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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1장 한 영혼을 살리는 편지

LNCK 2026. 3. 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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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을 살리는 편지 (딤전 1:1-2)   2026.03.01

 

◈한 영혼을 살리는 편지             딤전1:1-2              2026.03.01.

 

“한 영혼을 살리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디모데전서 주일 강해 설교를 시작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디모데의 입장과 심정이 되어서

주님의 위로와 권면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디모데전서는 사도바울이 1차로 로마에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뒤에,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을 다니다가,

에베소에 남겨둔 디모데에게 보낸 개인적인 목회서신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의 한 사람에게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정성껏 그를 권면하고 멘토링을 했는지를 볼 수 있는 책인데요.

 

저희 올해 표어가 뭐죠? ‘한 영혼을 살리는 교회’입니다.

‘Every soul matters to God 모든 영혼이 하나님께 소중하다’

그래서 이 디모데전서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오늘은 인삿말 부분인 1:1절과 2절을 보겠는데요.

1절에서는 이 편지의 발신인인 사도 바울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자기소개를 합니다.

2절에서는 신앙 안에서 디모데와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또 축복의 인삿말을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리면, 사람과의 관계가 열리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면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어려워지게 돼 있어요.

 

언제나 인생을 살아보면,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교회에서도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이거든요.

일은 아무리 많고 어려워도, 관계가 좋고 팀워크가 좋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제 관계가 어려워지면, 작은 일에도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의욕을 상실하게 되죠.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열려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딤전1: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우리 구주 하나님’ 

사도 바울은 상당히 신학적 관점을 갖고 서신을 썼기 때문에,

왜 하나님께 ‘구주’라는 표현을 썼을까 궁금합니다.

 

‘구주’는 주로 예수님께 쓰죠.

우리가 보통 찬양할 때도 ‘내 구주 예수를’ 이런 찬양하잖아요.

 

로마 박해 시대에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서로 암호처럼 사용했던 것이

‘물고기’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익투스라는 단어예요.

IXTUS 이예수스 그리스투스 테우 휘오스 소테르    *헬라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우리가 익숙한데,

‘구원자 하나님, 구주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죠.

 

그런데 신약적으로 보면 익숙하지 않은 표현인데,

구약적으로 보면 굉장히 보편적인 표현이었어요.

 

사43:3a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그래서 구약에 하나님이 ‘백성의 구원자가 되신다’ 이 표현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주1)

 

이걸 좀 정리해보면,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구원의 계획을 디자인하셨고,

성자 그리스도께서 그 구원 계획을 십자가 위에서 실행하시고 완성하신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성령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감격을 날마다 체험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죄인된 나 한 사람을 온전히 구원해서,

하나님 사람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주시니까 너무나 감사한 거죠.

 

제가 ‘구주 하나님’이라는 이 부분을 묵상하다가, 세 가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데

구주 하나님께서 나를 무엇으로부터 건져 주셨는가요?

 

1) 첫 번째는 구주 하나님께서 나를 죄악에서 건져내십니다.

청년 사울로 적용해 보면, 이 청년 사울은 아주 교묘한 죄악에 빠져 있었어요.

왜냐하면 이 사람은 유대율법주의에 사로잡혀서, 자기 의와 영적 교만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의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감시하고, 비방하고, 투옥하고, 처형을 하잖아요.

그럼 세상이, 자기가 생각할 때 옳은 일을 하면 좋아져야 되는데, 세상이 좋아져요?

그런다고 세상이 좋아지고 세상이 밝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어려워지잖아요.

 

그래서 청년 시절의 사울은, 의인인 척하는 죄인이었어요.

자기는 의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악인이었어요.

 

제가 사무엘상 30장을 2주 동안 설교하면서, 똑같은 결론으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과도한 이상론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도한 이상론 주로 누가 빠질까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에요.

다른 사람보다 기준이 높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이상론을 갖고 얘기하는데,

그러다 보면 그것 때문에 관계가 깨지고, 공동체가 깨지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울은 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근데 극단주의라는 것은, 어떤 사상이든 간에 익스트림하게 뭔가를 주장하는 것은,

이거는 일종의 이상론인 거죠.

