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경계할 결정적인 두 가지 악 | 렘2:9-13 | 2026.02.01. Youtube
◈인생이 경계할 결정적인 두 가지 악 렘2:9-13 2026.02.01.
예레미야 2장, 예레미야 두 번째 시간이 되겠습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네 개의 중요한 단계를 거쳐 형성됩니다.
그 네 개의 단계가 뭐냐면 창조, 타락, 구원, 회복입니다.
이 네 단계는, 역사 속에서 꼭 한 번 일회적으로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사실은 어느 민족, 어느 공동체에게도 반복될 수 있는 단계적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것은 한 가정의 역사 안에도 적용될 수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부부가 되어서 결합하면
가정이 창조됩니다. 가정의 창조인 거죠.
부부가 젊은 날에 사랑의 기억을 간직하며, 결혼의 언약을 지키는 한
그 가정은 보호되고 축복을 경험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 점차 사랑이 식어지고, 그 사랑이 망각되고
혹은 배우자보다 더 사랑하는 다른 무엇, 혹은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기 시작하면,
그 가정은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이 붕괴되는 가정의 타락,
창조에 이어서 타락의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후에 이 가정에는 오직 두 가지의 숙제만이 남습니다.
다시 구원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회복될 수가 있을 것인가?
이렇게 구원과 회복의 숙제가 남겨집니다.
이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가정은 붕괴되고,
부부는 이혼이라는 아픔을 수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고 있던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 그런 위기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영적으로 이혼의 위기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범죄함 때문입니다. 타락함 때문입니다.
이제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런 이스라엘 민족의 타락의 상황을 고발하면서
타락의 원인을 진단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이스라엘의 역사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와 상관없는 역사가 아니라
새로운 언약의 시대,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영적인 본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일찍이 이방인 교회였던 고린도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고전10:5
그들이 누구예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을 지금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10:6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적 경험은,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본보기가 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악을 즐겨하지 않아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
다시 이어지는 고전10:11절 말씀을 읽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여기서 계속 반복되는 단어가 뭐예요? ‘본보기’라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적 타락과, 이 타락의 상황과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이스라엘의 타락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 이스라엘의 타락의 상황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좋았던 과거와,
-또 문제가 발생한 현재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과거와 현재
▲관계가 좋았던 과거
본문 렘2:2절이 그때를 증언하고 있어요.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2:2
여러분, 우리 부부들의 삶 속에서 가장 좋았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결혼 직전에 그 데이트의 시간들, 그리고 결혼 직후의 신혼의 시간이
아마 우리 인상에 남는 가장 좋았던 과거일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가장 애틋했던 로맨스의 추억, 결혼 직전...
본문의 표현에 의하면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입니다.
그때가 아마 우리 가장 커다랗게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랑함에 있어서, 사랑을 기억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 우리의 건강한 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이 오늘의 가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기억'이라는 선물을 주신 중요한 이유가,
과거의 좋은 유산을 현재로, 미래로 가져가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저 북녘 땅에서 탈북해서, 이 땅에 와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들이 제일 인상 깊게 얘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북녘 땅에서 탈북할 때, 그들이 다른 거를 다 가지고 나올 수가 없었지만,
가족 사진 하나, 부부 사진 하나, 부모님 사진, 그 사진 한 두 장을 품고 나온다는 거죠.
그리고 이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 땅의 외로움, 향수를 극복하게 되는 중요한 힘이,
바로 그 사진 한 장, 그 과거를 회고하는 데서 온다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듣게 됩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그 신혼의 사랑의 시절’ 그 시절은 사실은 어려운 때였어요. 2:2
씨도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의 적막한 시간이었다고요. *출애굽 40년, 시내산 언약식 직후
그래도 그들은 그 시절에 애틋한 사랑을 통해서, 그 어려움과 시련을 이겨내고
오늘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이스라엘의 광야 방황이, 그래도 하나님과 가까운 밀월의 기간이었다는
성경구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렘2:2절 말고도요. 주1)
그렇습니다. 아무리 인생의 시련이 깊고 아픈 것이라 할지라도
여러분, 우리에게 아름다운 사랑의 메모리가, 추억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면
우리는 광야의 비바람, 혹은 불편함, 또 모든 시련과 역경을
마침내 이겨낼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과거의 한때를 회상시키면서
이어서 현재의 상황을 그들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진 이스라엘의 현재
2:7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자 광야를 하염없이 배회하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와서, 생활이 좋아졌어요. 살만해요. 편해졌어요.
