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임재, 교제, 친밀 출처
◈잃은 것과 얻은 것 빌3:5~9 2026.02.15.
※설교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일화를 꼭 보십시오!
◑도입
인생은 얻는 일과 잃는 일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얻고 있고, 무엇인가는 잃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 문명이 그렇습니다.
문명은 발달하는 것이니까 ‘발달하는 것은 얻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문명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얻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잃고 있습니다.
그 예로, 역사상 우리의 삶을 가장 많이 바꾼 ‘산업화’를 생각해 보십시다.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농사짓고 필요한 물건들을 집에서 만들면서 살았습니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공장을 짓고, 필요하고 편리한 물건들을 많이 대량 생산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편리하고 좋은 물건들을 많이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으니 분명히 얻은 것이지요.
산업화로 우리가 얻은 것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면 얻은 것만 있겠습니까? No
제가 어릴 때는 밤하늘에 별이 많았습니다.
제 나이쯤 되신 분들은, 시골에 살았다면 보셨을 겁니다.
밤에 평상에 누우면, 밤하늘에 영롱한 별들이 가득했습니다. 은하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신비롭고,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그 별들을 볼 수 없습니다. 왜 볼 수 없습니까?
산업화로 공장을 지으면서, 공기가 탁해져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산업화로 별을 잃었습니다. 별만 잃었습니까?
환경이 오염되고, 자연이 파괴되고, 이상 기온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지요.
얻은 것이 있었지만, 잃은 것도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예로 스마트폰을 생각해 보십시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대의 가장 큰 발명품은 스마트폰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기능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마는, 그래도 대표적인 것은 통신수단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통화할 수 있고, 서로 얼굴을 보면서도 통화할 수 있고,
카톡이나 문자나 SNS로 수많은 사람들과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정말 편리하고 좋은 통신수단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잃은 것은 없겠습니까? 잃은 것도 있습니다. 편지를 잃었습니다.
그 하얀 종이에, 손으로 한자 한자 써내려가는 편지,
운치가 있고, 낭만이 있고, 사람 냄새가 났습니다. 그 좋은 편지를 잃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얻고 있지만, 또한 동시에 잃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얻기만 할 수도 없고, 잃기만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원하는 좋은 것을 얻었을 때, 잃은 것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또, 정말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에, 얻은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도 있습니다!
반대로,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저는 2017년도에 건강을 좀 잃었지요.
그때부터 허리 통증이 있고, 무릎이 관절염도 아닌데 아파서, 지금도 보호대를 하고 있습니다.
보호대를 하고 5분 이상 못 걷습니다. 그리고 소화 기능이 아주 안 좋습니다.
그 결과로 저는 은퇴하고 나서,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했습니다.
국내여행도, 여행다운 여행을 못했습니다.
소화에 제약이 많으니까, 여행을 다니기 힘들지요,
(집에서 특별히 준비한 식사를 먹어야 됩니다)
지금도 고기를 못 먹습니다. 이렇게 먹는데 제약이 많습니다.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지지요. 그러면 건강 때문에, 잃은 것이 많지요.
그러면 제가 잃기만 했겠습니까?
제가 그렇게 아프면서... 기도를 더 많이 하게 되었고, 회개도 많이 했고,
주님과 더 가까워졌습니다.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제가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얻은 것이지요.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얻었습니다.
▲얻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얻기를 원하는 것이 뭐지요?
돈, 권력, 명예...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얻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얻을 것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런 것들을 얻을 때에,
진실, 정직, 의로움, 겸손... 이런 소중한 것들은 잃어버립니다.
잃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항상 얻고 있고, 동시에 항상 잃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얻어도, 정말 소중한 것을 잃었다면... 실패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도, 정말 소중한 것을 얻었다면... 성공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의 잃은 것과 얻은 것
오늘 읽은 본문 빌3:1~9절은 바울의 인생 고백입니다.
바울이 한평생 살아오면서 자기 인생을 정리하고 있는데,
잃은 것과 얻은 것의 정리입니다.
마치 금전출납부를 쓰듯이, 자기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아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고 있습니다.
▲1. 그러면 먼저, 예수를 믿고서 바울이 잃은 것이 무엇입니까?
빌3:5 ‘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여기 지금 바울이, 예수를 믿고 자기가 잃은 것들을 나열하는데 가만히 보면 7개에요.
