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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장 남은 6일의 창조

LNCK 2026. 2. 3. 17:2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창세기

2026 01 25  / 창세기 강해 (3) / 1:6-25 / 남은 6일의 창조 - YouTube

 

◈남은 6일의 창조                           창1:6-25                   2026.01.25.

 

지난주 설교 제목은 <혼돈, 공허, 흑암,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지구는 세 가지 상태였습니다. 혼돈, 공허, 흑암.

 

혼돈은 형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공허는 텅 비어있다는 뜻입니다.

흑암이란 빛이 없는 어두운 상태를 말합니다.

 

자, 그러면 앞으로 남은 하나님의 창조는, 이 세 가지 상태를 해결해 나가는 창조입니다.

혼돈, 공허, 흑암으로 가득한 이 땅을, 조화롭게 하시는 사역입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은.. 혼돈에 관한 사역, 폼 form 을 만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은.. 공허에 관한 사역, 그 안에 내용물을 채워 가시는 사역을 하셨죠.

 

 

정리된 표를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6일 창조의 패턴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흘은, 형체가 없는 세상에서 형체를 만드셨습니다.

두 번째 사흘은,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셨습니다.

 

첫째 날에는 빛을 만드셨습니다.

둘째 날에는 하늘과 바다를 만드셨습니다.

셋째 날에는 땅과 식물을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형체는 만들었지만, 여전히 그 안은 비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은 3일 동안, 그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십니다.

 

넷째 날에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주관하는 광명체들을 만드셨습니다. 해 달 별을 만드셨죠.

다섯째 날에 하나님은, 하늘은 새로, 바다는 물고기로 채우십니다.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땅 위에 사는 동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오늘은 둘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설교 제목대로 “남은 6일 동안의 창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날은 흑암에 관한 사역, 흑암으로 가득한 이 땅에 ‘빛이 있으라’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었습니다.

 

◑<둘째 날>에 하나님은 하늘과 바다를 만드셨습니다.        *첫째 날은 지난 시간에.

 

창1:6~8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보시면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물’이라는 단어입니다.

왜 물이 반복되냐면, 처음 창조의 상태가 깊음(깊은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물이 온 지구를 덮고 있었습니다. 온통 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둘째 날에 이 물을 나누십니다. 온 땅을 덮고 있던 물을 나누십니다.

 

1:6~8에 보면 ‘궁창’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라키아’ 라는 단어인데요. 둥근 돔 모양의 넓은 공간을 뜻합니다.

고대인들이 생각한 하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물과 물 사이에 넓은 공간을 만드셨습니다.

이 넓은 공간을 가리켜, 하나님은 궁창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그래서 궁창은 곧 하늘입니다.

 

그러니까 궁창은 넓은 공간인데, 곧 하늘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이 하늘을 두셔서, 물을 갈라놓으셨습니다.

 

하늘을 경계로,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로 나누셨습니다.

하늘 아래의 물은 밑으로 내려가 바다가 되었습니다.

하늘 위의 물은 구름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하늘에 올라가면 구름이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 사이를 지나가면, 비행기 창문에 물방울이 맺힙니다.

구름은 작은 물방울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물방울이 뭉쳐져서 무거워지면 땅으로 내려옵니다. 이것이 바로 비입니다.

겨울이 되면.. 이 물방울이 눈이 되고, 우박도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둘째 날에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물이 온 땅을 뒤덮고 있는데, 하늘을 두셔서, 물을 갈라 놓으셨습니다.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로 나누셨습니다.            주1)

 

하늘 위의 물은 구름으로, 하늘 아래의 물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 하늘은 더 큰 하늘을 반영합니다. 더 본질적인 하늘을 반영합니다.

 

▲성경에서 하늘은 세 가지 하늘로 분류됩니다.

*첫째 하늘은 본문 8절의 하늘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리적인 하늘 대기권이죠.

새가 날아다니고 구름이 떠있는 하늘입니다.

이를 유대인들은 ‘첫째 하늘’이라고 불렀습니다.

 

*둘째 하늘은 구름 이외에 넓은 공간, 우주 공간을 말합니다.