 

인간이 이상론을 현실로 만들 능력이 있는가요? No

인간이 자기의 힘으로 스스로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나요? 없어요.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이상적이지를 않기 때문에,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직 완전하신 하나님만이 온전한 세상을 세우실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의의 기준, 내가 갖고 있는 이상론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다 보면, ‘나는 옳고 사람들은 다 틀렸다’는 거죠.

 

문제는 그 ‘자기 의’가 교묘한 악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정을 무너뜨리고, 공동체를 무너뜨리게 돼요.

 

가정에서도 나만 혼자 열심히 살아요. 교회에서도 나만 열심히 해요.

일터에서도 나만 열심히 일해요.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만 이 나라 걱정을 혼자 하는 것 같아요.

 

만약 여러분의 심리 안에 이런 생각이 있다면, 나만 의롭다는 자기 의에 빠져있는 거예요.

이 self-righteousness 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심각한 죄입니다.

 

하나님이 청년 사울을 여기서 건져내신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나중에 고백하잖아요.

‘나는 죄인들 중에서 괴수입니다’ I'm the worst of the sinners.

‘죄인들 가운데서도 나는 최악의 죄인이었다’는 거예요.

이거를 깨우치고 나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찬양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2) 두 번째, 구주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서 건지시는가요? 낮은 관점에서!

제가 왜 ‘낮은 관점’이라는 표현을 썼냐면,

낮은 관점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처럼 저 높은 천상의 전망대에서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땅에 붙어서 살아가기 때문에, 관점이, 뷰포인트 자체가 낮은 거예요.

 

제가 최근에 상담을 하면서 느낀 건 뭐냐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에서 자꾸 사람들과 부딪힐까?’라는 거예요.

 

여러분 ‘어깨가 부딪힌다’는 표현을 쓰죠?

좁은 공간 안에 있으면, 지하철이나 승강기에서 타인과 어깨가 부딪히잖아요.     주2)

 

그런데 키가 큰 사람하고 작은 사람은, 서로 어깨가 부딪혀요? 안 부딪혀요?

안 부딪히게 돼 있어요. 왜냐면 어깨 높이가 서로 다르니까요.

 

그래서 죄송한 얘기지만, 자꾸 여러분이 누구랑 부딪히면, 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수준이 (높이가) 다른 사람은, 서로 부딪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집안에서도 부모하고 자식간에는, 싸움이 일어나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냥 하염없이 사랑스럽고 하염없이 불쌍한 거거든요. 그만큼 격차가 크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사무엘상 초반부를 보면 어린 사무엘이 성소에서

이 아이가 제사장들을 돕는 보조 역할을 합니다. 심부름꾼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엘리는 대제사장이니까, 이스라엘 종교 공동체의 수장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엘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었어요. 그런데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요.

그럼 누가 영적인 뷰포인트, 관점이 높겠어요? 어린 사무엘이 관점이 훨씬 높은 거예요.

 

왜냐면 엘리 제사장조차 하나님이 어떻게 보고 계시고, 어떻게 하실 건지를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의 전망대까지 끌어올려서,

엘리를 보게 하시고, 세상을 보게 하시거든요.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에서 내가 막내라서, 여러분 일터에서 내가 신입이라서,

교회에서 내가 새가족이라서... 아니에요. 여러분이 그 포지션일지라도,

하나님의 관점이 열리면, 누구도 여러분을 흔들어 놓지 못합니다. 그는 절대로 위축되지 않아요.

 

왜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전망대 위에 세우시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망대’에 서는 가장 중요한 비결 중에 하나가 기도입니다.

 

자녀들이 새학기가 시작이 되었잖아요. ‘넌 공부만 해라, 성적만 잘 받아라’

여러분 이렇게 좁은 관점, 땅의 관점으로 아이를 키워놓으면,

결국에는 관점도 좁아지고, 낮아지고,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돼 있어요.

아이에게 하나님의 거시적 관점을 보여줘야 됩니다.

 

이제 봄이 되어, 공동체와 순예배가 시작 되고, 이제 새학기가 시작이 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인생의 최저점에 서 있을지라도,

순식간에 영적인 최고점으로 우리를 이동시키시는 강력한 힘, 그것이 기도인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잖아요.

