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 01 주일 말씀 / 창세기 강해 (7) / 창세기 2:8-17 / 에덴동산 Youtube
◈에덴동산 창2:8-17 2026.03.01.
창세기에는 두 개의 창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창1장에 나옵니다. 또 하나는 창2장에 나옵니다.
1장의 창조는 온 우주의 창조입니다.
2장의 창조는 온 우주 가운데 사람의 창조만 꼽아서 다룹니다.
따로 다룹니다. 그만큼 사람이 창조의 절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이중적인 존재였죠. 사람은 흙으로만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코에 불어넣으신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물질적인 존재이면서,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오늘 본문 창2:8-17절은 그 처음 사람이 살았던 장소가 공개됩니다.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오늘은 이 에덴동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서론 / 에덴동산
먼저 우리가 오해하면 안되는게 있습니다.
어떤 오해냐면, 에덴 전체가 곧 동산이라는 오해입니다.
‘에덴’과 ‘동산’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이 있습니다.
창2:15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위 구절에 ‘에덴동산’이라고 했으니까 ‘에덴이 동산이잖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8절에 보면 그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시니라’ 2:8
여기 보면 세상이 있고요. 그 세상에 동방이 있습니다. 동쪽이라는 거죠.
그 동쪽에 에덴이 있습니다. 그 에덴의 동산을 창설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범위가 다른 거죠.
동방이 더 넓은 개념입니다. 에덴은 좀 더 좁은 개념입니다.
그리고 동산은 더 좁은 개념입니다. 본문 10절에서도 확인됩니다.
2:10절에 보면 ‘강이 에덴 (지역)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봐도, 에덴과 동산이 다릅니다.
강이 에덴에서부터 흐릅니다. 그리고 동산을 적십니다.
그러니까 에덴이 있고, 그 속 어느 지역에 동산이 있는 거죠. 에덴과 동산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에덴동산’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하게는 ‘에덴이라는 지역에 동산이 하나 있었다’ 이죠.
물론 ‘에덴동산’이라는 표현 자체가 틀린 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강릉에 가서 바다를 보고 왔다’고 말할 때,
‘강릉 바다에 다녀왔다’고 말합니다. 이게 강릉 전체가 바다라는 의미는 아니죠.
에덴동산이라는 표현도 그런 의미입니다.
에덴의 땅 전체가 동산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확히는 에덴이라는 지역에 하나님이 동산을 세우셨다는 이해가 더 바람직합니다.
그러면 에덴동산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첫째, <에덴동산의 위치>입니다.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을까요?
에덴동산의 위치는 어디냐면...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추측들은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4개의 강이 흘러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2:11~14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강 이름이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아주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합니다. 왜일까요?
성경의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실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분명한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여기 나오는 이 지명들을 가지고, 에덴동산의 실제 위치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지도를 펴고 찾았습니다.
예를 들면 힛데겔과 유브라데는 오늘날에도 있는 지명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힛데겔은 티그리스 강, 유브라데는 유프라테스 강입니다.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그래서 이 강들을 가지고, 에덴동산의 위치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고고학자들이나 많은 신학자들, 요즘은 많은 유튜버들이 수고하고 있습니다.
보니까 여러 가지 설들이 있더라고요.
‘이라크 남부에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터키 동부의 아르메니아 고원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을 근거로, 에덴동산의 위치를 정확하게 추적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노아의 홍수 때문입니다. 창6장에 가면 노아의 홍수가 있었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적인 홍수였죠. 전 지구를 흔드는 엄청난 격변이었습니다.
이 노아의 홍수 때문에, 지형이나 강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궁금해서 제미나이 AI 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자연재해로 인해 강이나 지형이 바뀐 사례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있다’고 말하면서 촐루테카 다리의 경우를 알려주었습니다.

1998년에 온두라스 나라가, 강 위에 엄청 튼튼한 다리를 지었습니다.