그런데 그들이 이 땅에 와서 좋아진 형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죄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 하는 죄에 빠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침내 그들이 살고 있는 거룩한 이 땅을 더럽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 렘2장을 계속 조심성스럽게 탐색하고 읽어 내려가면,
반복되는 단어, 우리가 유의해야 할 두 개의 단어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무익한 것, 헛된 것이란 단어입니다. 둘 다 우상숭배와 관련되죠.
2:5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vanity, empty
2: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not profit
자 이제 드디어 본문 11절입니다.
2:11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다’ 이 말이에요.
그 무익한 것은 우상숭배죠.
여기 인간 타락 실존의 극치가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롬1:23절에서 바울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향해서 경고합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커다란 우상숭배의 죄악을!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23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서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제는 할 수 없이, 내가 내 백성들과 싸우겠다!’
렘2:9 ‘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어서 이 타락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진단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타락했나? 두 가지 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타락시킨 두 가지의 악!
이 두 가지의 악은, 넓은 의미에서는 인류 보편적인 악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도 실족하는 두 가지의 죄, 혹은 두 가지의 악입니다.
타락의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1. 첫 번째 악이 뭐예요? 나를 버렸다는 거예요. '나를 떠났다...'
그런데 어떤 나예요? '생수의 근원된 나를 버리고 떠난 것'입니다.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우리가 목마를 때 우리는 한 모금의 물을 찾습니다.
물론 한 모금의 물로 갈증나는 목을 잠시 동안 축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생수의 근원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수의 근원만 알고 있다면, 목마를 때 언제 어느 때나 즉시로
생수의 근원으로 우리가 달려갈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 생수의 근원을 모른다면, 우리는 목마를 때마다
한 모금의 물을 찾아 여기저기로 방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날은 이스라엘의 초막절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요7:2 참조
예수님은 성전에 운집한 수많은 군중들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무슨 말이에요? 목마른 자들에게, 예수님 당신이 '생수의 근원이 되신다'는 선언이에요.
본문 렘2:13절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자신이 또한 생수의 근원이라고,
목마른 자들은 그분 앞에 나와야 한다고,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4장에 익숙해 있습니다.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이 만나신 사건이죠.
그녀는 목마른 인생이었습니다. 목마른 인생의 욕구를 해결해보고자
이 여인은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었지만 (다섯 번이나 이혼당했지만)
이 여인의 목마름은 여전했습니다.
그런 여인이 어느 날 사마리아 땅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낯선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나그네가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전하세요.
요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또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러분, 이게 굉장히 재미있는 말씀이에요.
지금 여자가 물을 달라는 요청을 낯선 남자로부터 받았어요.
그런데 이 남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사실은 내가 그대에게 물을 달라고 했지만,
그대에게 물을 달라는 내가 누구인 줄 그대가 알았더라면,
오히려 그대가 나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대에게 영원한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요4:14절을 다 함께 읽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는 잠시 이 우물가에 이제 물길러 왔던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습니다. 물 길러 왔던 여자예요.
그런데 갑자기 물 기를 생각은 안 하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 들어갑니다.
그리고 만나는 동네 사람마다 외치기 시작합니다.
'내가 살아왔던 모든 일을 말해주고 있는 이 사람, 그가 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나는 그리스도를 만났어요. 나는 구세주를 만났어요.' 라고 전도하기 시작한 겁니다.
왜요? 그녀가 생수의 근원 되신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에서 생략된 것을 유추하자면... 여자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임재의 능력, 그 감동적 분위기, 붕 뜨는 듯한 느낌, 마음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있었겠죠.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어느 순간에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였느냐?' 했듯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인생은 목마른 방황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종종 하나님 앞에, 그리고 그리스도 앞에 나왔던 주의 백성들도,
어떤 인생의 위기 앞에서,
'혹시 더 나은 인생의 해결책이, 해답이 있을까?' 해서
한번 만났던 그 하나님, 그 그리스도를 버리고 떠나는 방황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이것을 가리켜서 '영적으로 첫사랑을 떠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언약의 남편을 버린 '영적 외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커다란 악이라고, 커다란 죄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렘2장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하나님보다, 그리스도보다 더 좋은 그 무엇이,
더 좋은 인생의 어떤 처방이, 어떤 해답이 있을까 하여...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떠나는 그 순간
우리는 생수의 근원을 떠난다는 것을!
