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눅8장 당신은 정말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LNCK 2026. 3. 9. 18:44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복음 관련     ▣ 하나님의 나라

 

◈당신은 정말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눅8:1, 9:2        2026.03.08   출처

 

복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이루어지는 그곳에

참된 구원과 생명, 기쁨과 평강, 그리고 자유와 만족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린 지난 시간을 통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참된 복음은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가 아님을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천국 가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정한 복음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회개하고) 예수님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으며 삽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가장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하나님의 나라)이 임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아직 한 가지 질문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중심이 되는 복음의 메시지는, 도대체 왜 너무나 생소한 것일까?’

 

기존의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라는 메시지는 너무나 익숙합니다.

근데 복음의 중심이 하나님이 나라가 되는 메시지는, 거의 들어본 기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생소할 수밖에 없겠죠.

 

자,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메시지’가 무엇인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또는 누가 뭐라고 말했는지 또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단 하나,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입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증거하신 ‘하나님의 나라’

 

성경에서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라는 메시지가 아닌,

하나님 나라가 중심이 되는 복음의 메시지를, 가장 잘 전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합니까? 네 분명히 있습니다.

누구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삶을 우리가 살펴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하나님 나라 중심적으로 살으셨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고,

삶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단 하나,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의 발자취를 한번 따라가 볼까요?

 

▲1.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처음에 외치신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4:17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천국’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는 보통 ‘천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를 떠올립니다.

그러면 설마 예수님께서 이런 메시지를 전하신 것일까요?

‘회개하라 죽어서 가는 사후의 세계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음이라’

 

좀 더 쉽게 이야기를 하자면 ‘네가 회개해야 돼. 너는 곧 있으면 죽을 거거든’ 이라고

예수님께서 다그치신 것이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겠죠.

 

그러면 마태복음에서 ‘천국 heaven’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4:17절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병행구절이 있습니다.

막1:15절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4:17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천국이란

병행구절 막1:15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자 천국이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보아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입니다. kingdom of heaven

‘하나님의 나라’의 헬라어는 바실레이아 투 데우입니다. kingdom of God

 

같은 ‘바실레이아 kingdom’죠. 다만 유대인들은 ‘하나님 (데오스)’이란 말을 쓰기 꺼려해서

‘하늘 (우라노스)’로 대체한 것입니다.

 

이것, 천국이나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사후의 세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즉 장소적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서에 보면 유독 마태만 ‘천국’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그에 비해 마가, 누가, 요한은 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죠. 왜 그러는 것일까요? 좀 용어를 통일하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 이유는 이 책의 수신자, 청중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의 1차 청중은 유대인입니다.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1차 청중은 누구입니까? 헬라인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 단어를 부르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원치 않았죠.

대신 ‘하늘의 나라’ 즉 천국이라고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주1)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천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 누구도 죽어서 가는 사후의 세계를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그들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은 ‘천국’ 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면,

죽어서 가는 사후의 세계를 떠올릴 것이기 때문에,

이방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정확하게 표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앞으로 마태복음을 읽을 때, ‘천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곳은 죽어서 가는 하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하심, 즉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로 외치신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2. 그러면 예수님의 마지막 메시지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도 하나님의 나라이죠.

 

행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기 전까지 40일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소중하고 정말 중요한 시간이죠.

예수님께서는 하실 일들이 참 많이 있었을 겁니다.

또는 하고 싶으신 말씀도 굉장히 많이 있었겠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40일의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삶에 있어서, 그 무엇과도 경쟁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제1의 우선순위였기 때문입니다.            주1)

 

▲3. 그렇다면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가 하나님의 나라였고,

예수님의 마지막 메시지 또한 하나님의 나라라면,

 

예수님께서 공생에 내내 선포하신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답은 역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지금 이 시간 여러 구절을 찾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그 구절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셨는지를, 한번 확인해 보시면 참 좋겠습니다.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복음의 내용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죠? 천국 복음이라는 겁니다.

