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를 뒤흔든 풍자의 힘 - 에라스무스 『우신예찬』의 불편한 진실 - YouTube
◈중세를 뒤흔든 풍자의 힘 - 에라스무스 『우신예찬』의 불편한 진실
에라스무스가 던진 시대의 거울
◑금지된 책의 탄생
1511년 유럽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한 권의 책이 출간됩니다.
놀랍게도 이 책은 바보가 주인공입니다. 스스로를 찬양하는 어리석음의 여신이 등장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낱낱이 폭로하는 내용이었죠.
교황은 분노했고 왕들은 불편해했습니다. 하지만 민중들은 열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책이 바로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입니다. In Praise of Folly, 愚神禮讚
*원제는 라틴어인 Moriae encomium이며, 어리석음의 여신(우신)이
스스로를 찬양하는 형식을 취한 풍자 문학입니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읽히는 이 고전 속에는, 어떤 위험한 진실이 담겨있을까요?
오늘은 중세의 어둠을 풍자로 밝혔던 에라스무스와
그의 대표작 <우신예찬>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리석은 여신
◑에라스무스는 누구인가?
대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1466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출생은 불행했습니다. 사제와 의사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죠.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고,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을 탐독했습니다.
그는 곧 유럽 전역에서 가장 박식한 학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파리,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바젤 등을 오가며 인문주의 운동을 이끌었죠.
에라스무스의 특별함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고대의 지혜를 되살리되, 그것을 기독교 정신과 결합시키려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인문주의”입니다.
그는 믿었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형식이나 의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당시 교회는 어땠을까요?
그 현실을 먼저 살펴봐야 에라스무스가 왜 <우신예찬>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세말 유럽의 어두운 현실 15세기 말, 16세기 초 유럽은
겉으로는 기독교 문명의 전성기였지만, 실상은 부패와 타락으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교황청은 어땠을까요.? 성베드로 성당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돈만 내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죠.
추기경들과 주교들은 호화로운 궁전에서 살며, 권력 다툼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신앙보다는 정치와 부가 우선이었습니다.
수도사들은 어땠을까요.? 청빈과 순교를 서약했지만
실제로는 재산을 모으고 향락을 즐겼습니다.
성경은 읽지 않고 무의미한 의뢰만 반복했습니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바늘 끝에 천사가 몇 명이나 설 수 있는가?’ 같은 쓸모없는 논쟁만
일삼았습니다. 군주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고, 백성들은 고통받았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이 모든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직접적인 비판 대신, 더 영리한 방법을 선택합니다. 바로 풍자였습니다.
◑ <우신 예찬> 탄생 배경
1509년 에라스무스는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향합니다.
친구 토마스 모어를 만나기 위해서였죠. 토마스 모어, 여러분도 아시죠?
나중에 <유토피아>를 쓰고, 헨리 8세에게 맞서다가 처형당한 그 위인입니다.
모어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에라스무스는 신장결석으로 고생했습니다.
말을 타고 여행할 수 없었죠.
침대에 누워있던 그는, 친구 모어와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립니다.
세상의 어리석음, 교회의 타락, 인간의 위선, 그리고 문득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모리아' 라틴어로 어리석음을 뜻하는 이 단어는, 친구 모어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했죠.
*원제는 라틴어인 Moriae encomium
에라스무스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을 겁니다.
‘그래, 바보가 직접 나서서 자기 자신을 찬양하는 글을 써보자’
단 일주일 만에 초고가 완성되었습니다.
◑ 책의 핵심 내용 ‘바보가 말하는 진실’
1511년 파리에서 출판되자마자, 이 책은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출판 첫 해에만 7개의 판본이 나왔고, 에라스무스 생전에 42회의 판본이 발행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을까요?
바보가 말하는 진실, 책의 핵심 내용 우신예찬은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우신, 즉 어리석음의 여신이 직접 등장해서 연설하는 형식이죠.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 덕분에 세상이 돌아간다” 처음에는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도 나 때문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누가 결혼하겠는가?
결혼생활의 고통을 알면서도 사랑의 눈이 멀어 결혼한다. 이것이 바로 나 어리석음의 힘이다”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이죠.
하지만 점차 풍자의 칼날은 날카로워집니다. 우신은 성직자들을 조롱합니다.
