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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1장 만족함과 그의 복

LNCK 2026. 3. 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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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함과 그의 복                      마11:1~6                        2004.03.14.

 

※'감옥에 갇힌 세례요한' 본문에 관한 가장 탁월한 해석이요, 설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례요한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전에 세상에 왔고, 예수님을 위해서 광야에서 외치면서

메시야의 길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나오실 때

예수님을 증거 했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메시야 됨을 증거했고,

또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 정도로 확실하게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오심과, 태어나심과, 사역과, 그 역사를 증거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어이없는 순간이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기막힌 말씀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그는 메시야를 증거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메시야에게 사람을 보내서 하는 말입니다.

자기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서 하는 말이 “오실 그이가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리오리이까?”

 

◑세례요한이 가졌던 딜레마의 이유

 

뭐 여기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그저 세례요한 편을 좀 들어서 좋게 해석도 해봅니다.

뭐 그저 해석자들은 ‘뭐 세례요한이 그랬겠냐? 제자들이 하도 성화니까...

제자들이 가서 물어보도록, 제자들을 내버려둔 것이다’

 

“예수님이 왔는데 메시아가 왔는데, 스승님은 왜 이렇게 감옥에서 고생을 해야 합니까?”

하고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하도 몸부림을 치니까

“그럼 너희가 가서 직접 물어봐라. 가서 확인해 봐라” 이렇게 한 게 아닌가?

 

이렇게 세례요한 자신이 회의를 가진 것이 아니라고,

그의 제자들이 난리 친 것이라고 좀 두둔해봅니다만,

꼭 그렇게 볼 거 없습니다.

 

솔직하게 그는 지금 감옥에서 실망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메시야를 보고, 메시야를 증거 했건만, 지금 이 시간에 와서 마음이 흔들립니다. 왜요?

 

1.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하죠. 사람마다 자기 자신을 중심하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세례요한은 지금 자신에게 고통이 있거든요.

지금 감옥에 있거든요. 이 감옥도 억울한 감옥이에요.

 

<살로메>라고 하는 소설을 보면, 이 감옥이 어디에 있는고 하니,

바로 헤롯 왕궁의 지하실에 있어요. 바로 밑에...

 

헤롯 왕이 거기서 춤추고, 거기서 술 먹고, 뭐 향락하는 소리가 다 들렸다는 거예요.

그 지하실 바로 거기니까... 세계요한은 거기서 세월을 보낼 때, 너무너무 속이 탄 거예요.

‘메시야가 오셨는데 왜 이러냐?’ 이거죠.

자기 자신의 고통, 그 옥고에서 오는 분노가 마침내 이렇게 믿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2. 또 한 가지는 '의로운 희생에 왜 보상이 없느냐?'

여러분 의로운 말을 했고, 의로운 행동을 했고, 의로운 희생을 했습니다.

 

지금 세례요한은 왜 감옥에 갔습니까?

헤롯왕의 부정한 행위를 정면으로 충고하다가, 지적하다가 감옥에 간거에요.

자기 잘못이 있는 게 아네요. ‘의로운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왜 보상이 없느냐?’

‘하나님은 뭘 하고 계시는 거냐? 메시야는 뭐 하고 계시는 거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그래요.

의로운 고난을 당할 때, 그저 당하면 좋은데 보상을 요구해요.

꼭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선한 일을 할 때, 상 받고자 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좀 있어요.

‘좋은 일을 할 때, 하나님이 내게 복을 줘야하지 않느냐?’하는 거예요.

이 조급한 마음에서 그가 흔들리게 됩니다.

 

▲3. 또한 이 고통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고통이라도 그 시간적인 문제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혹 어떤 때 짐을 들고 가봅니까? 처음에 들 때는 가벼워요.

그러나 한참 길을 가다보면 점점 무거워집니다.

 

그와 같이 말이죠. 이 고난이란 게 너무 오래가면,

병도 너무 오래가면, 아픔도 너무 오래가면... 점점 무거워지는 거예요.

이와는 반대로 믿음은 흔들리게 되는 거지요.

 

▲4.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지지가 멀어지기 때문이에요.

비록 나는 이렇게 고생한다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지해주고, 나를 성원해주고,

내 명예만 지켜줄 수 있다면... 그래도, 그래도 참을 만 해요.

 

그런데 보자 하니 ‘내가 이렇게 의로운 고난을 당하면서 감옥에 와있는데,

아무도 자기 편의 사람이 없는 거 같아요.

