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2ㅣ슬픔과 긴장 사이, 환한 얼굴 전8:1-15 - YouTube
◈슬픔과 긴장 사이, 환한 얼굴 전8:1~15 2026.02.22.
◑지혜와 표정 (얼굴이 환한 것이 지혜입니다)
입으로 아무 말 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의 얼굴은 많은 말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표정만 보고도 ‘요즘 무슨 일 있으세요?’
신기하게 알아맞추기도 합니다.
전도서 8장은 표정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8:1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이 누굴까요?
8:1b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여러분 ‘지혜가 있어야 사나운 얼굴이 변한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의 평소의 표정의 디폴트(기본값)가 ‘사납다’ 라는 겁니다.
여러분, 누굴 만나서 일부러 웃지 않을 때,
평소의 여러분 표정은 어떤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요즘 영어로 ‘데스크 페이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책상 앞에서 컴퓨터를 보고,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 멍하게 있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을 찍어 보면, 격무에 시달리면서 미간이 좁아지고, 입꼬리가 쳐지고,
눈빛이 흐릿해지는 상태... 굉장히 화난 얼굴이 많다 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피부관리를 잘 안 하면, 얼굴이 상하죠.
온갖 먼지와 땀을 지워내야 되는데... 더 치명적인 것은 화장품이라고 합니다.
화장품이란 잘 보이려고, 예쁘게 보이려고 하는 노력인데,
이걸 적절하게 지워내지 않으면, 피부에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죠.
여러분, 남에게 잘 보이게 하는 노력이 내 얼굴을 망가뜨리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화장품 때문에 더 '화난 얼굴'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감정노동... 모든 사람이 서비스업 종사자가 아니어도,
모든 사람이 얼마간 감각을 감정노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친절한 척, 착한 척, 잘하는 척 하고 살아가야 되니까요.
그러니까 평소에 막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니까, 혼자 있을 때는 얼굴이 무너져 내리는 거죠.
혹은 ‘생존을 위한 공격적 마스크’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의 뇌는,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자기도 모르게 경직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한테 말 걸지 마.. 나 건드리지 마, 나 지금 예민해..’
이런 신호를 보낸다는 거죠. 이게 모두가 긴장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극도의 긴장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 있습니다.
8:3~4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4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누가 그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
‘왕 앞에서 물러나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왕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가를 가르치는 걸 볼 때,
이 사람은 최고위직에 있는... 대단히 출세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 자리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되는 자리 라는 거죠.
말 한마디로, 자기가 평생 쌓아온 것이 다 무너질 수 있고,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직종입니다. 극도의 긴장이 계속 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환한 얼굴로 살 수 있다면... 대단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스트레스와 긴장 가운데 살아가십니까?
직장에서 사회생활하면서, 겨우겨우 웃는 얼굴로 표정관리하면서 살아가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도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What are you doing?’
이라고 물어볼 수 없다는 거죠. 8:4
여러분 직장생활이 그렇지 않습니까?
‘너는 뭐하느냐?’ 이 말은, ‘니 뭐하노? 무슨 짓이야?’ 이 말이에요.
왕 앞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는 거죠.
직장에서 상급자나 동료 앞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는 거죠.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기 표정관리하면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그래서 집에 와서는, 나도 모르게 화내고, 짜증내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보기에
‘우리 아빠는 늘 힘들어 보이고 피곤해 보여요.’
‘우리 엄마 얼굴은, 웬지 짜증 가득한 얼굴이예요’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전도서 8:1절은 ‘지혜와 표정’에 대한 말씀을 하는데
8장에는 ‘극도의 긴장 가득한 삶’을 말하고요.
그 앞에 7장은 ‘슬픔’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게 좋다고 했어요.
7장에는 슬픔,
8장에는 긴장,
그 사이에 8:1절이 ‘환한 얼굴’을 말하고 있습니다.