즉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천국 복음, 그 복음의 본질이 하나님의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마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도시와 모든 성읍을 돌아다니시면서

동일하게 천국복음,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눅8: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는데, ‘그 복음’이라고 되어 있죠.↖

하나님의 나라가 곧 복음의 본질이고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때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시며 그들을 훈련시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눅9: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시고 훈련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들을 파송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꼭 전해야 되는 메시지를 가르쳐 주시는데,

그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

 

눅10:8~9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예수님께서는 한 번만 제자들을 파송하신 것이 아니라, 또 파송 하셨는데

이번에는 다른 메시지를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에요.

이번에도 역시 너희들이 반드시 전해야 될 그 메시지는, 그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하나님 나라 중심적으로 사셨는지를 잘 묘사해주는

단 하나의 구절을 선택해야만 한다면, 저는 눅4:43절 말씀을 선택하겠습니다.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곧 복음의 메시지고, 본질이라는 것이죠.

‘내가 이 일을 위해 내가 보내심을 받았다’ 라고 설명을 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뚝 서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예수님께서 무리를 가르치실 때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죠.

그래서 복음서에 보면, 30개가 넘는 예수님의 비유를 만나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여러 개의 다른 비유를 통해,

여러 개의 다른 예수를, 교훈을 가르쳐 주셨다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 다수의 경우 예수님의 거의 모든 비유에는, 단 하나의 주제만 있을 뿐입니다.

그 주제가 뭘까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는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시작합니다.

‘천국은 마치 이런 거와 같다’ 또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하니..’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역시 여러 개의 구절을 우리가 함께 볼 텐데요.

여러분께서 이번에도 예수님께서 얼마나 일관된 메시지를 선포하셨는지를

한번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1) 먼저 ‘겨자씨의 비유’를 함께 보겠습니다.

마13: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역시 이번에도 마태복음에서 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그것이 무슨 의미라고요?

하나님의 나라를 뜻함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똑같은 겨자씨 비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병행구절인 막4:30~31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같은 비유인데 마태복음에서는 천국,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단어는 동의어이기 때문입니다.

 

2)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마13:24 ‘...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3) ‘누룩 비유’

마13:33 ‘..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4)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5)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의 비유

마13:45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6) ‘물고기와 그물’의 비유

마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지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7)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8) ‘혼인잔치 비유’

마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9) ‘열 처녀의 비유’

마25:1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뚜렷한 패턴이 보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관심, 예수님의 이유, 예수님의 목적은 단 하나,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입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고

삶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보여주셨을까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과 기적을 보면,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의 기간 동안에 많은 기적을 행하셨죠.

 

그런데 그 모든 기적을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종류의 기적은 바로 치유를 위한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셨죠.

중풍병자를 걷게 해주셨습니다.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치유해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죽은 자도 다시 살리셨습니다.

 

2) 두 번째 종류의 기적은 공급을 위한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셨죠.

그리고 5병2어의 기적, 그와 함께 7병2어의 기적을 통해서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3) 세 번째 종류의 기적은 바로 보호를 위한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으셨고, 바람을 잠잠케 하셨으며, 폭풍을 잔잔케 멈춰 주셨습니다.

그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죠.

 

▲자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런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그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1차적인 이유와 목적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고통 중에 있는 그의 백성들을 고난의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인 목적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적을 행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치유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임하시는 그곳에

참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공급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이루어지는 그곳에

참된 풍요가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보호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임하시는 그곳에

참된 평강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하나님 나라 중심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자, 이렇게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니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시나요?

 

▲아마도 우리의 가장 솔직한 답은 ‘예, 그와 동시에 아니요’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확인해보니

좀 더 이 메시지가 친숙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왜 이렇게 생소하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복음의 메시지를 배웠을 때는 복음서를 통해서 배우기보다는

바울서신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의 내용에 대한 메시지를 들었을 때, 그때가 언제입니까?

절대 다수의 경우 목사님이 바울서신을 강의할 때이거나,

여러분이 성경공부를 통해서 바울서신을 공부할 때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체계화시킨 복음의 내용이 훨씬 더 익숙합니다.

그러면 설마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과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서로 다르다는 얘기인가요?

그럴 리가 없겠죠?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과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 내용과 본질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다만 무엇이 다를까요? 표현법과 접근법이 다를 뿐입니다.

