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값 보존의 법칙 롬6:23, 마5:10 2019.04.19.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기념하는 고난주간 중에서 특별히 성금요일이죠.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과 십자가를 돌아보면서 기념하고,
또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날입니다.
죽음과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부활절에 부활에 대한 설교를 하겠지만,
저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하나님의 계획과 또 하나님의 신비가 있습니다.
복음이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에 들으면 굉장히 단순한 것 같고,
그런 단순한 걸로 구원을 얻는가? 합니다.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을, 단순하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좀 너무 쉽잖아요. 너무 쉽고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그렇게 쉽고 단순한 걸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게, 오히려 믿기 힘든...
아주 단순한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것들을 하나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이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고, 다 설명할 수 없는 무한한 하나님의 지혜와,
무한한 하나님의 계획들이 그 안에 담겨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이 ‘죽음과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제가 지난 박희O 집사님 장례 예배 때도 잠깐 그 말씀을 나눴는데,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지 못하도록 지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이야기는 뭐냐면, 영생하지 못하고 죽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거죠.
그래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물론 죄의 삯이기 때문에 저주지요. 저주이지만,
이 죽음 안에는 그 저주마저도, 저주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계획이 숨어있다고 하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됩니다.
◑인간의 고통은.. 죄의 결과이다
사실 여러분 이 타락한 인간에게는 고통이 있습니다.
또 죄의 삯은 여러 가지 고통들이기 때문에,
이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의 문제들,
또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삶의 불완전함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고통과 불안전함을 영원히 계속 가지고 산다면,
그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든 인생이겠어요?
하나님께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통과하게 하시면서,
이 모든 불안전함들과 이 모든 죄의 삯들을 거기서 끝내게 하시고,
부활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계획이고 신비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십자가, 또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 더 살펴보면서,
그 안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신비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의 그 십자가의 신비와, 십자가의 능력들을
다시 한번 누리게 되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삶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종류의 고통이 있죠.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아프게 되는 육체의 고통도 있고,
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렇게 겪게 되는 고통도 있고,
또 사람하고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힘들게 하는 그런 고통도 있고,
또 원하던 꿈이 이루어지지 않고 좌절됨으로 겪게 되는 고통도 있고...
우리 삶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고통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통의 이유는 다양할 수 있는데, 사실 이 고통의 가장 밑에, 가장 근원에
내려가 보면.. 모든 고통은 한 가지로부터 기인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죄예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고통 속에 살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어요.
복을 주시고, 인간이 항상 행복하고, 항상 기쁘고, 항상 충만함 가운데 살도록
그렇게 디자인하셨지, 인간의 삶 가운데에 고통이 존재하도록 만드시지 않았다는 거예요.
창조 때부터 고통이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 가운데, 고통을 디자인하신 적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삶 가운데 왜 고통이 들어오게 됐습니까?
죄 때문에 들어오게 된 거죠.
그래서 모든 종류의 고통의 기원에 내려가 보면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천국을 뭐라고 묘사하냐면, 더 이상 고통이 없는 곳이라고 묘사합니다.
고통이 다 사라진 곳을, 천국이라고 묘사한다는 거죠. 맞아요.,
여러분 어떤 종류의 고통이든... 그것이 질병이든, 아니면 경제적인 것이든,
사람과의 관계든, 표면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든...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재정적으로는 사기를 맞아서 그럴 수도 있고,
육신의 질병은 바이러스를 누구한테 옮마서 그럴 수도 있고...
표면적인 이유는 다를 수 있지만, 근원적인 이유는
하여간 그런 어떤 종류의 고통이든지 고통이 들어오는 것은... 죄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종류의 고통을, 우리 가운데 의도적으로 만드신 적이 없다는 거예요.
결국 죄가 우리 삶에 고통을 줍니다.
◑그런데 이 고통이 들어오게 되는 죄의 경로를 보면, 대충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는 내가 지은 죄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이 있습니다.
모든 고통은 죄로부터 오는데, 내가 지은 죄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이 있어요.
모든 죄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도록 하셨고, 또 의로우신 분이세요.
그래서 ‘죄를 지었는데 아무런 대가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하고 어긋납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공의로우신 분, 의로우신 분, 정직하신 분,
무엇을 심든지 간에 그 심은 것대로 거두도록 하시는 게 하나님의 속성이에요. 그렇죠?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세요. 그래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심으면 심은 것에 대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에요.
잘 이해하셔야 돼요.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을 심든지, 그 심은 대로 거두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에요.
그래서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오거나... 이럴 수 없다는 거예요.
죄를 심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거나... 이럴 수 없다는 거예요.
