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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9장 즐겁게, 단정하게

LNCK 2026. 3. 12. 11:04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삶의 통찰력

 

◈즐겁게, 단정하게                 전9:1~12               2026.03.08.      출처

 

여러분은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십니까?

이것저것 감추고 숨기고 포장하는 사람보다, 솔직하게 표현하고

담백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사람을... 우리가 좋아합니다.

 

그런데 너무 솔직해서 부담스러울 때는 없습니까?

내가 최근에 옷을 새로 샀어요. 혹은 헤어스타일을 바꿨어요.

그러면 물어봅니다. ‘나 어때?’

 

이때 솔직한 대답을 원하십니까?

이때 친구가 솔직하게 평가를 해줬다고 칩시다.

그게 내가 듣기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면, 관계가 싸늘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솔직함이 상처가 되고, 당황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오죽하면 ‘팩트 폭격’이라는 말까지 있겠습니까? *너무 사실대로 말해서 폭격당한 기분

 

나에 대해서 좀 안 좋은 말을 하면서, 거짓말을 하면 기분 나쁘지만.. 그건 대부분 지나가요.

그런데 나에 대해 사실을 말하면.. 상처가 깊습니다.

 

아이의 학교에 갔는데, 담임선생님이 너무 솔직하면,

내 자녀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따박따박 다 말하면, 아마 선생님과 원수될지도 모릅니다.

 

<전도서>라는 성경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솔직하기 때문입니다.

「인생... 헛된 거야.

지혜... 있으면 좋겠지만, 그래 봤자 별 차이 없어.」

 

사실 이것은 지혜의 한계라기보다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그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죠.

 

◑ <전도서>는 지혜가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그것도 별것 아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황스러운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죽음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입니다.

 

전9: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9: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9:10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이게 무슨 말인가요?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라고 하는 말은 참 이상하죠.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전도서>는 ‘내가 해 아래서 보니’ 라고 하는 경험적 지식입니다.

그 경험과 자신의 성찰과 사색에 의한 지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영생에 대해서... 자신은 모른다는 말입니다.

‘나는 이거는 알지만, 그 너머는 모른다’는 거죠.

 

메타인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이것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는’ 인지 능력입니다.

 

여러분, 의사 중에서 돌팔이 라는 말이 있죠. 돌팔이가 아무것도 못 고치는 사람은 아닙니다.

돌팔이 의사의 기준은, ‘내가 뭘 고칠 줄 아는지, 뭘 못하는지,

이거는 손 대도 되는지, 이거는 손 대면 안 되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거 모르면 다 돌팔이입니다.

 

이순신 장군과, 원균의 차이가, 여러분 용맹함의 차이가 아니잖아요.

내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인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인가?’ 그걸 알고 움직이는 겁니다.

 

▲영생... 우리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영생이 무엇이에요? 여러분, 영생이 무엇인지 아세요?

 

지금 이대로 허리도 아프고, 병으로 골골하고, 늘 병원 다녀야 되고...

해마다 먹는 약이 늘어나고, 자식들도 말 안 듣고, 친구도 없고, 얘기할 사람도 없고,

외롭기 짝이 없는데... 그렇게 100년, 200년 살면 좋겠습니까?

 

하물며 그런 삶을 ‘영원히’라뇨? ‘나는 싫어요.’ 할 사람 많습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지금 이 상태의 삶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말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삶을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선물)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랬습니다. 롬6:23

 

영생은 선물로 주시는 거예요.

영생은 지금 이 짧은, 이생의 헛된 삶의 무한 연장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삶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져오실 새로운 세계에 속한 생명이 영생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그게 뭔지 제대로 알기가 힘듭니다.

현실을 제 아무리 관찰하고 치열하게 사색해도, 영생을 알 수는 없다는 거죠.

 

그래서 <전도서>나는 영생에 관해서 잘 모르겠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는

탁월한 메타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죠. 전3:11

여러분 이게 인간의 딜레마입니다. 인간의 가능성이면서, 동시에 딜레마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있지만, 영혼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나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보았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주1)

뉴턴이 한 말이죠. 겸손한 말입니다.

 

여러분 '내가 이렇게 똑똑한 것 같아도,

내 위에 선배(거인)들이 워낙 훌륭한 분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그 위에 조금 더 했을 뿐이다’

그래서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보았다’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이 말은, 후대 사람들이, 앞선 선배들, 현인들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예요.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부 다 ‘난장이’에요. 인간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난장이들 중에서 조금 더 크다’는 거지, 인간은 ‘거인’이 아니에요.

