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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26장 평강으로 지키리라

LNCK 2026. 3. 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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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으로 지키리라                   사26:1-7                  2000.07.30.

 

수천년 동안 적대관계에 지켜온 두 민족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랍과 이스라엘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야세르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수상인 에흐드 바라크가 미국에 메릴랜드주에 있는 캠프데이비드 미국 대통령 별장

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평화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만남 자체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무려 15일 동안이나 긴 회담을 거쳤지만은

아무 결실이 없이 헤어집니다. 헤어질 때 "샬롬"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나라 인사하는 말이 같습니다. "샬롬"하고 악수를 하고 헤어집니다.

 

이 중동은 항상 이렇게 큰 전쟁의 불씨를 안고 있어서

성경도 이 지방에 대하여 예언하면서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무서운 전쟁을 말합니다.

이 중동전쟁의 연장상에서 아마겟돈전쟁이 있어지는 게 아닌가

그렇게까지 많은 성서학자들이 걱정을 하는 그런 전쟁의 불씨를 안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애를 썼지만은 평화회담은 결렬됐습니다.

이제 또 다른 방법으로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샬롬" 그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어디에 진정한 평화가 있는 것입니까?

 

▲<인간의 평화 상태를 무너뜨리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P자로 시작하는 대표되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1) Passion for Pageantry 자기과시 라는 욕망입니다.

자기 자랑입니다. 꼭 그래야 될 필요가 없는데 참 이상하게도 개인적으로도 자기를 높이려고,

민족적으로도 자기를 높이려고, 국가적으로도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는 자기 우상에 빠집니다.

자기과시 그 욕망 때문에 세상은 시끄럽습니다.

 

2) Passion for Possession 이것은 소유라고 하는 욕망입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넉넉하게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세계 식량문제, 자본문제 해도요,

사이좋게 나누어 사용하면은 먹고 쓰고 남습니다.

결국은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하고, 필요없이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그 욕망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생을 합니다.

 

3) Passion for Protection. 자기 보호의 욕망

자기가 이미 가진 것을 과도하게 지키려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이미 가진 권력과 재산을 지키려고, 놓지 않으려고 그래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올시다.

 

4) Passion for Profit. 이익을 취하려는 욕망

우리는 이익을 내려고, 아주 절대로 손해는 볼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 손해 안 보려는 마음, 결국은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이처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5) 가장 중요한 문제는 Passion for Patriotism (과도한) 애국심이라는 겁니다.

애국심적인 욕망, 내 가족을 위하고, 내 민족을 위하고, 내 국가를 위하는 것,

얼핏 생각할 때는 가장 선한 것 같죠.

그러나 이 세상은 바로 이것 때문에 전쟁이 끝날 날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육신을 따라서, 5가지 방식으로 육신적인 삶을 추구하다보면..

결과는 결국 '자기 파괴'인 거죠.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멸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나 남미라든가 사방에 가 보세요. 나라마다 민족마다 우리민족을 지키고,

우리 나라를 지키고, 우리 가정을 지키고, 전통을 지키고, 싸우고 싸웠어요.

 

어떤 나라는 남녀비례가 7대 1입니다. 남자는 다 죽었어요. 왜요? 애국심 때문에 죽었죠.

어찌 생각하면 우리 나라, 우리 민족 위하는, 아주 지상의 가장 높은 덕같이 생각되지만

그게 온 세상을 이렇게 만드는 거예요. 피로 물들고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어요.

이 협소한 민족주의, 민족지상주의가 세상을 불바다로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Passion for Peace, 평화를 열망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다섯 가지가 있는 한 개인에게도 민족에도 세상에도 평화는 없습니다.

오늘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크리미아 전쟁 (1853~1856) 때에 큰 공을 세운

나이팅게일이라고 하는 간호사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불란서, 영국, 러시아 서로 싸울 때 어느 나라 사람 관계없이

이 나라 군인이든, 저 나라 군인이든 부상당한 사람을 다 끌어다가 치료를 하는

국적을 넘어선 그런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결국은 그는 간첩으로 몰리기도 하고, 국가적인 문제에 걸리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애국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의가 먼저요, 진리가 먼저요, 평화가 먼저요, 사랑이 먼저지,

애국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러분 깊이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26: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26:1절은 26장의 표제입니다.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그 날은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입니다.

 

주님이 임하셔서, 세상 모든 만물을 심판하시고, 교만한 자들을 벌하시는 날,

교만한 자들의 성읍을 훼파하시는 날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며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그 내용이 26장입니다.