슬픔과 긴장 사이에서 '환한 얼굴'을 말하고 있습니다. *설교 제목 및 주제
우리는 때로 슬픈 얼굴을 마주해야 합니다. *7장
이 세상에 이렇게 슬픔이 가득한데... 여러분 그 슬픔을 일부러 슬퍼하란 말이 아니고요.
슬픔이 있을 때 그 나의 슬픔, 이웃의 슬픔을 외면하지 말아야 된단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슬픔에 들어가다 보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요.
슬픔을 마주하고 살다 보면, 집에까지 가져오는 거죠. 슬픔에 눌려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말을 많이 듣기 때문에
꼭 스스로도 상담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목회자들에게도 나름대로 해결하는 통로가 있어야 됩니다.
상담자에게 상담자가 필요하고, 목회자에게 목회자가 위로자로 필요한 거예요.
멘토라고 할 수도 있죠.
여러분, 피부를 그냥 두고 관리 안 하면, 사나워지듯이... 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서는 전반적으로 두 가지 말이 동시에 나오죠.
-지혜가 정말 소중하다는 말도 나오고,
-어떤 면에서는 지혜가 별 소용없다.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다... 하는 말도 나와요.
그래서 ‘지혜 그거 가져서 뭐하냐?’ 싶은데,
다 차치하고 이거 하나, ‘지혜가 있으면 우리가 환한 얼굴로 살아갈 수 있다’
이것만 붙잡아도, 우리가 지혜를 가진 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혜 가지고 싶지 않습니까?
스킨케어, 소울케어 둘 중에 뭐가 중요합니까?
네 soul care입니다.
여러분, 현대인들은 스킨 케어를 위해서 얼마나 돈도 많이 쓰고, 시간도 많이 투자하십니까?
그게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고요.
스킨 케어는, 잘해야 스킨케어로 끝나지만,
소울 케어는, 잘하면 스킨까지도 케어가 된다는 거예요.
건강도 관리가 된다는 겁니다. 그게 오늘 말씀이에요.
영혼이 평안한 사람이 건강할 수 있고요. 결국에는 안색도 좋아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지혜가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멘토가 있었죠. 선지자 사무엘, 나단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위로자가 있었습니다.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내 한계를 벗어나는 일은, 그대로 받아들일 때, 평안(환한 얼굴)이 생깁니다
다윗도 극도의 슬픔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범죄하여 낳은 아기가 죽게 되었습니다. 작은 쾌락이 엄청난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짧은 즐거움이 긴 과오와 후회를 남겼습니다.
아기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 아기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다윗은 죽어가는 어린 생명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처절하게 기도합니다.
음식도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아기가 죽습니다.
신하들이 말을 못합니다. ‘임금이, 아기가 살아있을 때에도 그렇게 슬퍼하셨는데,
극단적으로 힘들어하셨는데... 아기가 죽었다고 하면, 아마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실 거야...’
큰일 났습니다. 임금 앞에서 말을 잘 못합니다. 말을 안 해도 공기가 느껴지잖아요.
‘그 아기가 죽었느냐?’
‘황공하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때 눈물을 닦고, 단정히 옷을 입고, 밥을 가져오라고 해서 먹습니다.
신하들이 대단히 의아해 합니다.
삼하12: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 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내가 아기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내 한계죠.
아무리 노력해도 내 손을 떠났다는 거죠.
그 한계를 인정하는 지혜! 거기서 오는 평안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슬픔이 없어서, 다 정리가 돼서, 내 상황이 괜찮아서,
기도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내 한계밖에 있는.. 이미 내 손을 떠난.. 이미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때... 거기서 오는 겸손, 바로 거기서 오는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교만하면, 교만한 만큼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겸손하는 자에게 평안을 주실 줄 믿습니다.
헛된 것을 좇아다니며 살아가는... 바람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아이 같은 사람이 있는 거죠.
8:7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냐?’