어떠한 허리케인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다리를 지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지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이 다리를 완공한 뒤에, 역대급 허리케인이 온두라스를 강타했습니다.
주변의 다른 다리들은 모두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촐루테카 다리는 끄떡없이 살아남았습니다.
문제는 다리가 아니라 강이었습니다.
다리는 그대로인데, 강이 옮겨갔습니다. *위 사진 오른쪽
저 다리를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어떤 허리케인이 와도 끄떡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허리케인이, 강의 물질기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강의 위치 자체를, 수백 미터 옆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우리는 ‘지도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역사 속의 강들은, 대홍수와 지진 앞에서,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합리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거죠.
노아의 홍수가 지구를 뒤덮은 전 지구적인 홍수였고 엄청난 격변이었다면,
지금 지형들이 온전할 리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이 지명들을 근거로, 에덴동산의 위치를 찾아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 두 번째는 <에덴동산의 특징>입니다. 에덴동산은 어떠한 동산이었을까요?
아이들은 ‘에덴동산’ 하면, 놀이공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꿈과 희망이 있는 나라, 모험이 있는 나라, 아니면 아름다운 정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덴을 ‘정원 garden’으로만 이해해선 안됩니다.
에덴은 최초의 성전, 최초의 성소였습니다. Holy Place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이 임재가 나타나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면 왜 에덴동산이 최초의 성전, 최초의 성소가 되는가요? 6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첫째, 동산에 흐르는 강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2:10절에 ‘강이 에덴에서부터 흘러서 동산을 적셨다’고 말합니다.
왜 강이 흐르고 그 강이 동산을 적셨을까요?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살기 위한 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이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이미지는, 성경 전체에서 ‘성소의 이미지’입니다.
시46: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한 시내가 있는데, 나뉘어서 흐릅니다.
그 강이 하나님의 성, 곧 성소를 기쁘게 했다고 말합니다.
‘성소에 시내가 흐르고 있다’
오늘 에덴에서 흐르는 강이 떠오릅니다. 에덴이 성소와 같다는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겔47:1~12절은 에스겔이 환상을 봤는데,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겔47: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성전(성소)에서 물이 나와 흐릅니다.
이처럼 물이 흐르는 이미지는 성소의 이미지이고, 에덴동산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2) 둘째 동산의 입구가 동쪽이기 때문입니다.
겔47:1절을 다시 보면, 성전의 전면이 동쪽을 향하고 있죠. 즉 성전 입구가 동쪽입니다.
그런데 창3:24절도 이렇게 되어 있네요.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아담과 하하가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동산에서 쫓아내십니다.
그런데 그 동산의 어디에 그룹들과 불칼을 두어 출입하지 못하게 막으시죠?
네, 동쪽입니다. 동산의 입구가 동쪽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의 입구가 동쪽이라는 것도, 똑같이 성소, 성전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3) 셋째, 동산에 있는 보석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금이 있었습니다.
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2: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금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보석이죠.
베델리엄은, 성경책 각주에 ‘진주’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호마노도 보석입니다. 붉은 줄무늬 있는 보석인데, 영어로 onyx 입니다.
이 보석들은 언제 또 나오느냐? 나중에 성소에 있었던 보석들과 같습니다.
출25:1~9절에 보면, 성소를 짓는데 성소의 재료를 나열합니다.
3절에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7절에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이렇게 성소 재료에 금과 호마노가 나옵니다.
동산에 있었던 금과 호마노 그리고 보석들이 성전을 장식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처럼 동산의 이미지는 성소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베델리엄(진주)는 나중에 계시록에 보면, 거기 천상의 성전의 재료로 나오죠. 계21:21
그래서 보석들을 볼 때도, 에덴동산과 성전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4) 넷째,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들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2:9절에 보면, 동산에는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이 동산 중앙에 뭐가 있냐면,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상징적인 나무이죠.