1)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무슨 말이냐면, 중간에 개종한 유대인이 아니라는 거예요.
중간에 개종하면 그때 할례를 받는데, ‘8일 만에 받았다’는 말은,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받았으니, ‘태어날 때부터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그 뜻입니다.
2) 두 번째는 ‘이스라엘 족속이요’ 내가 선민이라는 것이죠.
‘나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다’ 그 뜻입니다.
3) ‘베냐민 지파요’ .. 베냐민 지파가 왜 자랑거리냐?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이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누어지지요.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망하는데,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에 혼혈정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에 있던 지파들은 피가 섞여버렸습니다. 순수혈통이 사라진 것이지요.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했는데, 바벨론은 혼혈정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남유다에 있었던 지파는 순수혈통을 지켰습니다.
그 남유다에 속한 지파가 유다지파, 베냐민지파, 레위지파입니다.
그러니 베냐민 지파는 순수혈통입니다. 자랑할만 했습니다.
4) 그 다음에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라는 말은,
그 당시는 헬라 문화이고, 또 유대 땅을 떠나 사는 디아스포라 히브리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히브리 말도 할 줄 모르고, 히브리 문화를 잃어버린 히브리인들이 많았는데,
바울은 이방 땅에 살면서도, 히브리어를 정통하고 있었고,
히브리 문화에도 정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히브리 인중에 히브리인이다’ 그렇게 자랑합니다.
이 4가지는 바울이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자랑거리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노력으로 얻은 것들이 더해집니다.
5)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남들보다 성별되게 하나님을 잘 섬기자’ 라고 해서, 구별되었다는 뜻으로 바리새인인 겁니다.
백성들의 선생이요, 존경의 대상이지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교회를 왜 박해했습니까? 교회를 유대교의 이단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 더 잘 섬기려고 박해한 겁니다.
‘이렇게 내가 하나님 잘 섬기려고 노력했다’는 거예요.
7)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 까다로운 구약의 율법들을 다 지키고, 율법에서 파생된 전통도 지키려고 노력해서
자신은 율법에 흠이 없는 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정말 자랑스러운 것들인데,
바울은 예수를 알게 된 이후로.. 이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또한 자발적으로 버렸습니다.
세상적인 안목으로 볼 때, 정말 좋은 것들인데...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잃은 거예요.
▲2. 그러면 바울이 이것들을 잃음으로, 얻은 것은 뭡니까?
얻은 것은 딱 하나예요.
얻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8절 중간에 보면 ‘내가 그를 위하여’
바울은, 예수님을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그러니 바울이 잃어버린 것은 모든 것이요,
바울이 얻은 것은 예수님 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좋고 너무 행복하다는 겁니다.
예수 믿고 부자 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공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출세한 것도 아니에요. 병 고친 것도 아니에요. 그런 건 오히려 다 잃어버렸습니다.
'예수 믿고 의를 얻었다'는 거예요.
이 바울의 인생 목적은 의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의란 죄가 하나도 없는 상태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입니다.
인생은, 의롭게 되어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데,
그러니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잖아요.
그래서 바울은 평생을 의를 얻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까다롭게 율법을 지키고, 바리새인이 되고, 교회를 핍박하고,
그렇게 정말 목숨 걸고 노력한 것이,
‘어떻게 하면 내가 의를 이룰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게 안 되더라는 거예요.
죄인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 소용이 없고,
죄인의 공로는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의가, 예수를 믿었더니, 예수님 안에 있더라는 겁니다.
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3:9b
예수님을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그 의를 주시는데, 예수님이 만들어 놓은 의다...
그 예수님의 의를 내가 받았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의를 받았습니다.
이 의를 얻고 나니, 사도바울은 다른 아무 소원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으로 기쁘고, 예수님 한 분으로 감사하고,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예수님 한 분으로 행복합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은혜가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진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얻었지요. 예수 믿을 때.
그런데 그 예수님을 얻은 복을, 은혜를... 온전히 누리고 있느냐? 하는 거예요.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을 더 온전히 소유해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소유한 복을, 바울처럼, 우리도 누려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더 온전히 소유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더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1. 주님을 온전히 얻기 위해서는 ‘잘 버려야’ 합니다.