그러니까 뭐 가는 곳마다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득한데도,

그냥 기도를 하다 보면... 평상시에는 어깨가 부딪히겠지만,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쫙 그의 포지션을 올리시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그저 불쌍한 사람들로 보이게 되는 거예요.

 

△제가 어제 ‘3.1절 나라사랑 기도회’ 하면서, 우리 자녀들도 많이 왔는데

도산 안창호 선생님에 대해서 연구를 하다 보니까,

선생님이 물산장려운동도 주도하시고, 독립운동도 여러 분야에서 주도하셨거든요.

 

그런데 도산께서 놀라운 얘기를 하셨어요.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 않고, 일본이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원한을 품은 2천만(조선사람)을

억지로 자신들의 국민에 포함시키는 것보다는, 

우정이 있는 2천만을 이웃 국민으로 두는 것이, 그들에게 득이 되지 않겠느냐?’

 

여러분 만약에 그 일제강점기에 정말 모진 수모를 당하고 수탈을 당하고 억압을 당하잖아요.

그러면요. 사람의 마음 가운데 그들을 미워하고 분노가 일어나게 돼 있다고요.

 

근데 안창호 선생님은 정말 신앙인답게 높은 관점에서 바라본 거예요.

‘일본 사람도 선하고 좋은 것을 몰라서 저렇게 악한 짓을 하고 있구나’

이게 그냥 보이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관점이 열리면, 원수를 색다른 관점으로 보게 돼죠.

여러분이 분노에 사로잡히고 어깨가 부딪히면, 인생이 피곤해지게 돼 있어요.

고통스럽게 돼 있고 영혼이 메말라 가게 돼 있다고요.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으로 조망하게 되면, 여러분 안에 참된 자유와 평강이 임할줄 믿습니다.

 

3) 세 번째는 ‘구주 하나님’께서 나를 모든 환란에서 건지십니다.

원수가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를 든다면, 한국 양궁이 세계적인 실력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 양궁의 탑 포지션, 탑 랭킹을 흔들기 위해서

세계양궁협회에서 여러 가지 대회 새 규정들을 만들고, 기본 규정들을 계속 변경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그 덕분에 나라들마다 양궁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 되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대회에 나가서 꼭 이겨야겠다’ 이런 좁은 마음을 가지는 게 아니라,

‘양궁이 잘 됐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가진 양궁인이라면,

‘온 세계의 나라들이 양궁에 대한 애착과 실력이 향상되면 좋겠다’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1장에 보면 그런 마음을 가졌죠. 빌1:16~18

게다가 한국 양궁 선수들은 최고의 실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규정 바뀌는 거에 별로 영향을 안 받아요.

 

여러분, 세상이 흔들면, 나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생인가요?

아니면 그 흔들리는 세상 가운데서, 절대자 하나님이 나를 건져내셔서,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내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인가요?

이게 우리의 소망인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정말 많은 공격을 받았잖아요.

유대인들, 또 유대 율법주의 교사들, 이방인들...

이방인 통치자들과 총독과 관리들이, 하여튼 그가 가는 곳마다 괴롭혔어요.

 

그런데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제가 오늘 ‘구주 하나님’ 이 얘기를 계속하는 것은,

지난 겨울에 직장인들 여럿을 상담을 했는데, 다들 사표를 품에 품고 살더라고요.

‘이거 당장 던지고 싶어!’

 

제가 볼 때는 그 조직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헌신하는 중간관리자인데,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도 치이면... ‘아 그만두고 싶다. 사표 던지고 싶다’

이런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러나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것은 주님에 대한 초점과 사명에 대한 집중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죠.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하는데 단 52일 걸렸어요.

두 달도 안 됐어요. ‘물론 큰 성읍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함께 공사했으니까

불철주야 일하면, 그 정도 기간이면 할 수 있겠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분 예루살렘 성벽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무너진 이후로, 몇 년 만에 세운 거예요?

140년 만에!

예루살렘은 그들의 심장 같은 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은 그들이 항상 사모하는 도시였습니다.

그 무너진 140년 동안, 그 도시를 재건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런데 동서남북에 있는 이방민족들이 끊임없이 그들을 압박하고 위협하고,

조금만 뭐를 재건하려고 하면 조롱하고 괴롭히고...