 

사26: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새 예루살렘 성의 문을 여는 목적은

의로운 나라(의롭게 된 성도)가, 그 속으로 들어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성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청입니다.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새 예루살렘 성의 성문으로 들어가는 의로운 나라(성도)는

심지가 견고한 자이며, 주를 의뢰하는 자입니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십니다.

그런 성도를, 문을 열어 구원의 성으로 들어오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위3절에, 주께서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하십니다.

평강에 평강, 이건 완전한 평강, 완전한 샬롬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정신적이요, 문화적이요, 정치적이요, 경제적이요, 신앙적이고 종교적입니다.

통합적으로 완전한 평화, 샬롬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바 은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와 정의와 번영을 생각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의 수고로, 인간의 욕망으로, 평화로의 욕망,

이것 가지고는 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은혜로,

평강에 평강으로 지켜주실 때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적용 / 그러면 어떠한 자에게 평강에 평강을 주시는가요?

 

▲1. 먼저 <마음 문을 여는 자에게> 평강이 주어집니다.

 

26: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이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옛날에는 전부 성곽을 쌓았거든요.

성을 쌓고 그 안에는 한 왕이 있고 왕의 권세가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문을 꽉 닫습니다.

성곽의 문을 닫았죠.

 

이제 간혹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어려울 때 저들은 생각합니다.

‘이 성곽 안에는 평안이 있다고.’ 그러나 그렇지 못합니다.

 

이제 마침내 큰 명령이 떨어집니다. 다른 큰 세력이 올 때 "문을 열어라" 그럽니다.

"성문을 열어라" 하고 외치게 됩니다. 바로 그 말씀이요

 

너희 마음의 문을 열라고. 요새말로 말을 바꿀까요. ‘개방하라’ 이겁니다.

역사를 연구해 보세요. 개인이건, 민족이건, 어느 나라 건 폐쇄적인 나라는 다 망했습니다.

오직 개방만이 나라를 살렸어요.

 

여러분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 아니예요. 쇄국정책 하다가 일본사람에게 당했잖아요.

그들이 먼저 열었어요. 세계를 향해서 먼저 문을 열었기 때문에 문을 닫고있던 우리가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문을 열어야 됩니다.

 

독재자들은 하나같이 문을 열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요.

새로운 왕권을 받아 들이라. 새로운 진리를 맞아들이라는 것이죠.

 

자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가졌던 종래의 생각, 종래에 가졌던 이데올로기,

종래에 가졌던 철학, 고집, 자기 우월감 다 버려야 됩니다. 무조건 항복하는 마음입니다.

자기과시, 자기소유, 자기보호, 자기철학, 그리고 자기성취, 다 버려야 됩니다.

 

성경은 다시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라는 말이 뭡니까? 메타노이아, 이건 군사적 용어라고 합니다.

"성문을 열어라!"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마음을 돌이켜라. 회개하라.

네가 종래에 가졌던 생각을 다 버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진리 앞에 마음을 열어라.

하나님께로 성문을 열어라. 이것이 바로 회개라는 말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인간의 모습을 설명함에 있어서

본질, Essence와 그리고 실존, Existence 두 가지 용어로 설명해 가고 있습니다.

 

본질이라는 것은 판단의 규범과 선의 전형을 의미하면서,

실존은 현재, 현실을 의미합니다.

 

인간 실존의 가장 큰 특징은 불안입니다.

불안과 공포, 이것은 불신앙과 교만과 욕망에 기인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될 때, 자기가 왕이 될 때, 자기 고집이 목적이 될 때,

거기에는 불안과 공포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왔다가 가는 사람들입니다.

지극히 제한적 존재인데 욕망은 무제한적 욕망이란 말입니다.

가져봐도 다 가지지도 못하고, 다 먹지도 못하고,

다 보지도 못하건만 왜 이렇게 많이 가지려고 하나? 왜 끝없는 욕망에 노예가 됐나?

 

그런고로 그는 불신앙의 존재가 되고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런고로 신앙이라는 것은 내가 중심이 되었던 것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피조물의 자기 위치를 알고 항상 여호와 앞에 정직하고 겸손해야 됩니다.

그런고로 마음 문을 열어야 됩니다.

 

▲2. 평화를 얻으려면,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하라> 26:2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 아주 깊은 의미를 담았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를 영접하라는 거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질서,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라.

전적으로, Total Acceptance, 전적으로 수락하라는 거죠.

 

언젠가 한번 신문 칼럼에 이렇게 기록된 것을 봤습니다.

General Electric 의 유명한 회장, 웰치라고 하는 CEO가 있죠.

그 분의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급 아이디어를 많이 듣는 자가 성공한다."

 

고급 아이디어를 많이 듣는 자.

이거보세요. 귀한 말씀, 고급 아이디어를 많이 들어야 돼요.