 

그래서 인간 전체를 통틀어서, 인간이 갖는 지식과 지혜 전체를 통틀어서

메타인지가 필요합니다.

즉 ‘우리는 땅에 있다’ 그 사실을 아는 게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전도서>는 지혜가 중요하고, 소중할 때가 있지만

그것도 별것 아니다 .. 라는 말을 합니다.

 

9:1절 함께 읽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사랑을 받을지 미움을 받을지.. 그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제도 전국의 수많은 쌍이 결혼을 하고, 신혼 가정을 출발했을 것입니다.

딸을 시집 보내는, 며느리로 보내는 모든 부모들이 ‘우리 딸이 사랑받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고 기도했을 거예요. 바랬을 거예요. 그런데 미래는 모른다는 거예요.

 

아기가 태어나면, 누구나 다 그 아기가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미래에 있을 일, ‘그가 커서 사랑을 받을지, 미움을 받을지, 미래를 모른다'는 거죠.

‘모두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정말 당황스러운 솔직함이죠. 9:1

 

◑미래는 ‘시기(타이밍)와 우연(운)에 따라 달라집니다’

꼭 인간의 지혜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는 바이블 프로젝트에서 만든 영상입니다.

지혜서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 영상물 녹취가 아래 box에 있습니다.

 



<잠언과 전도서의 상반된 관점 비교>
우리는 ‘지혜문학’이라고 알려진 세 권의 책, 잠언, 전도서, 욥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합니다.

먼저 <잠언>은, 저자가 뛰어난 젊은 교사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현실 속에 엮어진 하나님의 속성인 지혜를 추구하면서,
이 지혜를 사용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낙관합니다.

그런데 <전도서>로 오면, 저자가 예리한 중년의 비평가로 바뀌는 데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를 사용하면 성공이 올 거라 생각하는군요.
그건 다시 생각하는 게 좋을 겁니다. 해 아래, 이 땅의 삶은 헛되기 때문이죠.

그러면 여러분은 ‘아, 전도서는 참 우울하네요.’ 라고 느낄 것입니다.
전도서가 전하는 불편한 사실도 그런 거예요. 바로 ‘삶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잠언>에서 ‘삶은 예측 가능한 것입니다. 옳은 일을 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죠.

그러나 <전도서>에는, 실제로 삶이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며,
저자는 세상에 이러한 결함을 발견하고, 그걸 ‘우연’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죠.

‘빠르다고 경주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며,
강하다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지혜가 있다고 먹을 게 생기지 않고,
총명하다고 재물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배웠다고 늘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에게 시기(타이밍)와 우연이 있을 뿐입니다.’ 전9:11

즉 그의 요점은 ‘삶의 무엇도 우리가 맘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겁니다.
너무도 예측이 불가능하니까요.
만일 삶을 제어하고 싶다면, 그건 스스로 넘어질 준비를 하는 셈이죠.

 

여러분, 위 내용이 충격적이십니까?

잠언은 말합니다. ‘열심히 살면 잘 될 것이다’

 

그러나 전도서는 ‘삶이 꼭 그런 건 아니다. 시기와 우연이 있을 뿐이다’ 전9:11

 

위 동영상에서 동전이 떨어지는 이 영상이, 너무너무 마음이 와 닿지 않습니까?

동전이 위에서 쭉 떨어지다가, 이쪽으로 가면 대박이고요.

살짝 쫙 비껴나서 저쪽으로 떨어지면 쪽박입니다.

 

이게 ‘열심히 사는 것은 다 소용없다’라는 말일까요?

그건 아니죠. 그러나 인생은 그것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시기와 우연이 있다는 거죠. :11

(불신자들은 그걸 ‘운’이라고도 부르잖아요)

 

위 영상에서는 <잠언>은 젊은이 교사로,

<전도서>는 중년의 교사로,

<욥기>의 지혜는 노년의 교사에 비유합니다.

 

여러분 잠언의 지혜도 필요하고, 전도서의 지혜도 소중합니다.

인생은 미묘하고, 다면적입니다. 1+1=2는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달려가야 될 때가 있는데, 답이 2가 안 나올 때도 있어요.

 

두 사업을 합쳤는데, 2는 고사하고, 그냥 1도 안되고 줄줄 셀 때도 많습니다.

더 마이너스 될 때도 있습니다.