▲1. 첫째는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죠. 언제나 버려야 얻을 수가 있어요.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서도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하고,
예수님을 더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도,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버리느냐?
바울이 여기서 ‘버리는 것’에 대한 표현을 3가지로 하고 있는데,
그 표현을 통하여 무엇을 어떻게 버리는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더 온전히 소유하는데, 방해되는 것을 버려야 됩니다. 방해되는 것!
여기 본문 7절에, 바울은 자기가 버린 것을 두고 ‘해로 여겼다’고 합니다.
8절에도 해 害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방해되는 것을 버렸다는 거예요. 방해되는 것을 버려야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 여러분, 내가 미워할 때, 미움이 내 어디에 있습니까? 내 마음에 있죠.
예수님은 나의 어디에 계십니까? 내 마음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마음에, 내가 미움을 지금 집어넣습니다.
부모님을 집에 모셔서, 방을 드리고, 그 방에 오물을 집어넣습니다.
그게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는 겁니까? 부모님이 편하게 계실 수 있겠습니까?
미움이 있는 그 내 마음에, 예수님이 온전히 거하시겠느냐는 거예요.
방해되는 것을 버려야죠.
미움뿐만 아니라, 시기심, 분쟁, 다툼, 과도한 욕심, 음란한 생각들...
이런 주님이 내게 가까워지고, 주님을 온전히 모시는데 방해되는 것을 버려야 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와 주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없습니까?
주님과 더 멀어지게 만드는 거 없습니까? 방해되는 것을 버려야 됩니다.
버려야 주님을 더 온전하게 소유합니다.
▲2. 두 번째는 <손해를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또 하는 말은 ‘잃어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3:8
여기 8절의 ‘잃어버린다’는 동사는, *제미아오, suffered the loss
7절과 8절의 ‘해로 여긴다’의 해害 라는 명사를 동사화시킨 겁니다. *제미아, damage, loss
그러니 ‘해 害’라는 말을, 연속으로 세 번이나 말함으로써, 강조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리고, 손해를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는!
△군대 생활하신 분은 아실 겁니다.
저도 군대 생활을 했는데, 밤에 보초를 서는 경우가 있어요.
밤중에 혼자 보초 서고 있으면, 제일 힘든 게 뭐겠어요? 시간이 안 가는 것입니다.
그때 ‘아이고, 아무것도 할 게 없는데 기도나 하자’ 그래가지고 저도 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별로 큰 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왜요?
기도하기 위해서, 내가 손해 본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 시간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도했잖아요.
병 걸려서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이 다른 거 할 일이 많은데,
그거 다 제쳐놓고 ‘손해보고 기도한다’ ... 그 기도가 귀한 거예요. 그게 손해보는 거예요.
다른 할 일이 많은데, 그거 안 하고,
찬송 부르고, 성경 읽고, 경건 생활할 때... 그게 손해보는 거예요.
그게 주님을 더 소유하게 된다는 진리예요.
여러분, 그리스도를 얻으려면, 손해를 봐야 됩니다.
어느 분이 그런 말을 합니다.
‘아, 목사님, 저는 예수 믿고 손해 많이 봤습니다.’
그건 대단히 잘 한 겁니다. 예수 믿고 손해 많이 보았으면, 예수를 잘 믿는 거예요.
주님을 더 잘 믿기 위해서도, 손해를 봐야 됩니다.
물질에도 손해 보고, 참음으로 손해 보고...
손해를 볼 때, 그게 배설물을 버리는 것이고, 주님을 더 온전히 소유하게 됩니다.
▲3. 미련 없이 깨끗하게 버려야 합니다. <배설물로 여기고 버려야> 합니다.
바울이 ‘버린다’고 표현한 것이
-처음에는 해로 여긴다
-두 번째는 잃어버린다
-세 번째는 뭐같이 여겼다고요?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배설물로 여겼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쉽게 설명하면, 아침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봤습니다.
변기에 물을 내려야 되는데, ‘아이고 아까워라, 이걸 버리다니...’ ‘아이고 귀한 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죠? 아무 미련, 아무 생각 없이, 지극히 당연하게 깨끗하게 버립니다.
‘배설물로 여겼다’는 말은 그렇게 미련 없이 버렸다는 뜻이에요.
주님을 가까이 하는데 방해되는 거, 그렇게 버렸다는 거예요.