8:8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
1) 장래 일을 주장하여 움직이게 할 사람이 없고
2) 바람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움직이게 못 하고,
3) 죽는 날을 주장할 (자기 마음대로 변경할) 사람도 없고,
4)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
이거 네 개가 전부 다, 왕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8:4절과 연결되었다고 볼 때
이것들은 내 한계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 왕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는 거죠.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세상에 자신의 무력감을 가장 뼈아프게 실감해야 하는 사람들이.. 왕일 거예요.
왕의 말이나 결정 한 마디면, 일이 다 될 것 같은데.. 그게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전7장에서는, 슬픔을 늘 슬퍼하라는 말이 아니고요.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라’
즉 ‘기쁠 때 기뻐할 줄 알고, 슬플 때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그 슬픔을 이기고 일어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여서,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7:14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시는 줄 믿습니다.
나는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여호와를 경여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그랬습니다. 1:7
‘여호와를 경외함’ .. 거기에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늘 얼굴이 환합니다.
▲구약에 아주 비슷한... 왕 앞에서 긴장하고 두려워했던 사람이 나옵니다.
느2:1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 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이 말은, 그냥 평소에 아무 걱정 없이 살았다 해피했다는 말이 아니고요.
평소에는 근심이 있어도 ‘왕 앞에서 표정을 잘 짓는.. 나름대로 표정관리를 잘 했다’는 거죠.
그런데 2절에 보면요.
느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이렇게 느헤미야가 왕 앞에서 극도의 긴장된 삶을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긴장을 헤치고, 느헤미야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4절에 나옵니다.
느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내 위에 왕이 있습니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에요.
그 위에 또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신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모르면, 나는 극도의 긴장 때문에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 위급한 상황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내 눈에는 왕이 전부인 것 같지만, 그 위에 계신 하나님 앞에, 내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하늘의 하나님께 잠깐 기도하고, 느헤미야가 계속 말을 이어갑니다.
전8:3절에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라는 말에는,
앞서 전5:2절에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하는 말이
강하게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왕, 권위자가 있고요. ‘급하게 하지 마라’ 하는 똑같은 말이 나오죠.
우리 눈에 보기에 아무리 강한 권력, 무소불위 처럼 보여도,
그 위에 하나님의 권위가 있다는 겁니다.
그 궁극적인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살아갈 때에,
우리는 그 어떤 두려움과 긴장 가운데서도
자신을 (표정 포함) 관리할 수 있는 지혜를 부여받게 될 줄 믿습니다.
그게 느헤미야죠.
◑‘신앙적인 메타 인지’
여러분 요즘에 아이들 공부시키면 자주 듣는 말이 ‘메타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메타 인지’란, 위에서 보는 시각을 뜻하는데,
문제 한두 개 잘 푸는 것보다,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이건 내가 왜 모르지?’
‘이렇게 자기 스스로를 위에서 보듯이 내려다보는 시각이 있는 게 진짜 지혜다’...
이런 말을 많이 하잖아요.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 그런 말을 했습니다.
위에서 보는 시각!
여러분 내가 지금 왕 앞에 납짝 엎드려 있고, 나는 정말 벌레만큼 약한 존재고,
내 앞에 압도적인 힘을 가진 왕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하늘의 하나님이 위에서 보시면, 거기서 거기라는 거예요.
왕도, 신하도...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평소에 그럴 때가 있잖아요.
뭐 조그만 거 가지고 자존심 내세우고... 밀고 당기고 막 하다가 지나고 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하고 스스로 우스울 때가 있지 않습니까?
별 거 아닌 것 가지고 자존심 세우고..
고함지스로 화내다가 더 손해보고... 관계 상하고요...
근데 이 ‘메타’가 후회라는 말도 있고, 위에라는 말도 있습니다.
위에서 보면요... ‘아휴, 조금만 지나면 후회할 일을 왜 저렇게 하시나?’
