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2 l 출15:22-27 l 정말 치유의 기적이 있는가? Youtube
◈정말 치유의 기적이 있는가? 출15:22-27, 벧전2:24 2026.01.22.
오늘은 치유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최근에 모임 현장에 오신 분들 중에 환우들이 꽤 많아지셨고,
또 온라인 댓글에 병원에서 또는 가족들이 질병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 기도 제목들을
올리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시는 것에 대한 말씀을 같이 나누고,
또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갑자기 들어서
오늘은 하나님의 치유에 대한 말씀을 여러분들과 좀 나누고
우리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할 때,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어요.
‘오늘은 설교하지 말고, 그냥 바로 치유 기도를 해주세요.'
하는 분들이 있으실 것 같아요.
환우들을 만나서 치유 집회를 하다 보면,
환우들 중에는 먼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을, 좀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있으세요.
그만큼 다급한 거죠. ’지금 나는 설교 들을 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그저 목사님,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셔서 제가 빨리 고침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 심정이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오늘은 정말 주님을 바라보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정말 꼭 기억하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에 먼저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질병이 생겼을 때,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꼭 기억해야 될 것은
이 질병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그래야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은혜를 제대로 누리게 되고,
심지어는 질병이 주는 유익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비로소 질병에 대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것은, 우리가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과 뚜렷이 다릅니다.
그저 말은 같은 ’치료‘라는 개념을 쓰고 있지만,
병원에 가서 환자가 의사들을 만나서 병을 치료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고 치유받는 것의 차이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병원에 가면, 그럼 내가 어디가 아픈지를 이야기하고
그 아픈 곳을 치료하는 것에만 집중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와서 치유받는 일은, 몸의 치유만 아니고
내 마음도 내 영혼도 온전히 치료하고,
우리 인생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치유하는 일이.. 하나님의 치유입니다.
그러니까 의사를 통해서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여 치유받는 것도, 그 자체로 중요하고요.
둘 다 어느 하나만 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우리를 치유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치유받는 것은,
어떻게 되어지는 일인지를 잘 알 필요는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실 때, 단순히 우리 몸만 고치거나 또는 죽지 않도록,
죽을 병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일만 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도 보시고, 그리고 내 인생 전체를 보십니다...
▲어느 목사님이 어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아버님이 굉장히 중병이셨는데, 그러니 그 어린 아이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 좀 고쳐주세요...’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그렸습니다.
근데 그만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이 목사님이 한동안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떠나셨다고 했습니다.
그때 당시로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기도라는 것도 다 소용없고...
이런 마음에 아주 의심이 확 들어왔죠.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나가서 고침 받는 것을,
병원 가서 의사에게 치료받는 것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생각을 한 겁니다.
‘근데 왜 하나님은 안 고쳐주시지?
우리가 뭘 부족하게 기도했길래.. 우리가 뭘 잘못 기도했길래..
하나님이 왜 사랑의 하나님이고,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면서.. 우리를 고쳐주지 않으시지?’
그런 생각만 든 거죠.
나중에 가서야 이제 은혜에 눈이 뜨이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선하셨음을 그가 깨닫고,
그가 목회의 길에 들어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치유를 잘 알 필요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질병에서 고치신다 하더라도, 어떻게 하시는 건지...
하나님은 도대체 우리를 어떤 과정을 통해서 치유하시는지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돈이 참 중요하죠. 그러나 몸이 병들면, 돈을 아끼지 않고 치료비에 씁니다.
똑같이 우리가 치유받는 일이 중요하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을 알고 나면,
그러면 단순히 육신의 질병의 치유에만 매달리지 않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몸보다도 영혼이 더욱 중요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생의 문제는, 건강보다도 훨씬 중요합니다.
이 점을 정확히 알아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치료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병 들었기 때문에, 그가 영원히 구원받은 사람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건강할 때는 예수님을 전혀 몰랐다가, 병 들었기 때문에 그가 전도를 받아들이고,
그리고 기도하게 되고, 그리고 그가 구원받은 사람들...
아마 지금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있으실 거예요.
병들었기 때문에... 그동안에는 세상만 바라보고, 세상 재미만 위해서 살았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에 눈이 열린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질병이 오히려 그를 구원 얻게 하고, 영적으로 성숙시킨 경우도,
우리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또 하나, 정말 다급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병이 들어서,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가족들이 또는 교회가 기도 불이 붙은 경우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단순히 몸이 아픈데,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면
그 몸을 골쳐주시는 정도로만 치유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죠.
