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수업 1 :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 고후서 5:17-19 | 2026.02.22 | Youtube
◈복음수업 1 :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고후5:17-19 2026.02.22
◑오늘날 ‘복음’의 위기 *4:20초부터 녹취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비난합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1) 첫 번째 이유는,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죠.
교회에서 만났을 때는 그렇게 거룩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환하게 웃으면서 모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합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사람이 집에 돌아가고 직장에 출근하며 친구들을 만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합니다. 신경질을 부리고 짜증을 내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똑같은 사람 맞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향해 위선자라고 비난합니다.
2) 두 번째 비난은, 축복을 원하는 그리스도인은 넘쳐나지만
그리스도와 고난에 동참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다는 거죠.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나의 십자가를 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야성과 함께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과 축복만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죠. 세상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비난의 내용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을 찾아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예수가 되어서
우리의 삶으로 예수님을 보여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예수님을 닮은 구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게 문제라는 것이죠.
4) 네 번째 비난의 내용입니다.
세상 사람보다 교인들이 더 잘 싸우고 더 미워하고 더 용서하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교회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있어야 된다면, 그것은 사랑이겠죠.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오늘날 교회는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잘 싸우고, 더 미워하고, 더 쉽게 삐지고
더 용서하지 않습니다. 한 번 싸우기 시작하면, 끝까지 싸웁니다.
바로 그런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한탄합니다.
5) 다섯 번째 비난의 내용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추구하는 것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돈, 명예, 권력, 출세
바로 이것이 가장 치명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에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똑같거든요.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적어도 세상 사람들은 정직하게 대놓고 돈과 명예와 출세와 권력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면서
뒤에선 종교적인 명분을 들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오해한 부분도 있겠죠.
또는 미디어에서 소수의 잘못을 마치 모두의 죄인 것처럼 과장되게 보도할 때도 종종 있죠.
▲저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오늘날 교회는 왜 이렇게 변질된 것입니까?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을까요?
모든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핵심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넣은 것입니다.
우리가 셔츠를 입을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넣게 되면, 옷 전체가 비뚤어집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넣게 되면
신앙생활 전부가 삐뚤어지고 망가집니다.
기본, 기초공사부터가 부실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신앙의 첫 단추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기본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고, 전파하고, 가르치는 복음이... 부실하거나, 함량에 못 미치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위기에 처해 있고,
또한 여러 비난들을 감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참 많은 사람들이 <복음>이란
그저 기독교 신앙의 입문 과정일 뿐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죠.
‘복음은 기초이기 때문에, 처음에 구원을 받을 때는 필요하지만,
구원을 받은 후에는, 복음으로부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멀어지고,
더 높은 신학적인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과연 그런가요? 아니요. 잘못된 생각입니다. 복음보다 더 높은 진리는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복음보다 더 깊은 깨달음 또한 없습니다.
복음은 신앙생활의 기초일 뿐 아니라, 신앙생활의 본질이고, 핵심이며,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진정한 성숙이라는 것은,
복음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가면 갈수록 복음에서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복음에 깊게 뿌리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은 신앙생활의 본질이자, 핵심이며, 전부이기 때문에,
복음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복음이 신앙생활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자 마지막 단추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복음의 내용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자, 누가 이렇게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지금 이 시간 복음의 핵심 내용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해주세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질문에 과연 뭐라고 답할까요?
단어 선택과 표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아마 절대 다수의 경우 복음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를 수 있으니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갑시다!” |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을 때, 이렇게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도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이렇게 복음의 내용을 전해주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여러분에게 중요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전도의 메시지(위 박스)가,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참된 복음의 내용이 맞습니까?’
‘이 내용이 정말 성경적인가요?’
‘이 모든 내용이 정말 사실입니까?’
네, 얼핏 보면 전부 사실입니다.
이 메시지에서 단 하나라도 틀린 내용이 없습니다.
전부 사실이에요. 철저하게 성경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그러므로 위 전도의 말은, 모두가 사실이고 틀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복음을 전하게 되면, 복음의 본질이 왜곡됩니다.
왜 그런가요?
