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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73편 끝을 보면 지금이 보인다

LNCK 2026. 3. 9. 10:3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인내, 오래참음>

2026.03.05 l 73:1-28 l 끝을 보면 지금이 보인다 Youtube

 

◈끝을 보면 지금이 보인다        시73:1-28               2026.03.05.

 

※녹취록 중반 “◑적용” 부터가 하이라이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분명히 믿지만

때때로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신가?’ 하는 의심이 드는 순간들이 생기게 됩니다.

 

선한 사람은 고통을 당하고, 악한 사람은 형통하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의 믿음에 큰 충격을 받는 일이 생기는 거죠.

 

게다가 악한 사람이 죽을 때 조차도 편안하고 형통한 것을 보게 될 때,

완전히 믿음이 무너져 버리는 경우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인 시편 73편을 기록한 시편 기자가,

꼭 그와 같은 영적인 어려움, 신앙의 회의를 겪었던 사람입니다.

 

시73: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라고 고백합니다.

선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 악한 사람이 형통한 것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살아계신가? 역사하시나?’ 그런 마음의 심각한 질문을 가지게 된 겁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믿었지만, 도무지 세상에 되어지는 일들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어서,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문제>라는 책을 썼던 바트 어만이 쓴 그 책 속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God's Problem: How the Bible Fails to Answer Our Most Important Question

—Why We Suffer            by Bart D. Ehrman

 

「고통의 문제는 오랫동안 나를 쫓아다녔다.

내가 어릴 적에 종교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문제 때문이고,

나이 들어 신앙의 회의를 느낀 것도 이 문제 때문이다.

고통의 문제는 결국 내가 믿음을 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신앙클럽에 들어가 소위 거듭남을 경험했다.

거듭날 때 내 믿음이 한 단계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신앙이 깊어진 나는, 근본주의 성경대학인 시카고의 무디 성경학교에 들어가

목회훈련도 받았다. 나는 휘튼 대학에 들어가 헬라어를 공부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신학 석사학위와 이어서 신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는 기독교에 관한 중요한 자격들을 갖추었으며, 뼛속까지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믿음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잃어버렸다.

더 이상 교회 가지도 않고, 예수를 믿지도 않는다. 나는 더 이상 크리스천이 아니다.」

 

(*진정 거듭난 사람은, 결코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고등학생 때 거듭났다고 하면서

성인이 되어 믿음을 버렸다는 것은... 당시 거듭남이 ‘지적 동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지금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또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이상할 정도로 침묵하는 것 같고,

세상에서 악이 승리하는 것 같은 상황에 처해져 있을 때,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리고 우리가 겪는 모든 악한 현실에 대한, 진정한 진리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십니다.

 

시편 기자가 너무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울부짖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때 놀라운 것을 깨닫게 된 거죠.

 

73:17, 18, 1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이 안타까워하는 시편 기자에게, 그들의 마지막을 보여주신 겁니다.
마지막을 보고 나니까, 지금 현실은 모순된 것 같고, 악한 자가 형통한 것 같은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답답한 마음이 사라지게 된거죠.

 

비록 악한 자가 형통하게 죽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 시편 기자의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73:23절, 24절, 25절에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성도의 찬양, 믿음의 고백이 정말 놀랍잖아요.

이 시편 기자가 너무나 모순된 것 같은.. 악이 승리하고 선한 사람이 고통받는

바로 그 현장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의 이 믿음의 고백과 찬송은, 정말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때,

세상은 온통 부조리한 것 같고, 하나님은 너무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만 같을 때,

그때 여러분들이 더욱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 보면, 이해 안 될 문제가 없고, 또 설명 안 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되어지는 모든 모순된 일을 보면서

고통당하는 우리들에게

마지막 때 되어질 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2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하나님은 우리가 그저 마음의 심령에 쇠하고,

그리고 낙심과 좌절에만 머물러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악한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강건하게 하시기를 원하시고,

그리고 그 상황에서 우리가 이겨나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꼭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신신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사실 이제 제자들은 정말 눈앞이 캄캄해질, 그런 절망적인 일들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지만, 조금 있으면 정말 기가 막힌 어려운 순간을 겪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을 믿고 보게 되는거죠.

