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결혼 창2:18-25 2026.03.08. 창세기강해 8
창세기는 시작에 관한 책입니다. 세상 모든 것의 시작이 창세기에 나옵니다.
1장에서는 우주와 세상의 시작을 보았습니다.
2장에서는 인류의 시작, 사람의 시작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또 하나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바로 결혼의 시작입니다.
첫사람 아담과 하와의 결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결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세가지로 살펴볼텐데요.
-결혼의 설계자,
-결혼의 목적,
-결혼의 원리입니다.
◑1. 첫 번째, 결혼의 설계자입니다.
결혼은 누가 설계했는가요? 누가 만드셨는가요?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본문 창2: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19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22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결혼을 설계하신 분이 누구인지 분명히 나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결혼은 사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사람이 사랑하다 보니까 ‘같이 살아야지 하고..’ 하고 사람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부터 계획한 게 결혼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1.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결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은, 결혼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결혼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다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며 살거든요. 결혼은 신랑신부 당사자의 일이라고요.
아니면 가정의 일, 가정사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교인 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결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결혼을 단지 사적인 일이나, 가정사로 이해하다 보니,
결혼식을 자신들이 주관합니다.
그래서 신자의 결혼과 불신자의 결혼이.. 현실에서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구별됨이 없습니다.
신자들이, 세상 불신자의 결혼 풍습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주례자 없는 결혼식’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닙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결혼은 당사자의 일이나, 가정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면, 결혼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 안에서 결혼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의 배우자와 결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결혼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청년들이 있는데요.
꼭 믿음의 배우자와 결혼하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결혼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 앞에서 결혼해야 합니다.
본문에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끼리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서약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혼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결혼식의 구경꾼이 아니라, 결혼식을 주관하는 분이셨습니다.
주례도 하나님이 직접 하셨습니다.
주례사가 24절에 나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 최초의 주례사, 최초의 주례자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스위녹 이라는 청교도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한 쌍을 결혼시키셨다.
그들을 창조한 자가 곧 그들의 결혼을 주례한 목사였다’
오늘날은 이 하나님의 일을, 목사가 대신합니다.
목사는 주례를 하고, 신랑과 신부는 서약합니다. 그때 목사는 성혼을 선포합니다.
그 순간 비로소 신랑과 신부는 하나 됩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 앞에서, 주 앞에서 하는 결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례 없는 결혼은, 하나님 없는 결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결혼이 아닙니다. (또 축도도 못 받고, 기도나 말씀 선포도 없잖아요)
이 자리에 우리 청년들이 있는데요. 또 장차 결혼을 해야 할 자녀들이 있는데요.
주 앞에서 하는 결혼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또 결혼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 뜻대로 해야 합니다.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저는 신대원 교수님이, 저희 결혼식 주례를 서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공부를 하느라 잠시 사역을 쉬고 있었던 때라, (담임 목사님이 아니라)
신대원 교수님께 결혼식 주례를 부탁드렸습니다. 결혼식 할 때 그분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시더라고요.
그 중에 하나가 촛불을 켜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화촉점화’ 라고 하는데요.
그걸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촛불을 켜는 건 미신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요. 주1)
(그냥 분위기 멋있으라고, 데코레이션으로 흰색 초로 하는 것은 괜찮겠지요?)
또 하나는 예식장 담당 직원한테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희 결혼식에는 술 꺼내지 말아달라고.. 테이블 위에 술을 놓지 말아달라고...
우리는 기독교식으로 결혼예배를 드리는데, 술 없이 결혼식 하고 싶다고...
탄산음료수만 꺼내달라고... 그래서 술 없이 결혼식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예식장 담당 직원이 말하더라고요. 결혼식 끝나고 폐백을 해야 한다고!
교수님께 여쭤봤습니다. ‘교수님 폐백은 해도 됩니까?’
해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담당 직원에게 부탁드렸습니다.
간소하게 해달라고... 그냥 덕담 주고 받는 것으로 해달라고... (폐백 진행을 직원이 하는 듯)
대추 같은 거 던지는 거 있잖아요. 그런 거 하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부탁을 드렸습니다.
폐백 때 주전자 안에 술 넣지 말아달라고... 이렇게 술 따르고 받잖아요.
덕담 주고 받을 때 술 대신에 사이다 넣어달라고... 그래서 사이다로 했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저희가 믿는 사람이니까요.