(그 이유를 설명드리기 전에, 먼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천국에 갑시다!’ 라고 복음을 전한 모든 분들의 노력과 수고를
저는 비하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의 수고와 헌신과 섬김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줄로 확신합니다.
다만 이 시간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조금이라도 왜곡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제 설교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틀린 내용이 하나도 없고 전부 사실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것입니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기 (인간) 중심성입니다.
이렇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으로 복음을 바라보고,
자기중심적으로 복음을 이해하여, 자기중심적으로 복음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성이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된다는 것일까요?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가도록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디자인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드려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가운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고, 목적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가라고 지으심을 받은 존재가,
나 중심적으로,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 잘못입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복음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사람은, 관심사가 단 하나입니다. 무엇일까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혜택(복)이 무엇인가?’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으로 복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혜택이 무엇인가라고 표현을 하게 되면,
너무나 속된 표현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마치 내가 속물이 된 느낌입니다.
그래서 표현법을 종교적으로 살짝 바꿔주는 겁니다.
종교적인 포장지로 잘 포장을 하면,
그래서 종교적인 언어로 이 똑같은 질문을 조금만 바꾼다면, 이렇습니다.
“당신이 예수를 믿으면, 천국행 티켓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 됩니까? 천국행 티켓이 되겠죠.
▲자,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여러분께서 다른 누군가에게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전했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묻는다고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니, 내가 왜 예수를 믿어야 됩니까?’
자,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그 이유를, 그 목적을 뭐라고 설명을 해주시죠?
‘왜 예수를 믿어야 하냐면, 그래야 천국에 가니까요. 우리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그러면 최종 목표, 최종 목적은 천국행 티켓을 획득하는 것이 되겠죠.
그렇다면 이러한 복음의 구도 안에서, 예수님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저 천국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징검다리, 또는 디딤돌 취급을 하는 것이죠.
나는 지금 여기 있는데 천국은 저 멀리 있습니다.
이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나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니,
예수님을 징검다리 삼아, 예수님을 딛고서 예수님을 밟고 지나가서,
나의 최종 목적인 천국에 도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구도 안에서는, 최종 목적은 ‘천국행 티켓’이 되는 것이요,
예수님은 그 수단으로 전락해버립니다.
무엇인가가 잘못돼도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생각 드시지 않습니까?
이 설교의 핵심 주제는,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는데, 복음이란.. ‘예수님이라는 인격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란 인격을 믿고, 그 분과 인격적 교제를 갖는 거죠. 그런데 오늘날 현대의 일각에서는,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인격, 그분의 십자가의 공로’ .. 이런 것의 가치를 생략해 버리고, 예수를 믿음으로써 내가 가지는 혜택, 선물들... 예를 들면, 천국에 가는 것, 구원 ... 이런 결과들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 알맹이를 놓치고, 껍데기만 붙들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잘못됐다는 거죠. (이렇게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되면, 삶의 변화가 그 증거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믿고 있으며,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데, 그렇게 복음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면, 그가 받은 구원도 불확실한 것이 되고 맙니다. |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복음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예를 들어 다시 한번 설명하겠습니다.
「옛날 옛적에 한 거지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소녀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훨씬 더 많이 있었습니다.
건강 상태가 너무나 나쁩니다.
그래서 만약에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이 소녀는 이번 겨울을 지나지 못하고
결국에는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나라의 왕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이 소녀를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왕궁에 돌아왔는데도 그 소녀가 뇌리에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계속 떠오릅니다.
그래서 왕은 한 가지 중요한 결심을 합니다.
‘내가 이 소녀를 불쌍히 여겨서, 이 소녀와 결혼하리라’
여기서 이 소녀가 뭐 대단히 절세미인 이었다고, 꼭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핵심은, 왕의 자비와 긍휼에 있는 것이지, 소녀의 미모에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여러분이 못생긴 여인을 한 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핵심은 왕의 자비와 긍휼의 선택이니까요.
게다가 이 소녀는 성격도 못되고 아주 괴팍합니다. 건강상태도 아주 나빠요.