해와 달과 별이 있는 광활한 우주 공간도 하늘이라고 불렀는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둘째 하늘’이라고 불렀습니다. 말씀으로 한번 확인해 볼까요?

 

시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여기 하늘은 둘째 하늘입니다. 달과 별들이 있는 하늘 우주 공간을 말합니다.

 

참고로, 창1:15절에 보면 ‘하늘의 궁창’이 나옵니다.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여기 ‘하늘의 궁창’은 어떤 하늘이냐면, 둘째 하늘입니다.

광명체들이 있는 우주, 곧 둘째 하늘을 뜻합니다.

 

*셋째 하늘이 있습니다.

이 하늘은 우주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에 어디에도 있지 않습니다.

이 하늘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늘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영적인 처소입니다.

 

1961년에 세계 최체로 우주비행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돌고 지구로 귀환한 사람이 있습니다. 유리 가가린입니다.

 

그 당시에 소련 공산당 서기관이었던 니키타 후르시초프가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가린이 우주에 다녀왔지만, 거기서 신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신을 믿습니까?’

 

당연하죠. 하나님은 그 둘째 하늘이 아니라, 셋째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편재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는, 셋째 하늘입니다.

 

시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이때 하늘은 셋째 하늘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입니다.

 

계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이때 하늘도 셋째 하늘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적인 거처가 바로 셋째 하늘입니다.

 

흔히 우리가 ‘낙원’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곳입니다. *곧 천국

지금 지금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고,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이 쉬고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인데요.

놀랍게도 살아 있을 때 이 셋째 하늘에 다녀온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고후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바울은 ‘내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셋째 하늘은 천국, 곧 낙원인데,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죽으면, 바로 이 셋째 하늘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궁창은, 더 큰 하늘을 반영합니다.

더 본질적인 하늘, 곧 셋째 하늘까지 반영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 하나님이 일하시는 하늘,

하나님의 보자가 있는 하늘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궁창, 하늘을 통해서 *첫째 하늘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형인 하늘을, 우리가 보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하늘

이것이 둘째 날 궁창, 하늘을 만드신 핵심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를 보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까?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놀랍게도 사람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가 ‘안드로포스’입니다.

이 단어에서 영어 엔쓰로폴로지 Anthropology 가 나왔습니다. *인류학

 

그리스어로 인간을 뜻하는 '안트로포스'는         άνθρωπος

위를 뜻하는 '아나'(ana)와

얼굴을 뜻하는 '프로소폰'(prosopon)의 합성어입니다.

즉, '위를 바라보는 존재',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든 존재'라는 의미를 지니며,

땅만 보는 동물과 달리 영원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존재임을 뜻합니다.

 

풀이하면 ‘얼굴이 위를 향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란.. 위를 쳐다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원래 위를 보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야고보서에서도 들었지 않습니까?

 

약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어디로부터 내려온다고요?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옵니다.

하나님이 계신 위로부터,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내려옵니다.

 

그래서 ‘사람’이란 존재는, 원래 위를 보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는 존재인가, 그렇지 않는가?’의 차이에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구조적으로, 하늘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동물이 하나 있답니다.

돼지입니다.

제가 청년부 때 담임목사님으로부터 들었던 내용인데요.

‘돼지는 목뼈 구조가 15도 이상을 들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답니다.’

 

인간은 하늘을 보는 존재로 만들어졌는데,

돼지는 목뼈 구조가 15도 이상을 들 수가 없어서, 평생 하늘 한 번 못 보고 사는 존재가

돼지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평생 하늘을 한 번 못 쳐다보고, 땅만 쳐다보고 사는 돼지가

하늘을 보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자빠져서 뒤집어지면 그제야 평생 못 보던 하늘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냐면,

위를 바라보지 않고, 땅만 보고 산다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한 번씩 뒤집어 주십니다. 자빠지게 하시고 뒤집어지게 하십니다.

그제서야 못 보던 하늘을 쳐다보게 됩니다.           ☞자빠져서 받은 은혜    주2)

 

정신없이 땅만 쳐다보고 살다가, 그제서야 하늘을 보게 하십니다.

여러분, 뒤집어진 것 같은 위기가 있으십니까?

