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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누구냐? 마21:8~17 2025.04.13. 인터넷 설교 정리
일주일 전 어느 날 갑자기 온 세상이 캄캄해졌습니다.
(설교 시작과 함께 예배실의 모든 전등 거의 소등. 어두움)
갈보리 산 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날 어둠이 세 시간 동안 있었죠.
그 캄캄함 속에서 십자가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백스크린에 희미한 조명 켜서 십자가 비춤)

십자가가 셋이 보이는데, 그중에 가운데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이 십자가 자리에까지 가셨을까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과 과정을 거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됩니다.
이때로부터 불과 5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데, 본문의 말씀입니다.
▲5일 전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십니다. *종려주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이 위대하고도 놀라운 장면을
구스타브 도레는 또 이렇게 감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Gustave Dore, 1832~1883.1.23, 프랑스 삽화가, 조각가,
성경 속 주요 장면 판화를 많이 그림
사람들은 왕이라고 소리치고, 그를 환호했는데,
최고 인기가 좋았던 분이 어떻게 5일 만에, 그들 군중들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되어서
십자가에까지 못 박히게 되었는가?
이것이 오늘의 질문이고,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질문입니다.
‘이는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마21:10
‘이는 누구냐 Who is this?’
‘이는 누구냐’가 예수님께서 왜 일주일도 안 된 시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고,
우리가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고 믿고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해온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 물을 때,
우리에게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줍니다.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가?’ 하는 것에 관한 생각을
문화가 주는 그 영향을 받고, 예수님이 누구인가 라는 것을 결정하고 표현합니다. 주1)
예수님은 누구신가요?
◑1. 예수님은 왕이시다
첫 번째,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왕이신데 어떤 왕이신가요?
예수님은 사랑이 넘쳐서 부드럽고 아주 온순하고 공손하고
말도 아주 부드럽게 하는 그런 왕이기도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은 왕이시다는 것은 아주 혁명적인 왕이십니다.
세상을 다 뒤집어엎는 왕이시라는 뜻입니다.
마21:8~9,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시는 그 입성의 순간,
거기 모인 수많은 군중들은,
거의 대다수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을 환호하고 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나뭇가지를 펴고, 겉옷을 벗어 펴서 깔고 예수님께서
지나가게 하시면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종려나무 가지는 국기 national flag 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천으로 만든, 흔드는 국기가 없었던 그 시대에,
이 종려나무 가지는 그들에게 있어서, 애국심과 나라 사랑을 표현하는
아주 상징적인 나무였어요.
그 나뭇잎을 흔들 때 그것은 애국심의 발로였습니다.
마치 이 시대에 국기를 흔드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동전을 보면,
이 종려나무가 그려진 동전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열정적인 애국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환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님이 개인적으로 좋아서 환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차원에서 예수님을 열광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분히 ‘다윗 왕’의 이미지와 아울러,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들은 ‘민족의 해방자, 정치 지도자’로서의 예수를.. 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이 외침은 시편 118:25~26을 인용한 것입니다. ↙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호시야-나 Save now)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시편 118편에 “이제 구원하소서 이방에게서 우리에게 구원하소서
압제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치는 그 외침,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국가 national anthem 와 같은 외침이었습니다.
그들은 國旗와 같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고,
국가 國歌와 같은 시편 118편을 노래하고 호산나를 외쳤어요.
호산나라는 뜻은 Save now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그들에게 있어 생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200년 전 유다 마카비 (‘망치’ 라는 뜻)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다 마카비가 똑같이 그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유다 마카비는 온 백성들의 환호 속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했고,
사람들은 그때도 똑같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고,
시편 118편을 노래했으며,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점령을 당했고, 시리아가 통치하고 있었죠.
유다 마카비의 일행은 성전산으로 향했고, 성전산 꼭대기에 있던 시리아 군들을
이스라엘에서 다 내쫓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그 200년 전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이 또다시 제2의 유다 마카비가 되어서, 자기들을 해방시켜 줄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식민지 치하에서는, 무엇보다 경제적인 수탈이 심했죠. 안 그래도 먹고 살기가 힘든데,
막대한 세금까지 바쳐야 했으니... 유대 나라 사람들은 그야말로 ‘정치적 해방’이 간절했죠!
당시는 시리아(그리스)로부터 마카비가 등장해서 그들을 해방시켰지만,
이제 그들은 로마의 식민지 생활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그 사람이 나타났다고
기대에 차서 환호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치면서, 나귀 타신 예수님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해서
지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것이, 군중들의 마음에 또한 불을 질렀을 것입니다.
