 건너로 넘어가서 전쟁을 치르되, 모든 전쟁 가운데 선봉에 서야 된다.

죽기까지 싸움을 다하면... 그걸 약속하면 이 요단 동편 땅을 너희에게 주겠다.’ 1:14~15

 

그들이 그것을 수락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역시 수락했어요.

지금 여호수아는 그때의 약속을 떠올리며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모세와 그런 약속을 했으니, 이제 요단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너희가 그때 약속한 것처럼, 항상 선봉에 서서 싸워야 된다’

이때 이들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1: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세 지파는,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세 지파는 가장 힘이 센 지파였어요.

이미 (요단 동편의) 약속의 땅을 받은 지파들입니다. 이미 은혜를 받았어요.

특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특권을 공동체를 위해서 쓰겠다고, 지금 다짐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만들어져 갑니다.

먼저 꿈을 이룬 사람이, 누군가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자기가 꿈의 디딤돌이 되어 주는 것이죠.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에 남들보다 무엇인가를 더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주머니가 두 개가 있는 이유는, 하나는 내 인생을 채우라고 있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꿈을 채우라고, 그 주머니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땅을 어떻게 살아가냐면, 백 사람이 먹을 것을 혼자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을 풀어서 백 명을 먹이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줄 믿습니다.

 

요단강은 혼자 건너갈 수가 없어요. 혼자 건너가면 죽습니다.

함께 건너가야 이룰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므로 공동체가 함께 가는 것인데, 선봉의 설 자들은 누굽니까?

 

이미 꿈을 이룬 사람 (본문에서 땅 분배를 먼저 받은 세 지파),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들이 더 많은 수고를 하여,

함께 공동체가 하나님의 꿈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분명한 인생의 가치관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해요.

 

△일반 세상에서도 이런 이야기 많이 합니다.

예를 들면 오프라 윈프리는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멋진 말 아닌가요?

 

윈스턴 처칠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얻은 것으로 생계를 만들고, 주는 것으로 인생을 만든다’

우리 인생은, 누군가를 위해서 흘려보낸 그것으로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우리나라 가운데 300년 이상 부자 가문을 이어온 경주 최씨 가문이 있습니다.

그 최씨 가문 가운데 중요한 집안의 내규가 있어요.

 

「자신의 집을 기준으로 하여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집 근처 땅은 적어도 우리 부잣집이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재산이 만석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하늘의 것이 된다.」

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끊임없이 흘려주어, 나를 통하여 그 지역과 땅과 공동체를

바꿔나가는 인생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죠.

 

개인이 갖고 있는 부와 성취를 가지고, 공동체의 안전망으로 삼는 거예요.

이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교회가, 우리 존재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를 빠른 시간 내에 부흥케 하신 데는,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열방의 교회를 섬기는 교회로 쓰시기를 원하시는 것이죠.

 

지금까지 그랬듯이, 우리는 겸손하게 섬겨야 됩니다.

겸손하되 조용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죠.

그래서 힘들고 아파하고 침체되어 있는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을 위로하는 쉼터가 되는

저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쓸 것은 최대한으로 절제하고, 그 모든 것을 공유하고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안에 조금 불편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불편함은요, 감사함으로 넘길 수가 있는거죠.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3. 세 번째, <서로를 붙들어주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세 지파, 정확히는 두 지파 半이 여호수아에게 다음처럼 말을 합니다.

1:17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을 들은 여호수아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모세 사후에 그는 처음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처음으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따라주면 어떻게하나?’ 염려가 됐겠죠.

 

자기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명령을 내렸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겠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여호수아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요!

그런데 진짜 큰 힘은, 그 뒤에 한 말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18

 

지파들 중에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었던 세지파가

여호수아에게 위처럼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여러분, 이 말은 원래, 누가 누구에게 했던 말입니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은밀하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1:5~6

 

리더가 되었지만 너무나 두려워서 주저앉아 있고 있는 여호수아를 찾아오셔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는데, 1:5~6

 

그 말씀을 듣고 리더십을 지금 발휘하고 있는데, 백성들의 공동체의 대표가 나와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셨던 말을, 다시금 되뇌이며 자기를 격려시키고 있는 거예요.