세상 사람들과 좀 구별되게 결혼식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좀 더 성경적인 결혼식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 결혼식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식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모르면 할 수 없어도, 알면 아는 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가능한 주님이 기뻐하시는 식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을 불편하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또 누군가를 정죄하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성경적인 결혼에 대해 잘 배우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여러분은 몰랐기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결혼할 우리 교회의 자녀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자녀들만큼은 성경적인 결혼 문화를 세워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제대로 배웠으니까요.
앞으로는 우리 안에 성경적인 결혼 문화가 잘 자리잡기 바랍니다.
분명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대지를 기억합시다.
“결혼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 안에서, 주님 뜻대로 해야 된다”
제가 이렇게 암기하기 쉽도록 라임을 맞춰봤는데요.
“주 안에서 주 앞에서 주 뜻대로” 하는 복된 결혼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둘째, 결혼의 목적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오면 당황스러운 표현을 만납니다.
바로 ‘좋지 아니하니’라는 표현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창조는 ‘보시기에 다 좋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좋지 않았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2: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이것이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좋지 않았다’입니다.
하나님이 계속 보기에 ‘좋다’하시다가 *히. 토브
처음으로 ‘좋지 아니하니’가 나옵니다. *히. 로-토브
그러면 질문이 생깁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왜 좋지 않을까요?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대답합니다.
혼자면 외로우니까.. 우리가 쓰는 말로 아담의 옆구리가 시리니까...
하나님이 아담의 외로움을 위해 하와를 만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담이 외로웠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니까
외로워서 결혼을 만드신 게 아닙니다. 늘 제가 말씀을 드리죠.
늘 성경은 문맥 가운데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만드신 이유는 땅을 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5
그래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냐면 아담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으셨다고요.’ 무슨 의미일까요?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담 혼자서 에덴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것이
좋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아담이 외로워서가 아닙니다.
외로웠을 수도 있겠지만, 아담 혼자서 에덴 동산을 다 경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담 혼자서 에덴 동산을 다 다스리고, 다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담 혼자서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러면 결혼의 목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결혼을 어떻게 생각했냐면, ‘나 중심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인간이 외로워서.. 내 외로움 해결해 주려고... 하나님은 결혼을 만드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결혼은 인간이 외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보다는 둘이 더 사명을 감당하는 게 좋아 보여서, 결혼을 만드셨습니다.
이 관점으로 그 다음 19절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러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결혼 얘기를 하다 말고, 성경이 얘기하는 게 뭐죠?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하고 있는 일을 보여줍니다. 그리고는 덧붙입니다.
‘아담이 돋는 배필이 없다고요.’ 무슨 말입니까?
아담이 에덴 동산에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데, 혼자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일에, 아담을 도울 만한 존재가 없다는 겁니다.
이 사명을 도울 만한 존재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결혼의 목적도 달라져야 합니다. 인간에게서 → 하나님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결혼을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아니면 내가 더 행복해지려고 결혼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더 잘 감당하라고,
혼자서보다 둘이면 더 잘 감당하니까, 배우자를 주신 거라면,
결혼의 목적이 바뀌어야 합니다.
결혼의 목적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내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함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본문에 기록된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를 알면, 더 확실해집니다. :20
여기 ’돕는‘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에제르입니다.
에제르는 주로 ’하나님의 도움‘을 언급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바위’ 라는 뜻이죠. *에벤 : 돌, 바위 *에제르 : 도움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의역입니다.
시33:20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라며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시편 70: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나에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시121: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오와에게서로다’
여기서 ‘도움’이 다 히브리어로 ‘에제르’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에제르는 하나님의 도움과 관련해서 17번 쓰였습니다.
이 단어가 오늘 본문의 아담에게 쓰였습니다.
왜 하나님이 아담에게 아내를 주셨습니까?
아담 혼자만으로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다 감당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도움을 주시려고 아내를 주셨습니다. *돕는(에제르) 배필
반대로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를 돕는 배필입니다. 서로 돕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서로가 돕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이 ‘배필’이라는 단어는 더 중요합니다.
‘배필’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가 ‘크네그도’입니다.
‘크네그도’ 는..
1) ‘뭐와 동등한’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서로 동등하다는 의미겠죠.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관계에서 돕는 자입니다.
2) 그런데 또 어떤 뜻이 있냐면요. ‘뭐와 반대된다’는 뜻도 있습니다. 주2)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돕는 배필’을 ‘돕는 반대자’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예와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존재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돕는 배필이니까, 무조건 남편을 돕는 존재가 아닙니다.
남편이 오늘 옆집에 도둑질하러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때 아내가 ‘나는 돕는 자니까 제가 담을 잘 넘도록 받침대가 되어 드릴게요.’