‘조금만 지나면 그냥 걱정 안 할 일을, 뭘 그렇게 걱정하고, 전전긍긍하고 두려워하나?’
그게 여러분, [신앙적인 메타 인지]입니다.
메타 인지를 설명하는 사람들이,
메타 인지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지휘자는 직접 악기를 연주하지 않지만,
각 악기 파트의 주의력과, 작업기업과, 집행기능 등을 다 종합해서
최적의 타이밍에 화합을 이루도록 지휘합니다.
그러니까 악기 하나, 바이올린, 트럼본 하나만 연주하는 사람하고 다른 거죠.
전체를 보는 겁니다.
이는 메타 인지가 개별적인 인지 기능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목표지향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도록,
‘오케스트레이션 - 전체를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런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이 나라, 저 나라, 왕도, 신하도 다 있는 거예요.
온 우주를 ‘오케스트레이션(지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왕이라도 맘대로 안 되는 게, 세상 일입니다.
하물며 우리 각 개인 일이, 어떻게 내 맘대로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지혜로운 자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환한 얼굴 표정을 가집니다.
개인적으로 이 메타인지가 제대로 된 사람한테는,
왕권도 하나의 (메타인지의) 대상이 됩니다. 객관화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왕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행한다.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 말할 수 없다’ 라고 말하지만 8:3~4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 왕의 권력 자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보는 거예요.
여러분, 왕은 다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언제까지일까요?
그렇잖아요. 헤벨.. 다 헛되다 그랬잖아요.
왕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그 순간은 화려해 보이지만,
이미 여러분, 이 전도서는 1장에서부터 그 왕의 종말과 죽음,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 넘어가는 허무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5장에서 기억나십니까? ‘왕도 밭의 소산을 받느니라’ 5:9
이것은 ‘권력의 비신화화’라고 할 수 있어요. *왕은 신이 아님
왕이 대단한 신적인 존재같이 보이지만,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왕도 그냥 안 먹으면 배고프면, 땅의 소산을 먹고 살아야 되는 사람 중에 하나,
피조물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살면서도, 긴장 가운데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전도서가 ‘모든 것이 헛되다’ 라고 말해서, 허무주의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혜에 이르는 길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성공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헤벨(텅 빈)이라 부르겠다.’
세상은 저 권력을 절대자라고 부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그것도 있다가 사라지는 아침 안개에 불과하다는 거죠.
▲여러분 이스라엘은 본래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갖춰야 될 제일의 덕목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었어요.
여러분 이 인생의 한계와, 이 법칙 가운데서 벗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8:15~16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전자는.. 먹고 마시고 그날을 즐거워할 수 있는 그 능력과,
후자는.. 엄청난 권력, 세상 전부를 통째로 가져도...
여러분, 후자가 전자보다 못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그랬는데,
여러분 왕이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왕은 모든 사람을 명령내려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갑니다.’
그 왕이 밤에 자리에 누웠습니다. ‘잠아 와라’ 하면 잠이 올까요? 안 돼요.
그 왕의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도 못하는 게 있다는 겁니다.
그게 결정적으로 인생에 중요하다는 겁니다.
▲다음 주일 삼일절 예배 본문이 에스더서인데,
에스더서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에6:1 ‘그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왜 잠이 안 왔을까요?
낮에 낮잠을 많이 잤을까요? 커피를 많이 마셨을까요?
그래서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6:2
6:3 ‘왕이 이르되 이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직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왜 잠을 못 잤을까요? 왕이 평소에 잠이 잘 올까요?
나를 암살하려 하는 사람이, 측근 중에 있을 수 있어요.
여러분, 이 페르시아 제국이 대단한 것 같지만,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는 거죠.
암살 사건이 일어날 뻔 했잖아요.
여러분, 지금 사업 잘 하십니까? 든든하다 그러지만,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우리의 안전이라는 게, 성공이라는 게 본래 그래요.