그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도 이어받아서 알고 있기 때문에,
죄를 심었는데 좋은 것이 나온다... 그러면 아마 여러분은 분노하실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죄를 심으면, 나쁜 것을 심으면.. 나쁜 결과를 거두게 돼 있고,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결과를 거두게 돼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론 꼭 그렇지는 않죠.
나쁜 것을 심었는데도,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나오기도 하고,
또 반대로 진짜 좋은 것을 심었는데도, 재수없게 아무것도 못 거둘 수도 있고 이래요.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지만, 그것은 죄로 인하여 이 세상이 타락하고 왜곡된 것이지,
하나님의 원래 성품을 반영하는 건 아니에요.
이 하나님의 원래 성품은 ‘무엇을 심든지 그 심은 대로 거두도록’ 되어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 조심하셔야 될 것은,
여러분이 무슨 죄를 범하시든지 간에, 그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어떤 죄든지 간에, 우리들이 죄를 저지르게 되면 그 죄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는,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내가 겪게 되는 고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먹는 것을 절제하지 않고, 막 먹고 운동도 안 하고, 이렇게 부절제하게 살았어요.
그러면 어떤 고통이 따라오지요? 건강이 안 좋아지겠죠.
그런 것은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입니다.
또 도둑질을 했어요. 그래서 경찰에 잡혀가서 감옥에 들어갔어요.
이것도 뭐예요?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내가 겪게 되는 고통입니다.
또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이웃과 다투게 되면, 친구를 잃게 되는 고통이 있을 것이고,
또 바쁘다고 자녀들하고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나중에 여러분이 늙었을 때, 자녀들이 여러분과 시간을 안 보내줄 거예요. 바쁘다고!
이렇게 내가 잘못함으로 겪게 되는 고통이 있습니다.
▲2. 두 번째 종류의 고통인데, 이건 뭐냐면
다른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에 내가 겪는 고통이 있습니다.
세상은 여러분, 내가 잘못한 것을, 그 대가를, 꼭 내가 치르는 게 아니에요.
내가 잘못했는데, 다른 사람이 대가를 치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잘못했는데, 내가 대가를 치르기도 합니다.
뭐 대표적인 것이 음주운전하는 차에 재수없이 치이는 거지요.
그럼 죄는 누가 진 거예요? 음주운전하는 놈이 나쁜 놈이지요.
그렇지만 대가는 엉뚱한 사람이 치를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죄의 아주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죄는 여러분 꼭 내가 잘못했다고 해서, 내가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한 죄의 대가가, 이 사람 저 사람, 이 곳 저 곳을 떠돌면서
전혀 다른 사람한테 고통을 치르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고통을 치르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지은 죄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3. 세 번째 종류의 고통이 있는데, 이 고통은
‘내 잘못 네 잘못이 아니고, 우리의 죄 때문에 같이 겪는 고통’이 있습니다.
공동의 죄 때문에, 공동으로 겪는 고통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환경오염이죠.
또 환경오염뿐만이 아니라, 왕따나 동성애나 이렇게 잘못 만들어진 문화...
잘못 만들어진 문화는, 어떤 한두 사람이 만든 건 아니지요.
굉장히 여러 사람이 같이 ‘그것을 옳다’고 해서 만들어진 문화인데,
그 문화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함께 고통을 겪게 되는 이런 결과들도 있죠.
또 전염병이라든지, 전쟁이라든지, 무분별한 핵개발이라든지 이런 것들...
또 유전자 조작을 하는데,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어간다든지...
이런 과학의 폐해에 이르기까지, 어떤 한두 사람의 죄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저지르는 죄 때문에, 인류가 함께 고통받게 되는 그런 죄들도 있습니다.
◑죄값 보존의 법칙 *설교자가 만든 말
자 그런데 어떤 죄인지를 불문하고, 내 죄든 다른 사람의 죄든,
우리 공동의 죄든지 간에,
죄에는 아주 중요한 아주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죄값 보존의 법칙>이 있다는 거예요.
consequence of sin, 죄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고, 그걸 가지게 된는 뜻이에요.
기억하세요. 여러분, 죄값 보존의 법칙!
이게 뭐냐면 죄는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거예요.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거예요.
결과가 없는 죄는 없다는 거예요.
그것이 내 죄든, 다른 사람의 죄든, 우리 공동의 죄든
하여간 죄는요. 반드시 결과가 있어요. 이것이 뭐냐면 하나님의 공의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속성 때문이에요.
이것은 사실은 죄뿐만이 아니라, 선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에
사실 하나님은 죄를 심는 것을 허락하신 적은 없어요.
죄를 심는 것을 허락하신 적은 없고, 의를 심으라고 항상 말씀하고 계시지만,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주로 죄를 심게 되죠.