그게 ‘돕는 배필’이 아닙니다. 멱살을 잡고서라도 반대하는 게 ‘돕는 배필’입니다. ★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No 라고 말하는 것이 ‘돕는 배필’인 거죠.
물론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Yes 로 도와야 하겠지만,
그 반대이면 No 로도 도와야 합니다.
△이 의미를, 한번 지금 아담에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아담은 앞에서 선악과 계명을 들었습니다.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어도 되는데,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리고 바로 뒤에, 오늘 본문의 결혼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 두 이야기를 분리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 이야기하시다 말고, 왜 갑자기 중간에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요?
그러나 이 두 이야기는 연결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악과 따먹지마 따먹으면 너는 죽어!’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 아담이 혼자 있는 거 안 좋은데,
돕는 배필이 필요할 것 같은데...’
무슨 뜻일까요?
혼자면 유혹을 받아 따먹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따먹지 못하게 하려면,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반대하는 자
실제로 창세기 3장 바로 뒤에 선악과 사건이 나옵니다.
뱀이 따먹으라고 유혹하죠. 그러면 하와는 아담을 뜯어 말렸어야 했습니다.
‘돕는 반대자’니까요.
‘선악과를 먹으면 안 된다고, 얼씬도 하지 말라고, 쳐다도 보지 말라고,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냐고
정신 차리라고 따먹으면 죽는다’고 결사 반대해야 했습니다.
그게 바로 돕는 ‘배필, 돕는 반대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반대는커녕, 하와는 자기가 먼저 따 먹고, 아담에게도 그걸 줘서 먹게 했습니다.
▲지금 두 번째 대지, <결혼의 목적>을 살펴보고 있는 중인데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왜 결혼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을 더 잘 섬기라고.. 나 혼자서는 유혹에 빠지지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죄를 덜 짓도록..
하나님 말씀대로 더 잘 섬기라고... 하나님은 결혼을 만드셨습니다.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를 통해, 결혼의 목적이 더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라고.. 하나님 주신 사명을 더 잘 감당하라고 배우자를 주셨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 혼자서는 쉽게 선악과 따먹고 살 사람입니다.
나 혼자서는 시간과 물질의 주인을 인정하지 않고 살 사람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배우자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나와 계신 분 계시지요?
나 혼자서는 주일 성수도 제대로 안 하고 살 사람인데,
배우자 덕분에 교회에 나와 있는 분 계실 겁니다.
나 혼자서는 십일조도 구별하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살 사람인데,
믿음의 배우자 때문에 헌물을 드린다면, 돕는 배필을 두신 겁니다.
반대로 비극이 뭐겠습니까?
아담을 도와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려고 돕는 배필을 주셨는데,
오히려 하와가 따먹으라고 도왔습니다.
죄 짓지 말라고 보내주신 배필이, 죄 짓는 걸 돕는 배필이 된 게, 이 비극의 시작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와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남편이, 지금 아내가.. 나 만나기 전보다, 나 만나고 나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서로가 순기능적인 돕는 배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역기능적인 돕는 배필이 아니라요.
▲특별히 우리 청년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결혼의 목적은 여러분의 행복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출세의 발판도 아닙니다.
전에 한 TV방송에서 어떤 한국 여성 한 분이,
학벌도 좋고, 직장 연봉도 좋고, 집안도 좋은 배우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있던 한 외국인 여자가, 그 여자를 향해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거지예요?’
‘저 뭐 저런 속물이 있느냐?’는 식으로, 그 여성을 바라보며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믿는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결혼은 혼자일 때보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은 주 안에서 결혼해야 합니다. 믿는 배우자와 결혼해야 합니다.
이러면 꼭 청년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천편일률적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요.
‘결혼해서 전도하면 되잖아요.’ 물론 그런 사례도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호의가, 권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긍휼히 여기셔서, 혹시 그 가정 가운데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랑과 결혼해도 되는 권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결혼은,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는 목적입니다.
문제는 불신자와의 결혼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없습니다.
함께 주님을 위해 소망으로 인내하거나, 함께 사명을 위해 수고해야 하는데,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할 경우,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불신자의 불신은, 신자의 믿음을 침체시키고,
어떤 경우에는 바닥까지 추락시킨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건 마치 아무리 큰 숫자에다가 0을 곱해도, 결과는 0이 되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믿음의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결혼할 때는, 항상 곱하기 0을 해서 0이 됩니다.