△제가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아주 돈이 많은 권사님이 한 분 계셨는데,
이분은 젊은 시절부터 보석을 좋아했답니다. 보석을 사랑한 거지요.
보석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보석을 사 모았답니다. 그게 행복이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나면, 보석들을 쳐다보고 ‘아름답다, 예쁘다’ 하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진실로 만나고, 은혜를 받고 나서 딱 깨달아지는 것이,
‘내가 부질없는 짓을 했다.. 돌멩이나 다름 없는 것인데,
저걸 모으려고 그렇게 많은 돈을 쓰다니...
그걸 모으는 데 쓴 돈을, 귀한 일을 위하여 얼마든지 쓸 수 있었는데...’ 후회가 되더랍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기도하고 결심하고, 보석들을 딱 싸가지고는
목사님께 들고 가서 ‘목사님, 이거 제가 과거에 모은 건데, 이거 팔아서 선한 일에 써주세요.’
그렇게 헌물로 드렸답니다.
그렇게 드리고 나서, 그렇게 기뻐고, 그렇게 주님께 가깝게 느껴지고,
주님이 자기를 향하여 빙그레 웃으시는 것 같더랍니다.
그때 주님이 가까이 오시게 되고, 주님을 더 온전히 소유하게 된다는 진리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더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는, 내게 방해되는 것을 버려야 됩니다.
손해를 보면서 버려야 됩니다. 배설물처럼 깨끗하게 버려야 됩니다.
◑2. 주님을 더 온전하게 소유하기 위해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주님을 확인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이미 다 소유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주님을 소유한 이 은혜와 이 감격과 기쁨이 희미합니까?
주님을 소유한 사실이 자꾸 희미해지는 거예요.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확인을 해야 됩니다.
‘나는 주님을 소유했지.. 주님이 내 속에 계시지...’ 확인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누려야 됩니다.
여러분, 경건의 시간 QT 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넓게 말하면 예배도 경건의 시간이고,
집에서 내가 성경 읽거나 큐티하는 것도 경건의 시간이고,
찬송 부르는 것도 경건의 시간인데,
그 경건의 시간에 받는 은혜, 궁극적 은혜는 뭡니까?
궁극적 은혜는, 내가 예수님을 소유한 것을 확인하는 거에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확인하는 겁니다.
그래서 확인하고 확인해서, 내 마음에 은혜가 넘치고,
주님을 소유한 기쁨이 우러나오고, 행복하고 감사하게 되고...
이것이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의 복이지요. 이 은혜를 누려야 한다는 진리예요.
▲이해를 돕기 위해 제 아내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과거에 목회할 때, 제 아내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이 이야기는 오늘 설교 내용과 맞기 때문에 제가 할 테니까, 용서하고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제 아내는 작년에 만 70세가 되었습니다.
근데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님께서 70년 살았다고
그렇게 작년에 위로를 많이 해주시고, 선물을 많이 주셨다는 거예요.
아내가 작년에 많은 선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연초에 제일 먼저 받은 선물이 뭐냐면, 우리나라에 ‘훈장찾아주기 단체’라는 게 있더라고요.
거기서 연락이 왔는데, 세상 떠난 지 37년 된 저희 아내의 아버지, 저한테는 장인어른이죠.
그분이 금성화랑 무공훈장 대상자라는 연락이 온 거예요.
(*6·25전쟁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군인에게 수여하는 4번째 등급의 무공훈장)
그래서 해군 장교 두 분이 저희 집에 찾아왔어요.
그래서 제 아내한테 훈장 전달식도 하고, 육군참모총장 이름으로 된 꽃도 주고,
세상을 떠나신지 37년된 아버지의 훈장을, 작년 초에 제 아내가 대신 받았습니다.
좋은 선물을 받은 거죠.
작년 7월 달에는 ‘월드비전’ 구호단체에서, 30년간 후원을 했다고 해서
‘후원 30년 기념패’를 또 보낸 거예요.
기념패엔 ‘박삼우’라고 이름이 적혀 있지만, 사실 후원은 제 아내가 한 거죠.
제 아내가 받은 겁니다. (*한 구호단체에 30년간 계속 후원하기가 쉽지 않지요)
어쨌든 참 기분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또 아내가 기회 있을 때마다 헌혈을 했는데,
헌혈이 70세 넘으면, 하고 싶어도 안 받아줍니다.