그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또 당부하시기를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조금 있으면’ 이라는 말씀이 너무 답답하게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이 답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도무지 치유되지 않는 어떤 질병으로 오래 고생을 할 때,

요즘 전쟁으로 인한 흉흉한 소식이 계속 들려올 때,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관계가 깨어져 나가는 기가 막힌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온갖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때, 배신을 경험할 때, 학대를 경험할 때,

폭력이 난무하는 그런 환경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정말 신음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그렇게 탄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때 우리가 주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또 조금 있으면’ 그러면 모든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16:16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구나’ 하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때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요16:22

 

오늘 이 예수동행 목요집회에 참여하신 많은 이들 가운데

주님께서 이 말씀을 정말 들려주고 싶은 환경 속에 계신 분들이, 너무나 많으실 것입니다.

 

주님께 정말 귀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악한 자가 결국 어떻게 될지..’ 우리가 마지막 날에 가면 다 보게 됩니다.

그때도 불평하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답답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걸 마지막에 가서야 깨닫게 되는 것은,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데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마지막 날에 되어질 일에 대해서, 우리에게 깨우쳐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소망인 거죠.

이게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놀라운 은혜 중의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시편 기자도 하나님의 성소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시편 기자에게 ‘악한 자의 마지막’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답을 얻은 거죠.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가 어디지요?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거죠?

어디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까?

 

너무나 놀라운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 안에 오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디가서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 말씀을 듣겠는가요?

우리는 방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리고 주님 앞에 머리 숙여 기도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안에 거하면, 누구나 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고,

주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서, 지금은 비록 이해가 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결국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십니다. 그러면 답을 얻게 됩니다.

 

환경과 여건은 아직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아도, 믿음의 답을 얻었기에

보는 것이 달라지게 되는 거죠.

 

악한 세상을 보면, 아무도 하나님을 안 믿을 것 같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이제 얼마 안가면 기독교의 신앙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고

그런 정말 말도 안되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어떻습니까?

 

세상은 여전히 모순 덩어리이고, 악한 자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오히려 복음은 더욱 놀라웁게 전해지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악한 세상, 모순된 현실 앞에서, 사람들이 다 믿음을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지만 더 주님을 신실하게 믿고,

더 하나님께 헌신하는 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적용

 

저희 부친은 평양에서 신학교를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오셨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일사후퇴 때, 그때 가족들, 아내조차 다 피난 보내고

그리고는 순교하셨습니다.

 

저희 할머님과 또 저희 부친이, 친척들과 함께 피난을 내려오다가,

수원 근교에 있는 어느 창고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그만 폭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친척들이 거기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저희 부친과 할머님은 정말 기적적으로 살아나신 거죠.

생각해 보면, 예수님을 잘 믿자고 했는데, 온 집안이 다 망한 것과 같은 꼴입니다.

 

고향 친척들도 모든 것 다 내버리고 피난을 내려왔는데,

피난 통에 일가 친척들 상당수가 죽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분들은 정말 목숨을 걸다시피 기도했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다 거는 마음으로 그렇게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사실 열매가 ‘저’이기도 하죠.

저는 어릴 때부터 저희 부모님, 그리고 저희 일가 친척들의

그 전쟁을 겪으면서 피난 내려오면서 당했던 수없는 고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들의 기도는 불이었고, 그리고 신앙생활은 정말 눈물로 하셨습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죠.

 

모순된 세상을 보고, 그리고 이해 안 되는 고난을 당하면,

다 하나님을 부인하게 되는 걸까요? *위의 바트 어만 처럼

 

저는 실제로 제가 겪은 것을 통해서

오히려 정반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부조리하고 악한 자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힘은, 주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전히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십니다.

이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본문 시편 73:2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이 말씀이,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분명한 확증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체험하고 있는 놀라운 은혜는.. 이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https://blog.naver.com/coldwater1cup/223253444178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님은 정말 어렸을 때부터 믿음이 아주 좋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학업을 마쳤을 때, 여기저기서 좋은 직장을 마련하고

그 아도니람 저드슨이라는 청년을 데려가려고 했었습니다.

 

그 모든 길을 다 내려놓고, 그는 선교사로 자원해서 지금 미얀마에 선교사로 왔습니다.

미국 최초의 해외 파송 1호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7년 동안 미얀마에서 선교를 했는데,

그만 미얀마와 영국의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는 임신한 아내를 두고, 그 위험한 상황에서 대책 없이

감옥에 투옥이 되었습니다.    *혹시 적국 영국과 협력할까봐

 

아주 어둡고 그리고 정말 끔찍한 환경이었던 미얀마의 감옥에 갇힙니다.

그리고 거꾸로 천장에 매달려서 인분과 오물통 위에 머리를 쳐박히는

정말 끔찍한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했습니다.