▲병에서 치유받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가르쳐준 분이 사도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삼층천에 올라간 체험을 해본 사람이었는데, 그 체험이 너무 놀랍지요.
우리들 중에도 만약에 진짜 천국을 보고 왔다면, 그러면 그 은혜는 말할 수도 없을 거예요.
근데 그 은혜가 너무 크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신에 질병을 주셨어요.
사도 바울이 그 병이 고침받게 되기를,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 있는 사역자였어요.
그런데 자기가 그런 병에 걸렸었는데, 세 번 기도했는데 주님의 응답이 뭐였냐면
고후12:9절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네가)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사도바울이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서 연약한 것 때문에,
사도바울은 항상 주님을 의지하며, 그래서 주님의 능력이 사도바울을 통하여 더 강하게
나타났다는 거예요.
이 사실을 사도바울이 깨닫고, 다시는 병 고쳐달라는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왜요? 그 자신의 육신의 질병이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무는 그런 자리였기 때문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치셨어요. 그런데 모든 병자를 고치신 건 아니셨어요.
예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리셨어요. 성경에 보면 세 번 나옵니다.
그 말은 그 당시에 모든 죽은 자를 다 살리신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 말은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완전한 답이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에 그게 답이라면, 주님은 병자 고치는 일 하고, 죽은 자 살리는 일만 하셨겠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게 하기 위해서,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을 행하셨지만,
사람들이 거기(신유 기적)에만 매달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어요.
여러분 우리가 병이 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가 이 병에서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간절함이 생기게 되는데,
그런데 만약에 ‘고려시대로 돌아가서 살아라’ 또는 ‘조선시대로 가서 살아라 하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엄청 답답할 거예요.
다시 이제 살기는 사는데.. 고려시대, 조선시대로 가서 살라고?
지금 시대를 살아본 사람은, 그 옛날 시대로 가서 사는 게 정말 속이 터질 일일 거예요.
그때 당시에 사람들의 사고방식, 생활습관, 그걸 어떻게 맞추어 살 수 있겠어요?
여러분 지금 시대에만 살아본 것만 가지고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을 거예요.
우리가 지금 내가 죽지 않고 여기서 더 오래 산다는 것이,
조금만 미래에 살았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게 그렇게 대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사람이 죽으면 너무 안타깝죠.
저도 저희 어머님이, 제가 아직도 20대 때 세상을 떠나셨고
참 그런 사별의 슬픔과 아픔이 있는데,
‘그때 돌아가신 어머님이 지금 다시 살아 나오신다면 당신은 좋으실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요.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가신 어머님이, 지금 바로 이 시절로 다시 몸이 다시 태어나신다면,
아마 그게 엄청난 고통일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를 아시는 주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거, 성육신이죠.
그 자체가 십자가보다 못지않은 고난이라고, 많은 신학자들이 해석을 해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우리가 모르니까.. 죽음도 두려운 거예요. 죽음 건너편의 세상을 모르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죽고 난 사람이, 아마 다시 여기 오라고 하면, 극구사양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천국에서 사시는 것을 너무 겁낼 필요가 없다는 뜻인 듯)
▲이 말씀은 ‘치유를 위한 기도는 할 필요가 없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에 대한 약속을 하고 계세요.
마8: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주님이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 안에는, 우리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도, 함께 담당하신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주님 저를 고쳐주세요’ 라고 하는 치유를 구하는 기도는,
은혜 안에 이미 약속된 것입니다.
벧전2: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러니까 여러분이 몸이 아플 때,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 제가 예수님께서 제 질병을 짊어지셨고,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제가 나음을 받았다고 하셨으니.. 저를 고쳐주세요.’
그 기도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예요.
사실 정확히 알고 보면, 그러면 이 세상에서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만, 완전한 답은 아니지만
실제로 몸이 아파본 사람은, 그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아마 설명을 안 해도 되겠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병의 고통에서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건 분명하게 믿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기도하는 일이 필요해요.
‘하나님이 내가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기뻐하지 않으실 거야..
그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해야지..’
이게 한편으로는 참 귀한 믿음 같아 보여도, 정확하게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우리가 몸도 건강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닌 거죠.
