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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6장 유다: 제자였으나 결국 십자가를 떠난 사람

LNCK 2026. 3. 31. 17:13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고난주간>     출처

 

◈유다: 제자였으나 결국 십자가를 떠난 사람       마26:14-16        2026-03-30 고난주간특새1

 

이번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십자가를 만난 일곱 사람”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7명이 만난 십자가는 동일한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 앞에서 보인 반응은 전부 달랐습니다.

 

십자가는 어떤 것이냐면, 십자가 앞에 섰을 때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영혼의 거울입니다.

 

우리가 그냥 좋을 때 예수님을 믿는 것 하고,

십자가 앞에 나를 세워 놓을 때, 반응은 완전히 다른 반응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볼 그 일곱 명의 인물이,

바로 우리에게 그와 같은 사실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갓난아기 이었을 때, 그 아기 예수를 바라본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보고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합니다.

 

눅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시므온이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보자, 마리아에게 아기 예수에 대한 예언을 남깁니다.

그 첫 번째는 무엇이냐면 ‘또 칼이 네 (마리아의)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즉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지금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칼’은 작은 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용 칼을 말합니다.

뚫고 관통하여 지나가는 칼을 말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아니 어떻게 그 앞에서 멀쩡하게 서 있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 지금 예수의 죽음에 대한 마리아에 대한 반응을, 지금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무엇을 말하고 있냐면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십자가에 또 다른 기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그 십자가 앞에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드러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무엇이냐면, 영혼의 거울, 영혼의 내시경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십자가 앞에 선 예수를 바라보자, 그 사람들의 반응이 각기 달랐습니다.

 

누구는 예수를 팔고, 누구는 도망치고, 누구는 슬퍼하고, 누구는 조롱하고...

반대로 누구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평상시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를 보고 판단하는 모습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7명이 인물들이, 십자가 앞에서 각기 다른 반응을 보고 있는데,

7명의 모습이 우리 안에 조금씩 남아 있습니다.

 

이 고난주간을 통하여 우리가 다시 한번 십자가 앞에 우리를 세워 놓고,

우리는 그 십자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 영혼을 살펴볼 수 있는 복된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볼 사람은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제자였지만 결국 십자가를 떠난 사람의 대명사가 됩니다.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죠. ‘유다는 왜 그랬을까? 유다는 왜 예수님을 팔았을까?’

 

▲만약에 이 땅 가운데, 누군가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조건이 있다고 한다면,

유다가 그 중에 첫 번째 인물이 될 것입니다.

유다는 정말 많은 영적인 자원을 누린 사람이었어요.

 

1) 첫 번째, 그는 직접적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사건을 보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풍랑을 잔잔케 하는 기적, 달리다굼의 역사,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모든 이적을 그는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모든 구원 사역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2) 두 번째 그는 예수님의 최고의 가르침을 직접 귀로 들었습니다.

산상수훈의 그 아름다운 설교 말씀과, 탕자의 비유, 천국의 비유,

제자도, 십자가의 구속에 대한 모든 설교를.. 그는 직접 들었습니다. 그런 특권을 누렸죠.

 

3) 세 번째 그는 직접 주님께서 주신 권능을 가지고 권능을 행했어요.

 

눅9:1~2 ‘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로 부르신 다음에, 그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벙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어요. 제자들은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눅9:6을 보니까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유다 역시 예수님께 주신 권능을 가지고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 때 귀신을 내쫓고 병도 고쳤어요.

 

4) 네 번째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녔어요.

그분과 함께 먹고 자고 걷고 사역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누구보다 제자됨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이런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그 기적의 현장을 직접 볼 수만 있었다면,

우리가 정말 그 말씀을 직접들을 수만 있었다면,

우리가 직접 그 현장에서 주님께서 주신 그 권능을 직접 받을 수만 있었다면,

우리가 주님과 3년 동안 함께 머물 수 있었다면,

우리의 지금 신앙 생활이 지금보다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혹은 물론 가룟유다처럼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근데 유다는, 그 모든 영적인 자원을 누렸던 사람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팔아 버립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유다의 모습을 통하여, 두 가지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1. 첫 번째는, 가장 가까운 자리가 가장 위험한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은혜의 현장 가운데 가까이 있다고 하여서, 믿음이 꼭 깊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유다가 이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지만, 결국 주님을 팔아 버립니다.

좋을 때는 다 좋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흥분될 수 있습니다.