그 암살 계획을 모르드개가 고발했는데 어떻게 상을 줬냐? 안 줬대요.
여러분, 말이 됩니까? 그 왕의 목숨을 살렸는데
당연히 제대로 보고하고, 조치해야 되잖아요.
기본적인 상벌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나라...
이 신하들이 능력이 모자란 거예요, 충성심이 없는 거예요. 그만큼 허약하다는 겁니다.
세계적인 제국이라 하더라도, 따지고 그 속에 들어가 보면, 이만큼 허약하다는 겁니다.
시편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에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시127:1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127:2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
사랑하시는 자에게 뭘 주신다고요? 평안과 샬롬을 주신다는 겁니다.
왕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죠. 정책도 수립하고, 동네에 다리도 놓고,
논밭도 하사해주고, 관직도 수여하고요. 크게 잘못하는 사람은 사형시키기도 하고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어요.
왕이 할 수 없는 게 (평안한 잠을 주는 것) 있는 겁니다.
▲세조(수양대군)도, 자기 맘대로 못 했습니다.
하물며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요즘에 단종에 대한 영화가 나왔어요.
그래서 세조 수양대군, 한명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 왕을 만든 남자, 조선을 움직인 권력자 한명회의 인생 이야기.
한명회는 세조 수양대군의 신하. 그가 왕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한 킹 메이커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던 수양대군 세조는,
조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캐릭터의 왕이었습니다. 자기 멋대로 했죠.
그런데 세조가 왕으로 있으면서, 계속해서 시달립니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꿈마다 나타나가지고, 계속해서 자기에게 저주를 퍼붓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자기 아들 의경세자는 20살에 죽었고,
손자 그때 원손이었던 예종의 아들이 3년 만에 죽습니다.
예종도 즉위한지 1년 만에 죽습니다.
왕에게 이런 비극이 생기면, 사람들이 애석해 해야 되잖아요. 세조를 불쌍히 여겨야 되잖아요.
그런데 온 국민들이 ‘저거 봐라 잘됐다.. 고소하다. 벌받았다’ 그렇게 말합니다.
세조가 나중에는 자려고 하는데, 죽은 아들이 나타나서 아버지를 원망합니다.
그리고 몸에 지독한 종기와 피부병이 나타나죠.
그래서 온양온천과 절로 다니면서,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보냈는지 모릅니다.
마침내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세조실록>이 전합니다.
「내가 차례를 어기고 외람되게 비기를 이어받았으나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으나)
재주가 없고 덕이 없어 이제 다시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비기 : 왕의 지위
그 무도하던 세조가, 그 교만하던 수양대군이,
이렇게까지 낮은 자리로 내려와서야, 자신의 연악함을 고백하는 거예요.
여러분, 결국에는 인간은 죽기 전에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겸손해지는가요?
여러분, 그것이 (겸손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경외의 자리로 나아가면,
두려운 하나님뿐만이 아니라,
나를 안아주시는 사랑과 자비, 인자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겸손하게 되고, 비로소 예배가 되어집니다.
◑그래서 왕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의 빛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 얼굴이 환해 집니다.
여러분 신약의 축도가 나오잖아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13:13
이 신약의 축도에 비견되는 구약의 축도가 있습니다.
민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아버지 학교’에 가면 이거 다 외우고요.
매일 이 말로 아이들 축복해주도록 훈련 받습니다.
얼마나 좋은 축복인지 모릅니다.
예배는 그런 겁니다. 근심의 발걸음으로 왔지만,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빛난 얼굴,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평강을 받아서 돌아가는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 감사제목이 참 많은데,
많은 분들이 방문해서 ‘예배 분위기가 참 밝습니다’ 라고 말씀들 하세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해요.
힘들고 지친 얼굴로 교회에 와서는,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면
얼굴 표정이 바뀌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그런 것도 한번 (동영상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금은 그저 제 상상인데요...