그 140년 동안 있었던 사람들은, 외부에서 흔들면 다 흔들린 거예요.

 

그런데 느헤미야는 흔드는데 안 흔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52일 만에 지은 거예요.

여러분 세상이 나를 흔들어서 흔들린다?’ 아니요! 그건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잖아요.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초점이 흐려지고,

자기 사명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흔들리는 거예요.

이게 안 흔들리면, 여러분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상담하면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뭐냐면,

‘목사님 제가 예배드리면 영혼이 살아나는데, 현장에 가면 다시 또 무너집니다.

다시 또 흔들립니다.’

 

왜 삶의 예배가 필요할까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그냥 교과목 수업만 하고 공부만 하면 되지,

‘무슨 학교 중보기도 모임을 해? 야, 너 그런 거 하지마!’

‘바쁜데 무슨 아침 일찍 무슨 큐티 모임을 간다고 그래?’

 

여러분 아이들에게 이게 불필요한 걸까요?

여러분이 일터에서 ‘하프타임 워십, 일터 예배’를 세우는 게 불필요한 걸까요?

 

여러분 우리가 ‘내가 이 경쟁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돼!’ 이러고 살면,

운신의 폭은 계속 좁아진다고요.

 

그런데 여러분이 거시적 하나님의 관점을 갖고, 그 공동체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품고,

여기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지로 여기면,

여러분 누구도 여러분을 흔들 수 없는 평안함과 담대함이 생길 줄로 믿습니다.

 

▲자 1절을 다시 한번 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

1절에서 하나님께는 ‘구주’라는 단어를 쓰고,

예수 그리스도께는 ‘소망’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왜 일까요?

 

여러분 신학적 맥락에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망권세에서 다시 살아나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부활 소망을 주셨기 때문이에요.

 

자 그런데 ‘부활 소망’ 그러면, 예수님이 정말 부활 소망만 우리에게 주신 것일까요?

이 땅에서는 내가 힘들고 어려운데,

저 내세에 갈 때, 천국문 들어갈 때는 어깨 펴고 들어간다는 얘기뿐일까요? No

 

여러분 현세에서 승리하는 소망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요16:33b절 읽어볼까요. ‘세상에서는 너희가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땅에서는 위축돼서 살다가, 천국가서 어깨 펴는 게 아니고요.

여러분 이 땅에서도 이미 주님이 승리하신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부터 어깨펴고 사는 거예요.

 

벧전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 Living hope 이 있게 하시며’

 

산 소망’ Living hope

이것은 살아있는 현재 진행형의 소망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인해, 우리를 어떻게 하셨다고요?

거듭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소망이다무슨 얘기냐면,

이 부활 소망은 미래형 소망 뿐만 아니라, 그 부활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그 생명의 능력으로 거듭남으로 인해서, 이 땅에서 넉넉하게 승리할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소망을 가졌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러므로 예수님은, 천국문을 입성할 때만 소망되시는 게 아니라

이 땅의 현실에서도 소망이 되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이겼다’는 건, 세상에 두려울 게 있다는 거예요.

사람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죽음이거든요.

 

여러분 공황장애 이게 뭐에 대한 두려움이에요? 죽을까 봐 두려운 거예요.

여러분 학교에서 일터에서 세상에서 ‘내가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

내가 이러다가 무너지는 거 아니야?’ 다 죽음에 대한 감정,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문제를 뛰어넘게 되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어요. 자유해지게 돼 있어요.

할렐루야! 여러분 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액션 영화 좋아하는데, 액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내가 ‘어떻게 목사가 사람 때려죽이는 영화를 좋아하냐?’ 그래요.

 

‘아니 나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래요. 여러분, 액션 영화를 보면 사실 말도 안 되는 게... 주인공만 살아남잖아요.

무슨 상황이 벌어져도, 어떤 공격을 당해도... 주인공은 살아남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액션 영화의 결말 같은 거예요.

사탄이 집중포화로 공격을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걸 다 이겨내십니다.

그리고 사망권세를 뚫고 부활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액션 영화로 만든다면, 이건 말도 안 되는 영화인데

그런데 주님이 그걸 이뤄내심으로, 우리에게 부활 소망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거를 딱 깨닫고 나니까, 사도바울이 낡은 종교와 율법주의를 내려놓는 거예요.