평탄하던 내 삶이 뒤집어지고, 내 가정이 뒤집어지는 고난이 있으십니까?

 

삶의 문제가 나를 짓눌러서, 넘어지고 뒤집어져서, 절망의 늪에 빠진 분 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보게 하는 시간입니다.

 

△이왕 돼지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하나 더 하겠습니다.

배가 몹시 고픈 멧돼지 한 마리가 숲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 먹지 못해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중입니다.

 

우연히 큰 감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빨간 열매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입을 대보니, 기가 막히게 맛있습니다. 잘 익어서 떨어진 홍시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떨떠름한 도토리와는 비교도 안됩니다.

‘도대체 이렇게 맛있는 게 어디서 왔을까?’ 그래서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주둥이로 아무리 땅을 파도, 다람쥐가 숨겨 놓은 도토리만 나오지, 홍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둥이가 피가 나도록, 계속 파도 또 파도, 홍시가 나오지 않습니다.

 

지친 멧돼지가 그만 벌렁 쓰러져 눕고 말았습니다.

벌렁 눕고 보니, 빨간 것이 눈 앞에 가물거리는데, 나무에 달려있었습니다.

돼지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홍시는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구나!’         주3)

 

▲여러분 이 땅에 좋은 것들이 있지 않습니다. 하늘에 있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골3:1절도 말하는데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어디 것을 찾으라?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어디예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곳’ 바로 셋째 하늘을 말합니다.

‘셋째 하늘을 바라보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골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위를 향하여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을 보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늘을 보고 산다’는 말은, 눈에 보이는 하늘 너머, 셋째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역사와 일하심을 믿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그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땅만 쳐다보면, 답답한 것밖에 없습니다.

땅만 보면, 막혀 있는 것밖에 없습니다. 땅만 보면 외롭고,

또 답이 없고, 대책이 없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을 볼 때, 천지를 만드신 하늘의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천하만물을 만드시고, 오늘도 당신의 뜻대로 운행하고 계시는

절대주권의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못할 것이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들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롬8:28

 

그러므로 여러분, 땅만 쳐다.보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땅 위에 살지만, 땅에 속한 사람으로 살지 말고,

하늘을 바라봄으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사는 은혜와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셋째 날>을 보겠습니다.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둘째 날, 하나님은 물을 가르셨습니다. 일부는 위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었습니다.

일부는 밑으로 내려가서 바다가 되었습니다.

 

셋째 날,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를 나누십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땅이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온 지구를 덮고 있던 물이 한 곳으로 모였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바다라 부르십니다.

 

그리고 ‘뭍이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뭍은 영어로는 dry ground, 마른 땅 곧 육지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지구는 육지와 바다로 되어 있습니다.

오대양 육대주와 많은 섬들로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그렇게 나누셨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여기부터 여기까지야.. ’땅은 여기부터 여기까지야‘

바다와 육지를 나누시고, 각각의 경계와 위치를 정하셨습니다.

시33:7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하나님이 바닷물을 모으셨다고 말합니다.

’태평양은 여기까지야.. 대서양은 여기까지야.. 인도양은 여기까지야‘

이렇게 바다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닷물이 넘실되지 못하도록,

물이 다시 땅을 삼키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잠8: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하나님이 바다의 한계를 정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닷물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경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셋째 날에 바다와 육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 하나님은 만드신 땅에게 선포합니다.

 

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셋째 날 하나님은 땅에서 풀과, 채소와, 나무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11절에 내라 하시니,

12절에 내니 라는 단어에 여러분 표시를 해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땅에 채소와 열매를 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떠한 뜻입니까?

채소와 열매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자연 발생론을 가르칩니다. 자연적으로 생겼다는 이론을 가르칩니다.

어떻게 채소와 식물이 생겼습니까? 세상은 답합니다. ‘자연적으로 생겼습니다.’

땅에서 우연히 땅에서 그냥 저절로 생겼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땅은 그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땅 자체로는 생명을 생산해낼 수 없다는 겁니다.

 

땅에서 식물이 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내라 하시니’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코넬리우스 반담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식물과 관련하여, 창세기 1장은, 땅 자체로는 생명을 생산할 수 없음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직 하나님의 창조적 말씀만이

땅이 모든 종류의 식물을 생산하게 할 수 있다.」 이해가 되시죠?