물론 1+1을 했더니, 2가 아니라, 수 배의 대박을 보게 될 때도 있죠. 그게 인생입니다.

미래를 모른다는 거죠.

 

‘우리가 인생에서 열심히 달려가야 할 때가 있고, 열심히 일하면 보상이 있을 것이다’

라는 확신이 도움이 될 때가 있는데,

 

여러분, 중년의 시기를 넘어서 보면 어떻습니까?

인생에서 성취한 성적표가 웬만큼 나오고 나서 보면, 전도서 말씀이 맞습니다.

 

즉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유능하고 탁월하고 성실한 것 아닙니다.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단히 어리석은 선택을 한 사람이지만,

어쩌다 보니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게 아닙니다.’ 9:11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저 친구는 학교에서 나보다 훨씬 더 시원찮았는데, 나보다 훨씬 멋진 자매 만나서 결혼하네’

자기가 잘났다고 꼭 결혼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는 시기와 기회가 우연히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라’ :11

 

모든 승패에는 수많은 우연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운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어떤 이데올로기로

이른바 능력주의라는 거 아십니까? 메리토크라시 Meritocracy

 

더 가진 자는 더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고,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자는 더 유능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는 생각을 균열가게 (깨지게) 합니다. 인생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여기에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저 사람이 부자 된 거 보니까, 하나님 잘 믿어서 그렇구나.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신앙적인 편견까지 더해집니다.

그건 정확한 판단이 아닙니다.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의 폭정> 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그 자리는, 정말 당신의 능력 때문인가?’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내가 좋은 성적을 가졌다고 해서, 순전히 내 능력 때문은 아닙니다.

좋은 부모님 만난 것, 건강한 몸으로 태어난 것, 소위 금수저예요.

 

요즘에는 그런 말도 있어요. ‘유전자 로또’

태어났는데 그냥 너무 미남이에요. 얼굴만 보여도 그냥 돈 버는 거예요.

 

내가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그게 내가 훨씬 더 유명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인생의 수많은 고비에서 좋은 선생님 만나고, 적절한 기회가 내 앞에서 열렸을 뿐입니다.

역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수없이 이런 예가 많습니다.

 

▲여러분 16세기에, 영국은 굉장히 가난하고 작은 나라였고,

당시 스페인은 세계적인 강국이었습니다. 무적함대 아시죠?

*아르마다 인벤시블레 : 절대 지지 않는 함대, Navy Invencible

 

당시에 영국은 개신교였고, 스페인은 가톨릭이었죠.

정치 및 종교 갈등이 굉장히 갈등이 심했고,

스페인은 호시탐탐 영국을 침공하려고 노렸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죠.

그래서 그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을 향해서 공격해 옵니다.

 

영국이란 조그만 나라의 운명이, 정말 풍전등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해전에 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를 몰고 오는 그날에, 엄청난 폭풍우가 붑니다.

그래서 영국은 전략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낡은 배 8척에 불을 붙여서 화공을 하는데, 그 화공이 먹히고,

폭풍이 더 심해지자, 스페인 배들이 자기들끼리 부딪힙니다. 산산조각이 나버립니다.

 

결국 영국이 이기죠. 그때 나왔던 메달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하나님이 바람을 부시니 그들이 흩어졌도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영국 역사에, 세계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바람을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바람’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이 칼레 해전(1588)에서 승리하고 나서, 영국은 바다의 패권을 영국이 잡았고

그 이후로 쭉 국력이 성장해서, 19세기에 팍스 브리테니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까지 간 거예요. 역사가들이 그렇게 많이 이야기합니다.

 

‘만약에 그날에 이 폭풍이 없었으면, 스페인이 영국을 이겼을 뿐 아니라,

(지금 여러분 남미에는 다 스페인어를 쓰잖아요. 미국하고 캐나다는 영어를 씁니다.)

지금도 지금 아마도 미국과 캐나다도 스페인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영어는 저 구석에, 영국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만 쓰는 언어 정도가 되었을 거라는 거죠.

 

여러분 인간의 능력이라는 게, 필요할 때가 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성취를 자랑하고,

‘내가 이 정도 가졌으면 이 정도 잘난 사람이다’ 거기서 벗어나서, 겸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고, 직업상 단정하게 살아라

 

9:12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홀연히’ 무슨 말입니까?

하루 전까지도, 1, 2초 전까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 갑자기 인생에 벌어진다는 거예요.

물고기가 바다에 헤엄치고 있는데, 눈앞에 아주 그럴듯한 먹음직한 먹잇감이 있어요.