▲그래서 여러분이 아플 때 기도하고, 또 아픈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은,
대단히 성경적이고 중요해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도 하셨고요.
그 대신에 꼭 기억할 것은, 몸이 건강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몸이 건강해지는 게 중요하지..’
몸이 아파본 사람은 전부 다 쉽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내 몸만 건강해진다면 소원이 없겠다’ 병들면 이렇게 생각이 들어요.
몸이 아프다는 게 워낙 고통스러우니까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내 육신의 건강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
그냥 그 하나만 가지고도 ‘아 몸이 건강한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구나’
이 점을 알아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가 있게 돼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출15:26절에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은 치료하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제일 먼저는 먹고 마시는 식량과 물이 중요했겠죠. 40년 광야에서 살려면.
근데 먹는 것, 마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아마 몸이 아픈 문제일 거예요.
자 그 광야에서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합니까?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죠.
요즘처럼 이렇게 병원도 많고, 약국도 많은 그런 우리들도 몸이 아픈 게 힘든데,
광야에서 40년을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해요?
그때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라’
이 말씀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놀라운 말씀이었고,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그건 당연한 일인 거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내는 동안에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몸이 병들어 죽은 일은 있지만,
그들이 참 건강하게 광야를 지났던 것 같아요.
신기할 정도로 40년 광야생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강했을 거예요.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애굽에 있는 모든 질병을, 너희들에게 내리지 않겠다고’ 출15:26
정말 놀라우신 하나님이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놀랍게 치유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전에,
그 점을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더 중요한 말씀을 먼저 하십니다.
출15:25b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절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러니까 분명히 치유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주실 때.
‘밑도 끝도 없이 나는 너희들의 병을 무조건 고칠 거야’ 이렇게 말씀하신 게 아니라는 겁니다.
먼저 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내 모든 규례를 지키라는 겁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치유는 굉장히 중요해요.
근데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음을 먼저 알라는 거예요.
그게 뭐냐면 하나님을 정말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라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치유를 구할 때, 꼭 기억해야 합니다.
몸의 질병의 고침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를, 하나님이 관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는 장면이 출14장에 나오는데,
홍해를 지나갈 때 그들은 황홀했어요.
홍해를 지나고 애굽 군대가 뒤따라 오다가 다 수장당하고...
그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사실 그렇게 노래하고 춤을 출 분위기는 아니에요.
왜요? 이제부터 그들 앞에는 광야가 펼쳐져 있는 겁니다.
여러분 실제로 요르단에, 그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갔던 광야를 제가 잠깐 들어가 보았는데,
숨이 탁 막히더라고요.
‘여기서 40년을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단 말이야?’
우리는 그냥 이렇게 성경만 보니까, 그게 얼마나 숨이 막히는 일인지를 잘 몰라서 그렇죠.
그들 앞에 광야가 펼쳐졌는데, 그렇게 춤추고 노래할 만한 일은 아니었는데,
일단 홍해를 지난 사건 자체가 너무 놀라우니까, 춤을 추고 노래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3일을 걸어갑니다. 딱 3일 지나고부터 입이 팍 나오기 시작합니다.
왜요? 물이 없어요. 물이 고갈된 거예요.
홍해는 정말 놀라운 기적으로 지나갔지만, 말이 없어지고, 노래가 그치고,
더워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나오고,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서 죽이시려나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불평들이 나오고, 그러다가 물을 발견해요.
‘마라’라는 곳에 샘물을 발견합니다. 오아시스를 만났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냥 오아시스에 달려가서 그 물을 마시려는데, 쓴물이에요.
아마 기름이 섞인 물이든지... 하옇든 마실 수 없는 쓴물이에요. 이스라엘은 폭발하게 됩니다.
차라리 물이 없었으면 그냥 참고 조금 더 갔었겠지만,
일단 물을 보고, 엄청 큰 기대를 가지고 ‘이제는 살았다’ 그리고 갔는데,
이게 마실 수 없는 쓴물인 걸 알고, 백성들은 폭발해요.
그리고 성경에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렇게 표현이 나오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을 듣고, 모세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출15: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모세는 홍해 앞에서도 그렇게 안 했습니다.
홍해가 눈앞에 펼쳐져 있을 때도, 모세는 담대하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라’ 말하고,
지팡이를 홍해를 향해 내밀었던 사람이에요.
근데 여기서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그래요. 왜요? 모세도 다급한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엄청났던 걸 말하는 거죠.