한마디로 이 소녀가 왕의 신부로 선택된 유일한 이유는, 왕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사랑받을 만한 자격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전적인 은혜로, 왕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왕의 신부로 선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왕이 신하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가서 소녀에게 전하라. 이 기쁜 결혼 소식을!’
소녀의 삶에 있어서 이거보다 더 기쁜 소식, 더 좋은 소식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 멍청한 신하 메신저가, 이 아름다운 소식을 달려가서 이렇게 전했다고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왕과 결혼하면, 너의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서 왕궁에서 살 수 있으니,
빨리 왕과 결혼하세요」 *왕궁은 천국을 상징
정말 어처구니 없지 않습니까?
아니 세상에 이 아름다운 메시지를, 왜곡해도 이렇게 왜곡시킬 수가 있을까요?
왕이 누구인지, 왕의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얼마나 무한한지,
왕의 관심과 계획과 비전과 꿈이 무엇인지,
왕과 동행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단 하나의 초점은 ‘왕과 결혼함으로써 네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왕궁이다’
하는 거예요. *왕과의 인격적 관계의 소멸
자 그런데 만약에 말입니다.
이 소녀가 이렇게 반응을 했다고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 그래? 왕과 결혼하면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왕궁에서 살 수 있단 말이지?
그러면 내가 한번 시원하게 왕과 결혼해 줄게!’
소녀는 왕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채,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 누락
왕으로부터 내가 얻어낼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지에만 초점을 맞춰,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정상적인 결혼 생활일까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위 내용이 전부 사실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다 사실이에요. 왕과 결혼하면, 소녀는 가난에서 벗어나 왕궁에서 살겠죠.
위 이야기에 단 하나라도 틀린 내용이 있습니까? 없어요. 전부 사실이에요.
틀린 내용이 하나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메시지를 이런 식으로 전달하게 되면,
왕의 의도를, 왕의 메시지를 (복음을) .. 완전히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왕궁에서 살 것이냐?’가 아니라,
왕과의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왕과 소녀의 결혼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로지 ‘내가 결혼하게 될 그 왕으로부터, 내가 혜택만을 챙겨 먹겠다’는 것이
만약 소녀의 결혼의 본질입니까? 결혼의 핵심입니까? 결혼의 목적입니까?
그것은 결혼의 핵심도, 본질도, 목적도 아닌 거죠.
혹시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 메시지는,
이같이 알맹이 빠진 복음을 우리는 선포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바로 위 이야기는, 오늘날 선포되고 있는 복음의 메시지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렇다면 어쩌면 말입니다.
우리는 왜곡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복음을, 성경적인 구원관을,
우리는 정확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확립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복음, 참된 구원관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 화면을 통해서 다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천국 가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보니,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
이게 그게 그거인 것처럼 들리십니까?
언뜻 보면 굉장히 내용이 비슷한지는 모르겠으나,
사실은 이 두 개의 메시지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점이 과연 무엇일까요?
목적의식이 다릅니다.
무엇을 목적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천국 가기 위해 예수님을 믿겠다’는 것은, 최종 목적이 무엇이죠? 천국행 티켓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수단으로 전락해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보니 천국에 가게 됐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 목적이.. 예수님 자신이 목적이 되는 거예요.
즉,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고마워서 그 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니까, 그 분의 계명을 자원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과의 교제를.. 내가 좋아하고, 누리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니, 주님이 계신 천국에까지도 가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는 축복이 되는 것이죠.
여러분, 주객이 전도되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자연히 천국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구원관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렇게도 말을 할 수가 있겠죠.
“왕궁에서 살기 위해 왕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왕과 결혼하고 보니 왕궁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왕(예수님)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그냥 왕궁 생활이 좋아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여, 나도 왕을 너무나 사랑하여,
왕과 결혼하고 보니까... 어디서 살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왕궁에서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혹시 이런 질문을 하게 될 수도 있겠죠.
그러면 우리가 전도할 때, ‘천국’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말아야 되나요?
아니요. 우리가 전도를 할 때는, 비신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메시지를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전도폭발'에서도,
그리고 일상 전도 훈련에서도 ‘천국’에 대한 설명이 있지 않습니까?