유대나라는, 왕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전통이 있었거든요. 슥9:9
그러니 예루살렘 성이 들썩 한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가 왕이 되려나 보다...’ 하고, 사람들은 기대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누구냐?’ 하는 질문입니다. 마21:10
군중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마카비처럼, 유대를 규합해서
로마와 싸워서 그들을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기대하면서
목청을 높여서 환호하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마21:10 ‘...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선지자가 누구입니까? 선지자는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을 좋은 일에 대해서,
새로운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계속 보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 예언했던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예언은 하나같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회복되고 자유를 얻을 거야,
이스라엘은 다시 나라를 세우게 될 거야, 그 나라가 다시 도래할 거야’
이것이 선지자들의 외침이었습니다. (그 나라는 사실 ‘하나님의 나라’였죠)
이제 그때가 왔다고 사람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인가?’ 하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그것을 알고 깨닫고
그 진리에 굳건히 서기 위해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그 필요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님, 나에게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느끼는 필요가 아니라, 우리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가장 채워지고 해결돼야 할 그 뿌리에(근원적) 필요가 있는데,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채워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느끼는 필요가 무엇이었습니까?
로마로부터 해방되는 정치적인 해방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이 정치적인 해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해방이 필요하다’는 그것이,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였어요.
그의 영혼이 구원받고 그의 영혼이 해방되어, 그의 영혼이 자유함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칼을 들고 로마와 싸우러 가신 것이 아니고,
십자가의 길로 가셨고, 왕관 대신에 가시관을 쓰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첫 번째 대답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오늘 왜 나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가 왕이신데, 우리는 오늘 무슨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는가요?
내가 예수님께서 해 주시기를 원하는 요구가 있어서
나의 계획이 있어서, 아마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원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요구, 우리의 필요,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우리의 근본적인 영혼의 문제, 우리의 근본적인 뿌리가 되는 그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서
오늘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네가 그토록 원하지만, 그것이 너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지금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사람들은 일주일도 안 돼서 그들의 태도가 돌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정치적인 독립을 이분이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주시지 않고, 십자가를 향해서 가시는 그 모습을 보고,
이 사람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돌아섰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혁명들이 있고, 그 혁명이 끝난 후에 또 다른 혁명이..
또 다른 혁명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혁명은 불완전한 상황에서 시작하기에,
처음에는 그 혁명이 괜찮아 보였지만, (혁명이 성공한 경우에는)
결국에서 그들 혁명가들의 욕심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세월이 가면서 또 다른 혁명이 필요한 그 시점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 마카비 그가 혁명을 일으켰고, 그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의 이름은 ‘하스몬 왕조’였습니다.
그런데 채 80년이 못 되어, 그 나라는 부패하기 시작했고 BC 142~63
그래서 로마에게 점령을 당했고, 새로운 혁명이 필요한 그 시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주2)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의 어떤 혁명도, 완전하게 우리를 세울 수 없고,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혁명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한 가지 혁명,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내 내면에서 일으키시는 그 놀라운 혁명,
나를 완전히 뒤집으시고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드시는 이 혁명만이
우리 주님께서 하실 일이고, 우리가 주님 앞에 굴복하며 그를 경배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이제 이 많은 군중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들과 함께 어디로 가십니까?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유다 마카비가 올라갔던 바로 그 길을 따라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제 때가 왔나 보다...’ 일부 백성들은 아마 무기도 준비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무기를 가지고 싸우실까?’ 그들은 기대해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전산으로 올라가셔서,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무기 하나를 만드셨습니다.
그 무기는 칼이 아니라,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어요.
‘저 채찍으로 어떻게 로마를 물리칠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순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21: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예상치 않았던 일을 지금 예수님께서는 벌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주둔한 로마 군대를 다 내쫓을 줄 알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고
장사하는 상을 다 뒤집어 엎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몇 군데 구역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이방인의 뜰’이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온 이방인들이, 그곳에서 예배할 수 있는 구역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이방인의 뜰’을, 이 유대인들이 다 차지하고, 시장이 거기에 열렸어요.
지금 유월절 명절 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성전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몰려들었어요.
그러면 그곳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제사에 필요한 짐승을 팔고, 성전세를 내기 위해 돈을 바꿨습니다.
사람들은 먼 곳에서 성전까지 제물인 양이나 소를 끌고 오는데,
그건 ‘흠이 있다’고 판정해서, 제물로 부적격 판정을 내립니다.
그러면 원래 시세보다 훨씬 더 비싸게,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서 파는 제사용 가축을 사고,
성전세를 내는 화폐로 환전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실 당시, 성전 뜰의 환전상들은 유대인 순례자들이 가져온
이방 화폐(로마의 데나리온, 헬라의 드라크마)는, 우상이 새겨져 있어서 쓸 수 없고,
성전에서만 통용되는 ‘두로의 은전(Tyrian Shekels)’으로 환전해 주었습니다. 주3)
이 과정에서, 성전을 장악한 사두개인(집권층)들이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강도요, 도둑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래는 구스타브 도레가 그린 성전을 청결하게 하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그날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어요?