그래서 작년이 마지막 헌혈인데, 10월 달에 헌혈했는데 그게 50회째였어요.
아내는 몰랐는데, 50번 헌혈하면 대단한 금장패를 주더라고요.
그래가지고 50번 헌혈했다고 저런 귀한 ‘헌혈유공패’를 또 받았습니다. (*동영상에 사진 나옴)
그참 하나님께서 많은 선물을 주시고, 위로를 해 주신 것이지요.
▲거기에 또 한 가지가 있는데, 제 아내는 늘 저한테 ‘설교집을 내라’ 그랬습니다.
제가 은퇴한 후에도 ‘설교집을 내라’
그런데 제가 그 소원을 안 들어주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이런 저런 이유로,
‘뭐 서점에 가면 여러 설교집들이 많은데, 또 나까지 설교집을 내냐?’
그래서 설교집을 제가 안 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한평생 살면서 아내한테 제대로 선물다운 선물을
준 적이 없는데, 아내의 소원대로 설교집을 내면, 그게 아내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다’
그래서 작년 말에 제가 설교집을 냈습니다. *제목은 <더 많이 빚진 사람>
그 설교집은 제가 아내한테 드리는 선물이었어요. 아내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정말 작년 한 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참 내가 목사 아내로서 이렇게 나름 일평생 살아왔는데, 하나님이 나를 위로해 주시는구나..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시고, 내게 선물을 주시는구나...’
얼마나 아내가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작년 12월 21일 주일 날이에요.
제가 서울의 어느 교회에 설교를 하러 갔습니다.
갔는데 1부 예배를 마치고, 목양실에서 아내와 제가 만났습니다.
저는 항상 설교가 끝나면, 아내로부터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아내를 만납니다.
만났는데 울어가지고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거예요.
제가 깜짝 놀라서 ‘어떻게 된 거냐?’ 그렇게 물었더니,
이제 그 교회에 도착해가지고, 저는 목양실로 들어가고, 아내는 본당으로 올라갔지요.
올라가서 장의자에 앉으면, 먼저 기도하고 그 다음에 강단을 바라보잖아요.
강단을 바라보는데 강단에 플랜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현수막이 붙어 있었어요.
근데 그 현수막을 아내가 쳐다봤더니, 아내를 향하여 큰 글자로, 확 다가오더라고 합니다.
다가오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막 충격이 오고, 작은 경련이 일어나는데,
‘아 최고의 선물은 예수님인데.. 나는 이미 그 선물을 받았는데...
그 선물은 어리석게도 잊어버리고,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이런 선물(위에 언급한 패)들을 내가 받고 좋아했구나...’ 생각할 때 부끄러웠어요.
회개의 눈물을 흘린 거예요.
‘하나님 내가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이런 시시한 선물을 받고, 이걸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예수님을 소유한 것을 제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주님을 소유한 그 은혜를 생각할 때,
그 다음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펑펑 소리가 나도록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러분, 최고의 선물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소유했습니다.
어떠하든지 예수님을 더 온전히 소유해야 됩니다.
여러분, 세상 많은 것을 얻어도 예수님과 멀어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실패하고 있는 거예요.
주님과 가까워져야 되고, 주님을 더 온전히 붙잡고, 주님을 더 온전히 소유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방해>되는 걸 깨끗이 버리세요.
아낌없이 <손해>보면서 <배설물>처럼 버리십시오.
주님을 더 온전히 붙잡고 확인하세요.
확인하고 확인하고 가슴이 뜨거워질 때까지, 눈물이 날 때까지 확인하세요.
그래서 예수님 소유한 이 기쁨, 이 감격, 이 행복을 노래합니다.
이 은혜 속의 모든 환경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소유하시고, 이 기쁨에 살아가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는 이미 주님을 소유했습니다. 그런데 주님 소유한 것을 잊어버리고
세상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주님과 때로는 멀어질 때도 있었던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을 더 온전히 소유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 소유하는데 방해되는 것을 깨끗이 버리게 하시고
어떠하든지 주님을 확인하고, 그래서 주님을 소유한 그 은혜, 그 기쁨, 그 감사를
풍성히 누리는 저희들 다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