딱 3일 만에 그렇게 바뀔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찬양하고 노래하는 게,
이 3일이면 이렇게 바뀌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주실 때,
왜 먼저 정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셨는지를 우리가 이제는 알아야 하는 겁니다.
내 몸이 아프니까 고쳐달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우리에게 있는 거예요.
▲막9장에 간질로 고생하는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22절에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말투입니다.
물론 뭐 이 간질들린 사람의 아버지가,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한 거죠.
대부분이 그런 거예요.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면서도, 실제로는 믿음이 없어요.
그때 주님이 책망하시죠.
막9: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때 그 아버지가 자기 스스로도 뭐라고 말을 해야 될지 모르는 말을 해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자기가 믿는다는 거예요? 안 믿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들의 실상이에요.
하나님을 안 믿느냐? 아니요, 믿어요.
믿느냐? 그럼 또 안 믿어요. 이게 우리들의 실상인 거예요.
예수님을 믿고, 오늘도 기도하고 치유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도
똑같은 자기 혼란이 있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믿으니까 여기까지 나온 거죠.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정말 고쳐주실까? 기적이 일어나는 걸까?’
우리 주님이 먼저 관심하는 부분입니다. ‘너는 정말 나를 믿느냐?’
믿음을 갖는 것이, 병을 치료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때때로 우리가 병으로 고생하면서 그렇게 기도할 때
그때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그랬는데
‘이게 고쳐질 것이다’ 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환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러 갈 때
‘아 이 사람은 고쳐질 거야’ 그게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다루실 문제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도 오늘 기도할 때, 믿음으로 주님께 나와 기도하라고 했는데,
솔직히 믿음이 안 생기는, 믿어지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을 확인하세요.
‘예수님이 정말 내 안에 계신가?’
오늘 온라인으로 이 집회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먼저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지를 확인하세요.
이 일은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라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지금 하고 있어요.
‘주님’이라고 부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연합하여 모이고...
이 모든 일이 다 사실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니까 역사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주님이 함께 계신 것은 분명히 믿어져요.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신 건 분명히 믿어져요.
그러면 그 믿음으로 나아가면 되는 거예요.
주님이 어떻게 하실지는 잘 모르겠어요.
내 이 병이 오늘 고침을 받게 될지 어떨지도.. 나는 솔직히 잘 몰라요.
근데 한 가지 분명히 믿는 건 있어요. 주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 거예요.
이건 엄청난 거예요.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이제 매일 동해 일기를 쓰자고 그렇게 권해드리는 거예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이 믿음 하나만큼은, 언제 어느 때나 흔들리면 안 돼요.
그리고 그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돼요.
그리고 주님이 함께 계신 게 분명하다면, 그 다음엔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과 순종은 같이 가는 거예요.
‘믿는데 순종을 안 한다’ 만약 순종이 안 되는 거 보면, 믿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이 분명하면, 그러면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치유에 대해서 가르치시면서,
먼저 그림 그리듯이 보여주세요. 치유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마라의 쓴물’이라고 그랬죠? 마실 수 없는 물이에요.
난리가 났죠?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무 하나를 들어서,
그 마라 샘물에 던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도 뭐 대략 이해하시겠죠?
‘아 십자가를 예표하는 사건이겠구나’ 이런 느낌도 들지요.
하여튼 나무 하나를 택해서 마라의 쓴물에 던졌더니,
그랬더니 단물이 되었다.. 마실 수 있는 좋은 물이 되었다... 그 기적을 먼저 행하십니다.
그게 그대로 치유예요.
근데 왜 하나님은 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쓰셨을까요?
애당초 마라가 마실 수 있는 물이 되게 하시든지 그러면 되지,
왜 쓴물을 만나게 하시고, 원망하고 난리치게 하시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잠잠히 나오게 하시고, 말씀 듣게 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해서, 그리고 단물이 되는 이 과정을... 왜 하나님이 겪게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순종에 대한 훈련을 분명하게 시키고 싶으신 거예요.
단순히 급하고 어려우니까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즉각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다루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문제가 생기면 주님을 주목하고, 주님께 귀 기울이고,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게 있으면, 그것에 순종하고,
그러면 주님께서 내가 부딪히는 모든 문제에서 나를 건지시는... 이 과정이 온전한 치유예요.