심지어는 메시아라고 하는 그 예수님도.. 말이 없는 거 같아요.

 

내가 감옥에 있는데 찾아와서 “너 많이 고생하는구나. 조금만 참아라” 뭐 그러시던지,

아니면 다름 사람한테 설교할 때라도 “아 그거 세례요한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한마디쯤 말해주면 기다려볼만 한데... 안 그렇습니까?

 

“어찌하여 메시야는 내 수고와 희생에 대해서 말이 없는가?”.

이래서 그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해요.

“오실 이가 당신입니까? 다른 분을 기다리리 오리까?”  마11:3

이런 있을 수 없는 질문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대답

 

본문에서 예수님이 대답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실까요?

“가서 보고 듣는 대로 말해라. 보고 듣는 대로 사실대로 가서 말해라”  :4

 

여러분 본문에서 보고 있지 않습니까?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5

아주 깊은 말씀입니다. 엄청난 의미를 담은 말씀입니다.

 

▲1. ‘이것으로 (:5) 만족하라!’ 이거예요. ‘이거면 안 되겠냐?’

‘여기에 죽은 자가 살아나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가난한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 자 네가 감옥에 있다고 잘못되겠냐?’

‘이 소식을 듣고 만족하라. 이것으로 만족하라’ 그 말이에요.

 

여러분 내가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복음이 전파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죠.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아주 중요한 말씀이에요. 어디선가 복음이 전파되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해석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에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경제적으로도 부흥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엄청나게 부흥되고 있습니다.

 

이일이 있기 전에, 그들은 공산주의로 인해서 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어떤 주에서는요 하도 너무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고

그 열심, 그거 허연 멀건 죽 한 그릇 먹고 성경공부하고 주의 일 하겠다고 하는 청년들이

수백 명 있는 거 볼 때 기가 막혀서 “어떻게 이런 열심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성 장 城長의 말입니다.

“이 성에서는 문화혁명 때 5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죽었습니다.

여러분 5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순교 당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은

특별히 선교 열이 교회에 대한 것이 이렇게 부흥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 하나가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사라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고

어디선가 복음이 전파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바로 그런 마음 말입니다.

“세례 요한아, 이것으로 만족하라”그거예요.

 

2. ‘꼭 너()랑 관련지어, 하나님 나라 사역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거죠.

또 하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병든 자가 낫고...”

여기 기적 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너는 감옥에 있어도, 저기는 기적이 있어요. 이걸 생각해 보세요.

 

세례요한이 생각하는 기적은 내가 감옥에서 나가는길만이 기적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아 저기 기적이 있어”.

 

이것가지고 내가 만족할 수 있습니까?

내게는 아무것도 돌아오는 게 없는 거 같아요.

그러나 그 누군가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기적을 보고 있어요.

기적은 있어요. 내게는 없지만...

 

이제 주님 말씀하십니다. “이것으로 만족하라”.

내 병이 나은 것이 아네요. 다른 사람의 병이 나았어요.

내가 능력을 체험하고 있지 않아요. 그러나 다른 사람은 많은 은혜를 받고 있어요.

이것으로 만족하라하고 말합니다.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벌써 놀라운 기적이 있어지고 있어요.

이것을 내 기쁨으로 삼고 내 만족함으로 삼고 살아야만 행복한 것이지요.

마11:7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여러분 나는 그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참 어렵게 아들하나를 공부시켜서 고려대학을 나오는데

졸업식에 가자고해서 같이 따라가 보았는데요.

졸업장을 아들이 어머니에게 주는 거예요.

“이건 제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그 메리야스 장사를 하면서 그 얼마나 고생하고

밥도 굶으면서 저를 도와주셔서 제가 공부 했습니다”.

 

아들은 말합니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이건 어머니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어머니의 희생과 수고가 있어서 내가 오늘 있습니다”.

졸업장을 어머니에게 들려주고 사진을 찍으면서 우는 모자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내가 받는 졸업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들이 받는 졸업장을 보며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은

그것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기쁨 말입니다.

 

△심리학자인 폴 투루니에의 소위 ‘창조적 고통’이라는 이 명제가 있습니다.

그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소유욕으로 전락하고, 소유욕은 재앙을 일으킨다”

 

여러분 마음속에서부터 현실에서부터 소유욕, 더 가질려고 더 가지려고 하는 이 마음은

이상하게도 많을수록 더 강해집니다.