마21: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내 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막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사56:7)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방인, 로마인들을 다 내쫓기를 기대했지만,
그들을 내쫓는 대신에, 유대인들을 다 내쫓고, 그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고,
성전 지도자들을 다 내쫓고, 비운 후에
그 자리를 유월절에 모인 이방인들에게 돌려주었고,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예수님에 대한 큰 물줄기가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아뿔싸, 아니구나!’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호하던 그 사람들이, 그 환호하는 물줄기가 틀어지면서,
몇 시간이 못 되어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며칠이 못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지르며, (기대가 컸기에 실망이 컸을 겁니다)
결국 5일째 되던 날, 군중의 요구를 민란이 날까봐 두려워서
뿌리치지 못한 빌라도에 의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됩니다.
※참고로, 예수님 당시(1세기) 예루살렘 성은 다윗 성, 상부 도시, 하부 도시,
그리고 헤롯이 확장한 성전 구역을 포함하여 약 1~1.5 제곱 킬로비터 크기였죠.
사방의 성벽 둘레는 약 4~5km 이며, 현재의 구시가(Old City)와 비슷하거나 약간 작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빽빽하게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면,
모두 몇 사람이나 들어갈 수 있을까요?
1제곱 미터당 4명으로 계산하면, 4백만 명입니다.
거기에 성전과 헤롯 궁이 있었고, 그런 건물들 넓이를 빼면,
1백만은 모여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신약시대에는 ‘우리 각자가 성전’이 되었습니다. 고전3:16. 6:19
우리 각자 마음 속에 있는 성전에는
‘소나 양을 파는 장사치, 돈 바꾸는 환전상’ 등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 타고 들어가셔서,
왕으로서 제일 처음 하신 일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하신 일이었습니다.
이 종려주일에, 우리 각자의 마음 성전이 정결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 원합니다.
나 스스로 깨끗하게 정화하지 않으면, 회개해서 그걸 치우고 청소하지 않으면,
이제 주님은 채찍을 들어서, 휘두르실 것입니다.
주님의 노끈 채찍을 맞기 전에, 나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정화해야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호산나!’ (‘내 소원 들어주세요’ 하고) 소리 지르지 말고요.
◑3. 예수님은 치료자이시다
예수님이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첫 번째 하신 일은, 성전을 청결케 하신 일이었고,
이어서 두 번째 하신 일은, 병든 자들을 고쳐주신 일이었습니다.
마21: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맹인과 저는 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왔고,
성전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중요한 문구가 있습니다.
‘성전에서’ in the temple 라고 돼 있습니다.
‘성전에서!’ 이건 굉장히 놀라운 사건이고, 일어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맹인과 저는 자들은 성전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레21:18 ‘누구든지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곧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이 규정을 유대인들은 목숨처럼 지키고 있어요.
우리가 아는 대로 성전 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던 맹인,
성전 문 앞에 앉아서 걷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있었지만,
성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고쳐주셨어요.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전 밖에 그들이 있습니다.
‘얘들아, 이리 오너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본 ‘치유 사역’ 직전에 일어난 일이, ‘성전청결’ 사역이었고,
그 사역이 벌어진 곳은 ‘이방인의 뜰’이었습니다.
그러니 본 절의 ‘치유 사역’ 역시 ‘이방인의 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봅니다.
‘성전에서 in the temple’라는 말은, ‘이방인의 뜰’로 포함하니까요.
이방인의 뜰(Court of the Gentiles)은 예루살렘 헤롯 성전 경내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넓은 마당입니다.
어쨌거나 예수님은 ‘성전을 청결'하신 일로 끝나지 않으시고,
그곳에서 ‘죄인으로 취급받았던’ 맹인, 다리 저는 자들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행3장에 미문 앞에서 구걸했던 ‘앉은뱅이’도, 이방인의 뜰에 앉아있었던 것입니다.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던 미문
그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몸으로 보여주신 거죠.
▲오늘도 우리가 ‘성전을 청결케 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그저 ‘먼지를 털어버리고, 오물을 꺼집어내서 버린다’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성전의 실질적 의미인 ‘만민이 기도하는 집, 만민의 성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맹인, 다리 저는 자들’을 고쳐주심으로써
‘성전 청결’을 완성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나는, 내 마음 속 성전에,
‘저 사람은 안 돼, 저 사람은 들어올 수 없어, 저 사람은 거부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우리 마음의 성전에 초대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하는 우리가, 마음속 깊이 생각해 봐야 되는 문제입니다...