전도할 때, 천국에 대해서 꼭 설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최고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천국을.. 신앙생활 하는 주된 목적으로, 잘못 설명하시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자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일 천국행 티켓이 구원의 목적이 아니라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참된 구원의 목적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 목적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이게 복음의 핵심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예수님과의 관계 설정, 혹은 관계 회복이 구원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고후 5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것을 어떠한 개념으로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죠?
고후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하나님과의 화목’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게 된 것이, 하나님과 화목해 되는 것이요.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지상명령의 본질은,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여, 모든 나라와 민족과 족속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주님과 화목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부터 <관계 회복>이 목적이었지, <천국행 티켓>이 목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참으로 애석하게도,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목적으로 예수님께로 나올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자기중심적으로 복음을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죠.
(자기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 중심으로.. 복음을 믿고 있는 거죠)
▲그래서 처음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워넣게 되어, 자기중심적으로 복음을 적용하게 된다면
이런 사람들은 앞으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게 될까요? 정확하게 이렇게 하면 됩니다.
주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하셔도 돼요.
왜 그럴까요?
자기 중심적으로 복음을 이해한 사람의 최종 목표가 무엇이었죠?
천국행 티켓이었어요.
그러면 어느 시점에서 그 최종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까? 언제 천국행 티켓이 주어지죠?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한 10년 정도 열심히 봉사해야
그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천국 시민권을 주십니까? 아니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시점에서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천국 시민이 됩니다.
(*이것도 값싼 은혜로 예수 믿은 사람은, 자기가 천국행 티켓을 얻었다고 착각하는 거죠)
그러면 최종 목적을 다 달성했잖아요.
그런데 나한테 뭘 더 바라는 거예요? 내가 도대체 뭘 더 해야 됩니까?
이제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죠. 나는 최종 목적(천국 티켓)을 다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에서, 예수님의 은혜가 고마워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게 되면,
그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가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섬기고, 봉사하며 살게 됩니다.
만약 이게 없다면... ‘지적 동의, 값싼 은혜’로 예수를 믿게 된 거죠.
▲그런데 냉혹한 현실을 보자면,
초신자의 삶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굉장히 복잡해집니다.
왜냐하면 초신자 주위에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일제히 다 그에게 달려와서
‘이제부터 교회생활을 잘해야 된다’고 권면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교회로 질질 끌려 나갑니다.
초신자가 ‘이 정도만 하면 되지 않겠나’ 싶었더니, 이건 웬걸
이제는 성경공부에도 참석해야 되고, 기도 모임에도 나가야 되며,
주중예배도 나와야 된다는 겁니다. 또 특새가 있으니까 초청한다고 말을 합니다.
참 점점 힘들어지겠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제는 헌금도 내야 된다고 합니다.
근데 헌금의 종류는 또 왜 이렇게 많은 것입니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니까, 이제는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봉사하고 섬겨야 된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내 휴가와 내 돈을 내서, 단기선교여행을 다녀와야 한다고 하니,
미치고 펄쩍 뛸 노릇입니다.
그래서 초신자들이 아마도 이렇게 말하겠죠.
‘잠깐만요. 저는 이런 거 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 예수 믿고 천국 가자고!
그래서 저는 천국 가려고 예수를 믿었어요.
저는 이미 목적을 달성했는데, 무슨 요구사항이 이렇게도 많은 것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초신자들에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그동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이렇게 말해주죠. 상급을 거론합니다.
‘아휴 그래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천국에서 상급이 있을 테니까요.’
자 그러면 초신자들은 뭐라고 응수를 하죠?
‘저기요. 됐거든요. 집사님이나 상급 많이 받으세요.
저는 턱걸이로 천국에만 가면 됩니다.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저는 지옥만 안 가면 돼요.’
(이게 복음을 애당초 잘못 제시하고, 애당초 복음을 잘못 믿은 결과죠)
▲실제로 저에게 이렇게 비슷한 말을 했던 중고등부 학생이 있었습니다.
제가 중고등부 전도사 시절에, 한 학생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목사님이 그러셨잖아요. 예수 믿고 천국 가자고.