자기의 지식과 언변을 내려놓고, 자신의 로마인이라는 신분도 내려놓은 거예요.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도 다 내려놓은 거예요.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사도 바울의 소망이 되신 거예요. 할렐루야!

 

내 인생의 유일한 자랑, 내 인생의 유일한 소망,

내가 살아갈 이유, 내 평생의 꿈과 비전이 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어찌 주님께서 그를 사도로 보내지 않으시겠어요?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1

명령을 따라 사도가 되었다... 명령이라는 단어가 나오죠.

 

헬라어로 명령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여러 단어예요.

그런데 오늘 이 분문에 쓰인 명령은, 신약성경에 딱 7번만 사용됐더라고요.

‘위로부터의 결정’이라는 뜻입니다.

 

가끔 여러분 회사나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위에서 결정한 겁니다’ 이런 얘기 하잖아요.

마치 운동팀의 감독이 선수 선발에 대한 전권, 선수 스타팅 멤버를 결정하는 전권을 갖듯이

인생에 대한 전권은 하나님이 갖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주권적 섭리로 우리를 부르시고 명령하셔서,

‘네가 이 길을 가는 것이다’ 하고 정하세요.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후회하심이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후회를 한다’ 그건 이상한 거예요.

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정말 인생이 180도 바뀐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후회를 안 하기 시작합니다.

 

후회를 왜 하는 줄 아세요? 후회는.. 사람이 선택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내가 왜 이 학교를 선택했지? 내가 왜 이 일을 하겠다고 했지?

내가 교회에서 이 힘든 직분을 왜 하겠다고 했지? 내가 이 결혼을 왜 했지?’

이렇게 ‘내가 왜 했지?’ 하잖아요. 그건 후회로 남게 되죠.

 

근데 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하나님이 나를 콜링하시는, 부르시는 길을 따라서 순종해서 가니까,

인생이 중간에 힘들 때가 많죠. 결혼생활 27년 해오면서, 가끔 힘들 때도 있었죠.

 

그런데 저는 후회가 안 되더라고요. 이걸 번복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더라고요.

왜요? 하나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면,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 길을 계속 가는 겁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면서, 여전히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 들어갈 때, 1년 전에 (고3때) 이미 하나님께서 몇 점으로 어느 대학, 어느 과를

갈지 제게 알려주셨다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깨닫게 된 게 있어요.

 

여러분, 일생일대 우리 자녀들에게 대학 입시는 너무너무 중요하잖아요.

제가 알게 된 건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는 상황에 따라,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는 것이구나’ 할렐루야!

 

본문 1절에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내가 사도가 됐다’

제가 온누리교회 있을 때, 사역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26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하나님, 저에게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선교사를 하라고 해도 가겠습니다...’

아내가 심심하면 가끔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당신 여전히 선교사 갈 마음이 있지?’

제가 ‘주님이 부르시면 어디든지 가지!’

 

그런데 제가 제 마음 가운데 단 한 가지, ‘그러나 나는 개척교회는 안 하겠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갑자기 '개척교회를 하라'고 하시잖아요.

그게 부르심이니까 제가 바로 순종했죠.

 

여러분 부르심을 따라가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부르심을 따라가는 인생 길이 복된 길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책임질 수도 없는 선택을 스스로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간다’

내가 원하는 대학, 내 성적에 맞는 대학을 가는 게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이 있는 대학을 가는 것이고,

연봉에 따라서 나에게 높은 직책을 준다고 해서 그 직장을 가는 게 아니라,

부르심을 따라 직장을 가는 것이고,

편안하고 화려한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이 있는 결혼을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부르신 그분이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회개는 있을 수 있는데, 내가 부르심을 따라가다가도 잘못할 때가 있거든요.

그때 회개는 할 수 있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딤전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참 아들’

사도바울이 참 아들이라는 표현, My true son 이라는 표현을 딱 두 번 썼어요.

제가 통독 때 ‘디디 브라더스’라고 부르는데, 디도에게도 같은 표현을 썼었죠. *딛1:4

 

사도바울의 오른팔, 왼팔이 있었습니다.

