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아폴로 프로젝트 마16:18~20 출처
마16:18~20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설교 제목은 ‘교회의 아폴로 프로젝트’입니다.
‘아폴로 프로젝트’는 미 항공 우주국인 나사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추진했던
인간의 달 착률 계획입니다. 인간이 대기권을 뚫고 올라가서, 달에 착륙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교회도 이런 아폴로 프로젝트의 토대 위에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교회를 가리키는 헬라어 단어 ‘에클레시아’가 신약에 처음으로 등장해요.
이 교회를,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구원의 내용은.. 관계입니다.
즉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영원 전부터 (관계) 맺고 계시던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우리에게 맺게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요17:21절을 보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라고 예수님은 간구하세요.
즉 예수님은 영원전부터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마주하시면서,
성령님을 통해서 삼위일체를 이루시는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천국에 착륙시켜, *아폴로 프로젝트
삼위 하나님이 일체를 이루시는 관계 속에, 우리 성도들을 참여시키고자 하신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뜻하는 단어 에클레시아에는 ‘밖으로 불러낸다는 의미’가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교회(성도)는, 자기 마음이 이 세상에서 밖으로 나오라고 부름을 받은 자들인 거죠.
즉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아폴로 우주선처럼, 이 세상에서 대기권 밖으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달나라로 비유될 수 있는 천상에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이 영원토록 맺으시는 하나님과 성령님의 관계 안으로 착륙해야만 합니다.
구세주로서 예수님은, 바로 이 삼위 하나님의 (연합, 교제) 관계를
우리에게 지금 당장 살아내야만 하는 관계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교회는 뭡니까? 성도는 누굽니까?
그 마음이 아폴로 우주선처럼 이 세상을 빠져나와,
삼위의 일체되심의 관계에 착륙하는 자들 전체를 가리키는 거예요.
이러한 교회의 아폴로 프로젝트를 위해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 연쇄 과정입니다.
십자가에서, 이 세상 모든 관계에 대해 죽은 마음을, 예수님과 연합함으로써,
부활승천을 거쳐, 천상의 보좌 우편에 도달합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연쇄 과정’이지요.
그러면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과 더불어 관계하실 때,
내 마음도 예수님 안에서 이 관계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이 세상 관계에 대해 죽고, 천상의 관계에 참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 아닙니까!
▲그러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마16:18
여기서 ‘음부의 권세’란 문자대로 이해하자면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교회는 ‘육체가 죽는 일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에요.
사람들은 왜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마음이 육체에 들러붙어서, 육체가 있기에 맺어진 모든 관계가,
삶의 전부라는 확신 아래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육체가 죽으면, 모든 관계를 잃고 삶을 잃어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상실감이 그토록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도는 달라요. 지구를 진즉(일찍) 빠져나가 달에 도착한 아폴로 우주선처럼,
자기 마음이 예수님 안에서, 이미 육체로 맺어진 세상 관계의 그물망 바깥으로 빠져나갔어요.
그래서 천상에 착륙해서 삼위 하나님의 영원하신 관계에 참여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실에 기반한 영성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 몰입형 믿음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교인에게는 바로 이러한 천상의 관계가.
지금 현재 마음을 쓰는 실질적인 삶의 내용이 되어야 하는 거에요.
그렇기에 육체의 죽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상실은
예수님 안에서 천국에 착륙해 있는 마음에는, 상실감으로 느껴질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이 예수님 안에서 천국에 착륙한 사람들인 교회(성도)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만 합니까?
19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음이 날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여,
천상의 관계 안에 착륙하는 성도들에게서는
땅과 하늘 사이에 막힘이 없이 통한다는 뜻입니다. (기도응답이 바로바로 실시간 됩니다)
즉 모든 교인의 삶의 현장은, 더이상 죄와 저주로 폐쇄된 공중권세 잡은 자가 지배하는 공간
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그리스도 (십자가) 연쇄 과정을 통해서,
천국 보호자와 이어져 있는 천국의 앞마당이 된다는 겁니다.
내 삶의 현장이, 천국의 앞마당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천국 하나님과 지상 성도들의 삶의 현장 사이에서
아무런 막힘이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바로 천국 열쇠를 가진 상태입니다.
▲그럼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말라 하시니라’
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마16:20
당시 유대인에게서 출발해서 교회 역사가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정말 줄기차게 그리스도를 오해합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구원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다윗 왕국의 재현이기만을 바라는 겁니다.
지금 당장 마음이 이 땅을 등지고 솟아올라, 천상에 착륙하는 것이,
구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모르게 거부합니다.