자기의 신앙은 지킬 수 있을지라도, 한 가정에서 믿음의 선택을 할 때,
계속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재정을 사용하는 데도 부딪힐 것이고, 시간을 사용하는 데도 부딪힐 것입니다.
한쪽 발이 묶여 있어서, 맘놓고 달릴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여러분 저는 주변에서 많이 봐왔습니다. ‘결혼해서 전도하면 되지!’
그러나 현실은 그게 잘 안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오히려 더 떨어질 수 있습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쉽지가 않습니다. 제가 많이 봤습니다.
제가 청년 때 청년부 부장 집사님이 늘 저희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들 결혼은 꼭 믿는 사람과 해야 한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참 그런 어른이 없으셨구나’ 너무 고맙게 느껴집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꼭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서로 돕는 배필이 아니라,
서로 마이너스가 된다고.. 한평생 배우자 한 명 전도하는데 시간 다 써버린다고...’
‘물론 한 영혼도 귀하지만, 그건 꼭 결혼을 통해 할 필요가 없다고..
그건 전도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얼마나 시간이 아깝냐고? 믿음의 배우자 만나서 믿음의 가정 꾸리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면,
얼마나 여러분의 이 땅의 삶이 복되냐고?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데, 뭐하러 사서 고생하냐고?’
늘 입이 닳도록 반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청년들, 다음 세대들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결혼의 목적은 ‘돕는 배필’입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한 일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더 보니까요. 결혼에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더 큰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본문 21절인데요.
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2절에 그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24절입니다.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 말씀을, 신약에서 사도 바울이 그대로 받습니다.
엡5: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그리고 바울은 덧붙입니다.
5:32절에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결혼에는 비밀이 담겨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비밀입니까?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알려주기 위한 더 큰 목적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왜 결혼을 만드셨습니까?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연합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놀랍게도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습니다.
이 갈비뼈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히브리어로 그냥 ‘옆구리’입니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즉 아담의 옆구리를 찢으시고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놀랍게도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옆구리가 창에 찔리시고
그 뚫린 옆구리에서 교회가 나왔습니다.
첫 번째 아담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왔듯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의 찔리신 허리에서
교회가 나왔습니다.
또 아담은 깊게 잠들었습니다. 깊게 잠든 상태에서 하와가 나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깊게 잠드셨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나왔습니다.
또 아담이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로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보시고 ‘내 몸이다’ 라고 고백하셨습니다. 놀라운 신비 아닙니까?
그러니까 결혼의 가장 깊은 비밀은,
이 결혼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 ‘아담을 깊게 잠들게 하셨다’ 이 부분만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왜 재우게 하셨을까요? 아담이 깨어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시는데, 아담이 그 모습을 보고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옆에서 참견하지 않았을까요?
'하와의 눈을 조금만 크게.. 이렇게 쌍꺼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앞트임 좀 해달라고.. 그 코를 조금만 더 높여주시면 좋겠다고..
몸매는 조금 더 신경 써주시면 좋겠다고...' 그래서 하나님이 잠들게 하셨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냥 썰이에요.
자 물론 성경이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좀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가 아까 제가 방송에서 본 한국 여성의 그 말을 제가 소개했는데요.
‘우리가 결혼할 때 세상 사람들처럼, 믿음 말고 다른 것을 더 많이 보려고 하는 건 아닌가?’
‘아니면 믿음보다 더 다른 조건을 우선시 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도움이 될까 싶어 기도문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결혼할 청년들도 있고, 결혼을 시켜야 할 부모들도 계시는데요.
‘앞으로의 배우자를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할 것인가?’
좋은 내용이 있어서 발췌해봤습니다.
청교도 목사였던 스쿠너가 알려준 기도의 내용인데요. 참 좋습니다.
「첫째, 지혜와 명철을 달라고 기도하라
그래서 예상되는 짝을 만났을 때, 당신의 마음이
미모나 재물이나 자연적인 재능 같은 것에 흔들리지 않고,
정말로 중요한 것, 즉 그 마음 안에 있는 은혜에 집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둘째, 마음이 하나님에게 맞추어져 있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의 마음이 끌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의 사랑이 흘러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셋째, 만일 당신의 마음이 그릇된 쪽으로 향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 안에 진리가 없음을 발견한다면,
부디 당신의 감정을 애초부터 상대에게서 옮겨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
여러분 참 좋은 기도 아닙니까? 우리 부모님들도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혼의 목적 때문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나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자녀가 먼저 돕는 배필이 되고
여러분의 자녀도 돕는 배필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세 번째, 결혼의 원리입니다.