그런데 죄를 심든, 의를 심든, 콩을 심든, 팥을 심든지 간에,
하여간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을 심든지 그것에 대한 결과를 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세요. 그것을 우리가 ‘하나님은 공의롭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이 하나님의 속성으로 인하여 죄는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consequence of sin
그래서 저는 이것을 <죄값 보존의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죄는 값이 있는데 이 값은 항상 보존된다는 거예요.
물리학에 여러분 유명한 법칙 있죠? 에너지 보존 법칙!
에너지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기름이 있습니다.
기름이 있어서, 기름을 태워서 자동차가 굴러가게 되죠.
기름을 차에다 놓고 거기다 불을 붙여서, 실린더에서 팡팡 태워서 자동차가 굴러가게 되는데,
이 기름을 에너지로 환산해보고, 자동차가 달리는 에너지를 환산해보면,
기름 에너지를 100%를 자동차가 다 쓰고 있는 게 아니에요.
실제로 기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가 100이라면,
이걸 팡팡팡 터뜨려서 굴러가는 자동차를 계산해보면 한 50%, 60%밖에 에너지를 안 써요.
‘그러면 나머지 40%, 50%의 에너지는 없어졌나 보다’
그런데 사실 없어진 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눈에 보지는 못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에너지들로 전환된 거예요.
예를 들면 기름을 태우는데 들어가는 자체 에너지부터 시작해서,
공기의 저항이라든지 아니면 마찰이라든지 이런 걸로 이제 소비되는 에너지까지...
하여간 기름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 다른 형태로 변환된 거죠.
그래서 이 에너지를 다 더해보면, 기름이 만들어내는 100이라는 수치가
똑같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에너지는 절대로 절대로 저절로 소멸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게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죠.
여러분, 죄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그 죄가, 죄가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죄의 결과들,
또는 죄의 에너지들이 있습니다.
에너지는 힘과 같은 건데,
죄가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있다는 거예요.
죄가 만들어내는 어떤 부정적인 것을 일으키는 힘이겠죠.
죄가 부정적인 것을 일으키는 힘, 또는 저주를 만들어내는 힘, 그런 힘들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무슨 죄든지 간에, 죄를 저지르게 되면,
그것은 저주를 만들어내는 힘을 만들어냅니다. 꼭 기억하셔야 돼요.
그 죄가 어떤 죄든지 간에, 여러분들이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거짓말의 결과는, 저주를 만들어내는.. 뭔가 힘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또 여러분들이 음란물을 봤다 그러면, 그 죄가 뭔가 부정적인 저주를 만들어내는..
힘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죄는 항상 부정적인 에너지, 부정적인 뭔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들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죄가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에너지예요.
그래서 오늘 설교에서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될 것 한 가지는,
어떤 죄든지 간에, 여러분들이 범하게 되는 죄는, 반드시 죄의 결과를 만들어내요.
죄의 에너지를 만들어내요. 저주를 가져오는 에너지를 만들어내요.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6:23
▲요즘 환경오염의 아주 큰 원수로 꼽히는 것 중에 하나가 경유차지요.
이 경유차는 붕붕하고 달릴 때마다, 시커먼 배기가스들을 팍팍 뿜어냅니다.
시커먼 것들을 팍팍 뿜어내요. 죄가 여러분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무슨 죄를 짓든지 간에, 죄가 한번 저질러지게 되면,
시커먼 매연이 푹푹 뿜어나오듯이, 부정적인 에너지가 푹푹 뿜어나와서,
이 세상 어딘가를 떠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고통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여러분의 삶에 꼭 고통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삶에 고통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또 당장 눈에 보이는 고통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그런 여러분이 만들어내는 그 시커먼 죄의 에너지들과,
또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만들어내는 죄의 에너지들이 모이고 모이고 쌓이면,
이 대기가 숨쉴 수 없는 아주 혼탁한 대기가 되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타락으로, 죄로 말미암아 숨 쉴 수 없는 혼탁한 세상이 된다는 거죠.
이것이 여러분 ‘죄의 결과들’이라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인간 세상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온 거예요.
아담과 하와 때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뿜어냈던 그 죄의 에너지들이 얼마나 많을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아담과 하하 때부터 만들어냈던 이 죄의 결과들...
한 번 죄를 지을 때마다, 시커먼 죄를, 저주를 만들어내는 에너지들이 푹푹 뿜어져 나오는데..
아담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류가 살아가면서 지었던 그 수많은 죄들을 생각해보세요.