첫 번째 악은 무슨 악이었습니까? 생수의 근원을 떠나는 악!
▲2. 그리고 두 번째 경고가 있습니다. 두 번째 악은 뭐라고 그랬어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2) 웅덩이, 물 저수조
2:13b절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얘기라서 제가 반복해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이제 내가 신이 되고,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인생의 해결책을 구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그 결과가 뭐냐?
그렇게 산 결과가 터진 웅덩이다!' 이렇게 말해요. 우리 속담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죠.
터진 웅덩이! 물이 다 새어 나갈 수밖에 없는, 헛되고 헛된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일찍이 우리 시대에, 저 스위스에서 집 몇 채를 지어놓고
유럽 땅에, 그리고 전 세계 수많은 젊은 지성인들에게 전도를 했던
프란시스 쉐퍼 박사라는 분이 계셨어요. 1912~1984
저도 젊은 시절에 제가 좋아했던 분이에요.
그분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무서운 이단이 있다.
아니 우리 시대에 가장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우상적 사조가 있다.
그게 뭐냐? 세속적 인본주의 secular humanism 이다」
Secular humanism 세속적 인본주의, 이게 가장 무서운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해버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예술, 교육, 과학, 의료 등이죠.
'이게 가장 무섭게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사조다'
이게 뭐냐?
하나님을 떠나, 인간인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잖아요.
이 땅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잖아요.
그러니까 이 땅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쉐퍼 박사의 표현에 의하면,
무서운 이단에 빠져 사는 거예요.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을 떠나 내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는 것,
그게 가장 무서운 악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사막 여행을 하다 보면, 길을 잃어버리고 조난당하기가 쉽습니다.
목이 타고 한 모금의 물이 갈급해지게 됩니다.
그때 저 앞에서 갑자기 흰 신기루가 발생합니다. 갑자기 저 앞에 물이 고인 호수가 보여요.
목마른 여행자는 부지런히 그 호숫물로 달려가 봅니다.
그런데 그 물의 정체는 생수가 아니에요. 거기 가보면 물이 없습니다.
물은 또 저 멀리 지평선 근처에서 아른거리는 거죠.
사막에서 발생하는 신기루의 주요 원인은, 강한 지열(地熱)로 인한
뜨거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는데, 그게 물처럼 보이는 거죠. 빛의 굴절 현상입니다
그 물의 정체는 사실은 사막의 뜨거운 모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곳에 생수가 있는 줄 알고, 목마름을 참고 그곳에 달려가 보니,
생수 대신에 손에 잡히는 것은 뜨겁고도 마른 그 모래들...
오늘날 21세기, 현대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그런 방식이 아닌가요?
사막에서 우리는 신기루를 보고 달려갑니다. *본문의 '터진 웅덩이'에 비유
어떤 신기루예요? 권력의 신기루, 명예의 신기루, 혹은 사랑의 신기루, 황금의 신기루
그 신기루를 찾아, 우리는 사막을 달려갑니다.
그러나 그 노력이 마침내 가져왔던 결과가 뭐예요? 생수가 아니에요.
우리 인생을 시원하게 하는, 그런 생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래를 씹는 듯한 고통만 경험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일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떠나면
생수의 근원 되신 그리스도를 떠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미세한 작은 틈새”
옛날 한 중동에 살던 임금님이 금항아리, 요술단지 같은 금항아리를 갖고 있었대요.
그는 그 금항아리에 생수를 부어 마시는 것이, 그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물이 부어지지 않아요. 자꾸 새 나가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새 나갈 틈이 없어요. 물이 부어지질 않아요.
그래서 어느 날 신하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금 항아리에 물을 부어 채우는 이에게
상금을 하사하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노력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와서 기도까지 하고 정성을 들이고 물을 붓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물은 항아리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신하가 처음부터 물을 부으려는 노력은 전혀 안하고,
항아리를 뒤집고 계속 정밀하게 밑바닥을 살펴보는 거예요.
그리고 마침내 육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틈새 하나를 발견합니다.