특별히 ‘두 나무에 함부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이 나무들의 성격은, 마치 뭐와 같냐면,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와 같습니다. *언약궤도 나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려고,
그룹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십니다.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처럼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이미지, 성소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5) 다섯 번째, 성소 동산에 나오는 하나님의 거니심, 혹은 임재하심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창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어를 보면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한 번 거니신 게 아니라, 계속 거니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이 동산가운데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성소(성전) 역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출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임재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은, 성소의 이미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드러내는 장소입니다.
6) 여섯 번째로, 동산에 있는 아담의 역할 때문입니다.
아담은 제사장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 보면 두 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경작하다 .. 이 동사는 농사 용어가 아닙니다. 다 성막과 관련된 동사입니다.
경작하다는 히브리어로 ‘아바드’ 입니다. 아바드는 경작하다 라는 뜻도 있지만
성막에서 예배하다, 성막에서 섬긴다는 뜻도 있습니다.
-지키다는 동사도 히브리어로 ‘샤마르’인데, 성막을 지킨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한번 확인해 볼게요.
민3:7~8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8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
위 구절에 보면, 제사장의 직무는 시무하는 직무, 지키는 직무였습니다.
이때 시무하다가 히브리어로 아바드, 본문의 경작하다입니다.
지키다는 히브리어로 샤마르, 본문의 지키다와 같습니다.
첫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아바드하고 샤마르 했듯이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아바드하고 샤마르를 했습니다. 성막을 섬기고,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첫사람 아담은, 단순히 에덴동산을 가꾸는 정원사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동산이라는 성소를 섬기면서, 지키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잠깐 정리해 볼게요.
에덴동산이 성소이고, 에덴동산은 모세의 성막으로 이어지고,
요한계시록의 새하늘 새 땅... 그게 회복된 새 에덴으로 이렇게 풀이를 하거든요.
그리고 신약의 교회가 그 중간에 있죠.
역시 회복된 에덴동산이고, 성소며,
(이미 이루어졌고) 장차 온전히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땅입니다.
신학자들이 이렇게 성경을 풀이내거든요. 실제로 너무나 중요한 신학적인 주제입니다.
그래서 창2장의 강들은, 겔47장의 강으로 이어지고, 계21장의 강으로 이어지는 거죠. 주1)
에덴의 동산은 단순히 아름다운 정원이 아닙니다.
식물이 아름답고 동물이 많은 정원이지만, 본질은 정원이 아니라 최초의 성전(성소)이었죠.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최초의 성소(성전)였습니다.
그래서 동산의 이름이 왜 에덴입니까?
에덴은 히브리어로 ‘즐거움 pleasure’ 이라는 뜻입니다. 즐거움과 기쁨의 동산이었습니다.
그곳은 천국과 같았습니다. 계시록에 이 천국이 완성이 되는 거죠.
에덴이 완성이 되는 거죠. 뭐 때문에요?
놀이기구가 많아서, 볼거리가 많아서, 먹을 것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그 곳에는 하나님이 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히 있었기 때문에 기쁜 곳입니다.
물론 아담이 타락한 후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실낙원이 되었습니다. *존 밀턴의 《실낙원 Paradise Lost》
그러나 에덴이 광야에서 재현되었습니다. 바로 성막이었죠.
하나님의 성막이 세워졌을 때 에덴이 재현되었습니다.