 

너무너무 감격해서 ‘성공할 기회다’ 해서 꽉 물었어요.

위로 확 낚아채졌습니다. 그 안에 낚시 바늘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물고기는 홀연히 횟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겸손하게 살고,

하나님이 오늘 내게 주신 분복을 누릴 줄 알아야 됩니다.

 

▲9:9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게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게 너의 몫이다. 분복이다’ 라는 말입니다.

 

‘즐겁게 살아라’ 라는 말씀이 나오기 때문에,

‘전도서는 쾌락주의가 아니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쾌락주의, 에피큐리안주의가 아주 유명하죠.

이 에피큐로스 학파는, 스토아 학파와 함께 사도행전 17장에도 나옵니다.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행17:18

 

간단히 말하면 에피큐리안(쾌락주의자)들은,

아타락시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아타락시아’라고 했고, *이게 ‘쾌락’

이 사람들이 말하는 ‘쾌락’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 어로 ‘헤도네’

검소한 음식, 그리고 우정이 그 핵심입니다.

 

이 우정은, 에피큐리안의 정원에서 아타락시아,

이 부동심(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달성한 사람들끼리,

어느 정도 철학적으로 훈련된 고상한 사람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그런 즐거움을 말하는 거였습니다.

 

여러분 이게 사실 ‘에피큐리안’이라는 말이 좀 어려워 보이지만,

동서고금 어디나 다 있는 경향입니다. 수준 높은 사람들끼리의 우정, 그죠?

그게 에피큐리안의 쾌락주의에요. 그냥 그 이름처럼 방탕한 거 아닙니다.

나름대로 아주 굉장히 세련되고 품격 있는 것입니다.

 

공자가 무슨 말을 했는가 하면, ‘유붕이 자원방례면 불역락호라’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멀리서 오면 이렇게 즐겁지 않은가?’ 이 즐거움, 이게 쾌락입니다.

 

더욱이 벗과 ‘학문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벗이 오면 얼마나 기쁜가?’ 라고 했죠.

공자의 이 이야기는 그래서 에피큐리안(쾌락주의)과 아주 비슷합니다.

 

그런데 전도서는 뭐라 그러는가 하면요.

‘그 지혜라는 거 그거 별거 아니야.. 너무 폼 잡지 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전도서의 지혜는, 세상에서 좀 수준이 있고, 철학적으로 훈련되어 있다고

폼 잡는 모든 사람의 바람(거품)을 일거에 빼는, 굉장히 탁월한 접근입니다.

 

현대 문화에도 이런 게 좀 있어요.

여러분, 한국 문학 초기에 문학가들의 우정을 굉장히 이상적으로 이렇게 묘사한

그런 스토리들이 많이 있잖아요.

 

근데 몇 해 전에, 한 12년 쯤 됐을 거예요. 홍상수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면,

‘문학가들이 모여가지고 자기들끼리 술 마시고 얘기하고..’ 이렇게 영화가 쭉 흘러가는데,

 

그 내용을 보면, 그 안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문학가들인데,

서로 눈치 보고, 밀고 당기고... 얼마나 사람들이 쪼잔한지...

낱낱이 그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때 그 영화를 보고 ‘좀 심하지 않느냐? 그래도 문학가(정신세계가 깊은 자)들인데...’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몇 해 후에 이름 기억하십니까? 문학계 미투 사건을 보니까

노벨상 후보로 손색이 없는 한국에서 누구나 존경하는 그 문학가가,

술 먹고 난잡하게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영화보다 몇 배로 심해요.

 

그게 여러분, 인간 지혜의 한계라는 겁니다.

나름대로 수준이 있는 사람들끼리, 뭐 그럴듯한 모임을 가지는 것 같지만,

물론 그 모임이 가끔씩 괜찮을 때도 있지만, 그 한계가 너무도 분명하다는 겁니다.

지혜롭다고 해봐야, 인간은 인간일 뿐이라는 거예요.

 

▲성경이 말하는 즐거움은 좀 다릅니다.

9:9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철학적으로 말이 통하는 고상한 친구가.. 아니고요.

멀리서 찾아오는 학문적 도반도.. 아니고요.

멋진 애인도 아니고.. 아내예요.

아내가 어떤 존재입니까?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에 보면, 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여러분 세상의 모든 아내는 다 그렇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그 사람과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게

내 몫의 하나님의 분복, 하나님의 가장 특별한 선물인 줄 믿습니다.