그 수많은 죄들의 결과, 각각의 죄들마다 푹푹푹푹 뿜어져 나왔던
이 시커먼 매연과 같은 이 저주의 에너지들이, 어딘가는 쌓여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그 값을 치르지 않았다면, 이게 어딘가는 쌓여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숨막히는 공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한탄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서, 세상에 왜 이렇게 모순이 많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전쟁 같은) 이 악은 어디서부터 온 거지?’
‘아니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의인이 핍박을 받고,
저 나쁜 놈은 저렇게 잘 되고, 왜 이렇게 많은 모순들이 있냐?’
‘아니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렇게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왜 갑자기 암으로 죽지?’
뭐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 이게 어디서부터 온 거예요?
우리가 만들어낸 저주의 에너지들이, 아담부터 지금까지 만들어낸,
뿜어낸 그 수많은 이 저주의 에너지들이,
저주가 쌓이고 쌓이고 쌓인 세상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그 안에서 어떻게 맑은 공기를 기대하겠어요? 당연히 모순이 있는 거지요.
이게 세상이 타락한 결과라는 거에요.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여러분 이 <죄값 보존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죄를 짓게 되면, 이런 부정적인 에너지가 만들어지는데,
이 부정적인 에너지는 절대로 그저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없어져요? 누군가의 삶에 고통을 일으킴으로 고통을 만들어내고 나서
소멸되는 것이지, 그 전에는 절대로 그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랑 진짜 똑같아요.
그러니까 이 손이 이렇게 움직이는 운동에너지가 있어요.
그럼 이것은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탁하고 어ᄄᅠᆫ 물체에 부딪히면
손에게 아픔, 고통을 주면서, 충격 에너지로 바뀌는 거죠.
그러면서 이 원래 에너지가 소멸되는 거거든요.
손의 운동에너지가, 탁 하고 부딪히면서, 더 운동에너지는 소멸됐어요.
그럼 이 에너지는 어디로 간 거예요? 충격 에너지로 변환되면서, 소멸된 거죠.
그 충격 에너지 때문에, 내 손이 아픈 거예요.
죄의 에너지도 똑같아요. 어떻게 소멸되냐 하면,
누군가의 삶에 충격과 고통을 일으키면서, 비로소 소멸되는 거예요.
고통으로 변환되어 소멸되는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듯이,
꼭 내가 지은 죄를, 내가 소멸시키지는 않을 때도 있어요.
(즉 내 죄값을 내가 치르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 죄가 누군가의 삶에는 고통으로 작용해야만
비로소 없어진다는 거에요. 이게 여러분, 죄의 무서운 점이에요.
내가 지은 죄를, 내가 소멸시킬 수도 있지만 (내가 죄 값을 치름)
내가 진 죄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을 수도 있고, (타인이 죄 값을 치름)
아니면 우리가 공동으로 나누어질 수도 있는 거죠. (공동으로 치름)
또 어떨 땐 말이에요. 여러분 이것이 한꺼번에 소멸되지 않고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 쌓이다가
한꺼번에 팡 폭발하면서, 전쟁이나 대재앙 같은 것으로 폭발하게 돼요.
또 어떨 때는 우리 시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
그것이 어딘가 숨어 있다가, 먼 시간을 흘러서, 후손 때에 그 대가를 치르기도 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거예요.
이 에너지는 절대로 저절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절대로 저절로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누군가에게, 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랜 시간 동안 어디 이렇게 잠복되어 있다가, 숨어있다가,
한 100년쯤 지나서 후손 때에 빵 터지기도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떤 고통은,
우리가 만들어낸 게 아니고, 우리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뭔가 잘못해 놔가지고
우리가 겪고 있는 것도 있단 말이에요. 그렇죠?
이것이 하여간 죄와 고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보면 ‘네 번째 종류의 고통’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쉽게 말하면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자원해서 받는 고통이죠.
(자기 죄를 자기가 치름, 자기 죄를 타인이 치름, 공동의 죄를 공동이 치름
에 이어서 4번째)
이 네 번째 종류의 고통은 뭐냐면, 내가 심지 않은 죄인데,
이 죄의 결과를 내가 기꺼이 치르겠다고 선택해서 받는 고통이에요.
앞에 세 개의 고통하고는 좀 달라요.
앞에 세 개의 고통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에요.
그냥 죄가 저질러졌기 때문에, 나한테는 아무 선택권이 없이 그냥 고통이 온 거에요.
성경은 이것을 “의를 위해 받는 고난”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이 “의를 위해 받는 고난”은,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동성애를 예를 들어 봅시다.
동성애라고 하는 죄가 쌓이고 쌓여서, 사람들이 다 ‘그건 죄가 아니고 삶의 스타일이야’ 라고
얘기하는 이상한 문화가 만들어졌어요.