 

한마디로 땅은 수단이지, 근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먹는 채소, 풀, 열매, 일용할 양식들은..

하나님이 근원이지, 땅이 그 생산의 근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땅은 수단이고, 생산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오늘날 한번 적용해 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양식, 우리의 소득, 일용할 양식은 누구에서 옵니까?

회사에서 옵니다. 사장님이 줍니다.

자녀들 경우 부모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나 혼동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수단이고,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수단을 정하셨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오는 거지, 언제나 수단은 근원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수단이, 근원으로 바뀔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게 있어야 살 수 있지.. 여기서부터 내 일용할 양식이 여기서 오는 거야’ 하면서,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붙잡을 때가 있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여러분 물론 수단이 있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거래처가 있다든지, 안정적인 직장이 있다든지, 공급해주는 부모가 있다든지...

그게 있으면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늘 기억해야 합니다.

수단은 수단일 뿐이지, 절대 근원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땅에게 ‘내라’ 하시기 때문에, :11, 12

그 수단들로부터 내가 먹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 수단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수단을 근원으로 일치시키는 순간,

그것은 수단을 창조주 하나님과 같이 생각하는 우상숭배가 됩니다.

 

△여러분 저는 신대원에 다닐 때, 이 사실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아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대원 들어가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모든 지원이 끊겼습니다.

그런데 그때 깨달은 게 있습니다. ‘아 부모님은 수단이었구나 근원이 아니었구나’

하나님은 다른 수단들을 통해, 저를 입히고 먹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수단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 보고 따라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 좋은 수단이 눈 앞에 보여도, 아무리 좋은 기회처럼 보여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삶을 맡기면, 여러분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소득을 주시는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꼭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넷째 날부터 ~ 여섯째 날은, 공간을 채우는 사역입니다.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은 짧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만 짚겠습니다.

 

▲<넷째 날>은 14절입니다.

 

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넷째 날에는 빛과 어둠을 주관하는 광명체들을 만드십니다.

곧 해와 달과 별들을 말합니다.

해와 달과 같은 광명체 때문에 우리는 계절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날과 해, 연도를 알 수 있습니다.

한 달은 30일, 한 해는 365일로 정할 수 있는 것은, 해와 달이 있기 때문이죠.

 

특별히 징조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뜻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천채의 특별한 현상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일식이나 월식도 포함이 되는데요.

일식과 월식도 해와 달의 운동 때문에 생기는 천문 현상입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이 이치를 몰라서, 하늘이 노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길 징조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광명체들은 넷째 날에 만드셨습니다.

 

▲<다섯째 날>은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를 만드셨습니다.

 

1: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기에 보면 큰 바다 짐승이 나오는데요. 악어, 고래, 상어 같은 동물을 말합니다.

이 큰 바다의 동물과 하늘의 새를 다섯째 날 만드셨습니다.

 

▲<여섯째 날>은 본문 24절과 25절인데요.

 

1: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땅 위에 사는 동물을 만드십니다.

그런데 반복되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어떠한 표현이죠? ‘종류대로’ 라는 표현입니다.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만드십니다.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코끼리는 코끼리대로, 사자는 사자대로, 소는 소대로.. 각각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땅 위에 사는 동물만 아니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도 다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고래는 처음부터 고래였습니다. 독수리도 처음부터 독수리였습니다.

채소와 나무도 다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12절에, 풀은 풀로 존재했습니다. 채소는 채소로 지어졌습니다.

나무는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무슨 얘기죠? 진화론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하등식물이 고등식물로 진화하거나, 하등동물이 고등동물로 진화한 것이 아닙니다.

맨 처음부터 식물은 식물로, 물고기는 물고기로, 하늘을 나는 새는 새로,

동물은 동물대로 만드셨습니다. 그 표현이 바로 ‘각기 종류대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6일의 창조를 하셨습니다.

첫 번째 3일은.. 폼, 플랫폼, 공간을 만드시고,

두 번째 3일은.. 그 공간을 채우셨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적용입니다.