이 사실을 명확히 알라고 하시는 거죠.
우리에게 똑같이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하나 변화되는 것이 있는데.. 마음이 부드러워져요.
그래서 전에는 몸이 아프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세상이 재미있고, 세상이 너무 바쁘고, 그렇게만 살고...
하나님의 말씀은 부담되고, 내 마음에 즐겁지가 않아요.
근데 몸이 아프면,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요. 그리고 하나님께 귀 기울여요.
이게 몸이 아프면 일어나는 엄청난 변화예요. 이것이 마음이 부드러워진 거죠.
"이 자체가 벌써 치유예요."
성경에 말하기를,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셔서 일어나는 엄청난 변화가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는 겁니다.
에스겔서 11:19절에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그러니까 마음이 부드럽게 바뀌는 것이, 구원의 역사예요.
내 영혼이 구원받고 이제 내가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는 거죠.
여러분 간이 굳었어요. 치유가 뭐죠? 간이 부드러운 상태로 바뀌는 거죠.
폐가 굳었어요. 치유가 뭐죠? 폐가 부드러워지는 거죠.
혈관이 굳었어요? 혈관이 부드러워져요. 치유가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이 부드러워졌어요.
일단 교회 안 나오던 사람이 몸이 아프니까 그러니까 교회 나와요.
그 자체가 이미 엄청난 치유가 일어난 거예요.
하나님 앞에 말씀에 귀 기울이게 되고, 그리고 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거잖아요. 이 과정이 이미 내 영혼이 치유받는 과정이고,
그 과정이 이루어질 때... (치유가 점점 되어지고 있는 거죠)
꼭 안수기도 받는 게 아니고, 예배드리다가 또는 합심기도 하다가
또는 찬양하다가 몸이 고침받아요.
이미 은혜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에, 병이 한순간에 낫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그걸 기대해요. 기도하고 갑자기 통증도 다 사라지고,
끊어졌던 뼈도 다 붙고, 기능하지 못했던 모든 장기가 다시 재기능을 하고...
이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우리가 원하죠.
그런데 대부분의 치유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치유예요.
그래서 당장 치유 기도하고 고침 받은 것 같은 극적인 효과를 경험을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맞아. 그래 기도하고 주님이 고치신 게 맞아’
그렇게 대부분 치유를 경험을 해요.
근데 그 과정이 바로 이와 똑같이.. 내가 주님께 귀 기울이고
주님께 순종하고 내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주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새로워지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인 거예요.
나병환자 수리아의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들어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
‘아 그냥 고치시면 될텐데, 요단강에 들어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에 그를 깨끗하게 해요. 믿음과 순종을 보시는 거죠.
우리도 똑같이, 주님이, 우리가 몸이 아파서 주님께 나왔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주님에 대한 믿음을 분명하게 세우고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병든 사람이 고침 받을 길을 원할 때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나님 고쳐주면 제가 이제부터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주님이 한두 번 속으신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일단 고쳐주긴 했는데, 그냥 옛날로 다시 돌아가 버려요.
그러니까 먼저 여러분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했나, 감사라는 말씀에 순종했나,
기뻐하라는 말씀에 순종했나? 먼저 확인해야 하는 거예요.
주님 앞에 나왔으면 내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이 말씀에 순종했음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 거예요.
’주님 제가 이게 더 중요한 일인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몸이 아프고, 그리고 낫고... 이거 다 주님께 다 맡깁니다.
주님이 만병의 의사시니까 저는 주님이 하라는 대로만 순종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이 과정이 주님이 원하시는 스타일의 치유라는 거죠.
우리의 마음은, 몸보다도 훨씬 더 사실 심각하고요.
모든 병의 뿌리가 마음에서부터 나와요.
▲저는 제 마음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아버님은 피난민이세요. 어머님은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어릴 때 보니까
뭐 어려운 일이 한 둘을 겪으신 게 아니에요.
그런 분들 앞에서 ‘나도 마음에 상처가 있어’ 이런 말을 꺼낼 만한 여지가 못 되는 겁니다.
‘내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상처가 있다고 할 수도 없어..’
게다가 저는 목사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라도
‘이게 힘들어요. 이게 어려워요.’ 이렇게 말을 할 형편이 안 돼요.
그런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도 없고,
그래서 저는 다 꾹꾹 누르기만 해야 됐어요.