그러면 나는 그 안에서 고통을 안 받으려면,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면 돼요.
‘너희는 그냥 너희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나는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까, 이거를 모른 척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에요.
이걸 모른 척하게 되면,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되는 거고,
이것을 그냥 미뤄두고 미뤄두면,
그 죄에 대한 결과 consequence of sin 를 혹시 우리는 슬쩍 비껴갈 수 있어도,
우리 후손에게 다 떠넘기는 게 되잖아요.
그래서 경각심을 깨닫고, 내가 어느 순간 동성애에 대해 반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것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동성애는 성경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어떻게 돼요? 고난을 받겠죠.
우리 사회도 그렇고, 특히 미국 같은 데는 훨씬 더 심하겠죠.
이게 뭐예요? 여러분 고난을 피해갈 수도 있는데, 내가 선택해서 고난을 받겠다는 거예요.
우리 후손들, 또는 다른 사람이 겪을 고통을, 내가 알기 때문에
이것을 그냥 피해가면 나는 괜찮겠지만, 누군가는 이 고통을 감당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렇다면 내가 그 고통을 차라리 감당함으로써,
이 죄가 만들어낸 그 죄의 저주의 에너지를, 내가 그냥 소멸시켜버리겠다...
이게 ‘의를 위해서 받는 고난’이에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5:10
▲성경은 이런 고난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벧전4:15~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위 구절은, 두 종류의 고난을 나눠서 설명하죠.
살인, 도덕질, 악행, 남의 일에 간섭하는... 이런 고난은 웬만하면 피해가라는 거에요.
자기 죄로 말미암은 고난은 피해가라는 거에요.
그렇지만 ‘의를 위해서 받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고난’
이것은 그냥 기쁘게 받으라는 거예요.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또 마태복음을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5:10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난을 받는 자에게 복을 선포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짓지 않았어요.
그런데 내가 의지적으로 선택해서 십자가를 진다면...
하여간 내가 짓지 않았지만, 누군가 죄를 지었는데,
그 죄 때문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지금 만들어져서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어요.
아무도 이거를 소멸시키지 않으면, 쌓이고 쌓이고 쌓였다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든지, 아니면 쌓여서 미루어져서 후손 대에 가서 터질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 고통을 자원해서 감내함으로 소멸시키겠습니다.
그 부정적인 에너지를 제가 받아서 소멸시키겠습니다!’
이 고난은 기쁘게 받으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고난을 받는 사람은 뭐가 있다는 거예요? 복이 있다는 거예요.
왜요? 하나님은 갚아주시는 분이시거든요. 하나님은 갚아주시는 분이시거든요!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지은 죄를, 여러분이 값을 치르는 것은
거기에는 아무런 복도 없습니다. 그건 그냥 죄 짓고, 자기가 고생하고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내 죄가 아닌데, 내가 치르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자원해서, 내가 십자가를 지고 치르게 되는 의인의 고난에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쫓으라고 말씀하셨어요.
왜요? 그게 복된 길이니까!
◑예수님이 자원하신 십자가, 그 의로운 고난
자,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데, 바로 이 포인트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본질이 뭐냐?
이게 바로 ‘의를 위해서 받으신 고난’이라는 거예요.
맞아요.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고통입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모든 종류의 고통이 다 있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부터 시작을 해서,
그 내면에서 오는 고통스러운 것들, 수치스러움...
또 사람들이 배반했죠. 배반으로부터 느끼는 배신감 등 온갖 종류의 고통이 있었어요.
더군다나 하나님으로부터 죄 때문에 분리되어야 되는, 영적인 고통까지!
여러분, 십자가는 고통의 총합체입니다.
모든 종류의 고통이 다 십자가 위에 있었어요.
그렇다면 왜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죄의 결과인 고통을 치르셔야 될까요?
여러분, 모든 고통은 죄로부터 온다고 했어요.
그러면 예수께서 치르셨던 이 모든 종류의 고통도, 어디서부터 왔다는 거예요?
죄로부터 왔다는 거예요. 누군가의 죄로부터 왔다는 거예요.
어떤 건 분명히 이렇게 지목할 수 있는 누군가도 있어요.
본디오 빌라도라든지, 가룟 유다라든지... 그런 사람의 죄,
아주 구체적으로 그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지요.
그렇지만 어떤 것들은, 지목할 수 없는 죄들도 있어요.
아담 때부터 시작해서 쭉 쌓여져 내려왔던 그 인류의 죄,
그 죄들이 만들어낸 시커먼 매연 같은... 이 저주의 에너지들이 사방에 떠들고 있잖아요.