 

감옥은 기온이 섭씨 38도를 넘는 고온이었고, 창문도 환기장치도 전혀 없었고

냄새는 너무나 역겨웠고, 쥐떼와 모기떼,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그런 환경에서

그는 정말 끔찍한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는 거룩함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청결함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거꾸로 천장에 매달려서 그 머리가 오물통에 처박힌 상태에서

그런 끔찍한 일을 겪어야 했던 겁니다.

 

그는 7년 동안 미얀마에서 사역을 했지만, 한 사람의 결신자도 얻지 못했습니다.

군인들이 그의 집을 수색하면서, 그가 7년 동안 미얀마에서 번역했던 미얀마 성경,

그리고 미얀마어 사전을 압수해서 완전히 다 폐기 처분해 버렸습니다.

 

그는 실제로 7년 동안 말할 수 없이 고생을 했지만, 남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석방되었을 때, 그는 감옥에서 겪었던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처를

평생 동안 괴로워하며 살아야 했고, 아내는 결국은 죽었고,

감옥에 있을 때 태어난 아이도 죽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는 한동안 이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이렇게 훌륭한 선교사를, 그처럼 어려운 고통을 겪게 하시고,

그런 끔찍한 상황에 두신 것일까요?

진짜 이런 상황을 겪으면, 하나님을 계속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를 실패자로 두신 게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 중 한 명인 에드워드 저드슨 목사님이 아버지 뒤를 이어서,

뉴욕에서 목회를 했는데, 그가 뉴욕에서 아주 성공적인 목회를 했습니다.

 

그가 교회를 세우고 그리고 처음 7년간 신자가 700명씩 늘어났습니다.

대단히 큰 교회가 되었지요. 그는 최초로 교회 유치원을 시작을 한 사람이었고,

기술훈련센터를 세우고, 체육관을 짓고, 무료진료소를 세우고, 어린이집을 세우고,

그 지역사회에 아주 존경받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는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실패자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미얀마 안에 세워진 교회들이 다 그분의 결실입니다.

또 수많은 선교사들이,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를 뒤이어서, 그 미얀마 땅을 밟았습니다.

 

<거꾸로 된 리더십> 이라는 책에, 이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의 아들인

에드워드 저드슨 목사님의 글을 이렇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 없이 성공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 앞서 고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공 없이 고통을 받고 있다면, 아마 우리 뒤에 다른 사람이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면, 아마 이 말씀이 그대로 진리인 것을 다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지 어떠신지, 아직도 의심이 되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마지막을 볼 수 있는 눈을, 주님께 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끝을 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도니람 저드슨의 아들 에드워드 저드슨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늘 사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사역, 그것은 매일매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만이 사실 가장 위대한 사역으로 가는 열쇠인 것이다」

 

▲제가 한 번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저의 옆 병상에 아주 어린 아이가 입원을 했었는데

링거 주사를 맞아야 되는데 이 아이가 너무 겁이 나서

간호사가 그 주사를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너무 두려워서 막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그때 그 아이의 아버지가 보여준 모습을, 참 감동적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그 아버지가 그 아이를 껴안아 주면서, 얼굴에 몇 번이고 입 맞추어 주면서,

계속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는 그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아버지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계속 들으면서

어느 순간에 그 아이의 팔에 주사 바늘이 들어갔습니다.

 

아빠 품에 안긴 이 아이는, 아빠가 왜 자기를 그 고통 가운데 여전히 두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빠가 계속 그를 껴안아주고 입맞추고 사랑한다고 하는

그 고백 속에서, 그는 그 고통스러운 주사 맞는 일을 감당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일이 지금 하나님께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행하고 계시는 일이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이보다도 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 또 주님과의 입맞춤이 있겠습니까?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내가 정말 계속 확인하면서

우리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도무지 갈 수 없을 것 같은 길을 가고,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일을 견뎌내게 됩니다.

그것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사랑하며 말입니다.

 

▲저는 어릴 때 저희 부모님과 또 친척들이 자주 부르던 찬송가가 기억납니다.

545장입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 참 이 찬송을 많이 부르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정말 어떤 증거를 보지 못하고,

답답한 가운데 지내셨던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는 것 같아도, 지금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분들은 너무나 부러울 정도로 하나님에 대한 확신 가운데 거했습니다.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고, 정말 모든 것을 드려 헌신하시며 사셨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도 이 찬송을 통해서,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한 확증을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마지막을 보게 하시고

그 핵심이신 주님과 함께 우리가 겪는 길에 믿음의 담당함으로,

그리고 정말 놀라운 평강과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리고 오직 사랑만 하며 살게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