오른팔은 디모데, 왼팔이 디도였어요.

이 두 사람에게만 ‘참 아들’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왜냐하면 예수님도, 당신의 아들 형제들과 어머니가 찾아오셨습니다.

그랬더니 ‘누가 내 어머니며 누가 내 형제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나의 형제자매고 나의 어머니다’ 이렇게 대답하셨죠.

 

여러분 이제 순 개강을 하는데, 저는 여러분이 1516교회 안에서 믿음의 가족,

믿음의 동지들을 만나시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물론 교회에 대한 상처가 있을 수도 있고, 공동체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나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나서, 하나님께서 참된 공동체를 체험시켜주셔서,

치유가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만남은, 2차 선교여행 중에 일어났어요.

사도행전 16장에, 가능성 있는 청년 디모데를 만나게 돼요.

 

행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저희가 작년에 터키에 성지순례를 할 때, 이강근 박사님이 원래 경로상에 없었는데

굳이 루스드라, 거기를 찾아가셨어요.

도로도 굉장히 불편한 지역인데, 그래서 거의 저녁 때쯤 루스드라에 있는 암굴교회에

저희가 도착을 해서, 그 어두운 그 암굴교회 안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는데,

 

저희 어센트 청년부 담당이 김 디모데 전도사님이에요.

디모데 전도사님이, 자기 영적 고향에 왔다고, 막 뜨거운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디모데 고향

 

디모데의 이름의 뜻은 티마오테오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 그대로 신실한 가문의 자녀였어요. *티메(경외) + 테오스(하나님)

 

외할머니 로이스도 신실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어머니 유니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하고 어머니가 성경으로 신앙교육을 시켰어요.

 

이걸 어떻게 알까요? 딤후3:15절에 ‘(네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거니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어머니가

히브리어 구약 성경, 타나크라는 성경으로 아이를 말씀 양육을 한 거예요.    주3) 타나크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러죠. 여러분 어렸을 때 부모의 신앙 교육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고 아버지가 이방인이면, 아이가 유대인이에요.

그런데 어머니가 이방인이고, 아버지가 유대인이잖아요. 그럼 아이는 이방인이에요. *모계전통

 

어머니의 신앙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예요.

어머니들, 사명감을 가지십시오. 매우 중요합니다.

 

게다가 이제 행16장을 보면, 모든 성도에게 칭찬을 받는 아주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어요.

그러나 제가 바울의 일생을 볼 때마다 ‘왜 디모데였을까?’

사도 바울은 왜 디모데를 가장 중요한 수제자로 선택을 했을까요?

너무 의문이 많이 드는 거예요.

 

왜냐하면 바울과 디모데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바울은 열정형의 불굴의 의지를 가진.. 기질로 하자면 담즙질,

이 담즙질은 탱크같이 밀어붙이는 사람이에요.

 

불굴의 의지로 그냥 다 돌파해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에너지 레벨이 너무 떨어지는 거예요.

내향적이고... 어디를 가면 혼자 구석에 앉아있고,

이런 모임이 있으면 ‘어디가 제일 안 보일까? 기둥 뒷자리가 없을까?’ 가급적 구석을 찾죠.

 

제가 우울기질로 태어난 사람이거든요. 디모데가 너무너무 이해가 잘 되죠.

게다가 예민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디모데, 둘은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매치예요.

 

서로가 틀린 부분이 있는 게 아니라, 서로의 다른 점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상처가 생기고,

결별의 이유가 되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여러분 탱크같은 추진력으로 세계 선교를 당대히 이뤄낸 사도바울 입장에서 보면,

저 구석에서 위축되어 있는 디모데를 보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여러분 나중에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생기잖아요.

고린도전서16장, 고린도후서13장.. 왜 이렇게 길게 쓴 줄 아세요?

고린도 교회가 문제를 많이 일으켜서... 그래서 덕분에 우리가 좋은 말씀을 많이 듣게 됐어요.

 

그런데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를 먼저 보냈겠어요?

오른팔 디모데를 먼저 보냈다고요.

그런데 디모데는 마음이 소심한 사람이에요.