사방에 떠돌고 있는 이 죄의 에너지가,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을 만들어낸 거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가 만들어낸 저주가 다 소멸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죄와 저주는 어떻게 해야 소멸된다고 그랬어요?
누군가에게 고통을 줘야만, 소멸되는 거라고 그랬죠.
죄가 만들어낸 에너지가 있어요.
그러면 꽝!하고 누군가에게 그게 충격 에너지가 돼야지만 이게 멈추는 거에요. 이해가 되죠?
뭔가 저주의 에너지가 있으면 이것은 어딘가 충격을 줘서 고통이 돼야만 멈춰지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원리예요. 하나님의 속성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바라보시고,
이 수많은 죄들, 아담 때부터 지어오는 수많은 죄들이 만들어낸 저주의 에너지가
사방을 떠돌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아픔과 저주를 만들어내는 걸 보시고,
긍휼히 여기사,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모든 고통과 저주의 에너지를 다 소멸시킬 수 있는 길을 여신 거예요.
그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예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위에는 세상의 모든 죄가 다 얹어졌다고 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세상의 모든 죄가 얹어졌다고 했어요.
그 이야기는 뭐예요? 모든 죄가 만들어낸 이 저주의 에너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다 얹어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과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모든 죄들이,
죄가 만들어낸 구체적인 죄의 에너지들이 소멸되어버린 거예요.
▲제가 왜 ‘죄가 소멸됐다’고 얘기하지 않고,
‘죄가 만들어낸 에너지가 소멸됐다’고 얘기하는지.. 여러분 이 차이를 잘 아셔야 됩니다.
그냥 ‘죄가 소멸됐다’고 얘기를 하면, 추상적으로 우리가 이해를 해요.
‘아 우리가 죄인이라서 하나님 옆에 나갈 수 없었는데, 우리가 의인이 됐구나.
내 신분의 변화가 왔구나’ 그냥 내면의 변화로 생각을 합니다.
아니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런 추상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하는 얘기는,
단순히 우리를 죄에서 용서하셨다는 차원이 아니라,
죄가 만들어내는 모든 결과와, 죄가 만들어내는 모든 저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셨다는 뜻이에요. 이것은 완연한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이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예요. 단순히 여러분들을 죄인이라고 하는 신분에서부터 용서해서
의인을 만드는 종교적인 언어가 아니고, 종교적인 프로세스가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가 만들어낸 모든 결과들, 죄가 만들어낸 모든 저주들,
죄의 모든 능력들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해방케 하시는 능력이라는 거예요.
그게 예수의 십자가인 줄로 믿습니다.
이건 여러분, 사실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에요.
이건 정말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에요.
왜 예수 외에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냐면,
인간이 만들어낸 죄의 크기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주1)
아담과 하부터 시작해서, 예수님 때까지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에너지가 만들어졌을까
생각해 보세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몇 명일까 생각해 보세요. 수도 없이 많지요?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에너지들, 한과 원망과 미움과 분노가 만들어졌을까 생각해 보세요.
아담부터 지금까지, 또 앞으로 올 미래까지 인류가 지을 모든 죄,
그 죄가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에너지는, 여러분 어느 정도일 것 같으세요?
이 저주의 에너지는, 여러분 모든 인류를 다 지옥으로 몰아넣고도 남을 만큼 크겠지요.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겠어요? 모든 인류가 다 지옥 가고 끝내야 될 만큼,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부정적인 저주의 에너지를 만들었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이 어마어마한 저주의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고통은요.
여러분 이 고통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제가 이번에 미국에 갔었는데, 미국에서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집회를 하고 나서 월요일 오전에 시간이 조금 비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목사님하고 좀 교제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저를 영화관으로 데려가시더라고요.
<생일>이라는 영화였는데, 한국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영화였어요.
세월호에서 아들을 잃고 고통받는 부모와 여동생과 그 가족에 대한 내용이에요.
그런데 이 내용을 보는데, 너무 보기가 싫었어요.
왜냐하면 보는 내내 속이 쓰리는 거예요. 보는 내내.
이게 아주 섬세하게 묘사를 참 잘했어요. 영화가 아주 디테일하게 감정 묘사들을 하는데
그게 나중에 너무 싫어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안 봤어요.
한 사람의 죽음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을 쭉 묘사를 하는데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인 거예요. 설명할 수 없는...
그러면서 거의 미쳐가는 가족들... 거의 정상이 아닌 거죠.
그런데 보면은 ‘당연히 그럴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 저거는 정말 사람이 미치겠구나...’
그러니까 그 고통이 해결도 안 되고, 거의 정상적으로 살지도 못하고...