이 말씀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어들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익숙한 표현이었을 겁니다.

 

먼저 둘째 날, 하나님은 물과 물을 나누셨습니다.

하늘을 중심으로 아랫물과 또 위의 물로 나누셨습니다.

 

물과 물을 나누다... 우리는 생소할 수 있습니다. 쉽게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경험한 일이었습니다.

바로 홍해를 건널 때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주셨습니다.

그때 물을 양쪽으로 나누어 쌓이게 하셨습니다.

 

출14:21~22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여러분, 물이 어떻게 됐다고요? ‘그들의 좌우의 벽이 되니’

즉 바다가 양쪽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물과 물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둘째 날 하나님이 물과 물을 나누셨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바로 이 홍해의 사건을 떠올렸을 겁니다.

홍해의 바닷물을 양쪽으로 나누신, 구원의 하나님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롭게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또다시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셋째 날의 창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날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물을 한 곳으로 모으시고, 뭍이 드러나라 하셨습니다.

이 뭍을 땅이라 부르셨는데, 영어로는 뭐라고 했죠? Dry ground 마른 ()입니다.

마른 땅하면 또 뭐가 떠오르죠? 홍해가 떠오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바다를 마른 ()처럼 건넜습니다.  출14:16 *야바쉬

여기 ‘마른 땅’이, 본문 창1:10절 본문에, ‘뭍’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이 ‘뭍’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들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넌 사건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위로를 얻었을 겁니다.

확신을 얻게 되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둘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창조된 것들은,

그들이 하나같이 애굽에서 신으로 섬기던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날 하나님은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고대인들은 이 하늘을, 신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늘조차도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했습니다.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날 하나님은 모인 물을 ‘바다’라고 부르셨습니다.

바다도 애굽의 신이었습니다.

 

또 넷째 날, 하나님은 광명체들을 만드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도 애굽에서는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다른 민족들도 다 마찬가지죠.

 

애굽에서는 해와 달과 별을 숭비하고 예배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들은, 다 자기 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별들과, 자기가 운명을 같이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자기가 누울 자리를 만들되, 자기 눈과 자기 별이 일치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야 죽어서 ‘자기 별’로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점성술 때문에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한 나라가 애굽이었습니다.

 

△또 다섯째 날의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도... 애굽에서는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이집트 신화에서 새는 가장 강력한 신들의 형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애굽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 ‘코르스’ 신이었는데, 매의 형상이었습니다.

또 애굽의 수호신이라고 불렸던 ‘네크베트’ 라는 신이 있었는데, 독수리 형상이었습니다.

 

큰 바다. 짐승도 애굽에서는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나일강의 힘과 풍요를 상징하는 쇼베크 라는 신이 있었는데, 악어 신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실제로 악어를 미라로 만들어 숭배하기도 했습니다.

 

△또 여섯째 날에 땅 위에 사는 동물들도 애굽에서는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동물이 맹독성을 가진 코브라였습니다.

물리면 몇 초 안에 죽기 때문에, 코브라를 두려워하며 숭배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애굽 사람들은 개구리, 파리 등 여러 곤충도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하십니다.

 

애굽에서 신으로 섬겼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만드신 피조물에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셨습니다.

밤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부르십니다.

뭍을 땅이라 부르십니다. 이름을 지어주십니다.

 

일반적으로 자녀의 이름은 부모가, 종의 이름은 주인이 지어줍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어주셨다는 것은, 의도적인 장치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의 부모이며, 모든 만물의 주인임을 의미합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더 이상 이 땅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섬겼던 신들은,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도전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신처럼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돈이 그 사람의 신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권력이, 학벌이, 인맥이 또 어떠한 사람이 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없으면 내 삶이 불행하고, 내 삶이 실패한 삶이라고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들이 여러분의 삶을 결정짓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여러분의 삶을 보장해 주거나,

반대로 그것들이 없다고 여러분의 삶을 불행하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만물의 주인이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경배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분만이 내 삶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살펴본 대로 수단근원을 분별합시다. 구별합시다.

수단은 절대 근원이 아닙니다.

수단근원을 일치시키는 순간, 집착이 시작되고, 두려움이 시작되고, 믿음이 사라집니다.