 

그 순간에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런 순간을 흔히 말해서 ‘심쿵하다’ 라고 말합니다.

가슴에 쿵하고 뭔가 오는 거예요. 전율이 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어요.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정말 하나님의 음성이었을까?

내가 정말 그런 자리에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 가지고,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명령했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똑같이 돌려주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호수아는 이런 마음 들지 않았을까요?

‘아~ 하나님의 말씀이 맞구나. 하나님이 우리 공동체와 함께하고 계시구나.

하나님이 지금 우리 공동체를 통하여, 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를 돌보고 계시구나’

이렇게 영적으로 통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하신 적 있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깊이 기도를 합니다. 그러다가 성경말씀을 봤어요.

한 말씀 앞에 꽂혔습니다. 심쿵한 거죠.

 

그런데 ‘과연 이 말씀대로 순종해도 안전할까?

이 말씀.. 내가 제대로 들은 건 맞을까?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닐까?’

이런 고민을 가지고 예배 자리에 나왔는데,

마침 그날 설교에서, 그날 본문이, 그날 주제가, 자기가 받았던 그 말씀인 거예요.

 

그 순간에 어떤 마음이 든다고요? 심쿵!

‘그때 내가 기도하며 성경 읽으며 받은 말씀이,

주님이 개인적으로 나에게 주셨던 말씀,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 맞구나’

‘지금 예배를 통해서 확인시켜주시고 있구나’ 라고 하는 믿음이 올라오게 되는 것이죠.

 

이제 예배 마치고 교회 밖을 나갑니다. 나가는 순간 어떤 상태가 됩니까?

다시 믿음이 흔들리죠. ‘내가 개인적으로 받은 말씀, 또 설교로 들은 말씀’이 또 의심이 돼요.

‘정말 그게 정확하게 주님이 내게 주신 말씀일까? 아니면 나의 혼자만의 착각일까?’

 

다시 흔들리면서 집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문자가 왔어요.

아는 지인 집사님에게서 온 문자 내용을 보니까,

‘기도하다가 집사님이 생각나서, 말씀 문자 하나 보냅니다’

 

그 말씀을 열어봤는데 그 말씀이 또 뭐예요?

‘마침 바로 그 말씀!’ 다시 한 번 심쿵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이 공동체와 사람들 통하여 나를 지키고 계시는구나..

내가 받은 그 말씀이 맞구나’ 라고 확신하게 되는 거죠. 서로 서로를 통해서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마친 이후에 로비에서 많은 분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또한 주중에 성도님들을 만나요. 오고 가면서 인사를 나누는데

저에게 어떤 말씀, 제게 한 말씀씩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예사롭지 않은 거죠.

 

제가 그때쯤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고, 염려하고 있었는데,

그분의 말이 들려오는데, 그 말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리는 거예요.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다’

‘목사님 힘내세요.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말하는 것일 수도 혹시 있겠지만, 저는 알고 있잖아요.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 이분을 통하여 내 영혼을 지키시는구나...’ 아멘!

그 순간 저는 심쿵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 우리는 서로가 필요합니다. 약속의 땅은 혼자 들어가는 땅이 아닙니다.

혼자 가면 발각돼서 죽습니다. 함께 가는 겁니다.

그곳을 함께 가라고 우리를 만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성경은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는 말씀이 있어요. 잠6:6

우리가 배워야 할 개미 가운데 ‘베짜기 개미’가 있습니다.

이 개미를 소개하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 개미는 힘이 굉장히 셉니다. 얼마나 힘이 센지 자기 몸질보다 훨씬 큰 애벌레를

물고 서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얘네들은 어떻게 살아가냐면, 나뭇잎을 엮어서 하나의 둥근 원을 만들어,

그 안에 함께 들어가서 공동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나뭇잎을 엮으려면, 이쪽 나뭇잎과 저쪽 나뭇잎을 연결해야 되는데,

개미의 다리가 짧잖아요. 어떻게 연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의 개미가 붙어있고, 지기 몸을 쭉펍니다.