‘이렇게 1시간 예배를 드린 후에, 성도님들의 표정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하나님 은혜를 주시면요. 표정이 펴지고, 눈가에 웃음이 맴돌고,
힘들어도 ‘그래도 살아보자’ 하며 소망과 용기를 얻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스킨케어보다 더 중요한 소울케어요, 자기 돌봄의 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배는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심을 경험하는 거에요.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순간에!
여러분, 야곱이 그랬잖아요.
‘내가 형님의 얼굴을 보니까, (인생의 모든 걱정이 다 녹아내리던 그 순간에)
하나님의 얼굴을 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 가운데, 이런 은혜 주시는 줄 믿습니다.
밝은 얼굴로 웃으면서 예배당을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요즘에 교회들마다 아주 큰 고민이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데,
유튜브로 예배해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어떠세요?
안 된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요. 대단히, 정말 대단히 힘듭니다.
여러분 유튜브로 예배드리면, 설교 내용을 잘 듣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버거워요.
자꾸 산만해지잖아요. 다른 소리도 들리잖아요.
근데 정말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고 바라보고...
그 얼굴을 마주하는 은혜는, 대단히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유튜브로 Live 예배 중계 하지 말아야 되나?’ 하는 고민까지 있습니다.
그럴 수는 없는 게, 사실 우리 교회는 코로나 이전부터 온라인 중계 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분도 계시고, 어떤 사정 때문에 교회 못 나오신 분도 계시기 때문에,
온라인 중계를 중단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 듣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하나님 얼굴이 주시는 평강,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를 놓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게 의무 이전에, 내가 나를 돌보고, 내가 스스로 사는 길이에요.
‘집에서 예배하니까 편하고 좋네...’ 그게 아니라, 주의 얼굴을 대하는 은혜를 누리는,
그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모세의 영적 유산을 안고, 여호수아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요즘 기도하고 있는데요.
여러분 여호수아 시대의 전략, 상황 파악도 중요하지만,
모세의 영적 유산이 없으면 교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34: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누구라고요?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대면이 뭐예요? face to face 얼굴을 보여주신다는 거예요.
내 얼굴이 하나님 얼굴을 만난다는 겁니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듯이,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얼굴을 대하면, 그러면 내 얼굴이 바뀌어요.
모세는 하나님이 많은 은혜를 주셔서, 너무너무 얼굴에 광채가 빛나서,
어떻게 했습니까?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려야 될 정도였어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그것이 구약의 이야기이고, 신약에 오면 더 놀라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후3: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모세가 정말 대단하지만, 그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모세 얼굴의 영광, 광채.. 금방 사라져버리고 말았다는 겁니다.
▲고후4:16절은 예수님의 광채를 말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아멘!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빛이 있으라’ 어디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천지창조 때에 나온 말씀이죠.
모든 것이 캄캄하고 혼돈했지만,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 주실 때에
이 세상에 질서가 생겼듯이, 생명이 생겼듯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어디에?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신 줄 믿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능력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선포될 때에, 이 세상이 그렇게 어두운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영광의 광채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아무리 어두워도, 여러분의 마음이 아무리 어두운 가운데
이 예배의 자리에 나왔어도,
하나님이 얼굴을 보여주시면, 우리의 삶이 그 영광으로 빛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입니다.
천지창조 직전까지 모든 것이 혼란과 혼돈 가운데 있었습니다. 창1:2
우리의 삶도 그럴지 모릅니다. 뒤죽박죽입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될지 모르는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은혜 주시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주시면,
그 모두가 하나님 능력 안에서 정돈될 줄 믿습니다.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그 얼굴이 빛나는 것입니다. 빛이 안 날 수 없습니다.
전도서 7장에는 슬픔이 나왔습니다. 8장에는 긴장이 나왔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주신 은혜와 지혜가 있다면, 이 슬픔과 긴장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빛나는 우리 얼굴로, 환한 우리 얼굴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그 영광을, 세상에 보여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