그걸 보면서, 제가 정말 나중에는, 그냥 영화보면서 계속 딴 생각하고 있었어요.
왜요? 집중해서 보면, 고통스러우니까!
그래서 영화 보는 척하면서.. 딴 생각하고.. 빨리 영화가 끝나기를 바랬어요.
왜냐하면 너무 고통이 이렇게 전해져 오니까...
근데 여러분, 한 사람의 죽음이, 적어도 한 가족 이상,
많게는 아주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해소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으로 몰고 간단 말이죠.
어떻게 쉽게 해소할 수 없는 고통으로 몰고 간단 말이지요. 한 사람의 죽음이!
그런데 아담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 올 미래까지,
(억울한 죽음을 통한) 얼마나 많은 저주의 에너지들이 있을까 생각해보세요.
이거를 해소할 방법이 있을까요?
제가 단언컨대 해소 못해요. 그 누구도 해소할 수가 없어요.
이 저주의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고통의 총량이 있는데
이 양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옥의 고통에서 치를 떨면서 분노하면서 슬퍼하면서 겪어내야만
겨우 해소될 수 있을까 말까한 양이 아니겠어요? 잘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만들어내는 죄들.. 전쟁을 통해서 죽어간 사람들...
질병을 통해서 일찍 사망한 사람들... 이 모든 고통이 (그들의 죄값으로) 해소될 수 있을까요?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운 죽음만이
그 모든 죄값을 해소시킬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거예요.
그래야만 이 고통과 저주를 끝낼 수 있는 거예요.
아니고는 이 고통과 저주를 끝낼 방법이 없어요. 이 어마어마한 양의 고통을!
그래서 참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친히 내려오셔서
그 모든 고통의 저주들을, 십자가 위에서 친히 감당하신 거예요.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요.
이 고통을 감당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것이 여러분 십자가의 구원에 대한 얘기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왜요? 사랑하시니까!
그게 요한복음 3:16~17절의 얘기에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에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를 단순히 죄인에서부터 의인으로 만드는 그런 종교적인 영향이 아니요.
십자가는 죄의 모든 저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는 실제적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제가 오늘 예배 시작할 때 기도했듯이 예수 그리스의 보혈에는 여러분 능력이 있습니다.
왜 능력이 있냐면, 어떤 저주든지 간에 그 저주가
여러분의 죄로 말미암아 주어진 저주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 지은 죄 때문에 여러분이 억울하게 겪게 되는 고통이든,
아니면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놓은 죄 때문에
그 환경 속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고통이든 관계없이
예수께서 이미 그 죄가 만들어 놓은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를
십자가에서 다 소멸시키셨다는 거예요.
이것을 믿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그 소멸된 에너지가
여러분을 고통가운데로 집어넣지 않게 하시겠다는 거에요.
이게 여러분, 십자가의 진짜 의미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보혈 아래로 들어오는 자에게는
더 이상 치러야 될 죄의 고통이 없다는 거예요.
예수께서 다 치러주시므로, 더 이상 우리가 이 죄의 고통들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이 해방의 역사를 우리에게 행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롬8:1~2
이것이 여러분 하나님의 선포인 줄로 믿습니다.
네 맞아요. 우리 주변엔 아직도 죄와 죄로 말미암은 고통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에서 이미 그것들을 다 소멸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지금은 잠깐 딜레이 되고 있는 기간이야 지금은 잠깐 딜레이 되고 있는 기간인데
하나님께서 완성하셔서, 더 이상 죄의 저주가 없는 완전한 세상을 만드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딜레이 되는 시간을 뛰어넘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누리게 될 그 해방과 구원의 은혜를
지금도 누리도록 해주시겠다는 거예요. 그게 여러분 구원의 약속인 줄로 믿습니다. *현재천국
이것이 구원의 약속인 줄로 믿습니다. 그럼 또 이런 거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냥 죄 값 치르셨으면, 바로 고통을 더 없게 하실지,
왜 또 시간을 딜레이 하셔서, 이 고통을 한꺼번에 해결 안 하시고 끝까지 놔두십니까?’
나도 몰라요.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해 못하는 부분이 반드시 조금씩 남아있어야 돼요.
그런데 제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묵상하고 기도할 때
깊게 느끼게 되는 건 뭐냐면, 하나님의 지혜가 부요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 안에 있다는 거예요.
이 죄를 해결하시는데도, 여러분 죄의 속성을 그대로 이용하시는 거 아십니까?
죄의 속성은 뭐냐면 내가 잘못한 건데, 다른 사람이 피해를 봐요.
다른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내가 피해를 봐요. 억울하잖아요. 이게 죄의 속성이거든요.