권능을 행할 때는 내가 뭔가 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가 문제가 아니라, 십자가 앞에 섰을 때, 십자가가 주어졌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다는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녔어요.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멀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로 결정한 그 계기가 되는 사건이,

오늘 본문 사건 바로 앞에 등장합니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가지고 나와 예수님의 발에 붙습니다.

 

이 모습 보고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내 장례를 준비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를 직접 알고 준비했는가는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렇게 평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의 그 행위는, 선지자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죠.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선지자적인 행동으로, 향유 옥합을 부었어요.

그 아름다운 헌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그 현장 가운데, 유다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요12:4~5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그는 지금 ‘낭비’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 대한 구제의 마음이 큰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그의 말은 탐심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요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그의 말은, 탐심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그는 예수님의 선교단에서 회계를 보고 있었어요. 그만큼 그는 신뢰를 받는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예수님 곁에 있으며, 주님과 함께하고 있는 제자였지만

결국 예수님을 따라가는 동기가 달랐던 것입니다.

 

마리아와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누군가(마리아)는 선지자적인 혜안으로, 향유옥합을 부어 그 장례를 준비하고 있는데,

누군가(유다)는 그 현장에서, 스승을 팔아넘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탐내고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두 사람이 예수님이 죽음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 사람은 예수님을 팔아 버림으로 죽음을 계획하고 있고,

한 사람은 그 죽음 이후에 장례를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유다는 마음이 완전히 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집을 나가자마자, 오늘 본문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을 찾아가 예수를 팔아 버릴 방도를 함께 고민합니다.

*자기 청춘을 바쳐서 3년동안 예수를 따라다닌 대가(임금)라고 건지려 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유다는 정말 왜 예수님을 팔아 버렸을까요?

그가 예수님을 대하는 호칭에서 우리가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전체를 통하여 유다는 한 번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어요.

찾아보십시오. 주님 보다 ‘랍비’라고 부릅니다. 랍비는 스승이죠.

그는 주님을 따라간게 아니었어요. 그는 주님을 스승으로 여겼습니다.

 

인간으로 여겼어요.‘이 사람을 따라가면 무언가 민족의 해방이 있을 것이다’

‘기적을 베풀어서 뭔가 사람들을 규합하고 필요를 채워줄 것이다’ 라는 기대를 가지고

주님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당신이 죽는 이야기, 십자가 이야기’ 이런 말씀을 가르치니까,

거기서 유다는, 그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한 명이 나를 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제자들이 놀라서 묻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죠?’ 이렇게 ‘주님 Lord’ 이라고 불렀어요.

마26: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그런데 그때 유다는 이렇게 말해요.

마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22절과 25절을 비교해 보십시오.

모든 제자가 ‘주님 Lord’이라고 말하는데, 유다는 그 현장에서도 ‘랍비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팔아 넘길 때, 그 배신의 키스를 남길 때도 랍비라고 말해요.

마26: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유다는 왜 이와 같은 엄청난 배신을 저지르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주’로 여기지 않고, ‘랍비’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한 번도 주님으로 믿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지만, 동기가 달랐던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왜 따라갑니까?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분명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직 주님 Lord으로 바라보고,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십자가와 우리 사이에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어떤 육신적, 세상적 동기로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단순히 선생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단순히 상담사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의사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뒷배를 봐주시는 어떤 분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와 우리 사이에 십자가만 놓여 있어서

오직 주님으로 그분을 모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C T 스터드 선교사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을 위해 내가 드리는 어떤 희생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헌신을, 헌신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셨고, 나의 유일한 주님이신데 말이죠.

이게 깨지면.. 모든게 아까운 거예요.

 

마리아는 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향유옥합을 깨어 드렸지만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유다는 아까웠습니다. 자신이 주님께 드린 3년 간의 세월이 너무 아까웠어요.

그러니까 팔아 버리는 겁니다. 자기가 잃어버린 세월에 대해, 본전이라도 찾으려했던 걸까요?

주님과 우리 사이에 오직 십자가만 놓여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로, 유다는 예수님을 판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을 판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지 않았어요. 자기 자신을 팔아 버린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에, 제사장을 찾아가 흥정합니다.

마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보십시오. 여러분 유다는 흥정을 잘 하는 사람이었어요. 가서 예수님을 두고 흥정합니다.

이때를 보십시오.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예수님 앞에서는 그나마 ‘랍비여’ 라고 말을 했는데,

그 현장을 떠나자 그냥 이름이 나옵니다.

‘예수를 넘겨줄 텐데 얼마를 주겠느냐?'