 

에피큐리안(쾌락주의자)들은, 공자는,

특별한 즐거움, 특별한 사람, 적어도 내 수준에 맞는 사람이 나를 찾아오면,

그 안에서 내가 특별한 사람임을,

나는 좀 더 고상한 다른 지혜를 가진 사람임을 고집하면서

그 대화 안에서 우정을, 즐거움을 말했습니다.

 

정지용 시 <향수>에 나오는 ‘아내’는 전도서가 말하는 즐거움에 가깝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입니까?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고향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을 자극하는...

바로 그 아내가 없으면, 거기가 고향일까요?

거기서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거예요.

 

우리 인생은, 성경이 말하는 인생의 즐거움은

내가 생각하는, 내 머릿속에 스스로 관념적으로 만들어 놓은,

내 수준에 맞는 사람, 내 스타일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삶에 ‘함께 살아가라’고 붙여준 사람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인 줄 알고,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귀히 여기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참 행복의 길인 줄 믿습니다.

 

내 아내, 내 자녀, 내 가족, 내 이웃, 내 교우들...

사랑방 cell group 도 그렇습니다.

내 스타일에 맞는, 내 기분에 맞는 사람하고가 아니고,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사람들끼리 함께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귀하게 이기면서,

하나님의 뜻을 즐겁게 이루어 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 즐거움 안에 뭐가 있는가 하면요. 8절이 있습니다.

9: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예수님도 그러셨잖아요. ‘금식할 때도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

내 슬픔을 과장하지 말라는 겁니다. 단정하게 살아라는 말입니다.

사치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여러분 힘들다 싶으면, 그 힘듦을, 내 모든 표정과 옷차림에, 말투에,

그냥 팍팍 묻어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힘든 것은 힘든 대로, 하나님 앞에서 푸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힘들어도 단정하게, 힘들수록 단정하게!

여러분 힘들다고 자꾸 풀어지면, 더 세상은 나를 업신여기게 되어 있습니다.

 

단정한 차림, 사치하라는 말이 아니라

Time 시간, Place 장소, Occasion 상황, TPO라고 그러죠.

이걸 잘 지키는 것이 바로 단정함입니다.

 

▲여러분, 1945년 4월에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독일의 베르겐 벨젠 수용소,

그 유대인 수용소에 많은 사람들이 갇혀서, 아주 힘든 삶을 살고 있었는데

영국군이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해방시켰습니다. 뭐부터 해야 되겠습니까?

 

아직 집에 못 돌아가고요. 수용소에 그냥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발진티푸스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구호품을 담은 박스들이 도착합니다. 식량, 의약품들이 도착하는데,

 

그런데 그 도착했던 구호 물자 가운데, 의외의 물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상자를 열어보니까

큰 박스에 가득히 립스틱이 들어있는 거예요. ‘이게 뭐야?’ 모두가 당황했어요.

 

‘지금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죽어가는 사람들, 저 사람을 꼴좀 보라고,

립스틱 바르게 생겼느냐고...’ 아주 분노했습니다.

 

‘그래도 왔으니 나눠주자’

그래서 여성 수감자들에게 립스틱을 다 나눠줬어요.

 

그러고 나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영국군 앰뷸런스 부대 모빈 고닌 중령이 이렇게 일기에 썼습니다.

 

「누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여성들은, 거울도 없었지만 입술을 붉게 칠했다.

어깨에 담요만 걸친 채 돌아다니던 여성들도, 입술만큼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립스틱은 그들에게 다시 인간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여러분, 감옥에 가면, 이름이 없습니다. 1897번 그러잖아요.

당시에 머리도 빡빡 깎이고, 그래서 막 그냥 살다 보니까,

그냥 인간의 존엄이란 거, 그런 거 다 집어치우고,

그냥 멀쩡한 여자들이 정신병자처럼 막 돌아다니고 뭐 형편없었습니다.

 

그런데 립스틱을 나눠줘서 바르기 시작하니까요.

‘나는 더 이상 번호가 아니다. 나는 아름다워질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세수도 하고요. 옷도 그나마 제대로 입으려고 노력하고요.

생활도 규모가 잡히고요...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립스틱 짙게 바르고' 라고 하려다가,

그렇게는 안 하고, 대신에 ‘즐겁게, 단정하게’ 라고 정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단정하게 세우는 행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답고 존엄한 인간, 그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게 어떻게 시작되는가? 7절, 8절 다시 보면요. ‘즐겁게, 단정하게’가 나옵니다.