고린도는 항구도시이고, 사람들이 거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거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켰으니까, 디모데가 제대로 해결을 못 했죠.

 

그런데 디도는 강단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번에는 왼팔 디도를 보냈어요.

디도는 해결을 했을까요, 못했을까요? 해결을 금방 해냅니다.

 

그래서 여러분 디도서는 3장밖에 안 돼요.

디모데전후서가 왜 10장이겠어요? 하여튼 디모데는 걱정이 많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옥 같은 말씀이 많아진 겁니다. 잔소리하느라고!

 

자 이렇게 디모데는 주도적 리더십이 부족한데,

더 놀라운 결정은 사도바울이 당시 초대교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대형교회였던 에베소교회의 담임 목회를 누구에게 맡겼어요?

디모데에게 맡겼다는 거예요.    주4)

 

그리고 맡겨놓고는 또 걱정이 되니까, 디모데전서를 써서 보내고, 또 디모데후서를 보내고...

두 통을 합해서 10장씩 써서 보내고...

사도 바울의 개인서신으로서는 최대 분량입니다.

 

왜요? 애정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바울에게 디모데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가장 걱정되는 사람이었어요.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늘 걱정이 되는 사람은 누구십니까?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가 워낙 성도들도 많을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도 이교도 문화가 굉장히 강력했던 도시이고,

또 그 에베소 교회 안에 나이가 지긋한 연로하신 장로님들도 많이 계시고,

또 유대 지역하고 가까워서 율법주의 교사들이 너무나 많이 판을 치고 다녔고...

 

그러니까 디모데가 뭐 사방에서 치이는 거예요.

늘 위축이 돼서 목회를 하고, 나중에 위장병이 생기고 그랬습니다.

 

나이는 어리고 경험은 미숙하고, 또 심리적으로는 굉장히 위축돼 있는 이 디모데를 생각

하기만 하면 바울이 저절로 눈물이 나고, 저절로 기도가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어떻게 보면 우리 자녀들, 우리 가족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고

또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서 중보기도 할 때 생기는 마음입니다.

 

△저는 사실 저희 두 아들을 별로 걱정하지 않는 편이에요.

워낙 잘 알아서 자기 인생을 살기 때문에.

 

그런데 저희 큰아들이 자대 배치를 받아서, 몇 달째 군복무를 하고 있는데

얘는 상남자 스타일이어서, 어려움이 있어도 금방금방 잘 헤쳐 나가요.

그러나 군복무로 고생하는 걸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제가 잘 마음이 아프고 그러지 않거든요. 근데 좀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리고 큰아들이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저희가 벤쿠버에서 4, 5년 사역하고 한국에 왔는데, 그때가 9월이었어요.

그러니까 한국은 2학기잖아요.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반에 들여보냈는데,

애들이 이미 다 친해져 있는 상태에서, 어디 캐나다에서 전학왔다 그러니까,

학급 애들이 그냥 얘는 따돌리는 거예요. 그냥 자기들끼리 친하니까...

 

그러면서 또 그때는 학교에서 나이 든 여선생님이, 긴 자를 들고 다니면서,

말 안 듣는 애들을 ‘등짝 스매싱’을 하는 거예요. 캐나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애가 그 반에 앉아서 친한 애도 없고, 선생님은 무섭고...

그런데 그렇게 위축돼 있는 그 아이를 보면서, 제가 아무것도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 나가야지...

 

제가 학교에 가서 ‘얘들아 우리 아들하고 좀 친하게 지내주겠니?’

그리고 ‘선생님. 그 자 좀 내려놓으세요.’ 이럴 수 없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녀들 바라보면서, 애들이 정말 힘들고 안타까울 때

여러분 그거 다 일일이 해결해 줄 수 있나요?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저절로 기도가 나오는 거죠.

‘하나님 이 아들과 함께해 주십시오’

 

△그래서 바울은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부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

그 얘기는 ‘하나님, 이 아들과 함께해 주십시오’ 이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근데 사도바울이 원래 13개 서신 중에 ‘은혜와 평강’만 얘기합니다. 원래 긍휼은 없어요.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만 긍휼이 들어가요.

 

은혜는 자격이 없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뜻하죠.

평강은 존재적인 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인생에,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절대적인 평안이죠.