광야에 성막이 생김으로써, 다시 이들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다시 그곳에 있고,
하나님이 그곳에 거하심으로, 다시 이 광야가 에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거 아시죠? 광야의 성막은 말씀을 드렸듯이 신약의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다시 에덴이 재현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에덴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
정원이 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니시고, 하나님을 아바드(예배, 섬김)하는 예배자들이 있다면
이곳이 에덴이 될 줄 믿습니다. 기쁨의 동산, 낙원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적게 모이고,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니시는 에덴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가 우리 교회를 왔을 때 다른 것이 아니라,
예배 가운데에 뭔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인격이 계시는 것 같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에덴동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광야같이 메마른 심령으로 왔다 하더라도, 이곳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로
심령이 다시 살아나는, 기쁨이 회복되는 에덴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예배를 드리지만, 말씀을 듣지만,
에덴을 거니셨던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각 사람 사이를 거니시면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때로는 돌이키게 하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역사가 가득한 에덴이 되기를 바랍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정적인 교회 같지만,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살아있는 말씀의 역사가 있어서,
그분과의 살아있는 교제로 그 어느 것보다 동적인 교회가 되어서,
우리의 영혼이 소성되고,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는 에덴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세상에서 어떤 모습과 어떤 마음으로 왔다 할지라도,
이곳에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제로 인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여러분의 모습과 표정이
여러분의 심령이 에덴동산으로 바뀌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눈물이 닦여져서 돌아가고, 혼돈했던 마음이 질서있는 마음으로 돌아가고,
염려와 불안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떠나있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죄로 강퍅했던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돌아가고,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의 거니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로
생명을 누리는, 에덴과 같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다 회복이 되고, 누구나 다 구원을 받고,
누구나 다 생명을 누리는 에덴과 같은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광야 같은 이 땅에서 에덴의 기쁨을 맛보는 교회,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도 에덴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십니까?
에덴과 같습니까? 아니면 광야와 같습니까?
바라기는 광야같은 메마른 사막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에덴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여러분이 가정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아바드(예배, 섬김)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을 믿음으로 지키는 샤마르(지킴)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제사장
여러분의 예배가 가정에서도 회복되기 바랍니다. 예배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에덴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세 번째, <에덴동산의 지침>입니다.
에덴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지침이 있습니다. 금령이 있었습니다.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에덴동산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로 가득했습니다.
그 중에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줄여서 ‘선악과’)도 있었습니다.
이 두 나무는 동산 중앙 센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무는 나란히 있었는데, 서로 상반되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는 생명을 주는 나무였고, 또 다른 나무는 죽음을 주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는 먹으면 생명을 얻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자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왜 선악과는 먹지 못하게 하셨는가요?
왜 하나님이 나머지는 다 허락하셨는데, 딱 한 가지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는가요?
이 딱 한 가지 금지의 명령 때문에,
명령을 주시는 이와, 명령을 지켜야 하는 자가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이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느 집에 가서 얹혀 살았습니다.
그런데 집 주인이 너무나 착해서 마음대로 집을 쓰라고 했습니다.
냉장고 음식도 마음껏 먹고, 이불도 편하게 갖다 쓰고,
TV도 보고 싶으면 마음대로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컴퓨터는 켜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사용해도 되는데, 컴퓨터만은 사용하지 말라고.
이 명령 한 가지 때문에 뭐가 구분되죠? 주인과 세입자가 구분됩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주인이 아닌지가.. 이 한 가지 명령 때문에 구분됩니다.
선악과가 바로 그렇습니다.
아담은 에덴의 왕처럼 살았습니다. 뒤에 보면 아담은,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그들을 다스리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아담은 밀림의 왕자 타잔처럼, 에덴동산의 왕자로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마음껏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착각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에덴동산의 주인이구나’ 하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선악과를 보면 뭘 깨닫죠?
‘아 맞다. 하나님이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지...’
그러면서 뭘 다시 깨닫냐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나는 피조물이다’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주인과 세입자가 단번에 구분이 되는거죠. 차이가 나는거죠.
그래서 이 나무를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두셨습니다.
왜요? 어디서든 잘 보이라고요. 어디서든 보고, 바로 주제를 파악하라고요.
이 금지 명령 하나 때문에, 아담은 자기 주제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질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구나’
그 수단이 바로 선악과 였습니다.
▲자 그런데 사탄이 유혹을 하는 거죠. 선악과 따먹으라고!
그러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게 만들려는 유혹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도, 이 싸움을 하는 겁니다. ‘누가 주인인가?’ 이 고백을 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10분의 1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악과의 원리랑 똑같습니다.