예수님을 두고 지금 흥정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흥정한 값이 얼마냐면 은 30개이었어요.

은 30개는 당시 노예 한 명의 몸값입니다.

  

그것으로 그는 자신의 영혼을 판 거예요.

그것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판 겁니다.

 

그는 세상의 시간에서는, 얼마간의 돈을 번 이득을 본 사람처럼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하늘의 법정에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거예요. 영혼의 파산을 맞이한 것입니다.

 

주님을..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따라다니던 사람이었지만,

결국 십자가가 눈 앞에 주어지자

그는 그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이익을 얻기 위하여, 주님을 팔아 버린 거죠.

 

그러니 은30은 그 영혼에 대한 영수증입니다. 사실은 자기 영생, 자기 영원의 값이었죠.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

또한 나아만 장군의 선물이 탐이 나서, 나아만의 나병이 옮겨버린 게하시가 생각납니다.)

 

그는 그렇게 영원히, 예수님의 팔아버린 사람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주님을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가운데 조그만 그 이익이 있다고 하여서,

주님을 그 순간에 넘기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반면에 주님은 끝까지 유다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유다가 정말 돌아오기까지, 주님은 끝까지 그를 기다렸어요. 세족식을 행하십니다.

 

여러분 어떻게 지금 바로 흥정하고 돌아온 제자의 발을 닦아줄 수가 있을까요?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벌써 마귀가 생각을 집어넣었어요. 이미 집어넣었습니다.

주님께서 알고 계셨어요. 이 현장이 세족식의 현장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정말 아프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고 있지만,

주님은 정말 누구의 발을 정말 열심히 닦아 주기를 원하셨을까요? 유다입니다.

 

‘네가 정말 깨끗해졌으면 좋겠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 세족식을 행하고 있는 거예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3:10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아셨어요. 다 아시면서도 지금 유다의 발을 닦아주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깨끗한 것은 아니다.’

 

이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혼내키려고요?

아니에요. 그가 돌이키기를 원하여서, 계속해서 지금 싸인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제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유다는 그때도 돌이키지 않아요. 주님께서 마음이 너무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아예 직접적으로 말씀하세요.

요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예수님의 심령이 정말 괴로우셨어요. 그렇게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정말 괴로우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

‘제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때 제자들이 놀라서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2

 

그때 유다는 ‘랍비여, 저는 아니죠?’ 라고 묻습니다. ↓

그는 지금도 예수님을 속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예요.

 

마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유다는 예수님을 ‘랍비 (사람)로 보니까, 내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자기가 지금 제사장을 만나고 온 것을 모른다고 믿으니까, 지금 이렇게 나오고 있는 거예요.

 

주님께서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요13: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떡 한 조각을 (올리브 유에) 적셔서 결국 유다에게 주십니다.

그 떡을 받는 동안에도 유다는 돌이키지 않아요.

그 순간에 성경은 다음처럼 기록하고 있어요.

 

요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요13:2절 말씀에서는 ‘마귀가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직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럴 수 있어요. 우리 안에 잘못된 생각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마귀가 팔려는 생각을 넣었어요.’ 아직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떨쳐버려야만 합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그 생각을 물리쳐야 돼요.

그런데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는데도, 그 생각을 떨쳐내지 않다 보니,

마귀에게 완전히 장악이 된 것입니다.

요13:27절에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장악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잘못된 생각이 들어오거든.. 그 생각과 싸우십시오. 그 생각을 품지 마세요.

떨쳐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생각에 내가 장악이 됩니다.

 

결국 유다는 그 잘못된 생각에 장악되어, 예수님을 팔아 버립니다.

하지만 나중에 깨닫게 되어... 그때도 돌아올 수 있었어요. 그러나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는 여전히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있지 않아요.

그냥 내가 존경했던 랍비 정도... 그러니 돌아오지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진짜 주님으로 모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주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다 알고 계셨어요. 계속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속일 수 있습니까? 속일 수 있다 라고 생각하면

속일 만한 일들을 행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 순간에 진짜 우리는 우리 영혼을 돌아봐야만 합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을 속일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유다가 우리에게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어쩌면 이 고난주간의 예배 시간이

우리에게 찾아온 또 다른 기회의 시간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때라도 주님만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내가 주의 전에 가까이 있다는 이것 자체로, 내 영혼이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나사이에 십자가 외에, 다른 것(야망, 축복, 소원성취)이 보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가 유다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길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시금 돌 같은 내 마음을 깨뜨려 주시고, 영적인 민감함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 마음으로 복된 한 주간(고난주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