 

‘은혜와 평강’ 이 순서가 한 번도 뒤집어진 적이 없어요.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조건 없는 한량 없는 은혜가 체험되어야만, 평강이 찾아오게 된다는 거예요.

 

‘나는 왜 이렇게 인생이 늘 불안불안할까?’

여러분 그것은 은혜 체험을 하면,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주일 예배 한번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평상시에 말씀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찬양을 많이 들으세요. 찬양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공예배와, 개인 예배, 기도에, 은혜가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1:2

자 그런데 유독 디모데에게는 ‘긍휼’을 하나 더 붙였어요. 이유가 뭘까요?

불쌍하니까! 걔는 생각만 해도 불쌍하거든요.

 

근데 이게 상상을 해보세요. 불쌍한 상황이 아닙니다.

당시에 사도바울이 다니면서 정말 수십 개의 초대교회를 세웠는데,

그 초대교회들 중에서도 가장 큰 대형교회가 에베소교회예요.

 

그 에베소교회에 담임 목사를 하고 있는 디모데가 불쌍한 거예요.

그가 위장병을 앓으면서, 마음이 위축돼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그 아들같은 디모데가,

너무 걱정이 되는 거예요.

 

▲저희가 이번에 이집트 성지순례 때도, 최초의 수도자, 은둔자이자 수도자,

‘사막교부’라고 이야기하는 성 안토니우스 수도원을 갔어요.

중세에 수도원들이 많았잖아요.

 

여러분 수도사들이 하루 종일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위해서

가장 많이 한 기도가 뭔지 아세요?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Lord, have mercy on me!’입니다.

‘주여, 제게 하나님의 긍휼을, 하나님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have pity on me!’

이 기도를 하루에 200번씩, 300번씩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강한 척을 한 등 무슨 유익이 있겠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셔야 소망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긍휼이라는 것은 여기서 구원의 언약에 기초해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자비, 구약적인 단어로는 헤세드 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 하나님 베풀어주시는 자비인 거예요.

불쌍히 여겨주시는 마음!

 

그러니까 사도바올이 디모델을 놓고 이렇게 기도하는 거죠.

‘하나님 이 아들(디모데)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일 뿐만 아니라

평생을 복음사역에 헌신한 하나님의 사람 아닙니까? 이 아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 기도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때, 여러분의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여러분이 중보기도하는 믿음의 지체를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 그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내가 평생 이 사람 다 돌봐줄 수 없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하나님이 친히 돌봐 주옵소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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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구원하다’ : 히브리어 ‘야샤’는

출14:30, 민10:9, 신20:4, 22:27, 28:29 등 구약에 총 206회 나옴

 

 

주2)

한국 문화는 이게 그저 넘어가는 일인데, 서구 문화는 아주 기분나빠 합니다.

서구인이 서울 관광와서 제일 기분나빠하는게, 길에서 몸, 어깨 부딪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한국인은 사과도 하지 않고 슥 지나가버리니, 더욱 황당하다는 거죠.

 

주3) 타나크란?

히브리어 구약 성경인 타나크(TaNaKh)를 활용한 자녀 말씀 양육은 유대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 방식이며세대를 이어 신앙과 정체성을 전수하는 핵심입니다.

타나크는 토라(Torah율법), 네비임(Nevi'im예언서), 케투빔(Ketuvim성문서)의

머리글자를 딴 것입니다

 

주4) 에베소 교회의 초기 담임목사(감독)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도 바울 (Paul the Apostle): 에베소 교회의 개척자입니다. 제2차 전도여행 때

기반을 닦고 제3차 전도여행 시 에베소에 3년간 머물며 직접 목회했습니다.

 

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Priscilla and Aquila): 바울의 전도여행 동역자들로

바울이 떠난 후 에베소 교회를 일시적으로 돌보았습니다.

 

3) 아볼로 (Apollos):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웅변가로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며 가르쳤습니다.

 

4) 디모데 (Timothy):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담임(감독)으로 세운 바울의 믿음의 아들

이자 동역자입니다. 전통적으로 에베소 교회의 초대 감독(목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 사도 요한 (John the Apostle): 디모데 이후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와서 말년을 보내며

에베소 교회를 지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