이게 뭐냐면, 하나님의 속성을 반대로 거부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은혜의 법칙 이전에) 인과율의 법칙을 두셨고,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내가 심으면 내가 거두는 게 하나님의 속성이에요.
그런데 죄는 정반대로 하나님을 대적해요.
내가 잘못했는데 다른 사람이 피해를 봐요.
다른 사람이 잘못했는데 내가 피해를 봐요.
그건 억울한 거잖아요. 공의롭지 않잖아요. 이게 죄의 속성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를 향해서 뭐라고 그러시냐면,
‘오케이, 너 죄야.. 잘 들어!
너는 저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다른 사람이 대신 고통을 치르게 하는 것을 즐기고 있지?
그게 너한테는 합법이지?
그렇다면 내가 그거 그대로 따라서 네게 해 줄게!
그 고통을 내가 다 질게.
어차피 다른 사람이 치러줘도 된다며?’ 하고 예수님이 우리 죄값을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이개 하나님의 지혜의 부요함이에요.
마귀의 그런 모든 불의와 모순과 악함까지도 선하게 이용하셔서,
우리를 구원하는 데 사용하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왜 뒤에까지 미루는지는 몰라요.
그것도 아마 깊이 생각하면,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것이 더 좋은 거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을 거예요.
▲마치는 말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뭐냐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자들에게는
죄가 만들어내는 그 고통을,
십자가가... 그 모든 종류의 고통, 모든 종류의 저주,
그 모든 죄의 결과로 인한 고통과 저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셨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 고통이 내 죄 때문에 만들어낸 것이든, 다른 사람이 죄 때문에 내가 겪는 것이든,
아니면 타락한 세상에서 오는 결과든...
질병이나 이런 건 사실 내가 고의적으로 만들어낸 건 아니지요.
하지만 타락한 세상 때문에 겪게 되는 어떤 공통적인 결과 때문 일수 있지요.
하여간 무엇이든지 간에 거기로부터 해방케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신 날을 기억하는 이 금요일,
저와 여러분 가운데 믿음을 통하여
십자가가 던져주고 있는 해방과 자유와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임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요구하셨어요.
그 한 가지가 뭐냐면 믿음이에요.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모든 죄의 고통이 다 소멸되었다고 하는 것을 믿으라는 거예요.
그것이 내 죄든, 저 사람 죄든, 우리 공동의 죄든
하여간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죄값이 다 치러졌다는 거예요.
죄값이 다 치러졌다는 거예요.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는 자는, 시간을 뛰어넘어서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여전히 죄의 고통 가운데 있지만
이것을 뛰어넘어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진정한 치유와 회복과 자유 가운데로
들어가 누릴 수 있게 하신다는 거예요.
맞아요. 아직 천국이 이곳에 완전히 임하진 않았어요. already not yet
그렇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앞으로 다가올 천국을 누릴 수 있게 하셨다는 거예요.
이것이 십자가 속에 담아두신 축복인 줄 믿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실 때, ‘하나님 저희가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의 고통과
그 보혈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 보혈의 능력을 믿습니다.
우리를 모든 고통과 저주로부터 해방시키실 그 보혈의 능력을 믿습니다.
이 밤에 그 역사를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셔서, 우리 안에 회복이 일어나게 하시고,
우리 안에 치유가 일어나게 하시고, 우리 안에 용서가 일어나게 하시고,
우리 안에 해방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주십시오...
우리 ‘주여!’ 세 번 부르시고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주1)
아담부터 시작해서 죄의 크기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아담 다음에는 가인이 동생을 죽입니다. 살인하죠.
근데 이 살인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낼까요?
그러니까 누군가 살인을 했어요. 그러면 그게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에너지의 크기가 얼마나 클까요? 중국 영화를 보세요.
모든 중국 영화의 모티브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복수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죽음은 죽음으로 갚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성경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피는 피로!
뭐예요? 여러분, 누군가 한 사람을 죽이게 되면, 그게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에너지의 강도는
한 사람? 아니요.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어요.
복수할 때 보세요. 여러분 한 명이 죽잖아요? 그럼 복수할 때, 열 명을 죽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는 그 뜻이 들어있어요. 한 명만 복수해라는 뜻)
모든 복수 스토리가 다 그렇잖아요. 무슨 깽단이 와가지고서 우리 가족에게 해를 입혔어요.
그래서 한 3명의 가족이 죽었어요.
그러면 그 살아남은 아버지가, 복수한다고, 상대편을 한 수십 명 죽이잖아요.
이게 다 영화 스토리잖아요.
여러분 사람의 생명은, 한 명을 죽이면 한 명을 죽이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수십 명의 생명을 요구하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