그러면 그 등 위로 하나의 개미가 올라가, 팔을 또 쭉 펍니다. (위 사진)

그 위로 또 하나의 개미가 올라가 개미 사슬을 만듭니다.

없던 길을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름이 ‘베짜기 개미’

 

여러분, 이 개미들은 힘이 굉장히 센데, 혼자 있어도 세지만,

둘이 만나면 두 배의 힘이 나는 것이 아니라, 2.5배 이상의 힘이 난다고 합니다.

함께 할 때 힘을 더 많이 쓰는 거예요. *시너지 효과라고 하죠.

 

그런데 사람은 ‘두 사람이 함께 힘을 쓰면, 힘이 1.5배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 자기 힘을 안 쓰고 있는 겁니다. 개미에게서 배우셔야 돼요.

개미들은 2.5배 이상이 납니다.

 

그래서 힘들게 이파리를 끌고 모아서, 자기들이 살 둥지를 만듭니다.

둥그런 둥지를 만들어, 그 속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죠.

 

이 그림은 마치 교회 공동체를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힘을, 서로의 인생을 함께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그러니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앞에 요단강이 놓여있을 수 있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붙잡으세요. 그 말씀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지금 살아가는 겁니다.

 

누군가가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있으면, 선봉에 서 주십시오.

누군가에게 힘을 주십시오. 힘이 필요하면, 격려의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밀어주고, 당겨주고, 이끌어가면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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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지날 때,

그들은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목축을 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왜냐면 출애굽 할 때, 소와 양떼 등 가축을 데리고 나왔죠.

출12:32 (바로가 모세에게) "너희가 말한 대로 가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출12:37~38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요,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그리고 광야에서 그들은 매일 상번제를 드리고, 절기를 지키며 제사를 드렸는데,

그 제사에는 소, 양, 염소 같은 제물이 꼭 필요했으므로,

그들은 제사용으로라도, 가축을 기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라는 조건이, 농사를 짓기에는 부적합하지만,

양떼를 치기에는, 가능한 조건이 됩니다. 아침 이슬을 맞고서, 자라는 풀들이 있거든요.

 

그러니 그들이, 육포나 소시지 같은 말린 고기를 준비했을 수도 있고,

치즈 같은 유제품을 준비했을 수도 있죠.

 

주2)

제(주경훈 목사)가 어릴 적부터 저희 두 아이에게 늘 했던 말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로서 너희를 키워준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너희는 독립이다.

졸업과 동시에 독립해서 나가서 살아야 된다.

대신 원하면 이 집에 살 수는 있지만, 월세를 내고 살아야 된다.'

 

제가 유치원 때부터 이 말을 해서, 애들이 아예 귀에 딱지가 앉도록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제 나름대로의 부모의 역할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자립적인 인생을 살아가도록,

부모의 품에서 독립하도록, 밀어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그 말을 잘 순종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덧 첫째 아이가 고3인데,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3개월만 있으면, 그렇게 말을 했던 그날이 다가오는 거예요.

 

저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아이가 말을 하더라고요.

'여기 그냥 살면 안 되겠냐고.. 나갈 데가 없다고... 준비가 안 되어있다다고'

 

제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안 된다. 알고 있지 않느냐? 나가야 된다. or 월세를 내라’

 

그런데 아이가 ‘뭔 아빠가 그러냐고.. 그런 아빠가 세상에 어딨냐?’는 겁니다.

듣고 있던 둘째도 말합니다. ‘저도 나가기 싫어요. 그런데 무슨 아빠가 그럽니까?’

 

이렇게 아빠가 자녀들에게 냉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자녀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함이지,

그런다고 부모-자녀관계가 깨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과거 설교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