 

또다시 기억합시다. 하나님만이 내 삶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봅시다.

 

우리는 땅의 것을 바라보고 사는 인생으로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 즉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하늘을 바라볼 때,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볼 때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좋은 선물이, 하나님의 보좌, 위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땅을 볼 때에는, 낙심과 절망, 불평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땅을 쳐다보면, 막힌 것밖에 없습니다. 답답하고 한숨 쉴 일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한 주간을 살아갈 때, 답답한 삶의 문제들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내 인생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 막막하고 답답할 때, 그때 해야 될 일이 무엇이냐면,

바로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늘을 바라볼 때,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봄으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은혜와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작자 미상인 ‘주님의 편지’란 제목의 글이 있어 소개하겠습니다.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오늘 아침 네가 잠에서 깨었을 때, 난 이미 나의 포근한 햇빛으로 네 방을 가득 채워 주었지.

사실 나는 네가 “안녕하세요”하며, 네게 인사해 주기를 바랐지만 넌 하지 않더구나.

너무 이른 아침이라, 나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나 보다고 생각했었지.

 

네가 문을 나설 때, 난 다시 한 번 너의 관심을 끌어보고 싶어 부드러운 미풍으로

네 얼굴에 입맞추면서, 꽃 내음 가득한 향기로운 숨결로 네게 다가갔지.

그리고는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을 통해 내 사랑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단다.

그런데도 넌 나를 그냥 스쳐 지나 버리더구나.

 

얼마 후 난, 네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걸 바라보고 있었지.

정말이지 난 네가 나와도 이야기해 주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단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넌 나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고 계속 네 할 일만 하더구나.

 

오후엔 네게 신선한 소낙비를 보내면서 반짝이는 빗방울로 너에게 신호를 했지.

그것도 모자라 천둥으로 한두 번 소리 지르기까지 했단다.

그리곤 솜털같이 하얀 구름 사이로 널 위해 아름다운 무지개도 그려 보았지.

그렇게 하면 네가 날 쳐다보겠거니 했는데도 넌 나의 임재를 깨닫지 못하더구나.

 

네가 하루를 마무리 지을 저녁 무렵, 난 네게 고운 석양을 보내었고,

그 후엔 나의 별들을 통해 네게 수천 번 눈짓을 보내면서

너도 날 알아보고 한 번쯤이라도 내게 눈짓을 해 주기를 진정으로 바랐단다.

하지만 넌,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더구나.

 

밤에 네가 잠자리에 들 때, 그 때도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난 네 얼굴에 달빛을 비추어 주면서, ‘잠들기 전에 잠깐만이라도 나와 이야기해 주겠거니’

생각했지만, 넌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더구나.

 

난 정말 너무도 마음이 아팠지만 밤새도록 잠든 너를 지켜보면서,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 나에게 반가운 인사를 해 주리라 생각했단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지. 난 네가 나를 네 목자로 받아 주길 바라면서

이렇듯 매일매일 경이롭고 신기한 나의 방법을 통해 나 자신을 너에게 알리고 있단다.

 

네게 대한 나의 사랑은 푸른 하늘보다 더 높고 깊은 바다보다 더 깊단다.

난 네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또 네게 나누어 주기를 원한단다.

제발 내게 소식 좀 곧 전해 다오.

사랑하는 너의 영원한 친구, 예수.」

 

..................................

 

주1) 창1:6절에서 하나님은 왜 sky를 만드셨다고 하지 않고,

expanse(궁창) 를 만드셨다고 성경에 기록했는가요?

 

창1:6절에서 하나님이 하늘(Sky) 대신 궁창(Expanse, 히브리어: 라키아)을 만드셨다고

기록한 이유는, 단순히 푸른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 물 사이를 나누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공간(대기권/우주 공간)을 '확장'하여

'펼쳐 놓으신'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expanse가 ‘확장’이란 뜻

 

라키아(Raqia)라는 단어는 '라카(펼치다, 두들겨 펴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하여

'넓게 펴진 공간', '단단하게 펼쳐진 것'을 의미하며,

다음과 같은 신학적·문맥적 이유로 사용되었습니다.