7절은 ‘즐겁게’고, 8절은 ‘단정하게’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근데 그 맨 앞에 뭐가 나오는가 하면, ‘너는 가서’

그냥 ‘기쁨으로 음식물 먹고 단정하게 살아라’ 하지 않고,

먼저 나오는 말이 ‘너는 가서’ 라는 말입니다. 이게 삶의 방향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9: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여러분, 내가 즐겁게 살고 단정하게 사는 거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어느 날 갑자기 의지가 생겨서가 아니라

‘너는 가서 삶의 방향을 정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자기 돌봄’을 향한 결단입니다.

자기를 잘 돌봐야 된다는 거죠.

그런 사람이 이웃을 돌볼 수 있고, 창조세계도 돌보는 거예요.

자신을 돌보는 일, 자신을 존귀히 여기는 것은.. 결단이 필요한 의지의 행동입니다.

 

▲1990년대에 한 직장인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접고 사업을 시작했어요.

수완이 좋았어요. 목욕용품으로 매출 500억을 순식간에 달성하고 잘 나갔는데,

IMF가 다가왔습니다. 부도가 났습니다. 집도 넘어갔고, 한강에 여러 번 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살아야지...’ 그래서 아무도 당시에 자기를 취직시켜준 데도 없고,

요리학원의 무급총무로,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그냥 일하는 곳에 취직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뭐 자리만 지켜도 되는 일인데, 거기서 열심히 청소하고요.

요리학원에서 청소하면서 곁눈질로 요리를 배웁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대학교 조리학과를 찾아다니면서, 학생들을 모집합니다.

요리학원 학원생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주인이 너무 고마워하는 거예요.

 

그때 주인에게 부탁합니다. ‘사장님, 이 건물 앞에 포장마차 하나 내도록 허락해 주세요.’

주인이 허락합니다. 그래서 이분이 호떡 장사를 시작합니다.

호떡을 열심히 연구하며 굽습니다.

 

그런데 호떡을 구우면서도, 매일매일 양복입고, 와이셔츠 깨끗하게 다리고, 넥타이를 매고

호떡을 구웠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계속 커진 기업이, 지금은 동네마다 있는 [본죽]입니다.

아주 신실한 크리스찬입니다.

 

여러분 길거리 모퉁이에서 호떡 장사를 한다 하더라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하면서, 양복입고 넥타이를 매고 해 보십시오.

여러분, 그 정도 마음이면, 뭐라도 다 할 것 같지 않습니까?

 

9: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죠.

그런데 이 말씀을 여러분이 가만히 보시면,

전도서 기자의 강조점이 ‘죽음 이후에는 모른다’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죽고 나서는 잘 모르니까,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10

오늘 살 수 있는 날을 제대로 살아라는 거예요.

 

그렇죠. 전도서는, 죽음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헛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헛되지 않은 그 삶의 알맹이를 제대로 붙잡아 라는 겁니다.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일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곳이 있다면,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고 감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밥에 줘야 될 가족들이 있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손을 움직여서 해야 될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한 선물인 줄 믿습니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거예요.

 

▲9:1절은 그랬습니다.

‘미래의 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뭐가 잘 될지 모른다.

사랑받을지, 미움받을지 모른다.’

나는 사랑받는다고 했는데, 미움받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할 일은, ‘내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일하는’ 그것입니다. 9:10

 

그리고 ‘네 아내와 함께, 하나님이 네 삶에 함께 살아라고 붙여주신 그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거예요.  9:9

그것이 오늘을 온전히 살아가는 삶인 줄 믿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다 법칙도 없고, 규칙도 없고, 전부 다 그냥 부조리하고...

그러나 여러분, 궁극적으로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다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의 삶도,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며 맡기고,

 

오늘 ‘우리 손이 일을 얻은 대로..’ 일하는 기회도 하나님 주신 선물인 줄 알고

즐겁고, 단정하게 ... 여러분 일도 즐겁게 하고 단정하게 해야 됩니다. 대충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존중하는 일이고,

나에게 그 일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와 우연(:11)처럼 보이는 우리의 삶이,

우리 삶의 어느 지점이든지 가서, ‘내 모든 삶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날이 오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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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는

아이작 뉴턴이 1676년 라이벌 로버트 훅에게 보낸 편지에 써서 유명해진 문구로,

선대 지식인의 업적을 바탕으로 더 큰 학문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음을 뜻하는

학문적 겸손과, 축적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은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