결혼의 원리는 두 가지, 떠남과 하나됨입니다.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1. 하나는, 떠남입니다.
(또 하나는 ‘합하여’ 바로 하나됨입니다.)
떠남이 먼저입니다. 결혼을 하면,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부모를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부모를 외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십계명처럼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이 말은, 부모로부터 독립하라는 말입니다.
유교에서는 부부의 관계를 일륜이라고 말합니다. 부자의 관계는 천륜이라고 말합니다.
부자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유교에서는 부모는 버릴 수 없지만,
아내는 버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효를 굉장히 강조하죠.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정반대입니다. 성경은 부부의 관계가 부자의 관계보다 더 앞섭니다.
결혼을 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반대로 불행한 부부는 어떤 부부입니까? 결혼했는데 남편이 마마보이입니다.
중요한 얘기를 엄마와 상의하고 결정합니다.
또 아내는 일만 생기면 쪼르르 친정엄마에게 전화합니다.
남편과 상의하지 않고, 친정엄마부터 찾습니다. 결혼하면 그걸 끊어야 한다는 거죠.
오은영 박사님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자녀 양육의 목표는 독립이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다!’
완전한 독립의 그날이 결혼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낳고, 탯줄을 두 번 끊어야 합니다. 낳자마자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시킬 때 끊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가 삽니다.
여러분 저도 그러려고 노력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경제적으로도 독립하려고 최대한 노력합니다.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려고 노력합니다.
여러분이 저보다 더 연륜이 있기 때문에, 더 잘 아실 겁니다. 더 잘 하실 겁니다.
여러분의 결혼한 자녀들 도와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절대 도와줘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도와주는 게 자녀들의 신앙이나 어떠한 부분에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다만 늘 기억하셔야 합니다. ‘끊어야 내 자녀가 산다’
그리고 그 끈을 하나님께 연결해 드릴 때, 진짜 자녀가 사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큰 도움은 기도입니다. 그들의 영적인 부모가 하나님이 되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가정이 되도록 기도할 때,
여러분의 결혼한 자녀들이 진짜 사는 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그런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적인 결혼의 원리 먼저는, 떠남이기 때문입니다.
▲2. 그 다음은 하나됨입니다.
이때 하나됨은 육체의 하나됨만이 아닙니다.
영적인 하나됨도 있습니다. 한 믿음과 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또 여러가지 면에서 하나되도록 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부부인데, 각자 따로 하는게 많더라구요.
돈도 따로 관리하는 부부들도 있더라구요. 서로 일정 부분 합의하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 몸의 원리를 잘 실현해야 합니다.
따로 하는 게 있더라도, 서로 모든 면에 있어서 다 알고 나누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부부는 보니까, 서로 핸드폰 절대 못 보게 하려고,
비밀번호도 10자리 넘게 설정을 해놨던데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하나되지 못하니까.. 부부관계가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닙니까?
배우자가 봐도 숨길 게 없도록 서로가 노력해야 합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숨기지 말고, 모든 면에서 서로가 알고 나누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결혼의 모습이 그런 하나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5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아니라’
영적인 의미도 있겠지만요. 다 보여줘도 되는 그런 관계가 부부라는 겁니다.
가면 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 벌거벗겨져도 안전한 관계가 바로 부부관계입니다.
쌩얼을 드러내도 괜찮은 관계,
유일하게 꾸미지 않고 서로를 나누고 하나 되는 관계가 바로 부부입니다.
핸드폰도 서로 공개하고 다 보여주는 관계가 바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이런 하나됨을 누리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혼의 원리가 떠난과 하나됨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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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예식장에 보면 단상 한쪽에는 청색초가 있고요. 또 한쪽에는 홍색초가 있습니다.
이 초가 음양의 조화를 의미합니다.
홍색 초는 신부의 붉은 기운인 양을 의미하고,
청색 초는 신랑의 푸른 기운인 음을 상징해서
우주의 섭리인 음양의 조화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또 기복적인 의미도 있는데요.
앞으로 신랑 신부가 걸어갈 길에 어둠이 물러가고 광명만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초를 켜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래서 그거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안 했습니다.
주2)
Kenegdo (כְּנֶגְדּוֹ) means "corresponding to him," "opposite him," "matching him," or "a counterpart". It combines the prefix ke- ("as/like"), neged ("opposite/front"), and -o ("him") to imply an equal partner standing face-to-face, rather than someone superior or subordinate, often used in the context of ezer kenegdo (a suitable helper/counterp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