 

자, 바울서신을 한번 쭉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참된 복음은, 딱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겠죠? 이신칭의!

 

이신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칭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너무나도 중요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의 선행이나, 행위나, 노력이나, 공로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고,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체계화시킨 이신칭의의 메시지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는 어떻게 통합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서로 연결될 수 있겠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을 나의 삶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이 시간 제가 하는 말을 큰 목소리로 따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의 인생의 왕좌에 내가 앉아서, 내가 주인 행세를 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살았죠.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주인이 바뀝니다.

내가 왕좌에서 일어나 물러나고, 예수님이 그 왕좌에 앉으십니다.

그러면 주인으로 내 삶에 임하신 예수님께서, 그 다음 순간 무슨 일을 하실까요?

통치하시겠죠. 다스리시겠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다스리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곳에, 참된 생명과 구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자면, 예수님은 복음의 본질을 가르쳐 주신 것이고,

사도바울은 복음의 방법을 가르쳐 준 겁니다.

 

구원의 본질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삶에 어떻게 임하는가?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었죠.

이신칭의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즉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드릴 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주인으로서 통치하시기 때문에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이루어지는 그곳에

참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사도 바울의 삶을 추적해보면

그도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였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나라

 

한번 말씀을 통해서 검증해 볼까요?

행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사도 바울이 선교여행을 갈 때마다, 분명한 전략이 있었습니다. 뚜렷한 패턴이 보이는데요.

대부분의 경우 그가 어디를 가든지, 가장 먼저 어디를 찾아가죠? 유대인 회당을 찾아갑니다.

거기서 이제 복음을 전하는데요.

석 달 동안 한 자리에서 머물면서, 그가 전한 복음의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복음의 본질이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행20:24~25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위 24절에서 그는 한마디로 ‘나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겠노라’ 라고 말씀했죠.

그리고 자기가 목숨 바쳐 전할 그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는 것이 25절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나라’ 라는 것입니다.

 

자 이번엔 사도행전 28장으로 함께 가보겠습니다.

행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자 사도행전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죠?

행1:3절에 ‘예수님이 40일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으로 사도행전은 시작’이 되고

예수님으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으로

사도 행전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도행전의 역사를, 저와 여러분이 이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끝나는 책이 사도행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의 삶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우뚝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너무나도 신실하게 따라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그도 입술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삶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삶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것을 가장 잘 묘사해주는 것이 바로 갈2:20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영접했을 때,

이제는 그의 모든 계획, 야망, 자아, 욕망은 다 사라져버리고,

이제는 사도 바울 안에는, 오직 예수님의 꿈, 예수님의 비전, 예수님의 마음만이 남게 되었다

는 겁니다. 한마디로 ‘나는 죽고 오직 내 안에 예수님만이 살아계시다’는 것이죠.

 

자, 사도 바울이 처음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죠?

그는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서 다메섹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게 되었을 때, 그의 삶이 180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삶의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져요.

교회를 핍박하던 삶에서, 이제는 교회를 세우는 삶이 됩니다.

예전에는 오로지 나의 성공과 출세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삶에서,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면서 사는 인생이 되었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일상생활 가운데서는 예수님을 온전히 따라가고

그의 인품은 온전히 예수님을 닮아갔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용서, 예수님의 겸손, 예수님의 섬김,

예수님의 충성, 예수님의 사명, 예수님의 기쁨을 우리는 엿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적용

 

이제는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되는 시간이 왔습니다.

여러분이 [복음 수업] 시리즈 설교를 통해서, 단순히 머리 지식만을 쌓아간다면,

그것은 가장 비극적인 일이겠죠.

우리는 복음을 올바르게 이해할 뿐 아니라, 복음을 올바르게 적용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정말 예수님이 맞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오늘도,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통치하심 가운데 살아가고 계십니까?

어떻게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마7:2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그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한 나무가 있는데 거기에 사과가 맺혀 있습니다. 무슨 나무입니까? 사과나무입니다.

한 나무가 있는데 배가 열려 있어요. 어떤 나무예요? 배나무입니다.