(*성도들이 ‘현재 천국’의 삶을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냥 3차원의 세계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합니다만,
기독교 신앙은 4차원을, 3차원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쩔 수 없이 아폴로 프로젝트 위에서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내 마음이 땅을 떠나 하늘에 도착하고 싶지 않다면,
그는 영영 하나님의 교회에 속할 수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출처 마16:21~23 출처
마16:21~23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신호탄으로 삼아
예수님은 이때로부터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기 시작하십니다.
(그 고백 이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을 언급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첫 번 예고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모두 세 번 예고하시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16:22
수제자로서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고, 또 마음 따뜻해 보이기까지 하는 항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뜻밖에도, 정말 매몰차게 베드로를 쏘아붙이십니다.
바로 직전에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하시며 칭찬하셨던
그 예수님이 맞나 싶을 정도에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16:23
예수님은 왜 이렇게까지 엄하게 하셨을까요?
베드로의 항변의 이유를 깊이 꿰뚫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베드로의 항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은 상식적으로, 인간적으로 얼마든지 이해가 돼요.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 아닙니까?
그러나 ‘주여 그리 마옵소서’ 라는 항변의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인간적인 의리나 염려를 넘어, 더 깊은 데 그 원인이 있었다는 겁니다.
베드로와 모든 제자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토대로,
앞으로 이루어질 찬란한 미래 전망을 굳건히 붙잡고 동행하는 중이었어요.
그걸 예수님이 꿰뚫어 보시고, 베드로를 엄하게 혼 내시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임금으로 등극하시는 대신,
일개 범죄자처럼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로 대표되는 제자들은 일순간 너무나 당황한 거예요.
그래서 반사신경적으로 튀어나온 말이 바로 ‘주여 그리 마옵소서!’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베드로의 항변에, 예수님 역시 반사신경적으로 쏘아붙이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왜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의 앞잡이’라고까지 지탄을 하셨을까요?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23
그러면 항상 생각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지요?
그것은,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므로써, 마음이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연합해서, 부활과 승천의 과정을 거쳐
천국보좌 앞까지 예수님을 따라 올라가서, 하나님을 마주하여 교제하는 일,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베드로가 생각해야 했던 ‘하나님의 일’이에요.
(*4차원의 신앙을 가지고, 3차원의 현실을 살아가는 것)
그러면 생각하면 안 되는 ‘사람의 일’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이, 이 땅에 뱀처럼 마음을 붙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성공과 번영의 미래를 향해, 앞을 보며 달려가는 일입니다.
(*신앙을 3차원으로 이해해서, 3차원의 현실에서 성공하려고 하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올라갈 생각은 하지 않고,
미래의 목표를 향해, 수평적으로 앞을 향해 달려가려고만 한다면, 그 이유가 뭡니까?
사탄의 앞잡이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사탄의 앞잡이가 앞잡이가 되었을 때, 공통으로 내뱉는 말입니다.
혹시 나도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한 사실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사람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이 땅에 머물며, 이 세상 안에서 이루고 싶은 간절한 바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3차원의 신앙
이럴 때 내가 그렇게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외 없이 불만이 생기고,
부족감과 결핍을 느끼고, 원망이 생깁니다.
이렇게 삶에서 불만과 부족감과 결핍을 느끼는 상태가 되잖아요.
그러면 이 상태 자체가 바로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항변 중인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의 떨어짐도 주장하시는 주권자이시잖아요.
그러므로 내 삶은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주권 밖에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땅 위에서 내 삶은, 절대 내가 원하는대로 되어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내가 생각해야 하는 하나님의 일은, 실시간 임하시는 하나님 주권의 현장인 세상을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는 겁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죽어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되는 일은, 내가 생각(간섭)하지 말아야 할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에요.
그러므로 내가 이 세상 삶을 향해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모든 일과 모든 상황에 감사하는 것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범사에, 실시간 임하시는 주권에 감사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사건건 불만과 불평이 생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내가 사람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미 주권자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항변하는 중입니다.
이 항변이 무서운 이유는,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삶에 대해서 감사가 그치고, 불만과 불평과 원망과 부족감과 결핍감이
내 속에 있다면.. 얼른 깨달아야 돼요.
나는 지금 '주여 그리 마옵소서' 라는 항변하면서,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사탄의 앞잡이가 될 수밖에 없어요.
땅에서 하늘로 수직으로 뻗어있는 ‘그리스도 (십자가-부활-승천) 연쇄 과정’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답습니까?
날마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이 길을 따라 올라가는 하나님의 일만
24시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