아주 작은 틈새 하나, 그 틈새로 물이 계속 새어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는 말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웅덩이에 물이 고이지 않는 원인, 우리가 생수를 마실 수 없는 원인,
우리가 인생이 터진 웅덩이가 되어버린 원인, 작은 틈새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작은 틈새의 죄악"을 예레미야 선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백성이 나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그 무익한 우상숭배, 그것이 내 인생의 생수를 빼앗는 틈새가 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수가 다 빠져나가면, 더 이상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있잖아요.
해결책은 우선 틈새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죄"라 할지라도, 그 죄를 주님 앞에 갖고 나와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보혈로 깨끗함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내 인생이라는 항아리, 이 항아리를 생수의 바다에 잠궈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생수로 넘쳐오르게 될 때, 비로소 인생은 참된 만족을 다시 회복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것이 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가 우리의 충만함이 되게 하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 앞에 다시 돌아와,
그 그리스도 안에 내 모든 것을 드리고,
그리스도로 충만함을 받아야 할 시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 인생이 어쩐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분과 저의 인생 가운데 혹시 작은 틈새가 생긴 것은 아닌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엇 때문에,
하나님보다 내가 더 집착하는 그 무엇 때문에,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흔들렸고, 계속 흔들렸고,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행복하지 못한...
그냥 예배당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아닌지...
주님 그 틈새를 메우겠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해지겠습니다.
다시 하나님으로 나의 모든 것을 삼겠습니다.
주님 주님만으로 제가 채워지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부르고 함께 같이 기도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 (펀 글)
성경은 이런 절망적 인간의 상태를 ‘죽었다’고 말한다. 엡2:1
지금 숨쉬고 버젓이 살아있지만, 영적으로 ‘죽었다’(가망 없다)고 진단한다.
어떤 사람은 죄에 대해 언급조차 싫어한다.
때문에 교회에서는 죄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마치 병원에서 질병의 문제를 말하지 말라는 것이며,
질병을 치료하지 말고, 그냥 격려해서 돌려보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더 나쁜 죄에 대한 태도가 있다.
자신의 죄에는 둔감하고 타인의 죄에 대해서는 민감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비판한다.
회개를 말하는데 자신은 회개하지 않는다.
나의 조금 나은 점을 들어서, 다른 사람의 나보다 못한 점을 부각시킨다.
여러분, 기억하시라! 큰 바위도 물에 빠지지만 작은 모래알도 물에 빠진다.
사람들의 눈에는 크고 작은 죄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큰 죄, 작은 죄가 없다.
큰 죄도 지옥 갈 죄요, 작은 죄도 지옥 가기는 마찬가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죄 중에 가장 악한 죄가 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았던 지난날의 우리 모든 삶이
가장 악한 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 고등학생이 부모와 갈등을 겪었다.
‘우리 부모님은 말이 안 통해!’ 그러고는 후딱 집을 나가 가출을 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15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 세월동안 자기 나름대로 출세 해보겠다고
주유소에 가서 기름도 넣고, 철가방을 들고 음식 배달도 하고,
그러다 운이 좋아서 그럴듯한 사업가가 되었다고 치자.
그래서 돈 꽤나 벌어서 15년 후에 부모 앞에 나타났다.
그 자식은 효자인가? 불효자인가?
결코 효자가 아니다! 그 사이에 부모 속은 다 썩어버렸다.
어머니는 화병으로 이미 병상에 누운 지 오랜 세월이 돼 버리고 말았다.
선하게 살고, 악하게 살고를 떠나서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것이 가장 무서운 죄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아무리 인정받는 삶을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아무리 존경받는 삶을 살아갔다고 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왔던 그 삶이 가장 악한 죄임을 아시는가?
♣제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달라진 것이,
바로 <고난에 대한 믿음>이 달라진 거예요.
디트리히 본 회퍼가 "유럽 교회가 몰락한 이유"를
'고난을 거부하고 문화적인 기독교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적했어요.
'유럽 교회가 왜 이렇게 됐나?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성도들이, 또한 교회가 고난을 싫어해요.
그건 사람의 본능 과도 같은 거죠.
그리고 기독교는 서서히 그냥 문화적인 현상처럼만 되었어요.
완전히 교회는 영적으로 확 꺾어진 거예요.