그리고 그 말씀을 내 마음에 수락을 하고 내가 영접을 해요. 그래야 성공한대요.

마음 문을 닫으면 안돼요.

고급 아이디어를,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듣고 듣고 가득히 채워요. 그리고 영접해요.

 

예수를 믿는다는 게 뭡니까? 주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거예요.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는 것이죠.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면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영접하는 자 곧 믿는 자"라고 말했어요.

 

영접하는 것이 믿는 거예요. 믿는 것이 영접하는 것이요.

그를 영접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에게 구원이 있고 그에게 평강이 있습니다.

 

▲3. 세 번째로 오늘 성경에 강조하고 있는 것은 뭐냐하면,

<심지가 견고한 사람>. 마음의 뜻이 견고한 사람 즉, 흔들리지 않는다 말이에요.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사26:3

 

여기에 진리가 있어요. 진리를 영접할 때,

그것은 곧 내가 받아들이고, 내 의지화하고, 내 성품화하고, 내 뜻으로 바꾸어서

이제 실천에 옮기고 흔들리지 않는다 이거예요.

 

어떤 곡예사가 있는데 줄타기를 잘하는 분이었다고 해요.

아주 줄을 길게 매놓고 이 사람이 줄 위에 걸어서 이렇게 오고가고 또 걸어서 오고.

어느 때는 막대기를 들고 가기도 하고, 부채를 들고 왔다 갔다.

 

마지막엔 자전거를 타고 저리로 건너가게 되는데

"여러분 내가 무사히 갈 수 있을 거 같습니까?

그러면 이 자전거 뒤에 올라타시길 바랍니다. 누구 한 사람 올라오세요"

 

많은 관중들이 침묵합니다.

그때 요만한 꼬마가 "나요, 나요." 그리고 나가더랍니다.

그래서 자전거 꽁무니에 태우고 그 위험한 줄을 타고 건너갔습니다.

 

애는 뒤에 앉아서 따라가면서 손을 흔들고 좋아했습니다.

얘가 그 곡예사의 아들입니다.

 

여러분 믿는다는 게 무엇이며,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연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이 진리 앞에 이 진리에 대하여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이고,

거기에 내 운명을 맡기는 거예요. 완전히 맡겨버리는 겁니다.

그리할 때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마음 심지가) 흔들림이 없어야 되요.

 

이 현대인들은 참 흔들림이 많아요. 그래서 문제입니다.

지식이 불안전하고 정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정보가 바뀔 때마다 흔들리죠.

때로는 욕망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죠.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뚜렷한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요.

절대적 목적, 확고한 목적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요.

또 하나는 자기 이권에 매여있는 사람들, 이렇게 하면 이로울까 저렇게 하면 내게 이익일까...

이렇게 이해관계에 밝은 사람들이 고만 흔들리고 말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체의식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Proactivity가 없고 종속적인 사람이요. 남에게 끌려 다니는 것이죠.

이리 끌려가고 저리 가고, 이 말이 옳은가 저 말이 옳은가 휘청거리는 사람들...

항상 심지가 견고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불안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안정이 없습니다.

진리를 받으면, 그 진리에 대해

심지가 견고한 사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지 않아요?

심지가 견고한 사람, 흔들림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요.

그러나 마음이 안정되지를 못해서 이럴까 저럴까, 내가 뭔가 잘못 산 거 같고,

난 아무래도 뭐,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내 마음부터 불안해요. 이걸 아셔야 됩니다.

 

내가 안정되고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

내 가정도 내 이웃도 내 나라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도

마음을 평안하게 할 수가 있어요.

그 평안함 가운데서 창의적 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흔들림이 없는 사람,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예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너무 쉽게 흔들려요. 아예 뿌리째 흔들려요.

정책이 너무 흔들려요. 철학이 너무 흔들려요. 그래서 우리 마음이 불안해요.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요. 하룻밤 자고 나면 뭐가 바뀌니까 우리 마음이 불안해요.

 

여러분 왜 이 모양이 됐습니까? 배가 고픈 것도 아니요 추운 것도 아니요,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불안해 못 견디겠어요. 왜요?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샬롬!" 그것은 먼저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주시는 거죠.

평화로운 인격이 되고, 평화로운 철학이 되고, 평화로운 인생관이 되고,

그리할 때 그 마음 먼저 평안하고 다른 사람을 또한 평안하게 할 수 있는 것이요.

이것이 기본이요. 그리고야 샬롬 사회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요14장에,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그 경륜, 그 사랑을 믿을 때

그리고 흔들리지 않을 때 평안합니다.

 

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

예수님의 마음속에 십자가 지기 전날 밤에도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여러분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우리 가정에,

우리 민족 앞에 항상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