‘그런고로 소유욕은 재앙을 일으킨다. 나도 불행해지고 남도 불행하게 만든다.’

 

또 그러면 ‘이타적인 사랑은 나를 위하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하는 그런 사랑은 기적을 일으킨다.

이타적인 사랑을 가슴에 품을 때 내가 자유롭게 내가 행복하고,

이타적인 사랑을 내가 베풀 때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유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래요. 사랑은 같은 사랑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타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한마디 잔소리를 해도 이게 이타적이냐 이기적이냐 깊이깊이 물어봐야 됩니다.

한마디의 충고도 이타적이냐 이기적이냐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됩니다.

 

▲정리하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꼭 네가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만족하라’ 입니다.

 

‘겨자씨처럼 조용하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것으로 만족하라.

지금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지금은 화려한 무엇이 없는 거 같으나

조용하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고 확장되어가고 있다는 이 사실을 믿어라.

그것으로 만족하라.’

 

비록 그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진행되는 중에,

자기는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변두리로 밀려나 있더라도 말입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있는 신세라도, 팀이 이기는 것을 보고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전체 그림을 보면서 만족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 하나님의 하시는 지혜, 하나님의 경륜

그것을 믿어야 돼요. 그것을 믿는 순간 믿으며 자는 지금 만족할 수 있는 것이에요.

 

버트란트 러셀의 유명한 ‘행복론’에서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힘을 겸허하게 평가하는 사람은 늘 행복하다”.

 

어떻게? “겸손한사람은 성공할 때마다 스스로 놀란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이런 복이 주어지다니... 항상 성공에 대하여 놀라며 살아간다.

교만한 사람은 실패에 놀란다. 내가 실패하다니... 내가 망하다니...

내게 이런 불행이 있다니...” 그 사람은 전부 교만한 사람이에요.

 

만족은 그리스도마음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세례요한에게

'나는 십자가의 길을 가노라. 이것을 이해하고 그리고 만족하라.

내가 가는 십자가의 길에 실망하지 않는 자는 복 있다.

나로 인하여 실망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나로 인하여 만족한자는 복이 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이해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능력을 믿으면서 만족하십니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만족하십니까?

 

오늘 세례요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대로 이대로 너는 만족하라”.

이대로 만족할 수 있어야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다.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는 복이 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바로 앞에 있던 사람들

여러 모양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왜 거기서 죽어 가느냐? 남을 살리고 능력을 행하던 기적의 사람아!

십자가에서 내려와라. 그러면 내가 너를 믿겠노라”. 어떻습니까? 이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 나는 십자가에 죽노라. 이대로 만족하라.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는 복이 있다”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나 자신을 중심하고 세속적인 욕망에 매어있기에

하나님의 큰 뜻을 보면서도 쉽게 실망하기도하도 낙심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사람으로 자처하면서도 늘 흔들리고 있고

때로는 원망과 불평과 좌절에서 헤어나지 못함을 용서해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감옥에 있는 세례요한을 향해서 하시던 그 귀한 말씀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된다 하라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그 복을 오늘 우리가 함께 누릴 수 있고

복된 자로 오늘 나의 길을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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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된 부분

여러분 잘 아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오랫동안 있었던 명배우 오드리 햅번을 아시지요?

나이 드신 분들만 알겁니다. 젊은 사람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오드리 헵번.

그는 한때 풍류 하던 그런 명배우가 아닙니까?

 

그가 자녀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신만을 보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면, 갖는 것에서 오는 행복보다

나눔에서 오는 행복이 훨씬 더 큰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마라.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려거든 계속 남을 비판하지 말고 남을 칭찬하라.

아름다운 눈을 갖고 싶으면 남의 좋은 점만 보라.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으면 음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라.

혼자 먹는 음식이 비만의 원인이 된다”.

 

혼자만 먹으니까 스트레스 받아가지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나누어 같이 먹어야 돼요. 그래야 날씬해지는데 요걸 몰랐거든...

 

“머리칼이 아름답게 되고 싶거든 어린아이가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도록 하라”.

귀찮겠지만 그저 때 묻고 그러겠지만 어린아이들이 자꾸 쓰다듬으면

그 머리카락은 예뻐진다 이거예요.

 

“아름다운 자세를 가지려거든, 결코 혼자 걷고 있지 않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라.

나이가 들면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손을 둘을 줬는지를 알 것이다.

하나는 나를 위해서 하나는 남을 위해서 쓰라고...”.

여러분 이렇게 사는 자만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