♣콜리어 공원 이야기(Collyer Brothers Memorial Park) *뉴욕 할렘
「뉴욕의 저명한 가문 출신으로 콜리어 형제 형 호머와 동생 랭글리가 있었다.
증조부는 조선소를 지었고, 그의 모친은 존경받던 리빙스턴 가의 일원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고, 부친은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였다.
이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말로는 비참했다.
두 형제 모두 컬럼비아 대학교를 나와 형 호머는 해사법 전문 변호사,
동생 랭글리는 유능한 공학도였다. 그런데 부모가 사망(1920년대)하기 이전부터
두 형제는 외부와 단절하고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1947년 3월 콜리어 저택에 시체가 있다는 신고를 받아 출동한 경찰도
형제의 집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저택 안에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들어가 65세 호머의 시체를 발견했다.
사흘이 지난 후에야 동생 랭글리 시체를 발견했다. 랭글리는 자신이 설치한
부비트랩에 걸려 넘어지면서 신문 더미에 깔려 질식사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집에서 나온 물건들은 가스 샹들리에, 녹슨 자전거, 자동차, 생물학 표본, 마차,
그랜드 피아노 14대 중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하사받은 피아노도 있었다.
저장 강박관념에 빠져있던 그들 형제는 집에 온갖 잡동사니가 무려 170톤이 나왔다.
1947년 저택은 철거하고 만든 공원이 ‘콜리어 형제 공원’이다. ‘콜리어 공원’이라고 부른다.」
오늘, 이 이야기를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도 막 모으고 있지 않습니까?
쓰레기를 모으는 대신에 상처와 원한과 미움들, 그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채우는데
이 두 형제는 자기 집 저택에 가득채웠지만,
우리는 우리의 마음 속에 채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에 원한과 버리지 못하고 미움을 채우고 또 채우면서
가득가득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도 그것을 계속 채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온갖 고통들을 주렁주렁 걸어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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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광야 40년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밀월 기간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성경구절들
1) 렘2:2 .. 오늘 본문이죠. 위 설교를 참조하세요.
2) 호2:14-15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광야)로 데리고 나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릴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광야를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회복의 장소로 묘사하며,
신혼 때처럼 다시 사랑하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입니다.
3) 신32:10-12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라는 거친 환경에서 발견하고,
독수리처럼 사랑으로 보호하셨음을 회상합니다.
4) 겔16:8 (언약과 사랑):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자락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였느니라
네가 내게 속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광야 때 이스라엘을 어린 신부로 비유하여,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신 '사랑의 때'를 강조합니다.
5) 호11:1 (어린 시절 광야 때의 사랑):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이스라엘의 민족적 초기 시절(출애굽 및 광야)을 하나님이 사랑했던 때로 회상합니다.
이 구절들은 공통적으로 광야(거친 곳)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첫사랑(언약/신혼)이 맺어진
특별한 시간과 장소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광야를 불순종으로 방황한 40년 기간'으로만 보는데,
그와 동시에, 하나님이 '어린 철없는 신부를 사랑하신 기간'으로도 성경은 설명합니다.
성경은 늘 이렇게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2) 고대 중동의 저수조 (물 웅덩이)
이스라엘은 건조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비가 오는 겨울철에 빗물을 모아두기 위해
바닥이나 바위를 파서 지하 저수조(Cistern)를 만들었습니다.
'터진' 웅덩이의 의미: 이 지하 저장소에 균열이 생기면(터지면) 모아둔 물이 다 새어나가버려
물을 저장하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고대 중동 지역은 건조한 기후와 제한된 수자원 때문에 물을 확보하고 저장하는 기술이
매우 발달했으며, 저수조(Cistern)는 도시의 생존과 직결된 핵심 기반 시설이었습니다.
산간 지방 등 우물과 샘이 부족한 곳에서 저수조는
빗물을 모아 장기간 저장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주로 지하에 만들었는데, 이는 물의 증발을 막고, 외부 빛을 차단하여
이끼 번식을 방지하기 위해 주로 지하에 건설되었습니다.
거대한 대리석 기둥을 세우거나 튼튼한 방수 처리를 한 지하 공간으로 조성되었으며,
이때 공사가 부실하게 되면, 물이 새게 되는 거죠.
이렇게 모어진 빗물은, 농업 용수, 도시의 생활용수로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저수조는 고대 중동의 도시들이 건조한 환경에서도 생존하고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핵심 인프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