‘나는 말하면 안 돼.. 나는 힘든 것도 아니야...’
그런데 사실 문제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다 무의식 속에 꾹꾹 눌러만 둔 거죠.
그게 저에게 얼마나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제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어릴 때부터, 저에게는 좋은 거, 나쁜 거가 없었어요.
그게 있으면 큰 일이니까요.
‘나는 목사 아들로서 앞으로 목사가 될 사람이야.
뭐 좋은 건 좋고, 이건 싫고 그러면 안 된다...’
음식도 맛있는 거, 맛없는 거가 없어요.
밥 먹을 때도, 항상 주는 대로만 먹어야 돼요.
‘너무 맛있다’ 이렇게 해서도 안 되고,
‘이거는 맛이 없다’ 이래도 안 되고
이만큼 퍼 줘도 다 먹어야 되고, 저 만큼 퍼줘도 더 달라고 하지 말아야 되고...
그저 주는 대로만 먹고 살았어요.
저는 그게 그냥 모범생이고, 잘하는 건 줄 알았더니...
결혼하고 난 다음에, 제게 제일 어려운 질문이 ‘뭐 먹고 싶으세요?’
저는 평생 살아오기를 ‘뭐가 먹고 싶은 게 있어요? 그냥 주는 거 먹는 거지요’
‘어디 가고 싶으세요?’
‘뭘 어디 가고 싶은 게 뭐가 있어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그게 가족들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얼마나 힘들게 하는 성격인지를, 제가 몰랐어요.
저는 그냥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뭐 화를 낼 일은 없었나요? 있었죠.
나도 이해가 안되게 갑자기 화가 막 터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감정이 주체 못할 일을 만나기도 하는데... 제 마음에 문제가 있었던 거에요.
그때 하나님 앞에 ‘하나님, 제가 마음이 많이 병들어 있습니다...’ 하고 기도했어야 됐는데,
겉으로 그냥 좋은 사람인 척만 하고 살았던 것이죠.
그래서 제가 속이 많이 병들어있었음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어릴 때 겪었던 많은 일들이 생각이 나요.
그게 차곡차곡 마음 속에 눌려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마음이 병든 거죠.
제가 청소년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갑자기 그런 기도가 나와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니 다 떠나갈지하다’
그런 일이 너무 많아요. *청소년들의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함
제 자신을 되돌아보면,
너무 부끄러웠던 일, 너무 두려웠던 순간, 나 자신이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때, 너무 악한 경험, 너무 끔찍한 것을 보았던 기억,
우리 속에 정말 정말 심각한 것들이 있어요. 이게 다 ‘마음의 병’이 되는 거죠.
(제 자신을 예로 들어 말했지만, 우리 중 대부분은 다 이러실 거예요.
과거에 힘들게 살았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단순히 몸 어디가 아픈 게 문제가 아니고,
깊이 마음이, 병들어 있는 것을 고치기 원하세요.
(*신유의 기적을 원하면, 하나님께 기도해서 내 영혼을 먼저 치유해야 하지만,
또한 내 마음이 병든 것도, 진단해서 치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병들은, 마음이 병들어서 생기는 것도 있으니까요)
‘주님 제 속에 십자가가 세워져서, 주님이 오셔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게... 복음이에요.
병들어 있는 내 마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쌓여져 있는 것,
하나하나 상담해서 일일이 다 못 고쳐요.
십자가에서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고, 이제는 예수님이 내 생명이시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이 사실을 정말 믿게 될 때,
설명이 안 되는 평안과 기쁨이 일어나요. 거기서 육신의 병의 고침이 오는 거예요.
주님의 임재가, 오늘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또 온라인으로 기도하는 여러분들의 있는 자리에서
주께서 여러분을 만지시고, 여러분의 영혼을 회복시키고,
마음의 깊은 곳을 치료하시고, 육신의 병을 고치시기를 축복합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의 절반 정도는
자기가 진정으로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퇴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임상보고가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감정도, 그리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가 죄가 됩니다.
이런 죄책감과 억울함과 분노와 원망과 원한은 갖가지 질병을 초래합니다.
분노의 감정이 계속되면 인체는 서서히 산성화되어서
효소의 활성도를 떨어뜨리고 각종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감소되어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사회도 죄용서의 선언들이 없으면 행결할 수 없는 갈등들이 계속될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나도 정죄하지 아니하노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죄사함의 문제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