“수도사들을 보라. 그들은 청빈을 맹세하면서도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다.
순결을 서약하면서도 뭐, 그건 말하지 않겠다”
신학자들도 비판받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핵심은 모르면서 쓸데없는 논쟁만 한다.
‘그리스도는 배를 타고 왔는가, 말을 타고 왔는가?’,
‘성찬식의 빵은 정확히 몇 그램이어야 하는가?’ 이런 걸 토론하느라 평생을 보낸다.”
교황과 추기경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황들은 자신을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베드로의 청빈함은 계승하지 않고, 권력과 부만 계승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검을 버리라 했지만, 교황들은 전쟁을 일으킨다.”
가장 신랄한 비판은 면죄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우신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돈만 내면 천국 갈 수 있다고?
그렇다면 부자들의 천국이지, 가난한 자들의 천국은 아니지 않은가?”
군주들도 비판 받습니다. “왕들은 기독교 국가라고 부르지만,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킨다.
형제를 죽이는 전쟁을 영광스러운 일로 포장한다.”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단순히 비판만 한 것이 아닙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진정한 어리석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지혜는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가난한 자, 온유한 자, 박해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어리석은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거룩한 어리석음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다”
이것이 에라스무스가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입니다.
◑에라스무스의 개혁정신
에라스무스는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방법은 온건했습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어 신약성경 원전을 연구했고,
1516년 라틴어 번역과 함께 <신약성경>을 출판했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했을까요?
당시 교회에서 사용하던 라틴어 성경에는 오역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 ‘회개하라’는 라틴어로 ‘페니텐치아 마지테’로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행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되었죠.
하지만 원래 그리스어 ‘메타노이테’는 ‘마음을 바꾸라, 생각을 새롭게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이런 오역들을 바로잡으며,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라, 형식이 아닌 정신으로,
의례 ritual 가 아닌 실천으로, 권력이 아닌 사랑으로!”
에라스무스의 또 다른 중요한 주장은 ‘교육’이었습니다.
그는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지하기 때문에 잘못된 가르침에 속는다고.
그래서 그는 평생 동안 교육개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고전 문학과 성경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습니다.
◑루터와의 차이, 온건한 개혁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라스무스가 루터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과 성경연구가 루터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루터와 선을 그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에라스무스는 폭력적인 변화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육과 설득을 통한 점진적 개혁을 믿었습니다.
루터는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1524년 <자유의지론>을 출판하며
인간에게도 선택의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과 악을 선택할 능력을 주셨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을 책임질 수 없지 않은가?”
루터는 격렬하게 반박했고, 두 사람은 결별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에라스무스는 양쪽 모두에게 비난받았습니다.
가톨릭 측에서는 ‘루터의 길잡이’라고 비난했고,
개신교 측에서는 ‘비겁한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1536년 바젤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의 순간 그는 네덜란드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500년이 지난 오늘, 에라스무스와 <우신예찬>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요?
첫째,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입니다.
우리는 권위나 전통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에라스무스가 교회의 권위에 맞섰듯이 우리도 잘못된 것에는 용기있게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둘째, 풍자와 유머의 힘입니다. 에라스무스는 직접적인 공격 대신 풍자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었죠.
분노보다 지혜로 공격보다 웃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셋째, 관용과 대화의 정신입니다. 에라스무스는 루터와 의견이 달랐지만 폭력을 거부했습니다.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해결을 믿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극단적인 대립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에라스무스의 관용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넷째, 겉과 속의 일치입니다. 에라스무스가 가장 비판한 것은 위선이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탐욕스러운 것.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 삶에도 이런 이중성이 있지 않은가요?
◑마지막으로 ‘진정한 지혜는 무엇인가?’입니다.
에라스무스는 말했습니다.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다르다고.
권력, 명예, 부를 추구하는 것이 세상의 지혜라면,
겸손, 사랑, 봉사를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진정한 지혜를 향하여 에라스무스는 어둠의 시대에 빛이 되었던 인물입니다.
풍자라는 거울로 시대의 어리석음을 비춰주었고,
학문과 교육으로 개혁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의 <우신 예찬>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진정 지혜로운 사람인가? 아니면 스스로 현명하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에라스무스처럼 끊임없이 배우고 용기있게 질문하고
관용의 정신으로 대화하며, 진정한 지혜를 추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