십일조 때문에 구분이 되는 거죠.
‘아 이 물질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구나’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일 하루만큼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악과의 원리랑 같습니다. 주일을 지킴으로써 구분이 딱 되는 거죠.
‘아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구나’
이 말씀 때문에 시간의 주인이 누구인지, 물질의 주인이 누구인지 구분됩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이 뭐냐면, 선악과 때랑 똑같습니다.
‘다 네 거야’ 라고 유혹합니다.
우리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책에서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마귀는 ‘다 네 거라고... 시간의 주인도 너이고, 물질의 주인도 너이고,
네 자녀의 주인도 너라고’ 유혹합니다.
‘주일이어도 내가 피곤하니까 그냥 자야지..’
‘예배 빠지고 여행 가야지...’
‘내 돈이니까 내 마음대로 써야지’
‘내 자녀니까 내 마음대로 해야지’
오늘도 선악과의 유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선악과의 원리가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임을 믿고 고백하기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 주일은 더 하나님의 구별된 날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이 나의 물질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또 내 자녀도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의 주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4. 마지막으로 <생명나무>를 살펴보겠습니다.
생명나무란 무엇인가요? 이 생명나무는 선악과와 정반대의 교훈입니다.
선악과는.. 먹으면 죽는다 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 죽는다 였습니다.
그러나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생명을 얻는다’는 상징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나무는 바로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얻습니다.
요3:16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여기서 ‘내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바로 생명나무의 실체이자,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계22:1~2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에덴동산의 이미지가 지금 완성되어 있는 거죠.
새하늘과 새 땅에서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특이하게 천국에는 선악과가 없습니다. 생명나무만 있는 거죠.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새 하늘과 새 땅, 우리가 장차 갈 천국에 있는 에덴의 모습, 아니 새 에덴의 모습입니다.
천국에서는 에덴에서와 같이 강이 흐르는데,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흐릅니다.
창2장의 에덴동산처럼 생명나무가 있는데,
생명나무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영원한 생명의 공급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바로 생명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허락된 생명나무입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예수님을 믿고 참 생명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에덴동산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1) 첫째, 에덴동산은 단순히 정원이 아니었습니다. 왜 에덴을 낙원이라고 하죠?
먹을 것이 많고 마실 것이 풍족해서가 아닙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거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덴은 최초의 성전, 성소였습니다. 그 에덴이 광야에서 재현되었습니다.
성막을 통해 다시 하나님이 거하시자, 놀랍게도 광야가 에덴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배하는 이곳도 다시 에덴이 될 수 있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이 인재하시고 하나님이 운행하신다면, 하나님이 거하신다면
우리 교회도 에덴이 될 줄 믿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에덴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의 가정도 메마른 사막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에덴동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둘째, 에덴동산에서는 선악과가 금지되었습니다.
선악과의 금지 명령 하나 때문에, 창조주와 피조물이 구분되었습니다.
선악과의 유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삶에 주인된 영역은 없습니까?
선악과의 원리를 따라서, 하나님이 내 시간의 주인이고, 내 물질의 주인이고,
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고백으로 또 한 주를 살아가기 바랍니다.
3) 셋째, 우리가 진짜 먹어야 할 것은 생명나무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생명나무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멸망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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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에스겔 47:1절 이하에 묘사된 생명수의 강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에서 흘러나와 동쪽으로 흐르며,
발목에서 무릎, 허리를 지나 헤엄칠 만한 강이 되어 죽은 바다(사해)를 소생시키고,
주변에 각종 과일나무가 자라 매달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은 약 재료가 되는 하나님의 성령과 치유의 역사를 상징하는 환상입니다.
계시록 22:1-2절에 묘사된 '생명수의 강'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
새 예루살렘 성의 길 가운데로 흐르는 수정 같이 맑은 강입니다.
이는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영적 목마름을 해소하는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며,
만국을 치료하고 영원한 안식을 주는 천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