 

1. "확장된 공간"이라는 의미 강조 (라키아의 어원)

'하늘'을 뜻하는 히브리어 shamayim 대신 Raqia (궁창)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이 무언가를 고체처럼 만드셨다기보다,

혼돈 상태였던 초기 지구의 수증기와 물을 분리하여 확장된 공간을 조성하셨음을 강조합니다.

 

2. 물과 물을 나누는 역할 (질서 부여)

둘째 날 창조의 핵심은 '나눔(분리)'입니다.

궁창(라키아)은 윗물(구름/대기)과 아랫물(지구의 바다)을 나누는 분리대

(Firmament/Expanse) 역할을 합니다.

이는 혼돈(Chaos)에서 질서(Order)를 세우는 창조의 과정을 뜻합니다.

 

3. 대기권과 우주 공간의 형성

많은 번역에서 이를 'expanse'(넓게 펼쳐진 공간)로 번역하는데,

이는 지상에서 볼 때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과 우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 공간을 만들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4. 고대 근동 우주관의 반영

당시 히브리인들은 하늘을 물을 떠받치고 있는 굳건한 돔(dome) 모양의 구조물로 이해했죠.

'라키아'는 이러한 고대 우주관을 바탕으로 하여 물을 막아주고 있는 공간을 묘사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성경은 단순히 '하늘'이라는 단어 대신 '라키아(궁창/궁창)'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혼돈의 물을 나누고, 그 사이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숨 쉴 공간을 '넓게 펼쳐' 질서를 잡으셨음을 기록하고자 한 것입니다.

 

주2) 자빠져서 받은 은혜  (이중표 목사님 설교 중)

 

반포의 좁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데, 어떤 때는 한이 생겼었다.

'교회당만 넓으면, 수많은 청중을 모아 설교하면서, 나도 멋진 목사가 될 터인데....'

 

그러다가 분당 신도시에 6천 평의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 땅을 둘러보니, 그 동안 쌓인 한이

한꺼번에 눈 녹듯 다 풀리고 마음이 시원했다.

 

그 이후로 옛날에 없었던 마음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 넓은 교회 부지를 놔두고 어떻게 죽나? 어떻게 <은퇴>하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목회 열심히 해야지...'

 

그래서 전에 안 하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운동한답시고 배드민턴을 치다가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는데, 깁스를 두 달 동안하고 드러누웠다.

 

'주여, 빨리 낫게 해 주옵소서. 설교하는데 지장이 많습니다..'기도했더니

'너는 자빠져야 하느니라!'는 근엄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주여, 왜 그렇습니까?'

'너는 6천 평의 땅을 가지고, 벌써부터 그 땅에 안주하려고 하느냐?

차라리 자빠져서 하늘을 쳐다보아라!' (누워있으면 자연히 하늘을 보게 됨)

 

없던 땅이 생기고 나서, 거기서 안주하려고 하는 욕심이 생겼는데

자빠져서 드러눕고 나니, 다시 옛날처럼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자빠지지 않고, 하늘을 보게 되시기를 축원드린다!

 

주3) ♣굳어버린 목

어떤 사람이 보니, 그 마을에 큰 재난이 닥쳐오고 있었다.

산에서 큰 산사태가 나서 바위덩이가 굴러 떨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마을에 당도하면 큰 재난이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쳤다.

어서 빨리 피하라고!

 

그런데 마을사람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함치는 것을 중단하고 너무 신기해서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드디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사람들의 목이 너무 굳어있어서

항상 아래로 땅만 쳐다보며 평생 살다가 목이 그대로 굳어버려서,

아예 머리를 쳐들지 못했다.

 

그래서 산을 쳐다보니 못하니까...

재난이 닥친 것도 인식하지 전혀 못하는 것이었다.

우르릉 쾅쾅 하는 소리도 그저 하늘의 천둥소리쯤 여긴 것이다.

 

죄는 지을수록 더 빠져든다고 한다.

세상을 탐닉할수록 더 빠져들어서

나중에는 목뼈와 근육이 모두 굳어져서

세상만 쳐다보지,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전도도 가급적 어릴 때, 젊을 때 해야 한다. (늙은 분은 목이 굳을 확률이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