다리 저는 자들, 보지 못하는 자들, 나병 환자들, 그래서 가난한 이 사람들은
유대교가 부정하다 생각하며, 그들과 상종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가치를 너무나 하찮게 보고, ‘너희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야,
너희들은 성전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야’ 라고 배척하고 무시하고 버렸던 그 사람들!
그들을 예수님께서는 다 모으셔서, 불쌍히 여기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한 가지 교훈이 있는데,
우리들은 사람들에게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라벨 label을 붙인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 없는 사람과 상종하지 않아요. 이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접촉해야 될 사람과 하지 않아야 될 사람을 나누고, 그들을 멸시하고 무시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왕으로, 해방자로, 치유자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사람을 다 은혜로 환영하십니다. 그 모든 사람을 다 초청하십니다.
그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잔치로 초청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 모든 사람, 저는 자들, 말 못 하는 자들, 보지 못하는 자들,
이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께 초청되어, 이제 그날 그곳에서 다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부르시고 고쳐주셨어요.
▲마치는 말
오늘 우리는, 매년 맞이하는 ‘종려주일 Palm Sunday’를 맞이했습니다.
‘그저 연례행사려니...’ 하고 아무 의미 없이 보내버리겠습니까?
위에서 그 의미를 세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1) 나는 혹시 예수님께, 엉뚱한 목적으로 ‘구원하소서 지금(호산-나)’ 외치고 있지 않나요?
2) 종려주일에 예수님은,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내 마음 속 성전을 돌아보고, 먼지를 털어내고, 청결케 해야 될 시점입니다.
내가 누구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그 집에 먼지가 가득하고, 쓰레기가 여기 저기 널려있다면,
당장 그 집을 떠나 나가고 싶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죠.
내 마음속 성전에 여러 더러운 먼지들이 많다면, 오래 머물러 계시려 하지 않으실 것이고,
또한 불편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3)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하신 또 한 가지 일은,
병자들을 성전에서 고쳐주신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천대하고, 죄인 취급하고, 가까이 하기를 꺼려했던 사람들을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들도 역시 ‘만민이 기도하는 성전의 주인공’이라고 인정해 주신 셈입니다.
오늘 나는, 내 마음속에서 누구를 배척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의인’들을,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성전(하나님 나라)에서 내쫓으실 겁니다.
.......................................
주1) 시대사조가 그려내는 일부 극단적인 ‘예수님 상’
히피 시대 (1960~70초반)가 지나가면서,
히피들 중에, 예수님을 히피로 표현하던 때도 잠시 있었죠.ㅁ
지금 이 시대는 아주 극심해서 PC주의 (Political Correctness,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장애 등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언어·행동을 교정하려는 사회적 운동)가 활발해 지면서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치 동성연애자처럼 표현하고 있고,
예수님을 이 시대 문화를 통해서 보고, 그리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 파리 올림픽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
파리 올림픽은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면서, 동성연애자 혹은 그를 지지하는 어떤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화가 주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평가입니다.
우리는 그런 평가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되어서는 안 되고,
성경이 예수님을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그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할 때,
그 예수님의 그 모습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굉장한 변화를 주고
신앙생활에 큰 힘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2) 하스몬 왕조의 주요 몰락 원인
-치열한 왕위 계승 내분: 샬로메 알렉산드라 여왕 사후, 아들인 힐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루스 2세가 왕위를 두고 골육상쟁을 벌이며 국력을 소모했습니다.
-로마의 개입과 통치력 상실: 내분 중 양측이 모두 로마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대를 로마의 영향력 하에 두었습니다.
-지도부의 헬라화와 신앙적 타락: 초기 마카비 혁명 정신을 잃고 헬라 문화를 수용하며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지지를 잃었습니다.
-헤롯 가문의 등장: 이두매(에돔) 출신의 헤롯 안티파테르가 로마와 밀착하여 세력을 키우고,
결국 기원전 37년 헤롯 대왕이 예루살렘을 차지하며 하스몬 왕조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주3) 성전에서 교환한 화폐
1) 환전의 목적 (성전세): 20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은 매년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납부해야
했는데, 이방인의 우상이 그려진 로마 돈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성전세로 낼 수 없었죠.
2) 교환된 화폐: 은 함량이 높고 순도가 보장되는 두로에서 발행한 은화(세겔, 반 세겔)가
성전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행자들이 가져온 외국 돈을 이 두로 은전으로 바꿔야 했어요.
3) 환전상의 부패: 환전상들은 이 과정에서 부당한 높은 환전 수수료를 챙겼으며,
성전 지도자들과 결탁하여 폭리를 취했습니다. 즉, 환전상은 이방 화폐를,
성전에서만 쓸 수 있는 '종교적 화폐(두로 은전)'로 바꾸어 주며 폭리를 취했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