가장 상식적인 이야기 아닌가요?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가 있는지를 보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지 없는지를,

나는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자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을 받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행위는 뭘까요?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입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 된 사람이라면,

우리의 행위와 삶이 당연히 마땅히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여러분의 삶에 있었던 근본적인 변화가 무엇입니까?

정말 일상에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인품이 정말 예수님을 쏙 빼닮아 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 이런 변화가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된다는 사실을,

미국의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은 하나의 예화를 통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의 저서 <팔로우 미>를 보면, 이렇게 설명을 해 주십니다.

(폴 워셔 목사님의 설교에서 인용한 예화 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마치 제 삶에 일어난 것처럼 조금 각색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자, 우리 교회 주일 예배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러 와야 되는 김목사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하겠죠? 그런데 뒤늦게 제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겁니다.

가만히 보니까 옷이 찢어져 있고, 머리가 헝클어져 있습니다.

 

궁금하겠죠? 물으실 겁니다. ‘목사님,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그러자 제가 늦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게요, 제가 어젯밤 부산으로 갔다가, 오늘 새벽에 교회에 오기 위해서 고속도로를

열심히 운전해서 달려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타이어가 펑크가 났지 뭡니까?

그래서 고속도로 갓 길에 차를 세우고,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

차 밖으로 나오는데, 그 순간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대형트럭이 제 차를 들이받아 버렸어요.

 

그 순간 저의 몸은 공중으로 붕 떠올랐고, 땅으로 털썩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순간, 저는 벌떡 일어나서 타이어를 교체하고,

열심히 운전해서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설명을 믿으시겠습니까? No!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겠죠.

이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대형트럭에 추돌되었다면,

제가 어떻게 건강한 모습으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여러분은 이렇게 물어보실 것입니다.

“그런데요. 목사님, 왜 이렇게 멀쩡하세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킬로로 달리는 대형트럭에 부딛힌 사람에게

일어난 유일한 변화가, 고작 옷 찢어지고 머리만 헝클어지는 것이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다는 겁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겠죠.

또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저의 온몸의 뼈가 으스러져서

혼수상태로 당장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보다도 크시고 광대하신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들어오셨다면,

그리고 그분이 내 속에 보좌에 좌정하셔서 나를 통치하고 계시다면,

트럭에 부딪히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변화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마땅히 나의 삶에는 총체적인 변화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생각해보니 저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예전에는 교회를 안 다녔는데, 이제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수많은 교회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헌금 생활도 꽤 괜찮게 하고 있고, 심지어 저는 10년이 넘게 아주 열심히 봉사했답니다.”

 

이런 정도의 말은, “20톤짜리 트럭과 정멸 충돌한 다음에,
내 몸에 일어난 변화가 옷이 찢어지고 머리만 헝클어졌습니다”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셔서 통치하시는데, 어떻게 교회 생활만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교회 생활부터 시작하여, 가정생활, 직장생활, 재정생활, 여가생활, 일상생활이

송두리째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총체적인 변화가 반드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인생관, 우리의 세계관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의 방향성이 180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나의 출세와 성공만을 위해서 살아가던 사람이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 사명 붙들고 살아가고, 일상에서는 예수님을 따라가며,

인품은 예수님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대단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드렸다면,

진실로 예수님과 충돌되었다면... 필연적으로 변화는 일어날 수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통치하시는데, 나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요?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변화와 성장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구는 좀 더 빨리 변하고 성장하는 반면에, 그렇지 않는 느린 사람도 있을 수가 있어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죠...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3년이 되고, 5년이 되며, 10년이 지났는데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예전에는 교회를 안 다니다가, 이제는 교회를 다닌다..라는 것밖에는 달라지지 않았다면,

한 번쯤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구원의 확신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구원의 확신을, 불필요하게 흔들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관해서 내가 착각하고 있다면, 그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일생일대에 적어도 한 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나의 삶에는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고 있는가?

나의 삶에는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 왔는가?

나는 정말 예수님 믿는 그리스도인이 맞는가?’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질문드립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기도하겠습니다.

 

.....................................

 

주1) "kingdom"은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의 큰 주제입니다.

ㅁESV 번역에서는 4복음서에서 'kingdom'이 126번 언급됩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kingdom-왕국'이 단 34번만 언급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