그래서 저는 천국 가려고 예수 믿었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요구사항이 많나요?’
그래서 저는 상급의 개념으로 동기부여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줬죠.
‘자, 잘 생각해 봐. 네가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전도사님 집은 너무 넓고 멋진 맨션이야. 그런데 너의 집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라면,
굉장히 슬프지 않겠니?’
그랬더니 이 학생이 저에게 딱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전도사님 집에 가서 놀고 먹고 잘래요.’
천국이에요. 제가 가르친 학생이 저를 찾아왔는데, 뭐 문전박대 하겠습니까?
저는 더 이상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이죠?
애당초 기독교 신앙이,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 사랑의 관계, 그 관계의 회복(화목)임을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모든 신앙생활이 율법적이고, 무거운 짐처럼 느끼게 된 거죠!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이렇게 복음의 메시지를 잘못 전하게 되면,
중학생의 질문에도 할 말이 없어지는구나’
▲그런데 우리가 잘 생각을 해보면, 실제로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전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결국 사회적인 압력에 의해서라도, 이제 교회를 나오고,
또 교회 생활을 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봉사를 할 때도 있고, 가끔 특새에 나와주실 때도 있으며,
헌금 생활도 하고, 선교여행 가시는 분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적으로 (지적 동의로) 신앙 생활에 발을 내디딘 사람은,
이 모든 봉사와 섬김과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마음의 중심에 품고 있는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자, 이 질문은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되는 질문입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마다, 그들은 빠짐없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문해봅니다.
그리고 어떤 답이 나오는지에 따라서
무엇인가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또 한다면 얼마나 열심히 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되는, 이 가장 중요한 질문은 과연 무엇일까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혜택이 되지?’
처음부터 예수님께 왜 나아왔습니까?
혜택을 얻으려고... 처음부터 자기 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넣은 사람은,
교회 생활을 하고 신앙생활을 한 지 10년, 30년, 50년이 지나도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복음의 첫 마디는 회개 https://rfcdrfcd.tistory.com/15974268
물론 그런 혜택이 꼭 물질적인 혜택(복)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열심히 봉사하고 섬김으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박수를 쳐준다면
‘와 저 사람 봐 정말 성실한 일꾼이야.. 저 사람 꽤 괜찮은 사람이야’ 라는
타인의 좋은 평판을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원한 혜택이 될 수도 있겠죠.
그 혜택이 크면 클수록 열심히 봉사하고 섬깁니다.
그 혜택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점점 건성으로 섬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혜택이 사라지면 삐집니다. 시험에 듭니다.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교회를 언제든지 떠날 수도 있습니다.
이 교회는 혜택이 너무 적다고 판단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생활하고, 교회생활을 하게 된다면,
신앙생활의 목적 자체가 무엇이 될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그의 신앙생활의 목적이란, 내가 인정받고, 내가 인사받으며, 내가 혜택을 얻어 (복을 받아)
나와 내 가족의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 그러다가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폭로해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생활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내용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세계선교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도 있겠죠.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기도 내용을 살펴본다면, 절대다수의 경우, 가장 큰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장 간절히, 아주 자주, 아주 오래, 가장 끈질기게,
가장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내용이 무엇이죠?
한마디로 ‘나와 내 가족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입니다.
‘내 자녀들은 명문대에 척 합격하여, 출세하고 성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사업은 번창케 하여 주시옵소서.
더 많은 재물을 우리 가족에게 주시옵소서.
우리 가족은 무병장수하여, 이 세상에서 좀 더 안락하고 폼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교회는 점점 더 병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되겠죠.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구원받은 성도가 아닙니다.
자타에 의해서 구원 받았다고 착각할 수는 있겠죠)
그 결과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도,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시키기는커녕
세상이 교회를 세속화시키기 시작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계속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비난하겠죠...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제는 그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넣은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이자 핵심이며 전부인 복음을,
처음부터 잘못 이해하여, 잘못 적용하게 되면, 교회는 병들어지고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주어지겠죠.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복음이 아니라면,
정말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정한 복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더 자세하게 다음 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복음 수업’은 다음 주에도 계속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